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94화
-두고 보자! 김덕순!
어느 누군가 군산에서 자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를 원망하고 있을 때.
금요일 밤의 대한민국은 들썩이고 있었다.
"뭐?"
"뭐라고?"
어디에 있든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치맥을 하고 있든, 회식 자리에 붙잡혀 있든, 대중교통을 타고 있든, 집에서 TV를 보고 있든.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똑같았다.
"지금 미싱에 우주 나왔대."
"미싱?"
"서리혁 나와서 우승한 그거 있잖아. 그거에 선우주가 나왔다는데…?"
"??"
최근에 서리혁이 새롭게 가왕에 등극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주까지 등장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주가 나왔다고…?’
다들 의아했지만, 곧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선우주 VS 서리혁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존잼이겠는데?’
‘와, 벌써 재미있다.’
‘그니까 뉴블랙 대 뉴블랙인 거네?’
저마다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실시간 스트리밍 어플을 켜거나 리모컨으로 TV를 켤 때.
TBC 채널을 켠 사람들의 눈앞에 두루미 가면이 등장했다.
[A-yo! 대한민국! 체키라웃~ Do you know who I am?]
두루미 가면에 선비 복장.
엽전 목걸이.
책을 펼친 두루미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랩을 하고 있다.
[내 이름은 서리혁, 국힙원탑~ 나의 원래 꿈은 NASA~ 항공우주박사~]
사람들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DJ처럼 귓가에 손을 올린 채 CD를 돌리는 두루미.
[붕붕 위끼위끼- 붕붕 위끼위끼-]
배를 잡고 뒤집어지는 관객들과 안방에서 눈물을 쏟으며 웃는 관객들.
올해 웃은 것 중에서 가장 큰 웃음이었다.
* * *
<미션 싱어>에는 다른 경연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코믹한 경연 예능 보고 싶으시죠?
바로 출연자들이 다양한 꽁트로 재미를 뽑는다는 점이었다.
<미션 싱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기본적으로 WWE 같은 프로레슬링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프로레슬링의 재미는 어디서 나오는가?
관계에서 나온다.
애인을 두고 펼쳐지는 옹졸한 싸움, 선배에게 건방지게 도전장을 내미는 후배, 심판에게 덤볐다가 도리어 심판에게 초크슬램을 당해 버리는 레슬러 등등.
그처럼 <미션 싱어>는 다른 예능과 달리 가면을 쓴 가수들의 코믹한 꽁트로 웃음을 뽑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믹한 것이 메인은 아니었다.
본질은 경연이기에 코믹한 요소는 보통 부차적인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 미친 자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붕붕 위끼위끼- 붕붕 위끼위끼-]
금요일 밤의 경연 예능이 순식간에 버라이어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흐하하하하!"
"으하하하!"
서리혁의 명찰을 단 두루미가 웃기기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우주 진짜 도라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
-엽전 목걸이 진심 열 받음ㅋㅋㅋ
-두루미 부리 비비는 거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뿌듯해하냐구
-뉴블랙 특) 웃기면 뿌듯해 함
-웃수저는 가라 이제 웃국자 뉴블랙의 시대다
국힙원탑 서리혁이란 글자만 봐도 웃겼다.
사람들이 고개를 쭉 내밀었다.
‘리혁이!’
‘리혁이 반응 보여 줘!’
TV 화면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듯 TV를 살폈다.
곧바로 서리혁의 반응이 나온다.
[!!!]
옥좌에 앉아 있던 해바라기 가면이 벌떡 일어나 있다.
[저……!]
몸을 바르르 떠는 서리혁.
시청자들이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몰랐네."
"리혁이 우주 출연하는 거 몰랐구나."
분명 극대노한 모습이지만 아무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신이 나서 크게 웃을 뿐.
-뉴블랙 불화설이 없는 이유) 실제로 불화가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아 리혁이는 빡쳤는데 난 왜일케 웃기지ㅋㅋㅋ
-애증의 관계ㅋㅋㅋㅋ
-방청객들 표정 = 내 표정
방청객들이 그 둘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웃고, 연예인 패널들이 행복한 얼굴로 박수를 친다.
중계진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 가왕 선우주 님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거 같습니다.]
[네!]
해바라기 가면이 왕관을 고쳐 쓰며 새침하게 말했다.
[저 ‘가왕 선우주’는 저분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인정할 수 없으시다고요?]
두루미 가면을 가리키며 가왕 선우주가 말한다.
[저는 누구보다 서리혁이란 친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인정을 못하시겠다는…?]
[제가 보기에 저 친구는 서리혁이 아닙니다.]
화면 위로 명탐정 코난의 BGM이 깔린다.
진실을 밝히겠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해바라기 가면.
큭큭 웃고 있는 두루미 가면.
탐정만화 경찰들처럼 호오 하는 방청객들.
『‘국힙원탑 서리혁’의 정체를 의심하는 ‘가왕 선우주!’』
『과연…?』
큭큭 웃던 두루미 가면이 날갯짓을 하듯 도포 자락을 흔들었다.
음성변조 목소리로 서리혁의 말투가 완벽하게 흘러나온다.
[뭐. ‘서리혁’인 나를 의심하겠다니… 당신의 그 도전 받아들이죠.]
[좋아요.]
가왕 선우주가 묻는다.
[역사를 좋아하는 리혁이라면 반드시 알 겁니다. 김종서와 정인지 등이 썼던 고려 시대에 대한 기전체 역사서는 과연 무엇이죠?]
서리혁 컨셉으로 나온 맏형을 구박하기 위해 시작부터 어려운 문제로 거세게 몰아치는 리혁.
시청자들이 ‘어?’ 하고 있을 때.
해바라기 가면이 답지를 제시했다.
[1번 고려사. 2번 고려국사. 3번 고려사절요.]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갑분 국사 퀴즈
-진짜 대흉근이 옹졸해진다ㅋㅋㅋㅋ
-문제 더러운 거 봐ㅋㅋㅋㅋㅋ
-공무원 준비중인데 저거 진짜 더러운 문제임ㅋㅋㅋㅋ 김종서 정인지가 쓴게 두 개인데 편년체냐 기전체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짐
-정답 뭐야??
그리고 바로 대답하는 선우주.
[정답은 1번 ‘고려사’입니다.]
[!]
당황한 해바라기 가면의 모습에 사람들은 웃었다.
-리혁아 너네형 모의 올1 찍은 사람이다ㅋㅋㅋㅋㅋ
-???: 하지만 수능 못봤죠?
-ㄴ이거 왜 김중현 톤으로 들리지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ㄷ ㅋㅋㅋㅋㅋ
-와 우주 수능 준비한지 거의 5년되지 않았나? 저거를 아직까지 기억을하고 있네
-우주도 보면 머리가 비상해.. 좋은쪽으로 안 굴려서 그렇지..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을 때.
[흠흠, 기본 문제였죠.]
리혁이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이쯤에서 넘어가면 옹졸함의 아이콘 뉴블랙이 아니었다.
가왕 선우주가 국힙원탑에게 다음 문제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제 과학으로….]
[잠깐.]
두루미가 손바닥을 들었다.
[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저를 의심하시는 ‘가왕 선우주’ 님이야말로 정말 선우주가 맞습니까?]
빠밤! 하는 긴박한 BGM.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네.]
과학 질문이 나오면 불리하니까 말을 돌려 버리는 우주.
하지만 서리혁은 말려들었다.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시죠.]
[최근에 우주 님이 작곡해서 핫한 노래 있지 않습니까? K팝 동요 <토끼삼촌> 말입니다.]
[아. 제가 쓴 노래죠~]
[그거 한 번 부르면서 춤춰 주시죠. 그걸 봐야 정말 원곡자가 맞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
[여러분!! 가왕 선우주 님의 춤사위 보고 싶으시죠?!]
표정이 안 보이는데도 ‘당했다…’ 하는 낭패감이 가면에서 읽힌다.
와아아아아- 하는 현장 방청객들의 환호성에 가왕 선우주가 음성변조로 토삼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왠지 슬퍼 보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로 주고 말로 받네
-머리 좋고 말빨 좋은데 처세도 잘해서 휘말리면 ㄹㅇ 피보는 타입ㅋㅋㅋㅋㅋㅋ 사이좋게 지내야함
-리혁아 노래로 이기는수밖에 없다ㅠㅠㅠ
-노래로 이겨 주자ㅠㅠㅠ 악독한 형 때문에 진짜 우리 애옹이 눈에 눈물 난다ㅠㅠㅠㅠ
-다들 입에 손 내려 봐 웃고 있지
시비를 걸었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춤을 추고 있게 된 상황.
모두가 서리혁에게 응원을 보냈다.
"우주 저 까부는 거 봐봐. 어휴~ 저저 내가 리혁이었으면 얄미워서 한 대 때렸다."
"이따가 저러다 노래로 확 혼나려고."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주가 예능을 하러 나왔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 * *
"흐하하하하하!"
"아 진짜 재미있다."
지호가 막 웃으며 말했다.
"와, 저 없는 동안에 둘이서 엄청 재미있게 찍었네요. 진짜 재미있었겠다."
"야, 저게 뭐가 재미있어?"
리혁이가 뾰로통한 얼굴로 지호에게 한마디 했다.
"내가 당하는 건데."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죠~"
"!!"
"아아악!"
리혁이가 막내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고 있을 때.
내 시선이 비주에게 향했다.
흥미진진하게 보는 동생들과 달리 살짝 시무룩한 기색이었다.
"비주야. 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
"형 얼굴이…."
"응."
"안 나오니까 좀 그래서요……."
캡처하려고 준비했는데… 하는 비주의 모습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나의 1호 팬답게…….
-형. 저 사실 ㄹㄹㄹ…ㅔ인Rrrr…….
음?
방금 비주의 목소리 같은 게 머릿속에 스쳐 간 것 같은데 뭐지.
곰곰이 생각하려던 찰나, TV에서 나오는 나의 랩에 다시 시선을 빼앗겼다.
"흠흠."
아무래도 작사 실력이 딸려서 그런 걸까.
[내 랩 들으면 헤어나오지 못해~ No hair~]
내가 들어도 민망한 내 랩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형이 작사를 조금 어려워해서 그렇지, 랩은 되게 잘하는 편이거든요."
"그래?"
"네. 그리고 예능용으로 일부러 웃기게 했다는 점도 감안하면……."
"……."
나름 진심으로 한 건데.
어쨌거나 중현이가 나를 위로하며 칭찬해 줄 때.
TV 속에서 연예인 패널로 나온 개그우먼이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근데 서리혁 님이 국힙원탑이면 같은 그룹에 있는 김중현 씨는 뭐예요?]
[아. 그 형이요.]
두루미 가면이 부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솔직히 국힙넘버투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방금 전 나에게 좋은 덕담을 건네준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배신당한 표정이었다.
"고구마뿔나방…."
"방송이잖아. 중현아. 형은 진심이 아니었어."
[이건 방송용이 아니라 이건 저의 진심입니다! 국힙원탑은 저 서리혁입니다! 꺄르륵!]
"중현아. 여기 고구마 과자. 아~ 해 봐."
"싫어요. 저 안 먹을 거예요."
"형이 미안해. 한 번만 봐줘."
"흐음."
과자를 조공으로 바치며 동생을 달래 주고 있을 때.
무대를 장식했던 나와 리혁이의 꽁트가 끝난 후.
"아, 궁금하다. 우주 형 무대!!"
"형. 이거 언제 형 무대 나와요?"
이어지는 1라운드의 무대들을 보며 동생들이 애타게 내 순서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어어!"
"한다!"
마침내 나와 조유리가 가면을 쓴 채 복도에서 마주치는 VCR이 흘러나왔다.
[국힙원탑 서리혁 VS 외로운 늑대]
그렇게 시작되는 나의 1라운드 무대 <꽃 피는 봄>.
김세학 선생님의 포크송으로 잔잔하게 시작되는 멜로디에 동생들이 젖어드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3분 후.
화면 속에서 두루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노래를 마무리 지을 때였다.
스슥-
스스슥-
비주와 지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저도…."
내가 물었다.
"어디 가? 아직 2라운드 무대도 남아 있는데."
"안 돼요. 가야 돼요…."
"어디 가야 되는데?"
"어디긴요…."
지호가 슬픈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 따라가려고 연습하러 가는 거지…."
"아앗…."
"진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리혁이와 중현이가 말했다.
"이제 알겠지? 내가 왜 그날 촬영하고 와서 내내 잔소리했는지?"
"이해되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떠나는 동생들을 내가 붙잡았다.
"에이~ 그러지 말고 마저 보고 가."
"싫어요! 갈 거예요!"
막내가 분개한 얼굴로 외쳤다.
진짜로 연습을 하고 싶어서 간다기보다는 ‘아! 진짜 왜 이렇게 멀리 가!’ 하면서 뒤쫓는 후발주자의 원성이었다.
내가 웃으며 달랬다.
"서운하게 먼저 가지 말고.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안 돼요…! 이대로 쉬었다가는 형을 따라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구요!"
"맞아!"
너 때문이야! 하고 원망 어린 눈빛을 보내는 동생들.
그런 둘에게 내가 자상하게 웃어 보였다.
"너희 지금 가면 나도 안무랑 연기 연습할 거야."
"……."
"……."
지호와 비주가 공손하게 자리에 앉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효과가 좋은 걸 보니 앞으로 종종 써먹어도 좋을 거 같다.
그동안 TV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박수.
[네! 국힙원탑 서리혁의 1라운드 무대였습니다!]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 한국에서 시청자들 반응은 어떨지 궁금했다.
* * *
이미지라는 것은 생각보다 강하다.
쉽게 말하자면 이미지가 한 번 정해지면 굉장히 바꾸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으음……."
"음."
선우주의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와! 선우주랑 서리혁 배틀 보는 건가?"
"그건 다음 주 아냐? 이번 주에는 그냥 초반 라운드만 나올걸."
"우주랑 리혁이 보컬 배틀…."
서리혁에게 도전하는 선우주.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 서사였다.
하지만….
[오늘의 대진표를 소개합니다!]
대진표를 바라본 그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현실감각이 몰려들었다.
"어우… 독고영이랑 조유리……."
"쉽지 않네."
그냥 막연하게 흥분해서 ‘서리혁 vs 선우주!!’ 하며 연호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냉정했던 것이다.
물론 서리혁이라는 선례가 있긴 했지만….
[꺄르륵!]
신나게 춤을 추는 두루미를 보고 있자면 미심쩍은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설레발이었나.’
‘그… 우주는 그냥 예능하러 나온 건가?’
동생이 나온 경연을 띄워 주고 싶어서 출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떠오를 정도였다.
수플레가 사는 집집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언니, 우주 노래 잘해?"
"우주 쟤는 노래 잘하냐??"
수플레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는 수플레들이었다.
보통 안무가 격한 K팝 곡은 가창력을 크게 요구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걸 뚫고 뛰어난 가창력이 느껴졌던 게 우주였다.
하지만 수플레들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이해했다.
‘이미지란 게 그렇지.’
서리혁이 가왕급이란 이미지를 붙인 게 불과 2주 전인 만큼, 지금의 우주에게도 비슷한 시선이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조유리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우주랑 조유리랑 붙었네..
-조유리 압승 아님??
-리혁이 때 생각하면 모름. 그때도 조유리가 이긴다 사뿐히 즈려밟는다 어쩌구 말 많았음
-난 혹시 모르니 우주 1표
그러나, 잔잔한 기타 멜로디 속에서 우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그 순간.
"어……."
"어어……?"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온라인에서도 정적이 흘렀다.
TV 속에서 두루미 가면이 부르는 <꽃 피는 봄>이 사람들의 귓가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걸음 하나 추억이 되고
웃음 하나 아름다웠던
너- 역시 아름다웠던
그때의 나와 그대는
폭발하듯 커져 가는 가수의 성량이 거실 TV 스피커, 호프의 대형 앰프, 이어폰 등을 통해 들려온다.
현장에서는 관객들이 우는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뭐라고 말해야 되는데 말이 안 나옴
-우주 진짜 준비 많이 했구나
-편곡 직접했네..
-아까 우주??? 왜 나왔지?? 하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함
마치 자신의 노래처럼 포크송을 부른 1라운드 무대.
[국힙원탑 서리혁 93]
[외로운 늑대 7]
조유리가 광탈하면서 1라운드가 끝났지만 그 결과에 반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원 언제 나옴???
-울 아빠 방송 보면서 운 거 진짜 오랜만이라더라
-할머니가 이거 노래 다운받아달라고 하심ㅠㅠㅠ 지금 당장 받아달라 하시는데 안나왔는걸요..
-우주 버전 이거 넘 듣고 싶어ㅠ
-편곡 미쳤따 진짜
-근데 편곡 없었어도 우주가 이겼을 거 같애ㅋㅋㅋ
음원 사이트 망고에 ‘꽃 피는 봄’, ‘국힙원탑 서리혁’ 등이 인기 검색어로 올라가고.
김세학의 원곡이 스트리밍 수를 미친 듯이 늘려 갈 때.
『 국힙원탑 서리혁 | 너를 위해 들려줄게 』
『 편곡 : 우주선 』
2라운드 무대가 나왔다.
"!"
"!!"
방금 전까지 포크송을 들려주며 사람들을 울렸던 우주가 이번에는 경쾌한 락을 들고 왔다.
‘진짜 여름이다….’
여름 바람이 살랑이는 듯한 배경 앞에서 10대처럼 노래를 부르는 우주의 목소리에 감탄이 나왔다.
청춘 남녀의 사랑이 그려지는 노래.
TV 속에서 웃고 있는 방청객들처럼 어느새 그들도 같이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태세 전환하는 사람들.
"우주는 참 잘해."
"그니까. 애가 노래를 잘한다니까~"
그런 가족들의 반응에 수플레들이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성공.’
이미지는 한 번 정해지면 바뀌기 어렵다.
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한 번 바뀌고 나면…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와
-살살해라 우주야ㅋㅋㅋㅋ
-우주 노래 나올 때마다 리혁이 가면 화면에 잡아 주는 거 왜일케 웃기지ㅋㅋㅋㅋㅋㅋㅋ
-가왕인데 초조해 보임ㅋㅋ
-아 다음 주 넘 기대된다
우주가 3라운드, 즉,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2라운드가 끝났다.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이거이거… 다음 주에 뭐가 많구만?"
"뭐가 또 있네."
보통 1라운드를 하고, 2라운드의 하이라이트 무대는 다음 주로 미루는 게 보통의 패턴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부터 패를 다 까 버렸다는 건 그 이상의 무대가 다음 회차에 준비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서리혁 VS 선우주
이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우주가 결승전에서 만날 상대가 중상위권 실력의 장조림이었으니까.
‘아. 설레.’
‘다음 주에는 진짜 꼭 처음부터 봐야지.’
다음 주에 나올 서리혁과 선우주의 진검 승부를 기대하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SNS나 커뮤니티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
미튜브에 무대 영상은 올라왔는지.
망고 차트에 음원은 올라왔는지.
두근두근-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온라인에 접속할 때였다.
그런데….
"음?"
"으음?"
정작 미튜브에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은 다소 생소한 컨텐츠였다.
뉴블랙 TV에서 방송이 끝나고 업로드한 영상.
-[레몬엔터 힙합본부] Special Ep. 국힙원탑 서리혁, 입사하다
정장을 입은 두루미가 래퍼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썸네일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