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4화
"아, 재미있어라~"
가면을 벗으며 즐겁게 웃었다.
맏형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바로 동생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것이다.
쾅쾅쾅-
잠긴 문이 덜컹였다.
-문 열어! 당장!
문밖에서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우리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문으로 다가갔다.
"문 열면 달려들 거잖아요. 서리혁 씨."
-안 달려들게요. 안 달려들 테니까 일단 문 좀 열어 봐요. 얘기가 좀 하고 싶어서 그래.
"싫어. 우주 무서워. 안 열어 줄 꼬야."
-캬아-! 으으음….
캬아아악- 하려던 리혁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진다.
고개를 갸웃하는 스탭들에게 내가 말했다.
"지금 리혁이 근처에 사람 돌아다니는 거예요. 갑자기 근엄한 척하면서 서 있는 거죠."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지나가는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는지 리혁이가 캬아악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해바라기 가면을 쓴 리혁이가 내게 뛰어들었다.
"이… 이……!"
가면을 벗은 리혁이가 손을 들어 내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찰싹!
찰싹!
"아야! 아야-!"
잔뜩 땀에 젖은 등짝이 따가웠다.
"야야! 형 노래 불러야 돼!"
"노래 부르는 거랑 등짝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건 그렇긴 한데… 아얏! 아야야!"
"그렇게 놀려 대니까 좋아요?! 진짜 이 괘씸한……!"
솔직히 잘못한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그냥 조금 맞았다.
어차피 리혁이 체력이야 훤하다.
예상대로 한 대여섯 번 등짝을 팡팡 맞고 나니, 리혁이가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다.
"후우……."
"화는 좀 풀렸니, 우리 동생…?"
"쪼금요. 쪼금."
날카로운 얼굴이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연만 아니면 몇 대 더 때려 주는 건데."
"이미 충분히 맞은 거 같아. 어유, 쓰라려라."
"하나도 안 아픈 거 다 알아요. 근육이라 내 손이 더 아프더라. 대체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한 거예요?"
"중현이 할 때 따라서 같이 했지."
"그런 스케줄에 운동할 시간은 또 언제 나서… 아니다. 됐다. 이런 얘기 해 봐야 입만 아프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리혁이가 대기실 소파에 풀썩 앉았다.
그러고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축하해요."
"?"
"1라운드 통과한 거요. 오늘 참가자들 중에서 제일 힘든 상대였을 텐데."
"쉽진 않았지."
조유리가 쓴 늑대 가면이 떠오른다.
4년 전과 달리 이제는 내가 가창력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됐지만, 그래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특히 내가 1라운드에서 만나기를 희망했던 이유는 조유리가 2라운드나 3라운드에서 만나면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락 음악을 주력으로 하는 가수니까.
"락은 진짜 경연에서 사기야."
대체로 같은 실력이면 발라드보다 락이 경연에서 더 유리하다.
특유의 지르는 후렴부터 시작해서 노래에 임팩트를 주기 쉽기 때문이다.
상대가 1라운드에서 가벼운 락을 들고 와서 그렇지, 2라운드나 3라운드에서 빵 터지는 곡을 들고 와서 만났다면 93대 7이란 표차까지는 얻지 못했을 것 같다.
한 7대 3정도였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쾅-
어느 대기실인가 문을 굉장히 세게 닫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혁이가 픽 웃었다.
"저기인가 보네요."
"그러게."
소리가 들려온 위치로 보니 아마 조유리의 대기실인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웃었다.
"어쨌든… 잘 됐어."
"네?"
"별일 아니야. 신경 안 써도 돼."
이따가 패자부활전에서 또 살아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안 보고 싶었던 상대라서.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뭔가 저 사람에게서 쎄한 느낌이 느껴졌으니까.
묘하게 리혁이에게 앙심을 품은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뭐, 그렇다고 상대가 리혁이에게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위험 요소를 리혁이 근처에 두는 게 좀 껄끄러웠다.
"그나저나……."
리혁이가 다리를 꼬고는 물었다.
"괜찮겠어요?"
"응?"
"지금 1라운드에서 모든 걸 쏟아부었잖아요. 밑천을 다 보여 줬으니 2라운드나 3라운드 가서는 좀 힘들 수도 있을 텐데……."
"괜찮아. 어차피 전략이기도 해서."
"전략이요?"
"응. 전략."
내가 리혁이에게 설명했다.
"이번에 <미션 싱어>에 나와서 부르고 싶은 곡들 중 많은 수가 그런 분위기더라고. 청춘에 관한 신나는 곡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불리할 거 같은 거야."
나는 신나고 경쾌한 곡을 들고 왔는데 상대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노래를 들고 온다면?
"그래서 선제공격을 한 거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곡으로요?"
"응."
1라운드의 <꽃 피우는 봄>은 그런 판단에서 나온 선곡이었다.
-일단 내가 먼저 관객들의 눈물샘을 공략하자.
남이 울리기 전에 내가 먼저 울리면 되는 것 아닌가?
"누구든 한 번 크게 울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잘 안 울거든.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대체로 그래."
영화에서도 신파가 나오는 장면이 꼭 후반부에 배치되는 이유가 다 있다.
초중반에 그런 장면들이 나와 관객들이 잔뜩 울고 나면 그 뒤에는 잘 안 울게 될 테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극에 무뎌진다.
"경쟁자를 견제하는 거네요. 2라운드나 3라운드에서 상대가 감동적인 노래를 들고 와도 효과가 약하도록."
"그보다는 내 핸디캡을 없앤 거지. 상대가 진지한 노래를 들고 나왔다고 해서 내가 선곡으로 불이익을 보는 일이 없도록 한 거야. 내가 더 잘 불렀는데 감동에서 밀리면 속상하잖아."
내 말에 리혁이가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진짜 독하다. 독해."
"어디 가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는 준비해야 되는 거야. 리혁아."
"하긴…."
그 말을 하던 리혁이가 걱정 어린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근데 진짜 괜찮겠어요?"
"응?"
"아니, 1라운드 노래가 너무 세서 2라운드부터는 형… 노래를 좀 심심하다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까 말한 전략도 솔직히 양날의 칼 아닌가. 1라운드에서 너무 크게 임팩트를 주면 불리한 건 상대방뿐만이 아니잖아요."
1라운드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이어지는 후속 무대에 관객들의 호응이 덜하지 않겠냐는 걱정이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왜요?"
"아까 그랬지? 1라운드에서 밑천 다 보여 줘서 이제 2라운드나 3라운드 가면 어떡하냐고?"
"그랬죠."
"걱정하지 마."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 아직 다 안 보여 줬거든."
* * *
이어지는 2라운드 경연.
[네! 4강 첫 번째 경기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대 명품조연 장조림의 싸움이죠?]
뮤지컬 배우 장재림과 럭키걸의 메인보컬 앨리가 4강 첫 번째 경기에서 맞붙었다.
그야말로 접전이라고 할 만한 피 튀기는 승부 끝에 마침내 승자가 발표됐다.
[명품조연 장조림 5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41]
결과가 발표되자 장조림 가면이 무릎을 꿇고 환호했다.
방청객들도 같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가면 속에서 장조림이 흘리는 눈물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이었습니까! 드디어 장조림이 결승전에 진출을 합니다!!]
비록 결승전에서 발라드 가수 독고영이나 선우주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긴 했지만….
장조림 가면은 그저 행복한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크으으으윽!’
가면 속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던 장조림에게 패널들이 짓궂게 물었다.
"결승전에서 누구 만나고 싶어요? 국힙원탑 서리혁 님? 아니면 방앗간 고양이 님?"
[…….]
갑자기 흥이 식어 버린 장조림 가면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장조림이 간장색 마이크를 들었다.
[두 분 다… 안 만나고 싶네요. 이대로 가왕전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그가 보았을 때 둘 다 답이 안 나왔다.
어차피 둘 다 만나면 패배하게 될 것이고…….
‘그럴 바에야 국힙원탑 서리혁과 붙어서 유명세라도 챙기는 게 나으려나.’
장조림이 우물쭈물 말했다.
[굳이 만나야 한다면 국힙원탑 서리혁 님…….]
패널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아, 만만하다?"
"국힙원탑은 어떻게 해 볼 수 있다?? 힙합이니까??"
"뉴블랙이 쉽다?? 천만 수플레가 안 무섭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장조림은 빠르게 무릎을 꿇었다.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뜻이 전혀 아니고요.]
"일단 일어나세요. 장조림 님."
"역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어. 무릎부터 꿇고 보잖아."
[아닙니다. 저는 이 자세가 편해요. 예… 워낙 예전부터 국힙원탑 서리혁 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만나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 서리혁 님이었기 때문에…….]
[꺄륵!]
갑자기 옥좌에서 마이크를 든 가왕 선우주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해바라기 가면이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우리 리혁이가 최애예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랍니다~♡ 꺄르르륵!]
다시금 선우주 컨셉으로 돌아온 서리혁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회복했구나!’
‘리혁이 멘탈이 돌아왔다!’
국힙원탑 서리혁이 등장한 이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찐리혁이 이제야 컨셉을 되찾은 듯했다.
절묘하게 끼어들어 예능 편집점을 챙긴 가왕 선우주와 장조림의 꽁트가 끝난 후.
[네! 이제 4강 두 번째 경기입니다!]
[오늘의 강력한 우승후보들이죠? 방앗간 고양이 대 국힙원탑 서리혁입니다!]
전광판에 두 명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귀여운 고양이가 떡을 물고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 발라드 가수 독고영.
두루미 가면을 쓴 선우주.
"누가 이길 거 같아?"
"이건 우주."
"우주지."
본래 오늘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조유리였다.
솔직히 1라운드에서 우주를 만난 게 아니었다면 오늘의 가왕전은 조유리 대 서리혁의 싸움이었을 터였다.
"우주가 이길 거 같은데."
"그치."
1라운드에서 들었던 <꽃 피우는 봄>이 아직도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듯만했다.
분명 아무 무대 효과가 없었는데….
눈 내리는 광화문 거리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선우주를 본 듯한 착각이 일었다.
[네! 첫 번째 주자는 방앗간 고양이입니다!]
[과연 어떤 곡을 들고 왔을지….]
이윽고 시작된 독고영의 무대.
사람들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화이팅.’
‘독고영도 진짜 안타깝네. 그냥 처음에 유재찬한테 가왕 도전이라도 했더라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왕전에서 ‘도전 안 하겠습니다’ 했던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굴러와 있었다.
처음에는 서리혁을 만나고, 지금은 선우주를 만나고.
독고영이 뉴블랙 안티가 되어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을 때.
그대는 날 부르고
어쩌면 난 모른 채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독고영의 보컬이 이어졌다.
‘이야…….’
‘귀가 녹는다, 녹아.’
피아노 반주가 나오는 동안, 고백 곡으로 유명한 <그대라서>가 발라드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다.
높은 피치와 긴 호흡이 인상적인 곡.
안정적인 발성과 풍부한 음색으로 노래를 마친 고양이 가면이 마이크를 내려놓으면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센데?"
"와, 쉽지 않다."
"나 지금 좀 마음 변한 듯."
확실히 1라운드와는 다른 2라운드였다.
1라운드의 무대를 기준으로 선우주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던 방청객들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독고영도 너무 잘하는데?’
‘청춘이었다….’
아직도 여운이 안 가셔서 남아 있을 때.
이윽고 무대 위로 두루미 가면이 촐싹 맞게 올라왔다.
그냥 보기만 해도 웃긴 비주얼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들도 속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 위로 올라오자마자 자리를 잡은 국힙원탑 서리혁의 분위기가 싸악 바뀌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
‘얼굴이 안 보이는데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져.’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콩닥콩닥.
1라운드의 임팩트 가득한 무대를 떠올리며 방청객들이 눈을 초롱초롱 떴다.
그리고….
"오?"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일렉 기타로 화려한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관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경쾌한 드럼 소리.
밤하늘 아래 펼쳐진 축제에 온 듯한 멜로디.
"아……."
"이거…."
몇몇 관객들이 익숙한 멜로디를 알아챘다.
‘<너를 위해 들려줄게>인가?’
‘오랜만에 듣네.’
2000년대 초중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였다.
고교 밴드부들이 한 번씩 연주하는 음악으로, 좋아하는 상대에게 서투르지만 자신이 준비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내용의 곡.
한 편의 청춘 만화 같은 분위기가 특징이었다.
올해 여름 방학은
기차를 타고
잠시 바다에 다녀올까
드럼과 기타 연주 속에서 선우주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려온다.
가수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창법이 또 바뀌었다!’
포크송을 불렀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맑고 경쾌한 코드 진행 속에서 선우주의 목소리는 10대의 풋풋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디든 좋아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어디든- 하며 끝음이 부드럽게 흩어진다.
거기에 근사한 편곡까지.
2000년대 초반 감성을 풍겼던 원곡이 완벽하게 18년도 버전으로 재탄생해 있었다.
갓 데뷔한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와……."
하지만 분위기만 풋풋할 뿐, 그 안에 담긴 내공이나 보컬은 심상치 않았다.
아니.
보컬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은 선우주가 부르는 <너를 위해 들려줄게>에 빠져들었다.
‘진짜 청춘 분위기…….’
겪어 본 적 없는 청춘의 한 장면이 눈앞에 스쳐 가는 기분이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좋아하는 상대와 음료를 나눠 마시는 장면.
여름철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물을 튀기며 깔깔 웃는 장면.
파라솔 아래 아이스박스에서 나오는 시원한 음료와 아이스크림의 향기까지.
‘좋구나.’
중년 관객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청춘의 한 장면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중년 관객들도 손뼉을 치며 웃었다.
잠시 시간 있다면
네가 괜찮다면
조금 들려주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그리고 후렴구.
두루미 가면이 슬며시 고개를 꺾었다.
청량함이 탁 터지듯이 파워풀한 보컬이 들려온다.
힘 하나 안 들이고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시원한 파도처럼 관객들에게 흘러들어왔다.
너를 위해 들려줄게
이건 널 위한 노래야
선우주가 후렴을 부르는 동안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손뼉을 치면서 호응을 해 주었다.
무대에 대한 평가를 떠나 즐거웠다.
뭔가 경연보다는 국힙원탑 서리혁이라는 가수의 콘서트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선율 때문인지.
가수의 가창력 때문인지.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불현듯 콘서트에 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진짜 콘서트 하면 가고 싶다.’
처음부터 자신의 노래처럼 소화하는 국힙원탑 서리혁.
싱어송라이터 선우주가 데뷔하면 어떤 모습일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느낌이었다.
가슴을 울리는 포크송을 부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후렴을 떼창할 만큼 신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잠시 시간 있다면
너만 괜찮다면
바로 그때.
신나게 연주하던 밴드가 잠시 연주를 멈추었다.
무반주 속에서 가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들려주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만이 슬며시 들어오는 동안 가수의 목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진다.
가면 속 표정은 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웃고 있는 선우주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너를 위해 들려줄게
이건 널 위한 노래야
조금 부족할지라도
널 향한 나의 마음이야-
부드럽게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후렴이 터져 나온다.
‘와’ 하며 누군가 입가에 손을 올리면서 감탄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는 가운데.
압도적인 가창력과 편곡 능력 등을 보여 주며 자신을 증명하는 선우주의 모습에 몇몇 관객들은 눈을 깜빡였다.
‘……TJ 진짜 뭐지?’
저런 천재를 방출한 TJ 엔터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수플레를 포함해 다른 관객들도 말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편.
2라운드에서 결승전 진출자를 결정할 투표가 완료되었다.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방앗간 고양이 32]
[국힙원탑 서리혁 68]
또다시 결승 진출이 좌절된 방앗간 고양이가 슬픈 분위기로 내려가는 가운데.
국힙원탑 서리혁이 옥좌 위에 앉아 있는 가왕 선우주에게 하트를 보내며 애교를 부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우주 형…! 저 지금 가고 있어요!]
해바라기 가면도 이젠 지지 않았다.
[그래. 어서 오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리혁아…!]
[!]
자신의 드립을 받아친 해바라기 가면을 바라보며 두루미 가면이 대견해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녀석!’, ‘후후후’ 하는 눈 마주침이 오간 후.
[꺄르륵!]
[꺄륵!]
국민 아이돌들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꽁트를 마친 국힙원탑 서리혁이 무대를 내려가면서 제작진의 안내 방송이 울렸다.
3라운드와 최종 가왕전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겠다는 이야기.
방청객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며 찌뿌둥한 몸을 푸는 동안,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를 내려가는 국힙원탑 서리혁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와……."
"왜 그래?"
"아니, 아직도 여운이……."
"나도 그래."
무대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잔상.
‘우주는 진짜 천재구나.’
아니.
우주뿐만이 아니었다.
‘리혁이도…….’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가수가 둘이나 한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다.
뭔가 지금까지 친근하게 바라보던 국민 아이돌과는 조금 다른…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
불현듯….
‘궁금하다.’
지금 무대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두 천재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 * *
"뭐야! 왜 당신 도시락에만 케첩으로 하트가 그려진 건데요??"
"억울하면 너도 비주한테 예쁨 받든지~"
"안 되겠어요. 내가 비주 형한테 연락해서 항의를 해야겠어요. 아니, 왜 내 거에는 하트가 없는 건데?!"
"에베베베-! 부럽지?? 부럽지??"
"아, 진짜!"
초등학생처럼 투닥거리는 두 가수를 바라보며 매니저인 도원석이 부처 같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야…….’
정말이지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