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27화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레몬 엔터의 회의실.
뉴블랙이 회의실을 나가고 난 후,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차우현]
대형 스크린에는 국내 발라드 보컬의 일인자로 꼽히는 인물에 대한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1980년 출생
-신장 191cm.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가수보다는 경찰이나 군인에 어울릴 법한 외모를 지닌 가수가 사진 속에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차우현 씨의 특징이라면 일단 저 체구에서 나오는 발성이 있습니다. 보컬 스킬을 떠나 우선 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성량에 압도되는 거죠."
"흐음…."
"이 부분에선 리혁 씨가 상당히 열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성량 자체의 차이.
"솔로 가수로서의 커리어도 어마어마하고요. 유명 드라마 OST는 물론이고, 혼자서도 체조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발라드 가수기도 하고. 무엇보다 경연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확실히 이 부분도 열세네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컬 4천왕의 말석 정도만 차지하고 있던 차우현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에 가요 경연 프로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면서 그 상황이 바뀌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기 시작한 것이다.
-TBC ‘전설의 탄생’, 차우현 최종 우승
-차우현, ‘전설의 탄생’ 우승 소감.. "제가 우승했군요"
-[hot토픽] 아직도 회자되는 차우현 ‘전설’의 1차전 무대
그동안 차우현의 윗급으로 여겨졌던 가수들을 모조리 꺾으면서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운 좋게 한 번 꺾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가수들을 물리치고 1위를 수성한 차우현은 결국 6개월간의 경쟁 끝에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 덕분에 차우현은 단박에 보컬 4천왕에서 대한민국의 원탑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차우현의 보컬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가 1위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지, 대한민국 보컬 Top 3 안에 드는 것은 인정할 정도였다.
그만큼 어마어마했던 임팩트!
"와아아아……."
"와……."
회의실 스크린에서 차우현의 무대를 감상하는 동안에도 직원들이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미쳤다.’
‘레전드가 레전드인 이유가 있구나.’
노래를 부르는 과거 차우현의 영상에는 아직도 최신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2018년에도 듣고 있는 사람 손
-7년이 지나도 이 무대를 이기는 가수가 아직도 없다
-요즘 아이돌 누구가 가왕이라고 깝치던데ㅋㅋ.. 형님이 참교육 좀 시켜 주십쇼ㅋㅋㅋ
┕걍 인기빨인데 잘한다고 빨아주는 거 꼴뵈기 싫어 죽겟음
┕뭐만 하면 지 오빠가 세계 최고인 줄 아는 ‘그 팬덤’ ㅋㅋ
┕ㄹㅇ 잘 부르는지도 모르겠는데
┕좋은 무대면 좋은 무대 이야기만 합시다. 왜 다들 자꾸 상관없는 이야기만 하고 합니까 ㅡㅡ
┕진지충 아재 검거
-이게 트루 가황이지ㅋㅋㅋㅋ 누구랑은 달리
댓글을 읽던 직원들이 발끈했다.
"이것들은 왜 갑자기 리혁이는 소환하고 난리야?"
"내비둬요. 쟤네들 최신 영상에 악플 달면 두드려 맞으니까 옛날 영상으로 도망친 거예요."
"아마 요새 엄청 스트레스 받을 거거든요. 리혁이랑 우주 미션 싱어 화제성이랑 반응 미쳐 가지고."
최신 <미션 싱어> 영상에는 악플을 달면 욕을 먹으니 옛날 차우현 영상에서 악플을 달고 있는 안티들이었다.
직원들이 댓글을 관찰했다.
‘여기 있는 안티는 또 다른 부류군.’
SNS에 상주하는 안티들이 다른 아이돌의 팬들로 추정된다면, 이쪽은 커뮤니티 등에서 뉴블랙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로 추정됐다.
직원들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오냐. 이것들.’
‘다음 경연에서 아무 소리도 못하게 해 주마…!’
물론 그들이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직원들은 자료 수집과 분석 담당이지, 실제로 전략을 짜는 것은 직접 무대를 하는 아티스트들이 맡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대는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우린 자료를 수집하고 가공한다!’
1차 로우 데이터를 열심히 가공해서 뉴블랙에게 건네줄 2차 데이터를 만드는 게 목표.
"차우현 씨 데뷔 무대부터 지금까지의 곡들을 정리해 봤어요."
"경연에서 선곡했던 곡 장르들 분석한 건데요. 87퍼센트가 발라드였고, 10퍼센트가 락, 그리고 3퍼센트가 기타 장르입니다."
"백시연 씨 같은 여성 락 보컬에게 조금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혹시나 백시연 씨가 이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자료를 수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음… 제가 지금까지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차우현 씨의 승률을 분석해 보았는데요."
TF팀의 직원이 스크린에 자신이 분석한 자료를 띄웠다.
"<도전, 명곡단>처럼 여럿 중에서 하나를 뽑는 경연에서는 대략 43퍼센트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어요."
"와……."
쉽게 말해 5명이 1위 자리를 두고 다툴 때, 1등이 차우현일 확률이 43퍼센트라는 뜻.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표가 분산되는데도 10번 중에서 4번은 1등을 한다는 뜻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윤석환 팀장이 물었다.
"그럼 <미션 싱어>같이 양자택일하는 경연은?"
"그건……."
* * *
"87퍼센트??"
"87이라구요…?"
회사 직원들에게 건네받은 자료에 적힌 숫자를 바라보며 나와 동생들이 기겁했다.
중현이가 눈을 깜빡이며 숫자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차우현 선배님이랑 붙게 되면, 100번 중에서 87번은 지는 거네요."
"숫자만 따지면 그렇긴 해. 근데 중요한 건 차우현 선배를 이긴 13퍼센트의 명단이거든."
그렇다면 차우현 선배에게 패배를 안긴 13%는 누구인가.
라인업이 줄줄이 적혀 있다.
"최유진… 백시연……."
어딜 나오든 경연 프로를 씹어 먹는 여성 락 보컬 최강자들.
"윤찬혁… 연……."
그리고 발라드의 최강자들.
심지어 발라드의 경우에는 락과 달리 윤찬혁 선배 정도만 차우현 선배 상대로 40%의 승률을 기록할 뿐이었다.
비주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진짜 명곡단 1차에서 어떻게 이겼을까요?"
"운이 좋았지. 포맷 영향도 있고…."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모두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말이 없는 1인.
"……."
리혁이가 말없이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리혁아…?"
"데이터로 분석한 걸 보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지?"
"전혀 아니네요……."
우리 메인보컬이 아련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호가 리혁이를 흔들었다.
"안 돼. 우리 형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
"하하하하."
"형, 정신 차려요!"
"하하하하하."
좌절 상태에 접어든 메인보컬을 바라보며 우리끼리 웃었다.
지하를 뚫고 내려갈 것 같은 리혁이의 기세에 지호가 형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위로했다.
"괜찮아요. 형. 우주 형이 뭔가 또 아이디어를 떠올릴 거니깐. 그쵸?"
"응."
그 말에 리혁이가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내가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번 경연에서는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
"??"
동생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현이가 자료를 보며 물었다.
"승패가 안 중요한 거면 왜 직원 분들한테 자료 분석해 달라고 요청한 거예요?"
"그야 우리의 전략에 필요하니까."
사실 이번 서리혁 VS 차우현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의 깊게 듣는 동생들에게 내가 설명했다.
"만약에 리혁이가 이번에 차우현 선배한테 승리를 거둔다고 상상을 해 봐. 표차가 아슬아슬하게 갈리지만 어쨌든 차우현 선배한테 이긴 거야."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상의 나래에 잠겼다.
-이번 미션 싱어 가왕전의 우승자는 바로 가왕 선우주입니다!
-가왕! 가왕!
상상 속에서 오르페우스 가면은 좌절하고, 해바라기 가면은 꺄하핫 웃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
"하지만 리혁이가 차우현 선배를 상대로 이긴다고 해서 갑자기 이미지가 바뀔까?"
"무슨 이야기예요?"
"리혁이가 경연에서 이겼다고 갑자기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을까?"
대중들의 반응은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헐 대박!
-와, 진짜 운이 좋았네~
-리혁이 잘하는구나~
10번 싸웠는데 10번 이겨서 ‘드디어 차우현의 시대는 갔는가…!’ 하는 거라면 모를까.
이번 경연 한 번 가지고 갑자기 이미지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차우현 선배는 무려 10년 넘게 보컬리스트 이미지를 쌓아 온 분이야. 반면에 리혁이는 이제 보컬리스트 이미지를 쌓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고."
"뭐, 그렇긴 하죠."
"그리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라고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거든."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호칭은 30~50대 사이의 나이대에 십수 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 온 선배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반면에 우리 리혁이는….
"어리지."
내 말에 비주와 중현이도 덧붙였다.
"귀엽기도 해요."
"뾰족한 병아리처럼 생겼어요."
리혁이가 새침하게 헛기침을 하는 동안 지호가 손을 들었다.
"저 질문이요. 리혁이 형이 이번에 이긴다고 막 킹왕짱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럼 지면요?"
"솔직히 패배해도 별 타격은 없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우현 선배한테 진 것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리혁이가 패배한다고 해서 ‘서리혁은 거품이구나!’ 하는 사람들도 없다.
지호가 아리달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이겨도 상관없고, 져도 상관없는 건가…?"
"그렇지."
그쯤에서 내가 승패 대신에 어떤 포인트가 중요한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리혁이가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말했다.
"승패보다는 이미지라는 거네요."
"맞아."
고개를 갸웃하는 다른 동생들에게 리혁이가 설명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객들이랑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예요."
"오호……."
"차우현 선배를 이기는 건 버라이어티 예능의 미니 게임 같은 거예요. 이기면 좋죠. 상품으로 걸린 음식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비교를 해 봐요. 만약에 미니 게임에서는 졌지만 웃긴 분량을 잔뜩 확보한 예능인이랑, 이겼는데 그냥저냥 분량을 확보한 예능인이 있으면요?"
"그야 당연히 분량을 더 확보한 사람이 좋은 거… 아…… 승패보다는 실속이 더 중요하다는 거네."
동생들이 그제야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리혁이가 이기면 좋지. 하지만 이번 경연의 포인트는 리혁이가 관객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각인시키느냐야."
지금의 리혁이가 가진 이미지는….
-가요계 상위권의 강자.
이번에 <미션 싱어>를 통해 쟁쟁한 가수들을 꺾은 가왕 선우주였다.
인디 밴드 중에서도 수준급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조유리를 꺾었고,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자를 비롯해 가요계의 강자들을 연달아 꺾으면서 리혁이의 위상은 급부상했다.
다만….
"아직까지 리혁이의 보컬에 대해서 명확한 이미지 같은 건 없거든."
"그런 것 같긴 해요. 그냥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른다 하는 정도."
리혁이의 보컬 실력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지만, 그 보컬 실력에 대해 딱히 이미지를 가진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심어 줄 좋은 기회가 생겼다.
-차우현 VS 서리혁.
이 소재로 무려 4주간 방영될 예정인 <미션 싱어>의 화제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좋은 기회야. 차우현 선배와의 구도를 통해서 리혁이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거든."
"무슨 이미지요?"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가요계의 미래."
* * *
가요계의 미래.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냥 쉽게 말하자면 유망주 같은 거였다.
스포츠 기사에서 축구 유망주들이 유스에서 활약을 할 때 네티즌들이 보여 주는 반응들.
-저 아이가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구나!
어차피 현재의 리혁이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보컬 같은 이미지를 얻을 수 없다.
물론 내 생각에 실제로 20위권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실력이랑 별개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리혁이 호감이고 잘 부르는 건 아는데 그건 좀…….
-리혁이 아직 22살 아닌가? 지금 30, 40대 선배들이랑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임?
-응. 저 사람들 데뷔했을 때 리혁이 갓난아기임.
너무 어리다.
이건 단순히 실력만 있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리혁이가 최소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여러 솔로 활동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망주 이미지 정도는 반감 없이 심어 줄 수 있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에요."
리혁이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은 거 같지?"
"그래서 계획이 어떻게 돼요?"
어느새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혁이에게 내가 음… 했다.
"일단 쉽지는 않아.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해."
첫째로는 차우현 선배와의 배틀에서 마냥 호락호락하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여야 하고.
둘째로는 기존에 차우현 선배와 흡사한 정통파 보컬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되….
마지막으로 기성 가수들과 차이점을 드러내 줄 선곡이 필요하다.
"젊음, 패기,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선곡이 좋지. 분위기로 따지자면 파워 청량 같은 느낌으로."
"…진짜 쉽지 않네요."
리혁이가 내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나보다 모든 면에서 상위호환인 차우현 선배와 배틀을 하는데, 비슷한 보컬 스타일을 보여 주면서도, 기성세대와는 다른 젊은 패기가 느껴지는 선곡이 필요하고… 그걸로 표차를 6대 4나 5대 5로 좁혀야 한다는 거네요."
"맞아."
듣고 있던 졸개들이 질린 표정을 짓고, 막내가 ‘난이도 실화인가…’ 하고 중얼거릴 때.
그렇게 정리하던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었다.
"마음에 들어요."
"할 수 있겠어?"
리혁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까짓 거, 한번 해 볼게요."
"2주 동안 진짜 힘들 거야."
"힘든 건 상관없어요. 사실 그것보다는 불안한 게 더 컸거든요. 아무리 계획해도 답이 안 나와서…."
"……."
"근데 눈앞에 해답을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한결 낫네요."
보기 좋게 웃던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프로듀서님."
차가운 눈매 속에서 눈동자가 영롱하게 반짝인다.
"지금부터 제가 뭘 하면 될까요?"
* * *
오늘은 간략하게 선곡 회의 정도만 했다.
리혁이가 의견을 제시했다.
"내 생각에는 파워 청량을 보여 줄 수 있는 락 장르의 곡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모든 경우에 대비가 가능해요."
일단 가수가 부르고 싶어 하는 곡들을 비롯해 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곡들을 리스트에 적고.
"차우현 선배가 먼저 무대를 할 거니까……."
"우선 대조될 만한 점을 부각시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리혁이 보컬이랑 선배님 보컬이랑 스타일이 같으니까."
회사에서 건네준 자료를 기반으로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중에는 차우현 선배 대신에 백시연 선배님이 올라오는 걸 가정한 계획도 있었다.
리혁이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백시연 선배님 올라오면 완전 계획이 엎어지는 거잖아요. 거기에도 대비책이 있어야 돼요."
그 때문에 어떤 변수에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차우현 선배가 올라올 확률이 높긴 한데, 백시연 선배님이 올라올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여성 락 보컬 3대장 중의 한 축인 만큼 어마어마한 실력도 있지만….
-나는 백시연! 나도 오늘 내 노래가 어떨지 모른다!!
그날그날 삘(?)에 좌우되는 선배님이라서 무대의 퀄리티가 살짝 들쭉날쭉하다.
차우현 선배가 99점, 99점, 98점… 하는 스타일이라면….
이 선배님은 기본 90점 이상은 나오지만 93, 91, 97 하다가 갑자기 120! 하면서 잭팟을 터뜨리시는 분이다.
그야말로 랜덤 박스.
과거 경연에서 두 분이 붙었을 때 차우현 선배가 그런 식으로 꽤 당했다.
이번 방청에서 들었던 그분의 쩌렁쩌렁한 성량을 떠올리고 있을 때, 미튜브로 백시연 선배의 영상을 보던 지호가 말했다.
"와, 어느 분이 올라오든 리혁이 형이 고생하는 건 변함없네요. 걍 미쳐 버린 지옥불 난이도…."
"리혁아 힘내."
"고마워요. 다들… 후우……."
리혁이를 토닥토닥해 주며 회의를 끝냈다.
다른 동생들이 저마다 개인 연습으로 돌아가는 한편, 비주와 나는 옷을 갈아입고 이동했다.
"자, 이제 우리도 슬슬 가 볼까?"
"네."
오늘은 일요일.
등촌동에 있는 HBS <인기가수>의 공개홀에서 우리의 사전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에 올라탄 비주가 곧이어 보이는 여름철 풍경에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비가 좀 안 내렸으면 좋겠는데."
"그니까."
사전 녹화를 할 때마다 계속해서 내렸던 비.
흐릿한 하늘을 보며 비주와 내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별로 안 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였다.
쿠르르르르르릉-
강남을 벗어나자마자 하늘이 심상치 않게 바뀌었다.
"……."
"……."
비주와 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냥 납득할까 봐."
"이쯤 되면 그냥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될 거 같아요."
음방하는 주 내내 비가 내리는 것 같아서 그저 팬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시원한 썸머송을 불러야 할 때 자꾸만 비가 내리는 데서 야속함을 느꼈지만….
우리 우비즈가 누구인가.
"쓰레기통에서도 한 떨기 꽃을 찾는 우리는 우비즈."
"맞아요."
부정적인 것보다는 항상 긍정적인 것에 주목하는 편이었다.
우리가 무대를 할 때마다 자꾸만 비가 내린다면 이런 것도 이미지로 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민기 형이 ‘오’ 하면서 눈썹을 치켜떴다.
"얘들아."
"네?"
"너희가 추진했던 내일 스케줄 있잖아."
"네."
"그거 자세한 일정 나왔다."
"진짜요?! 잘됐다…!"
비주와 내가 손뼉을 마주치며 환히 웃었다.
* * *
같은 시각.
레몬 엔터 TF팀 사무실.
"음……. 으음……."
서리혁을 비롯해 삼블랙이 고심하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요것도 조금……."
"미묘한데요."
과연 어떤 곡을 선곡해야 할지 주의 깊게 듣는 삼블랙.
TF팀 직원들을 비롯해 프로듀싱팀 직원들도 같이 선곡 회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푸우……."
볼을 부풀리며 뒷목을 주무르던 서리혁의 눈에 누군가가 보였다.
전화 통화를 마친 TF팀 직원이 뉴블랙 스케줄표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음?"
"왜 그래요. 형?"
"어…? 저거……."
두 멤버가 서리혁의 손끝을 따라 벽에 붙은 뉴블랙 월간 스케줄표를 바라보았다.
내일 적힌 우비즈의 일정.
-PBS <지금 내 고향은> 기우제 특집 촬영 (예정)
처음에는 그냥 흔한 TV 촬영이구나 하며 끄덕인 이들이 얼마 안 가 멈칫했다.
"어…?"
"아니, 잠깐만……."
멀쩡한 스케줄 속에 뭔가 이상한 단어가 하나 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