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11화 (1,01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11화

"예로부터 수로를 통해 물자와 인력을 운송하는 것은 부국강병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죠."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나라 시절부터 시작된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대운하 공사가 그런 이유에서였고, 초창기 미국이 빠르게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미시시피 강 유역을 확보하면서였죠.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오."

"기본적으로 강을 통해 운송을 하면 땅에서보다 더 적은 힘과 비용으로 물자와 인력을 수송할 수 있거든요."

"그렇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리혁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왜…?"

"그냥 운송 수단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중현이 형이 간만에 좋은 아이디어를 냈어요."

중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동안 우리의 눈앞으로 섬진강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부아아앙-

그렇다.

우리는 지금 배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움직이는 중이었다.

어제 퇴근하면서 중현이가 내뱉은 한마디에서 시작된 일.

-배.

-배?

-그냥 배 타고 가면 안 되려나요. 물 위로 가면 진짜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형. 막 나룻배 타고 가게요?

-하여간 김중현.

-중현아. 좋은 드립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을 때.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리혁이가 한마디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가능할 수도 있어요.

-!!

-잠깐 지도 좀 봐봐요.

우리 집 두뇌회전 담당이 손가락으로 강을 이용한 경로를 쭈욱 그려 보였다.

획기적인 시간 단축.

물론 평상시였다면 도로를 통해 가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었다.

교통 체증이 어마어마한 상황에서 물길을 이용해 이동하면 정말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제작진과 군청 관계자 분들께 이야기를 하니 흔쾌히 승낙이 떨어졌다.

그런고로….

부아아아앙-

우리는 지금 새벽녘 섬진강의 서늘한 바람을 맞이하며 출근을 하는 중이었다.

배가 빠르게 달려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긴 머리카락을 지닌 작가님들이 어푸풋- 하며 머리카락을 먹고 뱉다가 결국 머리를 묶었다.

"하……."

지호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식당 하면서 별거 다 해 보네여."

"즐기자.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섬진강에서 유람을 해 보겠니."

"글킨 하네요."

동생들과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면서 부둥켜안았다.

배가 그렇게 엄청 큰 편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흔들흔들하면서 무서운 느낌이 든다.

중현이와 나를 기둥으로 세워두고 졸개들이 뭉쳤다.

퀭한 눈으로 물을 바라보던 막둥이가 말했다.

"형들, 우리 지금이라도 수영해서 도망칠까요?"

"왜?"

"그럼 출근 안 해도 되잖아요."

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 훈련소 가서 그런 생각 했는데."

"아, 진짜요?"

"훈련장으로 가는 육교가 하나 있었거든. 거기서 밑에 트럭들이 지나가는데, 점프한 다음에 트럭에 올라타서 집으로 가는 상상하고 그랬거든."

"에궁…."

그랬던 시절이었지… 하면서 내가 강을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 출근하기 싫다."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구재영 피디님이 공감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진짜 힘들 만해. 예능인들끼리 하는 식당에서 나올 만한 업무량이 아니야."

"그죠."

"근데 또 너희가 해내니까."

"……."

가끔은 해내지 못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멀찍이 육지 위의 도로에 가득한 차량들을 바라보며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했다.

어젯밤에는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일단은 사생 침입.

세 차례나 있었다고 하는데, 다행히 이런 일들을 예상하고 대비하던 보안업체가 바로 붙잡아서 경찰에 인계했다.

아무래도 보안이 강한 우리 숙소와 달리 이쪽 지역 숙소는 보안이 약할 거라고 예상하고 시도한 모양이다.

그리고.

"페인트요…?"

"응…."

웬 미친 사람이 간밤에 도깨비 식당 벽에다 빨간 페인트를 투척하고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침 주변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우리 보안업체 직원들과 마주쳤는데, 발각되자마자 놀라서 헐레벌떡 도망치는 것을 붙잡았다는 모양이다.

범인으로 잡힌 40대 남성이 경찰 조사에서 밝힌 동기로는 ‘그냥 꼴 보기 싫어서…’라나.

지금은 덧칠을 해서 흔적이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 외에도 아마 우리 선까지는 들려오지 않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100개쯤 생기면 별로인 일들도 10개쯤은 생기는 것이 인생의 이치 아니겠는가.

"좋은 쪽에 집중합시다."

"넹~"

사람이 좋은 걸 보고 좋은 생각을 해야 인생이 행복해지는 법이다.

동생들과 꼬오옥 포옹하며 긍정적인 점들을 하나씩 찾았다.

"매출이 높아져서 구례군의 도깨비 거리가 좀 더 활기차지겠구나~"

"우리가 관광 산업에 도움이 되고 있구나~"

"아. 이거 고생하고 나면 다음에 요리사 배역을 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되겠구나~~"

"아~ 행복하여라~"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급격히 줄어드는 말수.

리혁이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현실 도피 같은데요. 우리."

"바른 말 금지."

"서리혁 말투 금지."

"리혁체 금지."

"아니, 이 사람들이 증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내려야 할 선착장이 가까워졌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뉴니버스 제작진.

"졸개들아."

"예."

"가자. 2일 차 영업하러…!"

"와아아아아……!"

도깨비 식당 2일 차 영업 힘차게….

"그억……."

"리혁아!"

"괜찮아요…. 기립성 저혈압이 또 와서……."

힘차게는 아니고 힘들게 시작!

* * *

확실히 1일 차가 제일 어려운 게 맞았다.

"할 만한데?"

"그러게요??"

1일 차에서 고생을 하고 나니 2일 차부터는 수월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가 1일 차에서 했던 피드백이나 회의가 큰 도움이 되었다.

"형들. 제가 어제 설거지 하면서 잔반들 다 찍었거든요."

"허어… 우리 막내!"

"이거 봐 봐요. 제가 사람들이 남기는 것들을 찾았는데……."

손님들이 잘 안 먹는 야채라든가, 남기는 부분들은 빠르게 그 양을 줄이면서 개선을 하고.

"중현이 형. 이리 와 봐요."

"왜, 왜…?"

"뭐라고 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냥 잠깐 이야기 좀 하려고 그래요. 이 비효율적인 동선에 대해서…."

리혁이가 중현이와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홀의 동선을 개선하고.

콘서트도 첫콘에서는 이런저런 실수가 나오지만, 막콘쯤 되면 완벽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도깨비 식당도 더욱더 완벽해지고 있었다.

"블고기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어린이는 어디 있죠?"

내 물음에 거의 중학생처럼 보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을 들었다.

"저, 저요."

"만 12세 어린이로군요."

당사자인 여학생이 창피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이모와 부모님이 신나서 외쳤다.

"토삼이!"

"야야, 다들 잘 봐둬라. 이게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끼다."

"엄마… 이모… 그만해. 나 창피해."

내가 토삼이 인형을 들어 보였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개를 들으렴! 너는 아직 어린이란다!]

"저 어린이… 아닌데."

[방학을 보낼 수 있으면 아직 어린이란다.]

토삼이를 꼼지락거려서 음울한 표정을 연출했다.

[삼촌도 방학을 보내고 싶구나. 하필이면 이 악덕 기업에 붙잡히는 바람에 읍… 읍……!]

내가 인형의 입을 틀어막고는 냉정하게 말했다.

"삼촌. 그만하시죠."

[읍…! 읍……!]

"약속대로 용궁으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읍… 살려……!]

내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납치됐으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의 상징인 당근을 토삼이 손으로 흔들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손님들도 저항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한편.

공손히 인사하는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손을 휘저으며 손님들에게 윙크를 했다.

"재미있으셨다면 나중에 갤럽에서 진행하는 올해의 예능인 설문조사를 받았을 때, 뉴블랙을 찍어 주세요."

"네~!"

"올해의 예능인은 누구다?"

"뉴블랙!"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올해의 예능인 1위가 되기 위해 식당 영업을 하며 불철주야 노력하는 뉴블랙이었습니다~"

그런 인사를 하며 손님들에게 열심히 홍보를 했다.

그러면서 들어오는 어린이 밀라네사 주문.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있으면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변 어른들이 어린이 메뉴를 주문하곤 했다.

"형! 2번 테이블에 블고기 파스타요!"

"알았어~!"

"계란 알레르기 있으시대요."

"비주한테 얘기할게."

2일 차 영업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바글바글한 손님들.

손님들의 웃음.

주방의 열기에서 땀을 식히거나 주문이 한산할 때쯤이면 나가서 손님들과 토크도 하고.

"형. 형. 저분 유명한 분이에요."

"그래?"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신청을 해서 그런지 손님 중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혼자 와서 5인분을 먹는 손님을 바라보며 지호에게 물었다.

"누군데?"

"유명 먹방 미튜버예요."

"그…래?"

"구독자 500만일걸요."

"오, 대단한 분이시네."

싱글벙글 웃으면서 먹고 있는데, 촬영을 할 수 없다 보니 아마 이따가 미튜브 등에서 라이브를 하면서 ‘오늘 후기!’ 하면서 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 연예인 손님도 두 팀 정도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발라드 가수 더 문 선배님이었다.

뿔테 안경을 쓴 평범한 인상의 가수와 우리가 반갑게 인사했다.

본명 문상철.

고등학교 때 같은 학년에 문상철이 본인 포함 네 명이 있었는데, 나머지 셋이 전교 1등 문상철-야구부 에이스 문상철-피아노 콩쿨 우승자 문상철이어서 설움을 겪었다는 분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문상철이? 어느 문상처이~? 공부, 야구, 피아노?’ 할 때 언급조차 안 되어서, 그런 설움을 담아 예명을 ‘더 문(The Moon)’으로 정했다는 분.

"오랜만이네."

"네, 진짜 오랜만에 봬요."

14년도에 추석 특집 음악 퀴즈쇼에서 만난 이후로 간간이 방송에서 마주치는 분이었다.

섬세한 가성이 특징인 보컬로 유명한 선배 가수.

"여기는 우리 친구들인데 혹시 알고 있어…?"

"어, 네. 안녕하세요!"

인지도 있는 다른 발라드 가수들도 노래 잘 듣고 있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좋아했다.

"뉴블랙이 내 노래를…!"

"햐… 성공했다. 다들 보이십니까!"

테이블에 둘러앉아 블고기 스테이크와 여러 메뉴를 주문하는 연예인들.

확실히 연예인들답게 카메라 앞에서 주변 손님들을 웃기는 입담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한 분이 리혁이의 경연곡 중 한 곡의 원곡자 권성현이었다.

"아이고~ 리혁 씨! 나는 요새 리혁 씨만 보면 웃음이 나와요. 좋아서."

"아니에요. 선배님."

리혁이가 공손하게 웃으며 서빙을 했다.

"워낙 좋은 곡이어서 오히려 제가 큰 도움을 받은 거 같아요."

"캬…."

빈말은 안 하는 리혁이의 코멘트에 권성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더 문이 툭 치고 들어왔다.

"리혁 씨가 너무 잘 불러서 성현이 너 요새 곡을 뺏겼다는 말이 있던데."

"아니, 뺏겼다니~!!"

권성현 씨가 발끈했다.

그러곤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드리는 거지~"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과 멀찍이서 바라보던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리혁 씨가 이 곡 불러 주기 전까지 이거 1년에 3만 7천원 들어오는 곡이었어."

"그럼 드린다는 표현이 맞지."

"고마워요. 리혁 씨. 내 은인이에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망고 실차에도 올라 보고."

그러면서 리혁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발라드 가수들.

우리를 대할 때는 ‘오~ 뉴블랙~’ 하면서 살짝 선을 긋는 느낌이라면….

"와. 리혁이 형 진짜 예쁨 받네요."

"그러게."

자신들의 직속 후배를 보는 것처럼 굉장히 친근한 태도를 보여 주는 가수들이었다.

마치 ‘우리의 후계자!’ 하면서 정통 가수 인증을 받은 듯한 느낌.

<미션 싱어>의 방영 이후로 발라드 가수들이 리혁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 것 같다.

"부럽당…."

"지호 너는 형이 예뻐해 줄게."

"근데 형들한테는 이미 사랑 많이 받고 있으니까, 저도 좀 저렇게 다른 사람들한테 사랑 받고 싶어요."

"……."

괘씸한 막내의 옆구리를 꾹 찔러 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서빙하고 있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더 문이 보였다.

"뭐지…."

"네?"

"아냐. 아무것도."

후후후후- 하며 리혁이를 바라보는데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표정.

혹시 <미션 싱어>에 나오시나…?

발라드 업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가창력의 가수가 짓는 미소에 나도 같이 웃었다.

혹시 그런 거라면…….

"리혁아."

"?"

서빙을 마치고 옆구리에 쟁반을 끼고 돌아오는 리혁이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화이팅."

"뭐 잘못 먹었어요?"

"……."

아무래도 막내들을 잘못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손님으로 온 발라드 가수들이 한 차례 웃음을 주고 난 후.

또 다른 연예인 손님도 찾아왔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연예인들이 들어왔다.

잘 먹기로 소문난 사람들.

먹방 프로를 진행 중인 출연자들이 ‘우리도 당첨됐어요~’ 하면서 들어왔다.

"자! 어디 한번 먹어 볼까!"

"아 좋아좋아. 가 보자고~!"

씨름 선수 같은 체구를 자랑하는 예능인, 가수, 배우의 조합으로 된 3인조가 밥을 먹어치웠다.

"……."

"……."

그날 2일 차 영업은 최고의 매출을 찍었다.

그리고….

테이블당 메뉴 개수 제한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2일 차의 영업도 무탈하게 마무리를 지었고.

두 차례의 사생 침입을 추가로 겪은 다음 날인 3일 차에도 영업을 훌륭히 해낼 수 있었다.

특히나 3일 차는 우리 수플레들과 함께 하는 날이었다.

"진짜 대박이다!"

"우와아아아……!"

우리를 보자마자 테이블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수플레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며 서빙도 하고.

수플레들과 종종 대화도 나누었다.

"요즘 저희 사이에서는 어계못이란 말이 유행이에요."

"?"

"‘어차피 계는 못 탄다.’"

인원이 너무나 많아서 콘서트고 음방이고 가기 힘들다는 말에 우리가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수플레들 대상으로도 하루 동안 장사를 하는 시간을 가진 후.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도깨비 식당의 영업을 종료하는 마지막 날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도 이 도깨비 거리에서 함께 할 예정이었다.

[준비 완료됐네.]

[나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여전히 국내에 체류하며 시장조사를 하고 있던 셰프들이나 비행기를 타고 다시 입국하는 셰프들.

우리와 인연을 맺은 셰프들이 구례로 오고 있었다.

셰프들과 화상 통화로 여러 회의를 하면서 대망의 마지막 날 영업 준비를 끝낸 후.

숙소에 돌아와서 쉬고 있던 동생들이 내게 물었다.

"음? 형 뭐 해요?"

"나 일하고 있어."

"좀 쉬어요. 힘들 텐데."

"그 반대야. 힘들어서 이걸 하는 거야."

노트북 앞에 앉아서 콜라를 홀짝이고는 동생들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이번 도깨비 식당에는 어마어마한 순기능이 하나 있었다.

-작업이… 잘 된다……!

아니.

조금 더 제대로 말하자면.

-작업이 하고 싶다…!

며칠 동안 식당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 때문일까.

힘들고 지치고, 게다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면서 머릿속에서 영감의 샘이 솟기 시작했다.

두 눈을 감을 때마다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고.

콧노래만 불러도 근사한 곡이 탄생했다.

딸깍! 딸깍! 딸깍!

마우스로 미친 듯이 클릭을 하며 화면에 집중했다.

* * *

레몬 엔터의 대회의실.

뉴블랙이 한창 도깨비 식당으로 바쁜 지금.

그들을 전담하고 있는 TF팀과 프로듀싱 팀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어……."

프로듀싱팀의 나상윤 팀장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보통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스케줄이 이런 주세한 같은 예능 아니에요?"

"그렇죠."

윤석환 팀장을 비롯한 매니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들이 뉴니버스나 주세한 같은 예능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가서 내려 주고, 다 끝나고 나면 데리러 가면 된다.

예능 제작진에게 인계한 뒤에는 그때부터 그들이 거의 다 케어를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도 새로운 일거리가 안 생겨야 정상이었다.

예능에 나간 가수들이 활동을 하고, 그들은 평소처럼 업무를 처리해야 정상인데…….

"아니…."

프로듀싱팀의 직원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얘는 어떻게 된 게 회사에서 있을 때보다 곡을 더 많이 써…."

"지금 총 몇 개가 들어왔죠?"

"어… 몇 개지. 형섭아."

팀의 막내 김형섭이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25개요."

"……."

침묵이 흘렀다.

3일 동안 영감이 폭발해 버린 선우주가 다음 앨범에 실릴 만한 곡들을 보내 버린 거였다.

TF팀 홍보 총괄인 홍서영 과장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미리 쓴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냥 영감이 막 솟는대요."

"……."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김형섭이 말했다.

"어, 방금 곡이 더 들어와서 이제 32개입니다."

"……."

모두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일이 진짜 힘들긴 한가 보다.’

‘얼른 식당 영업이 끝났으면 좋겠다….’

‘악덕 고용주…….’

물론 선우주가 갑자기 폭주해서 곡을 보냈다고 해서 이렇게 회의를 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곡이 너무 미쳤어요."

"여기서 다듬고 몇 개만 손 보면 바로 명반에 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대박이다. 진짜."

그랬다.

장사가 너무 힘들어서 영감이 폭발한 어느 26세 작곡가가 영어 곡으로 구성된 다음 앨범을 꽉 채워 버리는 중이었다.

곡을 하나씩 듣던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해외 작곡가들한테 공모 안 받아도 되겠는데요."

"몇 개는 후속 싱글로 내도 될 거 같아요."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깨비 식당에 감사해야 되나?’

‘아니. 대체 일이 얼마나 힘든 건데….’

몇 달은 걸려야 할 앨범 프로젝트의 얼개가 예능 프로젝트 하나 덕분에 단숨에 짜여지는 상황이었다.

공장장처럼 곡을 찍어 내는 선우주.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해야겠는가?

"포장하죠."

"포장합시다."

그들의 역할은 내용물의 포장이었다.

개중에서 가장 좋은 곡의 멜로디가 누군가가 힘들어서 흥얼거린 가사와 함께 흘러나온다.

런런런~ 런 투 더 덕순스 하트

런런런~

레몬 엔터의 직원들이 노트북을 두드렸다.

"요리에 관한 주제잖아요. Run이라는 단어에는 무언가가 흐르다~ 하는 의미도 있는데, 뭔가 소스 같은 그런 걸 택해 보면 어떨까요?"

"런 투 더 덕순스 하트라는 말을 보면 우주 씨의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아 도망쳐 버리고 싶다. 너무 일이 힘들어서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다는 거거든요."

"그렇지."

"요리가 주제인 만큼 요리로 도망치는 그런 이미지는 어떨까요?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을 하는 거죠."

"우리가 매운 거 먹고 스트레스 풀고 그러잖아요. 물론 미국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조금 한국적인 색채가 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요. 그것도 포인트니까."

"미국에서 매운 게 뭐가 있지?"

그러면서 원곡 ‘런 투 더 덕순스 하트’에 붙어 있던 꽃무늬 포장지가 찌이익 떨어지고.

작곡 요괴에게 보낼 기획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곡 소개]

누구에게나 지치고 힘든 순간은 있다.

그런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요리.

지친 몸을 위로해 주는 닭고기 스프도 좋지만, 가끔은 평소처럼 먹던 일상적인 요리에서 벗어나 자극적인 소스에 빠져 보면 어떨까?

어느새 당신은 매콤하고 중독성 가득한 이 곡과 사랑에 빠져 있을 것이다.

오버쿡 다음에 등장할 후속 싱글 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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