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16화 (1,01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16화

콜드 브라운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내 뇌리에 남아 있었다.

-좋은 일을 해 보는 건 어때?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석환 형과 상의를 했다.

우리 TF 팀장님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동의를 하고는 이런저런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그중에서 눈에 띈 건 바로 유명 은행이 진행 중인 도서관 짓기 프로젝트 <지음知音>이었다.

[책은 우리와 마음이 통하는 벗(知音)입니다. 저희 은행은 도서관 접근에 취약한 입지에 도서관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익 목적으로 도서관을 지어서 공공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

달동네 주변에 조그마한 꼬마 도서관을 차리기도 하고, 산간도서 지역에 책방을 만들기도 하고.

개인 기부도 받는다는 이야기에 회사를 통해서 기부 의사를 타진하니…….

-어째서 저희 은행 프로젝트에…?

처음에는 ‘님이 왜 여기에?’ 라는 의미로 당황하신 듯했고.

-예?? 이 정도면 도서관을 거의 10개는 지을 수 있는….

다음에는 액수에 좀 놀라신 듯했다.

곧이어 고액 기부를 해 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이름을 걸어 준다는 말에 나는 나와 멤버들, 할머니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 결과.

-저희가 마침 군산에서 짓고 있는 도서관이 하나 있거든요.

7월 즈음에 완공될 것으로 예정된 군산의 도서관에 김덕순 여사와 리혁이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첫 번째 도서관의 이름에 리혁이 네 이름이 붙어서 정말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 네가 늘 그랬잖아."

어린 시절에 외로울 때면 책을 친구 삼아 읽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첫 번째 도서관에 너의 이름이 붙은 건 정말 뜻깊은 일이야. 그리고……."

"아니."

리혁이가 내 말의 맥을 끊었다.

"자꾸 같은 이야기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좀…."

"특히 리혁이 너한테는 내가 비트코인을 받기도 했고…."

훗날 아빠와 엄마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볼까 한다는 말을 했을 때.

당시 리혁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모았던 비트코인을 통째로 건네주었다.

물론 우리가 현재 벌고 있는 금액이 비트코인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걸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만한 액수를 미련 없이 남에게 준다는 것이 쉽겠는가?

그만큼 우리 리혁이가…….

"아니! 이 사람아! 그래서 왜 나는 이렇게 작은 도서관인 건데요?!"

그렇다.

여름이었다….

"자꾸 아련한 척하지 말라고!"

* * *

잠시 동생들이 ‘네가 참아’ 하면서 리혁이가 흥분을 가라앉힌 후.

내가 자상하게 말했다.

"서리혁 씨."

"왜요."

"서리혁 씨는 초등학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학년에 따라 다르죠. 저학년이면 이길 수 있고."

동생들이 혀를 끌끌 찼다.

"떼잉… 글러먹은 우리 형. 초등학생이면 그냥 매너상 져 줘야지."

"그걸 또 이기겠다고…."

"리혁이도 진심은 아닐 거야. 진심으로 저런 못된 생각을 했을 리 없어."

리혁이가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말한 비주를 째려보았다.

"형이 제일 나빠요."

"??"

비주가 눈을 끔뻑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동안 내가 리혁이에게 말했다.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는 초등학생은 작은 존재입니다. 리혁 씨."

"그런데요?"

"마찬가지로 씨앗 또한 작죠. 하지만 작은 씨앗이 커져서 언젠가는 거대한 나무가 되곤 합니다."

내가 어린이 도서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처럼 어린이들은 작지만 거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죠. 그런 어린이들이 들어가게 될 저 도서관이 과연 작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으음……."

"이제 군산의 어린이들 중 일부는 서리혁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솔깃해하는 리혁이에게 슬금슬금 다가가 주변을 맴돌았다.

"손때 묻은 책을 빌려서 집에 와서 물티슈로 슥슥 닦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바코드 위의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

"!"

"보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드러누울 때, 책의 옆면으로 보이는 보라색 잉크의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

"!!"

결국 물리적인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나의 말에 리혁이는 현혹되고 말았다.

지호가 물었다.

"헐, 그러면 저희도 어린이 도서관에 이름 들어가요?"

"아니."

내가 답했다.

"너희는 큰 도서관에 이름 들어갈 거야."

"헐, 진짜여?!"

"우와아아아아아아-!"

얼싸안고 기뻐하는 졸개들과 다시금 나를 뚱한 눈으로 바라보는 리혁이.

그러곤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지 피식 웃었다.

"뭐. 아무튼 정말 고마워요."

"그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머님 옆을 양보해 준 건데…."

정말 큰 결정을 했다는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아직도 김덕순 여사의 옆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이 내 눈앞에 아른아른하고 있었다.

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견뎌 내고 있을 뿐….

리혁이가 말했다.

"이건 진짜…."

도서관을 바라보던 리혁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정말이지 보기 드문 예쁜 미소여서 간만에 리혁이의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도서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혁이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에요. 그리고 또…."

그러곤 뒷머리를 살짝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까 그 말도 고마워요."

"?"

"고향에 대한 말."

"아."

한국에 특별하게 연고지가 없는 리혁이에게 나와 할머니가 너의 고향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

멋쩍어 하는 리혁이에게 내가 물었다.

"같이 사진 찍을까?"

"나 단독 사진 먼저 찍고요."

"찍어 줄게. 얼른 저기 서 봐."

그렇게 졸개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프로젝트 관계자 분과 만나서 도서관 내부를 탐방하기도 했다.

지호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게 진짜 어린이 책만 있는 거였구나."

"너 어린이 도서관 한 번도 안 와 봤어?"

"형, 제가 도서관 다녔던 사람처럼 보여요?"

"설득력이 있군…. 관상에 책이 없어……."

형들의 놀림에 지호가 우리의 등짝을 팡팡 치며 ‘에잇!’ 했다.

지 입으로 먼저 말했으면서….

그동안 리혁이는 책들의 진열 상태를 바라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책덕후의 마음에 들 정도면 배치를 잘하신 것 같다.

"나 사진 한 장 찍어 주세요."

"응."

"요거 바코드 이름 나오게."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바코드가 붙은 마법천자문 책을 든 리혁이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며 웃던 비주가 관계자 분에게 시선을 돌렸다.

"개관은 언제 하는 건가요?"

"아마 다음 달 중으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은 공사가 다 끝났는데, 아직 김덕순 도서관은 안에 인테리어를 마감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어서……."

"개관식 할 때 저희도 오고 싶어서요."

"오시면 저희야 영광이죠~"

그때 동생들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근데 할머님은 언제 오시는 거예요? 할머님도 저번에 오신다고 했잖아요."

"아마 곧…?"

마침 어린이 도서관 탐방을 끝내고 나오니 할머니의 차량이 서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숙자 이모와 함께 내린 할머니에게 내가 반갑게….

"할머……."

할머니! 하면서 달려가려던 내가 멈칫했다.

오늘 우리 김덕순 여사의 표정 상태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늘상 화가 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틀린 말이다. 기분이 좋은 날도 며칠 있고, 안 좋은 날도 100일 정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유바바!’

어느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악한 여관 주인과 같은 얼굴이었다.

잔뜩 찌푸려서 힘줄이 솟은 이마.

피곤해서 초췌한 안색.

"어……."

할머니가 내게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사악한 대요괴 김덕순의 마력에 홀린 나는 저도 모르게 발을 움직여 그 앞에 섰다.

내가 공손히 손을 모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죄송합니다…."

"너……."

잠시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르던 김덕순 여사가 내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아얏! 아야아아!"

"내가!"

"아얏!"

"피똥 싸면서 개고생혔다! 그놈의 장사 한다고…!"

겨울철이었으면 덜 아팠을 텐데.

잠깐만 서 있어도 땀이 흥건해지는 한여름이다 보니 젖은 등짝에 손길이 따끔따끔하다.

그래도 좋다.

때리는 기력이 약해졌다면 내 마음은 아마 찢어지ㄱ…

"아아악!"

엄청 아프네.

그렇게 동생들이 키득거리는 동안 할머니에게 등짝을 맞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다.

-도깨비 식당 장사를 본 사람들이 순이네 백반집에 대거 몰려들었다.

"뭔 미꾸러지도 아니고 사람이 바글바글…."

-엄청 몰려들었다.

"내가 너 때문에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어. 또 뚱하면 저거저거 선우주네 할머니 불친절하고 못 돼먹었네 하며 옘병첨병을 떨어댈 것이니…."

"어……."

내가 감동한 얼굴로 물었다.

"결국 날 위하는 마음이었던 거네??"

"!"

한 대 더 맞았다.

말하지 말걸.

매니저와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멀찍이서 어린이 도서관 문을 잠그고 나오는 관계자의 모습에 할머니가 갑자기 체통을 지키며 품위 있는 척을 할 때.

내가 동생들에게 말했다.

"잠깐 다른 데 구경하고 있을래? 나 할머니랑 잠깐 투어 좀 다녀올게."

"네~"

김덕순 여사의 까슬까슬하면서도 따스한 손을 붙잡고 [김덕순 도서관]을 보여 주었다.

할머니가 ‘어휴’ 하며 고개를 돌렸다.

"민망스러워서 못 보겄네."

"민망해?"

"내가 뭐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밥 장사만 하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그럼 지금부터 유명해지면 되지."

내 말에 할머니가 픽 웃었다.

그러곤 자신의 이름이 붙은 [김덕순 도서관]을 올려다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과거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의 눈동자 위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가는 게 보인다.

"그려. 고맙다."

"히히."

"근데 이거 사람들이 많이 오겄나 싶긴 한데."

"올 거야. 여기 프로젝트 담당자 분이 그러시는데 도서관 수요가 분명 있는데 없는 자리들에다가 짓는다더라."

내 말에 프로젝트 관계자 분이 이런저런 설명을 더해 주었다.

"가장 최적의 입지 다섯 곳에 지을 도서관에 뉴블랙 멤버 분들과 할머님의 성함을 넣기로 했습니다."

"아 그려요? 또 어디에 지어요?"

"저희가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면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인 터라 자세한 위치 정보까지는…."

"아~ 그려요~"

아마 조만간 개관식을 하면서 도서관을 짓는다는 사실은 공개될 예정이지만 자세한 위치는 비밀이었다.

굳이 비밀로 해야 되나 싶긴 했지만 은행 측에서 이야기한 사유 때문이었다.

-예전에 저희 은행이 유명인 분들과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교훈을 얻었습니다.

-?

-유명인의 이름을 딴 공공시설이 들어설 경우, 주변 집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소식에 여러 아파트 대단지들이 자기들 주변에 지으라고 시위를 하거나 방해공작을 펼치는 경우가 없잖아 있어서…….

그런 이유로 현재 어디어디 지을 거라고는 비밀에 부친 상태였다.

어쨌거나 할머니가 잠시 김덕순 도서관을 둘러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때였다.

"음? 저건 뭐냐?"

도서관 뒤편의 정원에 설치된 무언가를 본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김덕순]

동상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서 있는 동상.

곧장 김덕순 여사와 함께 그 동상을 구경하러 갔을 때.

"……."

할머니가 잠시 멈칫했다.

동상에는 단순히 할머니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작긴 하지만 우리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어른이 된 내가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할머니와 엄마가 손을 잡고 있는 동상.

"어때. 할머니?"

"……."

"엄마 예쁘지?"

"곱네…. 내 뱃속에서 어쩜 저렇게 예쁜 게 나왔을꼬."

분명 동상이지만 엄마의 손을 만지작만지작거리며 웃는 할머니였다.

한참 동안 혼자서 그 동상을 올려다보더니 절에서 그러하듯 두 손을 합장하며 팔의 염주를 만지작거리는 할머니.

뜬금포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내가 작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근데 내 동상이 있으면……."

할머니의 시선이 조금 떨어져 있는 리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혁이도 있냐?"

"응."

아니나 다를까.

도서관 주변을 둘러보며 구경하던 졸개들도 리혁이의 동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헐! 이거 봐요! 리혁이 형이에요!"

"서리혁 동상!"

감격한 얼굴로 서 있는 리혁이.

하지만 동상을 본 순간 동생들이 빵 터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진지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도 숙자 이모와 함께 허리를 붙잡고 웃는 가운데, 내가 조용히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할머니가 말했다.

"어디 봐봐. 동상 이름이…."

[고군분투하는 가왕 서리혁]

아마존의 최강 민물고기, 피라루쿠를 타고 있는 가왕 복장의 리혁이가 마이크를 칼처럼 들고 잉어와 하찮게 싸우고 있는 장면.

"와. 디테일 봐요. 그 와중에 단추도 하나 터져 있어."

"리혁이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만이 추가할 수 있는 디테일…."

"자세히 보면 귀 부분이 묘하게 다른 질감으로 표시되어 있어요. 저건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거죠."

동생들이 리혁이의 복장을 터뜨리고 있을 때.

스으윽.

스산한 표정의 리혁이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달리기 빨라요?"

"응."

"지금부터 10초 줄게요."

"알았어."

나는 그날 인생 최고의 속도로 도망쳤다.

* * *

이번에는 매너상 잡혀 주었다.

일이 워낙에 힘들었던 탓에 시작부터 헉헉대는 리혁이의 모습을 보고는 일부러 잡혀 주었다.

"헉… 저, 절대… 내가 히,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

"하… 할았… 아니 알았어효."

"헤엑…."

서로 말을 하다가 손사래를 치고, 손사래를 치다가 말을 하고 하며 겨우 의사소통을 할 정도.

어쨌거나 다사다난했던 리혁이의 선물 퍼포먼스는 성공했다.

"노래 선물을 기대했지만 뭐…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틈날 때마다 ‘서리혁 어린이 도서관’ 사진을 보면서 꺄르륵 웃는 걸 보면 엄청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노래 선물은 나중을 기약하고. 내가 미션 싱어 곡들을 열심히 편곡해 줄게."

"고마워요."

왠지 모르게 조만간 강자들이 등장할 것 같다는 리혁이의 말을 듣기도 했으니까.

최선을 다해 편곡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우리는 다시 그립고 그립던 레몬 엔터로 복귀했다.

"우주야…."

"기다렸다. 선우주…."

거의 좀비나 다름없는 몰골의 프로듀싱팀 직원들.

"다들 괜찮으세요?"

"괜찮겠니??"

프로듀서들이 하소연을 했다.

"이제 잠시 쉬나 했더니 갑자기 곡을 40개 가까이 보내 버리는 누구 때문에……."

"하핫."

"근데 어떻게 이걸 다 쓴 거야?"

"장사하기 싫으니까 곡이 잘 써지더라고요."

"와. 남극 가면 곡 진짜 잘 써지겠네."

"……."

방금 그 말을 한 솔트맨 작곡가님을 스윽 바라보자, 상대가 조용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내가 웃으며 나상윤 팀장님에게 물었다.

"조만간 회의할까요?"

"응. 내부회의 마치고 보자. 지금 외부에서 들어온 공모 곡들이랑 내부 곡들 취합하고 있으니까."

"네, 정리 끝나시면 회의 한 번 해요."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곧 녹음에 들어갈 <사운드 오브 선> 뮤지컬 넘버들.

가장 가깝게는 다음 주 월요일에 공개되는 우비즈 안무 최종 점검 등등.

그리고.

다음 달 말쯤에 컴백할 오버쿡의 안무도 얼추 완성이 됐다.

"이런 식으로 설탕이나 소금을 뿌리는 느낌의 안무를 해 보는 건 어때요? 요렇게 손가락을……."

비주가 만들어 낸 핵심 동작을 바탕으로 최고의 안무가들을 섭외해 마침내 안무를 완성했다.

그리고 안무가 완성됐다는 뜻은…….

"졸개들아."

"예!"

"드디어 때가 되었다."

"후후후후!"

바로 그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장사를 하기 전에 셰프들이 램프의 요정처럼 우리에게 주었던 소원권.

-뉴블랙아! 한국 시장 소개해 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도 답례로 무언가를 해 줄게!

그걸 사용할 시간이었다.

뉴니버스의 시청자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아직 우리는 그 소원권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도깨비 거리의 식당 입점은 셰프님들이 ‘같이 장사해 볼까? 하면서 먼저 제안한 거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소원권을 어디에 쓰는가?

"후후후…."

"후후후후."

예능으로 최고의 화제성을 찍었으니 이제 본업에도 그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할 생각이었다.

* * *

셰프들은 빈말이 아니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요.

세상살이는 기브 앤 테이크.

받았으면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이번에 뉴블랙에게 큰 것을 받았다.

한국 시장에서의 유명세를 얻었고, 또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당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알게 되었다.

보통은 수억 원가량의 비용을 들여서 시장 조사를 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을 미리 알게 된 것이다.

홍보야 말이 필요 없고.

그랬기에 뉴블랙이 또 다른 제안을 했을 때 그들은 몹시 기뻤다.

-혹시 뮤직비디오에 잠깐 출연해 줄 수 있어요?

대중적인 유명세에 목이 마른 해외 유명 셰프들.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가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나올 생각이 없냐는 말에 그들은 바로 승낙했다.

‘뉴블랙의 영어 곡… 이건 전 세계 사람들이 볼 거야.’

‘어린 친구들한테 나를 알릴 기회!’

서로서로 윈윈.

그런 생각에 대다수의 셰프들은 바로 승낙을 했고, 다시금 한 자리에 모였다.

"또 보는군요."

"반가워요."

도깨비 식당에서의 회식에서 술을 마셨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꽤 친해진 셰프들이 잡담을 떨었다.

바비 로스와 단테 첼리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

"??"

한국의 셰프들이 비척비척 다가오고 있었다.

단테 첼리니가 물었다.

"저건 뭐죠?"

"아. 제가 듣기론 한국 버전 뮤비도 따로 준비한다더군요. 아마 한국의 셰프들일 겁니다."

"아……."

거기에는 자신의 제자인 토머스 김, 김현욱 셰프도 있었다.

유달리 힘없이 걸어오는 그에게 단테 첼리니가 영어로 물었다.

"토머스? 무슨 일인가?"

"……역시 멀리서 볼 때가 아름다웠어요. 뉴블랙은…."

"??"

그 말을 마치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김현욱 셰프.

셰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들을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맙소사.’

그곳에는 방금 전 한국 셰프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인 것처럼 생기가 넘치는 아이돌들이 있었다.

장사를 하면서 잔뜩 파김치가 되었던 것과는 정반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 세계 최고의 셰프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카메오로 짧게 나오실 거라 그리 촬영이 길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군요."

"대신 안무 몇 가지만 저희가 가르쳐 드릴 거예요."

"안무를…?"

그리 되물으며 셰프들이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유난히 눈을 빛내는 비주도 그렇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우주의 표정이 오늘따라 무시무시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하핫. 지금까지 셰프님들이 저에게 고급 스킬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뉴블랙의 리더가 목을 우두둑 꺾으며 말했다.

"이제 제가 가르쳐 드릴 시간이에요."

"왜, 왜 갑자기 목을……."

"아. 제가 목 푸는 게 습관이라."

이제는 손을 풀면서 까드득 하는 우주.

그동안 셰프들이 온갖 구박을 하며 ‘더!’ 하며 몰아붙였던 제자가 그들에게 환히 웃고 있었다.

"자, 다들 이리 오세요… 이리로……."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가 꺄르륵 웃기 시작하는 가운데, 불현듯 아까 들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역시 멀리서 볼 때가 아름다웠어요. 뉴블랙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셰프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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