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83화 (98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3화

잔잔한 기타 연주.

오래된 라디오처럼 아날로그 감성을 풍기는 연주에 중년 관객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 노래는…….’

80년대 후반의 인기 포크송, 김세학의 <꽃 피우는 봄>이었다.

당시 대학가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주를 하면서 흥얼거리던 노래.

‘꽃 피우는 그대는 봄처럼 아름다웠어라’ 하는 후렴구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나이가 있는 연예인 패널들이나 가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어우…….”

“어려운 노래 고르셨네.”

“저거 진짜 어렵거든.”

그 말에 게스트 패널로 나온 월간소년의 민트가 박하색 머리카락을 넘기며 속삭였다.

“저게 왜 어려운 곡인가요?”

“곡 전반에 기타 반주만 들어가거든. 나머지 빈 사운드를 가수가 자기 목소리로 커버해야 되는 노래야.”

쉽게 말해 신나는 드럼 연주나, 다양한 악기의 도움 없이 가수가 자기 목소리 하나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하는 곡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원곡 가수인 김세학의 쩌렁쩌렁한 성량과 독특한 음색이 매력 포인트인 곡이었다.

‘저 어려운 곡을…….’

‘우주야. 힘내.’

연예인 패널들과 방청객들의 시선이 쏟아진 가운데.

푸르른 조명 아래서 두루미 가면이 조용히 서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눈을 감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계절이 지나고

올해도 세월이 쌓여 가네

두루미 가면이 마이크를 들면서 관객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울림이 가득한 목소리.

메아리 퍼지듯 번지는 중저음의 음색에 관객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잘한다!’

‘와, 무슨 음색이…….’

연예인 패널들이 입을 가리고, 관객들이 몰입한 얼굴로 쳐다보는 동안.

통기타 소리에 가수의 목소리가 얽혀든다.

눈 내린 광화문 거리

나는 그 앞을 걷고 있네

음유시인처럼 무대를 적시는 목소리에 중년 관객들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멜로디가 가랑비처럼 젖어들어 온다.

젊었을 적 듣던 노래들이 그러하듯, 그냥 멜로디만 듣고 있어도 눈시울을 살짝 붉히게 되는 노래였다.

바쁘게 살아와

돌이켜 볼 틈이 적었어

앞만 보고 달려와야만

그래야만 했지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의 노래 속에서 보컬의 목소리가 얇아지면서 섬세한 감정 표현을 더했다.

다시 돌아온 광화문 거리

나는 문득

꽃 한 송이를 보았네

<꽃 피우는 봄>은 화자가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였다.

지금은 나이가 든 화자가 젊은 시절에 자주 다녔던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념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꽃 한 송이를 발견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남자는 생각에 잠긴다.

그의 곁을 지나가는 활기 가득한 젊은이들과 학생들, 예쁘게 핀 꽃을 바라보면서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변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나 역시도 아름다웠을까?

그리하여 남자는 오래된 기억들을 들추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기억들

설렘, 기쁨, 슬픔

겨울인 줄 알았던

그때는 봄이었네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스럽게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

처음에는 평가하듯 지켜보던 관객들도 이제는 완전히 젖어들어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목소리가 점점 바뀌어 간다.

‘와… 창법이 실시간으로 바뀌네.’

한 가수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방금 전까지 노회한 가수처럼 부르던 우주의 목소리가 점점 젊어진다.

노래의 가사에 맞춰가는 것이다.

같은 중저음이어도 왠지 모르게 젊은 시절의 화자가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고조되는 노래에 맞춰, 가수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폭발하듯 커져 갔다.

걸음 하나 추억이 되고

웃음 하나 아름다웠던

너- 역시 아름다웠던

그때의 나와 그대는

낮고 길게, 객석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는 가수의 음성.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짜르르- 하는 감각과 함께 팔에 소름이 돋으면서 관객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

“!!”

그렇게 목소리를 크게 고조시켰을 때.

두루미 가면을 쓴 가수가 시의 마지막 구절을 부르듯 속삭였다.

꽃 피우는 그대는

봄처럼 아름다웠어라

가면을 쓰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너머로 상대가 예쁘게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절과 2절 사이의 연주.

어쿠스틱 기타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국힙원탑 서리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건…….’

경연에 출연한 참가자가 아니라 새로이 데뷔하는 신인 싱어송라이터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옛 노래를 자기 노래처럼 소화하는 역량 때문일까.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 때문일까.

객석 전체를 울리는 막대한 성량 때문일까.

방청객들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패널들 중에 몇몇 가수들은 그 원인을 파악했다.

그것은 바로 편곡이었다.

‘편곡이…….’

‘편곡이 미쳤군.’

80년대의 곡을 2018년의 노래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근사하게 탈바꿈했다.

그렇다고 해서 원곡을 제 마음대로 바꿔 버린 것도 아니었다.

원곡의 매력도 살리면서, 본인의 매력도 부각시키는 편곡.

‘와…….’

‘이걸 어떻게 이런 식으로 편곡한 거지??’

나중에 방송이 나왔을 때 한 번 제대로 들으면서 분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수들이었다.

그동안 2절의 무대가 이어진다.

마르고 앙상한 가지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는 그저

꽃이 아님을 슬퍼했지

<꽃 피우는 봄>이란 노래는 단순히 ‘젊은 시절의 나 역시도 아름다웠구나’ 하며 끝나는 곡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점차적으로 주제 의식이 바뀌는 곡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아름답지 않은가?

오직 젊음만이 아름다움의 가치인가?

화자는 그것에 대해 아니라고 답한다.

젊음을 상징하는 ‘꽃’만이 아름다움이 아님을.

오래된 고궁(古宮)이 고즈넉한 미를 자랑하듯,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의 풍경이나 겨울철 눈이 쌓인 소나무의 모습이 감동을 선사하듯.

꽃은 졌지만 여전히 나는 아름답다며 자신을 긍정하는 노래였다.

꽃잎은 분분히 졌지만

굳세게 버텨 온

그대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호소하듯 들려오고.

원곡 가수 김세학이 당시 울적해하는 부인을 위해 썼다는 곡의 멜로디가 30년의 세월을 넘어 들려왔다.

한참 어린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오는 그 감성.

정말이지….

‘따뜻하다.’

…라는 감성을 주는 노래였다.

너는 여전히 아름답다는 가사를 들으며 중년 관객들이 괜스레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촉촉이 빛내고.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새끼손가락으로 눈가를 슬쩍 훑는 관객들의 모습이 하나둘 카메라에 잡힌다.

그렇게 모두가 노래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야…….”

“하이고.”

“일 났네. 일 났어.”

대기실 TV 화면으로 무대를 지켜보던 가수들은 저마다 뒷목을 주무를 뿐이었다.

‘진짜 상대하기 까다롭네.’

역대 최고의 난적이 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근 ‘양말공주’라는 닉네임으로 장기 잔류했던 인디 그룹 삭스(Socks)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체리가 떠올랐다.

살짝 부족한 보컬을 출중한 편곡으로 커버했던 가수.

“체리 씨보다 편곡이 더한데?”

“저거… 편곡 본인이 다 한 거 같지? 너무 세련됐는데. 김세학 선생님 노래인데 꼭 자기 노래 부르는 거 같잖아.”

“하…….”

물론 편곡만 잘한다면 까다로울지언정 승산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보컬 실력도 출중하다는 거였다.

“나는 우주 씨가 저렇게 잘 부르는지 처음 알았어.”

“저 그룹엔 뭔 괴물이 둘이나 있나….”

보컬 실력을 주목 받지 못한 것은 리혁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선우주보다 잘 부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4강에서 이겨도 결승전까지 올라가면 만나겠는데…….’

장조림 가면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아, 진짜 선생님 잠시만요. 내가 그래도 서바이벌 우승자인데 이건 좀 아니잖아…!!’

4강에서 선우주를 만나게 되는 발라드 가수 독고영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솔직히 보컬로만 붙어도 6대 4로 질 것 같았다.

다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메인보컬만 잘해야지, 왜…….’

‘그래도 화제성을 챙기는 거니까 기뻐하자. 조림아. 히힛… 자기합리화 성공!’

그렇게 각자 머릿속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그릴 때.

한 가수가 매니저에게 말했다.

“우주는 솔로로 데뷔했어도 주경기장 갔을 거 같은데?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갔을 거 같아.”

“그니까요.”

“얘… 진짜 장난 아니야.”

빼어난 가창력과 작곡 능력뿐만이 아니라 스타성 또한 겸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

“무대 장악력이 대박인데? 애가 무슨 인생 2회 차처럼 불러.”

“겪은 게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데뷔 전 스토리 그런 거 보니까 뭐가 막 우여곡절이 많던데.”

“하긴….”

“근데 보면 진짜 뭔가 달라요. 감정의 깊이나 폭이…….”

국민 아이돌이 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지게 된 선우주의 과거사였다.

7살 생일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대형 기획사에서 6년간의 고된 연습생 생활을 버티며 준비한 아이돌이란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음대를 가기 위해 2년간 군대에서 준비한 수능은 어느 노인을 구하다가 무산되어 버리고.

‘어으…….’

‘나였으면 맨정신으로 못 버텼지.’

‘애가 참 단단해.’

결국 뉴블랙이라는 꽃을 피워 내서 아름다워졌지만, 그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뉴블랙의 리더였다.

그 때문일까.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 같았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 때로는 아름답게 꽃잎을 흩날리고, 때로는 푸르게 무성한 이파리를 자랑하고, 혹은 쓸쓸한 나뭇가지를 바람에 흔들기도 하고.

“와…….”

이윽고 무대 위에서 <꽃 피는 봄>이란 청춘예찬을 마친 두루미 가면이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마치 가면이 그런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내 노래 어땠어요?

그에 답하듯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으주야아아! 아니, 리혁아아아아!”

“국힙! 원탑!”

모두 느끼고 있었다.

‘가왕이다.’

‘이거 진짜 가왕급이다.’

새로운 가왕급 가수가 등장했다는 것을.

그리고.

“하… 시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음 순서인 조유리는 이미 탈락했다는 것을.

*   *   *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 마이크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덥다.

숨이 찬다.

“…….”

왜 리혁이가 가면 속에서 노래 부르는 게 그렇게 힘들다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느낌이었다.

목소리를 낼 때마다 습기가 안 빠져나가고 가면 속으로 올라가 땀이 성글성글 맺혔다.

거기에 내리 쬐는 조명이 열을 더하고.

3분 40초짜리 곡을 끝냈을 즈음에는 이미 나는 왕만두처럼 바짝 익어 있었다.

그래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국힙! 국힙!”

기분은 좋았다.

열광적으로 소리치는 방청객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특히나 중년이나 노년 관객들이 물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기분이 행복했다.

“됐다.”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 경연의 주제는 ‘청춘.’

그리고 첫 번째 곡인 <꽃 피우는 봄>을 듣게 될 청자로 설정한 인물은 우리 할머니였다.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비슷한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촉촉하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같이 포근해진다.

“국힙! 국힙!”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무대를 내려갔다.

음.

승패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이기지 않을까.

내가 1라운드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모든 걸 쏟아붓는다’였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내가 1라운드에서 지는 건 쉽지 않았다.

[…….]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백스테이지에서 올라오기 위해 대기 중인 늑대 가면과 눈이 마주쳤다.

음성변조 장치를 켜고는 인사했다.

[좋은 무대 기대할게요. 선배님.]

[…….]

상대는 말없이 나를 스쳐 올라갔다.

관객들이 박수를 쳐 주는 가운데, 등을 돌려서 잠시 뒤를 바라보았다.

조유리의 등이 아니라 그 너머 옥좌에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 가면에게.

[가왕 선우주 님. 제가 갈게요..☆]

주변에서 듣던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모르게 눈이 마주친 해바라기 가면이 욕을 하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   *   *

무대 위에서 필살기를 시전하는 조유리.

3옥타브를 넘어선 고음을 뽑아내는 락 보컬의 무대에 사람들이 ‘와-’ 하며 탄성을 터뜨린다.

“흐음…….”

옥좌 위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던 서리혁이 가면 속에서 흥미가 식은 표정을 지었다.

가면을 써서 표정 관리를 안 해도 되는 게 참 편했다.

‘떨어졌네.’

조유리가 자신의 필살기인 고음까지 시전했지만 ‘와-’ 하며 신기해하는 반응이 다였다.

‘저 사람도 페이스를 잃었어.’

조유리가 1라운드에 고른 곡은 <청춘 만화>라는 곡이었다.

고등학교 밴드 보컬이 좋아하는 짝사랑에게 고백하는 듯한 분위기의 맑고 청량한 곡이었다.

본래였다면 1라운드에 적합한 곡이었다.

-적당히 가벼우면서, 사람들에게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곡.

문제는 선우주가 3라운드에서 쓸 법한 곡을 들고 와 버렸다.

보통 결승전에서 쓰는 곡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그런 곡들이었다.

그리고 선우주가 노린 대로 사람들은 잔뜩 눈물에 젖었다.

“…….”

서리혁의 귓가에 누군가 해 준 조언이 들려온다.

-리혁아. 경연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노래 실력만 투표를 하는 게 아니야. 자신의 감정을 가장 많이 움직인 노래에 투표를 하는 거야. 강한 상대가 나올 때는 그런 부분을 노려야 돼. 특히나….

-특히나?

-만약 운 좋게 앞순서가 걸리면 더욱더 효과적이지.

-왜요?

상대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한 번 울고 나면 두 번째에선 잘 안 울거든. 어지간해선 쉽지 않아.

서리혁이 봤을 때, 이건 처음부터 끝난 싸움이긴 했다.

‘저 정도까지 발전했을 줄은…….’

맏형의 노래를 한 소절 듣자마자 알았다.

자신과 가왕전에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냥 똑같이 가창력으로만 1대1로 붙었어도 조유리와의 승부에서 충분히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치사하긴 하네.’

개그 캐릭터로 컨셉을 잡은 다음에 실력을 뽐내서 반전까지 노린 미치광이 두루미.

게다가 저 두루미가 뾰봉 하며 미친 편곡을 하더니….

사람들을 잔뜩 울려 대는 감동의 선곡까지 해 오면서 1라운드를 박살 내 버렸다.

솔직히 평소처럼 가볍게 1라운드 선곡을 해 온 조유리 입장에서는 저절로 욕이 나왔을 것이다.

저걸 뭔 수로 뒤집어엎나.

워어어어어어어-

워어어어어-

조유리가 지금 무대 위에서 필사적으로 고음을 내지르며 후렴을 부르는 이유가 바로 저거였다.

가벼운 선곡으로는 뒤엎을 수 없으니 자꾸 기술이 들어가는 것이다.

조유리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산뜻한 청춘 만화 분위기의 곡에는 저렇게 고음을 내지르는 것이 안 어울린다는 것을.

하지만 뒤엎을 방법이 없으니 저렇게라도 용을 쓰는 거였다.

[네! 외로운 늑대의 무대였습니다.]

[마치 질풍노도의 청춘 만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였네요.]

해설진의 코멘트가 이어진 후.

1라운드의 투표가 시작됐다.

[네! 1라운드 4경기!]

[외로운 늑대와 국힙원탑 서리혁 중에서 과연 누가 더 득표를 많이 했을지……!]

무대 위로 올라온 두 가수가 조용히 선다.

긴박한 BGM이 흘러나오더니… 이윽고 전광판에 점수가 표시됐다.

[국힙원탑 서리혁 93]

[외로운 늑대 7]

압도적인 득표율이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곧바로 조유리가 무대를 내려가고,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던 국힙원탑 서리혁이 감사의 소감을 전했다.

“흐음….”

서리혁이 뾰족하게 웃었다.

뭐.

그래도 맏형이 이기니 기분이 좋긴 했다.

[Yeah, swag-]

뿌뿌뿌- 하며 자체적으로 BGM을 넣는 국힙원탑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국힙원탑, 아무도 날 막지 못해~ Hey! 가왕~! Song king!]

‘나?’

[옥좌 위에서 자리나 덥혀~ 거기 내가 앉을 자리니까~☆]

[…….]

[가왕? Do you hear me? 내가 간다yo~ 오늘 너의 노래는 슴슴~ 오늘밤 너의 꿈자리는 뒤숭숭~!]

[…….]

[붕붕- 위끼위끼-]

서리혁이란 이름을 달고 이상한 랩을 하는 모습에 해바라기 가면 속 서리혁이 파르르 떨었다.

관객들이 ‘이야~’ 하면서 뿌뿌뿌- 하고 호응해 주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나쁜 인간…!’

가왕 선우주가 조용히 파르르 떨고 있는 동안, 중계진이 짓궂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지금 멘트는 가왕에게 도전하겠다는 도전장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오오! 가왕님! 우리 가왕가왕님은 의견이 어떠신가요?]

[뭐.]

가왕 선우주로서 마이크를 들었다.

[가소롭습니다.]

오오오오~ 하며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리혁이 주먹을 꼭 쥐었다.

‘반격 성공!’

그러자 두루미 가면이 아련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도 알고 있어요.]

[?]

[역시 저 서리혁이 선우주를 이기는 건 어렵겠죠?]

[!!]

사람들이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음… 쉽지 않죠. 서리혁이 선우주를 이긴다는 게……. 아무래도 서리혁은 선우주에게 안 되는…….]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주 형이 저를 가소롭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요! 역시 저 서리혁은 선우주에게 매번 지기만 하는 팔자인가 봐요. 아아! 슬퍼라…! 너무 슬퍼~]

[아니, 잠깐만….]

[역시 서리혁은 선우주에게 안 되는 건가 봐요…! 흑흑!]

세뇌하듯이 아련하게 반복하던 선우주가 서리혁에게 틈을 주지 않고 백스테이지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가운데.

‘아, 진짜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서리혁은 원통함에 옥좌 팔걸이를 팡팡 내려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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