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64화 (96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64화

“내쫓았다고?”

“네.”

완전 내쫓은 건 아니지만 사실상 내쫓은 거나 다름없었다.

-형, 작곡가 분들 기다리고 계실 거 같은데요. 먼저 가 있는 건 어때요…?

내가 작곡가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벌레리나’에 대한 비하인드를 들은 작곡가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디어 괜찮은데?”

“그러니까. 왜 애들이 그거 가지고 뭐라고 했지?”

“이해가 안 가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들었다.

“그죠? 이거 보세요.”

“…….”

“…….”

작곡가들이 갑자기 내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히 말을 삼키는 동안 나상윤 팀장님이 대표로 말했다.

“우주야.”

“네.”

“그… 아이들이 보기엔 좀 그런 디자인 아닐까?”

작곡가들이 한마디씩 얹었다.

“바퀴벌레에 날개 달린 거 같아.”

“아무리 봐도 가디언인데. 그 뮤탈리스크 진화한 거….”

“나 저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봤어. 호주는 집에서 저렇게 생긴 벌레들 나온다더라.”

냉정한 평가에 내가 벌레리나의 귀에 손을 올렸다.

“리나야. 넌 저런 말 듣지 마. 너는 잘못 없어.”

“아니, 애들이 보기에 무섭게 생겼다니까. 어른도 저거 보면 악몽 꾸겠다.”

“그치만….”

항변하려던 내가 그림을 바라보고 말을 멈췄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람들의 말이 맞긴 했다.

의도는 좋지만 너무 무섭게 생겼다고 해야 되나.

“저는 진짜 디자인 쪽에는 재능이 없나 봐요.”

“괜찮아. 우주야.”

솔트맨 작곡가가 말했다.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거야. 하나쯤은 없어야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거지.”

“그죠?”

“사람이 단점도 있어야지. 게임도 못 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작업할 때 성격도…….”

“작업할 때 성격도?”

무의식적으로 나열하던 솔트맨 작곡가가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좋지!”

“그죠?”

작곡가들과 아하하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며 졸개들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어, 회의는 잘했어?”

프로듀싱팀의 물음에 동생들이 말했다.

“잘하고 왔어요. 사장님도 저희가 낸 아이디어를 너무 마음에 들어하셨고… 아 참.”

비주가 봉투를 들어 보였다.

“사장님이 선물도 주셨어요. 우리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는데 너무 귀여운 거 있죠.”

테이블 위에 솜인형들이 하나씩 놓인다.

“어? 진짜 귀여운데?”

“야, 이거 너희 팬들 보면 난리 나겠다.”

솜인형인데도 보자마자 누가 누구인지 알 것처럼 특색도 확실하다.

의상은 도깨비 때 의상.

왠지 모르게 우깨비 비깨비 하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법한 인형들이 주르륵 놓였다.

지호가 말했다.

“형, 이거 우리 도깨비 식당 프로젝트 할 때 써도 될 거 같아요. 마스코트처럼 진열해서.”

“진짜 딱인데?”

뉴니버스의 식당 프로젝트에서 쓰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도깨비 인형들을 이따가 6층에 있는 진열장에 토삼이와 함께 전시하기로 결정한 후.

“그리고 이것도 있어요.”

“?”

비주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형 떠나고 난 다음에 사장님이 벌레리나 새로 그려 주셨거든요. 아이디어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그래?”

“이거 보세요.”

그림을 찍은 사진.

살짝 통통한 체격에 앙증맞게 생긴 팅커벨 미소녀가 뾰로롱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오오……!”

“그치. 이거지.”

“얘는 우리 딸내미가 엄청 좋아하겠다.”

작곡가들이 ‘이래야 어린이 만화지!’ 하면서 수긍하는 표정에 슬픈 미소를 지을 때였다.

스슥.

내 곁에 다가온 중현이가 비밀 이야기를 해 주듯이 속삭였다.

“형. 저는 형이 만든 버전이 더 좋아요.”

“그치? 더 귀엽지?”

“네.”

중현이가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풀밭에 사는 벌레처럼 생겨서 좋아요. 농촌에서 보던 그런 감성.”

“…….”

*   *   *

“자.”

잠시 소란스러웠던 주변을 정리하고는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멤버들이 필기구나 핸드폰을 들고 있고, 프로듀서들이 노트북을 무르팍에 올려놓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인터내셔널 앨범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우선 TF팀과 A&R팀, 그리고 프로듀싱팀과 합의가 끝난 사안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인터내셔널 앨범은 정규 앨범 정도의 볼륨으로 제작할 거예요. 12곡에서 13곡 정도로 구성할 건데, 여기서 한두 곡이 빠지거나 Instrumental 등이 추가로 들어갈 수도 있고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앨범 발매 예상 시기는 올해 12월이나 혹은 내년 1월, 그러니까 2019년도 1월 정도로 예상 중이에요.”

모든 곡이 영어 곡으로 나오는 앨범.

게다가 첫 인터내셔널 앨범인 만큼 6개월에 걸쳐 작업할 예정이었다.

물론 발매 시기가 조금 늦는 건 전략상의 이유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는 싱글을 두 곡에서 세 곡 정도 발표할 거 같아요. 가장 먼저 를 발매할 거고, 그다음에는 여러분이 쓴 곡과 공모 받은 곡 중에서 가장 좋은 곡으로요.”

미국의 앨범 발매 방식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컴백 때가 되면 보통 한꺼번에 몽땅 다 공개한다.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 타이틀곡 뮤비랑 앨범이랑 몽땅 다 공개됩니다! 즐겨 주세요!

반면에 이번 앨범의 메인 타깃으로 삼는 영미권은 조금 방식이 다르다.

우선 타이틀곡 개념이 없다.

대신 리드 싱글(Lead Single)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하자면 선공개곡과 비슷하다.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선공개곡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여러분, 저 곧 앨범 나옵니다! 일단 제 따끈따끈한 리드 싱글 <왕지호 사랑해> 한 번 들어 주세요!

리드 싱글의 흥행 여부에 따라 앨범의 성패가 좌우될 정도이기에 리드 싱글은 보통 타이틀 급으로 좋은 노래들이 선택된다.

예컨대 우리가 이번에 만든 같은 케이스.

보통은 그렇게 한 곡 정도 내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앨범 전에 두세 곡을 내기도 한다.

-다른 노래들도 한 번 들어 보세요!

이 전략에는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리스크 분산.

만약 첫 번째로 낸 리드 싱글의 반응이 생각보다 저조하다면?

대체로 타이틀곡에 올인하는 우리나라 가요계와 달리 재도전의 기회가 있다.

두 번째나 세 번째에 낸 곡이 반응이 더 좋으면 되는 것이다.

-후후후. 사실 저의 진정한 리드 싱글은 바로 두 번째에 낸 <서리혁 사랑해>였습니다.

-<왕지호 사랑해>가 메인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요? 언제? 어디서? 누가…?

이런 식으로 모르쇠가 가능한 게 큰 장점이다.

지호가 말했다.

“근데 저는 이거 싱글 맨날 헷갈리던데요. 어떤 가수는 보면 그냥 앨범 발매일 직전에 내던데.”

“딱히 정해진 것 없는 것 같더라고.”

사실 리드 싱글은 이래야 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다.

우리나라 가요계도 최근 들어서 일부 기획사가 선공개 곡으로 홍보를 하는 등 프로모션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홍보 방식도 우리처럼 팬덤이 탄탄한 가수들에겐 필수적인 게 아니었다.

다만…….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신중하게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미국 에이전트인 디안젤로 코스타 씨의 조언을 듣고 결정했다.

중요한 프로젝트니까.

우리의 주요 활동지가 한국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디까지나 K팝이 메인이기에 스케줄상 영어 곡으로 앨범까지 내는 건 2년이나 3년에 한 번 할 만한 프로젝트.

한 번 끝나면 최소 2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정말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하는 중이다.

게다가 퀄리티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싶다.

팬들이 들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는 안일한 앨범이 아니라 팬들에게도 역대급 앨범이 되도록.

그리고.

“이번 앨범은 수플레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일반 대중들에게도 다가가는 게 목표예요.”

이른바 해외의 머글들에게 어필할 주요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근사한 리드 싱글을 발매해서 일반인들도 ‘저 정도 퀄리티면 앨범 한 번 사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쭉 모았다가 원기옥처럼 터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까지가 서론이고요.”

나랑 동생들이 작곡가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목표가 좀 크죠?”

작곡가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크긴 하다.”

“팬들도 호평하고, 외국의 일반인들까지도 호평해서 앨범을 구매할 정도의 퀄리티… 쉽지 않네.”

그런 말을 하던 나상윤 팀장님이 말했다.

“하지만 해내야지.”

“맞아요. 해내야 돼요.”

내가 테이블에 놓인 토끼 삼촌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황도 나쁘지 않아요. 지금 얘가 전 세계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하긴. 토삼이 어그로가 대박이긴 하지.”

“네. 그리고….”

내가 토삼이를 흘깃 바라보며 웃었다.

“이 친구가 지금 역대급 기록을 세워 나가고 있는데, 아무리 제가 토삼이의 본체라고 한들….”

“…….”

“저는 절대 뉴블랙이 지는 꼴은 못 봐요.”

“……!”

동생들과 나의 눈이 승부욕으로 화르륵 불타올랐다.

“오버쿡은 토삼이를 능가하게 만들 거예요. 아니, 반드시 능가할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저희도 같은 생각이에요.”

“역대 최단 1억 뷰? 토삼아, 우리가 못 할 거 같아??”

그 열기에 작곡가들이 침을 꼴깍이며 우리를 바라볼 때였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복도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핫~!

-세상이 참 아름다워~ 그치?

-어유. 비 오네. 날씨 좋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찬양하며 행복하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것은 바로 A&R팀이었다.

“…….”

“…….”

프로듀싱팀 직원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고 있던 프로듀싱팀이었지만, A&R팀이 토끼 삼촌을 너무 크게 터뜨렸다.

대표님이 주시기로 한 역대급 성과급에 A&R팀이 꺄르륵 웃으며 행복해하는 상황.

“맞아.”

“우주 말이 맞지.”

업계에서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우리 프로듀싱팀 작곡가들의 눈에도 불꽃이 피어올랐다.

“최고의 곡.”

“최고의 앨범.”

작곡가들과 우리가 손을 맞잡았다.

프로듀싱 팀도 우리만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가 보자고요.”

“가자.”

반 토끼 연합전선의 형성이었다.

물론….

토끼 인형이 우리를 바라보며 왠지 억울하단 표정을 짓는 것 같았지만 다들 무시했다.

*   *   *

의 기본 컨셉은 간단하다.

-요리하면서 부를 수 있는 노래.

비주가 공감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 저게 대중성으로서는 끝인 거 같긴 해요. 요리할 때 사람들이 흥얼흥얼하는 노래.”

요리를 하거나 샤워를 하고 있을 때 따라서 흥얼흥얼 부를 수 있는 노래.

애초에 배경부터가 요리하다 힘들어서 아무 말 대잔치를 했던 것이 탄생 비화 아니던가.

“이번에는 노래 자체의 재미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저절로 흥얼거리는 멜로디, 신나는 비트. 노래의 특성상 메시지를 넣기도 힘들고….”

“왜?”

“뉴니버스에서 오버쿡이 탄생한 비하인드를 공개할 거거든요.”

대충 흥얼거리면서 탄생한 노래인데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면 그것도 좀 웃기는 것 같다.

“무엇보다 <토끼 삼촌>을 보면서 교훈을 얻었어요. 특별한 주제의식이 담긴 노래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요. 생각해 보면 노래란 건 해석하기 나름이잖아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런 압박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거 같아요. 노래에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는.”

“그치. 노래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무시 못 하니까.”

물론 에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인 입맛에는 분명 적당히 익은 고기인데, 외국인 셰프가 보기에는 ‘너무 익었다’고 혹평을 하면서 탄생한 노래.

Overcooked~ overcooked~

그저 조금만 익혔을 뿐인데~♪

아무래도 널 향한 사랑이 과했나 봐~♬

이런 오버쿡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적당한 고기 굽기에 대해서 나라마다 사람마다 견해 차이가 있잖아. 그런 것처럼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널 향한 사랑 때문에 너무 익혔나 봐. 지금은 조금 서투른 사랑일지라도….

-조금만 익혔는데 너무 타 버렸네? 어쩔 수 없지.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노래였다.

“조금 틀을 깨고 싶어요. 창작자에게 확고하게 메시지가 있어서 대중들에게 각인을 시키는 게 아니라, 먼저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고 대중들이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확고하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정해진 편이었다.

<백야>의 경우에는 불면증.

<불꽃놀이> 6부작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부터 <도깨비>, 3부작은 갈등과 해소.

하지만 이번에는 느슨하게 가려고 한다.

노래는 아티스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듣는 사람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이기에.

“좋은 생각이에요.”

리혁이가 말했다.

“마침 글로벌 음원이잖아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해야 노래가 흥하기도 좋고.”

“같은 생각이에요. 형.”

“저는 의견이 없지만 시키는 대로 할게요.”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작곡가들도 내가 말하는 방향성에 동의했다.

“좋은 거 같아. 얼핏 들으면 사랑 노래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양성에 대한 노래 같기도 한데? 서로 간의 다름으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그냥 노래가 좋다.”

마지막 말이 핵심이긴 했다.

“맞아요. 결국 좋은 노래로 승부를 보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부터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에요.”

오버쿡은 이미 뼈대가 완성된 노래다.

특별하게 창의력을 발휘해서 메워야 하는 구간은 없다는 뜻.

건축으로 따지면 건물이 설계도대로 잘 지어졌는지 확인하고, 인테리어를 고민할 시간이었다.

무한반복의 시간.

“토삼이…….”

내가 테이블 위에 토끼 인형을 올려 두었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있다.

장작 위에 누워서 쓸개를 할짝할짝하며 복수를 꿈꾸었다는 어떤 중국 사람의 이야기.

“기다려라. 토삼아… 호오오오…….”

토삼이의 귀에다 대고 귓바람을 부는 내 모습에 동생들과 작곡가들이 속삭였다.

“근데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 아니야? 토끼 삼촌은 자기가 토끼 삼촌이잖아.”

“나는 오늘도 나와 싸운다..☆ 대충 그런 거 아닐까여?”

“바른말 하지 마. 바른말 하면 쟤 싫어해.”

수군거리는 사람들.

양심이 쿡쿡 찔려 왔지만 그 무엇도 토끼 삼촌을 향한 나의 승부욕을 멈출 순 없었다.

“기다려라. 뉴토삼!”

중현이가 과자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오, 독백인가요.”

“캬악!”

“자, 잘못했어요.”

*   *   *

열정적으로 의 작업에 참여한 후.

개인 연습시간이 된 뉴블랙 멤버들은 6층의 개인 연습실에 흩어져 저마다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후우…….”

서리혁이 헤드폰을 끼고 녹음된 노래를 들었다.

‘내 목소리지만 진짜 예쁘군.’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흐뭇한 미소도 잠시, 차디찬 표정으로 가사지에다가 만년필로 지적할 점을 쓰는 리혁이었다.

‘5분 전의 내가 본다면 눈물 깨나 흘리겠군. 후후후.’

일필휘지!

가차 없이 과거의 자신에게 피드백을 쓴 서리혁이 곧이어 피드백을 읽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더 나은 서리혁이 되는 거지…!’

곧바로 다시 헤드폰을 끼고 노래 연습을 하던 서리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태블릿에 작성했다.

[일시적 음정 불안정 : 93% 해결]

[특정 파트 끝음 처리 : 78% 해결]

[발음 문제 : 98% 해결]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평가를 작성하는 리혁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TBC 미션 싱어 경연』

경연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보컬 트레이너들에게 코칭을 받고, 멤버들에게 피드백을 받아서 이제 완성 수준까지 올라온 노래.

지금은 막바지 체크에 여념이 없었다.

‘컨디션 관리만 잘하면 될 거 같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한데….’

그 부분은 이따가 우주에게 물어보면 될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뒷정리를 한 리혁이 퇴근하기 위해 연습실을 나왔다.

“음?”

연습실을 나오자 멀찍이 웅성거리는 동료 졸개들이 보였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요?”

“우주 형 때문에.”

“아직도 안 나왔어요? 우리 퇴근해야 되는데.”

비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크할까 하는데, 너무 집중한 거 같아서.”

“그냥 두드려요.”

“그러다가 정말 중요한 순간인데 방해하는 걸 수도 있잖아. 우주 형 지금 노래 때문에 신경 예민한데.”

그런 이유로 문 앞에서 선우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지독하다. 진짜.’

리혁이 혀를 내둘렀다.

연습 좋아하기로 유명한 뉴블랙이지만, 그런 그들도 퇴근 준비를 마쳤는데 혼자 작업실에 있다.

“하여간 승부욕은 강해서.”

왜 저러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토끼 삼촌은 말 그대로 얻어걸린 노래.

가벼운 마음으로 작곡한 동요가 열심히 쓴 활동곡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해 버린 것이다.

“근데 괜찮을까요.”

지호가 말했다.

“우주 형 원래도 혹사 수준 스케줄인데 저러기까지 하면 진짜…….”

“그니까.”

“위염 때문에 입원하면 우리 또 수발 들어야 돼요. 그때 진짜 지호야아아아!!! 부른 다음에 물~ 이러고.”

요즘에는 건강 좀 챙기는 것 같더니, 다시 원래의 버릇대로 돌아오려고 하는 맏형.

그 모습에 졸개들이 근심할 때였다.

리혁이 당당하게 나섰다.

“안 되겠어요.”

“?”

“내가 가서 따끔하게 얘기하고 와야겠어요. 사람이 건강을 좀 챙기고 살아야지.”

그런 말을 하며 리혁이 선우주의 작업실에 발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오오!’

‘멋있어, 우리 리혁이…!’

그리고.

그것이 리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졸개들이 침을 삼켰다.

“안 나오는데?”

중현의 말에 지호가 답했다.

“뭐지? 제가 한 번 가 볼게요.”

“괜찮겠어?”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도망은 잘 치잖아요. 걱정 마요. 형들! 제가 둘 다 데리고 나올게요!”

찡- 하고 이빨을 빛내고 웃던 지호가 총총 뛰어갔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

“…….”

비주와 중현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작업실 문 근처로 다가갔다.

두 청년이 까치발을 들어 문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우주의 손에 붙들려 애착인형처럼 앉아 있는 졸개들.

옴뇸뇸-

행복하게 과자를 먹고 있던 막내들과 형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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