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48화
절친한 연예계 선배가 위기에 빠졌다면?
그것을 구해 줘야 하는 것이 후배의 임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어떠셨나요. 선배님. 저의 임기응변이 선배님을 구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
“고맙다는 눈빛이신 거죠?”
찌릿!
이견우 선배의 눈동자가 가늘어지면서 내가 웃었다.
“죄송해요. 선배님. 뭔가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게 그거밖에 없어서…….”
“꼭 그렇게 나를 쓰레기로 만들 건 없었잖아….”
“쓰레기요?”
“하필이면 내가 지금 반지를 안 끼고 있어서.”
“?”
이어지는 이견우 선배의 설명에 내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찌릿!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래도 덕분에 한산해지긴 했네…….”
슬픈 얼굴로 카페를 두리번거리던 이견우 선배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내가 맞은편 의자에 앉자 상대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매니저님이 말씀해 주시던데요. 근처에 선배님이 자주 다니는 카페가 하나 있다고.”
“아.”
“그나저나 되게 번거로우셨겠네요. 선배님 지켜보는 사람들 엄청 많던데.”
“자주 있는 일이니까 익숙하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잘난 척이라고 놀림 당할 발언이지만, 나도 모르게 수긍했다.
그럴 만했다.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멍 때려도 우수에 젖은 것처럼 보이는 눈망울.
어찌나 높은지 그림자마저 생길 만큼 오뚝한 코.
섬세하게 조각된 것 같은 얼굴을 볼 때면 정말 감탄이 나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응? 왜 그래?”
“아니에요. 아무것도.”
지금은 우리 아빠와 똑 닮은 분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수줍은 기분이었다.
우리 아빠가 젊었을 때 꼭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고 그랬다.
선명주의 분장을 한 배우가 잠시 대본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 얼굴을 몰래 구경할 때였다.
「저기.」
조거 팬츠를 입은 갈색머리의 여성이 다가와 있었다.
「혹시 뉴블랙 아니에요?」
「네, 맞아요.」
뉴블랙이라는 말에 커피숍에 남아 있던 손님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곧바로 사진 한 장을 찍어도 되냐는 물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다가와 질문했다.
「그런데 방금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진짜 아빠예요?」
「아뇨.」
내가 가볍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저의 아버지인 선명주의 전기 영화를 촬영 중이거든요. 거기에서 저희 아빠의 배역을 맡아 주신 배우님이에요.」
「아아!」
「아아아!」
이견우 선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람들에게 열심히 홍보했다.
「올해 연말에 개봉 예정인 저희 에 많은 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친구들이나 주변에 아는 지인들에게 소문 내도 좋아요. 아주 화려한 뮤지컬 영화가 올 거라고….」
핸드폰을 들어 촬영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아빠가 작곡한 재즈곡의 한 소절을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견우 선배가 곁에서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우주야.’
‘뭘요.’
나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뒤에서 흐뭇하게 웃는 내향인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장래희망이 돌멩이였다는 선배님이 그런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잠시 사인을 하거나 사진을 찍어 주던 나에게 슬쩍 쪽지를 찔러 주는 사람들.
「?」
전화번호들이 적힌 쪽지였다.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견우 선배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들이 지금은 나를 보며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
방금 전에 관심이 분산됐다며 좋아하던 이견우 선배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긴 한데 뭔가 안 좋은 듯한 표정.
그 표정에 내가 선배의 귀에다 소곤거렸다.
“선배님~”
“응?”
“제가 선배님을 이긴 것 같습니다. 후후후.”
상대가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 * *
“내가 얼굴로 지다니…….”
“원래 땅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 위에 우주가 있는 법이죠. 선배님. 미모는 상대적인 거예요. 아하하하핫!”
방정맞게 웃으며 좋아하는 내 모습에 상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운 동생 바라보는 듯한 눈빛.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좀 귀여운가.
“그나저나 LA는 날씨가 진짜 좋네요.”
“한국에서 일이 있는 것만 아니면 여기서 몇 달은 살고 싶더라. 매일매일 화창하고.”
“저희도 나중에 LA에서 집을 하나 구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매번 호텔에 묵는 것도 일이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배와 LA 거리를 걸었다.
우리 아빠의 분장을 한 배우 덕분인지, 왠지 모르게 사소한 산책인데도 기분이 좋다.
촬영장이 눈에 들어오는 동안 상대에게 물었다.
“촬영은 잘 되고 계시나요?”
“응. 해외 로케이션이라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며칠 지나니까 금방 적응하더라고.”
“불편하신 점은요?”
“딱히 없네. 그냥 내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은 걸 빼면…….”
조금 더 잘할 수 있는데, 100퍼센트를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완벽주의자였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으시다면 노래로 메우시는 건 어떤가요? 오늘 만난 김에 저랑 보컬 트레이닝을 더 해서….”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 연기가 만족스러운 거 같아.”
“노래 연습은 제대로 하고 계신 거 맞죠? 이따 숙제 검사할 거예요.”
상대가 작게 투덜거리는 모습에 웃고는 촬영장에 진입했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서 방방 뛰는 누군가의 환호 소리가 들려온다.
“?”
“지호일 거예요. 쟤 오늘 할리우드 촬영장 구경한다고 엄청 신났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산책을 나온 대형견처럼 여기저기 ‘와!’ ‘와!’ 하며 뛰어다니는 우리 막둥이가 보인다.
“대박… 이거 한국에서 구경하기 힘든 카메라인데! 이걸로 뮤지컬 씬 찍을 거예요? 세상에, 대박이다.”
“이거 배우들이 쓰는 트레일러잖아요! 저 안에 구경해도 돼요, 선배님!? 진짜요?”
“와! 이건 미국 콜라!”
세상 신난 얼굴로 돌아다니는 지호의 모습에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막내가 다른 동생들에게 손을 흔든다.
“형! 형! 저 여기 트레일러 앞에서 사진 찍어 주세요.”
“잠시만.”
비주가 웃으며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 동안 나는 촬영 준비가 이뤄지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운드 오브 선>의 연출인 김보라 감독님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 견우 씨랑 우주 씨.”
“오랜만에 봬요. 감독님.”
“여기 편하게 앉아요. 지금 다음 씬 준비 들어가고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려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촬영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했다.
조명 위치를 조정하는 스탭들.
세트장에서 소품을 점검하는 미술팀.
창문에 설치된 그린 스크린.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놓은 곳 근처에서 흑인 배우와 한국인 아역 배우가 세팅을 기다리고 있다.
“!”
눈이 마주친 아역 배우가 쪼르르 달려와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내가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했다.
캐스팅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가 얼마 만이지? 15년도에 만났나?”
“네.”
“이제 그러면 초등학교 6학년이겠네? 13살.”
“네! 저 내년에 중학교 들어가요.”
의젓한 얼굴로 대답하는 배우의 이름은 바로 김지호.
우리 아빠의 아역을 담당하는 배우였다.
나와는 15년도에 일산의 한 쇼핑몰에서 ‘겨울 세일 미니 콘서트’ 행사로 만난 적 있었던 키즈 댄스 미튜버.
<명곡단> 첫 방송을 앞두고, 우리가 목 상태가 안 좋아 깔았던 AR 때문에 라이브 실력 논란이 일었던 그 행사에서 만났던 기억이 난다.
“댄스 미튜브는 그만둔 거야?”
“네…. 여전히 춤이 좋긴 한데 제가 그쪽으로 재능이 엄청 뛰어난 건 아니라서요.”
“오히려 연기 쪽에 재능이 있었구나?”
“네.”
댄스 미튜버라서 나중에 아이돌 쪽으로 지망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배우 쪽으로 방향을 바꾼 모양이다.
하긴, 우리 지호도 원래는 배우 지망이었다가 아이돌로 방향을 튼 거니까.
우리 아빠의 아역 경쟁률이 400대 1이었다고 하던데, 그걸 통과한 걸 보면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소속사는?”
“그냥 엄마랑 둘이 다니고 있어요.”
멀찍이 바라보니 제작진과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어머님이 보였다.
마침 준비가 다 됐는지 배우들이 스탠바이를 하러 떠났다.
촬영 전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김보라 감독님이 내 옆에 앉았다.
“촬영장은 좀 둘러봤어요?”
“네. 분위기 좋은데요?”
“지호 씨 덕분에 분위기가 확 산 거 같아요. 신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까.”
멀찍이서 ‘우와!’ 하며 감탄하는 지호의 모습에 제작진이 웃고 있다.
“촬영은 이제 거의 막바지인 건가요?”
“네. 거의 끝나 가요.”
“되게 금방 끝나네요.”
“원래 촬영은 그렇게 안 길어요. 포스트랑 프리 프로덕션이 오래 걸리는 거지… 막상 본 촬영은 빨리 끝내야 되거든요. 하루라도 지체되면 현장 인건비가 더 늘어나는 거니까.”
감독님이 설명했다.
“거기에 감독마다 성향 차이도 있고요. 나는 편집감독이랑 같이 현장에서 편집점까지 잡고 작업하는 스타일이라서… 아무튼 포스트 프로덕션도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언제쯤 나온다고 보면 될까요?”
“일단 OST 녹음이랑 뮤지컬 씬들을 촬영해야 알 수 있을 것 같긴 하네요.”
OST 녹음 쪽은 내가 담당할 분야였다.
프랭크 차우와 함께 작업한 OST는 이미 녹음 전 단계까지 모두 마무리된 상태.
이제 배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조만간 일정 잡아볼게요.”
“잘 부탁드려요.”
빙긋 웃던 김보라 감독님이 발걸음을 옮기다 멈췄다.
“아, 참.”
“?”
“일이 예정대로 흘러간다면 아마도 11월 정도에 개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주 씨 생일이 11월 9일이었죠?”
“네.”
“우주 씨한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을 거 같네요.”
상대의 미소에 나도 웃음으로 답했다.
정말로 기다려졌다.
* * *
“Ready… Action!”
감독님의 구령에 맞춰 촬영이 들어간다.
곧이어 펼쳐지는 연기.
적막이 감도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서로에게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우정을 쌓기도 하고, 때로는 애정을….
“으아아아…….”
엄마아빠의 로맨틱하고 달달한 씬에 내가 눈을 가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손수건을 들어 땀을 닦고 있는 이견우 선배와 이명은 역의 여은선 배우가 박장대소하는 게 보인다.
「자! 그럼 바로 다음 장면 준비 들어가겠습니다! 1번 조명 치우고, 3번으로 갈게요.」
「배우들 이동하겠습니다!」
장면 하나가 촬영이 끝나면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순서도 뒤죽박죽.
나도 <우리 가족은 외계인>을 찍으면서 느끼긴 했지만 배우는 정말 대단한 직업이다.
화해하는 장면을 찍은 뒤에 싸우는 장면을 찍는 등, 순서가 제각각인 장면들을 그때마다 몰입해서 찍는다.
“와…….”
비주가 감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짜 촬영 들어가면 바로바로 몰입하네요. 신기하다.”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 스탭들 사이에서 느슨하게 웃고 있던 이견우 선배가 냉철한 얼굴로 우리 아빠를 연기하고.
엄마 곁에서 대본을 읽고 있던 꼬마 지호도 의젓하게 연기를 했다.
“지호야.”
“넹?”
“저 친구 어때?”
“음…….”
지호의 시선이 아역 배우에게로 향했다.
“괜찮은데요? 기초를 되게 탄탄하게 쌓은 느낌이에요. 연습도 엄청 많이 한 거 같고.”
“흐음.”
“왜요?”
“아직 소속사가 없다고 하더라고.”
나중에 이사님이나 배우팀 팀장님 만나면 한 번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잠시 촬영장에서 돌아가는 일을 구경했다.
지호가 속삭였다.
“근데 감독님이 진짜 대단하신 분이에요.”
“그래?”
“네, 저렇게 편집점 바로바로 잡으면서 찍는 감독님들이 없거든요. 그냥 대체로 요 각도도 한 번 찍어 보고, 이 각도도 찍어 보고~ 하면서 뭘 편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다 찍는?”
지호가 말했다.
“물론 나중에 편집실 들어갔을 때 ‘어…? 이 장면이 필요한데?’ 하면서 재촬영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 거긴 한데, 그래도 저렇게 바로바로 찍으시는 분들은 되게 드물어요.”
“그렇구나.”
집중한 얼굴로 디렉팅을 하는 김보라 감독님과 함께 그 곁에서 모니터링을 하는 배우들이 보였다.
내가 연기에 대해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잘한다.
박력이라고 해야 되나. 배우들의 에너지가 스크린을 뚫고 전해질 듯한 느낌.
잘 되는 촬영장들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동생들과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선명주 씨의 배역을 흑인 배우가 맡는 건 어떨까요?
…라는 말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프로젝트.
올해 1월에 시작되었던 프로젝트가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손에 달린 OST 작업과 포스트 프로덕션의 CG나 그래픽 작업 등등.
가슴이 콩닥거린다.
“이제 5개월만 지나면…….”
다섯 달 정도만 기다리면 극장에 <사운드 오브 선>이라는 영화가 걸리는 것이다.
영화가 잘 되면 지금까지 특별하게 조명받지 못했던 아빠의 일대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수 있고, 외국 사람들에게도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줄 수 있다.
거기에 일이 잘 풀린다면….
“OST로 상도 받는 거지.”
“!”
“!!”
중현이가 말했다.
“와 소름. 형, 저 방금 형이 아카데미 주제가상 받는 상상했어요.”
“중현아, 그건 꿈이 너무 크다.”
“그런가요?”
“소박하게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는 것 정도로 하자.”
동생들과 소곤소곤 속삭이며 꺄르륵 김칫국을 마셨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Ayo 덕순!
영화계의 중심에서 김덕순을 외치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덕, 2할이 순이었습니다.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장면을 그려 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영화 촬영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오전에 찍어야 할 촬영이 평소보다 더 일찍 끝났을 때.
“우주야.”
근처에 있던 민기 형이 속삭여 주었다.
“도착했대.”
“그래요?”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 한국인들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대부분인 스탭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트장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가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 특별한 음식들을 준비했어요!”
“!”
“!!”
짜라란 하며 우리가 소개했다.
“다들 한국 음식이 그리우셨죠?”
“아니. LA 한인 타운에서 맨날 갈비랑 해장국 먹는데…….”
이견우 선배에게 우리가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그, 그렇지만 한국 음식이 매번 그립지.”
“네. 저희가 여러분을 위해서 오늘 특별한 한국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배우들과 제작진을 위해 특별하게 준비한 선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이, 이게 뭐죠?!”
“진정한 K푸드의 정석.”
“?”
“바로 K-양념치킨입니다!”
“!!”
거대한 트럭에서 착착 준비물을 내리고 있는 사람들.
사장님에게 우리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동안 한국 배우들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와. 무슨 치킨집을 가져오기라도 한 거예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
“??”
리혁이가 당연하지 않느냐는 얼굴로 물었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으면 한국 식당을 가져오면 되잖아요? 저희 외국 다녀올 때마다 팬들에게 그렇게 조공하는데.”
“……리혁 씨도 뉴블랙이었군요.”
“네?”
왠지 모르게 욕을 들은 사람처럼 리혁이가 멈칫하고 있을 때.
처음에는 거대한 스케일에 당황했던 사람들이 이내 ‘잘 먹겠습니다!’ 하며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할 때였다.
“가려고?”
이견우 선배가 아쉬워하는 얼굴로 물었다.
“같이 먹지.”
“저희 지금부터 먹으러 다니는 스케줄이 있어서요.”
“?”
“뉴니버스 다음 특집과 관련된 일이에요.”
그런 말을 하면서 동생들과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LA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미식가처럼 밥을 먹으러 갈 시간.
“그 전에 옷부터 갈아입자.”
“확인.”
일단 오늘 예능 촬영의 목적인 미식가 예능을 위해 동생들과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 * *
LA의 한 거리.
구재영 피디와 뉴니버스 제작진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뉴블랙의 활동을 현장에서 총괄하는 서민기의 등장에 제작진이 반갑게 인사했다.
“멤버들은요?”
“옷 갈아입느라고 시간이 좀 걸려서. 곧 올 겁니다.”
“아. 의상….”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아 참.”
서민기가 그들에게 카드를 하나 내밀었다.
법인 카드였다.
“대표님께서 사용하라고 주신 카드입니다. 오늘 식사 비용은 다 이걸로 결제하시라고.”
“……?”
오태준 피디가 의아해하며 손을 저었다.
“안 주셔도 되는데. 오늘 예산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합니다. 저희 진짜 역대급 예산이거든요.”
“정말요?”
“네.”
“혹시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도 될까요?”
제작진이 금액을 말해 주었다.
건장한 남자 수십 명이 먹어도 남을 법한 예산.
“…….”
서민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카드를 내밀었다.
“받으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
“그걸로 턱도 없을 거예요.”
“??”
눈을 깜빡이는 제작진에게 매니저가 ‘겪어 보면 안다’는 눈으로 미소를 지어 보일 때였다.
“어? 저기…….”
누군가의 손짓이 멀찍이서 다가오는 다섯 무리를 가리켰다.
잘생겼으나 하찮은.
LA의 해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야자수들이 이파리를 흔드는 소리가 울릴 때였다.
“…….”
“…….”
팔락- 파라라라락-
펄러러럭-
펄럭! 펄럭!
품이 널널한 옷을 펄럭펄럭 흩날리며 다가오는 5인조.
‘…개업 인형이야?’
심지어 리혁이는 바람에 옷자락이 흩날려서 몸을 휘청거리고 있다.
구재영 피디가 매니저를 불렀다.
“매니저님.”
“네?”
“저 패션은 뭐죠…?”
“애들이 많이 먹겠다고 고른 옷입니다. 벨트 없는 옷을 입어야 최대한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어마어마하게 먹겠다는 포부를 온몸으로 펼쳐 내는 뉴블랙의 모습에 제작진이 눈을 깜빡거렸다.
조연출이 구 피디를 불렀다.
“감독님.”
“응?”
“원래 우리 오늘 컨셉이 힐링 미식가 아니었나요….”
“그렇지.”
“아무리 봐도 안 될 거 같은데요.”
“…….”
제작진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