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67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할까요?”
“네.”
<미션 싱어>의 박연희 피디님과 악수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대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경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정말 기대가 되네요. 만약 리혁 씨가 우승한다면…….”
내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피디님이 사무실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 주었다.
“이쪽으로.”
밖으로 나오자 선글라스를 쓴 보안요원이 길을 안내해 주었다.
곧장 대기실 문이 보였다.
[가왕 선우주 님]
실없는 웃음이 나오는 팻말을 지나 대기실로 들어섰다.
우리 스탭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리혁이가 돌아왔다.
“어?!”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인다.
아니.
이건…!
“예쁘구나!”
활짝 웃고 있는 해바라기 가면을 쓴 리혁이는 마치 한 송이의 꽃처럼 보였다.
화려한 수트.
꼼지락거릴 때마다 차량 대시보드 위에서 꿈틀대는 새싹 인형처럼 보였다.
[후후후후. 내가 좀 예쁘긴 하죠.]
음성 변조된 목소리로 웃던 리혁이가 꽃받침 포즈를 취했다.
[아아~ 온 세상이 나 ‘가왕 선우주’의 아름다움을 질투하는구나! 나는 정말 아름다워~]
스탭들이 박수를 치며 웃는 동안 나도 같이 웃었다.
나를 따라 하는 것인지 리혁이가 과장스러운 대사를 하며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가왕 선우주가 내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어 내 턱끝을 들어 올렸다.
[어디 보자.]
“응?”
[가엾게도… 못생긴 아이로구나.]
진짜 꿀밤 한 대 꾹 때리고 싶은 얄미움!
박장대소를 하는 스탭들에게 내가 웃으며 물었다.
“저기 근데….”
“?”
“제가 실제로 이러지는 않죠? 안 닮았죠?”
“…….”
뭐지?
왜 아니라고 말 안 해 주는 거지?
* * *
한참이나 깐족대던 가왕 선우주.
딸깍-
리혁이가 가면을 풀면서 본 얼굴이 드러났다.
날카로운 얼굴선을 따라 땀이 성글성글 맺혀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가왕 선우주’로서 깐족대던 모습이라고는 전혀 상상하기 힘든 비주얼이었다.
“후-.”
심호흡을 하는 리혁이가 가면을 내려놓고는 폴싹 소파 위에 주저앉았다.
“아. 힘들어.”
“덥지?”
“장난 아닌데요? 생각보다 앞도 잘 안 보이고, 노래할 때도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원래 실력의 30퍼센트 정도만 발휘할 거 같은 느낌?”
불평을 늘어놓던 리혁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대신 장점이 그 모든 걸 만회하는 느낌이에요.”
“무슨 장점?”
“익명성이요.”
리혁이가 말했다.
“뭔가 가면을 쓰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다른 사람 같긴 하더라.”
“가면 하나 차이가 꽤 크던데요? 맨 얼굴이었으면 하지 못했을 드립 같은 것도 막 나오고.”
리혁이처럼 평소 낯가림이나 부끄러움이 심한 사람들에겐 굉장한 이점인 듯했다.
“특히 나처럼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거 같아요. 캡처해서 표정 하나하나 분석할 사람도 없고, 지금 내 표정이 남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 안 해도 되고.”
“오, 평소에는 그런 고민을 하고 살았구나.”
“네.”
“딱히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캬악!”
귀를 막았다.
아무튼 리혁이의 결론은 간단했다.
“마음에 들어요. 방송 컨셉.”
“다행이네.”
오랜만의 경연 프로그램이라 걱정을 좀 하고 있었다.
우리 애 떨면 어떡하지 하고.
그런데 이렇게 가면을 쓰고 변신한 모습을 보니 걱정을 안 해도 될 거 같다.
“그럼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 너 이따가 녹화하는 동안 나는 잠시 어디 갔다가…….”
“안 돼요…!”
리혁이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아이, 왜 이리 질척거려? 이 정도까지 응원해 줬으면 됐지. 나도 바쁜 사람이야.”
“그래도 혼자 있으면 너무 떨린단 말이에요!”
음성 변조되는 나비넥타이를 든 명탐정 꼬마처럼, 리혁이가 마스크를 들고 애처롭게 말했다.
[우주는 작고 연약해서 도움이 필요해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귀여워서 봐준다. 진짜.”
[내가 귀여워요?? 꺄륵!]
시무룩했다가 금세 발랄해지는 모습에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다시 물었다.
“제가 진짜 이래요? 진짜로?”
“그…….”
“네, 민수 씨. 말해 보세요.”
듬직한 체구의 매니저, 민수 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우주 씨가 실제로 저러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우주 씨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란 게…….”
“결국 닮았다는 뜻이군요.”
“앗, 그…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울치료인가.
가왕 선우주 가면을 들고 깐족거리는 리혁이를 보며 잠시 반성을 하고는 너그럽게 웃었다.
뭐, 복수할 기회는 앞으로 충분히 있으니까.
“뭐예요. 그 꿍꿍이가 있는 표정은?”
“아니야. 아무것도.”
따뜻하게 웃으며 리혁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일단 지금은 열심히 응원이나 해 주려고.”
“?”
그런 말을 하면서 리혁이와 놀아 주었다.
특별하게 따로 응원을 해 주거나 조언을 해 줄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조언이나 전략은 이미 다 같이 결정했으니까.
그저 지금은 새로운 도전을 앞둔 동료의 버팀목이 되어 줄 뿐이었다.
-내 노래 실력을 보여 주고 싶어요.
리혁이가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이 프로그램에 출연을 결정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탑 아이돌.
사람들은 이 자리를 기본적으로 증명된 자리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 없는 최고의 자리.
그런데 리혁이는 지금 다시 도전자의 위치로 내려와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여 줄 거예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단순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이돌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요.
우리에게 붙은 선입견을 깨고 싶다는 결심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돌이라는 꼬리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이돌이면 아이돌인 거지.
예컨대 배우라면 오직 연기력으로만 승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꼭 귀신 들린 연기력이 아니라도 캐릭터에 어울리는 적절한 연기와 비주얼이 있으면 그 또한 좋은 배우 아닌가?
다만….
남들을 감탄하게 할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인식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면?
-ㅋㅋㅋㅋㅋ 아이돌판 보컬 끝판왕 어쩌고 하는데 그래 봐야 아이돌판에서만 통하는 거 아님??
-노래 잘 부르는 ‘아이돌’임. 이거 차이 크다 ㅇㅇ
-아이돌판 최상위권 인정이거든? 근데 일반 가수들이랑 비빈다는 이야기 난 좀 그래
-ㄴㅂㄹ 노래 좋고 실력파인 거 인정. 근데 프로 보컬리스트 수준이라는 건 노양심 아니냐ㅋㅋㅋ
-어따 비벼 진짜ㅋㅋ
-자꾸 명곡단 얘기하는데 15명곡단 때도 노재현 서사빨로 이긴거잖아
-얘네 팬들 보면 3년전 얘기만 함ㅋㅋㅋㅋㅋ 레퍼토리 늘 한결같다
-세계에서 인기 있다 (O)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이다 (X)
만약에 편견 때문에 실력이 빛을 보고 있지 못하다면?
편견을 부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 또한 재미있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재미있을 거 같아요.”
리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게 혼자 있으면 외로워할 우리 메인보컬과 심심풀이로 대기 시간을 때우는 한편.
[후우…….]
오후 2시.
마침내 녹화를 앞둔 리혁이가 모든 의상을 갖춰 입고 일어났다.
[으으으으!]
“이리 와 봐. 우리 애기.”
[뭔 소리예요. 내가 왕지호도 아니고 애기처럼 보여요?]
“내 눈에는 다 아가야. 그리고… 과연 가왕 선우주라면 내 말에 이런 반응을 했을까?”
[앗!]
해바라기 가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꺄륵!]
“다들 말해 보세요. 제가 진짜 이래요??”
“…….”
반성 좀 해야겠군.
스타일리스트들이 리혁이의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테이핑을 해 주고 있는 동안 내가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가기 전에 한 번 안아보자.”
[에잉~ 부끄러운데~]
“컴온, 리틀 우주.”
리혁이랑 가볍게 포옹을 했다.
파르르 떨고 있는 움직임이 진정되는 게 느껴진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포옹을 푼 해바라기 가면 속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 때.
“아 참.”
대기실을 떠나려는 가왕 선우주를 불렀다.
“그리고 가왕 선우주님?”
[네?]
“오늘 제 흉내를 하면서 무슨 멘트를 하시든 상관없어요. 정말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됩니다. 하지만!”
“?”
“김덕순 여사에 대한 멘트는 금지예요. 만약에 그걸 어긴다면, 그 순간 무대에 난입하는 미친 사람을 한 명을 보게 될 것이야. 후후후….”
[…….]
“리멤버. 덕순 이즈 마이이이인…….”
해바라기 가면 속에서 잠시 한심해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 * *
오후 1시 30분.
2시에 시작할 녹화를 앞두고 상암 TBC 공개홀의 객석에 사람들이 꽉 차기 시작했다.
“어머…….”
“신기하다. TV랑 똑같네.”
무대 뒤편의 거대한 LED 스크린에서 라는 로고가 둥둥 떠올라 있었다.
인터컴을 낀 스탭들이 허리춤에 대본을 끼고 뛰어다니고.
제작진이 조정을 할 때마다 조명이 부채처럼 화려하게 펴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저기 연예인들도 있어.”
패널석에 미리 나와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연예인들도 보였다.
유명 예능인, 신인 아이돌, 음악 평론가나 프로 가수 등등.
앞자리의 관객들이 부끄러워하거나 능청맞게 연예인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한편.
[Mission Singer : 오늘의 프로그램]
클래식 프로그램의 소책자처럼 <미션 싱어> 측에서 배부해 준 책자를 펼쳐드는 사람들이었다.
[가왕] 로맨틱 보이스 올리브유 (★3회 우승)
[1] 방앗간 고양이
[2] 명품조연 장조림
[3] 락스타 양말공주
[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로필 사진과 함께 붙어 있는 대진표.
지난 경연에서 1등을 했지만 가왕에게 도전하지 않았던 방앗간 고양이를 포함해 잔류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늘 어떻게 되려나?’
방청객들의 눈이 반짝였다.
<미션 싱어>는 기본적으로 2주에 한 번씩 2회 차 분량을 통으로 찍는 프로그램이었다.
저녁 식사까지 포함해 녹화 시간만 7~8시간.
그런데도 방청을 하러 왔다는 것은 대부분 프로그램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애청자들이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될까?”
“글쎄, 고양이랑 올리브유는 무조건 붙는다고 봐야 되지 않나? 저번 경연만 봐서는 고양이가 가왕 될 삘이었는데.”
지난 경연에서 도전 대신 잔류를 선택한 발라드 가수 독고영이었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우승자 출신.
데뷔한 지 7년이 된 가수로 탄탄한 보컬을 자랑하고 있는 그가 오늘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근데 올리브유도 요새 너무 잘 불러.”
“인정.”
“요즘에 폼 장난 아니게 올랐던데? 나 깜짝 놀랐잖아.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현재의 가왕은 3년차 신인 발라드 가수 유재찬.
지적인 외모에 이른바 여심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보컬이 특징이었다.
최근 들어 드라마 OST 등에서도 활약이 늘어나고, 각종 차트인과 시상식 수상 등 좋은 성적을 보여 주는 인기 가수.
‘실력만 보면 독고영이 쪼금 더 잘 부르는 거 같긴 한데… 뭐 둘 다 잘 부르긴 하니까.’
둘 다 뛰어난 가수였다.
오십보백보 수준의 차이.
그렇기에 오늘 주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컸다.
저번 경연의 경우에는 대부분 달콤한 사랑 노래였기에 유재찬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을 뿐.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오른다]
[고양이 붐은 온다]
[올리브유. 아이 러브 유..♡]
방청을 온 가수의 팬들이나 프로그램 팬들이 그런 슬로건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을 때.
[조림아!! 가왕 가자!!]
[중간이 최고지만 가끔은 위도 좋다 - 장조림 팬 연합회]
[양말공주 화이팅]
장기 잔류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장재림과 인디 그룹 ‘삭스’의 보컬, 체리의 팬들도 슬로건을 흔들었다.
‘오늘도 버텨 보자!’
‘가늘고 길게…!’
가왕급까지 올라갈 만한 실력은 아니지만 좋은 보컬과 캐릭터성으로 인기가 많은 출연자들이었다.
강자들 사이에서 근근이 버티는 소시민적인 참가자들.
저마다 응원을 하던 애청자들이 저번 경연에서 살아남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프로필을 바라보았다.
“근데 앨리스는 누구야? 잘 부르던데.”
“럭키걸인가 거기 보컬이라고 그러던데. 미국 애인데 이름이 앨리래.”
“?”
“Bada bing bada boom~ 그거 부른 걔야.”
“아… 잘하긴 하더라. 오래 보면 좋겠네.”
애청자들이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에 아이돌도 꽤 나오네.’
대중들도 이름을 아는 탑급 아이돌이 아니라면 홍보로서 이만한 게 없긴 했다.
가왕급 실력이 아니더라도 1라운드에서 장기 출연하면 그만큼 인지도에 도움도 되고, 실력파 이미지를 심는 데도 좋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애청자들이 팸플릿을 뒤적였다.
“흐음…….”
“으음.”
지금까지 주어진 정보로만 추론하면 결과는 명확하다.
-두 발라드 가수의 2파전.
지난 경연에서 1위를 거두었던 독고영과 기존 가왕인 발라드 가수 유재찬의 배틀.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대진표로 향했다.
[?] [?] [?] [?]
저번 1라운드 통과자들에게 도전할 새로운 출연자들의 사진 옆으로 [?]가 붙어 있다.
이름만으로도 추정이 가능하기에 사진만 나와 있는 모습.
“음?”
“왜?”
“야, 이거 봐봐. 웬 이상한 꽃이 하나 있는데.”
히죽히죽 웃고 있는 꽃 가면을 가리키는 누군가의 말에 친구가 반응했다.
“엑, 이게 뭐야.”
“해루미 같이 생겼네. 실물로 보면 은근 무서울 거 같은데….”
꽃가면을 쓴 조커 같은 비주얼.
선우주나 좋아하게 생긴 꽃이었다.
“개그맨 아니야?”
“그런가 봐.”
가왕급 가창력을 지닌 가수들은 대체로 진지한 가면을 고르는 편이었다.
그와 달리 화제성을 노리는 예능인들이나 배우들은 임팩트를 위해 독특한 가면을 고르곤 했다.
‘일단 여기는 예능인이고… 워우, 나머지 가면들이 다 비주얼이 범상치가 않네.’
잘생긴 늑대도 있고, 요정도 있고.
그런 가면들을 보면서 애청자들이 설렌 표정을 지었다.
보통 지난번 경연에서 도전을 보류한 출연자가 있다면 다음 경연의 구도는 대체로 ‘저번 도전자 vs 가왕’의 구도가 되곤 했다.
-와신상담 끝에 가왕의 자리를 탈환하느냐! 지키느냐!
하지만 때로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구도가 펼쳐지기도 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출연자가 등장해서 갑자기 가왕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 바로 <미션 싱어>의 진정한 재미.
‘기대된다.’
응원하는 팬이 누구든, 무언가 재미있는 장면을 보길 기대하는 방청객들이었다.
* * *
마침내 시작된 본방송 녹화.
[지금까지 이런 경연은 없었다! 오직 노래를 믿고, 나를 믿고 승부한다! 미션~]
[싱어~!!]
패널들과 방청객들이 다 함께 프로그램의 문구를 외친 후.
레슬링 경기처럼 중계석에 앉아 있는 MC들이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저번 경기 상황 보시겠습니다!]
스포츠 캐스터들의 목소리 속에서 저번 경연의 하이라이트가 흘러나왔다.
새롭게 등장한 출연자가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장면.
[방앗간 고양이의 기세가 아주 무섭죠?]
[정말 대단한 보컬입니다.]
기존 잔류자들이 살아남는 장면.
[아아! 또 살아남았습니다! 장조림!!!]
[정말 오래 먹는 반찬답네요!]
그리고.
우승자인 방앗간 고양이가 도전 포기를 선언하면서 기존 가왕인 올리브유의 단독 무대 장면까지.
오늘 경연의 관전 포인트를 이야기하며 흥겹게 운을 띄우던 MC들이 입을 열었다.
[오늘도 아주 따끈따끈한 참가자들이 준비되어 있죠?]
[맞습니다.]
[정말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렐 만큼 화려한 신규 도전자들이…….]
무대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동안.
가면을 쓴 참가자들은 백스테이지에서 몸을 풀면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
그 속에서 말없이 서 있는 ‘명품조연 장조림.’
평소였으면 촐싹 맞게 웃으며 주변의 흥을 띄웠던 뮤지컬 배우의 시무룩한 모습에 ‘올리브유’ 유재찬이 물었다.
“형.”
“어?”
“오늘 왜 그러세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나도 이제 끝이구나 싶어서…….”
“?”
올리브유 병 가면을 쓴 가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형이 이런 사람이 아닌데?’
누가 나와도 ‘운 좋으면 이기겠지~’ 하며 넉살 좋게 웃던 사람이었는데….
‘1라운드에서 붙는 사람이 좀 많이 빡센가?’
올리브유 가면이 슬쩍 다가갔다.
“누군데요?”
“보면 알아.”
나름대로 가창력이 좋은 참가자를 저렇게 좌절하게 만들 정도라니.
근처에서 말없이 몸만 풀고 있는 고양이 가면을 경계하던 올리브유가 무대로 시선을 던졌다.
[자! 그럼 오늘의 도전자들을 만나 보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문이 치익! 열린다.
짙은 드라이아이스가 깔리면서 다양한 가면을 쓴 출연자들이 등장을 했다.
늑대 가면을 쓴 출연자가 보름달 아래서 빨간 모자를 쓴 댄서들과 둠칫둠칫 율동을 추기도 하고.
“으음…….”
닉네임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정체를 추측하는 중이긴 했지만,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들어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3번째 도전자까지 소개가 끝났을 때.
[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도전자를 소개합니다!]
매캐한 드라이아이스 속에서 홀로 등장하는 인물.
댄서나 소품을 동원했던 다른 가수와 달리 꽃가면은 그냥 저벅저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 망토에 모자를 쓰고 있어 서부의 총잡이 같다.
댕-
댕-
지옥의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
‘…언더테이커 등장씬 같네.’
음산하게 변한 무대 위에서 꽃가면을 쓴 남자가 모자를 벗으며 망토를 풀기 시작했다.
그 어깨 위에 보이는 4인조의 인형.
그리고.
‘이, 이건!’
레슬링 브금처럼 편곡된 동요 <토끼 삼촌>의 멜로디가 음산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방청객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바라본다.
패널석과 방청석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어수선한 소음을 뚫고, 해바라기 가면이 꽃 모양 마이크를 들었다.
[기왕 때릴 거라면 꽃으로 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나온 말이죠.]
‘저 자연스러운 헛소리까지…!’
선우주를 완벽하게 고증해 낸 인물이 한 템포 멈출 때.
타앗-
조명이 갑자기 환하게 바뀌더니.
지금까지 무게를 잡고 있던 인물이 방정맞게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도 있죠. 후훗! 인사드립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 가왕 선우주입니다~ 꺄르르르륵!!]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친!’
‘서리혁이다!’
‘뉴블랙이 왜 여길…?’
방청석과 패널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놀라서 일어나는 가운데.
오늘 경연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가수들이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잠시 멍했다.
하지만 깨달음이 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