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49화
예전에 회사 선배 걸그룹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회식 때가 되면 그 바지로 갈아입는 건가요?
샤방한 옷을 입다가 회식 때만 되면 ‘I♥Curtain’이라는 오버핏 티셔츠와 밴딩 바지 차림으로 등장하는 여신들.
-왜냐고? 이렇게 입어야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허어…!
-청바지나 치마는 안 좋은 선택이야. 어느 순간부터 배가 서서히 조여 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하지만 이건?
-배를 압박하지 않는 거군요!
-그러취!
정말로 큰 깨달음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많이 먹어야 할 일이 생기면 이렇게 품이 널널한 옷을 입곤 했다.
“후후후.”
“후후후후.”
흐뭇하게 웃는 우리 모습에 제작진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구 피디님이 말을 걸었다.
“여러분.”
“네~!”
“오늘 저희가 방송 컨셉으로 생각했던 게 힐링 예능이었거든요. 해외 투어 중에 휴식을 취하러 나온 뉴블랙이 푸드 브이로그를 찍는다 하는 컨셉으로요. 근데 지금은…….”
바람에 펄럭이는 우리를 바라보던 구재영 피디님이 말했다.
“아무리 봐도 푸드 파이터 컨셉이네요.”
우리가 머쓱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해맑게 말했다.
“그치만 분량은 이쪽이 더 잘 뽑힐 거 같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힐링하는 브이로그를 볼 거라면 누가 뉴니버스를 보겠어요? 저희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보기 위해 뉴니버스를 보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배 터질 때까지 먹고 데굴데굴 구르고….”
그런 우리의 말에 제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도 그런 쪽이 더 좋긴 하지.”
“그죠?”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버라이어티하게 가 볼까? 미니 게임에서 이긴 사람만 먹을 수 있다든가.”
“그런 잔인무도한 짓을……!”
우리가 비난의 시선을 보내자 제작진이 한 발 물러섰다.
“그, 그럼 게임은 안 하는 걸로.”
“네~”
투어 도중에 휴식하는 겸 해서 음식 먹으러 나온 건데, 게임으로 정하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니겠는가.
제작진이 말했다.
“사실 오늘 촬영은 특별하게 컨셉을 정해 두진 않았어. 되는 대로 자유롭게 찍어 보려고.”
이번 뉴니버스 식당 프로젝트의 목표.
-외국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꾼다!
그에 앞서 우리가 외국 음식들을 먼저 먹어 보고, 어떤 메뉴를 할지 결정하는 게 바로 지금 찍는 촬영의 내용이었다.
구재영 피디님이 말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임해 줬으면 좋겠어. 제작진 인원도 다섯 명도 안 되는 거 보이지?”
“네.”
“보다시피 카메라도 6mm 카메라고. 여차하면 미튜브 컨텐츠로 풀어도 되는 내용이야. 그러니까 편한 마음으로 찍으면 좋겠어. 오늘 맛집 탐방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해외 맛집 탐방이라는 낯선 컨텐츠에 임하는 우리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코멘트였다.
공동연출인 오태준 피디님이 말했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어떤 내용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일단 찍어 보고 결정을 하는 거야.”
메인 컨텐츠인 식당 창업이 아니라 메뉴를 정하는 사전 작업인 만큼 편하게 임하자는 분위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컨셉으로 생각해 둔 게 있니?”
“네!”
내가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이번에 저희가 창업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렇지.”
“제가 백반집을 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기도 했고, 장사라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건지 알거든요. 음식 장사라는 게 겉보기로는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동생들이 곁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래서 메뉴를 결정하는 사전 작업도 진지하게 임하려고요. 진짜 식당을 차리는 것처럼요.”
음식 장사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우리는 방송으로 버프를 받는 만큼 손님이 없거나 수익이 안 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시청자 중에서도 자영업을 하는 분들도 많을 테니까.
그분들이 보았을 때….
-음. 저 녀석들 나름 최선은 다했군.
…하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심혈을 기울여 메뉴를 선정하고, 사소한 준비 하나하나 철저하게 해서 최선을 다하는 뉴블랙.
내가 말했다.
“장사의 목표는 손님들이 지불하는 가치에 맞는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이윤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메뉴를 철저하게 골라보려고 합니다.”
내 곁에 선 졸개들이 서로를 소개했다.
“가장 먼저 맛이 중요하죠. 약속은 까먹어도 1년 전에 먹은 밥은 기억하는 절대 미각의 소유자 김중현!”
“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이윤이 안 남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가 계산의 선우주와 계산기 서리혁!”
“그리고 그 요리가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판단해 줄 레시피의 대가 김비주!”
“마지막으로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 고객들도 중요하겠죠? 이 아이만 사로잡으면 어린이들과 초등학생들은 끄떡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아기 입맛의 왕지호!”
우리의 소개에 막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히히 웃었다.
제작진도 같이 웃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오프닝을 찍었다.
“그리하여 저의 최종 목표.”
“?”
“저희 할머니, 백반의 여왕 김덕순의 경쟁자가 되는 것이 바로 저의 목표입니다…!”
“!”
분명 진지하게 말했는데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생들과 내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착 뻗었다.
“저희가 이름도 정했습니다! 이름하야 도깨비 식당!”
“기대해 주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희 뉴블랙이 정말 소처럼 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휴식하면 힘들어하고, 일을 해야 흥이 오르는 가수 뉴블랙의 진면모를 보시게 될 겁니다.”
애초부터 우리에게 힐링 컨셉은 무리였다.
‘일한다!’
‘일! 무조건 일!’
중간이 없는 아이돌, 그것이 바로 우리였다.
* * *
오프닝 촬영이 끝나고 제작진이 종이를 건네주었다.
“여기가 LA 맛집들 리스트야. 최종으로 10곳 정도를 추렸는데 자유롭게 둘러보면 될 거야.”
“네.”
“어디부터 갈까?”
“음…….”
내가 비주를 불렀다.
“비주야.”
“네.”
화창한 LA의 하늘 아래 비주가 가슴에 손을 모으고 섰다.
회전하기 좋은 자세로 선 비주를 우리가 빙글빙글 돌렸다.
“자! 가라! 비침반!”
우아하게 두 바퀴를 빙글 돈 비주가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부터 가야겠군.”
“그래야겠어요.”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제작진과 함께 우리가 근처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중현이가 말했다.
“미국이 이런 점은 좋은 거 같아요. 알아보는 사람도 적고.”
“그러니까. 편하네.”
한국이었다면 걸음 하나를 옮길 때마다 주변에서 말을 걸었을 텐데, 여기는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다.
곧이어 야쟈수들이 늘어선 거리를 걸으며 도착한 첫 번째 식당.
바로 LA의 핫도그 맛집이었다.
“와. 줄이 진짜 기네.”
“여기가 되게 소문난 맛집이래요.”
우리가 줄을 서자 수군수군하는 사람들.
「뉴블랙이야.」
「진짜?」
「뉴블랙이 왜 여기 있어?」
우리를 흘깃 보고는 입모양으로 ‘Ohhhh!’ 하면서 법석을 떠는 미국인들의 모습에 입가가 살짝 씰룩였다.
앞뒤에 선 사람들이 사진을 같이 찍어도 되냐는 말에 우리 보디가드들이 ‘No photos’ 하며 멈춰 세웠다.
「괜찮아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 주고는 핫도그 가게에 입장했다.
“우와, 진짜 유명한 데긴 한가 봐.”
“그러네요.”
벽에 맨디 스파이스, 헤일리 블루 같은 유명인들이 사장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하와이안 셔츠를 걸친 콜드 브라운이 사장님과 어깨동무를 한 사진을 보고 있을 때였다.
“형, 우리 뭐 시킬까요?”
“인기 메뉴 위주로 주문하자. 가볍게 2인분씩.”
인기 메뉴라는 칠리 핫도그와 프렌치프라이 등을 받아 들고 야외 파라솔 테이블에 앉을 때였다.
「이거 정말 귀한 분들이 찾아오셨군요!」
펭귄을 닮은 외모의 사장님이 도도도 달려왔다.
정말 팬이다, 우리 가게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와 줘서 감사하다 하는 사장님과 인증샷을 찍은 후.
핫도그를 먹으려는 우리 곁에서 사장님이 특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저희 핫도그의 비결은 칠리 소스에 있죠. 저희가 직접 농장에서 수확한 신선한 야채들과…….」
와인을 소개해 주는 소믈리에처럼 사장님이 핫도그의 비결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는 물었다.
「지금 찍고 있는 건 무슨 방송인가요?」
「저희가 한국에서 며칠 정도 음식점을 오픈할 예정이거든요. 연예인들이 푸드 트럭을 준비하는 그런 TV 쇼들 있잖아요.」
「오, 흥미롭네요.」
「LA 최고의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배울 점을 배우고, 또 저희가 해 볼 수 있는 메뉴들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LA 최고의 식당이란 말에 사장님이 핫핫 웃었다.
「만약에 핫도그를 메뉴로 정할 거라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좋은 팁들을 알려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제가 영광이죠.」
사장님이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럼 우리 가게를 열심히 분석해 보세요. 핫핫핫! 행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마침내 우리끼리만 남겨진 상황에서 제작진과 함께 핫도그를 음미했다.
“진짜 맛있는데요?”
피클이 잘 섞여서 새콤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소시지 맛이 잘 어우러진 기본 핫도그도 좋고.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칠리 핫도그도 근사한 맛이었다.
다만….
‘짜다.’
‘짜구나.’
맛있는데 짜다.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제작진도 비슷한 평을 했다.
“맛있긴 한데 약간 짭조름하네.”
“바닐라 셰이크랑 같이 드셔보세요. 그럼 괜찮은 거 같아요.”
짠 맛이 올라올 때마다 셰이크를 한 모금 마시면 좀 내려가는….
‘어우.’
‘달다…!’
지나치게 단 맛에 순간적으로 뒷목의 솜털이 쭈뼛 솟는 느낌.
이런 걸 자주 먹고도 오래 살 수 있는 서양인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편.
“음…….”
동생들과 핫도그를 먹으면서 연구했다.
“맛있긴 한데 우리 식당 메뉴로 하기는 애매하네.”
“손님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운 메뉴 같아요. 기대한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줘야 하는데… 핫도그는 다들 어떤 맛인지 일단 예상이 가능한 맛이잖아요.”
“흐음, 그래도 이 정도로 맛있으면 되지 않을까?”
“이거 우리 실력으로 못 만들 거 같은데요. 중현이 형.”
“괜찮아. 어차피 김비주가 하면… 미안하지. 정말 미안한 일이지.”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동생들과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어떻게 맛집이 되었는가?
K팝 선배 가수들의 무대를 보고 배우듯, 우리도 초보의 마음으로 핫도그 선배를 관찰했다.
우리 막내가 말했다.
“일단 위치 선정을 잘하신 거 같아요.”
“그래?”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데다가 대형 주차장이 있어서 손님들이 접근하기 쉽구요. 미국 사람들이 핫도그를 스포츠 보면서 많이 먹는다고 하잖아요? 주변에서 TV랑 같이 볼 수 있는 곳들이…….”
예리한 눈으로 상권 분석을 하는 우리 막내의 모습에 형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님이 아기 지호에게 ‘저 위치를 보거라!’ 하면서 상권 분석에 대해서 가르쳤다는 모양이었다.
‘낯설어….’
‘우리 막내가 똑똑해. 안 돼.’
우리가 말을 하고 있는 막내의 입에 어니언링을 물려 주었다.
“그래서 이걸… 음?”
“일단 먹어. 지호야.”
“마시땅…….”
헤벌쭉 웃는 막내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주방 쪽을 바라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동선도 잘 짰어요. 손님이 몰려도 빠른 시간 내에 처리가 가능하도록 프로세스가 짜여 있네요.”
그 말대로 손님이 계속 몰려드는데도 음식이 나가는 속도가 일정했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보고는 비주에게 물었다.
“비주야. 핫도그는 메뉴로 좀 애매하겠지?”
“네. 아까 말한 대로 맛의 차별화를 두기가 힘들 거 같아요. 우리 수준에서는요.”
“그건 그렇지.”
“이미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익숙한 메뉴잖아요. 굳이 특별한 레시피로 바꿔서 반응이 좋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도 단가를 계산했다.
“리혁아.”
“네?”
“그거 원재료 표 좀.”
“여기요.”
리혁이에게 건네받은 원재료 표를 보고는 빠르게 계산했다.
제작진이 호기심을 보였다.
“원가 계산도 할 줄 알아?”
“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할머니 가게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때 경험이 좀 있어서….”
할머니랑 같이 신메뉴 가격은 얼마를 받고, 손님을 더 받으려면 뭘 할지 토론을 하곤 했다.
“식재료 비용에다가 설비 간접비용 계산하고… 거기에 비율을 계산해 주면…….”
확실히 이윤이 남는다는 계산이 섰다.
일단 우리 인건비가 빠지니까.
“그나저나 이거 칠리 소스가 맛있네. 중현아. 여기 뭐가 들어갔는지 알 거 같아?”
“음, 잠시만요…….”
칠리 소스를 우물우물하면서 성분을 분석하는 우리 셋째.
그렇게 우리가 진지하게 회의를 하고 있는데, 제작진이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구 피디님이 말했다.
“너희 그거 같아.”
“?”
“…아니야. 아무것도.”
고개를 저으며 키득거리는 제작진의 모습에 우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핫도그 집에서 시작된 뉴블랙의 미식 투어!
구재영 피디를 비롯해 소수 정예로 미국을 찾은 제작진은 뉴블랙을 빠르게 쫓아다녔다.
“얘들아! 허억, 허억…! 같이 가야지!”
“피디님! 얼른 뛰어요! 지금 잘못하면 브레이크 타임 걸리게 생겼어요!”
“야아!”
뒤꽁무니에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뉴블랙.
제작진이 숨을 헐떡이는 동안, 그저 카메라 감독만이 뉴블랙과 보조를 맞출 뿐이었다.
과거 <주세한>에서 흑염소 대길이에게 쫓길 때 김중현만큼 빨리 달렸던 카메라 감독이었다.
‘그치만 쟤는 육상 선수 출신이고…!’
헉헉 대며 따라가다 보면 뉴블랙 멤버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제작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미식가 예능인데 추격전 같은 느낌.
하지만 그런 노동과는 별개로 방송은 정말 순탄하게 풀리고 있었다.
“태준아.”
“네?”
“이렇게… 해외 촬영이 잘 풀린 적이 있었나?”
“없었죠.”
항상 문전박대 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뉴블랙과 함께 다니니 그야말로 호화롭게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뉴블랙이 우리 가게에 오다니!」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오늘 제대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봐! 스페셜 코스 준비해!」
「이, 이리로 오시죠!」
가게의 사장이나 요리사들이 직접 마중을 나오는 진풍경.
그야말로 할리우드 스타에 준하는 VIP 대접에 제작진이 감탄했다.
‘미국 쪽 인기가 진짜 장난 아니구나.’
한국에서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해외 인기였다.
뉴블랙이 빌보드 어워드에서 상을 탔다더라, 그래미에 방문했다더라 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현지에서 핫한 셀럽처럼 대접해 주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커 보인다. 너희.”
“그죠?”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파리 패션 위크 최고의 패셔니스타이자 멧 갈라를 뒤흔든 저 선우주의 위력입니다. 피디님.”
“패셔니스타…….”
분명 사실관계만을 말하는 것인데 지적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단어였다.
멤버들마저 먼 곳을 바라보며 레모네이드만 홀짝일 때.
뉴블랙이 수다를 떨며 오디오를 채우는 동안 구재영 피디가 오태준 피디를 불렀다.
“이제 어디어디 남았지?”
“여기 햄버거 레스토랑 끝나고 나면 이제 유명 셰프들이 운영하는 곳들만 남았어요. 바비 로스랑 단테 첼리니.”
“순조롭네.”
“네, 분량도 잘 뽑은 거 같고.”
후배의 말을 들으며 구재영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게 나올 거 같다.’
요즘 예능 대세가 쿡방이나 미식 컨셉 아니던가.
LA 최고의 맛집들에서 나오는 요리들을 인서트로 따서 내보내면 늦은 시간에 시청자의 군침을 자극하기도 좋다.
듬뿍 얹은 소스가 흘러내리는 핫도그.
겉은 바삭하지만 촉촉한 속살이 가득한 치킨.
매콤한 타코.
미국식 해산물 요리 등등.
‘목적성도 뚜렷해.’
시청자들도 함께 보면서 ‘음, 저 메뉴는 별로고, 저게 나을 것 같은데’ 하면서 보기에도 좋다.
다만….
‘뭔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거 같은데.’
분명 컨셉은 ‘요식업 꿈나무들이 유명 식당을 방문해서 노하우를 배우고, 메뉴도 결정한다’는 거였는데.
“여기도 상권 분석을 잘하신 것 같아요. 주변에 큰 회사들이 있어서…….”
“확실히 그런 거 같지?”
“우리도 입지가 나쁘지 않은 그런 곳에서 장사를 해야 돼요.”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멤버들.
“중현아.”
“네. 형.”
“이거 햄버거 소스에 뭐 들어간 거 같니? 사장님이 정답 맞히면 특별한 선물을 주신대.”
“음…….”
“여기 힌트가 있대.”
눈을 감은 중현이 절대 미각을 발휘하며 말했다.
“머스타드랑 케첩이 좀 섞였고요. 약간 칠리 맛이 나는데 소스인지 파우더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으음… 그리고 그릭 요거트? 긴가민가했는데 그릭 요거트 맛이 나요.”
“그릭 요거트로구나!”
“그릭 요거트, 정답을 알았다. 후후후…….”
비밀을 알아냈다며 히죽히죽 웃는 뉴블랙.
그 뒤에서 안내문이 반짝였다.
[저희 식당의 소스에는 아주 특별한 그릭 요거트가 들어간답니다]
음험하게 웃는 백반집 손자와 그 부하들의 모습에 구재영 피디가 웃음을 참았다.
‘되게 하찮은 산업 스파이 같은데…….’
그러면서 편집점을 어떻게 잡을지 생각하고 있을 때.
우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때요. 피디님?”
“응?”
“저희 이번에 뉴니버스 컨셉이 진지한 창업 꿈나무들이잖아요. 왠지 좀 멋있게 나올 거 같지 않나요?”
“확실히…….”
그런 질문에 구재영 피디의 머릿속에 불현듯 편집점이 하나 잡혔다.
‘이거다!’
캐릭터성.
이번 뉴니버스 특집에서 멤버들에게 붙여 줄 만한 좋은 캐릭터성이 하나 떠올랐다.
예능 피디가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혹시 그거 좀 해 줄 수 있니?”
“어떤 거요?”
“지금 생선버거를 요렇게 들고… ‘마침내 비법을 알아냈다~’ 하는 표정을 지어 줄 수 있을까?”
“썸네일로 쓰시게요?”
멤버들의 물음에 예능 피디가 순수한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뉴니버스 - 식당 특집』 예고편
생선버거를 들어 올리며 귀엽게 웃는 멤버들.
그리고 그 위로 더듬이 CG와 함께 스폰지밥에 나오는 플랑크톤 사장의 음성이 덧입혀진다.
[크하하하! 드디어 게살 버거의 비법을 알아냈다!]
멤버들이 알게 된다면 PD의 멱살을 잡으러 올 편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