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24화 (1,02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24화

누구나 맞닥뜨리기 힘든 현실과 마주하면 5단계를 겪기 마련이다.

1단계 부정.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거 평균 시청률이에요? 아니면 순간 시청률이에요? 우린 평균 시청률로 약속한 건데…!"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낸 거 맞아요? 어디예요? 닐슨?"

2단계 분노.

"이게 다 우주 형 때문이잖아요!"

"나 때문이라니. 너희도 같이 동의했잖아…!"

3단계 거래.

"생각해 보니까 너무 열 낼 필요 없어요. 알래스카에 간다고 했지, 뭐 어떻게 간다고 말한 건 없잖아요?"

"그치그치."

"그냥 알래스카 공항에 내렸다 오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

4단계 좌절.

"근데 그런 식으로 될 리가 없잖아……."

"흑흑!"

5단계 수용.

"가야지……."

"가야죠. 이거 뭐 시청자들이랑 약속한 거라서 뒤집을 수도 없고……."

1단계에서 5단계까지 순차적으로 다 겪은 우리가 한숨 섞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지금까지 귀를 막고 있었던 오디오 감독님을 비롯해 스탭들이 우리에게 물었다.

"이제 다 끝났니?"

"네."

"그럼 확정할게."

작가님 한 분이 지금까지 빔 프로젝터로 띄워 두었던 화면에 제목을 쓰기 시작했다.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3 : 알래스카 편』

다음 여행지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졸개 여러분."

"네."

"우리 뉴블랙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정신승리입니다!"

내가 멤버들에게 고개를 저었다.

"정신승리라니. 자기 합리화라는 표현을 써야죠."

"자기 합리화입니다!"

"그렇지."

우리의 강점은 바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자기 합리화였다.

연예계에서 롱런하기 위해서라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자질!

내가 말했다.

"알래스카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알래스카도 결국 미국이잖아? 우린 미국으로 여행을 가는 거예요."

"와아아아! 미국 여행!"

"그리고 자연 환경은 또 얼마나 아름답니."

리혁이가 동의했다.

"볼거리가 많죠. 책에서만 보던 피요르드 지형도 확인할 수 있고, 알래스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이 있거든요. 좋은 기회예요."

"맞아요. 형.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알래스카 나오는 거 봤는데 되게 좋아 보였어요."

중현이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동의했다.

지호와 비주도 이어 말했다.

"그! 그! 뭐지, 그리고 우리 땀도 안 나잖아요! 찬 바람에 얼굴 붓기도 쏙 빠질 거예요."

"알래스카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도 있구요."

눈앞에 알래스카 사진을 띄워 둔 우리가 외쳤다.

"꿈과 희망의 땅 알래스카!"

"와아아아!"

"신난다…!"

그렇게 외치는 우리에게 피디님이 말했다.

"얘들아…."

"네."

"울지 말고 앉아."

"흑흑흑……."

열심히 합리화를 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너무나도 슬펐다.

알래스카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고, 알래스카로 땅땅 정해진 데서 슬픔을 느낄 뿐이었다.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다가 그날따라 땡겨서 바밤바를 고르는 것과, 아예 처음부터 바밤바밖에 없는 건 다르지 않겠는가.

내 이론에 중현이가 반박했다.

"지금 바밤바 무시하시나요. 형."

"솔직히 너의 입맛이 특이한 거야. 중현아. 그런 특이한…."

"저희 할아버지 최애가 바밤바인데요."

"그래서 특별한 아이스크림인가 봐. 나도 오늘 바밤바 하나 먹어야겠다~"

아무튼….

"이렇게 정해졌네요."

"그치."

알래스카로 정해져 버린 리얼리티 여행지.

우리가 수긍하고 있는 동안 리혁이가 물었다.

"그런데 일단 구재영 피디님 허락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뉴니버스 제발회에서 약속한 거잖아요."

"그렇지."

우리가 여행일기의 PD님을 바라보았다.

멀뚱멀뚱.

왜 전화를 걸지 않으시냐는 우리의 시선에 피디님이 어색하게 말했다.

"그……."

"?"

"너희가 걸어 볼 수 있니? 우리한테 구재영 감독님은 조금……."

"아."

현재 구재영 피디님이 NB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워낙에 연예계에서 위상이 대단한 사람이라 조심스럽다는 뉘앙스의 이야기였다.

내가 곧바로 구재영 피디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으로 나온 팝송이 끝난 후.

-여보세요.

내가 스피커폰으로 바꾸며 말했다.

"피디님~"

-어, 우주야. 무슨 일이니?

"저희 지금 리얼리티 회의한다고 모여 있거든요.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3요."

-아, 그거.

구재영 피디님이 뭔가를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12월 편성인가?

"예, 아마도요."

-어, 근데 왜?

"아, 다름이 아니라 오늘 기사 보셨나요? 저희 15퍼센트 찍었다고."

산적이 껄껄 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봤지, 봤지.

"저희가 그래서 이번에 여행지를 고민하다가 알래스카로 갈까 생각 중이거든요. 그런데 뉴니버스 제작발표회에서 약속을 한 거니까, 피디님 의견도 여쭙고 싶고."

-물어볼 게 뭐가 있어. 너희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어, 괜찮으세요?"

-당연하지.

구재영 피디님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투로 답했다.

-우린 남극 갈 거니까.

"……."

리얼리티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구 피디님이 말했다.

-어차피 알래스카랑 남극은 이미지가 겹치거든. 시청자들 머릿속에 ‘극한의 땅’이라는 이미지도 있고. 뉴니버스에서 중복으로 다루기에는 배경이 겹쳐서 안 그래도 고민 중이었어.

예능 천재의 분석에 우리가 공감했다.

구 피디님이 ‘아무튼 나는 너희 여행 찬성이야~’ 하고 있는 동안, 지호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피디님~"

-어, 지호~

"여기 리얼리티 스탭 분들도 계신데 격려의 한마디 해 주세요. 피디님이 우리 NBS 대빵이시니까~!"

-대빵이라니…….

민망해하던 구 피디님이 이내 헛기침을 했다.

음성 통화인데도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있는 우리 제작진이 구재영 피디님의 말을 경청했다.

-여행일기 시즌 1과 2 너무 잘 봤습니다. 멤버들 이미지를 너무 잘 잡아 주시더라고요.

"허어어!"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이 아이들은 굴려야 재미가 나옵니다. 여행이라고 너무 쉬게만 두지 마시고, 열심히 굴려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명심할게요!"

내가 나섰다.

"감사합니다. 피디님."

-응? 아직 나 더 말할 거 있는데…….

"제가 이따 전화 드릴게요."

-우주야?

띠롱.

그렇게 사람의 속을 뒤집는 소리만 하고 떠난 구재영 피디님이었다.

리얼리티의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흥분 섞인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와, 나 진짜 연예인 만난 거 같아."

"대박이다… 톱스타랑 얘기했어."

제작진이 흥분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알래스카 Alaska

아마 리얼리티의 촬영 예정 일자는 아마 10월 말이나 11월 초 정도.

그때면 알래스카가 굉장히 추운 날씨일 거라 여러모로 쉽지 않은 촬영이 될 것 같지만…….

"이거 괜찮다."

내 말에 동생들이 공감했다.

"홍보 하나는 제대로 될 거 같아요."

"시청률도 꽤 나올 거 같고."

지금까지 우리 리얼리티는 팬분들만 보는 컨텐츠긴 했다.

물론 이 기조는 변함이 없다.

시즌 3 역시 수플레들을 위한 아이돌 여행 리얼리티로 가게 될 예정이지만, 꼭 리얼리티라고 해서 팬들만 봐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곰곰이 따져 보면 여행 포맷의 예능과 아이돌 여행 리얼리티 간에는 큰 포맷 차이가 없다.

전문적으로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내는 예능인 유무의 차이 정도.

그런데 우리는 프로 예능인이었다.

"맞아."

피디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도 그래. 이거 잘하면 시청률이 좀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 반반이긴 한데."

"일단 홍보는 잘 될 거 같아요."

지금 인터넷에서 우비즈를 제외한 뉴블랙을 검색하면 최신 기사들이 전부 다 알래스카 관련 이야기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가 ‘여행 리얼리티로 알래스카 갑니다!’ 하고 홍보를 때린다면?

-오? 뉴블랙 알래스카 여행기…?

알래스카라는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

공약으로 알래스카행을 걸었던 뉴블랙이 고통… 아니, 즐겁게 돌아다니는 여행기.

방송인으로서의 관점으로 보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였다.

"졸개들아."

"네."

"조금만 더 참자. 올해의 예능인 1위를 향해서…."

"예능인 1위!"

독기 어린 눈으로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자들이 불쌍해서라도 올해의 예능인 1위를 찍어 주게 만들 생각이었다.

* * *

수플레들은 최근 행복 max의 덕질을 하는 중이었다.

[서리혁이 좋아하는 곰팡이 @penicillin_lee · 11시간전]

(우비즈의 사진.jpg)

180803 뮤직온 사녹 #우비즈

찢었다

[오징어공주 @squid_princess_official · 6시간]

(빗속에서 활짝 웃는 우비즈의 기사 사진.jpg)

누가 청량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우비즈를 보여 주세요

근데 또 나만 무대 못 봤어..

어제 워터 파크에서 우비즈가 보여 주었던 무대를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는 수플레들이었다.

‘하악…….’

‘맨날 무대만 해 줬음 좋겠다.’

‘극락이구나. 극락이야….’

단순히 비주얼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많은 이번 활동이었다.

‘안무 연습!’

댄스 라인인 우비즈가 안무를 추면서 직접 라이브 기량을 선보이는 연습 영상도 있고.

특히 PBS의 음방 컨셉도 독특했다.

[올 여름 가요계의 뜨거운 강자가 찾아왔다!]

옛날 90년대 음악 방송에서 들었던 그 성우의 목소리.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 줄 그들의 이름은 바로 우비즈! 그들의 웨이브 한 번 감상해 보실까용~?]

옛날에 보았던 그 음방 그대로 나오는 의 특별 무대였다.

그걸 비롯해 현장에서 찍힌 사진이나 직캠들이 올라오면서 수플레들의 코 평수가 넓어졌다.

‘흐헷…….’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인 두 명이 무대를 한다.

근데 춤을 잘 춘다.

노래도 잘한다.

노래는 심지어 엄청 좋아서 쟁쟁한 썸머송 경쟁을 뚫고 차트 1위를 먹을 정도다?

‘PBS가 좀 꼴볼견이긴 한데…….’

일반인들이 현장에서 찍은 무대는 미튜브에 올라와도 내버려두면서, 아이돌 팬들이 찍은 영상만 집요하게 저작권 신고를 해서 내려 버리는 방송국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지쳤는지 이제는 포기한 듯한 분위기였다.

다양한 각도로 올라온 직캠을 보며 수플레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음……."

하지만 아무래도 본업인 무대 활동이다 보니 일반 커뮤니티에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했다.

이야깃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수플레들끼리는 우비즈가 비를 내리나 봐! 하면서 막 농담을 치며 놀고 있었으니까.

‘그치만 머글들한테 이야기하기엔 좀…….’

아직 머글들에게까지 ‘우비즈가 공연할 때마다 비가 내려요!’ 하기는 애매했다.

고작 며칠 정도 우연이 겹쳤다고 그러는 거냐고, 어처구니없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으니까.

그랬기에 조용히 있었다.

‘어디 보자. 우리 애들 관련 소식은…….’

머글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은 어제의 뉴니버스나 미션 싱어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어제자 가왕 선우주 무대

-[속보] 제45대 가왕 선우주 등극 (3연속)

-낯선 아버님에게서 느껴지는 막내의 기운 (feat. 뉴블랙 지호)

그리고 시청률.

-뉴니버스 시청률 15% 공약, 뉴블랙 알래스카행?

어제의 ‘도깨비 식당’ 준비편이 단번에 시청률 15퍼센트를 돌파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였다.

‘진짜 가려나?’

‘가나?’

모두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가장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남극 세종기지를 관할하는 정부 기관이었다.

-실시간 해양수산부 SNS 반응

글을 클릭한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korea_mof]

남극까지 5퍼센트 남았다. 꺄륵..

#뉴블랙_알래스카행_축하합니다 #남극_세종과학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왤케 좋아해

-슨스 담당자님 졸귀ㅋㅋ

-쌉마이너였던 내 분야가 메이저로 떡상 직전

-야 이쯤이면 의리라도 가줘야겠다ㅋㅋㅋㅋ

잔뜩 설레 하는 반응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뉴블랙 TV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시청률 15% 공약에 대한 답변]

썸네일에 까만 화면만 올라와서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어려운 영상이었다.

혹시 무릎을 꿇은 뉴블랙이 ‘살려 주세요…’ 하는 영상인가 싶어서 클릭했을 때.

"?"

"??"

아무 자막 없이 영상만 흘러나왔다.

‘북극곰?’

눈 덮인 설원에서 북극곰이 둠칫둠칫 걸어 다니는 영상.

그걸 시작으로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4K 화질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영상이지. 이건?’

정말 아무 자막조차 없었다.

그냥 가전제품 코너의 고화질 TV에서 틀 법한 영상이 이어졌다.

초원을 달리는 짐승들.

폭포.

눈 덮인 침엽수림.

"?"

"??"

그런 영상의 마지막에 새하얀 설원이 나올 때였다.

궁서체로 떠오른 자막.

[갑니다, 알래스카]

"!"

"!!"

그러면서 떠오르는 뉴블랙의 여행일기 로고.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 3 : 알래스카 편]

[Coming Soon]

지금까지 뉴블랙의 여행일기보다는 ‘호주 버스킹’, ‘백상아리와 선우주’, ‘뉴블랙 금화’ 같은 짤로만 유명했던 여행 리얼리티.

‘뉴블랙의 여행일기?’

‘무슨 프로지?’

곧이어 <뉴블랙의 여행일기>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TBC 음악 방송.

그리고 오늘의 사전 녹화에는 어김없이…….

쏴하하하하하핫-!

비가 내렸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비주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 때문이 아니야. 일기 예보에서도 오늘은 그냥 비가 오는 날이라고 했잖아."

"맞아요."

"그러니 우리 잘못이 아니……."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적당히 내리던 비가 미친 듯이 물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쏴하하하하하하하-!

"……."

"……."

밖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끄아아악!’ 하면서 우산을 쓴 채 괴로워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추우욱-

사전 녹화에서 마주친 우리 수플레들 역시 비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젖어 있었다.

"수플레…."

"와아아아아아……."

"미안해요. 저희가 또……."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중현이가 기우제를 지내는데도 왜 이러는 거지.

너무 이상해서 할머니한테 하소연했더니 우리 할머니가 신박한 이론을 제시했다.

-그게 노래에 물 기운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는 겨. 딴 기운이 못 이기는 것이지.

그렇다.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겨 있는 명곡, 그것이 바로 였다.

내 사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할머니의 대화를 대강 넘겼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수플레! 그럼 가 볼까요?"

"네!"

"음악 주세요~!"

"와아아아아아아-!"

오늘의 사전 녹화와 음악 방송은 깔끔하게 잘 마무리 지었다.

수플레들과 비를 맞으며 미니 팬 미팅을 한 후.

"안녕하세요!"

"허어어…!"

오늘 리혁이가 출연하는 <미션 싱어>의 경연에 패널로 들어갔다.

고정 패널들이 호들갑을 떨며 환영했다.

"아니, 이렇게 귀하신 분들이 어떻게 이런 누추한 곳에……."

"아이고! 우리 희극인 후배님들!"

웨이브 잘 들었다, 알래스카 가는데 불러만 준다면 노비처럼 가겠다 하는 예능인들과 수다를 떨고.

"안녕하세요."

"뜨헙… 떠… 떠… 떼……."

"?"

"뗴… 더… 던녕하세요. 아, 왜 이래. 아, 앗녕하십니까!"

"??"

비주와 나를 보고 잔뜩 긴장해서 외계어를 말하는 후배 아이돌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방송 녹화를 앞두고 입장을 시작하는 관객들.

"어?"

"어어?!"

우리를 보고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 관객들에게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렇게 <미션 싱어>의 경연을 기다리면서 비주와 함께 책자를 살폈다.

"크으."

"형, 여기 리혁이에요."

[제43, 44, 45대 가왕가왕가왕 가왕 선우주]라고 적혀 있는 이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바라기 가면을 쓴 리혁이가 귀엽게 브이 하고 있는 사진을 보며 웃은 후.

"흐음."

참가자들 라인업을 살폈다.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명품조연 장조림]을 비롯해 익숙한 참가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도전자 4인방은…….

"오늘 좀 범상치가 않은데."

"그…러게요."

가면만으로는 정체를 추측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사진으로 보이는 포스마저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나 하프 모양의 가면이 눈에 들어온다.

…왜 이렇게 최종보스처럼 생겼지?

"오늘 어떻게 될 거 같아요. 형?"

"음…."

속삭이는 비주에게 내가 입을 가리고 소곤거렸다.

"아마 큰 변수가 없으면 리혁이가 또 가왕을 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렇겠죠?"

갑자기 차우현 선배나 윤찬혁 선배가 등장해서 ‘하핫!’ 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럴 일이 없다.

저번에 봤던 더 문 선배님 같은 경우도….

이번 경연에서는 근소하게 리혁이의 우위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내가 편곡을 맡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럼 촬영 시작합니다~"

무대 위로 올라온 FD가 슬레이트를 치면서 녹화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이런 경연은 없었다! 오직 노래를 믿고, 나를 믿고 승부한다! 미션~]

[싱어~!!]

프로그램의 구호를 함께 외친 후.

곧바로 오늘 무대에 도전할 신규 참가자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어…?"

"어어??"

각자 소개가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이 웅성거렸다.

자신의 히트곡을 이용해서 정체를 추측하도록 만든 닉네임들.

"저거 더 문 아니야? 더 문?"

"연 같은데…? 저 사람 보컬 쩔지 않아??"

"미친, 백시연이다……."

비주와 내가 조각상처럼 굳었다.

"?"

"??"

대한민국 보컬 최강자 라인으로 꼽을 만한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우리가 얼어붙을 때였다.

띠리리링~♬

음산한 하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울려 퍼지는 음성 변조 목소리.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 님.]

거기에 대답하듯 어느 유명 만화의 디오니소스 목소리가 깔린다.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 버렸으니까 책임져~!]

[네. 알겠습니다.]

음성 변조인데도 중후함과 위엄이 느껴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하프 모양의 가면을 쓴 누군가가 망토를 펄럭이면서 무대 위로 걸어올라오고 있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오늘 무대.]

꿀꺽.

어느 패널이 침 삼키는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들려올 때.

키가 190이 넘는 유일무이한 발라드 가수가 등장하면서 비주와 내가 저도 모르게 서로의 손을 붙잡고 침을 삼켰다.

‘저분…….’

‘저 사람은.’

그러면서 하프 가면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입니다.]

"차우현…."

"차우현이다…!"

놀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무대 아래서 우리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리혁아……!’

아이고. 이걸 어떡하면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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