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06화
"어……."
벙찐 얼굴로 바라보는 구재영 피디님에게 우리가 물었다.
"어떠신가요!? 피디님?"
"그……."
산적 같은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대단하긴 한데… 그냥 사람을 쓰면 될 일 아니었을까? 알바생 하나 고용해서."
"저희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는데요."
고민 끝에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게스트를 불러서 예능용 재미를 뽑는 기획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건 정말로 식당을 운영해야 하는 프로젝트니까.
"지금까지 저희 다섯이서 도깨비 식당 데뷔조 연습을 하면서 합을 맞췄잖아요. 그런데 이제 며칠도 안 남았는데 갑자기 제6의 멤버가 합류하면 뭔가 좀……."
"음, 일리 있어."
"그리고 저희끼리는 피드백이 쉽잖아요."
우리끼리야 영업이 끝나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서 ‘지호야, 여기 앉아 봐’ 하면서 바닥을 탁탁 두드리면서 해야 할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막상 게스트를 불러 놨는데 재미만 있을 뿐, 일 처리가 우리 기준에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견우 선배가 서빙을 하는데 우리가 슥 불러내서 ‘선배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후후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호가 말했다.
"그랬다간 건방진 후배로 낙인찍히고 말 거예요…!"
"맞아!"
"이제 알바생들과 영원히 멀어지는 거죠. 고작 예능에서 3, 4일 일하는 거면서 사람을 쥐 잡듯이 잡더라, 텃세 부리더라 하는 뒷말이 나오고…."
구재영 피디님이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야구 모자를 고쳐 썼다.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일리 있어. 내가 주세한 할 때처럼 생각을 했나 보다."
출연진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예능인, 배우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주세한과 달리 우리는 애초부터 아이돌 한 팀이니까.
어떤 일을 할 때의 응집력이 다르다.
과거 주세한의 출연진 일곱 명에 게스트를 더해 ‘7+1=10’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5’가 너무나도 완벽해서 거기에 ‘5+1’이 된다고 해서 시너지가 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저희끼리 어떻게 업무량을 좀 줄여볼까 하다가 이런 방법을 찾았어요."
저번에 셰프님에게 받았던 피드백을 토대로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리혁이와 힘을 합쳐서 전산화를 하고.
테이블에는 차임벨을 깔아둬서 홀 담당들이 빨리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마련을 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으음… 그렇구나."
다섯 명이서도 충분히 운영 가능한 도깨비 식당을 만들었지만 구재영 피디님의 표정은 살짝 애매했다.
"왜 그러시나요?"
"다른 기획사들한테 혹시 알바생 관심 있냐고 떡밥을 뿌려 뒀거든. 물론 확정은 아니고 식당 상황이 너무 바쁘거나 할 때 우리가 호출을 해도 되겠느냐 하고 미리 연락을 돌렸는데."
"어, 어디로……?"
"너희랑 친한 동료들이 있는 기획사들한테…?"
"……."
그 말에 우리가 핸드폰을 들었다.
머릿속의 프로세스가 반짝반짝인다.
[기획사들에게 알바생 떡밥이 돌았다]
→ [친구나 지인들도 소식을 들었다]
→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 [짜잔! 그런데 ‘님들 필요 없어요’ 해야 한다]
간만에 메신저를 켠 우리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사랑해요 단장님♡]
[행님들과 저희의 우정 뒤질 때까지]
[요즘 재미있는 소문이 돌던데.. TNT도 줄 서 봅니다.]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고양이 떼가 자기한테 츄르를 주는 줄 알고 잔뜩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손에 들린 것은 츄르가 아니라 짜요짜요였다.
"야. 이거 어떡하냐."
"……."
"……."
동생들과 내가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눈앞이 막막했다.
* * *
사과문의 기본은 무엇인가.
아직까지는 다행히 사과문을 써야 할 일을 한 적이 없지만 미리 양식을 준비해 둔 건 있다.
첫 번째.
일단 내가 누구인지 소개하고 고개를 조아린다.
"안녕하세요. 대역 죄인 뉴블랙입니다."
두 번째.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을 얼마나 반성하는가.
"여러분의 마음을 덕순덕순하게 만들어 놓고, 리혁리혁하게 만든 점 깊이 사죄 드립니다. 이에 대해 변명할 생각이 없으며 굉장히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재발 방지 약속하기.
"앞으로는 여러분의 가슴이 설렐 일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깊이 뉘우치며 앞으로 더 좋은 활동으로…."
동생들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더 좋은 연기."
"더 좋은 랩."
"더 좋은 보컬."
"더 좋은 춤."
"예, 뭐 그리고 저는 더 좋고 멋진 곡으로 보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사과문의 정석을 보여 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 지인들의 반응은.
-우우우우우!
…최악이었다.
-나쁜 사람들!
-더 좋은 곡으로 보답?? 더 좋은 곡? 그게 무슨 보답이에요! 차트 점령하려고 나오는 거지!
-하여간 단장님 인성….
사과를 했지만 굉장히 욕을 먹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꿋꿋하게 영상 통화를 돌려 가며 지인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야!
-야! 너희 우리가 안 무섭다는 거야?
험상궂게 바라보는 4인조 선배 걸그룹에게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안 무서울 리가요."
"예로부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격언이 있죠. 하지만…."
지호가 상큼한 윙크를 날렸다.
"지금은 멀죠?"
-…….
"서울과 구례 간의 거리 263km? 리혁이 형이 그랬어요."
-왕지호! 서리혁…!
"아니 왜 갑자기 나한테……."
대충 화살을 리혁이와 지호에게 돌린 것을 확인하고는 리더인 아라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럼 또 봬요. 누나~ 제가 나중에 고기 사 드릴게요."
-응~ 나중에 봐.
-왕지호오오오!
그렇게 우리 회사 선배를 시작으로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본 민초단은 단장에게 실망했다!
-민초단장의 자격이 없다! 사퇴해 주세요~!
-재신임투표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톡방에서 무기명으로 재신임 투표를 했다.
서기를 맡은 한조가 ‘에…’ 하면서 도수 없는 안경을 고쳐 썼다.
-에… 만장일치로 선우주가 제37대 민초단장에 재신임이 된 것을 발표합니다. 땅땅.
한조가 미니 요술봉으로 바닥을 땅땅 쳤다.
열렬하게 박수를 쳐 주는 동생들 앞에서 내가 양팔을 펼쳤다.
"감사합니다. 단원 여러분…! 더 강한 민초단! 청렴결백한 민초단이 되도록 저 선우주가 노력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아?
"와아아… 엥?"
그렇다.
나는 재신임 투표를 통해 다시 집권했다.
스보의 LB가 나의 앞잡이가 되어 간신 노릇을 하다가 멤버들에게 진실의 방으로 끌려간 후.
내가 한조에게 말했다.
"다음에 재미있는 기획 있으면 불러 줄게."
-근데 진짜 다섯이서 괜찮겠냐?
"안 괜찮지…. 며칠 동안 나는 죽었다 생각하고 일하려고."
-힘내라…….
절친의 응원을 들으니 나름대로 힘이 났다.
그렇게 스보와 통화를 종료하고, 너무 바빠서 오지도 못하지만 괜히 흥칫뿡 하는 TNT의 동생라인을 달래 주는 한편.
"은성아."
-예?!
"바쁘니?"
-예?! 아뇨! 무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에요~ 근데 왜요?
화면 속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
물총을 쏘는 썸머 페스티벌에 참가했는지 잔뜩 젖어 있는데, 물 때문에 귀가 잘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흣차흣차!
고개를 꺾어서 깡총깡총 뛰며 귀에서 물을 빼는 은성이에게 말했다.
"은성아. 그렇게 됐다…."
-예?
"그래. 잘 살고. 힘내고 화이팅."
-예…? 병장님 뭐 잘못 드셨…….
띠롱.
은성이네 소속사는 피디님에게 연락을 받지 못했지만 그냥 내가 심심해서 ‘미안하다…’ 하고 끊었다.
톡으로 [아 뭔데요ㅠㅠㅠ] 하는 이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의 군 후임은 뭐라고 할까. 놀려먹을 때 타격감이 굉장해서 언제나 즐거웠다.
"자, 그리고 이제 마지막……."
"후우우우……."
대망의 마지막 순서.
영상 통화를 걸기 전에 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설마 우리한테까지 욕은 안 하겠지?"
"마음속으로 하지 않을까요?"
데뷔를 너무나 일찍 해서 사춘기가 늦게 온… 우리의 질풍노도 20살짜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뚱한 얼굴들이 우릴 맞이했다.
-누구세요? 저희 아세요?
"2012년에 데뷔해서 아이돌 판에 비주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현재 일본에서 5대 돔 투어를 도는 우리 틴스피릿 선배님 아니십니까?"
-…….
추파춥스를 불량하게 물고 있던 10대 소년들이 유치원생들처럼 사탕을 우물우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기들을 안 불러 줘서 서운하다는 말에 내가 물었다.
"그 전에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어. 얘들아."
-뭔데요?
"너희 알바 해 본 적은 있니…?"
-아뇨.
틴스피릿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데뷔했을 때가 15살인데요. 알바하면 사장님들 손목에 은팔찌 차는 나이였는디…….
"엄밀히 말해서 고용인이 취직인허증을 사업장에 비치하면…."
모두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리혁이가 ‘뭐요’ 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리혁이에게 틴스피릿의 연후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행님.
"어…?"
-진짜 갑분싸시네요.
우리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갑분싸…?’ 하며 지호에게 설명을 듣고 뒤늦게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틴스피릿에게 추가 질문을 던졌다.
"자, 만약에 손님이 컴플레인을 걸면?"
-정당한 불만이면 해결하고 진상이면 싸워야죠. 저희가 이래 보여도 존나 찜닭입니다. 후후후후.
-쌈닭. 멍청아. 대가리 장신구세요?
싸우려는 이들을 말리며 내가 상황을 하나 더 제시했다.
"근데 이제 손님이 너희보다 더 세."
-스읍, 어떻게 이길 방법이 없으려나.
"스칼렛이야."
-다시 생각해 보니 손님과 싸운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짓거리였네요. 존나 정중하게 사과 드려야죠.
그렇게 틴스피릿과의 면접에서 탈락 통보를 한 후.
"아이고야…."
"힘들구나……."
30분 가까이 지인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린 우리에게 구재영 피디님이 물잔을 건네며 물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미안하다고 연락을 돌릴 필요가 있니? 그냥 우리 통해서 연락하면 될 텐데."
"아. 이 친구들은 VIP라서요."
구 피디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VIP?"
"네. 지금 이렇게 연락을 돌리면서 나중에 꼭 불러 주겠다고 그랬잖아요. 저쪽에서도 알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치?"
"언젠가 분명 식당 특집보다 더 힘든 일이 찾아올 거예요."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보는 시청자들은 즐겁지만, 저희는 엄청 힘들고 눈물 나고 그런 특집이 있겠죠."
"하지만 혼자 당하지 않는다면 덜 슬프지 않을까요?"
"여럿이서 같이… 당한다면?"
"!!!"
구재영 피디님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거였구나! 하하하!"
"그렇습니다! 꺄르륵!"
예능에 살고 예능에 죽는 남자 구재영.
그리고 절대 혼자 죽지 않는 우리 뉴블랙.
식당 안에서 소품을 체크하는 작가님들이나 다른 조연출 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가운데.
"꺄르르륵!"
"하하하핫!"
도깨비 식당에 우리의 발랄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 * *
작가진이 인테리어 소품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감독님들이 카메라를 설치한 동선을 확인하고.
[도깨비 식당]이라는 근사한 현판이 붙은 식당에서 한창 촬영 준비가 이뤄지는 한편.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는 본격 식당 영업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동생들과 함께 멘트를 날렸다.
"여행 어디로 가지?"
"그래, 구례!"
구례군의 관광 홍보 멘트를 날리면서 환히 웃었다.
-구례군 홍보.
군청에서 붙여 준 구례 토박이 출신인 문화해설사 분과 함께 열심히 구례군을 홍보했다.
목울대를 꿀꺽이며 바짝 긴장하던 중년 해설사님이 어색하게 대본대로 상황극을 했다.
원래는 ‘아이고, 우리 선우주 씨!’ 하고 해야 되는 상황.
"아이고. 우, 우리 산수유!"
"흐하핫!"
"예, 안녕하세요. 산수유입니다!"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구례군의 명물인 산수유랑 내 이름이 섞였는지 혼선이 온 해설사님의 얼굴이 벌게졌다.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눈 후, 본격 구례군 탐방이 시작됐다.
"구례 하면 정원의 도시거든요. 노고단도 하늘정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직 등록은 안 됐지만은 구례 쌍산재가 조만간 전라남도의 다섯 번째 민간정원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정말이지 경치가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행사 때문에 오거나, 혹은 맛집을 찾아온 적은 있어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구례를 둘러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구례가 가장 예쁠 때는 이 벚나무들에 단풍이 피는 가을 무렵이거든요. 아니면 산수유 축제가 있는 봄이라든가."
"그치만 여름도 충분히 예쁜 거 같은데요?"
"그렇죠. 이제 대나무숲을 보러 가실까요? 담양에 가려지긴 했지만 구례도 대나무의 고장이거든요."
"대나무 숲…!"
"쏴아아- 하고 대나무 소리가 들리면 정말…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걸 힐링이라고 한다죠?"
길쭉길쭉 솟은 대나무들로 가득한 섬진강변의 대나무 숲에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임금님은 당나귀 귀!’ 하는 설화도 따라 해 보고.
"여기가 화엄사입니다. 가람배치가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죠?"
구례군의 유명한 사찰인 화엄사와 천은사, 그리고 숨은 명소라는 오봉정사 가는 길도 탐방하고.
14년도에 개관했다는 산수유문화관에 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이곳을 배경으로 할머니랑 영상 통화를….
"덕순~~"
"할머님 안 받으시는데요?"
"흥……."
비록 영통은 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김덕순 여사와 나중에 봄에 같이 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쁜가?"
"한창 바쁘실 때 아닐까요."
그렇게 해설사님을 따라 구례군의 유명한 곳들을 방문했다.
"여기는 매월 3일이나 8일에 열리는 구례 5일장입니다."
"오오오오!"
구례읍에 있는 구례 5일 시장도 방문했다.
"우와아아… 이거 얼마예요?"
비주가 눈을 빛내며 여러 식재료를 구매하고.
중현이는 대장간에서 직접 수제 제작한 호미를 할아버지에게 드릴 선물로 샀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어서 그런지 복작복작한 인파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안녕하세요!"
"잘 왔다. 얼른 이리들 와 봐봐라. 구례에 왔으면 이 산수유 막걸리 한 번 마셔 봐야지~!"
낮술을 하셨는지 벌건 얼굴로 막걸리를 주시려는 어르신이 할머님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아! 우주는 술 마시면 확 가 부러~!"
"까불어?"
"애가 죽는다고!"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어르신들과 주변 어른들에게 안부 인사를 올렸다.
"그래. 미국에서는 괴롭히는 사람 없고?"
"아, 뭘 그런 걸 물어봐~ 있으면 뭐 우리가 어쩔 건데."
"뭘 하긴. 그냥 같이 욕해 주는 거지~ 못된 놈들 하면서…."
친척들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뭔가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에 화답하듯 우리도 시장 한복판에서 트로트를 열창했다.
"아이고, 고와라."
"애기야. 애기. 어쩜 저리 애들이 귀여울까."
"우리 손녀 사위로 합격."
굉장히 뜨거운 반응이 나왔다.
우리가 어르신들에게 평소 예쁨 받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특수한 상황도 끼어 있어 그런 것 같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우리의 식당 프로젝트에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블랙이들아!
-네!
-이제 우리 같이 구례군을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자꾸나!
-네!
대충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례군 주민들과의 미팅을 종료했다.
주세한 때부터 영상미 좋기로 유명한 우리 제작진이 분주하게 구례군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는 한편.
해설사님이 말했다.
"출출하시죠? 이제 구례군의 맛집을 찾아가 볼까요?"
"저, 해설사님."
"네?"
"저희가 미리 식당을 알아왔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나요…?"
지인들과 수플레들의 정보를 종합해 우리가 가고 싶은 식당들 목록을 건네드렸다.
구례군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토박이 해설사분이 놀라운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아니, 이건……!"
"정확한가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네요. 마지막 디저트로 목월빵집까지 찾아가는 리스트… 완벽합니다."
"정확하다니 다행이네요. 요즘에는 저희 팬분들이 맛집을 잘 안 알려 주려고 하셔서요."
"왜요?"
"저희가 가면 단골집을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앗……."
아무튼 수플레들의 도움으로 맛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슬기 요리. 돼지 두루치기. 버섯전골. 가오리찜 등등.
특히나 가장 감동한 것은 한정식 백반이었다.
"으허어어……."
볼에 음식을 가득 머금은 막내가 눈물을 흘렸다.
"저 구례에서 살래요."
"우리 다 같이 살자…!"
여러 지역들마다 다 특색이 있긴 하지만 이 전남 쪽의 백반은 정말 세계 최고인 것 같다.
여수 쪽이 게장을 베이스로 하는 백반이라면 이쪽은 이제 떡갈비와 다양한 고기 메뉴를 기반으로 한 백반이었는데, 정말 먹으면서 동생들과 감동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렇게 맛난 식사로 구례군의 탐방을 종료한 후.
다시 도깨비 식당으로 돌아온 우리는 식당 준비로 돌아갔다.
"하아… 막막하구만."
"그러니까요."
영업을 앞두고 잔뜩 긴장된 기분으로 식당에 섰다.
마치 데뷔를 앞둔 기분.
"으으으으!"
"으이이이이!"
우리가 펭귄처럼 한데 모여서 으으 하고 있을 때였다.
카메라 뒤에서 작게 웃고 있던 구재영 피디님이 공지사항이 있다는 듯 말했다.
"다들 첫 장사를 앞두고 막막하시죠?"
"네!"
"저희가 그런 여러분을 위해 오늘 아주 특별한 멘토 두 분을 모셨습니다."
"??"
구재영 피디님이 기대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대한민국 요식업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인데요. 여러분이 얼굴만 봐도 아는 분들입니다."
"셰프님들인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지- 라는 말이 나오려고 하는 그 순간.
"어?"
카메라 뒤편에서 스윽 하고 나타난, 훈훈한 인상의 중년 남자에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특히 지호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아빠?!"
"하하. 호호치킨 왕현탁입니다~"
그리고 지호네 아버님을 본 순간.
-오늘 아주 특별한 멘토 두 분을 모셨습니다.
그 말에 나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지호네 아버님이 나왔고, 다른 한 명이 더 있다는 뜻은…….
"짜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세월을 머금은 얼굴이 등장했다.
세련된 사업가처럼 치장한 김덕순 여사가 선글라스를 착 벗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했다.
"미녀 등장."
스탭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할머니이이이이이이-!"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 할머니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