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74화
남미로 출국하는 날.
새벽부터 일어난 서리혁은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재난가방 다섯 개.’
체크 완료.
‘남반구는 지금 겨울이라서 춥다고 그러던데… 이 정도 코트랑 패딩이면 적당히 대비가 되겠군.’
체크 완료.
‘스킨로션이랑 에센스, 위생용품, 상비약, 여분의 옷… 그리고 별 구경할 때 쓸 천체 망원경까지.’
그리고 하나 더.
‘요것도 챙겨야지.’
리혁이 휴대용 티백들을 잔뜩 챙겼다.
긴장한 목을 풀어 줄 차들이었다.
수플레들 앞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연을 하기 위해서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미션 싱어>의 경연 준비 때문이기도 했다.
‘다음 도전자가 누가 나올지 몰라.’
어떤 사람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기로 결심한 다음 경연이었다.
“좋아. 완벽해.”
최종적으로 짐을 확인한 리혁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다급하게 다시 지퍼를 열었다.
‘제대로 담았나?’
리스트에 적힌 물품을 순차대로, 혹은 역순으로 몇 번씩 점검하며 확인한 리혁이 그제야 캐리어를 텅- 하고 닫았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으음.”
왜 뭔가 개운치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리혁이 고개를 돌렸을 때.
“헉…!”
꽃받침 포즈를 한 채 그를 지켜보는 누군가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리혁이 형~ 굿 모닝~”
‘미쳤나.’
부스스한 머리 아래로 강아지 같은 얼굴이 헤벌쭉 웃는다.
“좋은 아침이에요. 형~”
“?”
리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이제 괜찮다는 거야?”
“넹?”
“어제 너 갑자기 나 피하고 그랬잖아.”
“제가요? 언제요?”
생전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막내.
서리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으아앙! 가까이 오지 마요!’ 하며 그를 피했던 막내였다.
그런데 또 지금은 반응이 다르다.
어제까지는 뭔가를 숨기기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그걸 즐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형, 형.”
“?”
개구쟁이 같은 눈이 반짝인다.
“가왕 선우주가 되고 나서 기분이 어때요?”
“뭐. 실력대로 올라갔다…?”
“만약에 그 자리에 도전할 어마어마한 사람이 나타나면요? 갑자기 막 엄청난 강자가 나타나면…?”
“…….”
별로 달갑지는 않은 상상이라 리혁이 으, 하고 있을 때였다.
“에… 에헷! 으헤헤헷!”
“?”
“가왕 선우주… 으헤헿!”
뭔진 모르겠지만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바닥에 엎어져서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가왕이나 선우주가 웃음 키워드인 모양이었다.
겨우 웃음이 잦아든 막내에게 서리혁이 말을 걸었다.
“가왕?”
“흐하하하핫!”
“선우주?”
“으헤헤헷!”
그의 얼굴만 봐도 웃음을 터뜨리는 막둥이를 바라보며 메인보컬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 * *
연기 잘하긴 무슨.
“가왕?”
“흐헤헤헤!”
“선우주?”
“흐헤헤… 어헉! 헉!”
동생들이 ‘가왕?’ 혹은 ‘선우주?’ 할 때마다 혼자 웃음을 터뜨리면서 뒤집어지는 우리 막내였다.
“내가 진짜 하여튼 쟤한테…….”
비밀 같은 거 이야기하나 봐라.
꼭 무슨 비밀 이야기를 들은 아기들과 반응이 똑같았다.
갑자기 삐걱대고는 몰래 숨어서 엄마아빠 보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몸을 배배 꼬는 아기들.
차이점이라면 아기는 귀엽다는 거다.
그리고.
“저도 귀엽져?”
‘……분하지만 귀엽군.’
우리 막내도 조금은 귀여웠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지호야. 조금 티를 덜 내면 안 되겠니?”
“아니, 근데 리혁이 형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폭탄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순진무구하게 웃는 저 모습 봐요. 제가 웃음이 안 나오겠어요?”
우리 메인보컬이 2주 뒤에 겪게 될 놀라운 상황을 상상하며 벌써부터 웃는 막내였다.
“가왕 선우주~ 가왕 선우주~”
리혁이 주변에서 알짱거리다가 금세 멱살을 붙잡히는 막내를 바라보며 웃을 때였다.
비주가 내 곁에 캐리어를 드르륵 끌고 왔다.
“리혁이가 형 이름으로 가왕이 된 게 지호한테 되게 웃겼나 봐요.”
“그, 그러게.”
“혹시…….”
비주가 물었다.
“저만 모르는 게 있어요. 형?”
“아니.”
“그렇구나.”
살짝 안 믿어 주는 기색이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는 비주였다.
물론 비주에게도 말해 줄 수 있고, 비주도 정말 넷 중에서 비밀을 제일 잘 지키는 편이지만….
그래도 말해 줄 순 없었다.
옛날부터 나는 한 사람만 모르게 하고, 한 사람만 바보 만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아니! 다들 알고 있었으면서 비밀로 한 거예요?!
…같은 상황이 되면 리혁이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럴 때 비주와 중현이가 두둥 하고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도 몰랐어….
-짜잔. 바보 등장.
그렇다.
기왕 바보를 만들 거라면 한 명보다는 세 명이 바보인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어?”
비주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왕 서리혁?!”
“…….”
대뜸 날라 온 말에 내가 포커페이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비주가 아 하며 웃었다.
“형 표정 보니까 아닌가 보네요.”
“당연하지.”
‘국힙원탑 서리혁이니까.’
비주가 머쓱해하면서 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움직였다.
나도 기장님과 인사를 마치고는 비행기 안에 탑승했다.
중현이 옆자리에 벨트를 하고 앉을 때.
“조심, 조심!”
우리 스탭들이 무언가가 담긴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마치 미이라가 담긴 관을 들고 오듯이 조심스러운 동작.
“그거 여기 내려놓고.”
석환 형이 매니저들에게 지시했다.
“얘들아. 이제 그거 비싼 거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예, 팀장님.”
“흔들리지 않게 고정 잘해 둬.”
고오오오…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상자.
저 안에는 아주 귀한 물건이 담겨 있었다.
혹시나 분실했을 때, 꽤 큰 액수의 금액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험까지 든 귀중한 물건.
그것은 바로….
“토삼아, 안녕.”
-…….
“그 안은 어떠니? 불편하진 않니?”
상자에 난 유리창 안으로 활짝 웃는 토끼 인형이 보인다.
외국계 보험사에 어떤 이름으로 등록이 됐더라….
아마 이거였던 것 같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오리지널 엉클 버니.
이번 남미 투어에 우리와 동행하게 될 제6의 멤버, 토삼이었다.
* * *
기본적으로 가치란 것은 사회적으로 정해진다.
지구인들은 어맛! 하는 다이아몬드지만, 외계인들의 행성에선 그냥 돌멩이일 수 있는 것처럼.
그처럼 토삼이도 한때는 평범한 손 인형이었다.
손을 집어넣어서 움직일 수 있는 인형.
하지만….
-‘서준이’ 출연 뉴블랙, ‘토끼 삼촌’과 함께 노래 불러..
예능에 나오면서 토삼이의 인식이 변했다.
그때까지는 근처 마트나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끼 인형1이 갑자기 ‘토삼이’란 유니크한 존재가 된 것이다.
언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예능과 음악 방송에 데리고 다니면서.
그리고.
[헤이! 엉클! 저희 Late Night Show에 인사 한마디 부탁드려요!]
[랄랄랄라~ It’s bunny time이란다!]
[삼촌. 근데 수염 한쪽이 왜 그슬린 건가요?]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단다! 궁금하니? 궁금하면 뉴블랙 TV를 구독하도록 하렴.]
해외 유명 토크쇼들에도 출연하면서 토삼이의 가치가 변했다.
육아 예능에서부터 썼던 토삼이를 계속 사용하면서 여기에 가치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오리지널 토삼이라고.
그 때문인지 나의 SNS나 회사를 통해 연락도 많이 들어왔다.
[웨더비입니다. 경매 출품하실 생각 없으심?]
경매에 매물로 내놓을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해외 경매업체.
[자선단체입니다! 똑똑. 인형 내놓으세요!]
[당신이 인형을 경매에서 판 금액으로 세계에 좋은 일이 더 생긴답니다! 랄랄라라~]
[저희 모금 운동에 토삼이가 동참해 준다면 몹시 감사할 거예요.]
오리지널 토삼이를 팔아서 그 금액을 자기네 단체에 기부하라고 권유하는 자선단체들.
그리고….
[الرجاء كتابة المبلغ المطلوب. (원하는 금액을 써 주시오.)]
[Моя дочь хочет этого кролика. (나의 딸이 그 토끼를 원한다).]
[我想ÂòÍÃÊåÊå。(토끼 삼촌을 사고 싶소이다.)]
정체를 묻지 않는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약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다 거절했다.
하지만 거절하고 나서도 어디선가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등장해서 ‘그래서 토끼는 어디 있지, 우주스키?’ 하며 물어볼 것만 같은 찝찝함이 느껴지는 제안들이었다.
그저 그때마다 동생들과 마주 보며 눈을 깜빡일 뿐.
‘왜?’
‘어째서 인형 하나에…?’
우리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토록 오리지널 토삼이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물건이었다.
“그런 만큼 보험이 필수지.”
석환 형이 씩 웃으며 말했다.
“분실하면 안 되니까.”
“진짜 이러다 누가 막 훔쳐 가는 거 아니에요??”
지호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갑자기 전문적인 털이범들이 등장하면서 텅 빈 상자만 남고… 50년 동안 토끼 삼촌은 사라지는 거죠. 블랙 옥션에서 팔렸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도 토삼이를 찾지 못하는…….”
“그리고 10년 뒤 서프라이즈 등장.”
중현이의 말에 벌써부터 내레이션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토끼 삼촌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 하면서 [Surprise] 하고 도장이 두둥! 찍히는 장면.
석환 형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저었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될 일은 없을 거야. 우리가 따로 보안업체랑 계약하기도 했고.”
우리 TF팀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실제로 인형 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사람은 없을 거야. 토삼이가 무슨 모나리자나 뭉크의 절규도 아니고.”
“그럼 보험은…?”
“그것보다는 사실 노이즈 마케팅에 가깝지.”
“노이즈 마케팅?”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몸에다 보험 드는 거 알지? 자기 다리에 수백억을 든다거나, 엉덩이나 팔에 수십억씩 드는 그런 거랑 비슷해. 실제로 정말 보험금 수령을 노린다기보다는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그런 거지.”
쉽게 말해 ‘토삼이가 이렇게 귀중합니다’ 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가입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홍서영 과장님이 싱글벙글 웃었다.
“아무래도 너희가 남미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잖아?”
“그렇죠.”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여 왔다.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는 사실상 홈그라운드고, 북미 쪽도 지난 1년 넘게 공을 들이고 올림픽과 등을 통해서 머글들에게 ‘아 뉴블랙? 유명하다며’ 정도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남아메리카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전 세계에서 3억 명이 시청했던 올림픽 개막식도 남미 쪽에는 동계 올림픽이라 큰 관심을 받지 못했으니까.
월드컵이라면 모를까, 북미와 유럽이 메달을 휩쓸어 가는 동계 올림픽은 남미의 관심 밖이었다.
“물론 너희를 완전 모르는 것까진 아닐 수도 있어. 작년에 를 냈고, 올해 도 있으니까. 미국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너희 이름을 보고 바로 알 거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망고 차트 100을 다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그게 꼭 대중적인 인지도로 연결되는 건 아니니까.
홍 과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토끼 삼촌의 방문은 남미에서 너희의 대중적인 인지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허공을 바라보며 상상했다.
남미 뉴스에 나오는 소식.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K팝 가수 뉴블랙이 ‘토끼 삼촌’과 함께 남미를 방문합니다!
현재 3억 뷰를 넘어서 4억 뷰까지 바라보고 있는 세계적인 히트곡 <토끼 삼촌>.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번에 인형에 보험까지 들었다는군요!
-보험이요?
-네. 동요에도 나왔던, 오직 하나뿐인 원본 토끼 삼촌이 함께 방문한다고 합니다.
…뭐 이런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 같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발굴된 원본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을 한국에 전시한다고 할 때 느꼈던 그런 설렘이네요.”
“…….”
“그때 너무 신기했는데. 확실히 ‘원본’이란 단어가 주는 묘한 감성이 있어요.”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근데 티라노면 불러 주지.”
“티라노 전시회는 언제 갔어요?”
“나도 데려가지….”
졸개들이 공룡… 하며 슬퍼하는 모습에 TF팀 직원들이 웃었다.
석환 형이 유인물을 나눠 주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남미에서 잡은 TV 프로그램들 스케줄이거든? 간단한 인터뷰 일정들이니까 확인 좀 해 주고….”
부스럭부스럭.
“너는 뭐 해?”
“나?”
노트북을 꺼내 들며 말했다.
“이따가 오버쿡 작업을 해야겠어.”
“?”
“다음에는 남미 사람들한테 토끼 삼촌 말고 오버쿡으로 유명해지도록…….”
석환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기다려라. 뉴토삼.
나 우주선이 간다…!
내가 눈에 불을 켜고 노트북을 준비할 때였다.
“형.”
앞좌석에 앉아 있던 지호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 전에 저 하나 도와줄 게 있어요.”
“뭐…?”
“저 오늘 대본 골라 주기로 했잖아요. 비행기 타고 가는 동안.”
“아, 맞다.”
곧바로 대본을 꺼내서 들이밀려고 하는 막내에게 내가 손을 들어 보였다.
“그, 잠시만.”
“?”
“이륙 좀 하고 나서 도와줄게.”
아 하는 막내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비행기의 이착륙은 조금 어려웠다.
* * *
약간의 식은땀이 흐른 후.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가 일정 고도에 안정적으로 접어들었을 즈음, 다 같이 널찍한 침실에 둘러앉았다.
“자.”
형들이 막내를 둘러싸고 팔짱을 꼈다.
“어디 한번 고해 보거라.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될지.”
“넹.”
지호가 공손하게 용건을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배역이 두 개 정도 되잖아요. 하나는 슬립에 나왔던 허 의경이고.”
또 하나는 지금 넷플러스 드라마로 나온 <신이>의 신이한.
올해 넷플러스의 글로벌 Top 10에 들어갈 거라 예상되는 드라마가 바로 <신이>였다.
대중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한 호평을 기록한 드라마로, 서구권 온라인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신이의 웹 드라마까지 다 봤음. 이제 난 뭘 봐야만 하는 걸까 :(
-첫 에피소드는 진짜 최고인 듯
-레지스탕스 에피소드는 정말 최고야. 잘생긴 남자가 둘이나 나오거든
-시즌3가 전 세계의 호러를 다룰 거라면 스페인을 추천해
-만세!!! 다음 시즌이 나온다!!!!!!!
-올해 코믹콘 코스프레는 신이에 나온 괴물로 할 거야. 경쟁자가 많진 않겠지..?
-이게 재미없다고 하는 호러팬들은 정말 양심이 없는 거다. 나 진짜 진지해. 신이 나오기 전까지 너네 호러판 어땠는지 기억하니?? 시발 아무때나 갑자기 분위기 사탄이었단 말이야
-어리석은 대학생들이 흉가에 들어가지 않는 호러 컨텐츠가 있다고?? 이건 기적이야
지호가 멧 갈라에서 있을 때 배우들이 ‘나 네가 나온 드라마 봤다’ 라고 할 만큼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난 드라마였다.
“근데 <신이>의 다음 시즌은 그게 2020년이나 돼야 나오거든요. 이번에 예산도 거의 1000억 가까이 돼서 프리 프로덕션 기간도 길고, CG 작업 기간 고려하면…….”
그래서 내년에 개봉할 영화를 한 편 찍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기왕이면 좀 대중적인 걸 찍어 보고 싶어요.”
“대중적인 거?”
“네. 제가 나왔던 신이가 19세 미만 관람 불가잖아요. 그래서 무서운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안 보기도 했고… 그, 뭐라구 해야 되지. 암튼 호러는 특성상 마이너한 게 어쩔 수가 없어요. 형.”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인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게 우리 막내의 의사였다.
“오락영화도 좋고… 범죄영화는 아, 범죄영화는 취향이 아니긴 한데, 아무튼 뭔가 좀 대중적인 느낌적인 느낌?”
뭔지 알죠?!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막내에게 우리가 고개를 끄덕일 때.
비주가 손을 들었다.
“나 질문. 그럼 드라마는?”
“드라마는요. 형들.”
“응응.”
“지금의 우리 스케줄로 절대 맞출 수가 없어요….”
“…….”
“제가 들어가면 최소 서브남주 급으로 들어가는 건데, 우리 스케줄로는 병행이 불가능해요. 우주 형이 제일 잘 알걸요. 매주 나가는 시트콤 찍어 봤으니까.”
내가 외계인 가족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주 1회 분인데도 너무 힘들었지.
“아무튼 그런 기준으로 형들이 대본 고르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오키.”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일단 확인했다.
“형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제가 가진 강점이 뭐겠어요.”
“잘생긴 얼굴?”
“귀여운 행동?”
“그리고 약간의 연기력…?”
지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건 바로 형들이 있다는 거죠. 제가 뭔가 놓쳤을 수도 있는 걸 형들은 찾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치.”
“프로 불편러의 서리혁.”
리혁이가 훗 하며 안경을 썼다.
“매번 반대로 맞히는 김중현!”
“끄덕.”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그게 장점인 머글 취향의 김비주!”
“맡겨 줘.”
“그리고 우주 형은 우주 형…!”
“…….”
지호가 씩 웃었다.
“농담이구요. 우주 형은 저랑 같은 연기자로서의 안목을 보여 줄 수 있을 거예요.”
“확인.”
흐뭇하게 웃으며 대본들로 손을 뻗었다.
“그래서 분류가 뭐야?”
“아, 얘네들은 제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따로 둔 애들이고요. 나머지는 보다 만 애들?”
“한 번 놓친 게 있을지 확인해 볼게.”
한국에서 출발하면 경유지에서 한 번 쉬고 가야 할 만큼 거리가 먼 남미였다.
남는 시간 동안 지호한테 들어온 대본들이나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
[탈락]으로 분류된 종이 더미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음?”
다른 대본들과 달리 엄청 얇은 대본이라서 주우려고 하는데….
제목이 좀 익숙하다.
“잠깐만… 이거…….”
뭐지?
이게 왜 탈락 칸에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