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15화
즐겁게 회식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제작진과 함께 과자와 음료수를 놓고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과자 맛있당."
"하… 이게 성공의 맛인가."
과자를 우물우물하는 우리의 모습에 제작진이 감탄했다.
양미현 작가님이 캔 맥주를 홀짝이며 물었다.
"너희 배 안 부르니?"
"배가 엄청 부르긴 한데, 과자 배랑 음료수 배는 또 다르잖아요. 고기랑은 다른 거니까."
"대단하다. 아직 다들 어려서 그런가. 위가 튼튼하네."
아메리카노 과다 복용으로 위장 장애 하나씩은 달고 있는 제작진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래도 저는 미국에서 위염으로 실려 간 적 있어요."
"자랑처럼 얘기하지 마요, 형…."
졸개들이 ‘이이잉-’ 하고 제작진이 막 웃을 때였다.
밖에서 막 들어온,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는 구재영 피디님과 카메라 감독님들이 뒤풀이에 동참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배!"
캔 맥주들이 짠 하는 소리가 오갔다.
외부인인 셰프들까지 끼어 있었던 회식과 달리 뉴니버스의 관계자들끼리만 모인 자리였다.
지난 4일 동안 있었던 별의별 일들을 입에 올리며 수다를 떠는 동안, 나와 구재영 피디님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은 따로 자리에 모였다.
고생했던 기술부 스탭들이 회포를 풀고 있는 동안 연출부 사람들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구재영 피디님이 과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회의하자."
"네."
"뭐, 회의라기보다는 피드백 회의… 이걸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네. 머리가 좀 꼬인다."
"저희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야기해야지 해 놓고 까먹는 부분이 나올 수도 있고.
오늘 안 하면 귀찮아서 나중에는 안 하게 되니까.
"일단 도깨비 거리의 총 매출은 나왔어. 셰프님들이 장사한 것까지 다 합쳐서……."
동생들과 내가 눈을 초롱초롱 떴다.
"얼마인가요?"
"저희 역대급 찍었어여? 역대급?"
"어제까지 6300만원이었으니까…."
4일 차까지 종합한 최종은 얼마일지 하고 기대를 품었다.
구재영 피디님이 핸드폰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으며 눈을 좁혔다.
"?"
"아. 요새 노안이 와서……."
왜 입술까지 오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할머니도 핸드폰을 멀찍이 떨어뜨릴 때 저런 표정이 나오곤 했다.
우리가 두구두구 하면서 바닥을 두드리는 동안 구 피디님이 말했다.
"셰프님들이 운영한 식당까지 합쳐서 1억 1076만 6700원."
"!"
"!!"
도깨비 식당 1억 1천만 원 돌파.
"얘들아!"
"형!"
"고생했다!"
동생들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멀찍이서 맥주를 들이켜던 다른 스탭들도 ‘1억? 1억 넘었대?’ 하면서 와- 하며 건배를 했다.
"더 마셔! 더!"
"기분 조흔 날~ 쭉쭉 마셔야쥬~"
그동안 동생들과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와……."
"와아아……."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할까.
리혁이가 티셔츠 냄새를 살짝 맡고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진짜 나 몸에서 향기 대신에 햄버거 스테이크 냄새가 나요."
"저는여, 형. 아직도 코에서 햄버거 스테이크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약간 콧속에 냄새가 달라붙은 느낌."
"고생했다…."
나는 그중에서 특히나 고생이 많았던 비주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비주가 제일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형! 진짜 고생했어요!"
모두가 메인 셰프였던 비주를 칭찬하는 가운데.
구재영 피디님이 말했다.
"이제 여기서 식당 운영 비용을 제하고 남은 금액을 구례군의 도깨비 거리 조성에 기부할 계획이야."
"네."
기존에 미리 합의가 된 부분이었다.
도깨비 식당을 차리면서 모두가 관심을 가지던 부분.
-너희 수익 어떻게 할 거야? 기부할 거지? 기부할 거지??
왠지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사실 이미 그 전에 그렇게 하기로 계획을 했다.
그래야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있으니까.
이번에 도깨비 식당의 매출이 높은 이유 중에 하나는 가격이 높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장 기본인 블고기 스테이크가 18,000원 정도.
여기에 평균적으로 테이블마다 블고기 메뉴 3개에 다양한 사이드와 디저트를 시켰으니…….
"음."
회계 자료를 살피던 리혁이가 안경을 고쳐 쓰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임대료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순이익이 높은 편은 아니에요."
"으음."
"물론 일반적인 식당의 경우에는 Fixed Cost, 그러니까 전기세, 설비 비용, 임대료 같은 고정 비용이 높기 때문에 요리를 많이 팔수록 순이익이 급속도로 늘어나잖아요."
"그렇지."
100그릇을 파는 집의 순이익이 100만 원이라고 해서, 200그릇을 파는 집의 순이익이 200만 원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100그릇 집의 순이익에 이미 고정비용이 다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100그릇을 더 추가한 집의 순이익은 300만 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와."
지호가 감탄했다.
"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나두."
중현이와 지호가 ‘우린 친구~’ 하면서 사이좋게 꺄르르 웃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 비주에게 리혁이가 말했다.
"결론은 우리 원재료가 너무 비쌌어요. 변동비가 너무 높으니까."
"그렇지. 한우로 비프까스를 튀겼으니……."
그래서 순이익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격을 싸게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뉴블랙은 저런 재료를 쓰고도 저 가격인데 시중 식당들은 뭐임?
이런 반응이 100퍼센트 나올 테니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구재영 피디님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기부는 그렇게 진행할 거고. 지난 4일 동안 식당 영업하면서 있던 일들을 말해 줄게."
제작진의 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일들이 들려왔다.
"지난 4일 동안 구례 방문객의 숫자가 지난 6개월치 방문객을 넘었어."
"흐어……."
"관광수입도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고, 구례군의 식당들이 평균적으로 3배의 매출을 올렸고."
작가님들이 거들었다.
"농담으로 뉴블랙 동상 세워야 한다고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
"현장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려고 시장이나 음식점들을 돌아보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아."
"이거 봐봐."
작가님 한 분이 보여 준 사진에는 어느 유명 백반집에는 ‘뉴블랙님 평생 무료’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곳이 한두 집이 아니었다.
우리가 핸드폰을 들어서 그 사진들을 찍었다.
"후후후. 저희는 갑니다. 반드시."
"안 갈 거 같죠?"
그걸 비롯해 언론 기사도 대부분 호의적으로 떴다.
-"올 여름엔 구례 갈까?", 뉴블랙이 추천해 주는 구례군 Top 10
-도깨비 식당에 지역 경제 활성화, 상인들 "뉴블랙과 만나면 뽀뽀라도 해 주고파.."
-도깨비 식당 등장에 전남 관광도시들 들썩, 경제적 파급 효과만 ‘1조 원’
우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 도시들이요?"
"이게 구례군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다 보니까, 그 주변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거 같아."
"아……."
그 때문에 기존의 여수, 순천을 비롯해 보성, 담양 등의 관광지까지 평소보다 수입이 확 증가했다나.
도깨비 식당에 와 볼까? 했던 인원들이 현장 상황을 보고 빠르게 주변으로 퍼진 모양이었다.
"다행이네요."
이게 주변 상권으로 연결이 안 되면 불만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다행히 주변으로 관광객이 퍼진 듯했다.
"그리고 이건 온라인 커뮤니티들 이야기인데……."
"SNS에서는……."
"군청에 다녀왔는데 그분들이 말씀하시기론…."
제작진을 통해 오프라인 민심과 온라인 반응들을 꼼꼼히 모니터링 했다.
이번 프로젝트 자체가 워낙 대중과 밀접했기 때문이었다.
대중들에게 관심 받는 게 목적인 만큼 사람들이 이번 특집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반응을 확인한 후.
"음."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부정적인 반응들을 봐야겠네요."
"그치."
"어느 정도 비율인가요?"
"대략 90 대 10 정도? 워낙 반응이 좋아서 10이라기보다는 7이나 8 정도 느낌이긴 한데……."
사람이 어떻게 좋은 소리만 듣겠는가.
더군다나 뉴불백 때보다 더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만큼 여러 잡음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이 그런 부분들을 보여 주었다.
-구례 방문한 관광객들 ‘바가지 물가’에 울상.. "뉴블랙도 못 봤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흔히 있는 일이지. 방값이 3배가 됐어."
"아……."
"근데 이건 다른 나라도 다 있는 일이라서. 예전에 여행 갔을 때였나. 독일도 옥토버페스트 하면 갑자기 방값이 5배가 되고 그러거든."
‘방값이 올랐다!’ 하는 기사를 시작으로 여러 반응들이 이어졌다.
-도깨비 식당 호황에 구례군 들썩, 과연 빛만 있을까
"조용했던 동네가 뒤숭숭해졌다"하며 인상을 쓰는 어느 어르신의 발언을 인용하는 어느 신문의 기사.
[최근 ‘국민 아이돌’ 뉴블랙이 식당 영업을 한다는 소식이 돌면서 구례군에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의식 부재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은 편입니다.]
긍정적인 점을 조망하면서도 마지막에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들을 포커스로 잡는 TV 뉴스.
그걸 비롯해 정말 다양한 반응들이 보였다.
전국 노점상들이 구례군에 모이고, 어느 정치인이 구례군수가 우리 대표님과 유착관계가 있는 게 아니었냐는 발언을 했다가 수플레들한테 맞고 나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하고….
뉴블랙 팬들 중에 예쁜 사람들 많던데 구례 가서 꼬실 수 있겠느냐 질문하는 이상한 글들도 있고.
심해까지 파고들지 않아도 보이는 흔한 반응들이었다.
"흐음."
딱히 수면 위로 올라온 반응들은 아니다.
인터넷에서도 누구도 우리를 탓하고 있지 않고.
하지만….
"흐음."
"흐으음."
제작진과 우리는 눈을 땡글땡글 뜨면서 각을 쟀다.
-뉴블랙은 어떻게 욕도 많이 안 먹고 인기를 누리고 있나요??
만약 그런 질문이 있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답할 수 있다.
바로 치고 빠지는 것이다.
뭔가 화살이 우리에게 살짝 돌아가려는 조짐이 보이면 바로 도망치는 것이 바로 인기 비결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이 식당 특집의 경우에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지?"
"네."
지금이야 처음이라 수면 아래 있지만, 우리가 국내에서 또 식당을 차리게 될 경우에는 본격화 될 것 같은 잡음들.
솔직히 이번 도깨비 식당이 너무나도 대박이 난 만큼 어지간한 예능이라면 2차 특집을 노리는 게 보통이긴 하겠으나.
"식당은 여기까지 하죠."
"좋은 생각이야."
구재영 피디님과 우리가 의기투합하며 미소를 지었다.
‘도망가요.’
‘가자!’
구 피디님이 말했다.
"이런 건 얼마든지 다른 쪽으로 바리에이션이 가능하니까."
"맞아요."
"꼭 식당이 아니더라도 요리를 해 주는 특집을 하면 되는 거잖아. 너무나 힘들고 지쳐 있을 사람들을 위해 뉴블랙이 찾아가서 요리를 해 주는 그런 특집도 할 수 있지."
"오오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힘든 곳… 남극에 가서 요리를 해 주는…?"
"……."
구재영 피디님이 우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
"……."
스윽 시선을 돌리며 모른 척하는 우리의 모습에 예능계의 하이에나가 아쉬운 듯 일어나서 주변을 맴돌았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순진한 표정을 짓는 우리 피디님.
"이거… 재미있을 거 같은데…… 남극의 셰프……."
"……."
"재미… 시청률… 감동… 모두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설마 나만 재미있으려나? 그건 아닐 거 같은데."
"……."
"1월이랑 2월은 남극의 여름이라 그렇게 가기 좋다는데… 마침 내가 대표님한테 확인해 보니까 그때는 아무 스케줄이 없다던데……."
진정한 광기를 뿜어내는 누군가의 모습에 제작진과 졸개들이 나를 애타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우주야…!’
‘형!’
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섰다.
"피디님."
"이거 진짜 재미있… 응?"
"일단 시청률 20퍼센트 넘고 이야기해요, 우리. 그때 얘기해도 절대 늦은 게 아니잖아요."
"정말로…?"
순박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산적 같은 외모의 예능 PD에게 내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약속해요."
"응… 잠시만……."
"?"
"이거 약속하는 장면 찍어 두려고."
6mm 카메라를 드는 구재영 피디님의 모습에 모두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니….
근데 왜 먼 산이 빙산처럼 보이는 것 같지……?
* * *
도깨비 식당의 촬영을 마친 후.
"이번 프로젝트 하면서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했어!"
여전히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제작진이 구례군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하는 한편.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의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했다.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근데 왜 군산 가는 거예요?"
"어제 말했잖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리혁이 선물 줄 거라고."
"리혁이 형 선물이 뭔데 군산에 있는 건데요??"
"가 보면 알아."
어젯밤에 나는 멤버들에게 서울로 가는 길에 군산도 잠시 들러도 되냐고 허락을 구했다.
저번에 리혁이에게 주기로 한 선물.
-나는 나중에 줄게~
그 선물이 이제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궁금해하던 지호가 비주에게 촙 달라붙었다.
"형, 형은 알아요?"
"나도 몰라."
"진짜요? 다행이다."
"?"
"우주 형이 저한테만 얘기 안 해 준 건 줄 알았어요. 비주 형도 모르는 거면 괜춘."
중현이가 말했다.
"김비주 말고 나는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음……."
우리 셋째를 바라보던 막내가 고개를 저었다.
"형은 아니에요. 연기를 넘 못해."
"……."
중현이가 슬픈 얼굴로 오도독 맛동산을 먹을 때.
리혁이가 새초롬한 얼굴로 말했다.
"난 알고 있어요."
"안다고?"
"선물이 뭔지."
우리 메인보컬이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노래 아니에요?"
"?"
"군산에서 ‘리혁아 너와의 추억을 노래로 만들어 봤어~’ 하면서 내 솔로곡을 주려는 그런 계획이라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저번에도 솔로곡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어……."
내가 말을 얼버무렸다.
"아닌데?"
"……아니라고요?"
"응. 전혀 아닌데."
"이번에 작업한 52개 곡 중에서 내 솔로곡이 하나 정도는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제 막 준비가 됐다는 거 아니에요?"
전혀 아니었다.
리혁이가 눈을 깜빡였다.
"뭐지.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데요?"
"보면 알아."
"아, 답답해. 진짜. 대체 얼마나 비밀스럽게 준비해야 되는 선물이길래……."
계속해서 추궁이 날아들었다.
"뉴블랙 가족회의 결과. 선우주의 청문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원장은 저 김중현."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리혁이가 뾰족턱을 이용해 내 어깨를 콕콕 찍어 대기도 하고, 지호가 알려 주면 앞으로 한 달간 말 잘 듣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고.
하지만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결국 동생들도 지쳐 나가 떨어져서 잠에 빠져들 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원석이 형이 물었다.
"여기인가?"
"얼추 이 부근인 거 같아요."
차량은 어느새 군산의 시내로 들어와 목적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동생들도 잠에서 깨어나는 가운데, 붕어 같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공사장의 벽을 걷어 내고 이제 오픈 준비를 하는 공간.
"?"
"??"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생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근사한 정원을 배경으로 소박한 분위기의 건물과 큰 건물이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건물.
"여기야."
"?"
"리혁이한테 줄 선물."
"??"
당사자인 리혁이도 건물들을 바라보며 ‘?’ 하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내가 소개했다.
"여기는 도서관이야."
"도서관이요??"
"음, 이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되지. 그러니까 시작은 올 봄에 콜드랑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는데……."
콜드 브라운과 NBA 경기를 직관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가진 영향력을 좋은 쪽으로 써 보라는 이야기야.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언젠가 너를 굳건하게 지켜 줄 방패막이 될 테니까. 덤으로 기분도 좋고.
내가 가진 영향력으로 좋은 일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의 일부를 조금 더 근사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더욱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겠냐는 말.
여기에 그 전부터 하고 있던 고민들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해 보고 싶더라고. 시중 은행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동네마다 도서관을 짓는 프로젝트거든. 그중에서 군산에 짓는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어."
"……근데 그거랑 선물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프로젝트에 기부를 하면 이름을 써 주거든."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아담한 분위기의 별채 건물 앞에 적힌 명판이 드러났다.
반짝이는 명판.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
동생들이 크게 눈을 떴다.
"이거 봐요!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이에요!"
"우와아아아아아-!"
리혁이가 너무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가만히 서 있을 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늘 하는 이야기잖아. 한국에 도서관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도서관에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내가 우리 이름으로 도서관을 짓는 프로젝트에 기부를 하는 중이야."
"……."
"왜 군산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리혁이에게 내가 멋쩍게 웃었다.
"네가 어릴 때 미국으로 가서 딱히 한국에는 고향이라고 할 만한 장소가 없긴 하잖아."
"……."
"물론 인천에 살긴 했지만 그것도 정말 짧게 살았던 거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녀서 특별하게 연고지가 없다고 했으니까."
리혁이의 눈에 축축한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진짜 고향은 아닐지라도 할머니와 내가 있는 군산을 너의 고향처럼 느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리혁아, 나는 네가……."
하지만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 다다다다- 달려와서 내게 안겼으니까.
"?"
"??"
나와 동생들이 너무 놀라서 충격 받은 가운데.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모기처럼 ‘고마워요’ 하는 목소리가 내 품에서 들려왔다.
"어… 그, 그래."
갑작스러운 애정표현에 당황해서 얼버무리고 있을 때.
"!"
‘왜 자기가 놀라는 건데.’
자기가 포옹하고도 자기가 놀랐는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는 리혁이.
울 것 같으면서도 안 울고 있는 표정의 리혁이가 눈가를 훔치고, 동생들도 하늘을 바라보며 ‘울면 안 돼, 산타 산타’ 하고 있을 때였다.
"근데…."
막내가 손가락으로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 앞에 작은 건물은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인데. 그럼 바로 붙어 있는 이 거대한 건물은 뭐예요?"
"아. 그건…."
"?"
"어… 그러니까 이게……."
아담한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 옆에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도서관 하나.
서리혁 도서관으로 이렇게까지 감동 분위기가 될 줄은 몰랐던 터라, 내가 어… 하며 말끝을 흐릴 때였다.
옅은 구름이 물러나면서 햇살이 환히 내리쬈다.
찡-
"어?"
"어어!"
마침 햇살이 내리쬐면서 도서관 위에 붙어 있는 황금색 글자들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서리혁 도서관 따위는 가볍게 눌러 버리는 규모.
[김덕순 도서관]
"……."
"……."
방금 전까지 오열할 기세였던 동생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