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60화 (96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60화

모름지기 연예인은 자신의 활동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출세작을 두고 ‘그 드라마 너무 유치했죠’, ‘그때 활동곡 진짜 창피했죠’ 하며 웃음거리로 삼는 발언을 하면 그때의 활동을 좋아해 줬던 팬들은 뭐가 되는가.

“그래서 지금 부끄럽다는 뜻인 거죠?”

“아닌데.”

리혁이의 말에 내가 발끈했다.

“나는 창피함이 없는 사람이야. 고양이한테 영상 편지를 보내도! 무알콜 와인을 먹고 취해도 창피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흑역사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거 보니 좀 부끄럽나 보네요.”

“아니라니깐.”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종완 씨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K넷 사옥 앞.

평소였다면 한산했을 음악 방송 출근길에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쫙 깔려 있다.

거기에 연예부 기자들까지.

찰칵- 찰칵-

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셔터를 터뜨리는 사람들.

수백 마리의 벌떼가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님.”

“예, 우주 씨.”

“혹시 뒷문은 없나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개구멍이어도 괜찮아요. 저 머리랑 어깨만 들어가면 다 통과할 수 있거든요. 제가 미튜브에서 배웠어요.”

“형이 무슨 고양이에요?”

리혁이가 그런 말을 하며 채근했다.

“그냥 내려요. 사람들 기다리잖아.”

“싫어. 우주 안 내릴 꼬야.”

“중현이 형.”

리혁이가 중현이를 부르자, 중현이가 우우웅 하며 작동을 하고는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캬악!”

“듣… 듣겠다.”

귀에 음파 공격을 당한 중현이가 내 팔을 옆에서 붙잡았다.

다른 팔은 지호가 붙잡았다.

“싫어! 안 내릴 거야…!”

“어허. 우주 어린이 떼쓰지 말구.”

지호가 엄하게 말하는 동안 비주가 인형 머리띠로 내 목을 간질간질했다.

결국 동생들의 등쌀에 떠밀려 차에서 내렸다.

찰칵-

차르르르르륵- 찰칵!

경찰서에 연행되는 사람처럼 내린 내가 포즈를 취했다.

“우주 씨!”

“네!”

“지금 우주 씨가 손으로 토끼 삼촌을 가리고 있어요!”

“…….”

슬픈 눈으로 토끼 인형을 드는 내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반갑구나! 어른이 친구들! 토끼 삼촌이란다!]

카메라를 든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와, 진짜 인형이 말을 해.”

“저거 진짜 복화술이야? 배 꾹 누르면 목소리 나오는 게 아니고? 어떻게 저게 되지?”

“의상 너무 예쁘다. 진짜 데뷔하는 아이돌 같아.”

예쁜 옷을 입은 토끼 삼촌이 포즈를 취하는 동안,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삼촌 한쪽 수염이 왜 꼬불꼬불해요?”

[어제 여기 뉴블랙 어린이들과 케이크를 먹다가 촛불에 수염을 데였단다! 착한 어린이들은 불 조심하렴!]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지는 인터뷰에도 토끼 삼촌으로서 성실하게 대답한 후.

“혹시 뉴블랙에 대한 궁금증은 없나요??”

“…….”

잠깐의 정적.

우리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카메라를 뒤적거리던 기자들이 ‘지… 질문…’ 하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동생들과 나의 눈이 짜게 식었다.

‘생각 안 하고 오셨군.’

‘정말 토끼 삼촌 찍으러 오셨네.’

어어 하다가 누군가 외쳤다.

“…토끼 삼촌의 본체로서 데뷔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우주 씨?!”

그러자 싸늘한 침묵이 날아들었다.

질문을 한 기자에게 다른 기자들과 홈마들이 한마디씩 했다.

“본체? 지금 누가 본체 소리를 내었어?”

“세계관 지켜 주세요, 김 기자님. 지금 기자님은 어린이들의 동심을 파괴하고 있다고요.”

“토끼 삼촌이 멀쩡히 있는데 본체라니요? 그게 무슨 얘기죠?”

눈치 챙기라는 주변의 힐난에 해당 기자가 ‘죄, 죄송합니다’ 하면서 먼지처럼 쭈그러들었다.

자기들끼리 재미있는지 막 웃는다.

그런 모습에 우리가 아련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희는 그럼 가 볼게요…….”

“아니, 질문 있어요! 질문해 줄게요!”

“괜찮아요… 저희도 다 알아요……. 저희는 토끼 삼촌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걸…….”

“아니, 그게 아니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사라지는 우리의 모습에 취재진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   *   *

오늘의 음방 일정은 굉장히 짧다.

정말로 음방에 출연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딱딱 찍고 가기 때문이었다.

“오실 줄 몰랐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K넷의 음방 담당 피디님이 직접 찾아와서 내 손을 맞잡….

…으려다가 잠시 고민하고는 토끼 삼촌의 앙증맞은 손을 흔들고 악수를 했다.

“어느 쪽을 잡아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두 손 다 잡으시면 될 거 같아요.”

[어서 악수하자꾸나!]

피디님이 내 손과 토끼삼촌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바쁘신 와중에 오신 만큼 최선을 다해서 토끼 삼촌과 뉴블랙 여러분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2시간 정도면 모든 촬영이 완료되고 퇴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기실로 들어서자 풍선들과 함께 벽에 붙은 [Happy Bunny Day]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K넷 작가님들이 케이크를 들고 왔다.

“저희가 감사의 의미로 케이크도 준비했어요.”

[고맙구나!]

작가님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대박!”

“진짜 귀여워…!”

“토끼가 말을 해! 와, 진짜 TV에서 보던 거랑 똑같아!”

그러면서 토끼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해 주세요!”

[이리 오렴!]

“저는 그럼 포옹…!”

[어른이도 이리 오렴!]

“와… 힐링이다. 진짜.”

그런 말을 하며 좋아하던 작가님들과 나의 눈이 딱 마주쳤다.

잠깐 현타가 온 표정으로 서 있던 내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손을 저어 보였다.

“괜찮아요. 여러분이 좋아해 주시면 저도 행복하니까요…….”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속에서 케이크 초를 후 불고는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작가님 한 분이 망설이며 다가왔다.

“저, 우주 씨.”

“네?”

“토끼 삼촌께 사인… 조금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 조카가 토끼 삼촌을 너무 좋아해서.”

“아, 네. 대신 사인지만 들어 주시겠어요?”

“?”

사인지를 허공에 든 작가님에게 내가 토끼 삼촌을 움직여 보였다.

[삼촌이 어린이들을 위해서 어제 사인을 연습했단다!]

매직펜을 든 삼촌이 일필휘지로 토끼 삼촌의 사인을 그려 나가면서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졸개들이 감탄했다.

“와, 진짜 쓸데없이 유능한 거 봐요.”

“나한테 저런 능력이 있었다면 세계 평화를 이룩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아서 자서전 썼을 텐데.”

“어젯밤에 우주 형이 연습하던 게 저거였구나.”

토끼 삼촌의 사인을 끝마치자 여기저기서 요청이 쇄도했다.

“저, 저도…….”

“5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살려 주세요….”

“저희 집 망나니에게 고통 받고 있는 중입니다. 삼촌의 사인이 있다면 집안이 평화로워질 거예요….”

정말 애처로운 눈빛들.

평상시였다면 다가오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던 방송국 사람들이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육아 힘들죠?’

‘살려 주세요…….’

사인회를 마치고는 메인 피디님에게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대본은 혹시 보셨나요?”

“네, 숙지했어요.”

“토끼 삼촌과 동물 친구들이 오늘 음방에 등장하는 가수들을 소개하는 컨셉으로 영상을 찍을 거예요. 간단하게 3분에서 5분 분량 정도로 갈 거고요. 준비 완료되면 사전 녹화까지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그런 대화를 나누고는 우리도 준비에 들어갔다.

동생들과 나의 메이크업을 간단히 마친 메이크업 선생님들이…….

“내가 살다 살다 인형 메이크업은 처음 해 보네.”

자그마한 인형을 둘러싸고 매니저들,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였다.

다이어리와 인형 꾸미기에 조예가 깊은 메이크업 쌤이 수술 집도의처럼 장갑을 꼈다.

“빰빰빠라람~”

유명 의학 드라마의 BGM을 까는 지호의 모습에 내가 중현이에게 눈짓했다.

바로 방해 요소는 사라졌지만 메이크업 쌤이 한참 동안 웃으며 몸을 들썩이는 바람에 조금 느려졌다.

기본적으로 토끼 삼촌은 털 인형.

여기에 함부로 화장을 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에 주로 하는 것은 바로 속눈썹 부착 같은 거였다.

중현이가 물었다.

“삼촌, 기분이 어떠세요?”

내가 손을 꿈틀거렸다.

[두렵구나.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삼촌은 새로운 토끼로 탄생해 있겠지? 토끼 삼촌이 아니라 인기 짱짱한 토끼 오빠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리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토끼 삼촌의 입에 마취호흡기를 덮는 시늉을 했다.

[꾸에에엑…….]

혀를 내밀고 기절하는 듯한 삼촌의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메이크업 쌤은 거의 울려고 했다.

“우주 씨…….”

“죄송합니다. 직업병이라서…….”

상황극을 할 기회만 생기면 놓치지 못하는 직업병 때문이었다.

그동안 깔끔하게 아이돌 메이크업을 마친 토끼 삼촌이 토끼 오빠로 재탄생했다.

비주가 말했다.

“형, 한 번 움직여 볼 수 있어요?”

이런저런 춤 동작을 보여 주며 그걸 따라 해 보라는 말에 내가 삼촌을 움직였다.

살짝 흔들리는 부분들은 다시 고정을 한 후.

제작진의 호출을 기다리며 벽에 붙은 큐시트를 바라보았다.

“인사를…….”

음방에 나왔으니 인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선배나 동기가 거의 없네.”

“그러네요.”

오늘 출연자가 18팀이나 되는데 선배 그룹이 썸머송으로 활동 중인 걸스온탑 하나 정도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 연차 높은 그룹이 16년도 데뷔.

중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해 보면 토끼 삼촌은 오늘 데뷔한 신인이잖아요.”

[그, 그렇지!]

“그럼 모두한테 다 인사를 하러 가면 되지 않을까요?”

[호오…….]

토끼 인형이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   *   *

국민 아이돌 뉴블랙.

누구에게나 친근한 아이돌로 꼽히는 뉴블랙이지만, 아이돌 업계의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빌보드 Hot 100 1위 가수.

-그래미 어워드 노미니.

-연간 차트 1위와 국내 시상식 대상 싹쓸이.

…절대 친근해질 수 없는 커리어였다.

그저 가까이 오기만 해도 두려운 존재.

어지간한 그룹은 지호가 한쪽 코를 막고 헹! 하고 풀어도 그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뉴블랙이 칸막이로 나눠진 신인들 대기실에 찾아왔을 때, 모두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켁!”

“흐억!”

“궤에엑…….”

먹고 있던 김밥을 뱉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

달달달-

뉴블랙을 본 적이 없는 가수들은 물론이고 본 적 있는 이들도 다리를 달달 떨었다.

‘왜… 왜 오신 거지?’

‘아씨 개쫄려.’

대기업 회장님이 현장을 방문한 듯한 분위기.

그들이 긴장한 얼굴로 신인들 대기실에 찾아온 뉴블랙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근엄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우주가 등 뒤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두둥-

토끼 인형이 튀어나왔다.

“?”

“??”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신인들에게 토끼 인형이 인사했다.

[안녕! 친구들! 토끼 삼촌이란다! 오늘 삼촌이 데뷔를 하게 되어 인사를 하러 왔지!]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공기 중의 긴장이 뽕! 하면서 물방울처럼 터져 나가는 분위기.

“안녕!”

“토끼 삼촌, 안녕하세요!”

메이크업에 의상까지 입어서 블링블링한 토끼 삼촌.

신인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토끼 삼촌이 신인들에게 말했다.

[삼촌은 사실 토끼 왕국에서 한창 때 슈스였단다. 토끼 왕국의 모든 음악 방송을 섭렵했지.]

“!”

[궁금한 거 없니? 삼촌이 다 대답해 줄 수 있단다!]

보이그룹 월간소년의 멤버 민트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 엔딩 요정할 때 표정 노하우가 구, 궁금합니다.”

[표정 노하우가 궁금하구나!]

토끼 삼촌이 지호에게 솜방망이 손을 까딱까딱하자 지호가 다가와서 좋은 팁을 알려 주었다.

치명적인 표정과 아이돌미 뿜뿜하는 표정 등등.

‘개꿀팁…!’

‘미쳤다. 녹음했어야 되는데.’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모습에 신인들이 용기를 얻어 질문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안개 속을 헤매는 듯했던 신인들 입장에서는 왠지 모르게 등대를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등대가 히말라야처럼 높고 블랙홀처럼 거대하긴 했지만…….

‘근데 왜 알려 주시는 거지?’

갑자기 인사하러 와서 꿀팁을 전수해 주는 상황.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토끼 인형 뒤에 있는 이들을 보며 아 했다.

자상한 눈빛.

가끔 선배들 중에서 ‘후배들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활동하면 좋겠다’ 하는 좋은 선배들이 있는데, 뉴블랙이 그런 쪽의 선배였던 모양이었다.

아이돌 업계에 애정이 많고, 후배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습.

‘선배님…!’

낯을 가리는 후배들을 위해 토끼 삼촌을 동원한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꾸나!]

“네, 선배님!”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꾸벅 숙이는 이들에게 뉴블랙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인사 성공.’

‘드디어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항상 흐엑 하고 도망치던 신인들과 드디어 대화를 나누게 되어 기뻐하는 5인조였다.

그러는 한편….

“아…….”

“인사하러 오겠지?”

오늘 음방에서 가장 널찍한 대기실을 쓰고 있는 걸스온탑 멤버들은 이마를 짚고 있었다.

‘성격상 반드시 인사하러 올 거 같은데.’

뉴블랙의 인사가 부담스러운 걸스온탑이었다.

예전에 까칠하게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조금 데면데면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서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하는데 어색한 분위기.

‘으음…….’

조금 어색할 것 같아서 꺼리던 이들이 이내 부처님 같은 표정을 지었다.

‘깊게 고민하지 말자.’

중국계 자본으로 움직이던 화이 엔터가 도산하고 나서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던가.

매니저와 함께 힘겹게 회사를 세워서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작년도에 스칼렛을 비롯해 걸그룹이 대거 출연했던 서바이벌 <더 스피릿>의 인기로 어느 정도 다시 올라온 걸스온탑이었다.

똑똑똑-

삐걱…….

걸스온탑 멤버들이 어색하게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누, 누구세요?”

매니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생 회사 입장에서 뉴블랙은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저희 인사하러 왔습니다!

발랄한 목소리.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면서 매니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

“??”

문이 빼꼼히 열린 틈 사이로 무언가 뿅 하고 들어왔다.

아이돌처럼 블링블링한 토끼 인형.

‘귀여워!’

눈을 크게 뜨고 놀란 걸스온탑 멤버들에게 토끼 삼촌이 솜방망이 같은 손을 번쩍 들었다.

쏘옥!

“?”

그러곤 귀엽게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토끼 삼촌입니다!!]

걸그룹 멤버들이 저항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걸스온탑과의 인사는 화기애애하게 잘 끝났다.

매번 만날 때마다 어색했던 사이.

딱히 악감정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할 말이 없어서 ‘음, 안녕하세요’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에 잘 마무리를 지었다.

그냥 웃으면서 인사하고 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정도로.

처음에 토끼 삼촌 때문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보니 이야기가 스무스하게 잘 흘러갔다.

“시간이 진짜 많이 지나긴 했네요.”

“많이 지났지.”

잠시 오묘한 기분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걸스온탑까지 인사를 했으니 출연자들과의 인사는 다 끝났다.

이제 VCR을 찍을 시간.

“삼촌! 저희에게 용기가 필요해요!”

[걱정 마렴. 삼촌이 너희에게 용기를 얻는 마법의 주문을 알려 줄 거란다~! 랄랄라라!]

“랄랄라라~!”

동물 머리띠를 쓴 동생들과 함께 오늘의 음방 코너들을 소개하는 VCR을 찍었다.

6월의 테마곡으로 컴백한 월간 소년의 곡을 이야기하고.

최근 K넷에서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서 밀어붙이는 중인 걸그룹 서바이벌의 특별 무대도 이야기하고.

1위 후보인 걸스온탑의 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고생하셨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NG 없이 대본대로 깔끔하게 VCR을 찍고는 스탭들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사전 녹화가 준비 중인 스테이지.

“와.”

지호가 감탄했다.

“진짜 준비 엄청 하셨네요.”

“그러게. 세트 진짜 예쁘다.”

보통 사전 녹화 무대는 회사들이 꾸미는데, 이번에는 K넷이 제작비를 들여서 무대를 꾸몄다.

어디 동화 속 무대 같은 분위기.

그리고 이렇게 어린이 프로그램을 찍어도 될 법한 무대 앞에는…….

“삼촌 언제 나와?!”

“토끼 삼촌….”

“토끼……!”

어디서 구했는지 저마다 손에 자그마한 토끼삼촌 인형을 들고 있는 아기들이 앉아 있었다.

보호자와 함께 앉아 있는 50명의 아기들.

‘귀여워….’

‘멀리서 보는 아기는 너무나도 아름답구나!’

따스한 미소를 짓고는 동생들과 미소를 교환했다.

스탭들이 ‘나오셔도 됩니다’ 하는 수신호를 보내면서 우리가 아이들의 앞에 등장했다.

[얘들아! 안녕!]

마이크를 장착한 토끼 삼촌의 인사에 아기들이 단체로 인사했다.

“삼촌, 안냐세요!”

[우리 어린이들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구나! 엄마아빠랑 토끼 삼촌의 무대를 보러 온 거니?]

“네!!”

[오늘 무대 하기 전에 삼촌이랑 또 약속 하나 할까?]

엄마아빠 말 잘 듣고, 방송국에서 모르는 곳으로 함부로 뛰어가면 안 된다고 약속을 한 후.

스탠바이를 기다리며 뻐근한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헉……!”

“허억!”

아기들이 숨을 삼키며 충격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생들도 마찬가지.

“왜…….”

…라고 말하는 순간 시선이 향한 방향을 깨달았다.

어깨를 두드린 손.

그것은 바로 토끼 삼촌의 머리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토끼 삼촌의 머리로 콩콩콩콩! 내 어깨를 두드린 거였다.

“…….”

내가 토끼 삼촌을 스르륵 움직이고는 내 뺨에 촙 갖다댔다.

[쪽!]

“?”

[삼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뽀뽀하는 걸 좋아한단다! 우리 어린이들도 엄마아빠에게 뽀뽀를 해 주도록 하렴.]

“!!”

아이들이 홀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모님들의 뺨에 쪽 하고 뽀뽀를 해 주었다.

부모님들이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카메라 뒤편의 감독님들도 아빠 미소를 짓는 가운데, 준비가 다 끝났다는 사인이 왔다.

[자, 그럼 삼촌과 재미있게 놀아볼까?]

“네!!!”

[음악~ 주세요!]

오늘은 바로 K팝 동요 <토끼 삼촌>이 음악 방송에 데뷔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랄랄라라~]

“랄랄라라~!”

부디….

이따 본방송으로 볼 수플레들이 너무 웃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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