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91화 (99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91화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

"국힙원탑 서리혁…?"

"그러니까 리혁이가 가왕 선우주로 나오고 있는데, 넌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나갔다는 거지?"

"흐하하하하!"

스트릿 보이즈가 벌써부터 웃기다며 배를 잡고 웃는 가운데, 데이지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어제 경연이 끝난 거네?"

다시 가면을 벗고 답했다.

"응. 끝났지."

"어떻게 됐어? 리혁이랑 오빠 중에 누가 이겼어??"

나윤이가 순수한 얼굴을 가장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다른 가수들도 순진한 눈망울을 연기하며 날 바라봤지만 나는 절대 속지 않았다.

이것은 속임수인 것이다.

-누가 이겼는지는 말해 줄 수 없어.

…라고 말하는 즉시 외통수에 걸린다.

-와! 리혁이랑 가왕전까지 가서 붙긴 붙었다는 거구나?

-대박이다…!

-서리혁 VS 선우주가 성사되긴 했구나.

그런고로 나의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궁금하시죠?"

"네!"

"정말 궁금하시다면……."

내가 말을 이어 가려고 할 때.

스트릿 보이즈의 래퍼들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예예, 뭐 본방송 보라 그거죠?"

"단장님 패턴이야 우리 손바닥 안이죠. 얄밉게 웃으면서 ‘본방송 보세요~ 꺄륵!’ 하고 넘길 거잖아요."

"……."

내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스보 멤버들이 화급히 말을 바꿨다.

"어, 그, 그래도 듣고 싶네요."

"와… 단장님 목소리 너무 듣고 싶어…!"

내가 흐뭇한 미소로 말했다.

"네~ 본방송 보시면 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지혁이와 홍주, 래퍼들만 와아아- 하면서 호응해 줄 뿐.

친구들은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한조가 말했다.

"어차피 안 봐도 뻔해요. 얘가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나가서 분명 다 휩쓸고 왔을 걸요."

"근거 없는 추측은 삼가 주시죠. 한조 씨."

"근거가 너무나 명확하거든요."

내 절친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가 얼마나 악독합니까?"

"……."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얻어 내고야 마는 저 근성, 사악한 전략, 악마의 두뇌."

부들부들!

"그리고 천재적인 보컬과 작곡 능력."

부들~부들~

"자기가 원하는 건 반드시 얻고야 마는 친구예요."

"맞지."

"맞는 말이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모함과 비난을 들으며 묵묵히 감내했다.

틴스피릿의 명언을 기억했다.

-행님. 명심하세요. 군자는 존나게 참아요. 그래서 저희가 행님들의 월간 뉴블랙을 참아 주는 겁니다.

한조가 뻔하다는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분명히 리혁이를 띄워 준다는 목적으로 출연했겠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가왕전에서 무시무시한 무대를 보여 주고 있고…. 리혁이는 입에서 불을 뿜어 대고 있고."

‘어떻게 알았지?’

"저기 저, 우주 눈가 움찔한 거 보세요."

"움찔한 거 아닌데요? 마그네슘 부족이에요."

내가 보기에도 좀 궁색한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와. 벌써 미션 싱어 한 편 다 봤다."

"그치. 우주 씨가 나갔는데 가왕전까지 안 갔을 리가 없지."

"근데 이렇게 들으니까 더 보고 싶은데? 한 그룹에서 두 명의 가왕급 보컬이 붙는 거잖아?"

"뉴블랙 내전 미쳤다…."

이걸 금요일까지 어떻게 참냐며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현조 형 때문에 실패했네요."

"그니까."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4년지기 절친 때문이었다.

다들 미션 싱어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동안 동갑내기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어때? 내 추측이…?"

"음…."

내 습관 하나하나 다 파악하고 있는 예리한 관찰력.

최소 나에 대한 0.5 덕순급 관심은 있어 보이는 우정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서 절친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을 건넸다.

"이현조 씨."

"네."

"혹시 주변에서 재미없다는 얘기 많이 듣지 않습니까?"

"흑흑…."

한조가 슬피 우는 얼굴로 의상을 갈아입으러 가는 동안, LB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싸워라, 짝! 싸워라…!"

"나무야."

"옙."

"옷 갈아입고 오렴."

"흑흑…."

다른 멤버들이 구박하며 LB를 데려가는 동안.

선배들이 의상을 갈아입을 동안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지혁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 같은 눈.

"지혁아. 왜 그래?"

"아니, 선배님이 지셨다고 생각을 하니까……."

마치 ‘나의 최애는 패배하지 않아!’ 같은 표정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혁아. 나는 지지 않았어."

"……?"

"이번 주에 방송 나오면 알게 될 거야."

이번 <미션 싱어>에서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좋은 가르침을 주는 선배의 표정으로 지혁이를 인자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중현이가 속삭였다.

"하지만 졌죠."

"……."

* * *

출연자들이 하나둘 의상을 갈아입고 나왔다.

오늘의 컨셉은 바로….

[레몬 컴퍼니 힙합본부]

…라는 회사 컨셉이었다.

예능인들이 ‘OO상사’, ‘XX컴퍼니’ 등의 컨셉으로 회사 꽁트를 찍는 그런 분위기였다.

당연히 본부장은 최고령이자 최고참 헤이션 선배님이다.

"어, 네."

반삭머리에 수염을 짧게 기른 헤이션이 헐렁한 정장 차림으로 헛기침을 했다.

"오늘 뉴블랙 컴퍼니의……."

"레몬이요. 덕배 형."

"아차차, 레몬 엔터 컴퍼니의… 아, 잠시만요. 혀가 꼬여서."

"래퍼가 혀가 꼬이면 어떡해요. 형."

각종 힙합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나가지만, 이런 예능류는 익숙하지 않은지 버벅이는 선배님이었다.

"쌤! 저희가 알려 드릴게요."

헤이션에게 랩을 배웠던 스보가 예능 스승으로서 팁을 알려 주었다.

LB가 나섰다.

"쌤, 요새 미튜브는요. 그냥 막 지른다는 느낌으로 가시면 돼요. 자신감 있게! 뽜이야! 이런 느낌으로."

"그, 그래?"

"뉴블랙을 보세요. 막 지르거든요! 근데도 귀엽잖아요."

"하지만 쟤네는 잘생겼잖아?"

"흑흑흑…."

마음의 상처를 입은 LB가 들어가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 메이커로 나서서 시끌시끌한 목소리로 흥을 돋운 LB 덕에 촬영장에 활기가 돌았다.

내가 고맙다는 의미로 눈빛을 보냈다.

‘잘했어.’

‘??’

자기가 뭘 잘했느냐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LB의 모습에 내가 당황했다.

"의도한 게 아니었군…."

"나무가 은근히 개그 타율이 좋아요. 근데 이제 2루까지 흥분해서 달리다가 아웃이 되는……."

중현이의 말에 공감했다.

아무튼 오늘 코너 <레몬 컴퍼니 힙합 본부 결성>의 녹화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야말로 근본 없는 애드립으로 점철된 파티였다.

"우선 본부장님 인사 있겠습니다."

"예, 오늘 저희는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에 섰습니다. 레몬 컴퍼니의 래퍼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헤이션이 작두로 커팅식도 하고.

"다음은 축하 행사가 있겠습니다."

"저희가 분위기 한 번 띄워 보겠습니다."

아이돌들이 나와서 기묘한 춤을 추면서 흥을 더하고.

그냥 아무 말 대잔치인데 그게 또 묘하게 웃기는 분위기였다.

역사 탐험대 이후로 쭉 뉴블랙 TV의 연출을 담당 중인 성 피디님이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잘 뽑힐 거 같은데?"

"그래요?"

"응, 감이 좋다."

나는 피디님 곁에 서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TBC와 약속한 사항 중 하나가 방송에서 정체가 공개되기 전까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서 이따가 가면을 쓰고 나갈 예정이다.

이번 주 금요일에 <미션 싱어> 본방이 끝나면 바로 업로드할 계획인데, 그때는 내 정체가 공개 안 된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근데 우주야."

"네."

"처음에는 가볍게 무대 영상만 찍는다고 했잖아, 우리."

"그랬죠."

"근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저희 항상 이렇지 않나요?"

처음에는 뉴블랙 TV 제작진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래퍼들이랑 같이 랩하는 영상 하나 찍으려고요. 5분 정도.

-그래?

최초 기획안은 그랬다.

그런데….

-저희 회사가 최근에 레이블을 인수했거든요. 이제 휘하 레이블 래퍼들과 저희가 함께….

-근데 레몬 엔터에는 다른 래퍼들도 있지 않아?

-그죠. 근데 다들 바쁠 텐데… 부른다고 올까요?

-올걸.

정말 왔다.

-생각해 보니 이분들과 무대만 찍고 헤어지면 아쉽지 않을까요? 꽁트라도 찍어 보는 건 어때요?

-좋은데?

그리하여 일이 커졌다.

초기에 의도한 건 절대 이런 게 아니었지만… 뭐, 이제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스노우볼이었다.

게다가 나름대로 좋은 기획이었다.

-레몬 엔터에 이런 힙합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라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니까.

"네! 여기까지 일단 하겠습니다!"

성 피디님이 박수를 치며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국힙원탑 서리혁이 함께 하는 꽁트는 조금 이따가 찍기로 하고요. 우선 무대 촬영부터 하겠습니다."

"네!"

"리허설 한 번 가 볼게요."

각자 자신의 대표곡을 한 30초 정도 부른다는 느낌으로 히트곡 메들리를 부르는 컨셉.

가볍게 동선을 협의하고는 본 촬영에 들어갔다.

첫 순서는 20대 래퍼인 플로가 오프닝에 섰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주근깨 얼굴의 래퍼가 자신의 인기곡인 를 부르면서 마이크를 든 손을 뻗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건 내겐 일상이었고

가난은 내 친구였네

어린 시절 달동네에서 고생을 하며 살아왔지만 노력해서 이 자리에 올라왔다는 가사였다.

알록달록한 조명.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이들 속에서 나는 두루미 가면을 쓰고 춤을 췄다.

‘안녕하세요. 국힙원탑 서리혁입니다, 후후.’

‘……!’

다들 나와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춤을 췄다.

나윤이가 입술을 꿈틀거리며 바닥을 보면서 그루브를 타는 모습에 내가 더욱더 춤사위를 흔들어댔다.

‘가만 안 두겠어!’

‘선우주!’

나를 노려보는 시선들을 외면하며 같이 신명나게 그루브를 탈 때.

래퍼들이 하나둘 전면에 나섰다.

컴퍼니 컨셉이라 다들 정장을 맞춰 입긴 했지만 저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금목걸이나 비니 등을 추가한 스타일링으로 단체 곡을 부르며 멋을 뽐내는 래퍼들.

‘잘한다.’

‘역시…….’

이 자리에 있는 가수들이 감탄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예능을 할 때만 해도 소심하게 서 있던 이들이 자신의 안방을 휘젓듯 강렬한 에너지를 뿜는다.

알콜은 필요 없어

너흰 우리에 취할 테니

헤이션이 살짝 꼬부라지는 발음으로 랩을 마무리하고.

‘워-!’ 하는 추임새를 넣은 래퍼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춘 후.

이번에는 스보의 랩라인이 나섰다.

‘나님 등장!’

‘자, 시동 걸고 갑니다~’

셔츠와 넥타이를 헐렁하게 늘어뜨려서, 정장인데도 불량한 교복 차림 같은 스타일이었다.

그해 겨울

가진 것 하나 없이

도착했던 서울역

스트릿 보이즈의 랩 라인이 단칸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과거의 시절을 그리는 <서울, 2012>라는 노래를 불렀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취하고 즐기고 놀던 분위기에서 스트릿 보이즈의 서사 가득한 랩이 나온 후.

분위기를 반전시키듯 데이지가 전면에 나섰다.

단정한 정장과 그와 미스매치 되는 화려한 액세서리가 눈에 띄는 패션이었다.

기왕 타오를 거라면

붉게 타올라

Burn it burn it all

Just burn it all

팬들에게 ‘악플러들이 범접하지 못할 만큼 올라가자’는 가사가 담긴 랩을 하는 데이지.

데이지가 손짓할 때마다 다 같이 호응을 해 주며 춤을 췄다.

그러곤 중현이가 걸어 나왔다.

오르고 내리고

누르고 또 누르고

우리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네

저음의 목소리로 부르는 에 가수들이 환호했다.

작년도 망고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인기곡답게 다 같이 후렴을 불렀다.

V-I-B-E

모든 곳에 너의

당시 안마의자에서 영감을 얻은 중현이가 쓴 곡이자, 20대들이 굉장히 좋아했던 곡이었다.

이것 때문에 올해 봄 대학 축제 섭외 연락도 엄청 들어왔다고 들었다.

물론 가격을 듣고 나서 다들 도망쳤다고 하지만….

V-I-B-E

목소리가 가득해

어깨동무를 한 스트릿 보이즈가 신나게 후렴을 부르고, 래퍼들도 같이 호응을 해 줄 때.

마무리로 아이돌 지망생들이자, 힙합 오디션 <넥스트 미션>의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나섰다.

우린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비틀비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기약 없이 깜빡이는 light

지금이 아니면 못 건너는 걸까?

3라운드 미션이었다고 했던가.

지혁이와 홍주가 한 팀이 되어서 불렀던 합동 랩으로, 혼란스러운 사춘기의 기억을 담은 곡 <횡단보도>였다.

요즘 10대 사이에서 인기곡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지혁이의 작곡 재능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싶지만, 막상 남들이 초록불에 건너니 나 또한 가야 할 것 같다며 초조함을 담아 이야기하는 두 연습생.

‘나의 후배.’

‘나의 후배군!’

서로 눈이 마주친 한조와 내가 씩 웃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애가 더 잘하는구나.’

‘아닌데, 홍주가 더 잘하는데?’

당시 결승에서도 아슬아슬한 표차로 승패가 갈린 만큼, 두 고등학생 래퍼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물론 신경전은 나와 한조 사이에서만 오가는 것일 뿐.

두 래퍼는 친한 또래 애들답게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며 랩을 마쳤다.

그리고.

"후우……."

이제 내가 나갈 시간이었다.

대단한 실력을 가진 가수들 앞이라 좀 떨리긴 했지만, 일단 최선을 다 해 보기로 했다.

내가 나가자 다들 호응해 주었다.

"Yeah!"

"우리 국힙원탑!"

"보여 줘!"

신나게 웃으며 호응해 주는 선배들의 목소리에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 * *

신인 래퍼 ‘국힙원탑 서리혁.’

두루미 가면을 쓴 인물이 등장하면서 래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가면 진짜 열 받게 생겼어.’

‘왜 이렇게 웃기지.’

하지만 웃음도 잠시뿐.

소심하게 걸어 나왔던 두루미가 각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다들 동공이 흔들렸다.

‘뭔 춤이…….’

살랑살랑하는 안무인데도 짜임새가 좋다.

뉴블랙의 메인댄서를 맹추격하고 있는 2인자답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 춤 실력이 빼어난 인물.

리허설 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 일단 춤이니까.’

‘춤이니까.’

다들 신이 난 얼굴로 호응을 해 줄 때.

강렬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뉴블랙의 최대 히트곡이자 아직도 듣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중독성 있는 노래.

바로 이었다.

Out of time, out of luck

풀리지 않을지도 몰라

반복되는 시간 위에 올라

어느새 무거워졌겠지 Ay

의 랩 파트를 부르는 우주.

‘어?’

‘어어…?’

리허설 때는 가볍게 흥얼흥얼하는 분위기라서 몰랐는데.

본격 무대라고 힘을 빡 주기 시작하니 뭔가 달랐다.

두루미 가면이 쾌활하게 웃으며 의 랩 파트를 부른 후.

조금 색다른 재즈풍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앤써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음미하듯 리듬을 타던 선우주가 입술을 열었다.

한국어로 옮긴 Answer의 랩이었다.

허공을 톡톡 치듯 가볍게 손짓하며 리듬을 타는데, 저도 모르게 몸이 같이 움직여진다.

‘톤이 미쳤구나.’

‘어어? 선우주 이 실력 아니었는데? 언제 늘었지?’

‘얘 뭐야?’

래퍼들이 잠시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자리에 있는 국힙원탑 서리혁은 래퍼가 아니다.

포지션 상으로는 중현의 뒤에 이은 리드래퍼긴 했지만, 분명 힙합을 주 분야로 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헤이션이 눈을 깜빡였다.

‘뭐지?’

랩을 할 때의 톤은 타고나는 부분이라고 쳐도, 관객들을 호응을 이끌어 내는 저 제스처나 감각은….

거의 매일 랩을 연습해야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걸 눈치챈 다른 래퍼들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처음에는 귀엽게만 보던 국힙원탑 서리혁의 두루미 가면이 점차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귀여운 얼굴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두루미.

분명 포지션상 랩에 한 발짝 정도만 걸치고 있는 인물이 프로 래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야, 이거 아슬아슬하다.’

‘잘못하면 비교 댓글 달릴 거 같은데….’

점점 심각한 표정으로 물드는 래퍼들.

역시 내 최애는 지지 않는다며 반짝이는 김지혁과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계홍주를 제외하면 모두가 비슷한 표정이었다.

스보의 랩 라인과 데이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 얄밉다!’

‘작곡 잘하고 노래랑 춤 잘 추면 됐지!’

‘굳이 랩까지 해먹겠다고 저저…!’

작곡이랑 노래, 춤도 모자라서 이제는 랩까지 침해하려는 저 간악한 요괴.

물론 우주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렇게 됐다는 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

이 자리에서 가장 격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 따로 있었다.

래퍼들이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중현 씨는 우주 씨 실력을 알고 있….’

밥그릇을 뺏긴 곰처럼 눈가가 촉촉한 김중현.

‘몰랐군.’

모두가 중현의 심정에 공감했다.

같은 그룹이 아닌 래퍼들도 살짝 위기감을 느꼈는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중현은 오죽했을까.

‘중현 씨….’

‘그동안 대체 어떤 싸움을 해 온 건가요.’

모두가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중현은 눈물을 머금었다.

‘형… 살살 좀 해요…….’

등 뒤.

아니, 바로 턱 밑에 비수를 들이밀고 ‘형 어떠니?’ 하는 맏형의 모습에 중현의 입이 살짝 튀어나왔다.

마치 속으로 말을 삼키는 곰돌이 같은 표정이었다.

‘뒷날개흰밤나방 같은 형… 담배거세미나방 같은 형… 고구마뿔나방이랑 고구마뿌리혹선충 같은 형…….’

전부 다 고구마 해충들의 이름이었다.

* * *

으으. 떨려.

프로 래퍼들 사이에서 나의 랩을 선보인 후.

[선배님들~]

발랄한 음성 변조 목소리로 선배들에게 애교를 부렸다.

[안녕하세요! 레몬 컴퍼니의 힙합본부에 발령 받은 인턴 ‘국힙원탑 서리혁’입니다! 오늘 저의 랩 어떠신가요?? 정말 국힙원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랩 아니었나요? 꺄르르르-!]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갑자기 팔짱을 끼는 선배 가수들.

한조가 내게 으르렁거렸다.

"힙합이 우스워 보여?? 엉?! 그걸로 국힙원탑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데이지가 치와와처럼 이를 드러냈다.

"명심해, 건방진 인턴! 힙합 감성이 없는 랩은 힙합이 아니라구!"

갑자기 나를 구박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 자리에 있을 나의 편을 찾았다.

슬쩍.

내 시선을 외면한 중현이가 중얼거렸다.

"고구마뿔나방…."

뭐지. 이 굉장한 욕 같은 느낌은…?

하지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친구들의 구박이 날아들었다.

"어디 인턴이 빠져 가지고!! 나 때는 서당개처럼 3년은 읊어야 힙합이랬어!"

"골목상권 뺏으면 좋아요?? 행복하십니까?!"

짤짤 흔들어 대는 동료 가수들의 손길에 나 두루미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

뭐지.

다들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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