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68화
서리혁.
대중들에게도 가창력 좋기로 소문난 뉴블랙의 메인보컬.
하지만….
Q. 과연 서리혁의 보컬이 탑급 수준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체로 대중들도 고개를 갸웃하는 편이었다.
-리혁이? 잘 부르긴 하지.
-아이돌 중에서는 제일 잘 부른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나?
-내 귀에 듣기 좋게 들리면 잘 부르는 거지. 뭐~
엄밀히 말하자면 리혁의 가창력에 대해 잘 모른다는 말이 맞았다.
뉴블랙의 곡 자체가 대부분 이지리스닝에 가깝거나 퍼포먼스 곡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TV 경연 프로에서 고음을 올려 대는 실력파 가수들과 아이돌 콘서트에서 청량한 목소리로 관객을 휘어잡는 미청년은 카테고리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15년도의 명곡단이 있긴 했지만 굳이 그때 영상까지 찾아보는 대중은 드물었다.
우연히 미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보아도….
-잘하네?
-와. 리혁이 진짜 잘 부르는구나.
-대박. 어지간한 가수보다 잘 부르는 거 같은데?
굉장히 잘 부르긴 했지만, 열아홉 살의 서리혁이 보여 줬던 가창력은 그때 출연했던 가수들을 완벽하게 압도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가수로 데뷔했어도 성공했을 애가 아이돌로 갔구나 하는 느낌 정도.
하지만….
업계인들은 경우가 달랐다.
“와…….”
“진짜 리혁이야? 서리혁?”
출연자들이 가면의 관자놀이 부분을 문질렀다.
‘돌겠네.’
‘아니, 쟤가 나오면…….’
리혁의 실력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가수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20등 안에는 못 들어도 30등 안에는 들 거 같다.
랭킹 20위권대라고 하면 솔직히 높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20위 안에 꼽히는 이들은 대부분 보컬 탑으로 꼽히는 괴수들이었다.
보컬 괴물들이 즐비한 70-80년생들.
대표적으로 발라드에는 차우현과 더 문, 연과 같은 가수들이 있고.
락 분야에는 최유진, 백시연 같은 가수들이 있고, 그 외에도 무수한 가수들이 있었다.
서리혁보다 최소 20년 이상 경력이 많은 인물들!
그런 이들을 주르르륵 줄 세우다 20위권 후반대가 되면 리혁의 이름을 슬쩍 올리는 정도였다.
물론 이게 무엇이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20대 아니야?’
‘리혁이가 지금 몇 살이지. 97년생이고… 지금이 18년도니까 스물두 살이네. 미쳤다.’
‘저 나이에…….’
포인트는 바로 리혁이 20대 초반이라는 점이었다.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선배 가수들 곁에서 유일한 20대 가수로 우뚝 서 있는 인물.
차우현이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차우현, “지금 20대 중에 서리혁을 이길 보컬은 없다.. 내가 20대로 돌아가면 모르지만”
발라드의 신으로 꼽히는 인물이 내 후계자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할 정도면 다 말한 것 아니겠는가.
사실 이런 것들까지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실력자라면 누구나 리혁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뉴블랙 콘서트의 솔로 무대 영상만 봐도 바로 보였으니까.
‘기본기가 장난 아니게 탄탄하다. 고음이면 저음이든 상관없이 음 자체가 아예 안 흔들려.’
‘20대가 무슨 실용음악과 교수처럼 불러.’
극한까지 트레이닝한 정석적인 보컬.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 안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문제는 음역대가 남자 가수라고 믿기 힘들 만큼 다채롭다는 거였다.
거기에 압도적인 성량과 귀가 쨍- 할 정도로 청량한 음색까지.
“…….”
“…….”
무대 위에서 잔망을 떨고 있는 ‘가왕 선우주’를 바라보며 가수들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즐거웠다….’
리혁과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될 ‘명품조연 장조림’이 훈훈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일단 1라운드에서 안 만난다.’
‘4강까지 올라가도 리혁 선배님이랑은 안 만나서 다행이야.’
결승까지 올라가지 않는 이상 리혁과 만날 일이 없는 싱어송라이터 체리와 럭키걸의 앨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두 남자의 시선은 복잡했다.
“아…….”
서바이벌 우승자 출신이자 오늘의 유력한 우승후보인 발라드 가수 독고영이 고양이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1라운드에서 이겨도 4강에서 만나잖아!?’
결승까지 여유롭게 갈 거라 생각했던 고양이 가면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리고.
가왕전에서 도전자를 맞이해야 할 발라드 가수 유재찬도 뒷목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곁에 있던 경쟁자 독고영과 눈이 마주쳤다.
“…….”
“…….”
어색한 사이라 서로 꾸벅하는 인사가 오갔다.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기싸움을 펼치던 두 가수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 가면이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 목숨 걸고 불러야 할 거 같은데요. 재찬 씨도, 저도 어지간한 무대로는 쉽지 않을 거예요.”
“진짜 저 목숨 걸고 하려고요.”
“화이팅입니다.”
“네… 선배님도 화이팅입니다. 우리 힘내요.”
서로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응원을 한 가수들이 눈을 빛냈다.
무대 위에서 발랄하게 춤을 추는 가왕 선우주.
‘잘 부르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순 없지.’
오늘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겠다고 다짐하는 가수들이었다.
* * *
참가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리혁이다!”
“야, 미쳤어. 서리혁이야!”
방청객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내가 뉴블랙을 볼 줄이야!’
빌보드와 그래미를 비롯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슈퍼스타이자, 국내에서는 모든 세대에서 사랑 받는 국민 아이돌.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눈앞에 서 있었다.
“와아…….”
다른 참가자들과 패널들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아니.”
한 예능인이 중얼거렸다.
“왜 이런 누추한 프로그램에 가왕 선우주 님 같은 분이…….”
다른 예능인이 타박했다.
“야, 너는 우리 프로가 좀 누추하니?”
“아니에요?”
“좀이 아니고 많이 누추하지! 아이고, 어쩌다 저런 귀한 분이…….”
토끼 삼촌의 율동을 추던 가왕 선우주가 멈춰 서자 질문이 폭주했다.
“어쩌다 출연하신 거예요?!”
가왕 선우주가 능청을 떨었다.
[음… 아무래도 지금까지 너무 미모로만 주목 받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사람들이 자꾸 패셔니스타라고 그러고!]
우우우~ 하는 관객들의 야유.
가왕 선우주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으음~? 이 반응은 뭐죠? 지금 멧 갈라에서 인정받은 패셔니스타인 저 가왕 선우주를 무시하는 건가요?? 제가 전 세계 유명인들에게 인정받은 세기의 패션 스타인데!!]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잘 따라 하네.’
‘선우주인 줄.’
해바라기 가면이 잔망을 떨었다.
[아무튼! 이제 슬슬 노래로도 주목을 좀 받자, 그런 마음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답니다~ 랄랄라라!]
그러면서 가까운 방청석의 커플들이나 중년 세대에게 애교로 어필하는 가왕 선우주.
“리… 우주야!”
“선우주! 선우주!”
어머니들이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해바라기 가면이 다시 방정맞게 손하트를 그리자, 주변에 있던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며 제지했다.
경연 전에 불공정 행위는 금지라는 뜻이었다.
[반칙이라니… 귀여운 것도 반칙인가요!!! 우주는 그냥 귀여운 건데!]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얄밉다.’
‘이건 우주가 멱살 잡으러 와도 인정.’
그렇게 자기소개 코너를 마친 해바라기 가면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완전 잘 따라 하는데? 알고 보면 진짜 우주 아니야? 리혁이인 척하는 우주일 수도 있잖아.”
“야. 체격이 다른데….”
“우주가 몸을 막 부드득 하면서 바꿀 수도 있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체격만 다를 뿐, 누가 봐도 선우주 같은 모습.
관객들이 ‘혹시?’ 하는 시선을 던질 때였다.
촐싹맞게 걸어가던 리혁의 어깨에서 인형 중 하나가 떨어졌다.
[가왕 선우주님!]
중계진이 그를 불렀다.
[인형 떨어뜨리셨습니다.]
[엇!?]
어깨에 붙은 인형들을 다급하게 확인하는 가왕 선우주.
그 누구보다 먼저 리혁 인형을 먼저 확인하고는 비주와 중현 인형을 확인하던 그에게 스탭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왕지호의 인형을 가왕 선우주가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하여간 얘는 인형이어도 말썽이네요. 너그러운 내가 챙겨줘야지~]
[가왕 선우주님? 말투가…?]
[랄랄랄라! 울 귀염둥이 막내 사랑한다~!]
다급하게 수습했지만 잠시 나왔던 서리혁의 현실 말투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말 한마디에서 보이는 왕지호와 애증의 관계.
백 퍼센트 서리혁이었다.
* * *
가왕 선우주의 충격적인 등장이 끝난 후.
도전자들을 맞이하는 기존 출연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림~ 조림 장조오오림~!]
[자취생의 친구~ 엄마의 손맛~ 장조리임~]
간장병 인형탈을 쓴 댄서들과 테마송을 부르는 장조림을 시작으로 출연자들이 등장하면서 환호가 터졌다.
본격적인 녹화의 시작이었다.
[자! 오늘의 대진표입니다!]
중계석에 앉은 캐스터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제 스포츠 경기를 해설하듯 각 가수의 프로필이 뜨면서 해설이 나왔다.
각 출연자의 특기와 관전 포인트 등등.
스포츠 캐스터가 흥을 돋우고, 곁에 앉은 음악 평론가와 보컬 트레이너가 코멘트를 해 주는 등.
듣고 있다 보면 노래에 대한 지식이 넓어지는 듯한 해설에 집중할 때였다.
매니저들의 입회하에 주제곡을 뽑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 여름 』
오늘의 키워드였다.
[이제 곧 7월이 다가오죠? 뜨거운 여름 햇살을 날려줄 시원한 곡도 좋고! 여름 장마철에 느껴지는 축축한 발라드의 감성도 좋습니다. 여름밤의 뜨거운 열기를 다룬 로큰롤도 좋죠!]
[과연 어떤 곡들이 나올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방청객들이 투표 스위치를 만지작거리며 기대감을 품을 때.
[자!]
[그럼 지금부터 <미션 싱어>의 경연 1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아-
방청객들의 환호성 속에 본격적인 경연이 시작됐다.
가면을 쓰고 신경전을 벌이는 참가자들의 VCR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1라운드의 첫 경기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락스타 양말공주 VS 외로운 늑대]
양말 가면을 쓴 인디 보컬 체리가 차분하게 썸머송을 불렀다.
본인의 특기인 작곡 능력을 이용해 유명 걸그룹 걸스온탑의 썸머송 를 편곡한 것이다.
이 밤 지나면
우린 어디 있을까
저 먼 밤하늘
어쩌면 은하수일까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된 차분한 멜로디가 귀를 적셔오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울린다.
‘진짜 오래가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네.’
‘이번에도 편곡 너무 좋다.’
노래 기량은 보통이지만 특유의 편곡과 무대 구성 능력으로 활약 중인 참가자였다.
말 그대로 분위기로 승부하는 타입.
핑크빛 양말 가면을 쓴 가수가 기타 현에 올린 손을 내려놓으면서 노래가 끝났다.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야. 정말 근사한 무대였죠?]
[은하수가 펼쳐지는 듯한 노래였습니다. 원곡은 굉장히 빠른 템포의 썸머송인데 그걸 기가 막히게 편곡을 해 왔네요. 소소한 가사마저 곱씹게 되는 무대입니다.]
[양말공주가 또 ‘니 노래 내 거’ 스킬을 시전했네요! 대단합니다!]
양말공주가 꾸벅 숙이며 무대에서 내려가고, 늑대 가면을 쓴 참가자가 무대로 올라왔다.
노래가 시작되면서 방청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
“!!”
마이크를 든 채 고개를 꺾은 늑대 가면이 하울링을 하듯이 잔잔하게 고음을 올렸다.
무반주 속에서 나오는 후렴구.
그리고 유리 재질 비슷한 가면.
‘조유리다!’
야성적으로 긁으면서도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목소리.
유명 밴드의 보컬로, 대중들 사이에서 독특한 목소리와 창법으로 유명한 가수였다.
그리고 지금은 전설로 꼽히는 명곡단 1기의 출연진이기도 했다.
“와, 오늘 라인업 장난 아니다. 리혁이도 그렇고, 조유리도 그때 명곡단 아니야?”
“출연했었어?”
“맞을걸…? 그때 명곡단.”
안타깝게도 다른 명곡단 1기 출연진에 비교해서는 그 유명세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기도 했다.
사실 조유리 밴드의 유명세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단지 다른 출연자들이 그 이후로 너무 잘나갔을 뿐.
유명 뮤지컬 주연 배우로 활동 중인 리사, 트로트 행사비 1위를 자랑하는 송보형, 솔로 콘서트로 체조 경기장을 채우는 차우현.
그리고 말하면 입이 아픈 수준인 뉴블랙까지.
‘뉴블랙….’
그 단어가 잠시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을 무시하며 조유리가 마이크를 붙잡았다.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감미롭게 휘몰아치는 후렴구.
후회할지라도
그리워할지라도
변치 않을 너와
나의 love story-
전 국민에게 사랑 받는 가요 의 감미로운 고음.
여름철의 뜨거운 사랑을 주제로 한 록발라드의 후렴에 환호성과 탄성이 이어진다.
연예인 패널들도 감탄하며 소곤거렸다.
“이거 누구야? 목소리가 엄청 낯익은데… 입모양으로 말해 봐.”
누군가 입모양으로 ‘조유리’ 하며 말해 주었다.
“아~”
“와, 저분 진짜 잘 부르는 거 같아요.”
“이야, 가왕급이 하나 더 나왔구만. 오늘 살벌하네.”
제대로 칼을 갈고 나온 모습이었다.
명곡단 때도 다른 가수들에게 크게 꿇리지 않았을 만큼 노래를 잘했던 가수이기에 승부는 명확했다.
[외로운 늑대 67]
[락스타 양말공주 33]
1달 넘게 장기 잔류했던 양말공주가 아쉬움 가득한 박수를 치고, 승자인 늑대 가면이 방청객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곤 무대를 내려왔다.
“…….”
늑대 가면 속에 있는 조유리의 시선이 대진표에 붙은 ‘가왕 선우주’에게로 향했다.
만약 그가 결승전까지 올라가게 된다면 만나게 될 상대.
그때 당시에 그와 밴드 멤버들이 무시했던 신인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돌아와 있었다.
‘유명세랑 실력은 다르다는 걸 보여 주지.’
그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 * *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첫 번째 경기가 끝나고.
1라운드의 경기들이 빠르게 진행됐다.
[네! 승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럭키걸의 메인보컬 앨리가 도전자를 아슬아슬하게 물리치고.
[방앗간 고양이의 승리입니다!]
[방앗간 고양이가 아니라 독 오른 고양이라고 해야겠네요. 가면 속으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번 경연에서 가왕에게 도전을 안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이겁니다. 오늘 가왕급 출연자들이 둘이나 더 있거든요. 자칫하면 가왕전 문턱에도 못 가는 겁니다!]
고양이 가면이 독기 가득한 무대를 보여 주며 1라운드에서 압도적인 표차를 기록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세 경기가 끝나고.
이제 1라운드의 마지막 경기만이 남았다.
“와. 나 진짜 설레.”
“나도.”
이제 가왕 선우주와 장조림의 무대가 나올 차례였다.
둘 중 먼저 무대를 보여 준 것은 뮤지컬 배우 장재림이었다.
‘달달하다. 달달해.’
‘조림아! 잘하고 있다!’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을 재해석한 인디 밴드 ‘피터팬과 스트로베리 해적단’의 곡 <꿈>이 흘러나온다.
강력한 상대를 만났지만 이대로 쉽게 떨어질 생각은 없다는 듯.
달콤한 목소리가 여름 밤 아래 펼쳐지는 꿈을 이야기한다.
사랑.
달콤한 과실.
연인들.
부드럽고 몽환적인 안개 속에서 장조림 가면이 후렴을 노래했다.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거랬죠
바보처럼 어리석은-
그게 바로 사랑이니
격정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장조림 가면.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 주는 출연자에게 방청객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마치 고별 무대를 하는 듯한 분위기.
[장조림도 오늘 분위기가 달라요.]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건 보여 주었다, 그런 분위기인데요? 정말 몸을 불살랐습니다. 우리 장조림.]
‘장조림! 장조림!’ 하는 환호 속에서 조용히 내려가는 장조림.
방청객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저렇게 절절하게 부르지? 꼭 떨어질 사람처럼?’
탈락을 예감한 사람처럼 모든 걸 불사르는 모습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뉴블랙의 리혁이 잘 부르기는 하지만, 승부는 해 보기 전까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왕 선우주가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와아아아아아아-!”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는 해바라기 가면이 방청석을 부드럽게 훑고는 가만히 선다.
뉴블랙의 리혁이 과연 무슨 무대를 보여 줄지.
방청객들이 옆사람과 소곤소곤하고, 패널들이 공손한 자세로 수플레들에게 트집 잡히지 않을 준비를 하고, 스탭들이 새 무대 준비를 두고 바쁘게 신호를 교환할 때.
해바라기 가면 속 서리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 * *
그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하는 리더.
“리혁아.”
“네?”
“진짜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너 이거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잘해야 돼.”
“나도 알아요.”
잘해야 되는 이유.
“진짜 어지간히 못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는 표를 많이 받게 되어 있어. 사람들이 우릴 좋아하니까. 정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 실력이 아니라면 올라갈 거야.”
맏형이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나중에 인기 덕분에 올라갔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줘야 돼.”
“알았어요.”
출연을 확정짓자마자 멤버들과 함께 다 같이 모였던 작전 회의였다.
‘그냥 하던 대로 해~’ 하고 말하던 중현과 막내가 다른 형들의 타박을 듣고 찌그러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던 회의에서 유독 인상 깊었던 말이 서리혁의 기억 속으로 떠오른다.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촐싹맞게 다가오던 맏형.
“리혁아.”
“네?”
“혹시 괜찮으면 전략 짜는 거 도와줄까? 내가 너 우승시켜 줄 수 있는데.”
“!”
그래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1라운드에서는…….”
* * *
잠시 상념에 잠겼던 리혁이 눈을 떴다.
그가 제작진에게 신호를 주면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
관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한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여름이었죠
숲속을 헤매이다
듣게 된 목소리
아름다운 속삭임
1세대 인기 걸그룹 출신 가수의 솔로곡이자 많은 사람들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꼽히는 <숲속의 소녀>였다.
누구나 들으면 다 아는 노래.
감미롭게 노래하는 리혁의 귓가로 목소리가 스쳐 간다.
-처음에는 충격 요법으로 가는 거지. 사람들이 네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모르잖아?
맑고 곧게 퍼져 나가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멍하니 벌린다.
-강렬한 첫 인상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바로 피지컬을 부각하는 거야.
-피지컬이요?
-전 국민이 다 알 만한 노래 같은 걸 불러. 사람들이 자주 듣거나 다른 가수들이 커버 곡으로 자주 부르는 노래들. 네 노래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피지컬적인 면을 부각시킬 수 있는 곡을 선곡하는 거지.
누군가의 근사한 미소를 떠올리며 서리혁은 눈을 감았다.
강을 따라 더 빨리
들을 따라 더 높이
시원한 바람 따라
속삭임 쫓아 내달렸어요
지루할 만큼 평화롭고 조용한 농가에 사는 한 소녀.
여름철 숲속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년의 속삭임을 따라 소녀는 즐겁게 뛰어간다.
그리고 숲속에서 목격한다.
아름다운 별무리를.
그 속에서 노래하고 있는 무언가를.
<숲속의 소녀>에서 화자가 무엇을 본 것인지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와…….’
어느새 관객들이 리혁이 부르는 노래에 젖어들었다는 거였다.
푸른 조명이 아름답게 비산하는 가운데.
언젠가부터 입을 멍하니 벌리고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 앞에서 리혁은 조용히 눈을 떴다.
-질문 있어요.
-응?
-그럼 사람들이 놀라고 나면요?
-그때부터는 뭐….
관객들의 놀란 표정과 어딘가의 웃음소리가 교차했다.
-네가 누군지 보여 주는 거지.
뉴블랙의 메인보컬이 조용히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그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