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70화
같은 시각.
방청객들은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장장 4시간 가까이 경연 프로 녹화를 했던 방청객들이 뻐근한 목과 어깨를 두드렸다.
“노래는 가수가 부르는데 왜 내가 피곤하냐.”
“그니깐.”
“연예인들도 대단하더라. 어떻게 카메라 앞에 앉아서 이걸 8시간이나 하지?”
뷔페식으로 차려진 TBC 구내식당에서 반찬과 밥을 퍼서 테이블에 둘러앉는 방청객들.
가족 단위로 앉거나 친구들, 혹은 홀로 온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했다.
“으음…….”
“음…….”
사람들은 입가가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진짜 임금님 당나귀 귀가 이런 건가.’
‘미치겠네.’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가가 미친 듯이 간질거렸다.
비밀 유지 서약서를 쓴 것만 아니라면 메신저 단톡방에다가 미친 듯이 톡을 쓰고 싶었다.
-나 서리혁 봤다!!!!!!!!
그냥 길을 가다가 뉴블랙만 봐도 ‘어?!!’ 하면서 일주일 내내 이야깃거리로 써먹을 판인데.
무려 보컬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뉴블랙의 메인보컬을 봤다.
그것도 닉네임은 ‘가왕 선우주’로 해서.
‘이거 진짜 썰 중에서도 특급 썰인데!’
‘이래서 임금님 귀에서 당나귀가 미쳐 버린 거야. 어디다가 말을 못하잖아.’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단순히 뉴블랙이어서만이 아니라 무대에서 느꼈던 그 감정과 기분을 남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그 무대가 얼마나 좋았는지.
“하…….”
누군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입이 너무 간질거려요…….”
울상을 지으며 하는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너어무 얘기하고 싶은데…….”
“참아야죠.”
“그니까. 참아야지, 별수 있나….”
주어를 특정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삼가달라는 부탁이 있기도 했고.
지금도 제작진 몇몇이 근처에서 밥을 먹으며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모든 대화를 검열하는 건 아니었다.
몇 가지 주제는 제작진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예컨대….
“이제 어떻게 될까요?”
결승전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 속삭이듯 물었다.
“완전 비등비등한 거 같은데.”
“그러게요. 누가 이길지 모르겠네.”
누가 이길 거라고 확실히 승패를 말하기 힘들었다.
“너무 잘하더라고. ‘그 사람’도.”
“완전 각 잡고 나왔던데요.”
“근데 그 사람 누구예요? 다들 아는 거 같은데… 아, 그 사람이에요? 어쩐지 익숙하더라.”
유명 밴드의 보컬 조유리.
조유리 밴드라고 하면 대중들도 꽤 알고 있었다.
14~15년도에 음원 차트에 이름을 자주 올리기도 했고, 당시 TV 출연도 꽤 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 노래 잘하는 인디 밴드?
요 정도 이미지였다.
음악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조유리 정도면 나름 탑급이지’ 하고 인정해 주는 보컬이고, 뮤직 페스티벌 등에 자주 놀러가는 사람이라면 ‘어? 헤드라이너가 조유리 밴드네? 좋다!’ 하는 인지도.
그리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지하는 점이 있다면 바로 라이브를 잘한다는 점이었다.
살짝 허스키한 개성적인 보컬.
목을 긁을 때도 거슬림 없이 좋게 들리는 고음.
인상적인 퍼포먼스.
노래에 대한 호불호나 개인의 인성 논란과 별개로 어딜 가든 최상위권의 보컬로 대우 받는 가수였다.
지금도 서리혁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조유리 정도면 가왕 될 만하지’ 하고 납득했을 분위기였다.
그만큼 서리혁의 존재는 이례적이었다.
‘진짜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
곰곰이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가왕급으로 꼽히는 밴드 보컬 옆에서 아이돌 가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일반 대중들이 아이돌 보컬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서리혁의 무대를 본 관객들은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라운드 진짜 미쳤었지.’
2라운드쯤 와서는 조금 적응하긴 했지만 1라운드의 충격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눈앞에 파란 바다가 펼쳐진 느낌이었으니까.
관객들에게 오늘 무대 중에서 제일 좋았던 무대를 고르라고 하면 단연 1위를 차지할 무대였다.
“누가 이기든 이건 취향 차이 아닐까요.”
“진짜… 취향의 영역이네요.”
실력이 엇비슷하니 이제는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방청객들이었다.
다만….
‘조유리가 조금 더 유리하긴 하지.’
실력적으로 보면 리혁이 조금 더 잘하는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조유리가 거침없이 지르는 곡을 고를 수 있는 락 전문 보컬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경연 프로그램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무대가 가능하다는 점.
하지만 그렇다고 조유리가 올라갈 거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또 다른 변수가 있었으니까.
바로 대중적인 이미지였다.
‘조유리 노래 잘하긴 해도 진짜 별로인데.’
‘뭔가 별로….’
포털에서 조유리를 검색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뜨는 개미위키의 ‘조유리/사건사고 및 논란’ 항목을 누르며 눈썹을 찌푸렸다.
여자 관객들을 유심히 스캔했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면 집적거린다는 목격담 혹은 경험담.
명곡단 당시 신인이었던 뉴블랙 무시 논란.
유명 인디 밴드를 겨냥해 실력도 없는데 잘생긴 걸로 인기를 끈다며 뒷담화 등등.
대부분의 대중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호감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와 달리….
‘리혁이.’
‘우리 리혁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국민 아이돌 서리혁.
핸드폰으로 서리혁 보컬 영상을 검색하다가 놀라는 사람들의 눈앞에 뉴블랙 TV의 영상이 떴다.
『“아니? 서리혁이 이렇게 노래를 잘한다고…?!” 라고 놀란 분들을 위한 영상』
…라는 제목의 17년도 영상이었다.
[후후후!]
[이번에 한국 시리즈 애국가 보신 분들~! 많이 놀라셨죠?]
하찮게 웃고 있는 리더와 졸개들.
[리혁이의 보컬 실력,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어떻게 저런 체구에서 저런 성량이 나오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에게 뉴블랙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저희도 신기합니다!]
[모르겠어요! 왜 저렇게 성량이 좋은지!]
[평소에 귀여운 동생에게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런 거 아닐까여?!]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멤버들이 눈가에 길쭉한 검은 막대기를 올린 S모 씨에게 비결을 묻는다.
[노래 잘 부르는 비결이요?]
[네.]
[“별거 없어요. 친구 안 만나고 3년 동안 노래 연습만 하면 이렇게 됩니다~”]
복화술처럼 입을 다물고 하는 리혁의 말에 오! 하고 있을 때.
리혁이 갑자기 우주의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어요?! 아! 진짜 짜증 나!]
[하지만 자연스러웠지? 나의 성대모사?]
[야!]
박장대소하면 자지러지는 비주와 중현이, 지호를 보며 사람들이 훈훈하게 웃었다.
‘우주가 성대모사한 거였군.’
‘진짜 리혁이인 줄 알았어.’
‘얘는 맨날 이상한 것만 잘해.’
따스하게 웃는 사람들의 앞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연습생 시절부터 리혁이 어떻게 발전을 해 왔는지,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하는지.
그리고 멤버들이 자신들의 메인보컬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예뻐하는지.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와 엄마 미소가 지어지는 5인조였다.
‘리혁이 좋아.’
‘리혁이도 정말 뭘 해도 성공했을 거야. 애가 성실한 모범생 같아.’
‘조유리도 잘하긴 하는데… 리혁이가 그거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결승전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비슷했다.
‘리혁이가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지난 4년간 뉴블랙이 차곡차곡 쌓아 온 ‘국민 아이돌’이란 단어가 가진 힘이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후우…….”
리혁이가 가면을 쓰며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
내가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하자, 리혁이가 잠시 자리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달칵.
문이 닫히자 민기 형이 입을 열었다.
“리혁이 완전…….”
“쉿.”
내가 입가에 손을 올렸다.
“?”
그리고 30초 후.
내가 매니저에게 이야기 했다.
“이제 이야기해도 돼요.”
“뭐야?”
“쟤가 워낙 의심이 많잖아요. 가끔 나가고 나서 자기 욕하는 건 아닌가 잠깐 듣고 그래요.”
우리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아까 말하려고 했던 걸 마저 이야기하라고 눈짓하자, 민기 형이 말했다.
“리혁이 완전 긴장했네.”
“이 결승전이 사실상 가왕전이잖아요. 떨릴 만도 하죠.”
지금 가왕인 유재찬 씨도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 결승전에 올라온 사람들과 비교하면 약하다.
누가 올라가든 가왕이 바뀌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우리 스탭 중 하나가 말했다.
“근데 리혁 씨도 어떻게 보면 운이 없네요. 미션 싱어에서 이렇게 험난하게 올라가는 건 처음 봐요.”
“진짜, 2라운드도 가왕급이었잖아.”
“독고영도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두 달 가까이 잔류해 있던 뮤지컬 배우 장재림과의 1라운드.
그리고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가창력 하나로 우승을 차지한 독고영과의 2라운드.
이번 3라운드에는 가왕급 락 보컬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다른 스탭들이 우리 리혁이 고생한다, 하며 동정하는 동안 나와 민기 형은 조용히 웃었다.
‘사실 이게 더 이득인데.’
‘그렇죠.’
리혁이의 가창력을 보여 주기 위해 출연한 프로그램인 만큼, 사실 이 편이 우리에겐 더 좋다.
같은 가왕이어도 쉽게 올라간 가왕과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올라간 가왕은 무게감이 다르니까.
물론 리혁이가 고생을 조금 하겠지만….
[네! 이제 대망의 결승과 가왕전을 남겨 두고 있는 미션 싱어입니다!]
대기실 TV에 다시 현장 화면이 나왔다.
[오랜 녹화에도 즐겁게 반응해 주시는 우리 방청객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리겠습니다!]
연예인 패널들과 무대 위로 올라온 두 가수가 관객들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작은 환호성.
[자! 이제 대망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데, 두 가수의 각오 한 번 들어 볼까요? 먼저 외로운 늑대 씨!]
늑대 가면을 쓴 조유리가 컨셉에 맞춰 진지하게 마이크를 들었다.
[목숨 걸고 무대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하며 나오는 환호성.
이번에는 꽃 마이크를 든 가왕 선우주가 등장했다.
[동생들의 명예를 걸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저의 이름은 가왕 가왕 선우주가 될 거예요.]
닉네임에 ‘가왕’이란 수식어가 붙어서 가왕가왕이 되겠다는 포부.
귀여운 수식어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가왕 선우주가 부끄럽게 몸을 배배 꼬았다.
[엇? 생각해 보니까 부끄럽네요. 가왕가왕이라고 불리게 된다니… 어쩌면 이건 나의 또 다른 흑역사..☆? 꺄륵!]
방청석에서 배를 잡고 웃는 중년 부부의 얼굴이 잡혔다.
박장대소하는 우리 스탭들에게 내가 말했다.
“제발, 제가 평소에 저러지 않는다고 말해 줘요.”
“저러지 않아. 우주야.”
“감사합니다.”
“이제 됐지?”
“네?”
고개를 슥 돌린 민기 형에게 뭐라고 더 물어보려고 할 때.
본격적으로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타자는 조유리.
늑대 가면이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고 서면서 전주가 흘러나왔다.
[와아아-]
3라운드에서 상대가 고른 곡은 바로 <소나기>라는 곡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철 소나기 아래서 연인에게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발라드 곡.
“와. 저걸 골랐네.”
“저거 진짜 어려운데.”
노래방에서 연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부르지만, 대부분 실패한다고 할 만큼 어려운 곡이다.
잘 부르면 멋져 보이지만 잘못 부르면 굉장히 구차해지는 가사 때문이었다.
후렴구에서 고음에 집중하는 곡.
최고음이 3옥타브 솔인데, 보통의 일반인은 고음 파트로 가다가 삑사리를 내면서 꺡~ 하며 분위기가 싸해지는 곡이다.
그리고… 박규호 대표님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꺠애애액!
미러볼 아래서 반짝이던 대표님의 열창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다가 기침이 나왔다.
“흠흠.”
그러곤 전주를 들으며 웃었다.
3옥타브 파.
장시간의 녹화와 두 번의 무대 때문에 성대에 쌓였을 피로를 감안해 두 키 낮춘 모양이다.
베테랑 가수다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바라만 보던 너였어
한 번쯤 그 시선이
내게 오기만을 기다렸어
언젠가는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너는 긴 생머리였고 향기가 좋았다 하는 옛날 감성이 담긴 곡이었다.
잔잔하게 노래를 부르는 늑대 가면의 보컬.
서서히 목을 긁기 시작하면서 고음 파트로 진입하고.
[와아아아-]
문제의 후렴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면서 방청객들이 환호성을 터뜨린다.
연예인 패널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캬~ 하는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늑대 가면이 후렴을 열창한다.
“진짜 잘 부르네….”
“와아…….”
“와, 명곡단 때 그 실력이 그대로네.”
명곡단에서 보여 주었던 그 가창력을 화려하게 펼치는 늑대 가면.
지금 당장 가왕이 쓰는 왕관을 얹어 줘도 위화감이 없는 무대였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스탭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무대기도 했다.
“잘… 하네.”
“어우, 너무 잘하는데…?”
리혁이가 아무리 호감픽이어도 이걸 뒤엎기는 쉽지 않겠다 싶은 무대였으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스탭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제 생각에는….”
“?”
“이 경연, 리혁이가 이겼어요.”
* * *
우레와 같은 박수.
환호성.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늑대 가면이 무대를 내려가고, 우스꽝스러운 꽃 가면이 올라온다.
“와아아아아아-!”
더 커다란 환호 속에 등장하는 가왕 선우주.
결승전의 무게감 때문일까.
무대 위에 서서 말없이 서 있는 리혁을 바라보며 그를 응원하는 방청객들이 손을 모았다.
‘리혁이 화이팅!’
‘리혁아!’
이윽고, 잔잔한 전주가 깔리면서 리혁의 무대가 시작됐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리혁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름철 바다가 배경으로 깔린다.
시리도록 푸른 조명에 눈이 부실 때.
바다를 본 적 없는
아이는
오늘도 바다를 그려
잔잔한 음색으로 부르는 저음의 노래.
호소하듯 짙게 깔리는 목소리에 방청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봤던 청량한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마이크를 든 리혁의 귓가로 스치는 목소리.
-3라운드는 결승전이야. 그때부터는 선곡을 조금 다르게 갈 필요가 있어. 분명 너랑 싸우게 될 상대도 2라운드와는 다른 느낌으로 곡을 들고 올 거거든. 자신의 장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곡으로.
그래서 물었다.
어떤 곡을 고르면 좋겠냐고.
-또 한 번 반전을 주는 거지. 네가 단순히 맑고 청량한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는 걸.
대중들이 서리혁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대체로 ‘청량하고 맑은 보컬’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대중들에게 그의 가창력을 보여 주기 위해 선곡한 노래였다.
저음 파트부터 고음까지 폭넓은 음역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섬세한 감정 전달과 기교가 필요한 곡.
<꿈의 조각>
여성 보컬 중에서 가창력 탑으로 꼽히는 백시연이 부른 곡으로 락과 발라드, 포크가 혼합된 독특한 노래.
잔잔한 저음으로 시작했다가 후렴구에서 웅장한 사운드가 휘몰아치는 노래였다.
어른이 된 화자가 바다를 거닐다가, 어린 시절의 외로웠던 자신을 추억하며 위로하는 노래였다.
-특별히 뭘 할 필요 없어. 리혁아. 그냥 네 실력을 보여 줘.
그 말대로 놀란 관객들이 웅성거린다.
해바라기 가면 속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리혁이 섬세하게 소리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유리 조각으로 섬세하게 탑을 쌓아 올리듯.
감정이 하나하나 쌓인다.
어두운 방
구석진 곳에 남긴
아이는
오늘도 꿈을 꾸고
텅 빈 집에 남겨진 아이의 외로움.
꿈 속에서
아이는 친구와 만나
바다에 있어
상상 속 친구를 그릴 정도로 외로운 마음.
하지만 꿈은 오래가지 못해
아이는
숨 죽여 흐느끼고
리혁이 쌓아 올리는 섬세한 감정이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마음이 아픈 적이 있다.
그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나직한 저음 파트가 관객들에게 부드럽게 다가온다.
관객들은 서서히 노래에 젖어들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네
나는
그렇게
서서히 멜로디가 바뀌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현악기가 고조되기 시작하고, 리혁이 음을 서서히 올리면서 관객들의 눈앞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낯선 땅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워하던 한 아이.
홀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앞길을 찾아가기 위해 애쓰던 아이.
그런 아이가 마침내 좋은 사람들과 만나 어른이 되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빛이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바다에 오게 되었네
마침내 절정.
후렴구에서 가수의 목소리가 폭발하듯 터졌다.
자 여기 바다야
네가 보고 싶어 하던
그 바다야
관객들의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분명 홀로 부르는 것인데도 여러 명이 합창을 하는 것처럼 풍부한 성량이 무대에 휘몰아친다.
관객들은 가면 뒤의 리혁이 울고 있거나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바다가
어른이 된 너에게
그리고
아이였던 나에게
외로웠던 아이가 좋은 사람들과 만나 바다를 거닐며 미소를 짓는 모습이 그려진다.
왠지 그 바닷가에서 다섯 명의 친구들과 불꽃놀이가 지켜볼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밤바다에 대한 노래를 부를 것 같기도 했다.
“와아…….”
1절이 끝나고 멜로디가 다시 고조되는 동안 관객들이 축축해진 눈가를 슬쩍 비볐다.
무언가 묘사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 마음속에서 새록새록 솟을 때.
“…….”
무대 아래서 가왕 선우주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늑대 가면 역시 멍하니 입을 벌렸다.
조유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잘 부르는 건 안다.
명곡단 때보다 더 잘 부르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0년 정도 경력이 된 자신과 이제 막 데뷔 4주년이 된 아이돌을 비교하면 결과는 명확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
지금 귓가로 들려오는 노래와 무대 위에서 손짓하는 리혁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마침 아이에서 어른이 된 노래를 불러서 그런 걸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조유리에게 리혁의 부르는 가사가 귓가로 들려왔다.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그렇게
어른이 되어
활짝 날개를 편 나비처럼 손짓하며 노래하는 해바라기 가면.
마치 그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그 자리에서 멈춰 있을 동안.
나는 마침내 이 자리에 올라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