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07화 (1,00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07화

내 머릿속에 사전이 있다면 아마 첫 번째로 등재될 단어는 바로 김덕순이 아닐까 싶다.

김덕순 (金德淳)

[명사]

1. 이 세상의 으뜸인 것

2.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손자를 둔 인물을 지칭하는 단어

만약 평행세계에 선우주만 모여 사는 선우주 월드가 있다면 김덕순이란 단어는 정말 여기저기 쓰일 것이다.

김덕순급 항공모함!

김덕순급 좌완투수!

지금 내가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맞다.

나는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에헤헤헤헤헤!"

아. 행복하여라.

"에헤헤헤헷!"

따스한 품에 꼬옥 안겨 있자니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익숙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동생들과 약간 신기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제작진.

내 귓가에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응. 할머니~"

"좀 떨어져 봐봐라."

"……."

"어휴, 더워 죽겠네. 이놈의 껌딱지 같은 거."

흥- 하면서 포옹을 풀고는 김덕순 여사의 손을 붙잡았다.

나와 할머니가 손을 맞잡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호네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아들내미를 바라보셨다.

‘아들.’

‘놉.’

아버님이 슬픈 얼굴로 걸어오셨다.

그동안 동생들이 게스트들을 반겼다.

"와아아아- 할머님!"

"할머님! 오랜만이에요!"

동생들의 인사에 할머니가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짓고.

"아버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왕현탁 회장님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곁에 섰다.

멤버들 가족들과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 안부 인사가 오가는 한편.

영문을 모를 시청자들을 위해 게스트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이분들이 등장하셔서 누군가 하고 시청자 분들께서 궁금하실 텐데. 저희가 간략하게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작가진이 스케치북으로 키워드를 써서 들어 보였다.

- 매출 1위

- 창업 신화

- 모범기업인상

- 가맹점 수 1위

"네, 자그마한 치킨집으로 시작해서 창업 신화를 쓴 기업인이죠. 매출 1위! 가맹점 수 1위의 치킨, 프랜차이즈 호호치킨의 왕현탁 회장님입니다!"

"하하."

"그리고 저희 막둥이 지호의 아버님이기도 하십니다."

"예, 반가워요~"

머리를 반듯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의 중년 기업인이 인사를 했다.

막내아들만큼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소싯적에 한 외모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얼굴.

지호의 표현에 따르면 이랬다.

-약간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 같은데 혹이 없는 그런 느낌? 놀부인데 놀부가 잘생긴 그런 느낌?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그때 지호가 엥? 하고 말했다.

"근데 울 아빠 맨손 창업신화는 아닌데?? 할아버지가 치킨집 차려 줘서 성공한 거예요."

"!"

아버님이 창피한 얼굴로 말했다.

"아들…."

"아니아니, 아빠. 요새 집안 덕으로 성공했는데 혼자 성공했다고 그러면 악플 달리고 그래."

"그래?"

왕 회장님이 솔깃한 얼굴로 다시 멘트를 했다.

"아들 말이 맞습니다. 저희 부친께서 ‘막내 저거저거…’ 하시면서 차려 주신 치킨집 덕분에 여기까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보고 계시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러브 유!"

카메라를 향해 하트를 그리는 부자의 모습에 다들 작게 웃었다.

잠시나마 지호의 이런 모습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비주가 스케치북을 흘깃 하고는 말했다.

"최근에 모범 기업인 상을 수상해서 청와대에서 만찬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아, 예. 맞습니다."

아버님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하는 동안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솔직히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아버님이….’

‘모범 기업인??’

분명 데뷔 초에만 해도 그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호를 통해 가끔씩 듣는 아버님의 경영 전략만 해도 굉장히 음험한 것들투성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어느 새인가부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님이 모범 기업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호호치킨 왕현탁 회장, ‘모범납세자’ 기재부 장관 표창

-[人터뷰] ‘착한 경영’ ESG 경영 모범 사례 보여 준 왕현탁 회장.. "뭐가 남냐고요? 사람이 남죠."

-치킨 프랜차이즈 평판지수 1위 호호치킨, 1분기 실적 호조에 ‘상한가’

아버님이 어떤 연유에서 갑자기 경영 스타일을 바꾸신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때문인지 원래 치킨 프랜차이즈 3위 정도였던 호호치킨이 1위로 우뚝 서 있었다.

착한 경영을 했더니 매출이 역대 최고점을 찍은 상황.

이렇듯 세상살이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우리 아들 덕분에 참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대단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와 보고."

"에헷!"

"그렇습니다. 우리 아들 최고…!"

"나도 우리 아빠 최고…!"

금세 기분이 업된 지호와 아버님이 서로를 껴안고 꺄르르 웃었다.

그렇게 부자간의 애정이 폭발하고 있는 한편.

내가 김덕순 여사를 소개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요식업 성공 신화를 쓴 인물이 있습니다."

"The Queen of 백반."

중현이의 코멘트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뉴불백 레시피의 창시자. 군산 최고의 백반 맛집을 운영하고 있는 백반 마녀… 아, 마녀래. 백반 미녀! 우리 김덕순 대표님이십니다!"

"김덕순이여요."

사교계에 데뷔탕트한 사람처럼 수줍게 인사하는 할머니.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투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네가 대신 옘병해 줄 거 아니면.’

평소 뚱한 표정이 기본인 김덕순 여사가 자본주의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못마땅했다.

저런 아름다운 미소가 있다면 무릇 손주에게 보여 줘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

비주가 화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할머님. 이번이 첫 예능 출연으로 알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그… 테레비는 몇 번 정도 나와 보긴 했는데, 이렇게 왕따시만한 프로에 나오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구 아주 좋습니다."

왕따시만한(?) 이라는 표현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릴 때.

내가 구 피디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머니. 저분이 구재영 피디님이야. 나 예전에 <주세한> 때 예쁘게 찍어 주셨던 분."

"반가워요~"

산적 같은 외모의 총연출자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구재영입니다’ 하고 인사했다.

다른 제작진들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할머님, 저희 저번에 남극 패딩 잘 받았습니다!"

"저희 꼭 남극 갈게요!"

누구야? 누가 남극 소리를 내었어?

우리가 제작진을 째려보고 있는 동안 김덕순 여사가 카메라 앞에서 살짝 쑥스러운 얼굴로 소감을 이어 갔다.

"여기 우리 왕 회장님이 말씀혔지만은 저도 참 좋습니다. 요즘에 인생이 참 재미나졌어요."

"헤헤."

"그려요."

김덕순 여사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제가 손주를 잘 키워서 그런 거 같습니다. 쌔빠지게 고생해서 키워 놓은 보람이 있어요."

"……."

내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역시 우주 할머님이다’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동안 우리를 보더니 ‘우린 저기와 달라!’ 하며 애정행각을 벌이는 부자.

"아들~ 나는 울 아들이 최고야~"

"아빵~♡"

서로에게 하트를 그리는 회장님과 우리 막내.

잔뜩 굶주린 사람 앞에서 아예 꽃등심까지 구워 먹는 듯한 태도에 내 이마 위로 힘줄이 솟았다.

리혁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대가 참아요.’

‘후우….’

* * *

뉴블랙 멤버들이 초특급 게스트들에 대한 소개를 한 후.

구재영 피디가 출연진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무대 위에서는 프로지만 이제 장사에서는 완전 초보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여러분의 도깨비 식당 데뷔를 앞두고 이렇게 조언을 해 줄 어른들을 모셨습니다. 요식업의 경영 전략에 해박한 왕현탁 회장님."

"흠흠."

정장 차림으로 팔짱을 끼는 왕현탁 회장.

"그리고 이 분야 실전의 대가시죠? 김덕순 대표님을 모시고 오늘 마지막으로 리허설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네!"

멤버들이 각자 자기 위치로 향하는 동안 구재영 피디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분은 오늘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실 건가요?"

"예, 우선은 손님으로서 불편한 점들을 체크할 건데요. 치킨집의 경우에는 주문을 빠르게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에… 음식이 빠르게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노하우에 대해……."

왕현탁 회장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제작진이 테이블에 손님으로 둘러앉았다.

곧장 도깨비 캐릭터가 그려진 앞치마를 멘 중현이 물잔과 태블릿을 들고 걸어갔다.

"주문 받겠습니다."

"음, 저희 블고기 스테이크 2개로 하고요. 버팔로 윙으로 사이드를 주문하겠습니다. 음료는 제로 콜라 2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사장님! 저희 주문이요!"

"네, 갑니다."

이번에는 리혁이 걸어갔다.

바쁘게 주문을 받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왕현탁 회장이 일어섰다.

"일단 밀려오는 주문을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1번이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할머님?"

"맞아요~"

두 사람이 일어섰다.

처음 식당 장사를 하면서 초보들이 가장 헤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홀과 주방 사이의 소통이다.

식당 예능에서 가장 흔히 나오는 장면이 이런 거였다.

-헐! 어떡해요. 우리 메인 하나 나가는 거 깜빡했어요. 지금 20분째 기다리셨대요.

-어머머.

-지금 당장… 아니, 그 메뉴가……. 지금 소스는 있니?

홀에서 주문을 누락하거나 주방에서 주문서를 보고 나서 까먹거나 하는 등의 기본적인 실수.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어도 자칫하면 꼬이기 쉽지요."

그런 말을 하며 왕현탁 회장이 주방에서 멤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할 때였다.

딩동!

"……?"

딩동!

딩동!

"??"

"???"

홀에서 중현이 태블릿을 들고 주문을 접수할 때마다 주방 모니터에 있는 화면에 테이블 현황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일의 우선순위도 함께 떠올랐다.

[블고기 스테이크 접수 순서]

1번 테이블 [수량] 2개

17번 테이블 [수량] 1개

.

.

어디부터 서빙을 해야 되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는 가운데.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중현이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주문을 읊어 주고, 주방 담당들이 입으로 외치며 확인한다.

"오……."

우주와 비주가 열심히 조리를 하고, 지호가 식기를 꺼내며 보조를 하고 있다.

그렇게 차례대로 메뉴가 완성이 되면서 우주가 모니터에 다가가 터치를 하곤 홀 담당들을 호출했다.

딩동!

그러자 중현과 리혁이 다가와 순서대로 서빙을 시작한다.

손님들이 바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뭔가가 필요한 손님들은 테이블 위의 벨을 눌러 홀 담당을 호출했다.

"……."

"……."

조언을 해 주러 온 두 요식업 전문가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김덕순 여사가 눈을 깜빡이며 피디를 호출했다.

"이게 뭐여요…?"

"아. 그… 멤버들이 으쌰으쌰 하더니……."

구재영 피디가 어색하게 말했다.

"식당의 전산화에 성공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

"요즘 친구들이라 참 기술에 해박한 것 같더라고요."

"아니, 그럼 왜 불렀어요?"

그 물음에 국민 피디가 시선을 회피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할머님…."

"아니,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혹시 언짢으셨나 해서……."

"뭔 소리여요? 엄청 기분 좋은데."

왕현탁 회장과 구재영 피디가 침을 삼켰다.

‘화나신 줄 알았는데.’

‘그게 기쁘신 표정……?’

워낙 기본 표정이 무서운 탓이었다.

본인은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해도 두 사람은 선우주의 할머니가 손가락만 움직여도 무서웠다.

‘선우주의 할머니….’

‘태황태후…!’

스튜디오 레몬과 NBS 등의 컨텐츠 기업을 자회사로 거느리며 현재 연예 기획사 1위가 된 레몬 엔터.

그런 레몬 엔터의 왕은 누구인가?

바로 즉위하고 5년차를 맞이한 관종(關宗) 대왕이다.

그런 인물을 어릴 적부터 키워 온 존재인 만큼 그냥 가만히 있는데도 뭔가 조심스러운 기분이었다.

"아이고, 뭐 할 게 없네."

김덕순 여사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냥 밥이나 먹어야 쓰겄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할머님."

"괜찮아요. 내가 좀 보다 갈게."

주방에서 일하는 손주를 바라보며 몰래 사진을 찍는….

"덕순~!"

"왐마야."

시선을 눈치챈 선우주가 애교를 부리며 브이를 하면서 김덕순 여사가 잠시 놀랐다.

구재영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워낙에도 에너지가 좋은 친구긴 하지만, 우주가 저렇게 들떠 있는 모습은 처음 보네요."

"그려요?"

"예, 할머님이 오셔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여사님께서 이 자리를 빛내주신 덕분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아부를 하고 있는 국민 피디였다.

그동안 김덕순 여사가 손주가 주방에서 열심히 진두지휘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쟤가 옛날부터 그랬어요. 할매, 나 어려운 거 한다, 못하겠다 해 가지고 걱정이 돼서 몰래 가서 지켜보면 또 잘하고 있어."

"정말 걱정할 게 없네요."

왕현탁 회장 또한 공감했다.

‘우리 아들이 이 정도로 성실했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는 애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저 앞길을 망치면 안 돼.’

자신이 나쁜 일을 해서 지호 앞길이 막히면 어떻게 되겠는가?

게으름 피우며 얼굴만 믿고 탱자탱자 놀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편.

구재영 피디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슬슬 출출하시죠? 테이블로 안내해 드릴까요?"

"예, 그려요."

조언할 만한 부분이 딱히 많지 않아서 곧바로 테이블에 둘러앉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이 주문을 하면서, 김중현이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다가갔다.

"형!"

"응?"

"17번 테이블에서 할머님이 주문하셨어요."

"!!"

그릴 앞에 서 있던 선우주의 눈이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비주야."

"네."

"우린 지금부터 환상의 요리를 만든다."

"좋아요. 저 열심히 해 볼게요."

"역대급 요리를 만들어서 김덕순 여사의 감동을 이끌어 내는 거야."

주방에서 두 남자의 열기가 화르륵 불타올랐다.

* * *

비주와 함께 나는 최고의 요리를 완성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장 적절한 고기 굽기.

김덕순 여사가 좋아하는 완벽한 계란 노른자 완숙.

내 사랑만큼 가득한 소스와 사이드로 곁들여져 있는 맛있는 밥.

"후후후후."

나와 지호가 직접 서빙을 해서 테이블까지 날랐다.

여러 가지 사이드를 같이 내어 놓으면서 그 앞에 섰다.

"드셔 보시죠. 주방장 특선입니다."

지호네 아버님이 냄새를 음미하면서 ‘오?’ 하는 표정을 짓고.

김덕순 여사가 포크와 나이프로 햄버거 스테이크를 썰더니 한 입 먹었다.

"어때? 할머니?"

"그…."

초롱초롱 눈을 뜨며 지켜보는 나에게 김덕순 여사가 한 줄 평을 남겼다.

"김치는 없냐?"

"……있어."

"우주야, 아저씨도 김치 좀 주라."

최대한 느끼함을 잡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어른들에겐 조금 느끼한 듯했다.

음식을 먹던 김덕순 여사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다.

"그리고 소스는 조금 줄이는 게 나을 거 같은디."

"많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지호의 물음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딴 테이블도 보니까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소스가 한강이던데. 소스가 많은 게 좋지만 그래도 음식이 남는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겨. 마지막 고기를 소스에 요렇게 삭삭- 비벼서 끝낼 정도로 해야지."

"오호."

"이게 다 먹고 음식이 좀 남는 거 같으면 손님들이 그런 생각을 혀. 밥맛이 좀 그랬나? 하고."

차라리 소스를 요청할 때 더 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그걸 비롯해 식당 운영을 할 때 필요한 팁들을 전수해 주는 할머니였다.

그 때문에 살짝 위기감을 느꼈는지 지호네 아버님도 필사적으로 팁을 전수해 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 프랜차이즈 운영 팁 같은 거 혹시 안 궁금하니?"

"……."

"본사 경영 노하우라든가, 노사 갈등 대처라든가. 경쟁 업체 바이럴에 대응하는 법이라든가…."

"……."

아버님이 상처 받은 얼굴로 음식을 드셨다.

그동안 리혁이가 만든 특제 빙수를 비롯해서 구례 명물 산수유가 들어간 디저트들이 나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맛있는데 좀 달다."

"어우, 달아."

아무래도 너무 젊은 사람들 입맛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지 어른들에게 조금 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도 좀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작진과 모의 식당 영업을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는 우리에게 할머니가 물었다.

"근데 너희는 안 먹냐?"

"이따 먹어야지."

"기다려 봐봐라."

김덕순 여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우리가 입가에 손을 모으며 비명을 질렀다.

곧바로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서 할머니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와……."

제작진도 침을 꿀꺽 삼킬 만한 비주얼의 요리가 탄생했다.

맛깔난 색깔의 계란말이.

블고기 스테이크 재료를 응용한 떡갈비.

매콤한 양념장이 올린 소면 비빔국수.

"할머니. 내가 도울 건 없을까?"

"가만히 있어. 테레비 나와서 지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거라도 해 주고 가야지."

그 말에 지호네 아버님이 주방 근처를 배회하며 물었다.

"혹시 닭… 튀길 거리 있니?"

"없는데."

"아니면 다른 튀길 거리라도……."

"그냥 쉬어. 아빠."

연매출 수천억 원의 CEO가 눈물을 머금는 가운데.

"제작진들도 와서 먹어요."

"감사합니다…!"

넉넉하게 요리를 준비한 할머니가 제작진에게도 요리를 내어주면서 여기저기서 젓가락과 숟가락이 오갔다.

"!"

"!!"

할머니가 한 요리를 맛본 구재영 피디님이 말했다.

"다음에는 할머님이랑 예능을 해야겠는데…? 아니. 진짜…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이렇게 뚝딱뚝딱……."

"와, 양념장 진짜 미쳤다. 비결이 뭐예요?"

제작진이 감탄하는 동안 나와 동생들은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정신없이 먹었다.

오디오 감독님이 신세계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디오가 이렇게 비는 건 처음인데?"

"어떠세요. 감독님?"

"천국이야… 너무 조용해……."

본업이 오디오 감독이지만 오디오가 없어서 행복해하는 감독님에게 우리가 샐쭉한 표정으로 항의의 뜻을 표현하는 한편.

중현이가 촉촉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형, 저 너무 행복해요."

"나도."

우리 모두 너무나 행복했다.

김덕순 여사가 해 준 요리도 맛있게 먹고, 식당을 앞두고 긴장한 멘탈도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고.

"이거 시청률 잘 나오겠는데?"

"그니까요."

제작진도 행복하고.

"맛있냐? 먹다가 체하겄다. 천천히 먹어라."

"너무 맛있어, 할머니."

내 어깨를 토닥이며 삐죽삐죽한 얼굴로 웃는 우리 김덕순 여사도 행복해 보였다.

* * *

해피 바이러스로 가득한 현장 분위기.

실수 없이 착착 진행된 모의 식당 영업을 비롯해 모든 것이 스무스하게 흘러가면서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행복해하고 있을 때였다.

"어…?"

김덕순 여사와 함께 밖으로 나온 왕현탁 회장이 당황했다.

"끝이라고?"

"네,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 그… 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뉴블랙 멤버들.

"아빠. 잘 가!"

"아니……."

"두 분 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 얘들아. 아저씨……."

와아- 하며 복작복작하는 아이돌들의 기세에 차량으로 떠밀려 가는 왕현탁 회장.

차량에 탄 그에게 뉴블랙 멤버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전국 프랜차이즈 1위 업체의 CEO이자 경영의 귀재가 차량 안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아니… 나 아무것도 못했다니까…!’

그냥 밥만 먹고 간 사람이 되어 버린 왕 회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