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1028화 (1,02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28화

처음 비주와 내가 의 기획 회의에 참여했을 때.

우리가 그렸던 그림이 있었다.

-짜잔! 우비즈 등장!

-여러분? 더우시죠? 이 우비즈가 로 여러분의 무더위를 싹 다 날려 버리겠습니다!

더위에 지쳐 있던 수플레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마구 환호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또르르……."

실제로 벌어진 건….

쏴하하하하하하하-

우리를 열심히 비웃으며 힘차게 내리고 있는 비였다.

"아니. 아무리 상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지만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니?"

"날씨가 너무 비협조적이에요. 김중현 같아."

진짜 이상한 날씨였다.

마치 무슨 마(魔)라도 낀 것처럼, 날씨가 멀쩡하다가도 우리가 무대를 하면 비가 내리고 그랬다.

그것도 하루 종일이 아니라 딱 이 시간대만 소나기가 내리는 식이었다.

쏴하하하하핫-

"진짜 내리는 소리도 기분 나빠."

"조만간 비가 꺄르륵 웃어댈 거 같아요."

등촌동 HBS 공개홀의 2층에서 유리창 밖에서 우산을 쓴 수플레들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알록달록한 버섯들이 움직이는 걸 보는 느낌이었다.

"에구……."

"저 마음이 너무 아파요. 형."

대부분 실외 대기를 하는 수플레들에게 비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대부분 소나기에 가까워서, 잠시 한눈을 팔면 바짓단이 온통 젖어 있고 신발 안이 축축해지는 부류의 비였다.

하여간.

이 비는 수플레들에게 있어서 좋은 구석이라고는…….

"음?"

"왜 그래. 비주야?"

"인터넷 토픽에 올라온 글 봤는데요. 우리 저번 공방에서 수플레들끼리 커플 된 사람들 있대요."

"??"

비주가 폰으로 보여 준 게시글을 읽었다.

비가 오던 사전녹화 날, 한 남녀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호감을 느꼈지만 우물쭈물 헤어져서 엄청 아쉬워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곧바로 공방 자리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만났다는 이야기였다.

"에이……."

"왜 그래요. 형? 좋은 일 아니에요?"

"둘이 헤어지면 어떡해. 이제 헤어지면 둘 다 오프에는 안 나오려고 할 텐데……."

전 남친, 전 여친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누가 나오려고 하겠는가.

"떼잉… 쯧쯧."

"저는 그런 쪽으로 상상도 못 해 본 거 같아요. 형."

"기왕 이렇게 된 거 저 수플레들이 결혼까지 가서 우리가 축가까지 부르면 좋겠다. 비 오는 날 당신들의 사랑을 맺어 준 우비즈의 축가…!"

"어어, 좋다아……!"

벗어날 수 없는 직업병이었다.

뭐든 생각하는 게 항상 컨텐츠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이번에 비주와 내가 새로운 컨텐츠를 기획한 것도 바로 이런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비주야.

-네?

-자꾸 이런 식으로 비가 올 거라면… 차라리 그냥 우리 기우제 같은 거 하고 다닐까?

-기우제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여름 정말 많은 지역들이 가뭄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댐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말라 죽어 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 농민들 소식도 들려오고.

만약에 그런 지역들에서 우리가 무대를 뛰는데, 운수가 좋아서 비가 내린다면 정말 좋은 일 아니겠는가?

-만약에 비가 안 내리면요?

-그래서 각 지자체랑 콜라보를 하는 거지.

온라인 검색을 해 보니 요즘 지자체마다 더위 대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살수차로 물을 뿌리기도 하는 식으로.

그렇게 물을 뿌리는 곳에서 우비즈가 무대를 하고 그러면 그림이 예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근데 이런 행사는 어떻게… 해야 돼요?

-그거는 말이지.

해당 업무에 탁월할 정도의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우리와 지난 몇 년간 함께 촬영을 하면서 친분도 깊고, 지역 이슈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사람들.

바로 공영방송 PBS의 <지금 내 고향은> 제작진이었다.

-네? 기우제요…?

-어떠신가요?

-준비하고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무조건 Yes를 외친 제작진은 곧바로 빠르게 일정을 픽스해서 연락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우비즈의 기우제 특집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비주와 내가 창가에서 몸을 돌리고 대기실로 향했다.

"준비할 게 많네요. 기우제 안무도 찾아 봐야겠어요."

"안 그래도 서울 소리박물관에다가 기우제 음원 자료를 CD로 요청해 놨어. 이따 그걸로 공부하자."

"네."

"리혁이한테 필요한 정보도 듣고……."

‘기우제의 기원은 말이죠…’ 하면서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줄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리고 리혁이뿐만 아니라 이번 기우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의견을 청취해야 할 인물이 또 있었으니…….

* * *

"저요?"

"응. 그래, 너야. 중현아."

"왜죠."

고개를 갸웃하는 중현이에게 내가 말했다.

"You 전직 농부. 장래희망 농사꾼."

"그건 맞긴 하죠."

우리 중현이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때부터 농부였다.

물론 실제로 중현이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장래희망이 ‘변호사’라고 적혀 있었다.

비주의 말에 따르면.

-걔가 벼농사라고 했는데 담임쌤이 변호사라고 쓴 거였대요….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민법이나 형법 대신 농법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였다.

한국사 시험에서도 다른 건 틀려도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이어지는 농법 파트는 절대 안 틀리는 농사 꿈나무.

"그렇군요."

지혜로운 곰 부족의 족장처럼 고개를 끄덕인 중현이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농사의 현자, 김중현이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

친구가 으스대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는 듯 비주가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농사의 현자라는 컨셉에 맞춰서 내가 무릎을 꿇었다.

"농부들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현자님."

"정확히 어떤 마음이…?"

"저희가 이제 기우제를 하러 가지 않습니까? 어떤 포인트를 주의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흐음."

중현이가 잠시 고민하고는 말했다.

"아무리 농사가 현대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요. 형."

"응."

"여전히 가뭄은 심각한 문제예요. 비가 계속 안 오면 가슴이 갑갑하고, 잠이 안 오고… 진짜 이거 어쩌면 좋나 싶고. 슬쩍 저수지를 가 봤는데 수위가 엄청 내려가 있고. 땅이 갈라지고."

"그렇구나……."

"그래서 기우제를 지낼 때만큼은 진지하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당부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스럽게 ‘비야~ 내려라~’ 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진지하게……."

"네. 실제로 비를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농민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생각으로요."

"알았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가뜩이나 비가 안 와서 열불이 터지고 있는데, 우리가 가서 ‘꺄륵~ 비야 내려라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얄밉겠는가.

비주가 물었다.

"참고할 만한 게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너 괴산에서 살 때는 기우제 같은 거 어떻게 했어?"

"음……."

중현이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고는 뭔가 이상한 듯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마을은 기우제를 지낸 적이 없네."

"?"

"그냥… 비가 잘 내리던데……."

뭔가 머쓱한 듯 시선을 딴 곳으로 이동하는 중현이.

그 말에 우리가 머릿속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고오오오오오….

어둡고 불길한 오라에 둘러 싸여 있는 실루엣들.

괴산군의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는 괴산 김가의 일족들이 근육을 꿈틀대며 크하핫 웃고 있었다.

-옥황상제! 비를 내려 주시오!

-안 내려 주면 우리 김가가 천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비주와 내가 훈훈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군.’

‘그냥 우연의 일치일 거예요.’

중현이가 ‘?’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갈 생각이에요?"

"아마 충청권, 그러니까 중부 지역 위주로 갈 거 같아. 지금 이쪽 가뭄이 제일 심하다고 해서."

"그렇긴 해요."

"근데 할아버님 댁은 괜찮니?"

"네. 비가 종종 내린대요."

"그렇군……."

좀비 사태가 터지면 중현이네 집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한편.

우리가 어느 지역들을 들르기로 했는지 궁금해하는 중현이에게 내가 지도를 보여 주었다.

"이게 리혁이가 적어 준 거거든. 올해 가뭄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들이라고."

"좋네요. 느낌이 괜찮은데요?"

전직 농사꾼의 말에 나와 비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는 기우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몰랐다.

다름 아니라 중현이가 느낌이 좋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는 것을…….

* * *

가끔 그런 사이가 있다.

몇 년에 걸쳐서 드문드문 만난 사람들인데, 뭔가 친근하고 오래 만난 것 같은 사이.

우리에겐 <지금 내 고향은>의 제작진이 그랬다.

"안녕하세요!!"

"어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2016년 초부터 소극장 투어를 하면서 우리가 국민 아이돌로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프로그램.

이곳에 출연한 이후로 중년 세대와 어르신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급격히 늘어났기에 우리가 크게 애착을 가지고 있는 프로였다.

<지금 내 고향은>의 조연출이 반갑게 인사했다.

"거의 반년 만에 뵙네요. 평창 개회식 때 뵀으니까."

"그러네요."

6개월 전에 평창 올림픽 개회식 무대를 하러 갔을 때, 평창의 명산물을 소개하는 특집을 같이 찍었다.

"그게 벌써 여섯 달 전이라니……."

"시간 참 빠르죠? 이제 8월이니 올해도 절반이 넘게 지나갔네요."

그러면서 요즘 를 잘 듣고 있다는 말에 감사하다는 인사로 답했다.

PD님이 스탭들에게 돌아가 촬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우……."

비주와 나는 꽃무늬 양산 아래 서 있었다.

주변에서 양산을 쓰고 있는 우리 매니저들도 벌써부터 티셔츠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비주야. 저거 아지랑이니…?"

"그, 그런 것 같은데요…."

땅이 열기로 일렁일렁인다.

어마어마한 땡볕.

"덥구나……."

충남 홍성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느 농촌 마을의 초입이었다.

주변에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매미들이 합창을 하고 있었다.

"비주야.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까?"

"뭔데요?"

땀을 훔치는 비주에게 미니 선풍기를 틀어 주었다.

"매미도 노래에 구조가 있는 거 알아? 준비하는 파트가 있고, 거기서 전반에서 후반으로 이어진 다음에 마지막으로 종결 파트가 나오거든."

"오오…."

"지금 나오는 건… 우리로 치면 브릿지 파트."

"그렇구나."

비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매미를 보고 있으면 리혁이가 떠올라요."

"?"

"저 작은 체구로 이렇게 큰 울음소리를 낸다는 게, 리혁이를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해요."

뾰족한 얼굴 뒤로 매미 날개가 붙는 상상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리드미컬하게 우는 매미 소리를 비트로 이용해 리혁이를 주제로 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서리혁이 누구인가~♬"

비주가 두 손 모아 응답했다.

"귀여운 매미라네~♬"

"그렇다네~ 매미라네~ 매일 미모가 미쳐서 매미라네~♬"

"매미라네~♪"

"마음을 조금 더 곱게 쓴다면~ 정말이지 예쁠 텐데~♬"

그렇게 비주와 내가 노래를 하며 놀고 있을 때였다.

덜컹- 덜컹-

흙먼지를 흩날리는 트럭 한 대가 오더니 운전석에서 마을 이장님이 풀썩 내리셨다.

낡은 모자 아래로 뺨이 홀쭉한 60대 남자 분이었다.

"어어~ 왔어요?"

"안녕하세요!"

"어어, 그려."

시큰둥한 표정.

아무래도 날씨 영향도 있고, 최근에 가뭄도 심해서 그런지 기분이 영 좋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제작진이 촬영 카메라를 든 가운데 우리가 이장님을 따라 움직였다.

먼저 마을을 함께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여기가 우리 마을 저수지인데."

"어……."

"허어……."

이미 다 말라붙어서 갈라질 정도인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비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그러니까…."

서울에 있을 때는 그냥 ‘심각한 뉴스구나’ 하고 흘려보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현이가 왜 가뭄을 정말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는지 확 와닿았다.

대충 최근의 가뭄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안녕하세요~!"

마을 회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마을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고, 우리 깜장이들…!"

"어머어머, 피부 하얀 거 봐. 애기가 따로 없네."

"애기지 뭐~"

환영해 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꾸벅 인사하고 있을 때.

어느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 이장님은 왜 거기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어! 얼른 와야지."

"아, 뭐……."

"우리 이장님이 뉴블랙 제일 팬이야."

시큰둥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는 이장님이 아주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우리에게 다가왔다.

"팬이셨어요?"

"아, 그, 저……."

맞으신 모양이다.

이장님께 팬 서비스도 해 드리고, 얼른 와서 밥을 먹으라는 손짓에 우리가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허어……."

"아니…!!"

메뉴는 중현이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능이 백숙.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떠먹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 맛은…!"

천상의 맛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백숙은 가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늘도 엄청 많이 들어가고, 닭도 실했다.

"역시 토종닭이군요."

"아니, 저 읍내 하나로마트에서 샀는데……."

농협의 맛이었군요… 하니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와 내가 어른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주변에 둘러싼 마을 사람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왜 왔냐는 말에 에 얽힌 비화를 이야기했다.

"어이구, 신기하네. 그니까 그 노래를 부르면 희한하게 비가 내린다는 거지?"

"우연이 겹치더라고요."

"우리도 진짜 비가 내렸으면 좋겠네."

그러면서 가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에게 설명을 해 주려고 할 때.

숨이 턱 막혔다.

"어…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는 마을 주민 분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50대 이상.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포세이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복잡해질 것 같았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말했다.

"단군신화에 보면 풍백이랑 우사, 운사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사…?"

어르신들이 수군거렸다.

"알어?"

"아니."

"웅녀 알지. 웅녀."

이것도 아니었나.

내가 설명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비주가 쏙 나섰다.

"옥황상제랑 용왕이 노는 이야기예요."

"아아아…!"

K패치가 완료된 의 찰떡 같은 설명에 내가 비주에게 칭찬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서 미튜브에다가 ‘우비주’를 검색하시는 어르신들.

그렇게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자."

무대 의상을 갖춰 입은 우리가 기우제를 하는 자리에 섰다.

마을 최고참 어르신이 돗자리 위에 놓인 술상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거 누가 했어?"

"예?!"

귀찮게 대꾸하는 이장님에게 어르신이 잔소리를 했다.

"좌포우혜(左脯右醯), 홍동백서(紅東白西)…!"

"예?!"

"에이, 쯧쯧……."

못 알아듣는 척하며 무시하는 이장님의 말에 어르신이 끄응 하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뭔가 상차림이 별로이신 모양인데 우리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붉은 대추와 밤 등이 놓여 있는 차례상과 비슷한 분위기의 상을 바라본 후.

내가 헛기침을 하며 꽹과리를 들었다.

"?"

"??"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에게 내가 꽹과리를 두드렸다.

챙-

관심 가득한 시선.

챙채래래래 챙챙챙-

꽹과리를 연주하자 어르신들이 허어- 하며 입가를 벌리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눈을 지그시 감은 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들었던 기우제를 충실히 재현했다.

♪ 여보게 동네 사람들~♬

나의 완벽한 재현에 PBS 제작진과 마을 분들이 눈을 깜빡였다.

작가님 한 분이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지금이에요’ 하듯이 손짓하자 어르신들이 ‘네에-’하고 대답했다.

♬ 큰일 났습니다! 농작물을 심었는데 가물어서 다 죽게 생겼어~

"아이고!"

♬ 우리 모두 천지신령님께 기우제 좀 지냅시다~

비주가 다시 손을 들어 호응을 이끌었다.

"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 신령님께 비나이다~!

내가 꽹과리를 연주하면서 돌아다니고, 마을 분들이 진지하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나 역시도 진지하게 임했다.

정말로 노래를 부른다고 비가 내릴 리는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더운 날이라 그런지 얼굴 위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린다.

"자. 그러면…."

오늘 기우제의 마지막 순서.

내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지금부터 우비즈의 를 감상하시겠습니다."

곧이어 비주와 내가 돗자리 위에서 의 무대를 하면서 어르신들이 환호를 해 주었다.

천막 아래서 우리 매니저들이 돌린 아이스크림 콘을 응원봉처럼 든 어르신들.

"와아아아아아아-!"

"잘한다아아!"

"아, 이장님은 왜 주책맞게 울고 그래~?"

쿵짝쿵짝.

살짝 레트로 사운드를 가미한 편곡으로 어르신 취향에 맞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모두가 무더위도 잊고 손뼉을 치거나 덩실덩실 춤을 출 때.

"음?"

"어…?"

무대를 하고 있는 내 이마에 뭔가 톡- 하고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뜨거운 땀방울과 달리 미지근한 물방울.

툭-

비가 내린 건 아니었다.

가끔 구름에서 물방울 한두 방울만 떨어지고 끝날 때의 그런 느낌.

하지만….

"!"

"!!"

지금의 가뭄 상황에는 이것도 비였다.

의 무대를 끝낸 우리와 마을 사람들의 눈은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효… 효과가 있나?"

"블랙이들아!"

"네!"

마을 사람들과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2차 갑니다!"

의 노래를 다시 틀면서 가볍게 안무를 추면서 마을 분들과 함께 광란의 춤을 추었다.

이장님까지 스피커 앞으로 나와 쌍쌍바를 한 쪽씩 들고 교통정리 춤을 출 때.

툭. 툭. 툭….

"내린다…!"

"어?"

"어어?!"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와아아아- 하면서 우리를 끌어안았다.

비주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어…??"

이윽고 우리를 둘러싸고 방방 뛰는 어르신들과 함께 우리도 같이 뛰고 있을 때였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내리는데도 다들 피할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계속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을 최고참 80대 어르신도 활짝 웃으며 ‘단비야…!’ 외칠 때.

"비다!"

"비가 내린다!"

"단비야. 단비!"

그렇게 다들 얼싸안고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 말했다.

"노래를 더 크게 틀어 봐! 더 크게!"

"네~"

음원으로 바꿔서 스피커를 통해 를 틀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으하하하하!"

"비다! 비야!"

쏴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

"음……?"

가 울려 퍼지는 동안 비가 삽시간에 거세지기 시작했다

Bada- Bada-

아무도

쏴하하하하하하!!!

그 누구도

우릴 막을 순 없어

쏴하하하하하하하학—!!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어르신들이 식겁했다.

아예 몇몇 분들은 말벌 쫓아내는 사람 짤처럼 호다닥 밭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야! 노래 꺼라!"

"아이고 농작물 다 죽는다!"

"노래 꺼! 꺼!"

그 소란 속에서 우리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흘러내리는 것은 빗방울인가. 나의 눈물인가.

쏴하하하하하하하!

"기분 탓인가? 왜 비가 웃는 것처럼 들리지?"

"그래서 비웃음이라고 하나 봐요…."

"……."

눈물이 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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