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03화 (1,00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03화

최근 들어, 금요일 밤이 되면 광고 카피가 하나 떠오른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뉴니버스와 미션 싱어가 있는 금요일 밤.

일월화수목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금요일 밤에 짜잔! 하고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엥? 그런 광고가 있어요?"

"지호 너 몰라?"

"넹."

어리구나 하며 훈훈하게 바라보는 형들에게 막내가 화답했다.

"저는 형들처럼 늙은 게 아니라서요."

"중현아."

"처리할까요?"

아아악… 하며 막내가 간지럽힘 당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따스한 눈으로 TV를 바라보았다.

덩치 큰 흑인 셰프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릴 위에 고기를 굽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퀭한 눈.

다크서클.

흐느적거리는 몸짓.

『고기 굽기만 3시간째…』

비극적인 클래식 음악 아래서 고통 받는 우리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리혁이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확실히 멀리서 보니까 웃기긴 하네요."

"그니까. 지금 보니 웃기긴 하다."

고기를 제대로 굽는 법을 익힐 때까지 셰프님에게 계속 불합격 통보를 받는 짠한 모습.

TV 속에서 지호가 혼신의 힘을 다해 구운 스테이크를 셰프님에게 내밀었다.

바비 로스 셰프가 한 입 맛보고는 전완근을 꿈틀거렸다.

[불합격입니다. 저의 대흉근까지 움직여지는 맛은 아니군요.]

[아아악…!]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막둥이의 모습에 현장의 스탭들과 셰프님이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도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잘 뽑혔다."

"생각보다 잘 뽑혔는데요?"

지호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근데 저는 쪼끔 아쉽긴 해요. 오버쿡까지 나왔으면 반응 완전 대박이었을 텐데…."

"그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영어 곡으로 준비 중인 .

바비 로스 셰프님에게 고기 굽는 법을 배울 때 탄생한 이 노래의 비하인드는 아쉽게도 지금은 실리지 못했다.

화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오버쿡의 발매가 다가왔을 때 해야 되는데, 아직은 조금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리하여 오버쿡의 발매일이 다가왔을 때 즈음에 뉴니버스에서 쿠키 영상처럼 슬쩍 풀 예정이었다.

-뉴블랙의 신곡 의 탄생!

그냥 너무 힘들어서 영어로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며 흥얼거렸던 노래가 명곡처럼 뽑혀 나왔다.

사람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조금 미뤄 두기로 했다.

지금은 즐기는 게 우선이었다.

"흐하하하!"

"꺄르륵!"

뉴니버스의 미식 특집 2회 차는 1회 차와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방영이 끝나기 무섭게 포털 연예란이 들썩였다.

-뉴블랙 미식 특집, 바비 로스 셰프의 무한 "No"에 멤버들 절규

-‘세계 1위 바리스타’ 라울 실바, 리혁의 재능 특급칭찬 "커피 마실 위장만 좀 튼튼했어도 훌륭한 바리스타가 됐을 것"

-개업 다가오는 도깨비 식당.. 관전 포인트 세 가지?

거기에 실시간 검색어와 포털 캐스트 영상의 조회수까지.

동생들과 덩실덩실 기쁨의 춤을 추었다.

"뉴블랙 또 대박 났다~"

"완전히 대박 나 버렸다~~"

중현이와 내가 기쁨의 짝짜꿍을 하면서 페어댄스를 추고 있을 때였다.

"리혁아. 너도 같이 추자!"

"나 내일 경연이라서요. 그리고……."

"?"

"이거 봐요."

소파에 앉아서 가볍게 율동만 추고 있던 리혁이가 우리에게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도깨비 식당’ 현장 방문 신청 조기마감, 137만 명이 지원했다

춤춘 상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흐흑……."

"대박이… 나 버렸다……."

벌써부터 도깨비 식당에 파도처럼 휘몰아칠 손님들이 상상됐다.

진짜 너무나 행복한 대박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대박’이란 단어의 뜻이 틴스피릿 식으로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대박 나면 일이 존나 많아집니다. 대가리를 박으로 깨는 듯한 고통이 찾아오는 거죠. 아프죠? 근데 쌤통이죠?

"후우……."

"후우우우……."

동생들과 한숨만 푹푹 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뉴니버스에 대한 관심은 좋은데, 이렇게 과도한 관심을 받아 버리니 벌써부터 부담 백배였다.

비주가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

"제대로 안무 숙지가 안 된 상황에서 무대에 오르는 기분이에요."

"해외에서 기념품 사 오는 걸 깜빡하고 김덕순 여사를 만나는 기분이군. 아니, 근데 왜 맨날 나만 선물을 사야 되는 거지?"

"울 아빠가 그러는데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래요. 형."

"명언이구나."

"근데 그 말하고 나서 울 아빠가 치킨값 올렸어요. 치킨 좋아하는 사람들이 져 줄 줄 알고 치킨값 한 번 올렸는데 겁나 망했잖아요."

"그런 것까진 알고 싶지 않았어…."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며 눈물을 꺼이꺼이 흘렸다.

그러곤 극복했다.

"괜찮아!"

내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어떻게든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

동생들이 감탄했다.

"훌륭한 마인드…!"

"즐기자. 어차피 고통 받는 건 미래의 우리니까."

"저기, 태클 걸려는 건 아닌데 그 미래가 고작 며칠 뒤라는 걸 명심해 줬으면 좋겠어요."

리혁이의 말을 무시하며 현실을 외면했다.

그러곤 TBC로 채널을 바꿨다.

아직 광고 타임이지만 핸드폰을 보니 벌써부터 시끌시끌하다.

[오늘 누가 이길 거 같음?]

1. 가왕 선우주 (서리혁)

2. 국힙원탑 서리혁 (선우주)

커뮤니티에서는 나와 리혁이를 두고 누가 이길지를 투표하고 있고.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서도 미션 싱어와 관련된 글들이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 막내가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며 말했다.

"확실히 투표 보니까 리혁이 형이 우세긴 하네요. 대략 7대 3 정도 느낌 같아요."

"근데 응원 분위기는 반반이야."

온라인에서 댓글 놀이를 하는 네티즌들이 보였다.

-국힙원탑 서리혁 절대 우승해ㅠㅠㅠㅠㅠㅠ

-가왕 선우주는 솔직히 거품이라고 생각함 ㅇㅈ?

-가왕선우주 자꾸 치명적인척해서 별로임..

-개그왕 선우주 아웃ㄱㄱㄱ

가왕 선우주에 대한 비난에 리혁이가 웃고 내가 침음성을 흘렸다.

"흠흠."

"크윽……."

-두루미 너무 건방짐ㅋㅋㅋㅋㅋ 가왕 선우주야 본때를 보여 주자!

-못때게 생긴 국힙 서리혁이

-부리 한대 때려 주고 싶음ㅋㅋ 아오 얄미워

국힙원탑 서리혁에 대한 비난에 내가 웃고 리혁이가 부르르 떨었다.

중현이가 물었다.

"근데 이러면 누구의 승리인 거예요?"

"……."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도 승리자가 없는 싸움이었다.

리혁이와 내가 슬픈 눈으로 막내의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있을 때.

마침내 TV에선 본방송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이런 경연은 없었다! 오직 노래를 믿고, 나를 믿고 승부한다! 미션~]

[싱어~!!]

온라인에서 시끌시끌한 응원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졸개들도 핸드폰 전광판 어플로 응원 문구를 띄우기 시작했다.

"가왕 선우주! 화이팅!"

"가왕 화이팅. 고구마뿔나방을 무찔러 주세요."

리혁이를 응원하면서 나를 규탄하는 지호와 중현이에게 입술을 비죽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편이 하나 있었다.

"국힙원탑 서리혁 화이팅."

"역시 비주……."

"얼른 아슬아슬하게 져서 얼굴 공개했으면 좋겠어요!"

"……."

이것은 응원인가. 디스인가.

아리달쏭한 응원을 들으며 <미션 싱어>의 본방송을 감상했다.

첫 무대는 바로 가왕전에 진출할 도전자를 뽑는 결승전.

[네! 3라운드 결승전입니다!]

[명품조연 장조림 VS 국힙원탑 서리혁…! 과연 그 승자는 누구일지… 지금부터 지켜보시죠!]

중계진의 호쾌한 멘트와 함께 시작되는 무대.

"우우우우!"

"우우우!"

졸개들의 야유를 들으며 괜히 몸을 웅크려 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외롭다.

슬프다.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야유를 받는 이 슬픈 세상…!

"괜찮아요. 형."

비주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저는 언제나 형의 편이에요."

"비주야…!"

그렇게 화면 속에서 두루미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을 때였다.

"저는 형의……."

말을 하려던 비주가 화면 속 내 노래를 듣고는 멈칫했다.

언제나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비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걷혀 나간다.

"비주야?"

스르륵….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가면서 더욱더 흐려지는 웃음.

"……비주야?"

전광판 어플로 [국힙원탑 서리혁♥] 띄우고 있던 비주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게걸음으로 움직였다.

털썩.

지호와 중현이 사이에 앉은 비주가 둘과 어깨동무를 했다.

"가왕 선우주 화이팅."

"잘 왔어요. 형! 우리 같이 우주 형을 디스해요!"

리혁이가 대만족한 얼굴로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가운데, 나는 슬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 *

2010년대 들어서 우후죽순으로 난립한 가요 경연 프로그램.

최고의 실력파 가수들이 등장해서 보컬 실력을 뽐내거나, 일반인들이 가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 등의 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방송에서 보기 드문 포맷이 아니었다.

요즘에는 하도 많이 나와서 시청자들이 ‘또 비슷한 거 나왔네…’ 할 만큼 흔한 지경.

하지만 그럼에도 방송국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계속 런칭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노래 부르고 경쟁하면 기본 시청률은 나온다.

그리고….

다양한 경연 프로그램들이 활약했던 전성기의 화제성을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와! 차우현이랑 윤찬혁이 붙는데…!

-어제 봤어? 진짜 장난 아니더라.

-판정단 막귀 아닌가? 어떻게 게다가 점수를 퍼줄 수가 있지?

가요 프로그램에서 누구와 누구가 맞붙는다는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었던 시기.

하지만 18년도인 지금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화제가 되어도 미튜브 상에서 인기 있는 클립이 되는 정도.

TBC의 인기 예능 <미션 싱어>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출연자가 역대급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도 어언 2년 전. 지금은 누가 우승을 해도 우승했구나 하는 정도였다.

가왕 선우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녕하세요! 가왕 선우주입니다!

뉴블랙의 리혁이 우주라는 이름으로 등장해서 어그로를 끌더니 역대급 실력을 선보였다.

당연히 1차적으로 시청률이 폭발했다.

사실,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와 미쳤다…!’ 하면서 적당하게 화제가 되는 수준이었을 텐데.

"선우주까지 등장을 해 버렸네."

"진짜…."

방송 관계자들이 TV 속에서 잔망스럽게 춤을 추는 두루미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거 미싱 시청률 몇 나올까?"

"잘하면 20퍼센트 대까지도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 경쟁 드라마가 있는 시간대도 아니고."

"지금 TV가 틀어져 있는 데라면 다 틀어져 있다고 봐야지."

당장 그들이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호프집만 해도 TV에서 <미션 싱어>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빵빵한 볼륨으로 틀어져 있고.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직관하듯이 치킨을 집은 기름진 손가락으로 맥주를 들이켜고 있다.

‘대박이다….’

방송 관계자들이 감탄했다.

‘진짜 PR 천재인가?’

지금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가수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달랐다.

<미션 싱어>를 현재 월드컵 경기처럼 화제성을 가지게 만든 전략이었다.

‘국힙원탑 서리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서 뉴블랙 대 뉴블랙 구도를 만들고… 미튜브로 국힙원탑 서리혁으로 컨텐츠 만들어서 홍보하고…….’

자신이 아끼는 동생을 위해 흥행사로 나선 우주.

리혁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적당히 핫했던 <미션 싱어>가 지금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근데 너무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방송 관계자 중 하나가 치킨 날개를 집으며 말했다.

"아무리 전략을 잘 세워도 결승까지 못 가면 소용없는 거잖아요? 이것도 실력이 뒷받침되니까 가능한 거죠."

"그건 그렇지…."

"두루미 노래 부르는 거 보면 무조건 가왕전까지 갈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방송 관계자들이 공감했다.

‘하긴….’

‘전략보다는 실력에서 나오는 화제성이라고 봐야겠군.’

누가 나오든 자신은 가왕전까지 갈 수 있다는 선우주의 자신감에 잠시 감탄이 나왔다.

"그래 놓고 결승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리혁에게 지는 그림을……."

그린 거 아니겠냐 하는 말을 하려고 한 순간.

3라운드에서 미친 두루미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

"어어……."

쩌렁쩌렁한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목소리.

여기저기서 ‘와-’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동안 TV를 보고 있던 모두가 눈을 깜빡였다.

‘이기러 나온 건가…?’

‘질 생각이 없었나?’

지난주까지만 해도 분명 동생을 도와주러 나온 분위기였는데.

본 경연에서 장난 없이 불러 대는 국힙원탑 서리혁이었다.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왤케 잘함??

-리혁이 마음 타들어 가는 게 보인다 보여ㅋㅋㅋㅋ

-가을 노래 선곡 미쳤다.. 나는 좋아서 막 웃는데 울 아빠 지금 훌쩍이고 잇음

-근데 왜 서리혁이 견제하는지 알겠다ㅋㅋㅋ 걍 우주는 실시간으로 진화를 하는데..?

-ㄹㅇ

시청자들도 같이 웅성거렸다.

"진짜 리혁이는 우주 빨리 안 잡으면 힘들겠다. 애가 저 짧은 시간 동안 실력이 더 늘어서 오네."

"그니까."

"캬. 턱 밑에 비수처럼 훅 들어오네."

어마어마한 득표차로 장조림을 잡고 올라간 두루미.

이윽고 시청자들이 한 주 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투샷이 흘러나왔다.

[국힙원탑 서리혁 VS 가왕 선우주]

시청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대박….’

‘이제 본 게임인가!’

첫 시작은 도전자인 국힙원탑 서리혁의 <위성>이었다.

모두가 목울대를 꿀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잔잔한 파란 조명 아래서 두루미 가면이 마이크를 든다.

『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유명한 시 구절을 짧게 독백으로 읊조린 우주의 목소리에 캬-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기에 본무대로 들어서면서 한층 더 탄성이 커졌다.

쓸쓸한 목소리로 무대를 지배하는 우주.

"아, 미친."

"시발, 행님……. 행님 작작 하십쇼."

"하씨… 차트 또 조졌네."

뉴블랙의 아랫집에 사는 미소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한탄을 하고.

"연습… 연습하러 가자."

"나 한 세트만 더."

"가자. 감나무."

"나는 래퍼인데 왜애애…!"

"너 토템."

덤벨 운동을 하고 있던 스트릿 보이즈의 보컬들이 애착인형을 끌고 연습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잔잔한 기타 선율 속에서 나지막이 선우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연예계에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우주 아이돌 평균치 올리지 말라고….’

‘선배님들… 우리 좀 같이 먹고 삽시다…….’

‘아 뒷목이랑 고기 땡겨.’

다들 선우주의 노래를 들으면서 햐… 세상… 하고 있을 때.

"……."

"……."

연습실에 쪼그려 앉아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던 TNT 멤버들도 주르륵 입가에 초코를 흘렸다.

막내인 석지훈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차트 순위 3개는 하락하겠는데…."

"왜 3개야?"

"우주 형 노래 두 개랑 리혁 씨 노래 하나."

"그…래도 3개 정도면 선방이지~"

리더 구선웅이 어색하게 하핫 웃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한태현이 ‘너희들은 아직도 모르냐’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3개가 아니야."

"?"

"내가 저 형을 아는데… 3개로 안 끝나."

아무도 뒤에 <밤바다>가 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만큼 정확한 추리였다.

그렇게 동료 가수들의 한탄을 이끌어 낸 우주가 고음을 높여갔다.

외로움의 끝에서

배회하는 너를

빛나는 모습으로

기다릴 테니

눈부신 조명 아래 빛나고 있는 두루미는 정말로 청춘 그 자체였다.

떠나보낸 청춘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래의 클라이막스가 나오면서 현장 반응이 눈에 들어온다.

울고 있는 중년 관객, 와… 하며 감탄하는 커플, 입가에 두 손을 올리고 있는 어느 여성 관객.

비슷한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짜 모르겠다 오늘 가왕전

-아니 우주 리혁이 띄우러 나온 거 아니었냐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생을 도와주러 오기는 한 듯 ㅇㅇ 근데 이제 힘조절을 개못하는 형ㅋㅋㅋㅋㅋㅋㅋ

-아.. 나 지금 투표하면 우주 표줄거 같은데

-그야 리혁이는 아직 무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끄덕)

바로 그때.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두루미가 내려가고, 무대 위에 가왕이 망토를 펄럭이며 올라왔다.

선우주의 스펙타클했던 무대가 마침내 끝나고 가왕이 화답할 시간이었다.

과연 무슨 노래를 부를지 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밝고 경쾌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음…?"

"저거 그거 아닌가? 드라마 OST?"

2000년대 초반에 차우현이 불렀던 인기 드라마의 OST였다.

잔잔하고 경쾌하게 시작하면서도 벅차오르는 노래.

"?"

"??"

어마어마한 곡을 들고 올 것이라 생각한 시청자들의 예상이 와장창 깨졌다.

‘저런 걸로 되려나? 나는 좋긴 한데…….’

콘서트의 엔딩곡처럼 신나게 부르는 노래.

쉬운 노래는 아니지만 방금 전 고음으로 열창한 우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선곡이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 어떤 일이 있을까

무슨 일이 있을까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은 다를지도 몰라

설렘을 부르는 시원시원한 목소리.

해바라기 가면을 쓴 리혁이 고음을 높이기 시작하면서 모두 판단을 바꿨다.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지컬로 밀어 버리기ㅋㅋ 미ㅕ따

-역시 노래를 잘하면 선곡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 왤케 잘 불러

그동안 계속해서 올라가는 시청률.

맏형이 온 힘을 다해 깔아준 무대 위에서 서리혁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기량을 펼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내 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봐

손을 길게 쭉 내밀며 청량한 목소리를 터뜨리는 서리혁.

"20퍼센트 돌파했습니다!"

"21퍼센트!"

"22…!"

TBC 주조정실에 있는 직원들이 흥분해서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순간 최고 시청률을 외쳤다.

찜질방, 회식 자리, 술집, 기차역 대합실 등등.

그야말로 전국의 모든 시청자들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레몬 엔터의 사옥에서 지켜보고 있는 어느 5인조도 그 반응을 즐기며 웃고 있었다.

"리혁아. 지금 이 반응이 보이니? 형이 너의 보컬 실력을 세상에 알려 주고 있단다…!"

"아이, 자꾸 귀에다 소리 지르지 마요!"

"어때? 어떠니?"

흐하핫 방정맞게 웃으며 ‘네가 너를 띄워 줬다!’ 하며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뉴블랙의 리더.

잔뜩 생색을 내는 맏형을 바라보며 서리혁이 뺨을 긁적였다.

그러곤 작게 웃었다.

"……뭐, 고마워요."

서리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 * *

두 가수의 명승부가 끝나고 마침내 가왕이 결정되는 시간.

[국힙원탑 서리혁 46]

[가왕 선우주 54]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표차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오고.

TV 속 현장에서 ‘50대 50으로 재경기…!’ 하며 부르짖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을 때였다.

국힙원탑 서리혁에게 목걸이를 건네받은 서리혁이 새로이 가왕으로 등극했다.

[네! 저는 이제 서리혁 씨에게 받은 국힙원탑 칭호와 함께 다시 가요계의 왕에 등극했습니다! 오늘부로 저는 국힙원탑이자 가왕 선우주입니다-!]

해바라기 가면이 누군가를 따라 하며 방정맞게 웃는다.

그러던 가왕 선우주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전자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저 가왕 선우주는 언제나 도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꺄르륵!]

본래였다면 그냥 예능용으로 넘어갈 드립이었다.

하지만….

‘호오.’

‘호오오… 가요계의 최강…?’

지금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 중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본래라면 관심을 안 가졌을 사람들이지만….

-꺄륵! 국힙원탑 서리혁이에용!

선우주가 역대급 어그로를 끌어서 홍보를 해 준 덕분에 오랜만에 TV를 켠 인물들이 있었으니.

‘요즘 애들 무대는 오랜만에 보네.’

대한민국 보컬리스트의 황금기로 불리는 70-80년생 세대의 노래 고수들이었다.

‘흐음.’

‘잘하네. 리혁 씨.’

발라드 가수인 더 문, 그리고 연.

‘어머, 애기 귀엽다.’

‘간만에 잘 부르는 애가 나왔는데…?’

락 분야의 최강자로 꼽히는 최유진, 백시연 등등.

대한민국 보컬 최강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지금 서리혁의 멘트가 이렇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소! 선배들! 내가 바로 이 가요계의 천하제일인이오! 크하하하하!

실로 광오한 웃음소리.

-내게 비무를 신청하고 싶은 늙은이들이 있거들랑 이리로 오시구려!

천하제일 가요대회를 휩쓴 후기지수가 전대의 고수들을 향해 손을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이들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홀홀홀… 젊은 후기지수의 패기가 마음에 드는군.’

‘젊음이로고!’

‘나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구나!’

오랫동안 숨 죽여 있던 전대의 기인들이 서리혁의 도발에 몸을 꿈틀꿈틀하는 가운데.

이들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

등장하기만 하면 가요 프로그램에 혈겁을 일으키는 은거 기인이 몸을 스으윽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으으음."

발라드 최강자.

연습실에서 득음을 연습 중이던 차우현이 조용히 눈을 떴다.

그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 속에서 가요계 후배가 올 테면 와 보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겠군.’

가요계의 최강자가 몸을 스르륵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전대 고수들.

‘한 번 출정을 나가볼까.’

‘요즘 아해들은 재미있게 노는군! 하하하!’

‘최강이라… 슬슬 가려 볼 때가 됐지.’

본래였다면 소소하게 관심을 끌고 끝났을 이벤트였겠지만….

-꺄르륵! 동네 사람들! 이거 보세요! 우리 리혁이 노래 잘하죠? 우리 애가 세계 1등이에요!

맏형의 애정 어린 홍보 때문에 받지 말아야 할 관심까지 받게 된 뉴블랙의 메인보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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