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44화 (94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44화

순간 최고 시청률 10.9%.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에 제작진은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었다.

“말도 안 돼.”

양미현 작가님이 물었다.

“과장님, 거짓말 하시는 거 아니에요? 진짜로 1화 최고 시청률이 10.9퍼센트를 찍었다고요?”

“예.”

상대가 핸드폰 화면을 돌려서 보여 주었다.

그래프 위에 선명하게 적혀 있다.

[10.9%]

“맙소사.”

“아. 힘 풀려.”

계속해서 환호하는 NBS 직원들과 달리 제작진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자리에 앉았다.

“하… 하하하….”

공동연출인 오태준 피디가 이마에 손을 얹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옆자리에 있는 구재영 피디를 불렀다.

“형. 우리 대박 났어요.”

“대박 났네.”

“지금 그렇게 반응할 때예요? 아니 우리가 지금 1화 최고 시청률이 11프로가 나왔다니깐…!”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래.”

구재영 피디가 맥주잔을 들이켰다.

이 자리에서 가장 마음고생을 많이 한 사람답게 구재영 피디의 표정에는 무언가 많은 게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상대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고마워.”

“네?”

“모든 게 다.”

짤막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구재영 피디에게 우리가 웃어 보였다.

“저희도 감사해요.”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NBS 직원들이 웃으면서 맥주잔을 들고, 제작진들도 우리에게 비슷한 눈빛을 보낼 때였다.

“자자! 여러분! 이럴 때가 아니에요! 지금은 훈훈한 인사 주고받을 때가 아니고 환호할 때라구요!”

지호가 와아아 하고 방방 뛰면서 다들 방방 뛰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와! 진짜 고생했어요! 10.9퍼센트! 여러분, 오늘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대박이다. 진짜.”

여기저기서 건배하며 흥겹게 웃음을 터뜨리고, 축제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던 제작진도 지금은 눈이 촉촉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비주가 속삭였다.

“다들 구 피디님이랑 표정이 비슷해요.”

“여기 있는 분들은 다 피디님 따라서 나온 거니까.”

10년 넘게 한 식구처럼 활동해 온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의 제작진.

방송국에서 하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되었을 텐데도 NBS라는 신생 방송국까지 구 피디님을 따라온 사람들이었다.

“야야! 주연이 너는 또 왜 울어.”

“어허어엉…….”

“네가 울면, 나도… 나도…….”

체면이고 뭐고, 어른들이 울보처럼 펑펑 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리혁이가 NBS 직원들에게 말했다.

“첫 삽은 성공적으로 떴고…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네요.”

“그렇죠.”

대답하는 NBS 직원들의 표정이 벅차오름으로 가득했다.

미래 하나만 보고 현재의 커리어를 투자한 사람들에게 오늘 첫 방송의 시청률은 ‘너희의 투자는 옳았다’ 하고 말해 준 셈이었으니까.

“홍보 자료도 빡시게 돌리고, 광고사들이랑 미팅해서 제작비도 더 뽑아내고.”

“정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우주 씨, 남극 공약 관련해서 영상 하나 찍어 볼까요?”

마지막 말을 슬쩍 못 들은 척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제작진들을 불렀다.

“일단 한 가지를 먼저 말씀드릴게요.”

“?”

“저희가 시청률 10퍼센트를 돌파했을 때 그런 약속을 했잖아요. 제작진 분들 해외여행을 보내드리겠다.”

“!!!”

“해외여행 보내드리겠습니다.”

제작진이 환호했다.

“다 같이 가는 워크숍 말고 각자 가족 분들과 갈 수 있도록 저희가 준비해 볼게요.”

“선우주! 선우주!”

동생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뉴…블랙! 뉴블랙!”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환호하는 제작진들에게 내가 말했다.

“그럼 장소 이동할까요? 3차는 저희가 쏠게요.”

“야식으로 맛난 거 먹어여! 우리!”

“와아아아아아!”

모두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동안 누군가 물었다.

“근데 우주 씨!”

“네?”

“지금 공약 지키신다고 한 시청률이 순간 최고 시청률 10퍼센트잖아요.”

“네.”

순간 최고 시청률이 11퍼센트였으니 아마 평균 시청률은 8퍼센트에서 9퍼센트 정도가 나왔을 것이다.

사실상 10퍼센트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한껏 달아오른 제작진들의 사기를 더욱더 살릴 겸 미리 이행하겠다고 말한 거였는데.

“그럼 순간 시청률 20퍼센트 나오면 남극 가시는 거예요?”

“평균 시청률입니다.”

나의 단호한 대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뉴니버스의 출연진과 제작진, NBS의 직원들이 3차 회식 자리로 이동할 때.

“이야아…!”

“이야.”

NBS 방송국의 주조정실에서는 작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주조정실 직원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말했다.

“이거 얼마나 나왔으려나.”

“내일 아침 돼 봐야 알지. 아마 8프로 후반대에서 9프로 초반대 정도 나왔을 거 같은데?”

“미쳤구나. 미쳤어.”

매일 같이 비슷비슷한 그래프를 보이던 NBS의 시청률.

가끔씩 입소문을 탄 드라마들이 2퍼센트에서 3퍼센트를 오가는 걸 제외하면 사실상 암전이나 다름없던 방송국.

그런데 이곳에서 예능 한 방에 10퍼센트가 터졌다.

“인터넷 보니까 화제성도 장난 아니더라. 우리 예능.”

“다음 주에는 무조건 10퍼센트부터 시작할걸? 볼까 말까 간 보던 사람들도 올 거고.”

“그치. 이건 된 거지.”

“진짜 터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터질 줄은…….”

주조정실 직원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NBS 직원들의 대다수는 레몬 엔터가 그리는 미래를 보고 시간을 투자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지금의 <뉴니버스 프로젝트>는 정말 큰 기회였다.

“관건은 이제 뉴니버스를 통해 얻은 화제성을 우리가 잘 받아먹어야 하는 건데…….”

뉴니버스로만 알려지는 채널이 될 것인지, 뉴니버스라는 버스를 타고 채널 자체가 성공하게 될 것인지.

그것은 지금부터 회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음?”

“왜 그래?”

“아니. 요거 그래프 봐봐. 내가 지금 눈이 삐었나. 자꾸만 헛것이 보이는 것만 같네.”

노안이 온 것 같다며 동료가 안경을 벗어 옷으로 닦는 동안, 다른 직원이 그래프를 바라보았다.

“음…?”

시청률 그래프가 정말 이상했다.

실시간으로 5퍼센트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두 직원의 시선이 지금 송출되고 있는 TV 화면으로 향했다.

“지금 금토 드라마 하는 거 맞지?”

“어, 지금 <달 그리는 밤> 맞아. 지난주에 1.9퍼센트였던 거.”

그들이 보고 있는 화면에서 화승총을 든 조선의 사냥꾼들이 산속에서 날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달 그리는 밤>

조선시대를 다루고 있는 퓨전 사극이다.

귀신 호랑이와 구미호 등의 귀물을 잡기 위한 특수부대 착호갑사(捉虎甲士)의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로 <신이>의 스핀오프로 기획된 10부작 드라마였다.

미국 수사물과 비슷한 포맷으로 주조연의 케미가 좋아 매니아들에게 호평 받는 드라마 중 하나였다.

특히 주인공인 숙희를 맡은 서노을이 현재 화제성 순위에 들었을 정도.

물론, 이 모든 화제성은 NBS가 아니고 넷플러스에서의 화제성이었다.

‘애초에 OTT를 목표로 만든 거니까.’

스튜디오 레몬이 넷플러스와 제휴해서 OTT용으로 만든 드라마니까.

하지만 OTT에서 꽤 잘나갈 뿐, NBS 드라마라는 점은 딱히 주목 받지 않고 있었다.

다들 OTT로 보니까.

그런데….

“이게 어떻게 5프로가 나오고 있는 거지?”

“그러게…?”

“?”

“??”

알 수 없는 이상 현상에 두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오늘 뉴니버스의 메인 시청자였던 수플레와 연예인 팬들, 그리고 예능 매니아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험심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찍먹해 봐야지.’

‘선발대 간다…!’

‘누구보다 빠르게 찍먹해 주지.’

머글들이 NBS라는 채널까지 가는 걸 귀찮아하고 있을 때, 이미 채널을 틀고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대박이다.’

‘얘들아. 이거 얼른 츄라이 해 봐!’

‘맛난 거 다 같이 먹자고!’

바로 온라인에서 어마어마하게 활발하다는 점이었다.

-1화부터 개꿀잼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취저

-뉴니버스 분위기 너무 좋아

-왜 제작진들이 뉴블랙 볼때마다 눈에서 꿀 떨어지는지 알거 같더라ㅋㅋㅋㅋ 진짜 나라도 어화둥둥해주고 싶음

-1화 보자마자 내 인생예능됨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이 분위기로만 가자

-예능 몇 년 만에 다시 봤는데 찐으로 만족함ㅋㅋㅋ

-버라이어티 특유의 기싸움 그런 거 없어서 넘 좋음

그들이 실시간으로 쓰는 후기글과 영업글들이 커뮤니티를 뒤덮고 있었다.

[다음 주 뉴니버스 예고편]

[오늘자 뉴니버스 원효대사 해골물 (feat.비주)]

[뉴니버스 요약]

이런 식으로 글이 연거푸 올라오니 오늘 방송을 놓친 이들은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얘드라 이거 재밌니?

-ㅇㅇ 벌써부터 시즌 2 소취하는중

-그 정도임??? 대박이네

-구재영이 이번에 진짜 대박 터뜨린 느낌

-ott에 올라오기만 해도 밥친구인디ㅠㅠㅠㅠㅠ

-(NBS 편성표.jpg) 내일 재방 일정 있오

하도 재미있다는 평가가 많아서 혹하는 사람들에게 선발대가 유혹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넘어왔다. 거의 다 넘어왔다.’

‘아, 일단 한 입 잡솨봐! 맛있다니까!’

그렇게 잠재적인 시청자들에게 열정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음?”

TV를 틀어 놓은 채로 핸드폰 자판을 토도독 두드리고 있던 이들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TV 끄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모컨을 찾을 때였다.

‘음?’

TV에서 나오는 드라마에 눈길이 갔다.

‘저거 어디서 봤는데.’

주인공이 어둠 속의 호롱불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걸음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오는 장면.

화면 우측 상단에 로고가 써 있다.

‘아, 저거 그거구나. 달밤.’

요새 넷플러스에서 꽤 흥하고 있는 드라마 중 하나였다.

TV 화면을 보고 있던 이들이 실시간 게시판에 글을 썼다.

-달밤 nbs 꺼임?? 틀고 있으니까 나오네

-ㅇㅇ 레몬 제작사 작품임

-엥 넷플러스 아니었음?

-레몬 맞아

-대박이다 나 이거 업로드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나오네ㅋㅋㅋㅋ nbs인 거 처음 알았음

-달밤 넷플 독점 아니었어???

인터넷에 글을 쓰던 이들이 TV를 흘깃 보았다.

평소였다면 딱히 보지 않았을 드라마였지만, 기차역 대합실에 나오는 TV를 보듯이 자꾸만 시선이 갔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답니다. 나의 낭군님.]

호롱불을 든 여인.

연인을 기다리다 원귀가 된 인물이 공격을 퍼부으면서 주인공이 급박하게 도망치고 있다.

‘오.’

‘조금만 봐 볼까.’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그리하여 쭉쭉 올라가는 드라마의 시청률.

NBS의 직원들도 예상치 못한 <뉴니버스 프로젝트>의 나비 효과 중 하나였다.

*   *   *

웅성웅성.

“그거 들었어요? 뉴니버스 얘기?”

“아침부터 뉴스 보는데 잠이 확 깨더라. 그게 진짜 가능한 수치야?”

“그러니까요.”

지상파 3사와 종합 편성채널, K넷과 GTV 같은 메이저 방송국 등등.

저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인 방송국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모두 비슷한 풍경이었다.

카페에서 수군수군하거나, 사원증을 찍다 마주친 친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든가.

방송국을 방문한 연예인과 매니저들도 그런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정도였다.

“오늘 방송국 분위기 왜 이래? 개편 시즌도 아닌데.”

“그거래요. 뉴니버스.”

“아…….”

“뉴니버스 시청률 때문에 피디들이 다 웅성웅성하나 봐요.”

“아, 그럼 저럴 만하지.”

오늘 아침에 뜬 연예 뉴스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으니까.

-뉴니버스 첫방 시청률 ‘8.9%’, “시청률 대박 터졌네”

최고 시청률 10.9%.

평균 시청률 8.9%

작년도에 최고 시청률 11퍼센트를 찍었던 드라마가 랭킹 10위였다.

그에 반해 뉴니버스는 이제 막 시작을 한 첫 방송이 9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질문.

-뉴블랙 단독으로 예능을 하면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까?

…라는 질문에 대해 충분히 대답을 해 준 셈이었다.

“예능으로 절대 까불지 말아야지.”

“예능만 까불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냥 까불면 안 돼요. 형. 팬들이 수천만 명이라니까.”

“아차차, 가수였지. 걔네는 볼 때마다 우리 업계 사람 같애~”

어느 연예인과 매니저가 수군수군하며 방송국을 돌아다닐 때.

각 방송국의 예능국들은 특히나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이게… 말이 돼요?”

기본적으로 PD들은 시청률에 예민하다.

-시청률만 잘 나오면 장땡이다.

국장한테 덤벼들어도 시청률이 괜찮으면 OK, 업무 시간에 게으름을 피워도 시청률 높으면 OK.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시청률이 잘 안 나오면 Not OK.

스포츠 선수들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리고 실제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매일 방송국에는 아침마다 시청률 표가 성적표처럼 벽에 붙는다.

그야말로 시청률 지상주의인 셈이었다.

“아니. 어떻게 첫 방에 10퍼센트 가까이 나오지?”

“근데 그럴 만하더라. 어제 편집 보면서 와씨, 나는 저렇게 못 할 거 같다는 생각만 들더라고.”

“일단 뉴블랙이잖아.”

“뉴블랙이랑 저런 게스트들 있으면 나도 10퍼센트 찍을 수 있다.”

“신생 케이블 방송국에서 운전 연수 특집으로?”

“…….”

아직 1화밖에 방영이 안 되긴 했지만 올해의 핫 이슈라고 할 만한 예능이 등장했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그 때문에 각 방송사 예능국 회의실마다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제 뉴니버스 안 본 사람?”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일단 한 번 더 봅시다. 배울 점도 많고. 우리 출연진들 케미 관련해서…….”

업계 최고의 예능인과 예능 PD의 조합으로 탄생한 결과물을 보며 배울 점을 찾는 피디들.

그렇게 방송가에 <뉴니버스>가 화제에 오르고 있을 때.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은 곳도 있었다.

“오늘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요.”

“그러니까. 사장이 또 지랄지랄했다며.”

바로 TBC 방송국이었다.

지금 뉴니버스로 대박을 터뜨린 구재영의 고향이자 <주세한>을 방영했던 지상파 방송국.

예능국 직원들이 소곤거렸다.

“구 피디님 나가고 나서 한참을 씹어댔잖아요. 사장이랑 그 라인들이 욕하고 저주하고. 지금까지 예능 시청률 좀 잘 나왔다고 시건방지네, 콧대가 하늘을 찌르네 어쩌고 그러고.”

“진짜 구 피디님이 그런 이야기 들을 사람이 아닌데…….”

“하여튼, 오늘 조심해요.”

그런 말을 하면서 표정 관리를 하는 이들이었다.

안 그래도 TBC 수뇌부가 뉴니버스 시청률 소식을 듣고 분통을 터뜨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사장실에서 화분 하나가 깨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쌤통이다.’

TBC 예능국 직원들이 비죽 웃었다.

보도국 지상주의 성향에 예능국이나 교양국은 들러리 취급하는 신임 사장에 대한 민심이 굉장히 안 좋았다.

다들 앞에서 ‘저런…’ 하면서도 손을 들어 웃음을 가리고 있을 정도.

“아차차. 우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네?”

“손님맞이하려면 준비해야지.”

“아… 맞다! 세상에, 이걸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지.”

TBC 예능국에서 꽤 좋은 위치를 배정 받은 <미션 싱어>의 사무실이 분주하게 들썩였다.

곧 손님이 오기 때문이었다.

“청소! 청소!”

“거기 창틀에 먼지 좀 닦아. 청소 잘 되어 있으면 좋아한다고 그러더라.”

“다들 분리수거는 잘했지? 이미지 좋게 보여야 돼.”

깔끔하게 테이블과 서류 정리를 하고, 분리수거까지 제대로 해서 청소를 마쳤을 때.

망을 보러 나갔던 조연출이 뛰어왔다.

“오, 오고 있습니다!”

“오고 있어?!”

“네, 지금 로비 들어와서 잠시 지연이 되긴 했는데… 팬 서비스 마치고 곧 올라올 거 같아요!”

모두 침을 꿀꺽 삼키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곧이어 두루미가 걷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사무실 문이 열렸다.

“헉!”

“허억…!”

새하얀 얼굴에 다소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남이 들어왔다.

저 체구에서 어떻게 노래가 나오나 싶을 만큼 호리호리한 체격에, 눈매가 매섭고 날카롭지만….

‘귀엽다!’

문을 열고 들어온 리혁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

“팬이에요! 리혁 씨!”

제작진이 팔다리를 파닥파닥 흔들며 반겼다.

거의 팬 서비스에 가까운 인사가 오가고 리혁이 방석이 여섯 개 깔린 자리에 앉았다.

“정말 리혁 씨가 저희 <미션 싱어>에 나와 주신다고 해서 영광이에요. 저희 프로가 그렇게 큰 프로가 아닌데….”

“아니에요. 평소 관심 있던 프로그램이라 한 번 꼭 나와 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정말 리혁 씨 나온다고 해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있어요.”

공정한 경쟁이 모토기에 특혜를 줄 순 없지만, 그 외적인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제작진이었다.

오늘은 사전 미팅 겸 의상 피팅.

“의상 한 번 입어 보시겠어요?”

“네, 좋아요.”

곧이어 의상을 입은 서리혁이 나타나면서 제작진이 박수를 쳤다.

해바라기를 의인화한 가면.

눈 부근에 맑은 눈을 박아서 광인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꽃잎이 나풀거리는 듯한 의상.

“!”

“!!”

스스로 만든 의상에 스스로 감탄하던 제작진이 리혁의 가슴팍에 명찰을 달아주었다.

[가왕 선우주]

꼼지락꼼지락.

명찰을 바라보던 리혁이 흐뭇하다는 듯 온몸을 꼼지락거렸다.

마치 원하던 것을 얻은 듯한 모습.

“리혁 씨.”

“네.”

“어떠세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네. 착용감이 괜찮은데요. 노래 부르기에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의상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리혁에게 제작진이 물었다.

“이제 컨셉을 정하셔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컨셉을 잡으실 건가요? 원하시는 컨셉이 있으시다면 알려 주세요.”

“음…….”

“시그니처로 쓸 문구라든가.”

“시그니처 문구요.”

그 말에 반색하던 ‘가왕 선우주’가 테이블 위에 놓은 음성 변조 장치를 손에 들었다.

[네. 수플레 여러분.]

누군가를 따라 하듯 리혁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저 가왕 선우주가 오늘 국민들 앞에서 약속드립니다. 제가 오늘 가왕에 등극한다면…! 국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광화문에서 봉산탈춤을 추도록 하겠습니다!]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우애 너무 좋고.’

‘시청률 잘 나오겠네.’

리혁이 흐뭇하게 브이를 하며 웃는 동안 제작진이 바로 그거라며 손뼉을 치며 웃었다.

곁에서 바라보던 매니저 도원석이 뺨을 긁적였다.

‘우주한테 멱살 잡힐 거 같은데… 리혁이도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있나?’

당사자가 알게 된다면 분통을 터뜨릴 법한 장면.

‘난 모르는 일이라고 해야지.’

그리하여 훈훈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주는 매니저까지.

역대급 참가자인 [가왕 선우주]의 데뷔가 3주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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