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90화
우비즈의 뮤직비디오 녹화는 깔끔하게 끝났다.
"고생했어, 비주야!"
"형도 고생했어요!"
비주와 손뼉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는데?"
"그러니까요. 우리 옛날보다 실력이 더 늘어서 그런가 봐요."
"그런가?"
둘이서 화기애애하게 웃고는 감독님과 제작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감독님?"
"……."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는 감독님.
"저, 감독님?"
"음? 어? 어어어…!"
멍 때리다가 정신을 차린 감독님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
"어어!"
나와 비주가 감독님을 붙잡아 주었다.
"괜찮으세요?"
"아, 그, 저… 그그…."
"네?"
너무 피곤해서 단어가 안 떠오르는지 입을 뻐끔거리던 감독님이 마침내 말을 꺼냈다.
"기, 기립성 빈혈이 잠깐 와서. 괜찮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저희 리혁이도 자주 그러는데."
눈앞이 하얘졌는지 눈을 끔뻑끔뻑하던 감독님이 우리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곤 모니터를 흘깃 보며 말했다.
"그… 굉장히 느낌이 좋네요. 잘될 뮤비는 현장에서부터 느낌이 오는데 아마 제 작품 중에서 최고의 역작이 나올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목숨 걸고 편집하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두 분 유닛 데뷔인데."
그런 말을 하면서 슬쩍 망설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감독님.
다른 제작진도 비슷한 표정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둘이 미소를 교환하고는 말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감독님."
"아닙니다. 하하."
"다음에 저희가 어떤 곡을 들고 올지 모르겠지만, 다음번에도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감독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뺨을 최대한 억누르는데도 입꼬리가 마구 올라가고, 벌써부터 어깨춤을 출 것만 같다.
다른 제작진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방금까지 좀비 같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축제 분위기가 됐다.
"두 분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들어가세요!!!"
우리가 박수를 치면서 꾸벅 인사했다.
퇴근 준비를 마친 우리가 떠나는 동안 뒤에서 ‘꺄앗’ 하며 춤추는 이들이 보인다.
민기 형이 제작진을 흘깃 보고는 물었다.
"마음에 들었어?"
"네."
나와 비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디렉팅도 명확하게 주시고, 무엇보다 우리 뮤비는 색감이랑 구도가 중요한데 그 부분을 굉장히 신경 써 주시는 거 같아요. 전반적으로 제작진 분들 분위기도 괜찮은 것 같고."
"다음에 또 작업할 기회가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민기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리스트에 허창재 감독님의 이름을 추가하는 한편.
꼬르륵-
비주와 나의 배에서 동시에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로 멋쩍게 웃었다.
"뭐 먹으러 갈까?"
"좋아요."
"그런데 이 시간에 하는 곳이……."
새벽 2시.
치킨집이나 족발, 보쌈 같은 야식을 제외하면 배달 어플에서도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 종료였다.
"어차피 숙소에서 배달시키면 리혁이 깰 텐데, 간단하게 아무거나 먹고 갈까? 햄버거 어때?"
"좋아요."
"가까운 맥날 있으면 들렀다 가자. 우리 패스트푸드점 안 가 본 지도 꽤 됐잖아."
"허어… 좋아요!"
연습생 때 생각난다며 좋아하던 비주가 날 배려하듯 물었다.
"아, 형. 혹시 피곤하면 집에 가서 라면 끓여 줄까요? 햄버거보다는 라면 더 좋아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라면은 안 돼. 내일 사람들 만나는데 부으면 안 돼서."
"음?"
고개를 갸웃하던 비주가 ‘아!’ 하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맞다. 내일, 아니, 오늘 김중현이랑 찍는 거 하나 있었네요."
"응."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케줄이 끝난 비주와 달리 나는 오늘 스케줄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 * *
오늘도 김중현의 아침은 활기찼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촤악 걷고 식물들에게 인사 한 번 하기.
"안녕."
그리고 영상 통화로 가족들에게 전화 걸기.
"할아부지. 잘 주무셨어요?"
-으이~
"할머니."
-오야.
"엄마, 아부지."
-잘 잤니?
-으이~
그렇게 통화를 종료하고는 1층에 있는 개인 짐에서 운동을 했다.
아랫집에서 미세하게 들려오는 소음들이 그의 음악이었다.
-아 시발! 내 닭가슴살 처먹은 거 누구냐?! 빨리 자수해라. 나 지금 다이어트라서 예민하다.
-일단 나는 아님!
-너 맞지, 이연후?
-증거 있으세요??
-나의 주먹이 증거다, 이 쓰레기야!
김중현이 흐뭇하게 웃으며 벤치 프레스를 들었다.
‘오늘도 평화롭군.’
그렇게 운동을 마치며 활기차게 아침을 보낸 김중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아침에 해야 할 일이 뭐가 있더라."
두뇌를 풀가동한 김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고파서 떠오르지 않는군.’
바나나 하나를 우물거리던 중현은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들을 처리했다.
"일단 가방 싸기."
유럽 투어를 위해서 오늘 영국으로 출국하기 때문이었다.
중현의 손이 대충 손에 집히는 것들을 집어넣었다.
선크림. 스킨, 로션, 리버풀 티셔츠, 비행기 고추장, 아령 등등. 어차피 필요한 건 현지에서 사면 되기 때문이었다.
"아, 카메라."
취미를 붙인 필름 카메라까지 고이 담은 후.
멤버들이 자는 동안 아침 식사를 마친 김중현은 숙소 앞에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탔다.
오후에 출국하기 전에 스케줄이 하나 있기 때문이었다.
-중현아. 너 나랑 재미있는 거 하나 해 볼래?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녹화를 마치고 돌아온 날, 첫째 형이 그를 슬쩍 부르더니 제안을 하나 했다.
-네가 콘서트에서 부르는 솔로곡들 있잖아. 작년에 냈던 같은 곡들 말이야.
-네.
-그런 거 부르면서 다른 래퍼들이랑 합동으로 영상 하나 찍어 볼 생각 있어?
-저는 좋긴 한데… 왜요??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우주가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좀 즉흥 랩에 약하거든.
-맞다. 형 작사 못하네요.
-그… 그렇지. 그래서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나가서 조금 랩을 못한 것 같은데, 혹시 힙합 리스너들 중에서 기분이 나쁜 사람들도 있을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 너 힙합이 장난이야? 이러구.
-그런가? 다들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공감은 잘 안 갔지만 아무튼 우주 형이 뭔가 준비를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이해한 척하고 넘어갔다.
-마침 이번에 헤이션 선배님이 사장님인 레이블도 인수했잖아?
-네.
-그래서 그분들과 화합도 도모할 겸, 미리 논란도 방지할 겸 진지한 분위기로 힙합 영상 하나 찍어 보려고. 레몬 엔터 래퍼들이 모였다! 이런 컨셉으로.
-오, 저는 좋아요.
어찌 됐든 좋아하는 래퍼들과 함께 무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중현은 바로 승낙을 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성동구의 한 스튜디오.
천장이 높고 조명이 돌아가고 있는, 마치 릴레이 댄스를 찍을 것 같은 분위기의 촬영장이었다.
"음, 저기 있구나."
다들 한 군데 모여 있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래퍼들이었다.
"어어!"
헐렁한 정장 차림으로 슬림한 근육을 뽐내고 있던 헤이션이 중현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중현이 왔구나!"
중현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래퍼들에게 걸어가는 헤이션.
"중현이 왔다. 얘들아!"
"대주주님 오셨습니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인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중현이 그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래퍼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레몬 엔터의 졸개."
"그렇다면 레몬 엔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네, 바로 눈앞에 있는 빌보드 1위 가수 김중현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는 래퍼들과 중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근데…."
중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우주 형은 어디 있나요?"
"아, 우주는 옷 갈아입으러 갔을 거야. ‘그거’ 때문에."
"아…."
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차피 비밀 유지 각서 쓰신 거 아닌가?’
국힙원탑 서리혁에 대해 어차피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굳이 소곤소곤 말하는 래퍼들이었다.
"진짜 미쳤다. 이거 일주일 동안 어떻게 참지? 선우주 VS 서리혁 볼 수 있는 건가?"
"…결승까지 올라가신 건가?"
"모르겠네. 아씨, 너무 궁금하다. 와 나 돈 주고 미리보기 하고 싶어."
미리보기에 얼마까지 낼 의향이 있냐며 래퍼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중현 역시 정장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오!"
"우와아…!"
스탭들과 래퍼들이 감탄했다.
"슈트 핏이……."
"CEO 같아요. 중현 씨. 아, 이미 사장님이시구나."
"회장님이지. 사장님은 덕배 형이고."
"대박이다…. 우리는 C바 소리 나오는 핏인데 중현 님은 완전 CEO 느낌 나요."
입을 떡하니 벌린 율리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중현 스스로도 거울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깔끔한 다크 그레이 정장에 하얀 셔츠, 검은 타이.
‘그래도 정장 핏은 내가 제일…….’
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촤악.
커튼 젖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등장했다.
"!"
"!!"
하늘빛 머리카락을 슬쩍 넘기며 등장하는 선우주.
별도 메이크업 없이도 투명한 광채를 자랑하는 얼굴 아래 그림 같은 정장 핏이 보였다.
래퍼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괜히 패션 스타가 아니시구나."
멧 갈라 최고의 패셔니스타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뮤즈가 괜히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자태.
왠지 모르게 패배감을 느낀 중현이 시무룩한 감자처럼 변할 때.
"우리 중현이 왔엉?"
"네."
잠 잘 자고 왔냐며 다정하게 안부를 묻던 맏형이 그의 근처에 섰다.
중현의 시선이 선우주의 퀭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 근데 안 자고 왔어요?"
"응.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맥날 먹었는데 콜라 마셔서 그런지 잠이 안 오더라. 사이다 마실걸."
그런 김에 밤을 샜다며 아하하 웃는 맏형.
엄청 피곤해 보였다.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경연을 끝내자마자 김비주와 뮤비를 찍고, 이런 부가 영상까지.
"형 괜찮겠어요?"
"괜찮아."
우주가 눈을 빛내며 후후 웃었다.
"이게 또 전략이거든."
"?"
"이대로 피곤함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행기에서 이륙하는 것도 모를 만큼 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지. 후후후……."
‘그건 전략이 아니라 기절 아닌가요.’
우후후 웃던 선우주가 래퍼들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자세를 고치는 래퍼들.
김중현이 감탄했다.
‘역시 우주 형은 뭔가 다르구나.’
그에게 농담 삼아 회장님~ 하던 래퍼들이 진짜 회장님을 접견한 것처럼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힙합 가수들이 이렇게 바르게 서 있는 건 처음 보는 김중현이었다.
그의 맏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들 와 주셨네요. 많이 바쁘실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바쁘기는."
헤이션이 우주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우주야. 네가 부르면 어디든 가야지."
"옳다."
"어디든 부르시면 갈게요. 미국에 계셔도 저희가 갑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힙합 레전드신데."
마지막 농담에 다들 웃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농담은 아니었다.
-Cold Brown & Woojoo’s ‘Answer’ Leads Billboard Hot 100 for 16th Week..
빌보드지에서도 대서특필할 만큼 현재 16주 차트인으로 역대 최장기간 1위를 기록한 였다.
그 말인즉, 힙합 곡으로만 치면 이 자리에서 가장 성적이 높은 인물이….
‘나의 형이군. 후후.’
그런 것이다.
김중현이 괜히 멋쩍게 코를 슥 비비고 있는 동안, 우주가 영상에 대해 짧게 설명을 했다.
"영상 분량은 15분 정도고요."
래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레몬 엔터의 래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런 컨셉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국힙원탑 서리혁이 래퍼 중에서는 제일 신입이잖아요. 불과 며칠 전에 탄생한 친구니까."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힙원탑 서리혁이 선배 래퍼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러고 나서 ‘야야! 선배들이 한 번 보여 줄게!’ 요런 느낌으로 한 분씩 마이크를 들고 나와서 랩을 할 거예요."
"오케이."
헤이션이 손가락을 튕기며 물었다.
"그동안 나머지는 뒤에서 호응해 주거나 그루브를 타면 되는 거지?"
"네."
김중현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형이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알 것 같다.
-레몬 크루 등장!
…같은 분위기인 듯했다.
단체 사이퍼를 하듯이 한 명이 나와서 자신의 대표곡으로 랩을 하면 뒤에서 호응해 주고.
마지막에는 신입인 국힙원탑 서리혁이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랩을 선보이며 끝.
"진짜 간단한 영상이니까요.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으음……."
김중현과 래퍼들이 눈을 깜빡였다.
‘엄청 관심 끌 거 같은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뉴블랙이랑 우리가 등장하는데….’
굉장히 가벼운 무대처럼 말하는 우주의 말이 이해 가진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손가락에 별 모양 타투가 있는 래퍼 플로(Plo)가 손을 들었다.
"이제 그럼 촬영 시작하면 되나요?"
"아뇨. 아직."
"?"
"올 사람들이 더 있어서요."
"더 올 사람이 있다고요?"
우주가 당연하지 않느냐는 얼굴로 물었다.
"레몬 엔터 소속 래퍼들이라고 했잖아요."
"그랬죠?"
"레몬 엔터에는 저랑 중현이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
그제야 래퍼들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안내문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소속 힙합 아티스트 전원이 참석 의사를 밝힘
"하긴."
"레몬 엔터에 뉴블랙 말고도 가수가 더 있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덜컹! 하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무… 문이 무슨 종이짝처럼.’
‘문이 약한 게 아니다. 문을 연 사람이 강한 거야!’
래퍼들의 감탄 속에 등장하는 자그마한 체구의 미소녀.
새하얀 피부에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괴력 미인에 모두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청재킷에 비니를 쓴 걸그룹 멤버가 발랄하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안녕하세요! 오빠들도 오랜만~!"
"나윤이 왔어?"
그녀는 바로 스칼렛의 데이지(Day-Z)였다.
래퍼들이 수긍했다.
‘데이지도 랩 잘하지.’
‘진짜 잘해.’
종말의 날(Day-Z)을 예명으로 삼은 래퍼답게 귀여운 외모와 상반되는 거친 랩이 특징이었다.
다른 연예인을 만나 신기한 래퍼들이 꾸벅 인사를 할 때.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뒤이어서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은 고등학생 래퍼도 등장했다.
헤이션이 반갑게 인사했다.
"지혁이!"
"오우, 지혁쓰!"
이번에는 안면이 있는 얼굴이라 래퍼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잔뜩 기합이 든 얼굴로 들어오는 잘생긴 고등학생은 최근 힙합 서바이벌 <넥스트 미션>의 최종 우승자였다.
악수를 하거나 어깨를 두드려 주는 래퍼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김지혁이 우주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선배님. 저 왔습니다."
"지혁이 왔구나. 잘 왔어."
최애를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생에게 우주가 웃으며 물었다.
"힘들지? 연습하느라고 바빴을 텐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 이른 시간이었을 텐데."
"선배님."
김지혁이 무슨 소리 하느냐는 얼굴로 말했다.
"선배님의 시간이 곧 저의 시간이에요."
"!"
"선배님이 미국에 계신다면 미국 서부 시간의 저의 시간이고, 영국에 계신다면 영국이 저의 시간이에요."
래퍼들이 감탄했다.
‘크게 될 아이야.’
‘저 아이인가? 저 아이가 이제 레몬 엔터의 적통인가?’
그러는 동안 헤이션은 살짝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데려올 수도 있었는데.’
본인이 아이돌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힙합계에서 눈독 들이던 인재 중 하나였다.
잘생긴 마스크에 빼어난 랩 실력.
‘아이고. 아까워라.’
물론 그 덕분에 레몬 엔터에 레이블이 인수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아깝긴 아까웠다.
눈에 꿀이 떨어지는 표정으로 우주를 올려다보는 김지혁의 모습에 다들 웃을 때.
아까 질문한 래퍼 플로가 또 손을 들었다.
"이제 다 왔나요?"
"아뇨. 아직."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인물들이 들어왔다.
"나님 등… 어후, 안녕하세요. 형님들."
발랄하게 뛰어 들어오던 스트릿 보이즈의 LB, 본명 감나무가 래퍼들을 보고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헤이션 쌤이다."
"쌤, 안녕하세요!"
헤이션에게 랩을 배운 적 있는 스트릿 보이즈를 비롯해 최근 <넥스트 미션>의 준우승자인 계홍주도 등장했다.
래퍼들이 아 하고 감탄했다.
‘홍주랑 스보도 있었구나.’
‘스보도 잘하지.’
리더인 한조부터 언더에서 크루 활동을 한 경험이 있을 만큼 랩 실력으로는 아이돌판 최고로 꼽히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단장님~ 저희 왔어용!"
"민초단 등장."
반갑게 인사하는 스트릿 보이즈까지 섞여 스튜디오에 사람이 바글바글해질 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래퍼들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가벼운 촬영이라고…?’
어딘가 이상한 느낌에 중현이 대표로 물었다.
"형."
"응?"
"가벼운 촬영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어… 그랬지?"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은 라인업이었다.
국민 아이돌 뉴블랙의 두 래퍼.
뉴블랙 휘하 ‘틴스원트’라고 불리는 보이그룹 4천왕에서 틴스피릿과 선두를 경쟁하는 스트릿 보이즈의 랩 라인.
최근 해외 팬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걸그룹 초동 최상위권에 안착한 스칼렛의 막내 데이지.
최근 시청률 대박이 터진 힙합 오디션 <넥스트 미션>의 우승자 김지혁과 준우승자 계홍주.
그리고 힙합계에서 위상이 높은 헤이션의 레코드까지.
절대 가벼운 미튜브 컨텐츠에 나올 만한 라인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
"?"
"그, 그러네요? 가볍지가 않네?"
"……."
모아 놓고 보니 뭔가 그랬던지 선우주도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그래도…."
"?"
"지금 SNH 엔터는 아직 인수 중이라 빠졌으니까, 이 정도면 규모가 작은 편 아닐까요?"
자기가 말하고도 민망한지 먼 산을 바라보는 선우주.
"……."
"……."
김중현과 래퍼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꾸욱 참았다.
* * *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레몬 신교에 작곡 천마의 호출이 있었다.
-교의 행사가 있을 예정이니 힙(hip)과 합(hop)을 겸비한 호법들은 모두 모이도록 하라.
-명을 받드나이다! 우주재림 덕순행복!
그리하여 래퍼들이 모였다.
실제로는 ‘재미있는 뉴블랙 TV 영상 찍을 분들 모이세요~’ 정도였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돈 주고도 나가고 싶은 뉴블랙 TV에 나가는 건데.
물론 단서가 하나 걸려 있긴 했다.
-비밀 유지 각서를 써야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유출할 시에 너의 미래가 어두워질 거라는 조항들로 가득한 서약서들을 쓰고 나서야 올 수 있었다.
과연 무슨 비밀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헤이션의 크루와 달리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아이돌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오빠."
데이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오늘 왜 비밀 유지 각서 쓰라고 한 거야?"
"아, 별건 아니고… 여러분, 제가 최근에 <미션 싱어>에 출연을 했습니다."
"지금 리혁이가 가왕 선우주로 나오는 거…?"
"네."
초대형 스포일러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짤막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주섬주섬 가면을 눌러 쓰는 선우주.
두루미 가면이 음성변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국힙원탑 서리혁입니다…!]
"!"
"!!"
[이것이 여러분이 보안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꺄륵! 잘 지켜 주실 수 있죠??]
가수들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안 돼!’
‘이걸 어떻게 참으라고!!’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