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22화
쏴아아아아아아아-
"비가 내리는구나…."
"엄청 쏟아지네요……."
"비주 너는 워터 파크 와 본 적 있어?"
"저 어렸을 때 가족들이랑 한두 번 정도 와 봤어요."
"나는 이번이 거의 처음이야."
"……."
쏴아아아아아아-
침묵 속에서 비가 내렸다.
너무나도 슬프다.
항구의 도시 군산에서 살았기에 바다는 익숙하지만, 워터 파크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
TNT 데뷔조 시절에도 우리 데뷔하고 첫 휴가 받으면 캐리비안 베이 한 번 가 보자고 했었는데…….
"워터 파크 하면 상상하는 게 있었거든. 뜨거운 햇살. 시원한 풀장. 사람들이 꺄르르 웃어 대면서 그 원효대사 해골물도 맞고…."
"……."
"하지만 비가 내리는구나……."
쏴아아아아아아-
"근데 왜 자꾸 비가 나한테 대답하는 거 같지? 나를 놀리는 거 같아."
"기분 탓이지 않을까요…?"
쏴하하하하하-
"야!"
쏴하하하하핫-
"비, 너 처신 잘해…!"
"흐하핫!"
허공에 삿대질하는 내 모습에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휘이잉 하는 바람 때문인지 자꾸 이상하게만 들리는 빗소리였다.
"우주 씨, 비주 씨."
비주와 내가 서 있는 천막 아래로 PBS <뮤직 On>의 조연출이 들어왔다.
습기 때문인지 안경에 잔뜩 김이 서린 피디님이 안경을 벗고는 옷자락으로 슥슥 닦았다.
"무슨 일인가요?"
"보도 본부 쪽에서 기상청에다 연락을 해 봤는데, 이게 경기권 전역에 내리는 비라서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비가 계속 내릴 거 같다네요."
"아……."
"원래는 경기 북부권 위주로 내릴 비였다는데 구름이 좀 남쪽으로 내려왔답니다."
비가 혹시 그치진 않을까 싶어서 30분 정도 대기하긴 했는데, 그칠 예정이 없는 모양이었다.
피디님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무대… 가능하시겠는지……."
"준비 들어갈게요."
"넵.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거의 30명에 가까운 스탭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전 녹화를 끝내고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스탭들 사정도 있고, 관객들도 우리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고.
"그냥 비 좀 맞으면서 하자."
"네, 형."
비 오는 날의 야외무대는 가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경이다.
밴드 가수들은 장비가 비에 젖어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우리 같은 퍼포형 가수들은 춤추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질 위험성이 있다.
쉴 새 없이 눈으로 들어오는 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때문에 생각할 게 많은 환경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프로들이 있었다.
"얘들아, 최대한 방수 되는 의상으로 가져왔어."
스타일리스트들이 의상을 가져왔다.
우리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최대한 안 젖는 재질로 부탁드려요."
"팬분들이 저희가 젖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보통 비에 젖어서 티셔츠 속으로 몸매가 드러나면 우와아아-! 하는 함성이 들려온다.
기사도 나고.
-선우주, 반전 몸매.. "개그맨몸짱 투표 1위"
그동안 운동한 보람이 느껴지는 그런 기사도 한 번은 보고 싶었지만.
-끼에에엑!
수플레들이 엄청 싫어했다.
이번에 뉴니버스 운전면허 특집을 하면서 수플레들과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 비공개로 이것저것 질문했다.
-그런 건 어때요? 콘서트에서 워터 캐논을 쐈는데 저희의 옷이 젖으면서 몸선이 살짝 드러나는…….
-으이익!
-그렇게도 싫으시군요.
이유는 다양했다.
-뭐, 뭔가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요!
-싫은 건 아닌데 노림수로 그러는 건 좀….
-굳이 궁금하지 않아요!
그 결과 비에 젖어도 딱히 태가 안 나는 의상들을 골랐다.
스타일리스트들이 말했다.
"요즘 애들은 진짜 연약하다니까."
"떼잉… 왜 이렇게 기가 약해. 우리 때는 아이돌 여름 무대하면 웃통 까고 시작했는데."
"그치. 가상 결혼도 한 번 해 주고, 남녀 합동 광고 찍어 주면서 연말 무대에서도 페어 안무 하고~ 팬덤도 터뜨려 주고~"
2세대 아이돌 덕질을 했던 스탭들이 추억에 젖어서 과거 회상을 할 때.
나이가 가장 많은 고참 실장님이 1세대 덕질을 회상했다.
"우린 패싸움했는데…."
"……."
"다들 옛날이 좋다고 하는데 지금이 정말 좋아진 거야. 그때 흑역사가 참 많았어……."
2세대 덕질이 어땠지~ 하면서 할머니 같은 표정을 짓던 스탭들이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시대가 달라졌다기보다는 그냥 저희 이미지가 좀 그런가 봐요."
"하긴, 확실히 뭔가 친근하고 그런 느낌이 있지."
섹시한 컨셉을 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끼요오옷!’ 하면서 닭살 돋아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왜 그런지 이해가 가긴 했다.
지호가 섹시 컨셉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짙은 색조 화장을 하고 입술을 붉게 칠한 막둥이가 우리한테 손키스를 날린다고 생각해 보면…….
-우웅~ 쪽~♡
그런 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와 비주가 궁서체로 말했다.
"잘못됐어."
"진짜 좀 아닌 거 같아요."
그렇게 의상을 갈아입고.
신발에 방수와 미끄러짐 방지가 되는 커버를 장착하고.
비 오는 날에 거추장스러운 헤드 마이크 대신에 핸드 마이크로 바꾸고.
메이크업도 확인하고.
"준비 끝."
신발 벨크로가 제대로 되었는지 찍찍 떼었다가 착용하고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란 머리카락 아래로 의상이 보인다.
1세대 아이돌 선배들이 입던 스키복을 여름 버전으로 개량한 듯한 의상.
스키 고글.
반팔 티셔츠 위로 입은 조끼.
여기에 허리춤에 차고 있는 물총까지.
"비주야. 너무 예쁘다."
"형도 오늘 너무 멋있어요."
"꺄르륵!"
"흐히힛!"
최애들끼리 손뼉을 짝짜꿍 하면서 좋아하고는 셀카를 열심히 찍었다.
그러는 동안 무대 점검을 마친 PBS 스탭들이 우리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댄서 분들!"
"네~"
다른 천막에서 대기하고 있던 댄서들과 함께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뜨거운 함성.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동안, 비주에게 속삭였다.
"근데 비주야. 나만 그러니?"
"네?"
"오늘따라 뭔가 좀… 되게 몸이 가볍지 않아?"
"어…?"
비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진짜 좀 그런 거 같아요."
"그치?"
정확하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늘따라 엄청 홀가분하고 가벼웠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좋은 무대 나올 거 같지 않아?"
느낌이 좋다는 뜻이었다.
* * *
개장 22주년을 맞이한 국내 유명 워터 파크.
여름철이라 어딜 가든 풀장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이었지만….
휘이잉-
오늘은 실내 풀장을 비롯해 다양한 풀장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옆구리에 튜브를 끼고 있는 세이프 가드들이 풀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실화냐. 사람이 하나도 없네."
"다 지금 뉴블랙 보러 갔잖아."
"아씨, 나도 보고 싶다……."
근무지 이탈만 아니라면 그들도 뉴블랙을 보고 싶었다.
‘나도 우비즈 볼래….’
‘아씨, 뉴블랙이 왔는데 왜 못 봐.’
현재 무대가 설치된 실외 파도풀에 있을 근무자들이 미친 듯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 시각.
"와아아아아아아아-!"
"우와, 미친 뉴블랙…!"
구명조끼를 입은 손님들이 한 손에 폰을 든 채,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딸을 목마 태워 준 어느 아빠도 말했다.
"아영아, 저기 봐 봐. 저 오빠들이 유명한 사람들인데 알아?"
"몰라."
"저 삼촌들이 토끼 삼촌이랑 친구야."
"꺄!!!"
여기저기서 마트 삼촌이다, 토끼 삼촌 친구다 하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을 때.
우비즈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우비 입고 등장하네."
"귀여워~!"
리허설을 하기 위해 우비를 쓰고 있는 우비즈와 댄서들이었다.
PBS 로고가 달린 카메라가 여기저기서 움직이고.
맨 앞줄에 앉아서 슬로건을 들고 있는 수플레들이 어마어마한 환호성을 터뜨렸다.
간단하게 동선을 맞춘 우비즈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와… 정말 많이 모이셨네요.
우주와 비주가 주변을 둘러보며 놀랐다.
오늘 워터 파크에 놀러 온 사람들이 전부 다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뒤를 돌아본 우비즈가 빵 터졌다.
-아니.
우주가 마이크를 들고 웃었다.
-옛날에 음악 방송 여름 특집을 하면 여기 실외 파도풀이 뒷배경으로 나오거든요. 파도가 쏴아아- 하고 몰려오면 사람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뭔가 여름 느낌이 나야 하는데…….
-아무도 안 계시네요.
다들 민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지금 우비즈의 뒷배경으로 보이는 실외 파도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저희를 보러 야외로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특히 우리 수플레…….
"키야아아아악!"
-수플레 진정해요. 여기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내 수플레들이 ‘꺄아아-’ 하는 정상적인 함성을 내면서 일반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가 팬들에게 손 하트를 날리고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저희가 오늘 라는 곡을 들려 드릴 텐데요. 다들 알고 계신가요?
"네에에에에!"
-어디 얼마나 알고 계신지 볼까요?
비주가 마이크를 들고 감미롭게 흥얼거렸다.
Bada- Bada-
아무도
아름다운 목소리에 관객들이 와아아아아- 함성을 터뜨렸다.
‘미친.’
‘무반주인데도 라이브 미쳤다….’
그런 반응에 마이크를 내민 채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는 비주.
우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네에-."
-혹시 따라 불러 주실 수 있나요…?
‘아, 맞다!’
민망한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을 향해 비주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Bada- Bada-
아무도
관객들이 떼창을 했다.
그 누구도~♪
우릴 막을 순 없어~♬
나온 지 이제 5일 정도밖에 안 됐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노래였다.
정말 어딜 가든 나왔기 때문이었다.
오늘만 해도 워터 파크 곳곳에서 ‘Bada- Bada-’ 하는 음악을 들은 게 5번은 넘었다.
-좋아요. 그럼 기왕 하는 김에 응원법도 알려 드려도 될까요?
"네!"
관객들과 우비즈가 몇 번 정도 연습을 마친 후.
곧바로 두 아이돌과 댄서들이 우비를 벗으면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방금 전까지 우비를 써서 잘 보이지 않았던 얼굴과 의상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뽀얀 피부.
비현실적인 미모.
고글 아래로 보이는 귀여운 의상.
오프닝 대형으로 등을 맞댄 우비즈의 푸른 머리카락들이 벌써부터 젖어들어 가는 가운데.
-자, 그럼 음악~
-주세요~!
의 전주가 흘러나오면서 함성이 또 한 번 터졌다.
수많은 인파가 콘서트처럼 내지르는 함성에 우주와 비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진지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행복한 웃음을 못 참는 표정.
"와아아아아아아-!"
그 표정에 관객들과 수플레들이 더 큰 함성을 보냈다.
입술을 꾹 말고 표정을 관리한 우주가 곧바로 무대용 표정으로 변해 마이크를 들었다.
뜨거운 태양에
달아오른 ocean blue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긴 ocean view
이미 잔뜩 젖어든 하늘색 머리카락.
분명 흐릿한 구름이 끼어 있고,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은발처럼 반짝이는 듯한 머리카락이었다.
"뜨거운 태양에 달아오른 오션 블루~!!"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긴 오션 뷰~!"
관객들이 떼창을 하면서 우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익숙해진 지루함
잊고 있던 adventure
이어지는 비주의 파트까지 떼창을 해 주는 관객들.
비주에게 카메라 포커스가 가는 동안, 너무 즐거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우주의 미소가 짙어졌다.
‘좋아한다!’
‘애들이 좋아한다!’
마치 감동한 내한 가수에게 서비스를 해 주듯이, 더욱더 열기를 올려 가는 관객들이었다.
댄서들의 얼굴에도 즐거운 웃음이 연신 감돌았다.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PBS 스탭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감돌았다.
"오늘 진짜 좋은데요."
"진짜 오늘 좀 뭐 있는데?"
가끔 그런 무대가 있다.
날씨도 별로고, 분명히 외적인 조건들이 별로인 상황인데….
뭔가 좋다.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와 가수들의 무대가 마치 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해 주듯이, 주파수가 딱 잘 맞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감독님, 이거 90년대 여름 특집처럼 해야 되니까 저기 중간중간 배경도 좀 많이 따 주세요."
"예~"
"직캠은 잘 찍히고 있나요?"
PBS의 직캠을 담당하는 감독이 말없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PBS뿐만 아니라 지금 핸드폰을 들고 있거나, 직캠을 찍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오늘 진짜 뭐… 있나?’
비가 와서 직캠도 안 예쁘게 찍힐 것 같다는 선우주의 생각은 틀린 말이었다.
숨어 있던 수플레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 진짜 분위기 레전드….’
비가 내리는데 비가 아니고 마치 썸머 페스티벌에서 워터 캐논으로 물을 쏘는 듯한 느낌.
하늘에서 ‘우비즈 무대하는구나!’ 하면서 비를 쏴 주는 분위기였다.
이미 푹 젖어서 고글 아래로 내려앉은 파란색과 하늘색 머리카락마저 근사했다.
그 아래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
정말 무대가 즐거워서,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계속 웃음을 흘리는 두 가수의 행복한 표정.
오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환호성과 떼창.
Bada- Bada-
아무도
그 누구도
우릴 막을 순 없어
관객들이 ‘아무도’와 ‘그 누구도’에 ‘YEAH!’ 하고, 마지막 구절에 ‘WAVE-!!’ 하면서 응원을 할 때.
후렴구의 안무가 펼쳐졌다.
‘우와아아…….’
비가 오는 날이라 평소보다 동선을 조금 좁힌 우비즈였다.
동작의 속도도 약간 느려져서, 잘못하면 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안무인데도 생동감이 넘친다.
웨이브를 타면서 손목의 스냅을 꺾는 안무.
"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그동안 우비즈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물총을 들었다.
그들이 허공을 향해 발사한 순간.
파아아앙-
설치되어 있던 워터 캐논에서 물이 발사됐다.
관객들 위치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실외풀에 후두둑- 물들이 떨어졌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흐핫!’ 하면서 웃을 때.
‘와아…….’
타이밍 맞게 파도풀의 인공 파도가 우비즈의 뒤를 장식하고 있었다.
‘Bada- Bada’ 할 때나 후렴구의 웨이브를 탈 때마다 뒤에서 불어오는 인공 파도.
그렇게 한 큐에 성공적으로 녹화를 끝낸 우비즈에게 환호성이 폭발했다.
"미쳤다. 진짜."
"와, 진짜 장난 아니다…."
"뉴블랙 콘서트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수플레들을 불길하게 하는 머글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올 때.
-여러분!
"네에-!"
-재미있게 보셨나요?
"네!!!"
-우리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우니까 몇 곡 정도 더 부르고 갈까요?
"네!!"
안 그래도 좋았던 분위기가 더욱더 후끈후끈해질 때.
손님으로 위장해 방송국 스탭들 몰래 직캠을 찍었던 수플레들이 카메라 화면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레전드 나왔다.’
비에 젖은 하늘색 머리카락과 파란 머리카락.
그리고 파란 조명이 비춰지면서 한쪽 얼굴에 음영을 그리고 있는 두 아이돌의 미모.
그날.
[180803 우비즈(WBZ) 뮤직온 MusicOn 직캠 fancam - WAVE]
누군가 찍은 우비즈의 직캠은 저작권 침해로 신고당하기 전까지 역대 최단 1000만 뷰를 기록했다.
* * *
오늘 뭔가 좋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관객들의 열기도 뜨겁다.
뭔가 무대가 잘 됐다는 게 느껴졌는지 댄서들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주 형, 오늘 날아다니시네요."
"비주 씨 오늘 진짜 레전드……."
서로 너희 덕분에 무대가 잘됐다며 화기애애하게 칭찬을 나눈 후.
PBS 스탭들이 빠르게 무대를 해체하며 철수 준비를 하는 현장에서 인사를 나눴다.
조연출 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비 오는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무 일 없이 무대가 종료되어서 다행이에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날씨만 좀 좋았다면……."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음…?"
"어?"
주변이 조용해져서 바라보니 비가 그쳐 있었다.
피디가 말했다.
"뭐, 잠깐 이러다가 다시 또 비가……."
그 말에 하느님이 ‘아닌데?’ 하듯이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
"……."
피디님과 우리가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예……."
슬픈 표정으로 헤어졌다.
비주와 내가 서로를 껴안고 어허헝 했다.
"아니, 비가 내릴 거면 계속 내리든가 하지!"
"그러니까요…!"
"억울해!"
"야속해요…!"
야속하게도 비구름은 먼 곳으로 이동해 버린 듯했다.
현장 총괄로 나와 있던 원석이 형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날씨가 딱 이러냐."
"그러니까요…."
"인터넷에서도 슬슬 이야기 나오더라. 너희 무대할 때마다 자꾸 비가 오는 것 같다고."
내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진짜 자꾸 이런 식이면 가뭄이 심한 동네라도 가 볼까 봐요."
"그거 괜찮은 거 같아요."
살수차를 끌고 농가를 방문하는 이벤트 어떠냐는 이야기에 우리 스탭들이 솔깃해하고 있을 때.
오늘 사전 녹화를 끝낸 우리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켰다.
시간이 많다.
평소처럼 음악 방송 사전녹화였다면 본방송에 참여해야 했을 텐데, 오늘은 이걸로 때웠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신기해요. 무대에서 막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야 하는데 정말 자유로운 느낌이었거든요."
"그니까. 왜 그랬지?"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딩동.
단톡방에 톡이 들어왔다.
지호 [형]
지호 [바빠요??]
지호 [저 지금 인터넷 쇼핑몰 옷 보는 중인데 옷 좀 골라 주세요]
딩동.
리혁 [어디예요?]
리혁 [나 지금 고민이 있어요]
딩동.
중현 [김비주야]
중현 [내 보조배터리 어디 있는지 암??]
갑자기 하늘을 유유히 날던 기분이 살짝 지상으로 내려오는 느낌.
조용히 화면을 보던 비주와 내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비주야."
"네?"
"생각해 보니까 마침 여기가 놀이공원이잖아."
"네."
워터 파크 옆에 바로 동물원과 놀이공원이 붙어 있는 구조.
무언가를 눈치챈 듯 눈이 커지는 비주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바로 서울 가지 말고 좀 놀고 갈까?"
"좋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 * *
서울.
연습실에 모여 있는 삼블랙이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서리혁이 말했다.
"SNS 보니까 사녹은 끝난 것 같은데."
"그러게여. 왜 안 오지."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아예 [전원이 꺼져 있어…] 하는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뭐지?’
‘바로 올 거라고 했는데….’
그때 중현이 핸드폰을 보고는 말했다.
"음? 이거 봐봐. 얘들아."
"뭔데요?"
"우주 형이랑 김비주 실시간 근황이라는데?"
[실시간 우비즈]라고 되어 있는 게시글을 누르자, 동영상들이 떠올랐다.
[와! 미친! 우비즈…!]
[헐…!]
귀여운 머리띠를 쓴 채 판다와 레서판다를 구경하는 우비즈.
사파리 투어를 하고 있는 우비즈.
꽃길에서 브이를 하고 있는 우비즈.
핑크색 토끼 머리띠를 쓰고 있는 우락부락한 매니저와 경호원 등등.
"……."
"……."
사진 속 우비즈를 바라보던 리혁이 중현에게 말했다.
"이거 거기서 봤던 것 같은데… 우리 <서준이는 마트에서 살아> 끝나고 저 표정이었잖아요."
"무슨 표정?"
"뭔데욤?"
채근하는 두 멤버에게 리혁이 살짝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육아에서 해방된 사람들 같은 표정……."
"……."
"……."
사진 속에서 세상 행복한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는 우비즈를 바라보며 삼블랙이 모른 척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