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65화
가끔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우주 씨는 뉴블랙의 멤버이면서 동시에 성공한 싱어송라이터기도 하잖아요. 만약에 우주 씨처럼 작곡돌을 꿈꾸고 있는 후배들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나요?
그에 대한 대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곡을 쓸 때는 자기가 아는 걸 써야 해요.
아무리 작곡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노래를 쓸 수 없는 법이다.
20대인 내가 중장년층의 감성을 공략하는 트로트를 쓸 수 없고, 콜드 브라운이 한국의 사회 문제에 대한 힙합 곡을 쓸 수 없듯이.
모르는 것에 대해 곡을 쓰려고 하면 시작부터 턱 막힌다.
“그럼 동요는요?”
지호가 과자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형도 지금 어린이 아닌데 동요 써서 대박 났잖아요.”
“그건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가능했지.”
백반집에서 투니버스 만화 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토끼 삼촌>이라는 곡을 썼다.
-홀로 남은 어린이에게 친구가 되어 줄 동요.
모든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는 나의 마음을 담아 쓴 노래인 것이다.
“토끼 삼촌과 함께라면 외롭지 않아~ 랄랄라라~ 같은 거지.”
“역시 애기들의 취향을 저격한 이유가 있었네요. 전직 애기의 짬에서 나온 바이브.”
“너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거 보니까 졸리구나.”
“넹. 지호는 졸려요. 우우웅.”
부은 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졸개에게 과자를 먹이고는 밀었다.
내가 고개를 돌렸다.
퇴근 준비를 마친 졸개들이 하품을 쩍쩍 하고 있는 가운데, 비주가 하품을 헙 삼키며 말했다.
“저는 아직 안 졸려요. 형.”
“미안.”
“안 미안해도 돼요. 오히려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데…….”
“잠깐 쉬고 있어. 금방 마무리 지을게.”
졸개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조금만 더 하면 돼.”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면서 마우스를 딸깍였다.
“으음…….”
살짝 사운드만 건드리면 완벽하게 완성될 것 같은데.
잠시 눈을 감고 어떠한 풍경을 떠올렸다.
-할머니! 순두부 두 개랑 제육볶음 하나!
-그르냐! 요 반찬 좀 내가라.
-헤헷.
-더워 죽겠는데 옘병하고 있네. 자꾸 앵기지 좀 말고! 야 숙자야! 너도 놀지 말고 후딱후딱 좀 뛰어라!
TNT 데뷔조에서 떨어지고 나서 한창 할머니 백반집에서 잡일을 도우며 살던 시기를 떠올렸다.
매일 밤 이불 속에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TJ 엔터. 후후후….’ 하며 꼼지락거렸던 시절.
아무튼.
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내가 요리나 주방에 대해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보글보글-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오르며 보글보글 끓는 해물 순두부찌개.
삭삭삭-
우리 할머니가 담근 군산 최고의 김치가 도마 위에서 어슷하게 잘리는 소리.
기름진 후라이팬 위에서 볶아지는 제육볶음.
소금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들기름 냄새를 풍기는 계란 후라이.
달그락- 달그락-
삭삭-
치이이익-
다양한 소음이 들려오는 백반집의 주방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가 영어 곡이기도 하고, 서양식 주방에 더 어울리는 곡이라 처음에는 그런 주방을 떠올리며 곡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Warning! 데이터 없음!]
…이런 알림창이 뜨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런 이유로 내게 친숙한 백반집의 주방을 떠올리며 를 작업하는 중이다.
특히나 점심 무렵의 백반집을 떠올렸다.
-사장님, 저희 고등어구이 하나랑 청국장 둘이요…! 그리고 저희 물수건 좀 주세요!
-콩국수 나와요? 아직 시즌이 아니라고요…? 어째서…?
-사장님 저희 계산이요!
11시 30분부터 시작해서 1시 20분까지는 가게에 뿌연 안개가 생길 만큼 손님들의 열기로 바글바글하다.
그러다 1시 40분쯤 넘어서기 시작하면 가게가 서서히 한산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잠시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쐬거나, 요구르트를 마시며 땀을 식히곤 했다.
그런 과거의 나에게 이 를 들려주고 싶었다.
“음…….”
딱히 정해진 메시지는 없다.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후훗… 이 예술에 담긴 메시지를 보거라’ 하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냥 가볍게.
[Overcooked~ Overcooked~]
고된 일에 지쳐서 멍하니 선풍기 바람만 쐬고 있는 사람이 즐겁게 흥얼거릴 수 있도록.
아무 생각 없이 불러도 되도록.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힘든 사람에게 잠깐의 즐거움이 되어 주도록.
[그저 조금만 익혔을 뿐인데~♪]
그런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확실히 작업에 속도가 붙는 느낌이 든다.
늘어지는 구간은 깔끔하게 잘라 내고.
어색한 구간은 잘라 내어서 다른 구간에 붙이거나 혹은 전면적으로 수정을 거치거나.
그러면서 흐물흐물했던 형체를 지닌 오버쿡이 점점 또렷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으음…….”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한 써니사이드업을 자랑하는 계란 후라이가 떠오른다.
흰자 가운데 노른자가 탐스럽게 반짝이는 느낌.
예쁜 접시에 플레이팅 되어 있는 맛깔난 요리를 연상케 하는 노래에 미소를 지었다.
예쁘고 세련됐고… 그리고 신난다.
“완성.”
요리를 완성한 요리사의 기분을 느끼며 기지개를 켤 때였다.
[05:39]
시간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생들에게 금방 마무리한다고 해 놓고 밤을 새워 버린 셈이라 다급히 고개를 획 돌렸다.
“얘들아. 미…….”
미안하다고 말하려다가 뒷말을 삼켰다.
사이좋은 펭귄들처럼 소파에서 고꾸라져서 자고 있는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막내의 침이 리혁이 어깨에 추르릅 떨어져 있고, 다소곳이 자고 있는 비주의 어깨에 중현이가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얘들아. 형 노래 완성했어.”
“…….”
당연하게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새근새근 들려오는 숨소리들을 들으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 잘 뽑혔네.”
의 완성본을 보며 자화자찬할 때였다.
내 작업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토끼 삼촌의 솜인형 버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그런 영상이 떠오른다.
-Honey, 집에 다 왔단다.
차에서 곤히 자고 있는 딸에게 아빠가 일어나라면서 <토끼 삼촌>을 틀어 주는 영상.
잠에서 깨진 않았지만, 토끼 삼촌의 멜로디에 아이가 방긋방긋 웃는 75만 뷰의 영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오버쿡에 대한 우리 졸개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브이로그용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말했다.
“과연 동생들의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금부터 저 선우주가 테스트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의 작은 볼륨으로 를 틀었다.
꿈틀꿈틀.
내가 속삭였다.
“저기 보세요. 반응이 오고 있어요.”
카메라 앵글에 담긴 졸개들이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사…….”
사랑해?
살쪄요.
사리혁? 라면사리혁 어때여?
사실 전 레인아rrrr….
내 무의식 속으로 ㅅ으로 시작하는 그간의 다양한 환청들이 흘러들어 올 때.
“살려 주세요…….”
중현이의 중얼거림에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꿈틀거리는 졸개들.
“네… 형 말이 다 맞아요. 네, 네. 좋아요. 이번 버전이 더 좋아요. 네에…….”
“그만해…….”
“떼……잉….”
악몽을 꾸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동생들을 바라보다가 토끼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거라구.”
토삼이가 왠지 모르게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마침내 오버쿡 완성.
얼마 안 가 잠에서 깨어난 동생들도 완성본에 대해 호평을 했다.
“완벽하게 완성됐는데요…?”
비주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어떻게 한 거예요. 형? 여기에 바로 녹음만 하면 될 거 같은데.”
“와, 진짜 잘 뽑혔당.”
막내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저 지금 막 일어나서 뭐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는데, 이건 계속해서 귀에 쑥쑥 들어오는 거 같아요.”
“나도 마음에 들어요.”
“잘 뽑았는데요?”
동생들의 호평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프로듀싱팀에게 보내 줄 파일을 USB로 저장했다.
[Overcooked_Ver3.29_완성_최종_수정_최종본_편집_최종]
그 외에도 다양한 수정본을 저장한 후.
“잠은 잘 잤어?”
“넹.”
“혹시 자면서 뭐 특이한 건 없었니? 꿈이라든가. 몹시 좋은 꿈을 꿨다든가. 행복했다든가.”
“음…….”
다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동안 중현이가 말했다.
“뭔가 꿈을 꾼 거 같긴 해요.”
“그래?”
“네. 지독한 악몽을 꾼 것 같은데.”
“…….”
다른 졸개들도 동의했다.
“저 고구마 사리에 쫓기는 닭갈비가 된 꿈 꿨어요. 볶음밥 볶아야 하는데 왜 후라이팬에 남아 있냐고 막 소리 지르는데…….”
“나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
“남들 다 사과나무인데 나만 포도나무가 되는 꿈을 꿨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에 대한 1차적인 작업들을 모두 마무리한 후.
TF팀과 A&R팀, 프로듀싱팀과 한 자리에 모여서 앨범 제작과 관련된 회의를 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뮤직비디오 준비.
의상 만들어 줄 디자이너 컨택.
컨셉 아트 등등.
직원들과 회의를 거치면서 인터내셔널 앨범 프로젝트 명도 정해졌다.
『 맛 : Flavour 』
전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주제로 하는 노래가 바로 이번 앨범의 컨셉이었다.
석환 형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공모를 받아볼 건데 내가 다 설레네. 곡이 얼마나 들어 올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경쟁이 치열할 거거든.”
“경쟁?”
“너희랑 작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아직 공모 내지도 않았는데 곡 보내는 외국 작곡가들도 있을 만큼.”
“그래?”
석환 형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미소가 맺혔다.
“작년에 때와는 또 다르지. 그때는 우리가 을의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아쉬울 것도 없고. 외국에서의 너희 위상도 메트로 나오기 전이랑 후랑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으니까.”
거기에 여전히 빌보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Answer까지 더해지면서 나타난 변화인 듯했다.
과연 어떤 노래가 들어올까.
나도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앨범 준비도 들어갔고…….”
할 일 리스트에서 하나씩 체크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단독 예능 <뉴니버스 프로젝트> 순항 중.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선> OST 녹음 준비 완료.
우비즈 컨셉 포토 및 뮤비 촬영 준비 완료.
이제 남미 투어를 앞두고 한국에서 남은 스케줄은 두 개 정도였다. 엄밀히 말해서 스케줄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일정이지만.
-TNT 콘서트 방문.
하나는 이번 주말에 있는 TNT의 재결합 콘서트.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전에 있는….
-리혁이 미션 싱어 출연★
바로 우리 메인보컬이 출전하는 가요 서바이벌이었다.
* * *
본격 가왕 선우주 데뷔 작전!
-출연 전까지는 보안을 철저히 해 주셨으면 해요.
비밀을 지켜달라는 <미션 싱어> 제작진의 요청에 우리는 리혁이를 철저하게 숨겼다.
“자! 이 검은 옷을 입어요. 리혁이 형.”
“얼굴이 너무 작아서 눈에 띄는구나. 모자를 씌우자.”
“리혁이 눈이 너무 예뻐요. 선글라스 씌울까요?”
그리하여 완성.
“으그 므으으(이게 뭐예요)?”
펑퍼짐한 옷과 마스크, 선글라스 등등.
당사자의 항변을 무시하며 우리 모두 손뼉을 쳤다.
“완벽하다.”
“어? 저 이거 코난에서 본 거 같아요.”
“범인?”
탐정 만화에서 어둠이 깔리면 큭큭큭! 하면서 얼음송곳을 들고 다니는 범인 같았다.
리혁이가 꼬옥 끼는 마스크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믄 은드긋으.”
“조금만 참아요, 형. 다음 주에 본방 나오면 그때부터는 프리하게 하고 다녀도 되잖아요. 다들 형인 거 알 테니까~”
“므스크.”
“마스크 좀 편하게… 잠시만요.”
우리가 리혁이의 의상을 조정해 주었다.
리혁이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진짜… 다들…….”
뭐라고 말을 퍼붓기 전에 우리가 선제공격을 했다.
“사랑해요! 서리혁!”
“으휴빛깔! 서리혁!”
궁시렁하면서도 좋아하는 리혁이에게 다른 동생들이 응원을 퍼부었다.
내가 리혁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갈 시간이네. 그럼 리혁이랑 다녀올게.”
“네!”
“잘 댕겨 와요! 밥도 맛난 거 먹구! 아, 저 빼고 먹는 거니까 넘 맛난 건 먹으면 안 돼요~!”
손을 흔드는 동생들에게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자, 가자!”
오늘 리혁이의 스케줄에 동행하는 건 나 하나였다.
리혁이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었다.
지호처럼 ‘나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인드가 있으면서도, 막상 네 명이서 동시에 자기를 보면 싫어한다.
대충 한 명 정도가 곁에서 다독여 주는 걸 좋아하는 타입.
“떨려?”
“…당연히 떨리죠.”
리혁이가 모자를 벗고 머리를 정돈했다.
“경연은 진짜 오랜만이잖아요. 명곡단 이후로 사실상 경연 프로에 나간 적도 거의 없는데.”
“그러네.”
“그때 떠올라서 그런지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거 같아요.”
무려 3년 만의 경연 프로그램 출연.
흔히 아이돌판이 경쟁의 장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매년 치열한 견제와 싸움이 벌어지기에 아이돌은 경쟁에 익숙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도 스트릿 보이즈, 틴스피릿과 TNT 같은 그룹들과 경쟁을 하며 올라온 거니까.
하지만 <미션 싱어> 같이 커리어를 걸고 하는 무대 경쟁은 아이돌들에게도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강한 자만이 올라가는 무대.
<도전, 명곡단!>이나 <미션 싱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아닌 이상은 접하기 힘든 살벌한 무대 경쟁.
특히나 우리처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가수들에게는 더욱더 드문 일이기도 했다.
보통 나갈 일이 없으니까.
우리야 리혁이 실력을 아니까 그렇지, 일반적인 원탑 그룹이 경연에 나가겠다고 하면 기획사에서 뜯어말리는 게 정상이다.
-…서바이벌을 나가겠다고? 굳이?
나쁜 건 아니다.
이런 프로에 나와서 ‘가창력 끝판왕’ 같은 칭호를 받을 정도로 보컬이 대단하면 정말 좋은 기회다.
사람들이 ‘아니! 저 녀석! 힘을 숨기고 있었어!’ 하며 놀랄 테니까.
그렇지만….
엄청나게 두각을 드러낼 실력이 아니라면?
-아이돌은 아이돌이고 가수는 가수라고 하는 이유가 있네ㅋㅋㅋ 실력 차이 봐라
-저런데도 돌판 원탑이라고 불리는 거임????
-세상 참 불공평하다.. 쟤보다 노래 잘하는 애들이 한트럭인데 쟤는 성공하고ㅠ
-뭐 언제부터 돌판이 실력대로였음? 그냥 와꾸지
워낙 기대치가 높아서 생기는 문제다.
대체로 ‘실력=인기’로 인식하는 시청자들에게 ‘원탑 정도면 이 정도는 해야지’ 라는 기준이 있으니까.
정말 잘해야 본전.
적당히 하면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그런 이유로 반짝반짝 뜨고 있는 아이돌이라면 모를까. 최정상에 오른 그룹에게 있어 이런 프로는 메리트가 적다.
다만….
-근데 제 생각에는 리혁이 형 정도면 내보낼 만한 거 같아요.
15년도 명곡단 시절에도 보컬로 유명한 차우현 선배나 리사 선배에게 극찬을 받기도 했고.
그 이후로 3년간 피 나는 노력으로 보컬을 키워 온 리혁이었다.
일반적인 메인보컬이 보여 주는 수준을 넘어선 지금의 뉴블랙 메인보컬 서리혁은…….
-기대되지 않아요, 형들? 이번에 리혁이 형 내보내면 진짜 난리날 걸요.
막내의 말에 우리 모두 동감했다.
‘보여 주고 싶다.’
그룹 무대를 하면서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리혁이의 보컬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 애가 숨죽이며 3년간 갈고닦았던 실력을!
“그리고 그 실력으로 위대한 가왕 선우주가 가요계의 역사에 남도록…!”
“꼭 잘나가다가 급커브를 틀어요.”
에휴 하면서 웃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수다를 떨면서 긴장을 풀어 줘서 그런지, 달달 떨고 있던 다리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자자!”
리혁이가 긴장하지 못하도록 말을 걸었다.
“지금부터 가왕 선우주가 되기 위한 연습 실시.”
“실시.”
“자, 따라 해라. 에쿵, 흑역사..☆”
“에… 에쿵.”
“부끄러워하면 안 되지! 넌 선우주다!”
“나, 난 선우주다.”
“데헷 김덕순.”
“데헷! 김덕순!”
매니저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철저히 트레이닝을 했다.
그렇게 강변북로를 쭉 따라서 상암동에 있는 TBC 사옥에 도착했을 때.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직행하며 소곤거렸다.
“지금부터 스튜디오까지 조용히 가는 거야.”
“나야 뭐 다 가렸으니까 그렇다 치고. 오히려 형이 더 조심해야 할 거 같은데요.”
“나는 신경 쓰지 마.”
마스크를 쓰고 체형을 위조하는 스킬을 사용하자 리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맑은 웃음소리.
게다가 성량까지 좋아서 쩌렁쩌렁하다.
“리혁아. 웃음소리도.”
“…조심할게요.”
그런 결심을 하며 지하 2층에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딩동.
[1층입니다]
1층 로비로 올라오면서 엘리베이터에 우르르 타는 사람들.
평소였다면 실루엣만 보고도 ‘어?’ 하고 놀랐을 사람들이 나와 리혁이를 흘깃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통했다.’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보고 있어요.’
리혁이와 내가 눈빛을 교환하며 마스크 속으로 좋아서 입을 오므릴 때였다.
어디선가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방문객인지 직원인지 모를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5살배기 어린 여자아이였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빤히 바라보는 눈빛.
‘뭐, 뭐지.’
‘그러게요?’
이윽고 우리를 집요하게 쳐다보던 애기가 아빠를 툭툭 쳤다.
“아빠.”
“응?”
앙증맞은 손가락이 우리를 가리켰다.
“여기 고냥이 상촌이랑 토끼 상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