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87화 (98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7화

우리 뉴블랙에는 격언이 하나 있다.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가 없다.

쉽게 말해 피지컬이 좋으면 딱히 전략을 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온갖 전략을 썼던 게 무색하게, 리혁이의 보컬이 모든 걸 휩쓸고 있다.

[잘한다! 잘한다!]

무대 아래에서 리혁이의 무대를 지켜보며 감탄했다.

후렴의 고음을 쩌렁쩌렁하게 높일 때마다 음파를 정면으로 얻어맞는 듯한 느낌.

근데 그게 또 좋았다.

여름철 바닷가에서 발을 담그고 있을 때 파도가 발치를 쏴아아 휩쓸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와……."

근처에 있는 <미션 싱어>의 박연희 피디님을 비롯해 간이 테이블에서 모니터링하던 제작진이 혀를 내둘렀다.

"리혁 씨 진짜 장난 아니다."

"저 노래로 저렇게……."

"분위기 완전 콘서트장인데요."

마지막으로 신나고 벅차는 곡을 골라서 그런지, 관객들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8시간 동안 있었던 녹화의 피로가 싹 풀린다는 표정들.

녹화 마지막에 가서는 살짝 졸려 보였던 몇몇 관객들도 지금은 눈을 크게 뜨고 웃고 있었다.

[선곡 잘했네. 역시 가왕 선우주야….]

지쳐 있을 관객들을 위해 신나는 노래를 선곡했다는 점에서 기특함과 감탄을 느꼈다.

"리혁 씨, 선곡 어려웠을 텐데."

어떤 작가님의 말대로 이번 주제는 리혁이에게 꽤 불리했다.

-청춘.

올해 22살인 가수에게 청춘을 주제로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얼마나 난감했겠는가.

특히나 임팩트 있게 부를 만한 곡들은 대부분 청춘이 지난 사람들이 쓴 곡들이었다.

나도 온갖 경험을 동원해서 겨우 불렀는데 20대 초반인 리혁이는 오죽했을까.

물론 기술적으로 잘 부를 수야 있겠지만 리혁이는 노래에 있어 기본적인 철학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부르지 않는다.

그 때문에 14년도 당시 <밤바다>를 불렀을 때, 어떤 감정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참…….]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리혁이가 이제는 어른이 됐고, 이제는 그때보다 더욱더 풍부한 감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혁이의 기본적인 철학은 변함이 없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부른다는 것.

그렇다면….

[음…….]

지금도 분명히 무언가를 떠올리며 부르고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리혁이가 부르는 <오늘 우리는>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따라 유독 아름다운 색채였다.

* * *

제비뽑기에서 ‘청춘’을 뽑았을 때, 딱히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서리혁은 당황스러웠다.

-청춘…?

그에게 난해한 키워드였기 때문이었다.

사전에서 말하는 청춘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청춘 靑春

1.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정의를 보고 나서도 청춘이란 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청춘의 한가운데 있었으므로.

여러 에세이와 소설을 탐독한 리혁은 청춘이란 시기에 대해서 결론을 내렸다.

‘청춘은 열차랑 비슷해.’

막상 타고 있는 동안은 열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보일 뿐.

내리고 나서야 ‘아, 이렇게 생긴 열차였구나’ 하며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청춘은 어떻다 하고 정의를 내리듯 부르는 노래는 그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니까.

그래서 그가 선택한 곡은 청춘의 활기찬 의지를 담은 <오늘 우리는>이었다.

오늘만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내 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봐

서리혁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만 불렀다.

자신은 지금 청춘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며.

부서지는 햇살 아래

빛나는 사람들이

그게 바로 우리니까

그의 곁에 아주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들이 함께해 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그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얻어,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을.

그러니

어서 내 손을 잡아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서리혁이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하이라이트 파트.

손뼉을 치며 그에게 호응해 주는 관객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네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으니까

오늘 그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 * *

[네!]

[지금까지 가왕 선우주의 방어전 무대였습니다!]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지면서 가왕 선우주가 관객들에게 살짝 인사를 했다.

다시 터지는 환호.

‘리혁아!!’

‘진짜 청춘이었다….’

‘아, 이거 음원 나왔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백스테이지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촐싹맞게 날아오는 두루미 가면이었다.

[저를 잊고 계신 건 아니겠죠? 꺄르륵…!]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서리혁의 무대에 정신이 팔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미친 존재감이었다.

왠지 모르게 해바라기 가면이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두루미가 그를 향해 사랑의 화살을 뿅뿅 쏠 때.

[자… 그러면…….]

중계진의 멘트가 나오면서 관객들이 탄식했다.

"아아아아…!"

"아아아!"

이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멘트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중계진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둘 중 한 명은 오늘 탈락합니다.]

"아아아아악-!"

연예인 패널들도 같이 탄식했다.

"아, 진짜 이건 적어도 세 번은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50대 50으로 가서 연장전 한 번만 더 합시다. 나 진짜 둘이 붙는 거 한 번 더 보고 싶어."

"아, 이걸 누굴 골라요!!"

게스트로 나온 아이돌들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할 때.

중계진이 외쳤다.

[자… 투표의 시간입니다!]

방청객들이 이마를 짚기 시작했다.

‘누구 뽑아야 되지?’

‘이거 진짜 누구 뽑냐??’

선우주의 전략이 완벽하게 통한 덕분이었다.

"이건 진짜 취향 차이 아니야?"

"취향이지."

객관적으로 누가 더 잘했냐고 하면 당연히 서리혁이다.

어느 정도 차이인지까진 알 수 없지만 확실하게 우열을 가리라고 하면 리혁이 더 잘 불렀다.

하지만….

리혁에게 표를 주려고 하니 이번에는 두루미 가면이 아른거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부작 무대.

신들린 편곡 능력으로 무려 4곡이나 자기 곡처럼 부른 가수.

서리혁에 비해 살짝 부족하다 뿐이지, 보컬 실력으로는 오늘 그 누구보다 압도적이었던 가왕급 피지컬.

그리고 곡에서 쌓아왔던 서사들.

‘역시 우주인가?’

‘근데 리혁이 노래도 좋았어.’

‘리혁이가 부른 것도 엄청 좋았는데…….’

방청 규정 때문에 떼창을 할 수 없었지만, 다 같이 따라부르고 싶었던 서리혁의 마지막 무대였다.

"으음……."

"끄으으응…."

그냥 무대끼리만 비교해도 애매했다.

-형식에서 벗어난 야성적인 보컬 vs 정석적인 보컬

창법도 무엇이 더 낫다고 보기 애매했다.

한쪽은 시(詩)를 감미롭게 읊는 시인 같았고, 다른 쪽은 아름다운 보석을 정교하게 만들어 내는 세공사 같았다.

그리고.

-청춘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래 vs 청춘의 우정과 사랑을 부르는 노래

이 또한 취향 차이였다.

‘어렵다!’

‘야식 메뉴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렵네.’

마치 ‘평생 돼지고기 vs 소고기 중 택일’ 류의 밸런스 게임 같았다.

소고기를 택하면 삼겹살을 못 먹고, 돼지고기를 택하면 소고기 육수가 들어간 음식은 평생 작별.

우주를 고르면 리혁이 떨어지고, 리혁을 고르면 우주가 떨어진다.

"아……."

기나긴 고민 끝에 방청객들은 결론을 내렸다.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방청객들이 힘없이 ‘네에-’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중계진이 말했다.

[투표를 하기 전에 제작진 안내사항이 하나 있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의 귀를 기울였다.

[이름이 헷갈릴 수 있으니 투표 잘 부탁드립니다.]

"!"

"!!"

그제야 1번이나 2번에 손을 올리고 있던 관객들이 정신을 차렸다.

‘아! 가왕 선우주가 우주가 아니었구나.’

‘리혁이가 리혁이가 아니었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

국힙원탑 서리혁이 손을 들더니 제작진에게 무언가를 제안했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중계진이 멘트를 전했다.

[투표에 혼선을 빚지 않기 위해 한 소절씩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초 정도. 자, 1번 노래.]

국힙원탑 서리혁과 가왕 선우주가 자신들이 불렀던 노래의 도입부를 가볍게 한 소절씩 부른다.

그걸 지켜본 사람들이 드디어 마음을 정했다.

[자! 그럼 1번이냐! 2번이냐!]

[여러분의 마음을 투표해 주세요~!]

호쾌한 멘트에 사람들이 번호를 꾸욱 눌렀다.

마지막까지 누굴 골라야 할지 몰라서 눈물을 삼키던 수플레들까지 투표를 마친 후.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모두의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손을 비비는 커플 방청객, 가슴에 손을 올린 중년 남성, 주먹을 꼬옥 쥐고 있는 수플레들.

[이제 둘 중 한 분은 오늘 <미션 싱어>를 떠나야 합니다.]

"으아아아아!"

"그만해! 여기서 멈춰어-!"

[자,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제44대 가왕이 될 인물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긴박한 BGM과 함께 조명이 어지럽게 돌아갔다.

‘아… 난 못 보겠어.’

‘하씨.’

‘으으으음!’

몇몇 관객들이 고개를 슬쩍 돌리고 실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볼 때.

두둥!

스크린에 스코어가 떠올랐다.

[국힙원탑 서리혁 46]

[가왕 선우주 54]

와아아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가왕 선우주에게 하이라이트 조명이 내리쬈다.

[네, 43대에 이어 제44대 가왕에 등극한 가왕가왕가왕 선우주입니다!]

[8표 차이! 극적인 승리네요!]

네 명의 관객이 마음을 돌렸다면 50대 50이라는 동률이 나왔을 법한 아슬아슬한 표차였다.

가왕 선우주가 조명 아래서 발랄하게 춤을 추고 있을 때.

"음?"

사람들의 시선이 그 옆에 서 있는 두루미 가면, 진짜 우주에게로 향했다.

"우주 뭐 하는데?"

"어?"

국힙원탑 서리혁이 자신의 목을 만지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풀고 있었다.

[말씀드린 순간, 국힙원탑 서리혁이 목에서 무언가를 풀고 있네요?]

[아! 금목걸이입니다!]

짤랑짤랑이는 금목걸이.

[자세히 보니 엽전들이네요!]

금색 엽전으로 된 목걸이에 사람들이 웃음으로 터뜨렸다.

선비 옷을 입은 두루미가 엽전 목걸이를 빼더니 가왕 선우주에게 다가가 걸어 주었다.

마치 새롭게 즉위한 왕의 대관식을 지켜보는 듯했다.

[아! 이제 국힙원탑은 너다! 라고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와! 엽전 목걸이에 국힙원탑이라고 쓰여 있네요!]

[가왕가왕가왕에 이어서 이제 국힙원탑까지! 4관왕입니다!]

자신에게 금목걸이를 걸어 준 맏형의 모습에 해바라기 가면 속 서리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청객들이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국힙원탑 선우주…!"

"선우주!"

"선우주! 선우주!"

그 환호에 서리혁이 웃음을 멈췄다.

불현듯 기분이 미묘해졌다.

꺄르륵 웃으며 옆으로 스륵 빠져나가는 두루미.

‘이것조차 큰 그림이었나?!’

왠지 모르게 자기 이름에 가왕 타이틀이랑 국힙원탑 타이틀까지 붙이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 때.

중계진이 말했다.

[우선 제44대 가왕의 즉위식이 있기 전에 오늘의 탈락…]

"아아아아아아!"

"그러지 마! 서운해!"

[오늘의 탈락자인 ‘국힙원탑 서리혁’ 님의 정체를 공개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국힙원탑 서리혁이 몸을 돌렸다.

흥미진진한 배경 음악이 들려오는 동안, 나긋한 손짓으로 가면을 벗는 모습이 보인다.

‘와, 뒤통수부터 잘생겼네.’

가면을 써서 살짝 눌리고 헝클어졌지만, 그럼에도 머릿결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뒤통수.

자그마한 머리.

물에서 막 나온 인어처럼 머리를 가볍게 털면서 땀방울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오늘 경연의 우승자이자, 가왕전의 탈락자는 바로….]

고개를 돌리면서 조명 아래 환히 빛나는 얼굴.

[…국민 아이돌 뉴블랙의 리더 우주입니다!]

바로 그 순간.

"헉!"

우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헉 소리를 냈다.

땀에 젖어 청아한 미모.

방금 전까지 둘 중 하나가 탈락했다며 대성통곡하던 수플레들도 ‘옴마…?’ 하며 눈물을 멈췄다.

‘미친…….’

‘역시 리혁이를 고른 건 올바른 선택이었나?!’

‘와….’

살짝 상기된 뺨은 발갛고.

앞머리는 땀에 젖어 헝클어져 있고, 여기저기 땀방울이 성글성글한데 그게 또 극락이었다.

난생처음 뉴블랙 리더를 근거리에서 영접한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생길 수가 있나?’

‘와…….’

저도 모르게 목을 쭉 빼고 얼굴만 감상할 때.

한 줄기 땀을 훔치던 우주가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뉴블랙 우주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우주야아아!"

[네… 그리고 저 떨어졌습니다. 하핫.]

"어어어어어어!"

울부짖는 관객들 앞에서 우주가 차분하게 소감을 전했다.

[네, 오늘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멋진 선배님들과 승부를 겨뤘고, 또 저의 분신이죠? 가왕 선우주 군과의 싸움에서 안타깝게 패배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던 우주가 <미션 싱어>의 출연 동기를 이야기했다.

[정체를 숨기고 노래를 부른다는 컨셉이 참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예전에 명곡단 생각이 나면서 한 번 출연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그룹 노래를 부를 때와는 다른 매력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우주가 윙크했다.

[물론 우리 가왕 선우주 군과 붙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지만요.]

방청객들이 이웃집 아이를 바라보듯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소감을 이어 가던 우주가 말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아이돌 중에도 정말 보컬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은데…….]

그런 이들에게도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는 멘트에 게스트로 나온 아이돌들이 눈물을 흘렸다.

‘아니에요. 선배님. 선배님처럼 그 정도로 부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두 분이 이렇게 기대치를 높여놨는데 이제 어떤 아이돌이 나오나요….’

물론 머릿속의 생각일 뿐.

아이돌 게스트들이 고장난 원숭이 인형처럼 아이돌판 최고권력자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한편.

진지하게 소감을 말하던 우주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아~ 정말 안타깝네요. 제가 진짜 국힙원탑이라는 이름도 있고 해서, 정말 좋은 힙합 곡들도 많이 준비했는데…….]

얄미운 표정이었다.

[이제 보여 드릴 수 없겠네요.]

"그냥!!! 보여 줘!!"

누군가 도라에몽 같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앞자리에 앉은 관객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이 빨개진 수플레를 바라보고 웃을 때.

[음… 이렇게 그냥 가는 것도 아쉬운데 곡이라도 하나 가볍게 들려 드리고 갈까요?]

"네!"

"네에에-!"

[그런데 또 아무 곡이나 들려 드릴 수는 없잖아요?]

표정 하나, 손짓 하나하나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밀당을 하던 우주가 관객들을 바라보며 은근히 물었다.

[오늘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곡을 하나 들려 드릴까요? 물론 여러분이 시간만 괜찮다면….]

"네!"

"좋아요!!"

[그렇다면…….]

제작진과 미리 이야기가 된 모양인지, 한 스탭이 걸어 올라와 우주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건 통기타였다.

"!"

"!!"

우주가 기타를 메고는 가볍게 현을 튕겼다.

벌써부터 부드러우면서도 옛스러운 소리에 관객들이 좋아할 때.

무대에서 빠져 있었던 해바라기 가면, 서리혁이 천천히 걸어왔다.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겠지만.]

우주가 가객(歌客)처럼 기타를 연주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서리혁 군과….]

해바라기 가면이 속으로 욕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죠? 이 자리에 지금 리혁이가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그래요. 이 자리에 리혁이는 없습니다. 여러분. 그저 선우주와 가왕 선우주란 분신만이 존재할 뿐이죠.]

[…….]

[안 그래요. 나의 분신?]

[예….]

얄밉게 말하던 우주가 이내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기타를 연주했다.

[아무튼 14년도에 저와 서리혁 군이 함께 작업을 했던 곡이 있습니다. 왠지 오늘따라 이 곡을 부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처음으로 함께 불렀던 듀엣곡이거든요. 현재 콘서트 세트리스트에도 있는 곡이고….]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미청년이 자신이 부를 노래를 소개했다.

[다들 그런 기억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에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할머니 무르팍에 누워 있던 기억이요.]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기억에서 출발한 노래입니다. 할머니 무르팍에 누워서 눈으로는 별을 보고, 귀로는 풀벌레 소리와 아름다운 파도 소리가 쏴아아아- 하고 밀려오던 바로 그때의 기억.]

어느새 상대의 스토리텔링에 추억을 떠올리거나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방청객들이었다.

마치 심야 라디오 방송과 같은 감성적인 분위기였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네. 오늘 정말 아름다운 밤이 되시길 바라면서, 저는 그만 이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도록 할게요.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똑 닮은 포즈로 손을 가볍게 휘저어 인사하는 우주에게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해바라기 가면을 향해 우주가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지?’

‘알죠.’

그런 눈빛이 오가면서 가왕 선우주가 조용히 마이크를 들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우주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우우-

부드러운 허밍.

통기타 반주에 가볍게 화음을 맞추는 것뿐인데도 관객들의 고막이 사르르 녹아내릴 때.

우주가 씩 웃으며 스탠딩 마이크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 노래의 제목은 <밤바다>입니다.]

그와 함께 시작되는 부드러운 허밍.

관객들의 눈앞에 밤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