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69화
관객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들었어?”
“뭐야…?”
리혁이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팔뚝을 타고 소름이 쫙 올라왔다.
맑고 시원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올라가는데, 주변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것처럼 시원하다.
방청객들이 웅성거렸다.
‘뭐지?’
‘리혁이가 이 정도였나…?’
서리혁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거야 알고 있다.
‘노래 잘 부르는 아이돌 아세요?’ 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리혁이요!’ 하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이건 완전히 다르잖아!?’
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곡 <숲속의 소녀>.
평소 노래방 애창곡으로 불렀던 노래와 지금 리혁이 부르는 노래는 완벽하게 달랐다.
강을 따라 더 빨리
들을 따라 더 높이
맑고 투명한 목소리.
힘 하나 안 들이고 부드럽게 올라가는 고음.
‘미쳤다….’
‘이게 이런 노래였나?’
아름다운 목소리에 홀린 표정을 짓던 사람들에게 ‘가왕 선우주’가 노래를 불렀다.
시원한 바람 따라
속삭임 쫓아 내달렸어요
내달렸어요- 하는 끝음이 공기 중에 널리 퍼져 나간다.
한 방청객이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와-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다들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냥 잘하는 게 아니잖아!?’
적절한 선곡이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고 있었다.
<숲속의 소녀>는 대중적인 히트곡일 뿐만 아니라 가수들이 자주 커버하는 곡이기도 했다.
연말 무대에서 신인 걸그룹이라면 한 번씩 부르는 노래.
그리고 경연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장점이 청량한 음색이다 싶으면 도전하는 노래.
하지만 지금 리혁이 부르는 <숲속의 소녀>는 지금까지 다른 가수들이 커버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분명 자주 들었던 노래다.
그런데….
‘이건 너무 다른데…?’
가왕 선우주가 부르고 있는 <숲속의 소녀>는 여태까지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이렇게도 부를 수 있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근본적인 기본 스탯 자체가 다르다는 걸 보여 주는 서리혁이었다.
완벽한 호흡에서 나오는 안정성.
최적의 자세와 훈련된 성대에서 나오는 맑고 투명한 발성.
가사 하나하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정확한 발음.
기교 하나 없이 기본기만 보여 주는데도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데뷔 이후 쌓였던 4년간의 무대 경험까지.
국내 시상식의 대상 무대, 주경기장 콘서트, Time 100이나 빌보드 어워드 같은 세계적인 무대의 경험치 등등.
그 나이대에 쌓을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를 다 쌓은 가수의 위엄이 무엇인지, 뉴블랙의 메인보컬이 보여 주고 있었다.
가왕 선우주가 능수능란하게 몸짓을 할 때마다 관객들의 시선이 빨려 들어가듯 집중됐다.
“와…….”
누군가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진짜 대박인 거 알아? 지금 이거 피아노 반주만 있….”
“쉿.”
모두가 노래에 집중했다.
그렇게 피아노 반주 속에서 방청객들을 홀리던 서리혁이 마이크를 서서히 내렸다.
사람들이 목울대를 꿀렁였다.
그리고 찾아온 소리의 공백.
완벽하게 정적이 찾아온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꽃 가면이 장갑을 낀 손을 들었다.
딱-
핑거 스냅.
딱- 딱-
리듬 있게 튕기면서 피아노 소리가 다시 들어오고, 드럼 스네어가 츠츠츠 하며 시동을 건다.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도 즐겁게 웃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방청객들은 자연스럽게 가수의 의도를 알았다.
짝- 짝-
<숲속의 소녀>의 리듬에 맞춰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할 때.
밴드 기타리스트가 청량한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가왕 선우주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들리나요
저 숲의 소리가
난 보여요
그 아름다움이
가수가 손짓을 하면서 관객들의 눈앞에 무언가가 펼쳐진다.
분명 노래를 듣는 것뿐인데도 환상처럼 무언가가 심상에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리혁이 그려내는 자신만의 <숲속의 소녀>.
날 기다리는 숲에
뛰어들었죠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노래 속 화자는 숲속에 뛰어들었는데, 관객들에겐 왠지 바다에 뛰어드는 어린 소년이 떠올랐다.
바다의 소년.
새파란 바다가 펼쳐진 어촌에 살던 순수한 소년이 자신에게 손짓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이내 지평선 너머로 작은 배를 몰고 떠나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새로운 것을 앞둔 설렘.
아직 서투름 가득한 모습.
약간의 열정까지.
세상이여 안녕
내가 왔어요
당신이 부르던
내가 왔어요-
사람들은 가면 속 리혁이 분명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축제의 시간이에요
그러면서 펼쳐지는 영어 후렴구.
결국 자신이 기다리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좋아하는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1절이 지나고 다시 2절.
노래가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관객들은 아쉬움을 느꼈다.
‘더… 조금만 더…….’
‘되감기 하고 싶다.’
음원이었다면 3절이 끝나자마자 다시 1절로 돌아가서 무한 반복하고 싶은 무대였다.
시원한 무대와 달리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그리하여 마침내 가왕 선우주가 끝음을 길게 처리하면서 마이크를 서서히 내려놓았을 때.
“어…….”
홀린 듯이 바라보던 관객들과 가수들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좋은 무대를 보면 환호와 박수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너무나 놀라운 무대를 보았을 때 아무 말이 안 나오는 그런 분위기.
그제야 사람들은 무대를 시작하고 나서 환호성을 한 번도 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관객들은 멋진 무대를 보여 준 가수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돌려주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미션 싱어>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거대한 환호성으로.
* * *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서 연예인들도 같이 박수를 쳤다.
“미쳤다, 미쳤네. 증말.”
“와….”
관객들의 분위기를 눈치챈 연예인들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중계진도 호들갑을 떨었다.
[<숲속의 소녀> 하면 국민가요 아니겠습니까? 그 노래가 이렇게 재탄생을 하네요.]
[너무 좋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고음은 오랜만이에요. 정말 튜닝이 잘 된 악기 소리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리ㅎ… 아니 가왕 선우주 님이 몸에 힘을 싹 빼고 불렀다는 점이거든요. 나는 기본만 보여 준다, 그런 기조인데도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정말 가왕이라는 수식어가 딱이네요! 우아하고 품격 있는…….]
그런 해설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있는 동안, 무대 위로 장조림 가면이 처량하게 걸어 올라왔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래서였구나!’
아까부터 왜 저렇게 ‘난… 이제 끝났구나’ 하는 태도로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일반인들은 잘 몰라도 가수들은 리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래서 우리 조림 씨가 그랬구나.”
“그럴 만했네.”
연예인 패널들이 그런 코멘트를 하고 있을 때.
이제 투표를 해 달라는 중계진의 멘트에 100인의 판정단이 저마다 스위치를 꾹 눌렀다.
[자! 그럼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조명이 번쩍이면서 두 남자에게 내리쬔다.
여유롭게 서 있는 가왕 선우주와 두 손을 모으며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긴장감 가득한 BGM 속에서 두둥! 하며 결과가 발표됐다.
[명품조연 장조림 11]
[가왕 선우주 89]
9대1에 가까운 압도적인 득표차였다.
‘그럴 만했다.’
‘근데 진짜 이건 이럴 만해.’
사람들이 납득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가왕 선우주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방청객들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완벽한 고증이다!’
‘저것이 선우주!’
얼핏 보면 장난스러운 것 같지만 절대 선을 안 넘는 선우주의 성격.
지금 컨셉대로면 ‘훗~ 귀여운 제가 이겼네요~’ 하며 잔망을 떨어야 할 텐데, 갑자기 공손하다.
아무리 가면을 쓴 컨셉이라고 해도 탈락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걸 원천 차단하는 모습이었다.
저것이 가왕의 품격이구나! 하며 감탄하는 방청객들.
‘역시 우주가 공손하긴 해.’
‘그치.’
‘우주가 저래서 정말 좋아.’
너무나 완벽하게 고증을 한 것 때문인지, 차차 리혁이라는 생각을 잊고 ‘가왕 선우주’라는 캐릭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방청객들.
만약 서리혁이 알게 된다면 ‘아니…! 저라구요!’ 하며 슬퍼할 만한 생각이 퍼지고 있을 때.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꾸벅 인사하며 선배 연예인에게 손을 내미는 가왕 선우주였다.
“아니에요. 제가 영광이죠. 리혁 씨….”
“이따가 패자 부활전을 하게 된다면 꼭 붙으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리혁 씨는 정말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시네요. 진짜 우주 씨 같아요.”
“…….”
서로 그런 덕담을 건넨 후.
승자인 가왕 선우주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패배하게 된 장조림 가면이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는 한편.
“아…….”
1라운드를 통과해서 2라운드에서 서리혁과 맞붙게 될 ‘방앗간 고양이’의 대기실.
서바이벌 오디션 출신의 가수 독고영이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쟤를 4강에서 만나라고? 내가 미쳤지. 지난주에 왜 도전을 안 하겠다고 해서…!’
그냥 저번 주에 도전했으면 가왕 자리를 땄을 수도 있는데!
괜히 전략적으로 ‘다음 주를 기약하겠습니다’ 하는 바람에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물론 이미 1라운드를 통과했기에 다음 주에도 가왕전에 도전하면 되긴 하지만….
그때는 아마 서리혁이 가왕이 되어서 후후훗! 하고 있을 터였다.
“그냥 저번 주에 도전하는 거였는데…!”
2라운드에서 리혁과 맞붙게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는 발라드 가수.
그의 매니저가 말없이 가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 *
1라운드에서의 압도적인 승리 후.
리혁이는 이어지는 2라운드에서도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 2라운드의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대기실 TV 화면에 뜨는 숫자.
[가왕 선우주 62]
[방앗간 고양이 38]
6대 4에 가까운 투표 비율.
득표 차이가 예상보다 덜 나긴 했지만, 상대가 서바이벌 오디션 우승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선방한 셈이었다.
“와아아아아!”
“선우주! 선우주!”
모두가 가왕 선우주를 연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괜히 코를 쓱 비비며 웃고 있었다.
뭔가 가왕 선우주라는 브랜드가 런칭에 성공한 기분이다.
내 이름을 연호하는 스탭들에게 내가 훈훈하게 웃으며 ‘거참 부끄럽게…’ 하고 있을 때.
“나 왔어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리혁이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리혁….”
“리혁아?!”
비틀거리는 리혁이.
가면을 벗자마자 땀투성이가 된 얼굴이 드러났다.
“물!”
“여기 물고기가 죽어 가고 있어요! 물!”
탈진해서 못생긴 피라루쿠처럼 변해 버린 아이가 내게 눈을 흘겼다.
내가 물을 주자 예쁜 입술이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며 물을 마셨다.
물 밖에 나와 건조해졌던 물고기가 순식간에 촉촉해지듯이, 리혁이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와, 진짜…….”
“힘들었어?”
“더워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수플레들이 쓰는 대형 부채를 흔들어 주었다.
리혁이가 칭얼대듯 말했다.
“아니, 너무 더운 거 있죠.”
“오~ 그랬오?”
“조명은 내리쬐고 숨은 가빠 오는데 열기가 안 빠져나가는 거예요. 땀은 계속 흘러내리고, 그렇다고 가면 속에 손을 넣어서 닦을 수는 없고. 진짜 한여름인 줄 알았어요.”
“오구오구, 그랬구나.”
좋아하는 고구마 말랭이까지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옴뇸뇸 먹던 리혁이가 헤실헤실 웃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기 취급 흐즈 믈르그.”
“그래그래.”
“캬악!”
쓰다듬으려고 손을 내밀자 상어처럼 깨물려고 하는 리혁이었다.
그러다 힘이 부치는지 소파에 널브러졌다.
“와. 이거 언제 다 하죠? 이제 겨우 절반 했는데.”
“갈 길이 멀다. 그치?”
“진짜 이제 시작이죠. 이 프로그램은 결승전이랑 가왕전이 메인 무대니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TV를 바라보았다.
암전된 화면.
잠시 녹화를 중단하고 쉬는 시간이었다.
방청객들은 TBC 구내식당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출연진들도 휴식을 취하는 시간.
똑똑-
“네~”
노크를 하고 들어온 제작진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를 체크했다.
그러곤 가왕전에 대해 물었다.
“혹시 가왕전까지 올라가신다면 도전하실 건가요?”
“네.”
“감사합니다. 패자 부활전 준비 관련해서 결승전 진출자들 의사를 알아 둬야 해서요.”
“저희 말고 다른 분은요?”
“상대 분도 가왕전에 도전할 거라고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 말을 하던 제작진이 방을 나섰다.
-패자 부활전.
<미션 싱어>는 기본적으로 매 경연에서 4명의 잔류자를 남긴다.
그런데 결승에서 우승한 출연자가 가왕에게 도전을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도전해서 가왕이 되든, 패배해서 탈락하든 간에 4명 중에서 1명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가왕전을 치르기 전에 패자 부활전을 치러서 탈락자들 가운데 1명이 진출시킨다.
민기 형이 혀를 내둘렀다.
“오늘 패자 부활전도 진짜 빡세겠네.”
“네, 확실히….”
실력 있는 장기 잔류자 ‘양말공주’와 ‘장조림’이 모두 탈락해 버리는 이변이 발생했다.
다른 두 탈락자들 또한 범상치 않은 실력이고.
제법 흥미진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주문한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리혁이가 깔끔한 생선구이 도시락을 보며 좋아하고, 나도 고기 도시락에 행복하게 웃고 있을 때.
“근데 말이야.”
민기 형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결승전에 올라온 사람이 그 사람 아냐?”
“아.”
우리가 결승전 대진표를 바라보았다.
[가왕 선우주 VS 외로운 늑대]
민기 형이 나무젓가락으로 가리켰다.
“신기하지 않아? 저 사람을 여기서 또 만났잖아.”
“그러네요. 형이 리사 선배님 앞에서 리사조아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때였죠….”
“야!”
“아. 고기 맛있당.”
매니저의 째려보는 시선을 무시하며 대진표를 바라보았다.
-조유리.
2015년 당시 인기 밴드였던 조유리 밴드의 보컬 조유리.
별로 좋지 않았던 당시의 첫 인상이 떠오른다.
우리가 대기실에 있는 저 밴드에게 인사를 하러 갔더니 무시하며 못 들은 척하고 귀를 긁적였지.
-안녕하세요. 선배님.
-…….
스모키 화장을 한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재킷을 툭 털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선배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한테 쓰는 말 아닌가?
리혁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대체로 누구든 간에 첫 만남은 기억하는 편이라, 아무튼 그때 그랬었지.”
그리고 그 이후로는 딱히 나쁜 기억은 없었다.
우리가 빵 떴으니까.
이후에 몇 번 정도 만날 때는 우릴 보고 멈칫하는 조유리 밴드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곤 했다.
“의외네.”
평소 인터뷰 발언 등을 떠올린 내가 말했다.
“이런 데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평소 발언을 보면, 정색하면서 ‘가면 쓰고 장난이나 치는 예능이라니, 음악이 장난입니까?’ 하는 반응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지금 잘나가는 당신 선배 가수가 나왔는데요?’ 하면 ‘세계 최고의 예능이군요! 하하하하하!’ 하는 타입.
물론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
“음….”
다만 출연 목적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긴 했다.
항상 최신 음악을 들으며 가요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곤 하는데, 조유리 밴드는 최근 2~3년간 부침을 겪는 중이었다.
14, 15년도만 해도 연간차트에 서너 곡을 올렸던 것과 달리 16년도 이후로 급격히 줄어든 모양새.
여전히 각종 뮤직 페스티벌에서 중간 회차의 헤드라이너 급으로 군림하고 있긴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유명세가 꽤 줄어들었다.
물론 밴드의 잘못은 아니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우연히 가수가 추구하는 음악성과 대중들의 음악 취향이 일치해서 크게 터지는 케이스.
15년도의 조유리 밴드가 그랬다.
당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리사 선배와 트로트 가수 송보형 씨, 그리고 라이징 신인으로 불리던 우리를 다 합쳐도 인지도에서 이길 수 없었던 인기 밴드.
하지만 대중들의 취향은 늘 변덕스럽게 이동하기 마련이고.
서서히 대중들의 취향이 바뀌면서 조유리 밴드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매니아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간 상태다.
그러니….
“실력을 보여 주려고 나왔나 보네요.”
“그런 거 같네.”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출연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상대가 하고 있을 생각도 읽힌다.
-어? 서리혁이 있네?
막상 나와 보니까 서리혁이 있다.
놀라운 반전 실력으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아 결승전까지 올라온 서리혁을 자신이 꺾는다면?
일시적이라도 유명세와 함께 여러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예능에서 겸사겸사 썰도 풀 수도 있고.
-유리 씨, 저번에 <미션 싱어>에서 가왕 선우주 씨를 결승전에서 이겼잖아요.
-제가요? 그건 제가 아니고….
-아차차… (패널들의 와하하 웃음. ‘야! 세계관 지켜!’) 아무튼, 늑대 님이 정말 대단한 분과 싸워서 이겼잖아요.
-이겼다는 말은 좀 어색하네요…. 저 스스로는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방청객 분들이 무대를 좋게 봐 주셨을 뿐이고.
-와, 이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거 봐~
-자자, 그런 의미로 그때 경연곡 다시 한번 들어 볼까요?
겸손하게 말하면서 은근하게 ‘내가 서리혁을 이겼다’라고 강조하고 다닐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와 엮이기만 해도 기삿거리가 되는데 심지어 리혁이를 이겼다?
너무나 큰 이득이었다.
정말 눈에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아….”
로드매니저인 민수 씨가 고민이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근데 괜찮을까요?”
“네?”
“진짜 그분 잘 부르더라고요. 아까 2라운드에서도 너무 잘 불렀고… 무엇보다 상대와 실력 차이가 좀 난다고 해도 9대 1로 승리를 했다는 건…….”
상대의 기량에 우리측 매니저가 조금 긴장하는 기색이었다.
리혁이가 관심을 보였다.
“그래요? 나는 무대 못 봤는데.”
바쁘게 이동하느라 다른 가수들의 무대는 못 봤다는 말에 매니저가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2라운드에서 조유리가 블루스 곡을 불러서 럭키걸의 보컬 앨리를 압도적으로 누르는 장면.
“음…….”
리혁이가 그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내 핸드폰이 반짝였다.
비주 [형]
비주 [저희 지금 케이크 가게 왔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단골 케이크 집에서 비주와 중현이, 지호가 짜잔 하고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그리고 주르륵 올라오는 케이크 사진들.
비주 [이중에서 리혁이가 뭐 좋아할 거 같아요?]
나 [애들한테 물어봐]
비주 [둘 다 자기가 먹고 싶은 거 고르려고 해요..]
나 [그렇군..]
리혁이 취향은 저거 같다고 말을 해 준 후.
비주가 물었다.
비주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비주 [플랜 A?? 플랜 B??]
졸개들과 내가 함께 세운 플랜 A와 B였다.
리혁이가 가왕에 등극하고 ‘와아아!’ 하며 다 같이 축하 파티를 하는 게 플랜 A.
리혁이가 혹시 가왕에 등극하지 못한다면 민망해할 리혁이를 위해 졸개들은 모습을 감추고, 나 혼자만 토닥토닥해 주는 플랜 B.
“음…….”
메시지를 보고 있을 때.
조유리 씨의 무대를 본 리혁이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원래 과학자는 100퍼센트라는 말을 쓰지 않는 법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한 거 같아요.”
“?”
“내가 이길 거 같아요.”
진지하게 확신하는 얼굴에 내가 웃으며 메시지를 입력했다.
나 [케이크 가져와]
나 [리혁이 우승할 거 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