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89화
79장.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웠지..
치이익-
고기가 불판에서 구워지는 소리.
하지만 지금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이것뿐이었다.
그 외에는 조용한 적막뿐.
"……."
"……."
나무젓가락을 든 막내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볼게용."
"네."
"리혁이 형이 여태까지 보컬 연습을 피나도록 한 이유는 우주 형이 따라와서였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에는 나무젓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우주 형은 리혁이 형이 자꾸 연습을 하니까, 따라가기 위해서 연습을 했다."
"응. 그거야."
"그니까 둘 다 서로 연습을 하니까 연습을 한 거네요."
"응."
중현이와 비주가 끼어들었다.
"바보."
"바보."
리혁이와 내가 발끈했다.
"바보 아니거든요?! 솔직히 이게 내 잘못이에요? 나는 따라오니까 그냥 연습을 한 거라니까요."
"나는 얘가 또 달려가니까 따라가려고 연습을 한 거지."
리혁이가 ‘당신 때문에 맨날 연습하잖아!’ 라고 할 때는 그냥 농담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였다.
서로 씩씩거리고 있을 때 비주가 긍정적으로 보자며 밝게 웃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둘 다 가왕급 실력을 갖추게 된 거 아닐까요?"
"그렇긴 하죠."
"그…렇긴 한데……."
묘하게 손해 본 기분.
실력이 상승한 게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감정이 공존했다.
리혁이가 투덜대며 불판 위의 소고기를 집었다.
"진짜."
하얀 두루미의 볼이 우물우물한다.
"내가 연습을 괜히 하겠어요? 잠깐 눈 감았다 뜨면 등 뒤에서 ‘리혁아…’ 이러고 소곤거리고 있으니까 연습을 하는 거지. 내가 메인인데 리드보다 못하면 안 되잖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잠깐 작업하고 돌아오면 네가 저 앞에 가 있다니까."
"아니, 뒤에서 바짝 붙으니까 거리를 벌리는 거지. 운전 연수할 때 안 배웠어요? 앞차와의 안전거리 유지하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앞차가 고속도로에서 100km로 달리고 있는데 이건 내가 시속 60km로 달리는 상황이잖아. 앞에선 네가 미친 듯이 달리고 뒤에서는 비주랑 지호가 막 쫓아오는데."
그러자 비주랑 지호가 말했다.
"저는 형이 가니까 가는 건데요…."
"저두요."
그러면서 어디서부터 이 연습이 시작된 거냐는 말이 나오려고 할 때.
집게로 고기를 구우던 중현이가 말했다.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상황이네요."
"그래서 결론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결론은 어차피 안 나오는 거니까. 안 중요한 거 아닐까요?"
"오……."
내가 감탄하며 중현이의 튼튼한 어깨를 두드렸다.
"요즘 철학책 많이 읽더니 똑똑해졌어. 우리 중현이."
"팬들이 요새 저 보고 천재 곰순이래요."
그 말대로 누가 먼저 시작한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불리하니까 넘어가려는 거 봐."
동생들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내가 말했다.
"아니, 얘들아. 내가 너희를 열심히 따라가는 이유가 다 있어. 자, 우선 비주부터 봐."
비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 아이돌판 최고의 댄서. 댄스 경연 프로그램 아이무브의 우승자."
"!!"
비주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내가 작업을 8시간 하고 돌아오면 비주는 그 8시간 동안 안무 연습을 하고 있어. 그게 매일 누적이 된다고 생각해 봐. 내가 따라가려면 죽기 살기로 해야 되지 않겠어?"
무엇이든 따라 하는 능력이 있어도 겨우 따라가는 연습량.
"중현이도 봐. 중현이가 어디 경연 프로그램 나갈 데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랩 진짜 잘하잖아."
"흐뭇."
"그러니까 내가 뼈를 부수는 각오로 랩을 연습하는 거지."
"시무룩."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동생들의 성실함과 재능 때문이었다.
이미 재능 충만한 아해들이 성실하기까지 하다.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가 방심을 안 하고 계속 달리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 말이지."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리혁이가 수긍하는 동안, 비주가 만들어 준 쌈을 받아먹은 막내가 우물우물 말했다.
"근데 이건 해결책이 없네염. 그냥 다 같이 고통 받는 방법 빼고는 방법이 없을 거 같아요."
"그치."
"하지만 팬들은 행복하니까. 그럼 된 거 아닐까요?"
"맞다."
우리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플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는가.
"꺄르륵!"
"꺄륵!"
다 같이 행복하게 결론을 내리고 고기를 먹을 때.
지호가 은근하게 물었다.
"아, 참. 우주 형."
"?"
"아까 비주 형이랑 중현이 형은 따라가기 버거워서 연습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응."
"근데 아까 제 얘기는 안 했더라구요. 형이 연기 연습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제가 너무 잘해서…?"
내가 고개를 저으며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닌데? 그냥 연기는 내가 재미있어서 연습하는 건데. 음? 설마… 왕지호 군, 정말 자네가 그 정도 연기력이라 생각하나…?"
"캬아아악!"
입에서 마늘 향기를 뿜으며 진노하는 막내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 맛있어라~ 오늘따라 고기가 참 달구나."
"그 말 취소해!"
"왕지호는 자의식 과잉이라네~"
지호가 아랫입술을 꾸욱 말고 중현이의 팔뚝을 툭툭 쳤다.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듯한 표정.
하지만 중현이는 푸근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호야. 너도 이제 어른이야. 어른은 스스로 하는 거야."
"이이이이!"
내가 둘 사이에 쏙 끼어들어 윙크했다.
"야!"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우리 막내 놀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 * *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경연을 마친 후.
푹 자서 체력을 회복한 나의 첫 번째 일정은 바로….
"좋은 아침입니다, 우주 씨!"
"좋은 아침~"
바로 우비즈의 뮤직비디오 녹화였다.
14년도 마스커레이드 활동 때 우리가 세계관 스토리 영상을 찍었던 바로 그 스튜디오.
내가 뱃사공처럼 노를 젓고, 중현이가 사람 구하는 돌고래처럼 나왔던 영상을 찍은 바로 그곳이었다.
"그게 4년 전이구나."
"여기 오니까 그때 생각이 막 나네요."
"그때 재미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는 딱히 뮤비 세계관에 대한 영상은 안 찍은 것 같다.
지금도 TF팀이 고용한 작가 분들이 각종 오브제 등으로 뮤비에서 의미를 담아주시긴 하지만….
"세계관은 뭔가 흐지부지되긴 했네."
헤비하게 덕질을 하는 수플레들을 제외하면 딱히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직접적으로 세계관에 대해 언급하는 건 사라졌다.
원래 아이돌 컨셉이나 세계관이라는 게 이렇다.
데뷔할 때는 별의 힘을 지닌 슈퍼 청순 요정! 이랬다가 7년쯤 지나면 다들 빵빵 총 쏘는 노래 부르고 있고.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TNT도 데뷔 초에는 각자를 상징하는 신수(神獸)가 있었다.
당시 태현이가 자기 햄스터 하겠다고 했다가 기획팀한테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잠시 나는데…….
"이럴 때가 아니지."
뭐 하나 기억하면 옛날까지 거슬러 가는 버릇의 고삐를 잡고 상념을 멈췄다.
일단은 일이 먼저다.
"스탭 분들한테 인사하러 가자."
"네."
촬영 준비를 마친 스탭들의 앞에 우리가 척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주."
"그리고 저는 비주."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서서는 팔을 교차하며 크로스! 했다.
그리고 꾸벅 인사.
"안녕하세요! 올해 7월 말에 데뷔하는 신인 보이그룹 우비즈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다들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신인이긴 하네."
"거짓은 말하지 않았군…."
"수상할 정도로 커리어가 대단한 신인 아이돌."
뮤직비디오 스탭들의 드립에 우리도 웃음을 터뜨렸다.
수조 근처로 다가가자 다이버 복장을 입은 카메라 감독님들과 촬영 감독님이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아, 우주 씨, 비주 씨.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감독님과 인사를 주고받고는 뮤직비디오 장면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들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좋아하시죠?"
"네."
만화책으로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이번 의 뮤직비디오 오프닝은 조금 독특한 분위기로 가 보려고 합니다. 물론 안무 씬이나 의상은 굉장히 트렌디하면서도 약간의 날티 나는…? 그런 분위기로 갈 거긴 합니다."
적절한 표현을 고르기 위해 눈썹을 모으던 감독님이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현대 세계에 적응한 그리스 로마의 신들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예컨대 디오니소스가 클럽에서 춤을 추며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라든가."
"네, 이해했어요."
"그처럼 이번 뮤비의 컨셉은 하늘의 신과 물의 신이 지상에서 만나는 그런 분위기로 보면 되겠습니다."
TF팀으로부터 한 차례 들었던 설명이지만, 다시 한번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늘의 신이고, 비주는 물의 신인 거네요."
"네. 두 신이 중간지대인 지상에서 만나서 신나게 하루 동안 재미있게 노는 그런 컨셉입니다."
자세한 디렉팅을 들은 후.
수조 촬영에서의 안전 사항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몸을 풀었다.
"형."
"응?"
고개를 돌리니 비주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목을 풀고 있었다.
"저 너무 행복해요."
"나도."
"이제 3주 뒤면 이 무대를 보여 줄 수 있는 거잖아요. 형이랑 저랑 원 없이 춤을 추는……."
소원 성취했다며 행복하게 웃는 비주의 모습에 나도 같이 웃었다.
한쪽 팔을 쭈욱 당기며 몸을 풀던 비주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참, 아까 신화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든 건데요."
"응."
"형이랑 저랑 우비즈로 앞으로 종종 컴백해 보는 건 어때요? 이런 신화 컨셉으로 가는 거예요. 올림포스도 12신이니까 다음에는 전쟁의 신이나 지혜의 신, 그런 거 해 봐도 좋고."
"오호……."
순간 솔깃함을 느꼈을 때였다.
활짝 웃는 비주의 고운 얼굴 위로 그간의 기억들이 스쳐 간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해 볼까요? 물론 형이 힘들면 어쩔 수 없지만…….
-어렸을 때 꿈이 있었어요. 춤추다가 한 번 지쳐서 쓰러져 보고 싶다. 그런데 오늘 소원을 이뤘어요. 진짜 연습실 천장이 너무 예쁘게 보이지 않아요? 형? …우주 형???
-[작업 중인 것 같아 포스트잇으로 남겨요♥ 새벽 2시도 괜찮으니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의 미소가 흐려졌다.
"형?"
"……."
"갑자기 왜 시선을 피하는 거예요?"
* * *
"자, 그럼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네!"
"다들 안전 장비 확인 부탁드려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응급 구조사까지 확인을 마친 후.
물의 신처럼 짙은 푸른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비주가 고급스러운 셔츠를 입고 물에 서서히 들어갔다.
"비주 씨, 온도 괜찮으세요?"
"네!"
이윽고 옅은 하늘색으로 염색한 우주도 뒤따라 입수했다.
우주가 OK 사인을 보낸다.
꿀꺽-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맡은 허창재 감독이 침을 삼켰다.
‘떠, 떨린다…!’
수중 촬영이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아이돌 뮤직비디오만 30편 가까이 맡았던 그에게 수중 촬영은 익숙한 일이다.
얼마 전에도 KM 엔터의 원더 차일드의 뮤비에서 수중 장면을 찍지 않았던가.
그가 긴장하는 이유는 바로….
‘뉴블랙과의 첫 작업.’
국민 아이돌이자 세계적인 슈퍼스타와 함께 한다는 의미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그룹과 작업을 했지만 이 정도로 탑 클래스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방금도 너무 긴장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TV에서 보던 우주와 비주가 집중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그, 그 정도로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두 가수가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니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가 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비현실적이었다.
-안녕하세요. 레몬 엔터 TF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뉴블랙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OK를 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바로 OK를 보냈다.
그런데….
-감독님이 작업할 곡은 뉴블랙의 곡이 아닙니다.
-예?
-비밀리에 작업 중인 우비즈의 신곡입니다.
-예?!
우주와 비주가 유닛으로 나온다는 어마어마한 소식에 1차로 놀랐고.
-들어 보시죠.
-!!!
노래의 어마어마한 퀄리티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이게 바로 썸머송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신나고 청량한 노래였다.
-두 사람이 허 감독님이 찍으셨던 뮤비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어요. 조애나 씨의 뮤비에서 색감과 연출이 정말 멋졌다고.
-그, 그렇군요.
-멤버들의 첫 유닛 활동인 만큼 잘 부탁드립니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비장한 표정이었다.
곧 자신들의 경력에 ‘우비즈 - WAVE’라는 강렬한 한 줄이 적히게 될 예정이었으니까.
그리고.
‘반드시 두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한 번 마음에 들면 오래간다는데… 우리도 제발……!’
오늘 뮤직비디오를 찍고 나서 두 사람이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앞으로도 쭉 기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네, 끄럼……."
어찌나 긴장했는지 삑사리가 나왔다.
헛기침을 한 허창재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수중 촬영이니만큼 별도 레디 액션 신호는 없이 수신호로 갈게요."
다이버들의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이 수중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시작되는 촬영.
S#1. 장소 : 물속
물속에서 유영하는 물의 신.
수면 근처로 올라가 밝은 햇살을 즐기던 물의 신이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면서 비주가 물속을 유영했다.
"와……."
"비주 씨는 물속에서도 춤선이 진짜…."
"곱다, 고와."
물속에서 흩날리는 두 남자의 부드러운 머릿결.
여러 가지 특수 효과의 보정이 들어갈 테지만 무편집본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비주얼이었다.
"잘한다."
"와…."
곧이어 우주와 비주가 화면에서 얽혀든다.
물 위로 올라오는 구도의 비주.
그런 비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주.
천지창조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구도로 두 미청년이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S#2. 장소 : 물속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을 뻗으면서 그가 ‘컷!’ 하고 신호를 보냈다.
바로 물 위로 올라오는 우주와 비주.
"푸하!"
"후우우."
살짝 벌게진 얼굴로 올라온 두 멤버에게 스탭들이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네, 할 만해요."
"혹시 힘드시면 바로바로…."
그러면서 마실 물을 건네주는 스탭들이었다.
올라와서 따끈한 수건으로 몸을 덥히는 두 멤버가 걸어오면서 물을 뚝뚝 흘렸다.
"바로 모니터링 하시겠어요?"
"네!"
조연출을 비롯해 제작진이 뉴블랙의 등 뒤에 서고, 두 멤버의 눈이 방금 전 찍은 장면을 훑는다.
스탭들이 감탄했다.
"와……."
"진짜 분위기 쩐다…."
올해로 5년차가 된 국민 아이돌의 두 멤버는 감독의 디렉팅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야말로 신화적인 분위기.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바다 같은 공간에서 두 명의 신화적인 존재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너무 완벽한데?"
"이대로 뮤비 내보내도 될 것 같아요."
제작진이 살짝 과장 어린 칭찬까지 하며 추켜세울 때.
"어떠세요?"
"음……."
"이대로 가도 될 거 같은데."
"촬영분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요?"
우주의 말에 감독이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우주가 옆에 있는 비주에게 묻는다.
"비주야. 어때. 넌 만족해?"
"음… 더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 말을 마친 2인조가 감독에게 말했다.
"저희 한 번 더 가 보아도 될까요?"
"그럼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더 가 볼게요."
"예, 알겠습니다."
허창재 감독이 감탄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아.’
씬이 완벽하게 뽑히긴 했지만 조금 더 해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들의 연예계 위치를 고려해 ‘다음 씬으로 갈까요?’ 라고 한 것이었다.
탑급 연예인 중에서는 한 번 더 찍자는 말을 하면 ‘제 연기가 좀 아쉬웠나 봐요?’ 하며 빈정 상한 미소를 짓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럴 경우에는 촬영이 굉장히 힘들어지곤 했다.
그런데…….
‘풍문으로 듣던 게 진짜였구나.’
제작진을 배려한다는 말이 참 맞는 듯했다.
꼼꼼하게 촬영 현장을 훑는 매니저들의 귀를 피해 제작진이 소곤거렸다.
"저래서 국민 아이돌인가 봐요."
"와, 집중력이……."
그러면서 다시 촬영에 들어가는 우비즈.
감독이 호쾌하게 외쳤다.
"OK! 완벽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여전했다.
"감독님…?"
"예?"
"괜찮으시다면 한 번만 더……."
"예!"
두 사람이 장담한 대로 정말 촬영을 거듭할수록 더 좋아졌다.
다시 또 올라온 2인조.
"음……."
"한 번 더요?"
"네, 촬영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요."
"그, 그럼……."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허 감독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던 것이다.
-한 번 더….
-음… 한 번만 더?
-한 번 더 가 봐도 될까요?
제작진도 ‘엇?’ 하고 눈을 깜박였다.
‘뭐지?’
‘어어?’
과즙을 짜는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는 과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때.
감독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레몬 엔터와의 미팅 자리에서 들었던 TF팀의 코멘트.
-두 멤버에 대해 주의하실 사항이 있냐고요? 워낙 무던한 친구들이라 그런 건 없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혹시 현장에서 저희의 작업 방식이 멤버 분들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까 해서…….
-아.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똑똑한 악마처럼 생긴 레몬 엔터의 팀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들 필요 없이, 그 친구들이 여러분을 자기 마음에 들게 할 거예요.
그때는 ‘뭔 소리야?’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어차피 자신들의 입맛에 맞을 때까지 결과물을 뽑아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감독님~"
물 위에 둥둥 떠서 그를 바라보는 2인조.
"감독님~?"
섬뜩!
물귀신처럼 웃고 있는 두 가수의 모습에 허창재 감독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감독님. 저희……."
"……."
"한 번만 더?"
감독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허창재 감독 인생 최고의 커리어가 강제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