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81화 (98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1화

“아.”

“왜 그래. 우주야?”

“아, 좀 양심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양심이 좀 쿡쿡 찔리는 느낌인데요. 나한테도 이런 양심이 남아 있었다니…….”

“리혁이한테 말 안 한 것 때문에?”

“네.”

원석이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혁이 반응 어떨 거 같아요. 형?”

“엄청 심통을 부리겠지. 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제가 막상 애교를 부리면 금방 풀리지 않을까요…? 눈앞에서 제가 하트를 뿅뿅 하는데.”

“아마도…? 리혁이가 마음이 약하긴 하니까.”

그런 대화를 하는 동안 내 얼굴을 붓으로 터치하던 메이크업 쌤이 뺨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그럼 복화술을 쓰면 되죠. 요렇게.”

[안녕! 메이크업 어린이! 토삼이란다. 삼촌이 안 보이지? 삼촌은 지금 영체 상태란다! 랄랄라라…!]

메이크업 쌤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다른 버전도 가능한데 보여 드릴까요?”

흠흠 하면서 목소리를 산신령처럼 바꿨다.

[조상님이다. 로또 번호 받거라….]

다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원석이 형도 한참을 웃다가 말했다.

“오늘 경연은 몰라도 예능 분량은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다. 우주야.”

“진짜 이대로 가면 올해의 예능인 1위 할 거 같죠?”

그렇게 메이크업을 예쁘게 받은 후.

“됐다.”

얼굴을 요모조모 확인하고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미션 싱어>에서는 맨 얼굴을 공개할 만한 일이 적다. 1라운드에서 떨어져야 얼굴을 공개하니까.

하지만 그 외에 한 가지 경우가 더 있다.

-가왕전 진출.

가왕전에 진출해서 가왕에게 패배하면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한다.

“그게 오늘의 목표예요.”

가왕 선우주로 인해서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회차.

여기서 ‘선우주 VS 서리혁’이라는 이른바 뉴블랙 대 뉴블랙의 구도를 만들어서 흥행을 폭발시킨다.

“솔직히 궁금하잖아요. 서리혁이랑 선우주랑 노래로 맞붙었대! 이러면 일단 궁금해지고.”

“그렇긴 하지. 나만 해도 궁금한걸.”

“윈윈이에요. 리혁이는 화제성을 키우고, 저는 저대로 가창력을 재조명 받으면 좋고.”

아무래도 리혁이와 달리 보컬이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나는 딱히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어떤 실력으로 부르느냐 보다는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가?

아무래도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저도 엄청 기대되는 게 있어요.”

“뭔데?”

“평소와는 다른 무대를 할 기회잖아요.”

국힙원탑 서리혁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 비주와 우비즈를 결성하면서 기대했던 점이 무엇인가?

-뉴블랙과는 다른 무대를 할 수 있다.

나름대로 형식이 굳어진 5인조 아이돌 뉴블랙의 무대와 달리 오늘은 색다른 무대를 보여 줄 수 있다.

국힙원탑 서리혁은 사실상 나의 솔로 활동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서 셀링 포인트로 삼을 컨셉도 정했다.

-만약 뉴블랙의 우주가 싱어송라이터로 혼자 데뷔했다면?

…이란 느낌의 무대를 여럿 준비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계속 올라가야 보여 줄 수 있는 거지만요.”

“그치.”

“대진표가 좀 잘 걸려야 할 텐데~”

오늘 내가 붙게 될 인물들의 목록을 쭉 훑어보았다.

1라운드에서는 이 4명 중 한 명과 무조건 만나게 된다.

「외로운 늑대」

리혁이와 결승에서 붙었던 밴드 보컬 조유리.

「명품조연 장조림」

역대급 장기 잔류 기록을 세우고 있는 뮤지컬 배우 장재림.

「방앗간 고양이」

과거 대국민 서바이벌 우승자인 발라드 가수 독고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걸그룹 럭키걸의 메인보컬 앨리.

대진표에 붙어 있는 이름들을 훑어보는 동안 매니저가 물었다.

“1라운드에서 누구를 만나야 쉬울 거 같아?”

“쉬운 상대는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누구를 만나든 이길 수도 있는 거고, 질 수도 있는 거라서. 방심하거나 실수하면 지는 거고, 전략을 잘 짜고 실행하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기는 거죠.”

“맞는 말이네.”

“사실 1라운드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긴 한데… 그 사람이 좀 걸려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얼굴이 쏙 들어왔다.

<미션 싱어>의 박연희 PD님이었다.

“우주 씨! 지금 1라운드 대진표 나왔거든요. 조금 이따가 VCR 촬영 들어가도록 할게용~”

“네. 알겠습니다.”

“화이팅이에요~”

그러고 문이 탁 닫힌다.

FD가 와서 호출할 줄 알았는데 PD님이 직접 와서 호출하는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그만큼 내 출연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자.”

손바닥을 비비며 대기실 탁자에 놓인 가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두루미.

길쭉한 부리에 심술 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루미 가면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후.”

동생의 이미지를 망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두루미 가면을 쓰자 스탭들이 뒤에 붙은 찍찍이 스티커 등을 열심히 고정해 주었다.

“어때?”

“음…….”

와.

벌써부터 갑갑하네.

“이거 생각보다 답답한데요.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거 같고. 리혁이는 어떻게 이 상태로 노래를 불렀지…?”

다시 생각해도 경이로운 우리 애의 가창력이었다.

“쉽지 않네요. 쉽지 않아….”

“우주야. 액세서리.”

“네.”

스탭들의 도움으로 액세서리까지 다 착용한 후.

폭우 속에서 운전하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진 상황에서 스탭들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었다.

전방 10미터 정도만 보이는 느낌.

“자, 이제부터 VCR 촬영하실 거고요. 1라운드에서 리혁 님을 기다리고 계실 참가자에게 도전 멘트 날려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럼 천천히 출발하실게요.”

슬슬 걸음걸이를 바꿨다.

보폭을 조금 좁혀서 총총거리는 듯한 발걸음.

반듯한 정자세.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는 누군가의 모범생 포즈를 따라 하며 소품 책을 끼고 걸어갔다.

조금 걷다 보니 나를 향해 걸어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호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1라운드에서 만나고 싶었던 상대였으니까.

*   *   *

조유리는 아침부터 기분이 언짢았다.

“아씨…….”

다름이 아니라 어제 방송 때문이었다.

결승전에서 서리혁에게 패배하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었으니까.

-와 서리혁 돌았다

-조유리 그냥 압살하네ㅋㅋㅋㅋㅋㅋ

-늑대가면도 잘했는데 리혁이가 솔직히 비교 불가로 잘함

-조유리도 개잘했는데.. 음.. 이건 상대가 넘 나빴다ㅋ

-서사 오졌다.. 명곡단에서는 선배 가수였던 사람을 3년이 지나고 이제 후배가 꺾었네

그가 몸을 파르르 떨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어제 한 차례 집어던진 까닭에 액정이 반쯤 깨져 있었다.

그 위로 ‘ㅋㅋㅋㅋ’가 액정의 실금을 따라 번져 있다.

“아오…!”

그가 주먹을 꼭 쥐었다.

‘진심 가오 상한다.’

저번 경연에서 서리혁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사냥감이었다.

이겼을 때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게 그만큼 많았으니까.

여러 예능에 출연해서 관련 에피소드로 썰을 풀 수도 있고, 화제성 높은 경연에서 실력을 뽐낼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도 적용할 수 있었다.

-가왕 선우주, 늑대가면 꺾고 가왕전 진출

조유리 역시 서리혁에게 있어 맛 좋은 먹잇감이었다.

사람들에게 위치 변화를 각인하는 방법은 바로 승패를 가르는 것이니까.

스포츠에서 강력한 상대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강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까, 보컬 실력자로 소문난 조유리를 서리혁이 꺾은 것이다.

-와 근데 실력 차이 많이 나네

-서리혁 >> 조유리 요런 느낌인가

-와ㅋㅋㅋㅋㅋㅋ 아이돌이 조유리를 이겼네

-리혁이가 가왕 선우주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나

-존나 잘 부르는 거였구나 리혁이..

장기 잔류자이자 실력파인 뮤지컬 배우 장재림.

서바이벌 우승자 출신인 독고영.

그리고 밴드 보컬 중에서 실력자로 손꼽혔던 조유리.

이 셋을 연속으로 이긴 서리혁의 주가는 현재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빠드득-

조유리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저번 경연에서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서리혁이 더 잘 부른다.

그래서 지난 2주간 피를 토하는 각오로 4곡을 연습했다.

‘반드시 올라간다. 올라가서 가왕 선우주를 꺾고 내가 새로운 가왕의 자리에 등극한다.’

그것 빼곤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FD가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예.”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늑대 가면을 쓴 조유리가 대기실을 나섰다.

매니저가 물었다.

“근데 너 메이크업은 안 하냐?”

“노래하는 데 방해만 되지. 형, 머리라는 게 있으면 생각해 봐. 내가 1라운드에서 떨어지겠어?”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윽고 위치에 선 조유리가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내 상대는 누구지?’

어차피 1라운드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가볍게 여기고 있었지만.

‘뭐지. 이 쎄한 느낌은……?’

멀찍이서 어떤 실루엣이 걸어오면서 그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모델인가 싶었다.

그가 본 사람 중에서 저 정도로 비율이 좋은 사람은… 최근에 서리혁 말고 처음이었다.

신이 조각한 비율 같다.

게다가 운동을 엄청 했는지 탄탄한 체격까지.

싸우면 100퍼센트 질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였다.

‘어어?’

늑대 가면 속에서 조유리의 동공이 흔들렸다.

분명 걸음걸이는 하찮게 총총 걸어오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게 어딘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두루미 가면이 그의 앞에서 우뚝 멈췄다.

“?”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두루미가 옆구리에서 주섬주섬 책을 꺼내더니 촤르륵 펼쳐 들었다.

곧 음성 변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늑대. 개과에 속하는 동물. 한자어로는 이리·승냥이와 함께 시랑(豺狼)으로 통칭된다.]

포켓몬 도감을 읽듯이 말하던 두루미가 책을 탁 덮고 날개를 펼쳤다.

악수를 위해 공손하게 손을 내미는 상대방.

[늑대 선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반갑군.]

근엄한 컨셉을 유지하던 조유리가 ‘이건 뭔 컨셉이지?’ 하고 있을 때.

[혹시 랩에 대해 아시나요?]

[음?]

[영혼을 울리는 힙합의 매력, 한 번 빠져 보시지 않겠습니까?]

[어…?]

갑자기 이 미친 두루미가 책을 펼치더니 요상한 랩을 하기 시작했다.

[Yeah, hands in the air~ 내 랩 들으면 넌 빠져나가지 못함~ 내 매력에 헤어나오지 못함~ 난 모든 걸 가차 없이 터뜨려 like a dynamite~!]

주변에서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입술을 꾹 말고 있는 동안, 두루미가 책을 펼친 채 랩을 이어 갔다.

조유리는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두루미가 DJ처럼 CD를 돌리는 손동작을 하며 비트박스를 하기 시작했다.

[붕붕 위끼위끼- 붕붕 위끼위끼-]

음성변조음으로 내는 효과음에 제작진이 눈을 질끈 감고 벽을 바라보며 뺨을 꿈틀거릴 때.

조유리가 컨셉조차 잊고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랩입니다. 선배님.]

그러면서 두루미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누군지 소개하지 않았군요.]

다시 책을 펼치는 두루미.

[난 오늘 Champagne을 들이켤 오늘의 진짜배기 champion~ guess who I am? My name is 서리혁~! a.k.a 피라루쿠!]

[!!!]

[네. ‘국힙원탑 서리혁’입니다. 선배님.]

늑대 가면 속 조유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선우주…!’

또 다른 뉴블랙의 등장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기며 조유리가 헛기침을 했다.

[내 이름은 외로운 늑대.]

[예, 반가워yo.]

[크흡… 콜록! 조, 좋은 승부를 기대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촬영을 마친 조유리가 대기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콩닥콩닥.

‘기회인가?!’

뉴블랙이 등장했다.

상대는 메인보컬인 서리혁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떨어질 것이라 짐작되는 선우주.

하지만….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는 명곡단에서 뉴블랙의 리더와 만날 일이 많았다.

절대 자기 그룹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안 하는 타입.

맑은 눈을 빛내며 막 웃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그런 부류였다.

‘……뭐지? 대체 왜 나온 거지?’

조유리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분명 실력은 내가 위일 텐데…?’

설마 선우주마저 그보다 더 잘할 리는 없었다.

그렇게 믿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감각은 그의 뇌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   *   *

상암 TBC 녹화 스튜디오.

<미션 싱어>의 경연을 앞두고 객석이 붐비고 있었다.

“와…….”

“와아!”

“내가 여기에 오다니…….”

방청객들이 감회에 젖은 얼굴로 스튜디오를 바라보았다.

“우리 몇 대 일이었지?”

“1000대 1은 넘었을걸.”

“와…….”

그랬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방청객들은 최소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여기다 운수를 다 썼구나….”

“그래도 이게 어디야. 지금 다들 오고 싶어 하는데. 어제 방송 나오고 나선 또 난리 났잖아.”

“차트에 다 미싱 노래로 도배됐던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오늘 가왕 선우주를 보기 위해 왔다.

방청객석에서 팸플릿을 받아 든 사람들이 책자에 있는 해바라기 가면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어제 진짜 장난 아니더라. 리혁이.”

“그니까.”

저번 주의 1라운드 때에 비해서는 다소 차분한 반응이긴 했다.

1라운드 무대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2라운드와 3라운드, 가왕전 무대는 한 번 놀랐던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만들었다.

“리혁이가 그렇게까지…….”

잘 부르긴 했지만 그래도 1라운드를 볼 때까지만 해도 뒤의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발라드 가수 독고영은 쉽지 않은 상대.

거기에 또 올라가도 조유리가 버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리혁이가 완전 압도하던데.”

“인정.”

3라운드에서 갑자기 숨겨 두었던 힘을 방출한 것처럼 신들린 노래를 보여 주었던 리혁이었다.

가왕 등극.

아이돌 출신 가수들이 가왕이 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가왕급 가수들을 연달아 뚫고 올라가서 가왕이 된 건 최초였다.

“진짜 뉴블랙 콘서트 가면 라이브 그렇게 쩐다고 말만 들었는데…….”

“그니까. 진작에 콘서트 예매해 보고 그럴걸.”

“그거 팬들 아니면 예매도 안 된대. 팬들 예매하는 거에서 이미 다 끝나 버린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리에서 숨어 있는 몇몇 수플레들이 눈물을 머금었다.

‘망할.’

‘머글들이 또 입덕하는군….’

‘그만해… 우리 자리 없어…….’

그나마 팬클럽이 기수제라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거지.

상시 가입이었다면 티켓팅에서 지옥이 펼쳐졌을지도 몰랐다.

‘떼잉.’

슬픈 표정을 짓던 수플레들이 이내 [가왕 선우주]가 적힌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행복!’

‘행복이다!’

모든 수플레가 부러워할 현장이었다.

나중에 훗날 아이돌계의 역사가 될 현장을 함께 하는 거니까.

서리혁이 가왕 선우주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노래 실력을 뽐내던 바로 그 현장을…!

‘리혁아…!’

‘리혁아. 얼른 나와. 보고 싶다.’

미리부터 [가왕 선우주] 플래카드를 흔드는 수플레들.

그렇게 방청객들이 자리에 앉아 사전 MC의 안내를 듣기도 하고, 연예인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무대 위로 올라온 제작진이 슬레이트를 치면서 본격적인 녹화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이런 경연은 없었다! 오직 노래를 믿고, 나를 믿고 승부한다! 미션~]

[싱어~!!]

연예인 패널들과 방청객들이 프로그램의 캐치프레이즈를 함께 외친 후.

지난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흘러나왔다.

[아! 가왕 선우주의 승리입니다! 늑대 가면을 이기고 가왕전에 진출합니다!]

서리혁이 조유리를 꺾는 장면.

[제43대 가왕! 가왕 선우주입니다!]

[다시 들어도 웃기네요. 가왕가왕 선우주!]

[우리의 왕왕이시죠.]

가왕가왕 선우주라는 이름에 다들 즐거운 웃음을 터뜨릴 때.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중계진이 첫 번째 순서로 오늘의 참가자들을 소개했다.

“와아아아아아-!”

이윽고 하나둘 나오는 참가자들.

가면만으로는 정체를 맞히기 힘든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며 저마다 신기한 퍼포먼스를 보일 때였다.

마지막 네 번째 신규 참가자.

“음?”

“으음??”

갑자기 힙합 BGM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DJ가 쉐낏쉐낏 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무대 위로 댄서들과 가수가 함께 올라온다.

선비처럼 한복 차림에 힙합 금목걸이.

얄팍한 두루미 가면.

“!”

“!!”

그 실루엣을 본 수플레들이 숨이 멎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가왕 선우주] 플래카드에서 손으로 [가왕] 파트를 지우고 [선우주]를 흔들 때.

어깨에 카세트 라디오를 짊어진 댄서들이 춤을 추는 동안 두루미가 책을 펼쳐 들었다.

[A-yo! 소리 질러!]

음성변조된 하찮은 목소리에 방청객들이 일단 ‘와아아아…?’ 하며 호응할 때.

[Let me introduce myself!]

[내 이름은 서리혁, 국힙원탑~ 나의 원래 꿈은 NASA~ 항공우주박사~]

말도 안 되는 라임과 요상한 가사를 내뱉으며 웃음을 자아내는 가수였지만….

방청객들은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

“?”

모두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저거…!”

“저거!”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거 선우주잖아?!’

‘미친?!’

‘시발!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시발, 감사합니다!’

저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진짜 우주가 등장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환호성을 터뜨릴 때.

[…….]

[…….]

무대 아래 백스테이지에 있던 가수들의 시선이 멍하니 서 있는 해바라기 가면에게로 향했다.

[저…….]

말문이 막힌 서리혁이 상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버버 했다.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기억들.

-야! 이름 빌려줬는데 청소 이거밖에 못해? 에휴, 나 군대 생활할 때는 말이야. 행보관 님이 나를 보고 감탄했다 이 말이야.

-근데 나도 나중에 네 이름 써도 돼? 헤헷. 아니 그냥 해 본 말인데… 된다는 거지?

-아이고. 어깨가 뻐근하네. 내가 이름을 빌려준 누군가 내 어깨를 주물러 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무대 위에서 국힙원탑을 자칭하며 춤추는 선우주를 보며 서리혁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

서리혁은 그만 극대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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