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12화 (1,01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12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최근 들어 2인조 작곡 그룹 ‘스티브 개럿(Steve & Garret)’만큼 이 격언을 실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에너지 드링크를 술처럼 들이켜던 개럿 로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누가 알았겠냐고. 뉴블랙이 이 정도로 뜰 줄은…."

"내 말이."

스티브가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타임머신이 있으면 1년 전으로 돌아갈 거야. 지금이라면 그때와는 다르게 말을 할 수 있겠지."

두 남자가 후회 막심한 표정을 지었다.

때는 바야흐로 1년 전.

미국 진출을 위해 뉴블랙이 영어로 된 곡을 물색하던 때였다.

뉴블랙의 미국 활동을 맡고 있는 월드 레코드사의 연락으로 그들은 뉴블랙과 미팅을 할 기회를 얻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그들에게는 아쉬울 게 없었다.

-안뇽! 뉴블랙은 미국 진출해 보고 싶어!

-뭐래….

이미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잘나가고 있는 핫한 작곡가.

열광적인 팬덤이 있다고는 하나 북미 쪽에서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한 한국의 보이밴드.

손익계산은 명확했다.

‘얘네한테 굳이 좋은 곡을 줘야 하나? 좋은 곡 줘서 망하면 우리한테는 손해인 건데?’

물론 그렇다고 탐이 안 났던 건 아니었다.

당시 뉴블랙은 한국어 곡으로도 빌보드 메인 차트에 들어올 정도로 열광적인 팬덤을 거느리고 있었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조금 위험하지만 해 볼 만한 투자였다.

다만 리스크가 큰 투자인 만큼 그들도 짭짤하게 챙겨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강하게 나갔다.

-너희가 우리한테 굽히고 와라.

조건도 좀 후려치고, 나중에 너희가 성공했을 때 다 우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에 대한 뉴블랙의 반응은….

-ㅗ

그랬다.

물론 실제로 저런 반응을 보인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저렇게 느껴졌다고 할까.

두 남자가 후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망할…."

"그냥 미팅에서 좋은 인상이라도 줄 걸. 내가 왜 그랬지??"

그 이후로 뉴블랙이 어떻게 되었는가?

자체적인 송 캠프를 열더니 퓨처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희대의 명곡을 들고 나왔다.

-롤링 스톤지, 뉴블랙의 METRO에 별점 4/5 부여. "미래 지향적인 사운드를 기본으로 한 이색적인 도전. 새로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보이밴드의 모험이 기대된다."

-[빌보드 차트 리뷰] 뉴블랙의 METRO가 마침내 빌보드 Hot 100 #1에 등극하다

-[미튜브 리와인드] 뉴블랙의 METRO가 2017년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 Top 10에 랭크되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 개막식에서 라는 곡을 연주하더니, 그 곡에 영감을 받은 콜드 브라운과 함께 재즈와 힙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희대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콜드 브라운과 우주의 ‘Answer’, 빌보드 Hot 100 차트 최장기간 1위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다

올해 빌보드 연말결산에서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 최대 히트곡이었다.

"그거 말고 뭐냐, 그것도 있잖아. 토끼."

"아, 그 지랄 맞은 토끼……."

게다가 최근에는 로 미친 듯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뉴블랙의 작곡가였다.

미튜브에서 역대 최단 기간 1억 뷰를 기록한 미친 동요.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토삼이의 비주얼에 그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진짜.’

‘작곡의 신이라도 빙의했나…?’

단순히 작곡뿐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미팅을 한 이후로 뉴블랙은 북미 시장에서 미친 듯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우주, 멧 갈라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다

-뉴블랙,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선정.. 타임 100 갈라에서 무대 예정

-전 좌석 SOLD OUT! 뉴블랙의 생애 첫 스타디움 투어가 시작되다.

잘나가도 너무나 잘나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 미국 시장에서 완벽하게 톱스타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포지션이긴 했다.

가끔 그래미 신인상을 비롯해 각종 신인상을 휩쓸며 그 해를 뒤흔드는 괴물 신인이 등장해서 화제가 될 때가 있는데, 뉴블랙은 현재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류의 이미지였다.

-와! 진짜 대박 신인이 등장했다!

워낙 반짝하는 스타가 많은 곳이 미국 아니던가.

그래미 상을 휩쓴 신인들 중에서도 2~3년 지나서도 살아남아 있거나 그보다 더 위로 올라선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 뉴블랙과 비슷한 커리어를 지닌 가수들의 패턴은 둘 중 하나다.

앨범을 연달아 실패해서 한물 간 취급을 받거나.

계속 히트를 쳐서 탑급으로 올라서거나.

"뉴블랙은 거기서 후자야. 성공하는 건 시간문제지."

"동감이야."

워낙 잘나가는 가수가 된 만큼 이제는 세계 최고의 인력들이 그들과 함께 작업을 하려고 할 테니까.

거기에 기본적으로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우주까지.

앞으로 탄탄대로만 펼쳐질 것 같은 뉴블랙이었다.

그랬기에….

‘아아아아악!’

‘젠장!’

그들이 놓친 기회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때 그들의 곡이 선택되지 않았더라도 적당히 잘 보여 놨으면 지금쯤 뭐라도 같이 작업을 하지 않았겠는가.

한 번 같이 일을 하면 어지간해서는 계속 가는 게 뉴블랙이라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첫 인상을 망친 그들에겐 눈물이 날 뿐이었다.

그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자신들의 목소리.

-월드 레코드 주선으로 이렇게 만나기는 했지만, 저희도 곡 작업 일정이 굉장히 바빠서요. 여러분에게 온전히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만해라! 과거의 나…!’

-솔직히 여러분의 위치가 신인이라는 점도 좀 마음에 걸리고요. 우리는 최근 5년 동안 신인이랑 작업해 본 적이 없거든요.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좀 알아줬으면 해요.

‘아아아아악!’

‘아이씨, 왜 저런 말을…….’

뉴블랙의 미국 진출을 초창기부터 함께한 거물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날려 버린 두 남자.

그들이 땅을 치고 후회할 때였다.

"음?"

울적한 얼굴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던 스티브 존슨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이런 기회가…!"

"왜 그래?"

"뉴블랙이 앨범에 수록할 곡 공모를 받는다는데??"

"그래?!"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작곡가들에게 곡을 공모한다는 소식이 돈 것이다.

전국 대학 공모전의 요강을 살피는 대학생들처럼 꼼꼼히 살피는 두 남자.

"요리에 대한 주제를 담으면 된다는 거지?"

"요리… 요리라……."

두 남자에게 다시 한번 찾아온 기회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들이 보았을 때 뉴블랙은 아직도 고점을 찍지 않은 가수였다.

저점 매수할 수 있는 기회.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곡을 만든 두 남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라면 최소 수록곡에 들 수 있다.’

‘수록곡 끝자리에라도 무조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뉴블랙에게 그들의 첫 인상은 썩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면전에서 욕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한 최고의 곡을 듣는다면….

레코드사 직원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과 계약을 하자고 할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말해서 뉴블랙의 새 앨범에 수록곡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을 거야."

"100퍼센트지."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내가 만든 인생곡인데??"

두 남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게 말이 되나?"

"이 곡을… 놓친다고?"

"설마 써니가 쓴 곡으로만 앨범을 꽉 채울 생각인가?"

"그건 말도 안 되지. 아무리 천재 싱어송라이터라고 해도 그도 엄연히 사람인데. 앨범 수록곡까지 우리가 쓴 이 곡 정도의 퀄리티로 채우긴 힘들어."

수록곡 수준이 아니라 리드싱글로 활동해도 될 만큼 좋은 곡을 보냈는데도 무응답인 레몬 엔터.

두 남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지?’

‘아니 진짜 뭐지??’

‘대체 얼마나 명곡들을 실을 예정이길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식당 장사를 하고 있는 누군가가 일이 힘들어서 미친 듯이 명곡을 뽑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 * *

영감이 폭발한다.

"음흠흠~"

가만히 콧노래만 흥얼거려도 중독성 가득한 훅(hook)이 완성되고.

손가락으로 탁자만 두드려도 근사한 드럼 비트가 완성되어서 고개를 까딱까딱하곤 했다.

창작을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분이다.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이 순간에 손을 멈추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

"형…?"

"응?"

내 곁에 앉은 비주가 노트북 화면을 보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몇 개예요?"

"총 52개?"

"……장사하는 3일 동안요?"

"응."

물론 전부 다 완성한 버전은 아니었다.

멜로디 정도만 적당히 완성한 것도 있고, 어떤 건 드럼 비트만 짜여져 있는 것도 있고.

건축으로 따지면 여기저기 무수한 집터에 대충 골조만 세운 상태였다.

내가 곡을 들려주며 물었다.

"어떤 거 같아?"

"어… 그… 좋아요."

"그치?"

비주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 그, 그러니까 다음 앨범에 쓸 만한 곡들을 다 만든 거예요?"

"그치? 근데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이제 프로듀싱팀이랑 TF팀이랑 회의도 해야지. 곡 공모도 받고, 프로듀서 분들이 쓴 곡이랑 비교해서 개중에서 좋은 곡을 선별도 하고…. 여기서 일부만 보냈어."

"52개 중에서 몇 개요?"

"쓸 만한 걸로 37개 정도."

"……."

비주가 나를 외계인처럼 바라본다.

감탄을 너머서 약간의 경악이 담긴 표정에 내가 머쓱한 얼굴로 답했다.

"일이 힘들고, 장사하기 싫어서 그런지 영감이 막 폭발하나 봐."

나중에 우비즈에 쓸 만한 곡도 있다고 말해 주니 비주가 급격한 호기심을 보였다.

이어폰을 끼고 ‘우와아아아-’ 하며 해맑게 웃는 비주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영감이 폭발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하… 안무 연습 너무 재미있어. 새로워. 짜릿해. 최고야."

평상시에는 ‘연습하자~’ 하면서 질질 연습실로 끌고 가야 할 막내가 거실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 옆에서 같이 춤을 추고 있는 리혁이.

"춤 좋다… 너무 좋다……."

노래 연습은 좋아해도 춤 연습은 괴로워하는 리혁이도 행복한 얼굴로 중얼중얼대고 있다.

그리고 가사지를 보면서 흥얼거리는 중현이까지.

"보컬 연습~ 재미있어~ 감자 같아~ 고구마 같아~"

다 똑같았다.

필사적으로 앞으로 닥칠 일을 회피하면서 평소 관심도가 적었던 분야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호가 동이 터올락 말락 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 인생이란 뭘까요?"

"인생은 노재현 선생님의 곡 제목이지."

"노재현 쌤 보고 싶네요. 잘 지내고 계실까요."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서 막내와 함께 인생에 대한 고찰까지 하고 있을 때.

"얘들아."

"……."

어디선가 들리는 중후한 목소리를 무시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소파에 웅크리는 우리들.

각종 근육통을 호소하며 온몸에 파스 냄새를 풍기고 있는 우리에게 구재영 피디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

구재영 피디님이 따스한 얼굴로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야지."

"……."

"이제 마지막 날 영업하러……."

"어흐흐흑…!"

대성통곡하는 우리의 모습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바야흐로 장사 마지막 날!

"가자…."

"예……."

뉴블랙… 힘… 힘…차게 추… 출근…….

* * *

옛 격언 중에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은 옛말.

이제는 뉴블랙처럼 번다는 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네."

출근하는 배 위에서 구재영 피디님이 대본을 보고 말했다.

"여러분의 지금까지 누적 매출은 6300만 원입니다. 하루 평균 2100만 원 정도 꼴이네요."

"……."

"월 매출로 치면 이제 6억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어요. 학동로에 있는 대박 족발집이 아마 월 매출이 6억인가 그랬죠? 여러분이 지금 그 정도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구 피디님이 물었다.

"행복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와아아아아아…!"

퀭한 눈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역대 예능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매출.

하지만 그 매출을 일궈내기 위해서 하루에 15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했다.

"뭐, 여러 가지 요인이 있죠. 예능 인지도와 어마어마한 손님 숫자."

리혁이가 부은 눈을 감추기 위해 얹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가격을 꽤 높게 받고 있잖아요. 재료가 재료니까. 일단 밀라네사에 들어가는 한우부터가 평창 한우고… 그리고 햄버거 스테이크 같이 단시간에 조리할 수 있는 음식과 온라인 선주문을 통해 회전율을 높이고……."

"리혁아."

"네?"

"너 코피 난다."

"어엇……."

말하는 동안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리혁이.

어어! 하면서 비주가 손수건을 꺼내서 건네주고, 내가 엄지와 검지로 리혁이의 코를 잡아 주었다.

우리 두루미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아~ 진짜 이그 믗 븐째 코피야. 증말…."

"흐핫!"

"왜 우서오?"

"아니야. 귀여워서…."

귀엽다는 말에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코피를 닦으며 말했다.

"근데 나만 신경 쓸 게 아닌데요. 그대도 코피가 나요."

"엇."

나도 나는구나.

내가 한 손으로는 코피를 막으며 다른 손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리혁아. 우리 코피 칭구칭긔."

"코나 제대로 막아요."

말은 그랬지만 주먹을 꽁 하며 응해 주었다.

비주가 우리 둘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동안 지호가 갑자기 뿌에엥 하고 눈물을 쏫기 시작했다.

나와 리혁이가 웃었다.

"형 걱정돼서 그래?"

"야, 걱정하지 마."

지호가 눈물 젖은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형들 보니까 갑자기 제가 너무 불쌍해서… 어흐흑……."

"……."

"……."

지호가 양 뺨에 손을 올린 채 웅- 했다. 그러곤 셀카를 찍으며 혼자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그래. 지호야.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소중한 존재니까."

"그래라…."

혼자 비련의 주인공처럼 흑흑 하고 있는 막내를 내버려 두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힘든 무대를 하고 다들 쓰러져 있어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빨대로 생수를 쪼로록 하던 중현이.

"중현아."

"네……?"

"괜찮니?"

"아니요…."

배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우리 애였다.

피곤해서 그런지 쌍꺼풀이 엄청 짙어져서 평소보다 더 부리부리해 보이는 눈이었다.

중현이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자신 있게 카메라를 향해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역시 사람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제작진이 귀엽다는 웃음을 터뜨릴 때.

지호가 말했다.

"역시 송충이는 솔의 눈을 먹고 뉴블랙은 춤추고 노래를 해야 돼요."

"나 춤추고 노래하고 싶어…."

정말 어지간하면 힘들다는 말을 안 하는 우리였다.

하지만 이건 시청자들도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업무량이었다.

슬픈 것은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는 거였다.

힘들 테니 안 될 거라고 급구 말리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아! 뉴블랙은 할 수 있으니까!’ 하면서 나섰으니까.

"뭐,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우린 오늘만 생각하자. 이제 오늘만 장사하면 끝이니까."

"!!"

"우리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 주자."

내가 주먹을 꼬옥 쥐고 말했다.

"마지막 영업으로 힘을 내서 최종 매출 1억 찍자. 기왕 하고 가는 거 끝장을 보고 가야지."

끄덕.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배에서 내렸다.

이윽고 선착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제작진 차량에 올라타 바로 근처에 있는 도깨비 식당에 출근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뉴블랙 화이팅!"

마지막 날이라고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도깨비 거리 바깥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방긋방긋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도깨비 식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엇, 안녕하세요!"

김현욱 셰프를 포함해 최근에 촬영을 함께 했던 한국의 셰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기차게 웃으며 악수를 마치자 이번엔 외국인들이 인사를 해 왔다.

「바비는 행복합니다. 하하! 이렇게 또 만나는군요.」

「또 보는군요.」

근육을 꿈틀거리는 바비 로스 셰프를 비롯해 단테 첼리니 등의 셰프들이 인사를 해 온다.

아빠 무르팍 위에 앉아 있던 꼬마 수플레, 루나 첼리니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상대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

"?"

우리의 앙상한 얼굴을 보고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소녀.

팍-!

왜 갑자기 아빠를 밉다는 듯이 때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렀다.

단테 첼리니 셰프가 ‘?’ 하며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네, 오늘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바비 로스 셰프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요."

자기 이름이 언급됐다는 것을 알았는지 바비 로스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내가 말을 하면 리혁이가 영어로 옮겨 주었다.

"오늘 여러분은 저희 뉴블랙의 영업을 도와주시게 될 거예요."

도깨비 식당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

오늘은 이 텅 비어 있던 도깨비 거리의 건물들에서 셰프들이 간단한 메뉴들을 팔며 장사할 예정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 것은 바비 로스 셰프의 제안 덕분이었다.

-혹시 내가 장사를 도와줄 부분이 없겠습니까?

한국 진출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방송 출연을 희망하는 셰프.

그때 제작진 측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정도 규모면 3일 정도까지는 괜찮아도 4일 차는 너무나 힘들 거라고.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도깨비 식당에 대한 예약이 아니라 도깨비 거리 자체에 대해 별도 방문 신청을 받기로 했다.

[도깨비 식당을 포함해 다양한 식당들이 운영될 예정입니다. 이 점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스포일러라서 정확히 말하진 않았지만 아마 눈치를 챈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 때문에 평소와 달리 이 거리에는 방문객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시면 이제 자유롭게 여러 식당을 방문하게 되실 거예요."

입장할 때 받은 식권을 셰프들이나 우리가 차린 팝업 식당에 쓰는 식으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면 최근 며칠보다 더 많은 인원을 받아도 여러 곳으로 분산을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닌데! 뉴블랙 식당 갈 건데!

-블고기! 블고기!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 질문이요."

"네, 김현욱 셰프님."

"홍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 지금 인터넷에 올라갔을 거예요."

* * *

승리자들의 웃음.

"후훗."

"후후훗."

지난 3일간 도깨비 식당에 방문한 사람들이 인터넷을 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첨된 사람들 너무 부럽다ㅠㅠㅠㅠㅠ

-아 진심 부러워

-진짜 로또 추첨이네

-다녀온 사람들은 진짜 평생 자랑해도 됨ㅋㅋㅋ

‘난 다녀왔는데.’

‘우훗~’

‘가련하고 안타까운 자들이로고.’

부채를 흔드는 귀부인처럼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온라인 반응을 보는 구 당첨자들.

바로 그때였다.

-???

-ㅁㅊ

-와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날이 찐이었네

갑자기 소란스러운 온라인 반응에 그들이 그 진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깨비 거리, 그 대망의 마지막 날 라인업을 공개합니다!]

마치 K팝 티저 같은 분위기.

요리사 복장을 입은 셰프들이 데뷔하는 아이돌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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