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58화
오늘도 평화롭기 그지없는 아이돌판.
-최애 병크 때문에 어제 덕친이랑 울면서 술마셧다 시발..ㅠ
-지금 얼굴+성별로 뉴블랙 멤버 되기 vs 그냥 살기 <- 뭐 택할 거임??
- ㄴ 윗글 박태준 여친
-최애 해투 좀 그만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 정상임? 비정상임?? 네 달 동안 못 보니까 존나 빡침
그런 아이돌판에 떡밥이 뿅 하고 던져졌다.
[지금 데뷔 티저 뜬 레몬 신인 아이돌 (new!)]
아이돌 팬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레몬 신인이라고?’
요즘 들어 TJ, MOP, KM과 함께 이른바 4대 기획사로 불리는 레몬 엔터.
현재 SNH 엔터를 인수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올 만큼 이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해진 레몬 엔터였다.
하지만 그런 레몬에 의문을 보내는 아이돌 팬들도 적지 않았다.
-레몬 연예인풀 큰 거 인정함. 배우 소속사 기준으로는 이미 3대나 마찬가지였으니까ㅋㅋㅋ
-근데 소속 아이돌이 뉴블랙이랑 스칼렛 말고 누구 있음???
-대형이라고 보기엔 쪼끔 미묘
무릇 대형 아이돌 기획사로 꼽히려면 여러 세대에 걸쳐 아이돌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 일부 팬들의 지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대박이 아니라 여러 번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는 뜻.
물론, 이런 주장은 크게 힘을 얻는 편은 아니었다.
-뉴블랙이랑 스칼렛 말고 뭐가 또 있어야 되나?
-뉴블랙이 넘사라 그렇지 스칼렛도 폼 미쳤는디..?ㅋㅋㅋㅋㅋㅋ 요새 미국 진출 얘기도 솔솔 나오고 있는 판에
-뉴블랙이 있기 전에 스칼렛이 있었음
뉴블랙이 있기 이전에 스칼렛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7년차 아이돌 스칼렛.
이쯤 되면 살짝 꺾일 법도 한데, 작년도에 이 해외에서 크게 터지면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걸그룹이었다.
해외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것이 조만간 걸그룹 최초로 미국에 불려 가는 것이 아니냐는 소식이 돌 정도.
국내를 꽉 잡고 있는 원탑 걸그룹 세레니티만큼은 아니지만 스칼렛 역시 걸그룹 역대 5위 안에 드는 초동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1위인 세레니티와 격차가 꽤 있었지만, 해외 팬들이 붙고 작년 서바이벌로 유입된 팬들까지 더해지면서 1위를 맹추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레몬의 능력치는 충분하다고 보는 의견들도 많았다.
-뉴블랙이랑 스칼렛이 있는데 뭘 더 증명해야 함? 이미 능력 증명은 충분히 했는데?
물론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ㄴㄴ 운빨임. 후배 그룹이 어떤지 더 지켜봐야 암
팽팽하게 대립되는 의견들.
그런 의미에서 레몬 엔터의 신인 아이돌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떡밥이었다.
양쪽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몬 엔터가 대형 기획사 급의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레몬 신인?? 얼마나 좋을까?
그와 반대로 레몬 엔터를 바라보며 ‘능력치는 중소 수준임’ 하는 아이돌 팬들의 입장에서는….
-뉴블랙이랑 스칼렛 버프 없는 레몬 엔터..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보자
그런 식으로 양쪽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글을 클릭하는 아이돌 팬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인이면 저번에 뉴블랙 주경기장 콘에서 사진 풀린 걔네인가? 다들 잘생겼던데.’
배우 기획사 아니랄까 봐 보기만 해도 입가가 흐뭇해지는 보석들을 수집한 레몬 엔터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K넷 힙합 서바이벌의 우승자 김지혁이 레몬 엔터의 연습생이 되면서 핫이슈가 되지 않았던가.
한창 SNS와 커뮤니티에 관련 기사가 도배될 정도였다.
-지혁이 레몬 갔어?? 대박ㅋㅋㅋㅋㅋㅋㅋ
-헐;;; 왜 아이돌하러 가지
-힙합 솔로가수로 성공하기 vs 레몬 엔터 가서 아이돌로 데뷔하기.. 후자가 더 나을수도
-레몬은 진짜 노낫네.. 계홍주도 DNS라서 사실상 레몬 소속이고ㅋㅋㅋㅋㅋ
-지혁이 우주 팬이라고 그러더니 레몬 갔나보네
그때를 떠올린 아이돌 팬들이 눈을 초롱초롱 떴다.
‘지혁이도 데뷔조에 들어갔나?’
그런 생각을 하며 저마다 다양한 상상을 하던 아이돌 팬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지금 데뷔 티저 뜬 레몬 신인 아이돌 (new!)]
(토끼 인형이 춤추는 영상)
거짓말은 하지 않았음ㅋㅋㅋㅋㅋㅋ
토끼 삼촌의 영상이었다.
“…….”
“…….”
처음에는 낚시를 당해서 성질이 확 났지만… 일단은 호기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뭐지?’
동요 <토끼 삼촌>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다.
뉴블랙이 육아 예능에서 동요를 불렀다는데 그게 아이들 사이에서 꽤 인기라나.
뉴블랙 안티들이 난리를 쳐서 잘 알고 있었다.
눈에 돈 욕심이 가득하더라, 애들 장사하러 육아예능 나갔다 하는 말 때문에 ‘뉴블랙네 안티들 또 시작했구나’ 하며 동요에 대한 소식을 알 수밖에 없었다.
‘동요 아니야?’
그런데…….
왜… 동요에 티저가 있는 걸까.
[“토끼 삼촌” M/V Teaser]
그것도 K팝 뮤비에서 키치한 느낌을 주기 위해 쓰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서 토끼 삼촌 인형이 멋지게 율동을 춘다.
그리고 페이드 아웃되면서 깔리는 로고.
[Uncle Bunny]
마치 K팝 아이돌이 데뷔하는 듯한 분위기에 아이돌 팬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레몬아…!’
‘아이고 레몬아.’
레몬 엔터의 어수룩함이 느껴졌다.
K팝 장사는 해 보았어도 동요 장사는 해 본 적이 없어서 뭔가 어색하게 삐걱대는 느낌.
-레몬은 바보야.. K팝밖에 모르는 바보
-아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
-???: 그냥 원래 K팝 발매하는 것처럼 하시져?? / 규호 : (머리를 닦으며) 알겠습니다 우주님
-세상에 동요를 누가 이런 식으로 프로모션을 하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당해서 더 웃김
동요를 어떻게 프로모션하는지 몰라서 대충 K팝 곡처럼 홍보하는 레몬 엔터.
그 때문에 평상시였다면 그냥 동요1 정도였을 <토끼 삼촌>이 큰 이슈로 부상했다.
‘이거 드립 치고 놀기 좋을 거 같은데?’
아이돌 팬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돌의 팬이기 이전에 흥과 해학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깨어나는 한국인들이었다.
이어지는 레몬 엔터의 홍보 프로모션도 거기에 흥을 더해 주었다.
-[Who are U?] 토끼 삼촌 단독 인터뷰
신인 아이돌처럼 토끼 삼촌이 자기소개하는 영상.
[어린이 여러분 안녕~! 토끼 삼촌이란다!]
[삼촌은 토끼 왕국에서 태어나 토끼 학교를 다녔단다. 커서는 아프리카와 남극에 유학을 다녀왔지! 사자들에게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펭귄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웠단다!]
[존경하는 선배는 아기 상어 선배님이란다!]
컨텐츠가 하나씩 업로드될 때마다 추가되는 글들.
[토끼 삼촌 당당 데뷔 포부 밝혀 ‘아기 상어 게섯거라’]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신인이 벌써부터 겉멋들어서 건방지네 ㅡㅡ
-오래 못갈듯
-아기상어 선배님이 네 친구야???
-요즘 동요 신인들 왜이러냐
-뽀 선배님이 기강좀 잡아 줬으면
그러면서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다.
토끼 인형의 뒤에서 같이 춤추는 사슴이나 곰 인형들의 사진 등이 첨부된 글들.
[인기멤 누구일 거 같음??]
[토삼이 솔로 가수인가? 초동 얼마 나올 거 같음?]
[토삼이 바이럴 심하네.. 나때 동요 업계는 안 이랬다 이말이야]
댓글창이 웃음으로 들썩였다.
-토삼이 말고 뒤에 있는 인형들이 더 스타성 쩌는 듯.. 소속사 보는 눈이 없네
-팬 별로 안 붙을 삘인데 여기 가면 탑씨드 먹을 수 있을까???
-지금은 맑은 눈이지만 몇 년 지나면 동태눈 되겠지.. 몇 년 지나고 나서 눈 갈아 끼울듯
-지금도 팬들 안 볼때 눈 갈아 끼운다는썰 있음ㅇㅇ
-정병 많이 붙었네.. 역시 대형신인이라 핫하다
-소속사 일 안 하냐. 사진 셀렉 왜 이모양?
-댓글 ㅅㅂ 트라우마온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많이 보았던 댓글들이 달리면서 아이돌 팬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한편.
‘신인 아이돌 토삼이’의 밈은 다른 커뮤니티에도 수출되기 시작했다.
[아기상어 선배님에게 도전장 내민 신인 아이돌]
도전장을 내민 적도 없고, 존경한다고 밝혔지만 왠지 모르게 왜곡되어 있는 밈이었다.
-와 신인이 건방지네ㅋㅋㅋ
-얘 해외 도피설 있음ㅇㅇ 용궁에서 현상수배 걸렸다더라
-솔직히 말해서 과거도 의심스러움.. 토끼 가죽으로 남극의 기온을 버틸 수 없을 텐데???
-다들 미쳤냐구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드립을 주고받으며 노는 가운데.
처음에는 밈처럼 놀린 이들이 이어지는 토끼 삼촌의 뮤비 티저 등을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뭔가…….’
뒤에서 조종하는 주인이 주인이라 그런지 묘하게 열 받게 생긴 토끼.
하지만 스타성이 굉장한 비주얼이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뭐야 이 유치한 동요는…?’ 했던 동요도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 결과…….
-삼촌 데뷔 언제 해요ㅠㅠㅠㅠ
-토삼이 데뷔만 기다리고 있어요.
-토끼 삼촌♡
-삼촌 고민상담 또 해 주세요
미튜브에 달리는 응원 댓글들.
본래 뉴블랙이 목표로 삼은 것은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정작 그보다 먼저 입덕을 하고 있는 것은 어른이들인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정말 예상대로 가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동생들과 회사 직원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 위에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가 보인다.
#수플레가_토끼삼촌_데뷔_응원해
레몬 엔터의 신인 아이돌이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는 수플레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거기에 계속 올라오는 기사들까지.
-‘대형 신인’ 토끼 삼촌 데뷔 초읽기, 네티즌 “뮤비 기대돼”
-데뷔 앞둔 토끼삼촌 인터뷰, ‘많이 떨려.. 응원해 주셨으면’
-[증시리포트] 레몬 엔터, 동요 사업에도 진출..? 레몬 엔터 ‘상장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발매해야 할지 몰라서 K팝처럼 꾸민 것이 오히려 네티즌들에게 큰 반응을 이끌어 낸 모양이었다.
TF팀의 홍서영 과장님이 현상을 분석했다.
“평소 우리 회사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 너희 덕분에 우리한테 유능하다는 이미지가 붙어 있기도 하고.”
“이미지라니요.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신데.”
원래 <파닥파닥>이었던 나와 비주의 곡이 로 멋들어지게 탄생한 것이 누구의 공로겠는가.
TF팀 직원들이 수줍게 웃는 동안 홍 과장님이 말했다.
“그것 때문에 네티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거 같아.”
평소 일 잘하는 이미지로 박혀 있던 회사가 동요 프로모션을 앞두고 ‘엇…’ 하며 삐걱대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였던 모양이다.
아마 일 못하는 이미지의 회사가 그랬다면….
-너네 이딴 거 할 시간에 #%!
대충 험한 말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리혁이가 인터넷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부정적인 반응들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토끼 삼촌 얘기만 나오면 유머글이 돼서.”
“확실히 그런 반응이 적긴 하다.”
굳이 그걸 동요로 발매해서 팔아먹으려고 하느냐 하면서 기사마다 쫓아다니던 사람들의 댓글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추천 5에 비추천 79 같은 분위기.
토끼 삼촌이 블랙홀처럼 유머들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호가 테이블에 놓인 토끼 삼촌 인형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거 인형 회사 사장님이랑은 얘기가 된 거예요?”
“응.”
석환 형이 노트북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규환 이사님이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왔어. 이미 한참 전에 끝난 거라 문제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우리는 곧 올라올 토끼 삼촌의 뮤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동요만 만들었지,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뮤비를 만들었는지는 몰라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참.”
석환 형이 물었다.
“너희 이번에 광고가 꽤 들어왔거든. 대부분 육아와 관련된 거긴 한데… 거기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어서.”
“뭔데?”
“K마트에서 광고 제안이 왔어.”
“?”
K마트에서 보낸 광고 제안을 보고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트 삼촌이 쏜다!]
[여름 방학 기념 특별 할인!]
K마트에서 전 품목에 대해 특가 할인을 하며 우리의 사진을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대충 상상이 간다.
마트에 우리 사진이 붙어 있고, 마트 방송으로 ‘마트 삼촌이에요!’ 하는 우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런 모습.
“오호…….”
막내가 구미를 당겨하는 모습이긴 했지만 우리 모두 고개를 저었다.
“졸개들아.”
“네!”
“우리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감각입니다.”
그렇다.
우리 뉴블랙이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감각이었다.
지금 우리의 행동에 웃고 좋아해 준다고 우리의 다음 행동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봤을 때 이건 1절만 해야 돼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2절, 3절까지 해도 재미있는 게 있고, 1절만 하고 깔끔하게 끝내야 되는 것이 있다.
특히나 우리가 연차가 쌓이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점 이슈의 주기가 짧아진 것도 영향이 있었다.
신인 때의 흑염소 대길이가 2.5절 정도라면 마트삼촌은 1절 정도 해야 아름다운 느낌.
게다가…….
“우린 모든 마트의 삼촌이니까.”
“맞아요.”
“마트 삼촌은 원래 어딘가에 소속되는 게 아니죠. 모든 어린이를 위한 마트의 삼촌…….”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우린 진지했다.
“아니. K마트 삼촌이 되어 버리면 마트 삼촌이 아닌 게 되는 거잖아요. 그때부터 K마트 삼촌인 거죠.”
“맞아여. 그러면 코스트코 삼촌은 될 수 없는 건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K마트에서 보낸 광고 제안은 거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을 때였다.
딩동.
핸드폰에 알림이 뜨면서 내가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그거 도착했대.”
“진짜요?”
“응, 잘 받았다고 연락이 왔어. 제대로 전달해 주겠다고.”
동생들이 좋아하는 동안 석환 형도 물었다.
“도착했대?”
“응. 잘 갔대.”
내 핸드폰에 온 것은 메일이었다.
지금 공개를 앞두고 있는 동요 <토끼 삼촌>.
공개를 앞두고 우리가 따로 챙겨야 할 팬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동요도 한 번 만들어 볼게요. 공주님은 뭐 좋아해요?
-빠….
-?
-빵….
바로 평창 올림픽 개막식 때 우리가 만났던 아기 공주님이었다.
* * *
유럽 중부의 자그마한 국가, 슈테른 대공국.
펄럭~
7개의 별을 상징으로 하는 국기가 펄럭이는 궁전에서 누군가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타탓-
그것은 바로 구두를 신은 6살 공주님이었다.
대공왕 리하르트 3세의 아들 부부가 낳은 독녀이자, 훗날 슈테른 공국의 적법한 후계자가 될 인물!
바로 조피 공주였다.
“공주님!”
“싫어!”
프릴 드레스에 갈색 머리카락을 앙증맞게 땋은 공주가 짧뚱한 다리로 궁정 복도를 달렸다.
“공부 안 할래!”
“공주님! 거기 서십시오!”
늙은 집사가 쫓아가면서 외쳤다.
“그게 아니라… 뉴블랙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
의심하는 눈으로 커튼 뒤에 숨은 조피 공주.
외알 안경을 고쳐 쓴 집사가 품에서 서신을 하나 꺼냈다.
[Dear Princess Sophie]
“뉴블랙이 공주님 앞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조피는 안 속아요. 집사 할아부지.”
“글씨체를 보시죠. Piraruku New Roman으로 쓰여 있어서, 공주님이라면 알아볼 거라고 하더군요.”
“…….”
힐끔 본 조피 공주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서리혁의 글씨가 맞았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이 끝나고 나서 할아버지와 함께 뉴블랙을 만났을 때, 사인 받았던 글씨와 똑같았다.
“집사 할아부지.”
“네. 공주님.”
“읽어 주세요. 조피는 아직 영어 못 읽어요.”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어로 된 편지를 읽어 주었다.
[공주님, 안녕하세요.]
[저번에 빵에 대한 동요를 만들어 드린다고 약속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어요. (눈물).]
[한국의 아기들이 저희가 만든 바게트 삼촌…을 무서워했거든요.]
[비록 빵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토끼를 주제로 곡을 써 봤어요. 공주님이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담아, 뉴블랙이.]
조피 공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동요!’
조피 공주가 집사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조피 듣고 싶어요…!”
“공주님이 오늘치 공부를 다 하시면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여기에 뉴블랙이 추신을 썼군요. 공부 열심히 하고 야채 많이 먹으라고 말입니다.”
입을 비죽이던 조피 공주가 최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처럼 미소를 짓던 집사를 따라 걸어가는 공주.
“집사 할아부지.”
“네, 공주님.”
앙증맞은 구두가 우뚝 멈췄다.
“공부 열심히 해서 여왕이 되면 뉴블랙과 결혼할 수 있어?”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왜?”
인자하게 웃던 집사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했다.
“외람되오나 수플레 왕국이 저희 공국보다 인구가 더 많습니다. 저희보다 경제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그렇다면… 결혼 동맹을 맺는 거야.”
“!”
가정교사로부터 역사와 제왕학을 배우고 있는 공주의 얼굴에 늠름한 표정이 떠올랐다.
“조피가 다섯 명 모두와 결혼해서 동맹을 맺을 거야. 지금의 슈테른은 소국. 하지만 수플레들을 국민으로 데려와서… 우리 슈테른 공국의 이름을 수플레 공국으로 바꾸면… 유럽의 강… 강…….”
“강대국입니다.”
“강대국으로 도야… 도약하는 거야!”
“공주님…!”
집사가 왈칵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면 저희 공국은 어떡합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를 외세에 바치려고 하는 후계자의 모습에 집사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계속해서 요상한 계획을 생각하는 공주의 모습에 집사가 말을 바꿨다.
“공부… 말고 동요부터 들으러 갈까요?”
“진짜?”
“네.”
“와아아아아아!”
열심히 편지를 들고 뛰어가는 조피 공주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6세 인생 최고의 날을 만끽하는 공주님을 바라보며 집사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공주님이 행복하시면 됐지.’
왠지 모르게 나라의 앞날이 약간 어두워진 듯했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는 집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