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88화 (98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8화

방청객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쳤다.’

‘내가 이걸 직관으로…….’

솔직히 오늘 <미션 싱어> 방청만 해도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경쟁률 1000대 1을 넘긴 방청을 뚫어서 서리혁의 무대를 직관했고.

선우주가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출연해서 서리혁과 진검승부를 펼쳤다.

‘내가 로또 될 운을 여따가 썼구만! 핫핫!’

‘진짜 1년치 운 다 썼네.’

그리고 바로 지금.

다시 한번 역대급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가왕급 실력을 보여 준 두 멤버의 듀엣 무대.

‘이거 입이 근질거려서 일주일 동안 어떻게 참지?’

‘동네방네 자랑 각이다.’

방청객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뉴블랙의 메인보컬과 리드보컬이 허밍을 시작하면서 관객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와……."

부드러운 초콜릿이 따끈한 우유에 섞이듯이, 두 남자의 목소리가 감미롭게 얽혀든다.

우우우우-

서로를 바라보며 화음을 맞추는 두 남자.

한 명은 가면이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방청객들은 그가 어떤 표정일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지금 선우주처럼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을 테니까.

꿀꺽-

연예인 패널들이 침을 삼키고 무대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중년 관객들이 조용히 눈을 감거나, 젊은 커플이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집중할 때.

먼저 시작한 것은 뉴블랙의 리드보컬이었다.

아주 오랜 추억 속 거닐면

녹슨 대문 살랑거리는 꼬리

고이 신발 벗고 문턱 넘으면

보이네요 당신의 무릎이

통기타 소리 사이로 중저음의 음색이 널리 퍼져 나간다.

관객들이 감탄했다.

‘가면이 없으니까 진짜 좋다.’

아까와 달리 얼굴 표정까지 선명하게 보여서 그런 걸까.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하는 선우주의 얼굴에서 짙은 그리움이 느껴졌다.

몽글몽글한 감정.

자식을 둔 부모 세대나 손주를 둔 노년 세대가 눈을 감고 입가에 미소를 잔잔히 그릴 때.

이번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뉘어 밤하늘을 보면

모든 것이 흔적이네요

이 별은 당신의 향기

저 별은 당신의 손길

우주가 그리움을 불렀다면 리혁은 고마운 감정을 담아 부르고 있었다.

그에 답하듯 호소력 짙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제는 별도 무섭지 않고

어둠도 무섭지 않은 나지만

이어지는 투명하고 고운 목소리.

여전히 생각해요

당신과 바라보던 밤하늘

그때 그 밤바다

그러면서 두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얽혀들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할머니에게 당신과의 그때가 그립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노래.

감성적인 분위기에 젖어든 사람들 앞에 밤바다의 후렴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 그 밤바다

당신의 향기

그때 그 밤바다

당신의 목소리

후렴이 끝나면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부모 세대와 노년 세대가 손가락으로 눈곱을 떼듯이 눈을 슬쩍 비비는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길 때.

"……."

객석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수플레들도 눈을 글썽이고 있었다.

우주가 마무리 곡으로 <밤바다>를 고른 데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곧 방송을 보게 될 할머니에게 들려주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고.

리혁과 처음으로 함께 부른 듀엣곡이란 의미 때문일 수도 있고.

현재 투어에서도 자주 부르는 곡이기에 미리 합을 맞추지 않고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안녕. 수플레.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듯했다.

수플레들은 왠지 그렇게 생각했다.

<밤바다>라는 곡은 뉴블랙의 곡 중에서도 그렇게 메이저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여러 차례 TV에서 불러서 인지도가 있긴 했지만, 처음부터 차트 1위를 찍고 시작한 뉴블랙의 최신 곡들과는 아무래도 경우가 달랐다.

온전히 대중들을 위한 무대였다면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곡을 골랐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건….

-팬들을 위한 선곡.

수플레들이 생각하는 우주의 선곡 이유 중 하나였다.

대중들은 잘 모를 수 있어도 수플레들은 전부 다 알고 있는 명곡 중의 명곡.

여태까지의 무대가 대중들을 위한 곡이었다면 지금의 <밤바다>는 팬들을 위해 불러 주는 노래 같았다.

‘진짜 그때 입덕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왜 14년도에는 뉴블랙을 몰랐을까.’

‘덕질 인생 최대의 실수가 늦덕이라는 거라니!’

지금은 조회수 수천만 뷰를 찍은 영상이자 수플레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하는 영상으로 알려진 <밤바다>의 라이브.

14년도 당시 신인이었던 두 보컬이 장소원의 라디오에서 보여 주었던 듀엣은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그때도 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뭔가 달라.’

‘진짜 다르다.’

그때보다 서리혁의 감성이 더 짙게 담겨서 그런 것인지.

두 보컬의 실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서 그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풋풋했던 신인 시절과 프로 아이돌이 된 현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때 그 밤바다

당신의 향기

수플레들 역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 그 밤바다

당신의 목소리

이루 말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가운데.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 중에서 어느새 통기타 소리가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좋다.’

‘할머니 보고 싶어.’

빈 공간을 채우듯 이어지는 두 가수의 부드러운 허밍.

그리하여 마침내 눈앞의 밤바다가 멈췄을 때.

방청객들은 최고의 무대에 그들이 마땅히 보내야 할 답례를 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 * *

마침내 끝났다.

길고 길었던 8시간의 녹화, 여기에 준비 시간까지 더하면 거의 12시간이 걸린 오늘의 녹화였다.

물론 녹화가 끝났다고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주 씨! 우주 씨!"

"우주야!"

김덕순 여사가 보았다면 도떼기시장이냐고 할 만큼 북적거리는 복도.

내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저 혹시 사진 한 장…."

"네, 그럼요."

"혹시 토삼이 사인해 주실 수 있나요? 조카가 진짜 토삼이 팬인데……."

"이따 영상 메시지로 해 드릴게요. 제가 토삼이 인형을 챙겨 왔는데 대기실에 있어서."

연예인 패널들이 싱글벙글 웃었다.

"진짜, 이 기회가 아니면 우주 씨를 언제 보겠어요!"

"제가 진짜 팬이에요!"

"선배님, 저 월간소년 민트입니다. 오늘 무대……."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연예인 패널들.

사진을 요청하는 <미션 싱어>의 제작진.

그리고.

"저도 사진 좀 부탁해도 될까요?"

"저도!"

패자부활전에서 생존한 허희진 씨를 제외한 2명의 탈락자들.

"저희 일부러 안 가고 기다렸어요! 우주 씨랑 인사하고 싶어서."

"정말요?"

"네, 진짜 안 가길 잘했죠. 가왕전 무대 보는데 진짜 와… 그리고 밤바다도 너무 좋았어요!"

탈락하고 나서 바로 퇴근했어도 됐을 텐데 일부러 기다리셨다는 모양이다.

분위기를 보니 조유리 씨는 진즉에 집에 간 듯했다.

그렇게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1차적인 팬 서비스를 마무리한 후.

"후우……."

뒷목을 주무르며 숨을 토하는 나에게 한 인물이 다가왔다.

"우주 씌이이이이-!"

"아, 피디님."

박연희 피디님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내게 뛰어왔다.

피디님이 내 손을 덥석 잡고 외쳤다.

"사랑해요!"

"네?"

"진짜… 이거 시청률 미칠 거 같아요!"

너무나 날것의 기쁨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어쩜 이렇게 방송을 잘해요? 예능신이 가호해도 이렇게는 안 됐을 거 같은데…!"

"운이 정말 잘 따라 준 거 같아요."

철저하게 전략을 세우기도 했지만 운도 나름대로 좋았다.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을 쟁취했으니까.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시청률 끌어모으기

-서리혁 VS 선우주 무대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하기

-서리혁과 선우주의 듀엣 무대

머릿속에 적어 둔 체크 리스트에 하나씩 체크 표시가 뜬다.

물론 모든 퀘스트가 끝은 아니었다.

한 가지 남은 게 있다.

-말 나올 수 있는 부분들 점검하기

머릿속으로 앞으로 나올 방송에 대해서 신경 써야 할 점들을 체크했다.

"피디님."

"네!"

"혹시 부탁 조금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우주 씨가 뭘 부탁하든 다 들어드릴게요. 뭔데요? 제가 뭘 들어 주면 될까요?"

호의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피디님에게 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따로 회사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해도 되지만, 지금처럼 피디님이 호의를 품을 때 슬쩍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다.

내 선에서 깔끔하게 끝낼 수 있으니까.

"제가 마지막에 소감 이야기했을 때, <밤바다>가 콘서트 세트 리스트에도 있다는 멘트를 했거든요."

"아, 그거는 꼭 살려서 내보내야죠."

"감사합니다."

"뭘요. 그래야 우리도 편하죠."

박연희 피디님이 물었다.

"혹시나 미리 짜고 친 거 아니냐고 할까 봐 그러는 거죠? 리혁 씨랑 사전 교감 없이 깜짝 출연을 했다고 말했는데, <밤바다> 무대는 정말 그림처럼 합이 잘 맞으니까."

"네, 맞아요."

분명 리혁이에게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안 했다는데 마지막 무대에서는 그림 같은 듀엣을 보였다.

물론 현장에서 3라운드를 하기 전에 리혁이와 제작진에게 제안을 한 것이긴 하지만….

TV로 보고 있던 사람들에겐 혼선이 있을 수도 있다.

-너네 미리 짜고 친 거지??

그래서 이미 최근에도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라는 점을 슬쩍 이야기했다.

아무튼, 이 부분은 피디님도 공감을 하니 문제가 없었고.

"그리고…."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국힙원탑이라는 이름 때문인데요."

"아아."

피디님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씨가 사전 미팅 때 이야기했던 그거 말하는 거죠?"

"네, 그거요."

리혁이의 이름 앞에 붙었던 ‘국힙원탑’이라는 이름이 조금 신경 쓰였다.

물론 농담이라는 걸 알기에 대부분은 유쾌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라는 힙합 곡을 내기도 해서 나름의 근거 없는 별칭은 아니었다.

하지만 힙합을 좋아하는 리스너라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너 지금 힙합 희화화 하는 거야??

혹은 이런 것을 명분으로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을 수도 있고.

그런 이유로 사전 미팅 때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준비하던 게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어떻게 할 거냐면요."

이어지는 내 설명에 피디님이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보안만 잘 지켜 주시면 아무 문제없어요."

"감사합니다. 피디님."

"보면 왜 리혁 씨가 우주 씨를 그렇게 든든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요. 참 꼼꼼해."

그 말을 하던 피디님이 제비뽑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스탭의 말에 내게 인사하고 움직였다.

나 역시 고개를 돌렸다.

"자! 다음 경연 주제 뽑겠습니다!"

"모여 주세요!"

참가자들이 제비뽑기를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해바라기 가면을 쓴 채 다른 가수들에게 둘러싸여 ‘가왕님!’ 하는 인사를 받는 리혁이가 보인다.

즐거워 보인다.

[꺄르륵!]

그 모습을 보고는 핸드폰을 들어 연락해야 할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돌아오는 답장들에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멀찍이서 꺄르르 웃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나도 푸근하게 웃었다.

국힙원탑 서리혁.

기왕 동생의 이름으로 나온 거, 끝까지 A/S를 잘해 줘야지.

"리혁아. 형이 도와줄게."

이 방법을 사용하면 국힙원탑이라는 이름에 대한 비난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리혁이가 이걸 좋아하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꺄르륵!"

…거기까지는 내 소관이 아니지 않을까?

* * *

"또 뭐 이상한 거 꾸미고 있죠?"

"응?"

"뭔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인데…?"

가늘어진 눈이 나를 투시하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리혁이 정도의 스킬 레벨로는 나의 철면피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런 거 없는데?"

"으음, 뭔가 있는 것 같지만 피곤하니 넘어가 주겠어요."

"그래."

숙소 엘리베이터의 거울 위로 피곤한 얼굴들이 보인다.

경연이 끝나고 바로 숙소로 퇴근한 우리의 얼굴은 정말이지 피로에 절어 있었다.

"리혁아. 힘들지?"

"네."

"원한다면 내가 업어 줄까? 아님 내 어깨에 기댈래?"

"죽어도 안 기댈 거예요."

훈훈하게 서로 눈으로 욕을 하며 미소를 주고받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후.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집에 들어서자 팡파레가 우리를 맞이했다.

팡!

팡팡!

생일 축하용 폭죽이 현관문에서 터뜨려지는 가운데.

고깔모자를 쓴 삼 졸개가 박수를 치며 맞이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가왕 즉위 축하합니다~!"

"와아아아아아!"

미리 소식을 듣고 준비한 모양인지 중현이가 케이크를 들고 있고, 나머지가 춤을 추고 있다.

비주는 참 이런 막춤도 선이 곱구나….

"아, 뭐예요."

리혁이가 손사래를 치며 얼굴이 붉어지는 동안 삼 졸개가 달려들었다.

"잘했어요, 형! 간악한 우주선에게 본때를 보여 주다니…!"

"우주 형이 패배하는 귀한 모습 너무 좋아."

"리혁아. 정말 잘했어. 이렇게 해야 우주 형이 다른 분야에도 도전을 안 할 거야. 춤이라든가, 댄스라든가, 안무라든가…."

그거 다 같은 거 아니니. 비주야.

리혁이를 마치 영웅처럼 대접해 주는 졸개들을 바라보며 내가 서운한 표정으로 꾸물거릴 때.

"와아아아아아-!"

"대충 환호!"

"대충 아무거나 축하!"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축하해 주는 졸개들의 모습에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었다.

‘동생 농사 대실패.’

‘꺄르륵!’

내 서운한 표정이 재미있는지 더욱더 놀리는 졸개들을 무시하며 소파로 다가갔다.

"어으으……."

소파에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털썩 누웠다.

그러자 지호가 내 머리 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늘이 진 얼굴 위로 싱글벙글 미소가 떠올랐다.

"죽을 맛이죠? 리혁이 형이랑 경쟁하니까?"

"말도 마."

"그나마 형이니까 그 정도로 버틴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8대2 나오고 바로 떨어졌어요. 와, 상상만 해도 무서워."

"그래도 재미있긴 했어. 보람도 있고."

그 말을 하면서 막내에게 물었다.

"지호, 너도 나갈래?"

"저요?"

"응."

"제가요? 왜요?"

지호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저는 이제 가만히 있으면 ‘아니! 저 선우주와 서리혁 틈바귀에서 버티다니!’ 하면서 보컬 재평가 막 들어갈 텐데요. 형들이 차려놓은 밥상만 먹으면 되는데 굳이…?"

"가끔 형은 널 보면서 내가 잘 키운 건지, 못 키운 건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단다."

"잘 키운 거죠. 현명한 판단. Wise pan-dan."

요즘 원더 코믹스 영화 출연 준비한다고 영어 공부를 해서 그런지 발음이 좋아진 우리 막내였다.

애가 단어를 몰라서 그렇지 발음은 참 잘해….

그동안 리혁이도 맞은편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가왕님. 더우시죠."

"네."

중현이가 거대한 수플레 부채를 흔들며 리혁이에게 바람을 쐬 주었다.

"여기 물도 드세요."

"뭐, 고마워요."

"우주 형을 무찔러 줘서 정말 고마워요. 가왕님. 당신은 오늘부로 저의 고구마 같은 존재입니다."

"!"

리혁이가 감격하고 비주가 놀랄 때.

"……."

물끄러미….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중현이가 멈칫하고는 시선을 외면했다.

"형은 그래도 감자 정도는 되는 거지. 중현아?"

"네."

"후후."

"형이 콜드 브라운과 라는 힙합곡을 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미안해. 중현아."

그건 내가 잘못한 게 맞군.

물론 엄밀히 말해서 나는 재즈 담당이긴 했지만 랩 파트를 조금 부르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이걸 교훈으로 앞으로 자기들 분야에 뛰어들지 말라는 졸개들의 엄포를 들은 후.

"두 사람 쉬게 두자. 우리는 고기 준비하고."

"넹."

셋이서 우리를 위해 야식 준비를 하러 갈 때.

거실 소파에 널브러진 리혁이와 엎어져 있던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

"……."

왠지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리혁이가 말했다.

"나 진짜 힘들었어요. 오늘."

"그래 보여."

"어떤 미친 사람이 역대급 무대를 4개나 가지고 와서."

"……."

"진짜 나 아니었으면 못 이겼다니까요. 나도 겨우 50대 50으로 이긴 건데."

내가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그래도 그만큼 널 믿어서 그런 거야."

"그래요…?"

"나도 너 믿고 지른 거지. 내가 최선을 다해도 네가 이길 거라고 믿었으니까."

"흐음……."

살짝 기분이 좋아졌는지 허공을 바라보는 리혁이의 입가가 꿈틀거린다.

내가 누운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진짜 시간이 꽤 흘렀다. 그치?"

"그러게요."

아까 <밤바다>를 부르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4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밤바다를 처음 불렀을 때가 딱 14년도의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진짜 네가 자랑스러워."

"……."

"네가 보여 주는 무대들을 보면 알아. 4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연습하고, 발전해야 나올 수 있는 무대라는 걸."

"……."

"네가 우리 메인보컬이라는 게 너무 좋더라."

부엌에서 동생들이 물소리를 내며 왁자지껄 웃는 동안 리혁이가 고개를 슬쩍 돌린다.

"뭐… 나도 좋아요."

그러고는 말했다.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유롭게 노래 부르는 것도 좋긴 한데… 아까 밤바다 부를 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랬어?"

"앞으로도 듀엣할 일 많았으면 좋겠어요."

"……."

둘 다 시선을 피했다.

나는 엎어진 채 고개를 왼쪽으로, 리혁이는 소파 등받이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1분을 기다렸다.

여전히 왁자지껄하지만 우릴 부르는 소리가 안 들려왔다.

"……."

"……."

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나 이쯤 되면 고기가 준비될 줄 알았거든."

"나도요."

리혁이와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고기가 이쯤 되면 준비될 줄 알고 부끄러운 말을 마구 질렀는데, 아직 준비할 게 꽤 남은 모양이다.

"슬슬 갈까?"

"네에…."

"아구구구구……."

"으어어……."

잠깐 누웠다고 산발이 된 서로의 머리를 바라보며 키득대면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향하는 동안 리혁이가 물었다.

"그나저나 노래 연습은 왜 그렇게 열심히 했대요?"

"왜냐니."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네가 미친 듯이 달려가니까 나는 쫓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매일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

"그거 농담 아니었어요?"

"진짜야."

내가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죽기 살기로 연습한 거야?"

"나야 당연한 이유가 있죠. 웬 미친 사람이 막 따라오겠다고 쫓아오면 일단 도망치고 봐야죠."

"나 때문에?"

"네."

"그거 농담 아니었어?"

"아닌데요…?"

그렇게 우리 둘이 걸어가는 가운데.

불현듯 방금 전 서로가 말했던 연습의 이유가 귓가에 맴돌았다.

-네가 미친 듯이 달려가니까 나는 쫓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나야 당연한 이유가 있죠. 웬 미친 사람이 막 따라오겠다고 쫓아오면 일단 도망치고 봐야죠.

우리 둘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잠깐만…."

"아니, 잠깐만요."

리혁이도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했다.

곧바로 우리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너 연습했다는 이유가……."

"당신이 연습했다는 이유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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