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50화
구재영 피디가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머릿속으로 편집각을 재고 있던 피디가 몸을 들썩이며 웃을 때였다.
“피디님?”
“음?”
우주가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저희가 찍은 장면이 정말 멋지게 나가는 게 맞나요?”
‘눈치 빠른 녀석.’
뉴블랙에서 가장 눈치가 빠른 멤버의 말에 구재영 피디가 움찔했다.
곰처럼 눈을 슬쩍 굴린 예능 피디가 뭐라고 말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역시….”
‘들킨 건가. 나의 플랑크톤 사장 계획을!’
“역시 귀엽게 편집을 하시려는 건가요? 아무래도 저희가 멋짐보다는 귀여움에 더 가깝긴 하니까.”
“응. 그거야!”
눈치가 빠르면서도 눈치가 없는 리더였다.
구재영 피디가 속으로 웃음을 삼키는 동안, 뉴블랙 멤버들이 우물우물 햄버거를 먹었다.
중현이 제작진에게 물었다.
“피디님.”
“응?”
“세트 메뉴로 나온 감튀 안 드시나요.”
“배가 너무 불러서. 가져갈래?”
“그럼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제작진이 배를 두드리고 있는 동안 뉴블랙 멤버들이 감자튀김을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메인 작가인 양미현 작가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너희… 배 안 부르니?”
“네.”
“진짜 대단하다.”
20대 청년들의 위장이 보여 주는 소화 능력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블랙홀 같다.’
‘사람이 무슨 진공청소기도 아니고.’
처음에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뉴블랙이 펄럭이는 옷을 입고 등장할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어.’
그랬는데….
진짜.
진짜 이렇게 많이 먹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뉴블랙에서 제일 소식가인 줄 알았던 리혁이마저 계속 먹고 있었다.
깨작거리는데 그 깨작거림이 몇 시간 내내 멈추지 않는 느낌.
“그래도 덕분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오태준 피디가 말했다.
“우리 다음 레스토랑들이 중요하잖아요.”
“그치.”
세계적인 셰프들이 직접 출연해 주기로 약속한 레스토랑인 만큼, 멤버들의 리액션이 중요했다.
아무리 프로 방송인이어도 배가 부르면 리액션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런 면에서 이렇게 계속 잘 먹어 주는 것은 제작진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다 먹었니?”
“네.”
중현이가 스프 그릇까지 싹싹 긁어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은 후.
카메라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그릇은 설거지 안 해도 되겠는데?”
어찌나 잘 먹었는지 그릇이 텅 비어서 반짝인다.
뉴블랙 멤버들이 멋쩍게 웃고, 멀찍이서 지켜보던 가게 사장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뉴블랙이 식당 주인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제작진이 먼저 가게를 나섰다.
“그나저나…….”
오태준 피디가 약도를 보면서 말했다.
“멤버들 옷 갈아입혀야 하지 않을까요? 파인 다이닝이면 드레스 코드가 꽤 중요하잖아요.”
“갈아입어야 되나?”
“우리 주세한 파리 특집 때 기억 안 나요? 드레스 코드 있는 거 모르고 갔다가 안 된다고 거부당했잖아요.”
파인 다이닝(Fine Dining).
한 끼에 굉장한 가격을 받는 이런 고급 레스토랑들은 드레스 코드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편이었다.
특히나 서양권은 더 엄격한 편이어서 슬리퍼를 신거나 반바지를 입으면 아무리 유명인이어도 출입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확실히 저렇게 펄럭이는 옷은 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음?”
“으음?”
가게 사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나온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에 제작진이 눈을 깜빡였다.
‘어? 괜찮은데?’
분명이 아침에만 해도 펄럭~ 펄럭했던 옷들이 지금은 옷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체격에 맞는 느낌.
귀엽게 동글동글해져 있는 멤버들의 모습에 구재영 피디가 손을 뻗으며 당황했다.
“그… 어, 어떻게…….”
“아침에 펄럭였던 옷이 왜 지금은 딱 맞냐고요?”
“응.”
서리혁이 훗 하며 웃었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옷을 입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매니저들에게 건네받은 여름 재킷을 가볍게 착 걸치는 멤버들의 모습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와 졸개들이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어때요? 저희 멋있죠?”
제작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었다.
* * *
보스코(Bosco).
오늘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어로 ‘숲’이라는 뜻을 가진 이 레스토랑의 주력 메뉴는 바로 이탈리안 푸드.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자 세계적인 셰프 단테 첼리니(Dante Cellini)가 운영하는 곳이다.
“저 너무 설레요. 이분을 직접 만난다고 하니까.”
우리 둘째가 엄청 들떠 있었다.
“진짜 팬이거든요. 저 그분이 <마스터 셰프 US>에서 심사위원으로 나왔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거기서 어떤 참가자가 그분한테 ‘그걸 어떻게 하냐? 당신이 한 번 해 봐’라고 하니까 딱 나서는데.”
“엄청 멋있게 나오셨나 보네.”
“네, 보면서 저도 결심했어요.”
비주가 눈을 빛냈다.
“나도 저분이 요리에서 그런 것처럼 춤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겠다. 사람들이 ‘그거 안무 안 되는데’ 할 때 가서 ‘되는데요?’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우리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저 사람 때문이었군.’
‘맨날 비주 형이 안 된다고? 하면서 시범을 보여 주는 이유가 바로 이 사람 때문이었네요.’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적의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레스토랑 보스코에 입장했다.
“오.”
모던한 인테리어.
미국 레스토랑 특유의 아늑한 조명과 함께 테이블마다 양초가 놓여 있다.
웅성웅성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입장하자, 식사 중인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진짜 유명한 데긴 한가 봐요.”
리혁이가 말했다.
“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이네요.”
“그러게.”
시상식이나 각종 행사에서 마주쳤던 미국의 셀럽들이 테이블을 지나칠 때마다 하나씩 보인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는 우리에게 누군가 인사했다.
「헤이!」
갈색 머리에 붉은 입술이 도드라지는 싱어송라이터가 근사한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진짜 반갑다.」
「우리 식사하러 왔지.」
시상식에서 자주 마주치는 인기 싱어송라이터 맨디 스파이스였다.
원래는 데면데면하게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이번 멧 갈라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후로 꽤 친해졌다.
「카메라가 있네?」
「한국에서 온 TV쇼 촬영이 있어서. 인사할래?」
「하이, 반가워요. 한국 여러분. 맨디 스파이스입니다. 저는 지금 뉴블랙의 TV쇼에 나와 있습니다~! 채널 고정 부탁드려요!」
재치 있게 ‘저번 내한 공연에서 한국 팬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하며 립서비스를 해 주는 가수.
맨디가 테이블에 둘러앉은 친구들을 소개했다.
「여긴 내 친구들이야. 바네사, 케이티, 헬렌.」
절친한 모델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온 모양인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과 우리가 눈인사를 하며 웃었다.
내가 상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앨범 나온 거 축하해. 이번에 신곡 진짜 좋더라. 빌보드 차트에 수록곡까지 다 진입했다면서.」
「그래 봐야 누구 때문에 1위는 못했는걸.」
상대의 장난기 어린 말에 내가 웃었다.
이번에 롤링 스톤지에서 굉장한 평점을 받았다는 맨디 스파이스의 신규 앨범은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점령 중이다.
물론….
#1. Cold Brown & Woojoo - Answer
여전히 1위는 나와 콜드의 콜라보 곡이었다.
11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곡은 아마 여기서 3~4주 정도 더 1위를 할 거란 예상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또 만나자.」
「그래. 연락해.」
그렇게 맨디 스파이스를 지나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었던 사람들과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냅킨으로 입가를 슥슥 닦은 인기 토크쇼 호스트 래리 고든과 악수를 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빌보드 어워드에서 우리의 프레젠터로 나왔던 인기 드라마 배우와도 반갑게 인사했다.
“…….”
테이블에 도착해서 말이 없어진 제작진의 모습에 우리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뭔가 갑자기 좀 멀어진 기분이야. 이 알 수 없는 거리감….”
“흠. 그렇다면.”
동생들과 내가 웃었다.
“꺄르륵….”
“조금만 더.”
“꺄르륵!”
“후우, 이제 좀 다시 가까워진 느낌.”
제작진의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저희 항상 똑같은 사람인 거 아시잖아요.”
“아니, 근데 저기 막 영화관이나 TV에서 보던 사람들이랑 친하게 인사를 하니까.”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요. 뭐.”
예전에는 우리도 할리우드 하면 뭔가 우와… 하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Sibal!
-?
-그냥 외쳐 봤어!
물론 헤일리는 빼고….
우리가 따로 마련된 테이블에 둘러앉는 동안 웨이터가 다가왔다.
「반가워요. 저는 TJ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TJ.」
「이쪽은 기본 메뉴고요. 혹시나 채식주의자가 있으시다면 이쪽 메뉴들 위주로…….」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코스 요리로 구성된 것에서 선택 메뉴들만 고르면 되는 거였다.
추천해 주는 은대구 요리를 메인으로 선택한 후.
「지금 고른 메뉴들과 관련된 재료에 알레르기는 없으십니까?」
「네, 없어요.」
아무래도 외국이라 그런지 알레르기 등에 대한 배려도 세심했다.
전채 요리가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동생들과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확실히 이런 건 배워야겠다. 우리도 알레르기 있을 만한 건 사전에 고지를 해야겠어.”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도 만들면 좋겠어요. 생각해 보니 우리 너무 고기 위주였잖아요.”
“동의하는 바야.”
우리가 식당을 열게 되면 신경 써야 하는 꼼꼼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전채 요리 나왔습니다.」
「우와아아…!」
전채 요리가 나오면서 우리가 감탄했다.
‘정말 이건…….’
‘감탄스러울 만큼 양이 작다…!’
곰돌이 가족들의 앞에 콩 한 알이 놓인 느낌.
지금까지 음식점을 돌면서 배를 채우고 온 것이 다행이었다.
“이게 콩피구나.”
조그마한 닭다리로 만들어진 요리 곁으로 예쁘장한 야채들이 데코레이션 되어 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한 입 먹었다.
“!”
“!!”
저도 모르게 미간이 모아지면서 탄성이 나온다.
“맛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닭다리살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린다.
살짝 느끼하지만 진짜 값어치를 하는 느낌. 먹자마자 포크를 바로 움직이게 되는 맛이었다.
하지만….
“끝났네.”
“그러게요.”
“…….”
“…….”
한 입 먹고 바로 끝났다.
역시 우리는 고급 입맛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오는 요리를 하나씩 마무리했다.
메인 요리를 마무리하고 이제 디저트를 흡입할 때.
「우와…!」
「첼리니! 단테 첼리니야!」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커지면서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백발의 머리카락 아래로 꼬장꼬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중년 셰프가 테이블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손님들과 악수를 하면서 ‘맛있게 드셨습니까?’ 하던 셰프가 인사를 마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
‘포스가 장난 아니네요.’
꼿꼿한 자세와 걸음걸이.
외모만으로도 요리에 대한 완벽주의 성향을 풍기는데, 매부리코와 합쳐져 정말 독수리와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셰프.
-미슐랭 스타를 17개 보유한 셰프.
한국인들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셰프이자 세계 곳곳에 사업체를 거느린 CEO였다.
유명세도 유명세지만, 그 이전에 어마어마한 실력으로 유명한 분이다.
어떤 요리든 맛보자마자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맞히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 개선점을 찾는 능력.
그런 셰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
고오오오오오…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무서운 인상의 셰프.
우리의 또랑또랑한 눈망울과 셰프의 날카로운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 마주쳤을 때였다.
팍-
누군가 뒤에서 셰프의 옷자락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단테 첼리니의 표정이 변했다.
뺨을 파르르 떨면서, 온화하게.
「반갑습니다. 세계 최고의 가수 뉴블랙을 만나게 되어 정말로 영광…입니다.」
방금 전까지 다른 손님들에게 꼬장꼬장하게 인사했던 셰프가 영업용 미소를 짓는 모습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세계적인 셰프의 허벅지를 팡 때리면서 부드럽게 인사하도록 조종한 인물.
셰프의 허리춤에도 올락말락한 키의 여자아이가 그 뒤에서 쏙 하고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어린이가 인사했다.
「저는 루나예요. 나이는 일곱 살. 수플레.」
아빠의 옷자락을 잡고 숨어 있던 초등학생 수플레의 등장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자리에 앉아도?」
「네, 그럼요.」
「내 딸이 광팬입니다.」
그런 말을 하던 단테 첼리니가 무르팍에 딸을 앉혔다.
우리가 ‘안뇽’ 하자 수줍게 몸을 배배 꼬는 아이의 모습에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방송에서 보면 굉장히 깐깐하고 까칠한 분인데, 딸내미 앞에서는 바보가 되시는 듯했다.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네. 정말 맛있었어요.」
우리가 장문의 감상평을 말해 주니 상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죠. 누가 개발한 요리인데.」
팍-
「…영광입니다. 세계 최고의 가수 뉴블랙이 저의 요리를 정말… 맛있다고 평가를 해 주시니…….」
흑마법사처럼 아버지를 조종하는 딸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방송 분량이 생겼다며 제작진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 동안, 첼리니 씨가 깍지를 꼈다.
「음식점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우리가 계획을 설명하자 상대가 턱을 쓰다듬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음식이라면… 도와주기 어렵겠군요. 내 레시피 중에서 쉬운 것도 많지만 대부분 대중 음식과는 거리가 멀고, 게다가 열정만 가지고 도전할 만한 난이도는 아닐 테니까요.」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상대가 손가락으로 숫자 10을 그렸다.
「10년 정도는 배워야 맛이 나올 겁니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다른 부분들은 도와줄 수 있죠.」
딸을 무르팍에 앉힌 셰프가 우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예를 들어 식당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팁들이었다.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시는 분인 만큼 새겨들을 만한 조언들이 많았다.
「식당 경영의 시작이자 끝은 바로 업무 분담입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아빠.) 형편없는 직원들을 뽑아도 분담만 잘하면 식당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기 마련이죠.」
아직 업무 분담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상대가 물었다.
「메뉴는 정했나요?」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러면 그 부분을 도와주도록 하죠.」
「?」
셰프가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메뉴를 선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본인들의 실력을 모르기 때문이죠.」
「아…….」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고 있으니,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모르는 겁니다.」
셰프의 말에 우리가 탄성을 터뜨렸다.
「아, 어쩐지. 그래서 메뉴 정하기가 어려웠던 거군요.」
「이제 아셨다고요? 당연히 상식인 이야기…」
팍-
「모를 수도 있죠. 모를 수도 있습니다.」
딸을 안아 든 셰프가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별도로 마련된 문을 지나자 요리 연구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가 드러났다.
「내가 개인적으로 요리를 연구할 때 쓰는 곳입니다.」
각종 조리도구와 냉동고가 있는 장소.
얼떨결에 여기까지 따라온 우리에게 셰프가 요리 실력을 측정하겠다며 과제를 주었다.
「우선 이 재료를 간단하게 손질해 보도록 하죠.」
칼질을 해서 야채를 써는 요리사를 따라 우리가 저마다 도마에서 야채를 썰었다.
첼리니 씨가 지호와 중현이, 리혁이를 불렀다.
「여러분은 손질 말고 양파를 까 보도록 하세요.」
「네!」
양파를 까는 멤버들을 바라보던 첼리니 씨가 지호를 불렀다.
「지호.」
「넹!」
「설거지.」
순식간에 설거지 담당으로 격하된 막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가 반항했다.
「어째서인가요!」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까? 정말로?」
팍-
「설거지 또한 주방의 중요 임무입니다. 지호 씨의 능력이 빛을… 발할 거 같군요…….」
설거지 담당으로 배정 받은 막내를 보며 우리가 키득거리고 있을 때였다.
콰직.
양파 껍질을 까던 중현이가 양파를 부숴뜨렸다.
즙이 되어서 흘러내리는 양파.
「중현.」
「넵.」
「당신은 지금 재료를 망치ㄱ…….」
팍-
「당신은 홀입니다. 무언가를 관찰하는 눈썰미는 좋지만 섬세한 작업은 어렵겠군요.」
주방에서 나가라는 판정을 받은 중현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릴 때.
세심하게 양파를 까는 리혁이를 바라보던 첼리니 씨가 말했다.
「리혁.」
「네… 네?」
「당신은 음료 담당입니다.」
동작이 섬세한 작업에 어울린다며 리혁이에게 그런 업무를 배정해 줄 때.
「흐음.」
첼리니 씨가 나와 비주 앞에 섰다.
잘 손질된 재료.
「둘은 합격.」
비주와 내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첼리니 씨가 깐깐한 표정으로 우리가 손질한 재료를 살펴볼 때였다.
「?」
내가 손질한 재료의 단면을 보던 첼리니 씨가 다시 잘라보라고 말했다.
「칼질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미튜브에서 유명 요리사분들이 하는 걸 보고요…?」
「기묘한 일이군.」
다시 한번 재료를 잘라보라고 시키던 첼리니 씨가 이번엔 다른 걸 주문했다.
본인이 시범을 가볍게 보이면서.
「토마토 껍질을 벗겨 봅니다. 이렇게.」
「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재료를 손상시키지 않고 잘했어. 이번에는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버터를 녹이도록.」
「네.」
「옳지. 이렇게 내가 하는 것처럼 양파를 볶아주고…….」
「됐어요.」
「훌륭해. 그러면 고기도 넣고 같이 볶아서, 아니 이렇게 반시계 방향으로 그래. 그거다.」
옆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맞춰서 ‘네, 셰프!’ 하면서 집중해서 요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셰프님, 요리가 완성됐어요!」
「훌륭하군.」
향긋한 냄새가 풍겨 오는 스튜를 바라보면서 단테 첼리니 씨와 내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자네는 요리사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옆에서 보자마자 이렇게 잘 따라 하다니.」
「감사합니다. 셰프!」
「앞으로도 분발하도록.」
「네! 열심히 정진하겠….」
첼리니 씨와 내가 멈칫했다.
「어?」
「어…?」
뭔가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