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47화
77장.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구나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나는 전세기에서 이륙을 기다리던 우리는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네?”
영상 통화 화면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뉴니버스 스탭들에게 우리가 물었다.
“…섭외가 어떻게 됐다고요?”
-전부 승낙했어.
“전부 다요?”
-응…….
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 좋은 일 아니에요? 우리가 가고 싶은 데를 전부 다 갈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러세요…?”
원하던 곳들을 다 섭외했다면 좋아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난처한 일이 생긴 것처럼 당황하는 제작진의 모습에 갸우뚱하다가 불현듯 촉이 왔다.
“피디님.”
-으, 응?
“혹시 섭외 연락을 몇 군데 돌리셨나요?”
-그게…….
구재영 피디님이 어물쩍 말을 흐리는 동안 다른 작가님이 이실직고했다.
-오십여 곳 정도 보냈어…….
“…….”
-그것도 미국에서만…….
우리가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다른 계산은 리혁이가 잘해도 먹는 거 계산은 우리 집 곰돌이가 제일 잘한다.
중현이가 손가락을 꼽더니 말했다.
“다 먹으려면 일주일 걸리는데요.”
“…….”
우리가 제작진에게 냉담한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우리가 소문난 먹보라고 하지만 오십여 곳은 무리였다.
-그, 우리도 할 말은 있어!
-우리 잘못만은 아니야!
제작진이 해명했다.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이거 엄청 어려운 섭외야. 요리사들이 보통 콧대가 높니? 유럽이나 미국에서 잘나가는 음식점들, 특히 미슐랭에 오른 곳들은 아시아 방송이라면 일단 까고 본다니까.
“그래서 섭외 연락을 엄청 돌리신 거군요.”
-100개 던져서 10개 정도 건진다는 마음으로 던져 본 건데…….
구재영 피디님이 말끝을 흐렸다.
-몽땅 다 섭외가 되어 버렸네…….
“…….”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했다.
음식점이 50명이면 요리사만 50명 아닌가.
‘마스터 셰프 : 뉴블랙 편’ 같은 요상한 특집이 잠시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런데….”
비주가 의문스러운 지점을 짚었다.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어떻게 다 섭외가 된 건가요?”
-너희 덕분이지.
“?”
-너희 이름 대니까 프리패스던데…? 한국 방송이라고 할 때는 무시하다가, 너희 이름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다들 태도가 바뀌더라고. 심지어 자기 레시피 공개해 주겠다는 셰프도 있었어.
우리의 유명세 덕분이었다는 이야기에 머쓱한 웃음을 터뜨렸다.
제작진이 묘하게 현타가 온 표정으로 말했다.
-외국에서 촬영 협조 구하면 매번 까이는 게 일상이었거든. 유명 외국 레스토랑에 전화할 때마다 절대 안 된다고 그러고… 그때가 주세한이 제일 잘나갈 때였어.
-너희 좀 많이 유명하더라….
-그니까. 우리가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유명한 거였어.
뉴블랙 님들 잘 부탁드린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제작진에게 우리가 아이고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리혁이가 물었다.
“그나저나 전부 다 갈 수는 없으니까 골라야 할 텐데, 그중에서 꼭 가 봐야 하는 곳이 있나요?”
-유명 셰프들이 하는 곳들은 꼭 가 봐야 할 거 같아. 일단 바비 로스랑 단테 첼리니가 하는 레스토랑. 저 둘은 셰프들이 직접 출연하겠다고 약속까지 해 줬거든.
“……어마어마한 분들이 걸렸네요.”
한국인들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셰프들이었다.
-근육으로 요리한다!
한국에서 그런 밈으로 유명할 만큼, 어마어마한 덩치에 근육을 꿈틀거리는 흑인 요리사 바비 로스.
미국 남부 요리의 대가로, 유머러스한 방송 센스로 유명한 요리사다.
그리고 단테 첼리니는 인기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꼬장꼬장한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셀렌, 당신의 요리는 정말이지 미학적으로 아름다웠어요.
-감사합니다. 셰프.
-쓰레기 같은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한테는 말이죠.
일명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의 대표적인 예시로 알려져 있는 요리사.
어지간한 셀럽보다 더한 유명세를 가진 요리사들이 출연 약속을 해 줬다는 말에 동생들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메트로가 좀 많이 성공했나 본데?”
“그, 그러게요.”
구재영 피디님이 말했다.
-사실 행복한 팔자지. 보통이면 전화기랑 컴퓨터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어야 하니까. 촬영 협조가 이렇게 스무스한 건 정말 좋은 일이야. 다만 어디를 골라야 할지를 모르겠네.
“진짜 어렵네요.”
-그래서 너희한테 연락을 해 본 거야. 리스트를 메일로 보내 줄 테니까, 같이 고민을 해 보자. 일단 유명한 곳들만 추리긴 했는데 어디가 정말로 맛있는 곳인지는 모르니까.
“네, 피디님.”
그런 말을 하면서 통화를 종료하려고 할 때였다.
-그래. 미국 투어 잘 다녀오고. LA에서 보자.
“아, 피디님.”
-응?
“생각해 보니까 저희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요.”
고개를 갸웃하는 피디님에게 우리가 말했다.
“저희가 미국에 팬들이 많잖아요. 아무래도 현지 식당은 현지인들이 제일 잘 알 테니까….”
-팬들에게 물어본다?
“네.”
-어? 괜찮은 생각인데?
제작진들이 좋은 아이디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올릴 테니까 댓글 살펴봐 주세요.”
-응.
제작진이 핸드폰을 들어서 인스타에 접속하는 동안, 내가 대표로 인스타에 영어로 게시글을 썼다.
[LA 맛집 알고 있는 수플레 손!]
곧이어 달리게 될 댓글들을 기다리며 우리가 콧노래를 불렀다.
“맛집. 맛집.”
“맛집 추천~”
게시글을 올리고 바로 새로고침을 눌렀다.
[댓글 487개 모두 보기]
“오호.”
우리가 댓글을 훑어보려고 할 때였다.
깜빡.
[댓글 3387개 모두 보기]
깜빡.
[댓글 15789개 모두 보기]
깜빠악….
[댓글 47893개 모두 보기]
“…….”
“…….”
새로고침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댓글 수.
깜빡.
[댓글 105765개 모두 보기]
10만 개 돌파.
제작진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그… 제가 생각보다 인기가 많네요.”
-…….
제작진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 *
댓글이 너무 많이 달리긴 했지만, 수플레들의 댓글은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만든 리스트랑 꽤 겹치는데? 이걸로 교차검증하면 되겠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들과 제작진이 작성한 리스트의 맛집을 비교하겠다는 모양이었다.
“진짜 수플렝 리스트네요. 아닌가. 수슐랭인가?”
“아니면 수셰린 가이드?”
이름을 붙이다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근데 미슐랭이야. 미셰린이야?”
“둘 다 아니고 미쉐린이에요.”
리혁이가 말했다.
“그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미쉐린일 걸요. 타이어 회사에서 만든 가이드에서 시작한 거예요. 타이어맨 알죠? 거기.”
“흐하하하!”
“아니, 진짜라니까요.”
“안 속는다. 리혁아. 우리가 바보처럼 보여도 바보가 아니야~”
동생들과 내가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타이어맨을 마스코트로 하고 있는 회사가 만든 게 미슐랭 가이드라는 말에 한참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
그러고는 몰래 검색했다.
“…….”
진짜였네.
부들부들 떨면서 분해하는 리혁이를 바라보고는 슥 모른 척했다.
“아. 경치가 좋구나.”
차창 밖으로 6월의 푸르른 녹음이 스쳐 지나간다.
초여름.
살짝 열린 창틈 사이로 여름의 냄새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것들이 풀냄새와 섞여 들어온다.
[Welcome to ARLINGTON]
표지판이 하나 스쳐 간다.
우리가 탄 차량이 달리고 있는 곳은 바로 텍사스 주의 알링턴이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국립묘지가 있는 그 알링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 알링턴이 여러 개였다.
“와. 여기는 완전 여름이네요.”
“그러게, 선크림 좀 많이 발라야겠다.”
분명 한국에서는 이제 막 초여름에 들어간 날씨인데, 여기는 벌써 무더운 여름이 찾아와 있었다.
선크림을 조금 더 두껍게 바르고는 선글라스를 챙겨 들었다.
곧이어 우리의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AT&T Stadium]
NFL 미식축구 경기장으로 쓰이는 장소로 우리와 이틀간 함께 하게 될 콘서트 장소였다.
2일간 11만 명.
회당 5만 명 이상이 수용 가능한 어마어마한 공연장답게 벌써부터 그림자에 위압감이 감돈다.
“뭔가 중현이 형 같은 경기장이네요.”
“그러게.”
고오오오…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공연장의 모습에 중현이가 뿌듯한 얼굴로 코를 슥 문질렀다.
오늘의 일정은 가벼운 리허설.
공연장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미국 측 스탭들이 인사해 왔다.
「뉴블래애액~!」
「오랜만이에요! 다들 잘 지냈어요?」
지난 5월 중순에 있었던 플로리다 탬파 콘서트 이후로 2주 만에 다시 만난 스탭들이었다.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주먹을 꽁 맞부딪혔다.
다들 오늘따라 사기가 어마어마했다.
「그거 알아요? 그거?」
한 직원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 AT&T 스타디움에서 2일 연속으로 공연하는 최초의 가수예요.」
「정말요?」
「네, 지금까지는 전부 다 하루 공연이었거든요. 여러분이 최초인 거죠.」
인원수도 10만 명이 최대였는데 이번에 우리가 그 기록을 넘었다는 모양이었다.
신기록이라는 말에 동생들과 행복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럼 리허설 가 볼까요?」
리허설 분위기도 몹시 좋았다.
간혹 투어 중에 ‘어? 오늘 좀 되는 날인가?’ 싶은 날들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특별하게 문제 되는 점도 없고, 본 공연 때도 딱 이대로 가면 좋겠다 싶은 느낌.
「수고했어요!」
「수고 많았어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리허설을 마쳤다.
이제 기술적인 점검 등을 몇 가지 남겨 두고, 공연장 객석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그런데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우리 에이전트인 디안젤로 씨의 물음에 답했다.
「저희가 한국에서 TV 쇼를 하나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에 미국에서 맛있는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려고 하거든요.」
「오. Man v. Food 같은 프로그램이군요. 거기서도 맛집들을 찾아다니거든요.」
「네, 그래서 리스트를 훑어보고 있어요.」
미국 스탭들이 관심을 보였다.
꽤 많은 수가 LA 출신이기도 해서 리스트 중에 어떤 음식점들이 맛있다고 추천을 해 줄 때.
「그러고 보니….」
마침 미국 스탭들에게 물어보면 좋을 만한 게 떠올랐다.
우리가 이번에 미식가 컨셉으로 예능을 찍을 나라들은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영국과 프랑스였다.
투어 일정과 겹치는 나라들.
아무래도 나라별로 특색 있는 요리를 고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1순위로 꼽을 만한 건 햄버거나 핫도그 같은 류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 하나.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
「저희가 메뉴별로 대표들을 선정하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어디 햄버거가 제일 맛있나요?」
「어느 지역 햄버거가 맛있냐는 말인가요…?」
갑자기 스산해지는 스탭들의 표정.
「네? 네.」
「…….」
방금까지 유쾌하게 꺄르르 웃어 대던 스탭들의 표정이 심각해지면서 우리가 눈빛을 교환했다.
‘왜 저러지?’
‘그… 그러게요?’
그런 우리의 곁에서 에이전트인 디안젤로 씨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질문을 잘못 고른 겁니다.」
「?」
「보시면 압니다. 이제 곧 치열한 토론이 펼쳐질 테니까요….」
그때는 몰랐다.
그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 * *
알링턴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LA에서의 콘서트만 마치면 미국 투어는 그야말로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넌 틀렸어!」
「지금 우리 도시를 무시하는 거야? 우리 도시가 작아도 햄버거로는 미국 1등이라고…!」
로즈볼까지 함께 할 스태프들의 의리는 박살 나 있었다.
“…….”
“…….”
매일 같이 토론을 벌이는 미국인들 속에서 우리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느 지역의 햄버거가 제일 맛있는가?
솔직히 어려운 질문은 아니지 않나…?
그냥 서부에서는 어디가 맛이 있고, 동부에서는 어디가, 남부는 어디가 맛있다 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싶었는데.
갑자기 미국인들이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님들 텍사스 왓어버거 무시함? 패티를 4개나 주문할 수 있고 거기에 추가 치즈까지 올릴 수 있다니깐? 야채도 신선하지. 양념 잘 됐지, 육즙도 쭈욱 흘러나오지. 여기에다가….
-패티 4개에 치즈까지? 그런 거 맨날 먹으면 주님 곁으로 떠나게 될걸. 파이브 가이즈가 제일 낫지. 마법 같은 맛이야.
-인앤아웃이야말로 순수한 버거의 결정체…!
“어차피 체인점들은 안 갈 건데…….”
“그러니까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 프로젝트이기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리스트에서 제외였다.
그렇다고 말을 해 줬는데도 스탭들은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햄버거 가지고 싸우더니, 다음에는 어느 지역 칠리소스가 제일 맛이 있느냐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멀어지자.”
“네.”
그냥 한 가지 사실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미국인들에게는 햄버거에 대해서 물어보지 말자.
우리가 말없이 떠나가는 동안에도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자, 그러면…….”
알링턴에서의 콘서트를 무사히 끝냈으니 이제 LA로 가야 할 시간.
로즈볼 스타디움에서의 콘서트를 앞두고 잠시 쉬는 동안, <뉴니버스>의 제작진과 LA를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물론….
“형은 거기 다녀올 거예요?”
“응.”
나는 가야 할 곳이 하나 더 있었다.
“형, 저도 궁금한데 한 번 가 봐도 돼요?? 저 할리우드에서 촬영 어떻게 하는지 진짜 궁금한데…!”
“그래, 같이 가자.”
“진짜요? 진짜 저 가도 돼요?”
“응. 안 될 게 뭐 있어.”
내 말에 지호가 우와앙 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동생들도 ‘나도 갈래’ 하는 모습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서 응원해 주고 오자.”
LA에서의 첫 목적지.
그곳은 바로 우리 아빠의 전기 영화 의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세트장이었다.
* * *
LA 외곽의 한 커피숍.
보통이었다면 적당히 붐볐을 평일 점심시간대가 지금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젠장!’
알바생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손님들이 엄청 많군.’
길게 늘어선 손님들이 커피를 주문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알바생의 눈이 손님들에게 향했다.
‘어제도 왔던 사람들이잖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일주일 가까이 커피숍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 여자였지만, 소수의 남자도 끼어 있는 라인업.
저마다 인종이나 나이는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반짝반짝!
다들 엄청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나를 봐 주세요!’ 하듯이 구애의 향기가 물씬물씬 풍겨 오는 분위기.
조깅하고 커피숍에 들어온 컨셉, 잠시 작업을 하러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컨셉 등등.
이들이 저마다 컨셉을 잡고 커피숍에 죽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딸랑-
오후 12시 30분.
문이 열리면서 손님들의 시선이 흘깃 향했다.
“!”
“!!”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과 같은 표정들.
알바생이 조용히 웃었다.
‘왔구나.’
지금 카페 매상을 10배 가까이 올린 장본인이 들어와 있었다.
‘진짜 잘생기긴 했다.’
아무 무늬 없는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
하지만 그 비율이 어마어마했다.
조각상과 같은 비율에 섬세한 이목구비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거기에 안경이 더해져 지적인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배우라고 했던가…? 이름이 견우 리?’
근처 촬영장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커피를 한 잔 마시러 오는 손님이었다.
유리 창가에 앉아서 대본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게 소문났는지 손님들이 바글거렸다.
‘오늘은 반드시 내 번호를 주고야 만다!’
‘잘생겼어….’
‘어느 나라 사람일까? 귀족 같아.’
커피를 주문하는 그의 얼굴을 흘깃거리는 시선들.
저마다 컨셉을 잡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고 있을 때였다.
이견우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커피숍도 옮겨야 하나.’
한적한 카페에서 대본 읽는 게 취미인 한류스타에게 몹시 번거로운 환경이었다.
잠시 대본에서 시선을 떼면 누군가 찾아와서 말을 걸곤 했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네?」
선명주의 분장을 하고 있던 이견우가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괜찮으시다면….」
주섬주섬 메모지에 번호를 적어서 건네주려는 여성과 그 뒤에서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남녀들.
‘오늘은 어떻게 거절해야 되지.’
최대한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멘트를 떠올리고 있던 이견우가 고민을 할 때였다.
「저는…….」
이견우의 눈이 커졌다.
딸랑-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온 미남 때문이었다.
‘우주?’
촬영장에 찾아온다고 했던 우주가 직접 그를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내향성 배우의 눈이 반짝였다.
‘우주야!’
그와 눈이 마주친 상대가 눈빛으로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선배님?’
‘응, 도움이 절실해.’
우주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우렁차게 말했다.
「아빠!」
「?」
「엄마가 찾아요!」
우주와 그를 번갈아 보던 여성이 ‘!’ 하는 표정으로 번호를 건네주려다 말고 뒷걸음질 쳤다.
「방금 아빠라고?」
「아빠…?」
「부인이 있는데 반지를 빼고 다닌 거야?」
그리고 아빠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
「아니, 저는…….」
이견우가 오해를 풀기 위해 손을 뻗는 동안 손님들이 냉정한 얼굴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오는 가짜 아들의 모습에 이견우가 주먹을 꼭 쥐었다.
‘선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