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2화
국힙원탑 서리혁의 등장에 모두가 술렁였다.
‘선우주!’
‘우주!’
연예인 패널들이 입을 쩍 벌리며 ‘미쳤는데?!’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와-!”
“야, 진짜 나 평생 쓸 운 다 여기다 썼나 봐. 미친, 지금 나 팔에 소름 돋았어.”
“나도…….”
방청객들이 입가에 손을 올리거나, 같이 온 친구를 팡팡 치며 미쳤다고 하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흥분한 한 중년 남성이 방청석에서 외쳤다.
“우주야!!”
그러자 두루미 가면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니죠.]
‘아니야?’
[저는 국힙원탑 서리혁입니다.]
‘아, 그런 설정이었지…!’
천연덕스러운 자태에 방청객들이 떠들썩한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한 연예인 패널이 다른 아이돌들을 가리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 친구들 봐봐.”
“?”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패널로 나온 아이돌들의 자세 때문이었다.
갓 전입 받은 신병이 각 잡고 앉아 있듯이, 남녀 아이돌들이 긴장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다들 왜 그러고 앉아 있어요?”
“아닙니다. 저희 편한 자세예요.”
가왕 선우주가 출연했을 때와는 완벽하게 다른 반응이었다.
그때는 ‘우와… 리혁 선배님이야!’ 하며 놀라워하거나 기뻐했다면, 지금은 ‘우주 선배님이다…’ 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납득했다.
‘그럴 만해.’
현재 K팝 최고 존엄이 행차해 있었으니까.
망고 연간 차트 1위곡 다수 보유.
빌보드 Hot 100 1위 곡 작곡가이자 로 현재 빌보드 최장기간 1위곡 기록을 갱신한 작곡가.
거기에 절친한 동료들까지 정상에 군림하고 있어서 현 아이돌 판의 최고 권력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물론 당사자는 선한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아무리 회장님이 선량해도 회사 직원들 입장에선 두려운 게 당연한 이치였다.
[음.]
두루미 가면이 책을 펼쳤다.
[어디 보자.]
뾰족한 부리에서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월간소년 민트. 본명은 박하진으로 ‘박하’에서 예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예쁜 춤선으로 유명한 멤버로….]
포켓몬 도감 같은 설명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게스트로 나온 월간소년의 멤버가 눈을 부릅뜨고 놀라는 동안, 국힙원탑 서리혁이 말했다.
[요즘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래 한 소절을 살짝 불러 주며 홍보해 주기까지.
월간소년의 민트가 왈칵 눈물을 쏟을 기세로 감격하는 동안, 두루미는 다른 신인 아이돌들에게도 차례차례 인사를 건넸다.
패널들이 감탄했다.
‘아이돌 계에서 최대 세력을 구축한 이유가 있었군. 저런 정치력이 있어서 그런 거였어…….’
‘저래서 요즘 아이돌들이 다 뉴라인인 거구나.’
‘인생은 선우주처럼.’
그렇게 신인 아이돌들을 순식간에 자신의 팬으로 만든 우주가 후후훗 웃고 있을 때.
패널들이 신이 나서 말을 걸었다.
“왜 나오신 거예요?”
“오늘 출연 목적이 뭔가요?! 서리… 아니, 가왕 선우주를 잡으러 나오신 건가요??”
모두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
두루미 가면이 차분하게 마이크를 들었다.
[예, 저 서리혁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우주 형을… 꺾기 위해 이 자리에 출연했습니다. 솔직히 아무리 선우주가 가왕이라고 해도 노래는 저 서리혁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나오셨잖아요!!”
[예, 특별하게 가왕 타이틀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가왕 선우주에게서 그 타이틀을 뺏어 갈 거거든요.]
우오오오오- 하며 관객들의 함성이 휘몰아쳤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미친… 선우주 VS 서리혁?!’
‘이건 된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수군수군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힐 때.
장난스럽게 자기소개를 마친 선우주가 물러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뒤이어 올라오는 이들에게 향했다.
[조림~ 조림~ 장조오오림~~]
[외로운 늑대입니다.]
저마다 자기소개를 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이 마지막에 올라오는 한 청년에게로 향했다.
허연 스모그가 깔리면서 휘적휘적 망토를 흩날리는 가왕.
그런데….
“?”
“??”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고오오오오오-
어두운 오라를 풍기며 올라오는 가왕 선우주의 모습은 마치…!
파르르-
파르르르르르-
스팸 전화가 걸려온 핸드폰처럼 파르르 진동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사람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몰랐구나!’
‘우주가 나오는 거 몰랐구나!’
빠드득 하면서 이를 악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잔뜩 열이 오른 듯한 가왕이 등장하면서 중계진의 멘트가 울렸다.
[네! 제43대 가왕 가왕 선우주입니다!]
[왕중왕이죠.]
어딘가 부들거리는 모양새로 가왕이 옥좌에 올라앉았다.
의자에 앉자마자 그의 시선이 멀찍이 두루미에게 향했다.
찌릿!
[!!]
그러자 흠칫하며 우물쭈물하는 두루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출연하는 거 얘기 안 했구나!’
하지만 여기서 또 잠잠하면 선우주가 아니었다.
두루미 가면이 곧바로 책을 펼쳐들었다.
[선우주. 지구상 최고의 미남. 세계적인 패셔니스타. 최고의 작곡가. 전 국민이 투표한 성격 제외 이상형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이자, 성격 포함시 13위인 한국 최고의 남자!]
국힙원탑 서리혁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우주 형. 형님을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저 리혁이가 왔어요.]
[저… 저!!]
[리혁이는 우주 형을 제일로 사랑해yo~ Love and peace~!]
왠지 모르게 가면을 썼는데도 해바라기 가면 속에서 눈으로 욕을 하는 것만 같다.
가왕 선우주가 이를 악물었다.
[그으…래. 내가 제일 사랑하는 리혁이가 왔구나……. 빠드득….]
패널들이 물었다.
“서리… 아니, 가왕 선우주 님은 동생이 출연하시는 걸 모르셨나 봐요?”
“얘기 안 하고 나왔네.”
가왕 선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니, 진짜 무슨 사람이 말도 안 하고… 나올 거라면 말을 하든지…….]
애써 침착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두루미 가면이 끼어들었다.
[많이 당황스러우실 거예요. 형]
[…….]
[하지만….]
두루미 가면이 손가락으로 자기 뺨을 콕 찌르는 시늉을 하며 애교를 부렸다.
[반갑죠? 귀엽죠??]
[!!]
열 받아서 몸서리를 치는 가왕 선우주의 모습에 옆에 있는 경호원들이 그를 진정시킨다.
방청객들은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아 진짜 열 받아.’
‘선우주 너무 얄미워. 정말.’
이윽고 출연진들끼리의 꽁트를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참가자들.
호다닥-
두루미 가면이 진짜 두루미처럼 도망치고, 해바라기 가면이 총총 따라가는 모습에 사람들이 다시 한번 웃었다.
‘아, 진짜 궁금하다.’
무대 아래에서 어떤 대화가 오갈지 정말 궁금했다.
* * *
바닥이 보인다.
음.
TBC 상암 사옥은 정말 깔끔하구나. 바닥이 맨들맨들해.
“…….”
“…….”
바닥을 보다가 고개를 슬쩍 들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삼각형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왕지호가 일주일 전부터 가왕 선우주 이야기 들릴 때마다 웃기 시작하고, 오늘도 갑자기 따라와서 잘해 주고 그래서…….”
“죄송합니다.”
“나올 거면 나온다고 말을 해 줘야지. 이 사람아!!”
“면목 없습니다.”
바닥을 바라보며 반성하는 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개를 슬쩍 들어 올리자, 아까보다는 살짝 기분이 풀린 리혁이의 얼굴이 보였다.
내 얼굴을 본 리혁이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 근데 또 생각하니까 열 받네.”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컨셉을 잡으면 가왕 서리혁 이런 걸로 잡아야지. 국힙원탑 서리혁이 뭐예요. 국힙원탑이 뭐냐고!!”
“그, 그게 재미있으니깐….”
“동생 이미지를 아주 망쳐 버리겠다고 작정했어. 이 사람이.”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왕 선우주라는 이름으로 출연을 해서 온갖 이상한 멘트를…….”
“…….”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던지 리혁이가 수긍했다.
“뭐,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죠.”
‘지한테 불리한 얘기니까 넘어가네…….’
“방금 속으로 욕했죠?”
“아닌데요.”
모른 척하며 뻔뻔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리혁이가 한숨을 쉬었다.
음. 조금 풀렸군.
조금씩 리혁이에게 다가갔다.
“형이 미리 말을 안 한 건 미안해. 근데…….”
“근데?”
“이러는 게 좀 더 재미있잖아. 솔직히 웃겼지?”
“캬아아아악!”
다시 거리를 벌렸다.
리혁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거리를 조정한 후.
“미안해.”
“나 깜짝 놀라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알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생일 선물이 뭐예요?”
“유사과학 서적이요.”
“그… 그것도 맞지만, 서프라이즈를 제일 싫어한다고요. 나 멘탈 관리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진짜 형이 돼 가지고, 동생 놀려먹을 생각만 가득하고….”
서운함을 토로하는 모습에 내가 슬쩍 거리를 좁혔다.
“미안.”
“미안하면 뭐 해 줄 건데요.”
“뭐든 다 들어 줄게.”
거리를 살짝 더 좁혔다.
리혁이에게 다가갈 때는 갈매기를 붙잡는다는 느낌으로 다가가야 한다.
갈매기에게 빠르게 다가가면 푸드득 하고 날아가 버리지만, 서서히 다가가면 붙잡을 수 있다.
“나 솔로곡 써 줘요.”
“알았어.”
“왕지호보다 먼저 써 줘야 해요.”
“꼭 그럴게. 널 위해 최고의 곡을 써 줄게.”
“그럼 새끼손가락….”
“약~속~”
솔로곡을 써 준다는 약속을 하면서 리혁이에게 슬쩍 다가가서 토닥토닥해 주었다.
퀘스트 완료.
눈앞에 [서리혁 님과의 적대 관계가 해소되었습니다] 하는 문구가 떠오르는 듯했다.
“뭐….”
리혁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 안 해 준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왜 나온 건지는 알겠어요. 날 위해서 나와 준 거 아니에요.”
“응.”
날카로운 눈이 내게 향했다.
“결승전까지 올라와서 나랑 가왕전에서 붙으려는 거죠? 선우주 vs 서리혁 구도로 시청률 터뜨리려고.”
“일단 목표는 그래.”
“으음… 나는 어째 좀 불안한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지난 2주 동안 철저하게 전략을 짜서 왔거든. 어떤 경우에도 이길 수 있도록….”
“그게 아니에요.”
“?”
리혁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계획대로 안 흘러갈 것 같아서 그런 거지.”
“무슨 소리야?”
“가왕전까지 올라오는 거야 계획대로 된다고 쳐요.”
“응.”
“그런데 지금 나랑 붙어서 떨어질 걸 가정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의문을 표하는 나에게 리혁이가 말했다.
“혹시 가왕전에서 내가 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요.”
“무슨 소리야. 리혁아. 엄연히 너랑 나 사이에는 격차가 있는 법인데, 형이 널 어떻게 이기니?”
“…….”
“왜 그런 표정으로…?”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리혁이가 아무렴 어떠냐는 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풀었다.
“뭐. 상관없어요. 오늘 가왕전에서 나도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부를 거니까. 같은 멤버가 아니라 나의 적수라는 생각으로 무대를 할 거예요. 그러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걸요?”
“그…래. 그렇게 해.”
“나 지금부터 감정 잡아야 되니까 이만 나가 봐요. 그리고 가왕전까지는 얼굴 안 봤으면 해요. 얼굴 보면 마음 약해지니까.”
‘여기 내 방인데.’
나 대신 민기 형이 말했다.
“리혁아.”
“네.”
“여기 우주 대기실이야.”
“캬아악!”
분노한 고양이처럼 대기실을 나서는 리혁이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녹화.
1라운드의 경기들이 이어지는 동안 방청객들의 평은 비슷했다.
‘장기 잔류자들은 다 이유가 있구나.’
신규 참가자들이 기존 잔류자들에게 밀려서 연달아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1라운드 첫 번째 경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약간 아슬아슬했어요!]
1라운드 1경기에서 럭키걸의 메인보컬 앨리가 유명 싱어송라이터와의 대결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고.
[명품조연 장조림,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데요? 지금 굉장히 흐름을 타고 있어요.]
2경기에서 장조림 가면이 노래 잘 부르는 걸로 유명한 배우와 붙어 가볍게 승리를 거두고.
[와… 정말 명승부였습니다.]
[제일 아슬아슬했어요. 방앗간 고양이가 4표 차이로 2라운드에 진출합니다!]
[이건 취향 차이로 봐야겠네요.]
3경기에서는 서바이벌 우승자 출신인 발라드 가수 독고영이 여성 락보컬 허희진과의 경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말 그대로 취향 차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투표 결과를 확인한 방청객들이 안타까움의 탄성을 터뜨렸다.
“와….”
“아니 대진표가 어떻게 저렇게 나오냐. 거의 우승 후보끼리….”
“진짜 랜덤이긴 한가 봐.”
“이따가 패자부활전 하면 꼭 부활했으면 좋겠다. 너무 아쉬워. 허희진도 가왕 급인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자, 잠시 후 1라운드 4경기가 시작됩니다!]
전광판에 두 남자의 모습이 ‘VS’를 사이에 두고 떠올랐다.
[외로운 늑대]
[국힙원탑 서리혁]
모두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방금 전 락 보컬 허희진과 독고영의 경기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었다.
‘아, 이거 우주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저번 경연의 결승전 진출자이자 서리혁에게 안타깝게 패배했던 조유리.
오늘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누가 가왕 선우주와 붙을 거 같나요?’ 라고 하면 대부분 조유리를 뽑을 정도.
“으음…….”
“으으음…….”
마음 같아서는 좋아하는 우주를 뽑아주고 싶지만, 그래도 경연이니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방청객들의 생각이었다.
‘아, 근데 진짜 어려울 텐데.’
‘조유리가 리혁이한테나 진 거지,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사실 지금 관객들이 느끼는 이 불안감의 정체는 그들이 우주의 노래 실력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우주 노래 잘해?”
“모르겠네….”
대중들에게 주로 유명한 것은 작곡가로서의 이미지나 예능적인 이미지.
그때 누군가 말했다.
“근데 우주도 엄청 잘하는 거 아닌가?”
“응?”
“아니, 리혁이가 그렇게 잘 부르는데 우주가 넘버 투라며. 그런데 못 부른다는 생각이 한 번도 안 들었거든.”
“그렇긴 한데 뉴블랙 노래는 그룹 노래잖아. 거기서는 리혁이도 경연에서처럼 막 지르고 그러는 게 아니니까.”
“음. 그것도 그러네.”
우주의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두고 방청객들이 수군수군하면서 토론을 이어 가는 한편.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이거 알고 보면 우주가 아니고 지호 아니야?”
“!”
“!!”
설득력 있는 가설, 이른바 ‘국힙원탑 서리혁 = 지호’ 설이 등장했다.
“지호 연기 엄청 잘하잖아.”
넷플러스 드라마 <신이>로 굉장한 연기력을 펼쳤던 왕지호.
“지호가 우주인 척하면서, 국힙원탑 서리혁을 연기하는 걸 수도 있어. 이따 정체를 공개했는데 지호가 딱 등장하는 거지.”
“…설득력이 있는데??”
“우주랑 지호 둘이 체격도 비슷하잖아.”
리혁이나 비주 같은 경우는 키가 비슷해도 뭔가 느낌의 차이가 존재했다.
비주는 동작 하나하나가 사뿐사뿐하며 춤을 추는 느낌이라면, 리혁은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
그와 달리 지호와 우주는 키와 체격 면에서 굉장히 흡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던 옆사람이 끼어들었다.
“알고 보면 김중현 이런 거 아니에요?”
“오…!”
“아니에요. 중현이는 연기가 안 돼서 아닐 거예요. 키도 우주랑 지호보다는 약간 크고…….”
그리고 김중현 특유의 슬림하면서도 다부진 느낌이 있었다.
근육이 아니라 돌덩이 같은 느낌.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방청객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야야, 저기서 어떤 사람이 이거 우주 아니고 지호 아니냐고 그러는데?”
“와, 소름… 일리 있는데?”
물론, 수플레들은 속으로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뭔 소리야. 100퍼센트 우주인데.’
키가 비슷하다고는 하나 엄연히 실루엣부터가 느낌이 다른 둘이다.
하지만 왜 방청객들이 지호 설에 솔깃해하는지는 이해가 갔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
도대체 왜 우주가 나온 것인지 일반 방청객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실익이 없어 보이니까.
가만히 있으면 서리혁의 활약으로 ‘저 옆에서 보컬 넘버 투인 우주도 대단하겠구나’ 하고 날로 먹을 수 있을 텐데, 굳이 나와서 패배라도 하면 괜히 이미지만 구기지 않겠는가.
그와 달리 만약에 저게 지호라고 치면 납득이 간다.
보컬보다는 연기 멤버로 인식되는 지호는 우주와 달리 <미션 싱어> 출연에 따른 리스크가 적다.
예능으로 웃음도 잡고, 나름대로 출중한 보컬 실력을 선보이면서 재조명도 받고.
‘뭐. 그건 이 사람들 생각이고…….’
수플레들은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멤버들이 리더를 믿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가수를 믿었다.
리더가 어떠한 활동을 할 때는 다 계획이 있다는, 지난 4년을 거치며 굳어진 신뢰였다.
[네! 그럼 1라운드 마지막 경기, 그 순서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정한 경기를 위해 추첨으로 순서를 정한다.
동전 튕기기를 해서 앞면을 고른 우주가 앞 순서에 걸렸다.
“아…….”
“아이고.”
방청객들이 탄식하고, 조유리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서 쾌재를 불렀다.
‘이겼다!’
선우주가 무슨 곡을 부르든 간에, 그가 뒤에서 더 엄청난 곡을 부르면 덮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국힙원탑 서리혁이 방청객들에게 새침하게 손을 흔들었다.
긴장감 따위 1도 없는 분위기.
그와 달리 관객들이 복잡한 시선으로 무대 위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한편.
“……?”
옥좌 위에서 무대를 바라보던 가왕 선우주, 서리혁의 눈이 신나게 내려가는 조유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닐 텐데.’
저번 경연에서 압도적으로 가왕에 등극한 그도 지금 긴장 중인데, 왜 저기서 긴장을 풀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의 머릿속에 이번 경연이 끝나고 쏟아진 질문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왜 보컬 연습을 피나도록 하는 거예요?
인터뷰에서야 적절하게 말을 둘러대지만 그가 연습을 하는 이유 중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리혁아아아아아!!
-으아아아! 그만 따라오라고!!
-형 이제 노래 잘 부르지?! 어떠니?!
-오지 마!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조금 쉬려고 하면 미친 사람이 독기를 품고 뒤따라 붙고 있었다.
그걸 떨쳐 내고, 또 떨쳐 내고 하다 보니 더욱더 보컬 연습에 매진하게 된 것도 있었다.
‘사람들이 저 형 실력을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아마 깜짝 놀라게 될 터였다.
그리고….
상대가 지닌 것 중에서 보컬 실력보다 더 무서운 점이 하나 있으니.
-우주 형은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 같아요. 진짜. 울 아빠가 그러는데 우주 형은 절대 적으로 안 만나고 싶다고.
언젠가 막내가 했던 말처럼 선우주는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온갖 전략과 술수를 다 써서라도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아, 머리야…….”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서리혁이 가면 틈새로 손을 넣어 뒷목을 주물주물할 때.
“이제 시작하나 봐.”
“오, 시작한다.”
밴드의 세팅이 끝나고 무대 준비가 끝난 후.
방청객들이 눈을 깜빡였다.
‘음?’
‘으음?’
방금 전까지 코믹하게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국힙원탑 서리혁이 제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지금까지의 웃겼던 장면들은 전부 다 연막이었던 것처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관객들이 침을 꿀꺽 삼킬 때.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지며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시작한다….’
‘왜 내가 다 떨리지.’
마침내 두루미 가면이 마이크를 들면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