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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화 (1/200)

< 001. 프롤로그 >

아빠, 축구 한다

1화 프롤로그

2007년 8월 15일.

경남 합천에서 열린 추계 고교 축구연맹전.

[마인구 선수우우!]

[달립니다! 오오! 달립니다아!]

17살의 마인구가 아군 좌측 에어리어 라인 아래에서부터 수비수가 연결한 볼을 잡아 치고 달리기를 시전했다.

“막아아!”

숭민고의 주장이자 에이스인 김민석은 버럭 소리쳤다.

다다다다-!

굳이 그가 외치지 않아도 이미 마인구를 향해 두 명의 선수가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한 명은 한 걸음 차까지 접근하자 오른발을 힘껏 뻗었다.

“씨발...!”

곧바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스윽, 투욱-!

속도가 붙은 그대로 마인구가 크루이프턴으로 스탠딩 태클을 피해냈으니까.

이어 우측면에서 또 다른 미드필더가 오른 무릎을 욱여넣듯 뻗어왔다.

그 순간, 마인구는 필드에 왼발 스터드를 디뎠다가 말고, 앞굽을 안으로 비틀어 찍더니 폭발적으로 튀어나갔다.

투웅-!

“뭐, 이런...!”

파울로 끊어내고자 했던 상대 미드필더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칼바람이 얼굴을 매몰차게 때렸다.

동시에 마인구는 눈 깜짝할 사이 자신을 통과해버렸다. 안 그래도 빠른 속도에 부스터 같은 속도가 더 붙은 거다.

“쫓아가아아!”

멀리서 숭민고의 감독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다.

이미 숭민고 선수들은 공격수, 수비수 가리지 않고 마인구의 질주를 막아내고자 안간힘을 써 수비지역으로 복귀하던 차였다.

마치 100m 경주하듯.

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도리어 신라고의 에이스, 마인구의 스프린트 질주에 팬들은 점점 더 높은 가락의 탄성을 터뜨렸다.

[벌립니다! 벌어집니다아!]

해설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툭, 타앗, 투욱-!

마인구는 오른발, 왼발, 인풋, 아웃풋,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스탭을 가리지 않고 공을 저돌적으로 전진시켰다.

공을 소유했음에도 마인구가 속한 공간만 빨리 감기로 재생되는 것 같았다.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하는 숭민고...!]

하프라인에 서 있다가 갑작스러운 역습에 인구보다 한 걸음 빨리 수비지역으로 내달린 숭민고 수비수조차 이내 역전당했다.

쏴아아아아아-!

지근에 있던 한 선수는 온 몸을 던져 슬라이딩 태클을 구사했지만,

불끈!

마인구의 성난 다리 근육이 황소처럼 팽창했다.

투웅_!

[가볍게 뛰어넘어 제치는 마인구우우...!]

기어이 그는 에어리어 안까지 주파해버렸다.

숭민고의 골키퍼는 골라인 부근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말고 한 걸음 뛰쳐나왔다.

타앙-!

정확히 그 타이밍이었다.

딱 한 걸음. 골키퍼가 막 골문을 버리고 나온 순간을 마인구는 놓치지 않았다.

좌측 아크에 발을 들이자 불시에 엉덩이를 좌로 쏙 빼 오른발 감아차기를 구사한 것이다.

“허억?!”

크게 감긴 공에 골키퍼는 뛰쳐나왔다가 말고 강풍에 휩쓸린 양 좌측으로 급히 팔을 뻗었다.

이를 악물었으나 얼굴 근육은 금세 풀렸다.

촤라악-!

[고오오오오올! 마인구우우우우!]

[한국의 차세대 에이스! 이미 중등부 시절부터 한국산 카카라 불릴 만큼 타고난 스피드와 결정력을 보유한 이 선수가 기어이 해트트릭을 작렬하네요요!]

[아니, 대체 몇 미터나 질주한 거가요!]

*       *       *

삐, 삐, 삐이이이이-!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종료되었다.

전반전만 하더라도 신라고는 3 : 0으로 압도적 스코어 차를 유지하고 있었다.

단순 점수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분명 전반전엔 신라고가 반코트로 몰아붙이다시피 했는데요.]

해설진은 아쉬움에 이어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게 경기 종료 후 스코어는 3 : 6.

숭민고의 대역전승으로 끝났으니까.

무엇보다 전반전과 후반전의 양상은 완전히 달랐다.

[굳이 교체가 필요했는 가도 싶습니다. 왜 해트트릭까지 기록한 마인구 선수를 후반전 시작과 함께 빼버린 걸까요?]

마인구만이 아니었다.

신라고 감독은 팀 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수를 여럿 빼며 후반전을 맞았다.

한쪽,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선 두 감독이 막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아유~ 형님. 16강 진출 축하드립니다.”

신라고 감독이 먼저 악수를 청하며 말하자 숭민고 감독은 푸근한 미소를 띠며 마주 그 손을 맞잡았다.

“동상~ 이게 다 자네 덕이지!”

“어허~ 제 덕이라뇨? 우리 숭민고랑 형님 전술적 역량이 빛을 본 건데요.”

“오늘 저녁에 시간 되지? 이 형님이랑 같이 소고기나 먹자고.”

“한우요?”

“한우는..., 크흠! 좋아. 내가 쏜다!”

그랬다.

신라고는 일찍이 토너먼트 대회에서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였다.

반면 숭민고는 조 3위로, 신라고를 상대로 승리해야지만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고등부, 대학부 선후배 출신으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

누구라도 의심을 살 만했다.

지금에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음험한 웃음을 띠며 속삭였다.

“송계고 석준이 그놈은 뭐, 듣보 출신 대학놈 아닙니까. 형님. 그런 놈이 우리 형님보다 성적이 좋아서야 되겠어요?”

“쉬잇! 누가 들을라, 크흠!”

“에이~ 들으라죠. 이미 게임 끝났는데 뭐.”

“어허! 이따 끝나고 술이나 거하게 먹자고!”

한편 마인구는 벤치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으득.

이마엔 우둑하니 혈관이 돋았다.

이런 병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0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마인구는 수도 없이 이런 악습적인 병폐를 마주해왔다.

연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미 16강에 안착했으니 연 없는 팀보다는 연 있는 팀을 밀어주는 져주기 경기.

어릴 땐 마인구도 수도 없이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

[인구야. 너네 부모님은 뭐, 나 한 번 찾아오지를 않는다?]

초등부 시절 코치가 따로 자신을 불러내어 한 말이었다.

그 직후 인구는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벤치만 뜨뜻하게 데우던 아이들은 꾸준히 출전했고 말이다.

지금에선 그게 금품을 바라고 한 소리라는 것쯤을 잘 알았다.

인구는 온몸이 분노로 달아오름을 느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좆같은 문화는 변하지를 않네, 씨발.”

*       *       *

고등부가 되어서야 오로지 인구는 제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언론에서 점차 자신의 재능을 부각하니 감독이나 코치로선 빼기 어려웠던 거다.

하지만 경기 중 확실한 승기라도 잡는 날에는 과감히 제외해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돈 없고 빽 없다고.’

직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하였다.

[다음 경기에 대비해 체력 안배 차원에서 미리 교체아웃시켰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신라고 감독, 김철중은 그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인구는 차오르는 분노를 식히고자 찬물에 샤워를 끝내고 웃통을 홀라당 깐 채 라커룸에 발을 들였다.

“흐으읍...!”

발을 들인 순간 구석진 라커 의자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녀석은 다름 아닌 같은 학년의 홍석구였다.

포지션은 센터백.

인구가 본 석구는 적어도 신라고 내 가장 뛰어난 센터백이었다.

“....”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또 그 전 경기에서 녀석은 벤치만 데웠다.

문득, 전날 녀석이 숙소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내일 경기 보러 오신대. 꼭 출전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할머니 아프다지 않았냐?’

‘맞아. 근데 할머니가 엄마랑 아빠한테 죽어도 내 경기 보고 싶다고 했다더라고. 나도 말렸는데..., 몸 상태가 이전보다는 괜찮으시다니까. 하하.’

석구의 할머니는 중풍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서러울 만했다.

또 할머니에게 멋진 손주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억울하고도 죄송한 마음일 것이다..

‘납득도 안 되지.’

순수 실력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선발 자리를 꿰차고도 남을진대.

대신 그 자리엔 허구한 날 1대1 마킹을 놓치며 실점 빌미를 제공하는 3학년 한상훈이 자리했다.

그는 감독의 조카였다.

“지랄하네. 지랄해.”

한상훈과 그 무리는 서럽게 우는 석구를 향해 마냥 비아냥거렸다.

때마침 라커룸에 발을 들인 감독은 흐느껴 우는 녀석을 향해 와락 이맛살을 구겼다.

“뭔 초상났어? 어? 사내새끼가 두 경기 출전 못했다고 처 울기는! 분위기 잡치지 말고 꺼져, 인마!”

변명 아닌 변명도 이어졌다.

“전술적인 희생이라 생각해, 인마. 팀을 위한 희생 몰라? 응?”

한상훈은 찡그린 얼굴로 거들었다.

“그래, 새끼야. 그래도 16강 진출했잖아. 근데 울어? 이거 진짜 이기적인 새끼네? 넌 출전해야 맞고, 나나 다른 선수들은 출전하면 안 돼? 그게 그렇게 억울해?”

팀 내 입김이 가장 센 상훈의 말에 토를 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감독마저 지지하는 판국이니 한순간 장내는 차게 식었다.

그리고 그 차게 식은 라커룸에 마인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뜨거운 혈기를 쏟아냈다.

파아악-!

목에 걸친 물기 젖은 수건을 힘껏 패대기쳤다.

이어 목에 핏대를 세워 소리를 질렀다.

“이 씨발! 대한민국 축구 다 줘엇까라 그래에에!”

지난날 불합리함의 연속성.

절친한 친우가 병폐 속에서 주저앉는 모습을 보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으메, 깜짝아!”

감독, 김철중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한상훈은 황당한 웃음을 머금었다.

“돌았네, 진짜. 선배고 뭐고 없지? 이 새끼야.”

인구는 곧장 주먹 감자를 먹였다.

“응, 좆까. 너같이 실력 없는 선배 새끼 둔 적 없으니까.”

“뭐, 뭐라고?”

원래 팩트로 공략하면 심각한 데미지를 입는 법이었다.

그 생각처럼 녀석의 얼굴은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진짜 뒈지고 싶냐?”

벌떡 일어난 한상훈은 성큼 다가와 인구의 왼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 소리 나게 때렸다.

흠칫, 한상훈은 당황했다.

인구가 살짝 콧잔등을 찡긋거리는 것 말고는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았으니까.

“어쭈. 이, 이 새끼가...!”

채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씰룩, 하니 인구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끌어 올라갔다.

“네가 먼저 쳤다?”

상훈은 뭐? 라고도 되묻지 못했다. 도끼눈이 된 인구는 그만 주먹이 새하얘질 만큼 꽈악 쥐고서 녀석의 가슴 한가운데를 가격했다.

일명 명존쎄.

빠악-!

마빡 때리는 소리와 함께 가슴을 부여잡은 상훈은 끄어억...!? 이라는 요상한 신음을 터뜨리며 그대로 무너졌다.

그 날, 마인구의 축구 인생도 저물었다.

*       *       *

생각보다 이 한국 축구판은 학연, 지연, 혈연의 관계가 두껍고도 질겼다.

“이게 뭔, 밧줄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꽈배기처럼 묶은 수준이야. 일반 밧줄 말고 두꺼운 거 있잖냐.”

2017년.

시흥시 배곧동 번화가에 위치한 편의점 야외 테이블.

올해 27살이 된 인구는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투덜거렸다.

“승부 조작을 한 적이 없다! 후반전에 1학년 선수들을 기용했고, 삼일 뒤에 바로 시합이 있어 체력을 안배하라는 주문만 했을 뿐! 이라고 하니까, 염병. 징계도 안 내리네?”

반면 그 날 인구는 징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병폐에 지쳐 스스로 축구를 관뒀다.

마주 앉은 190cm에 달하는 덩치의 석구는 쓰게 웃을 뿐이었다.

인구가 술만 마시면 10년 전 일을 되풀이하듯 이처럼 하소연해댔으니.

인구는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좆같애. 진짜 좆같애. 세상이 뭔~ 그 감독 새끼는 지금 국대도 한 차례 맡아서 승승장구인데 난 뭐냐? 응?”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다시피 했었다.

단연 축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기에 이후 인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군에 입대했고 전역 후 각종 일용직로 생계를 이어갔다.

오늘도 인구는 노가다를 끝내고 이렇게 무료한 하루의 마무리를 짓는 중이었다.

그나마 석구는 버티고 버틴 덕에 k 리그 2부 팀 주전으로 도약할 수는 있었다.

인구는 그마저 억울했다.

“넌 새끼야. 어릴 때 꾸준히 기용만 됐어도 충분히 k리그 이거였어, 이거!”

인구는 반쯤 풀린 눈으로 엄지를 연신 쳐들었다.

“에휴, 지랄. 너야말로 이거지!”

석구는 맞장구쳤다.

진심이었다.

“내가 본 새끼 중에 네 새끼가 제일 축구 잘했어.”

평소엔 술을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석구도 조금은 취했다.

두 뺨을 붉어진 그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후우! 188cm 장신에, 발도 빠르고, 피지컬도 좋아! 제공권은 아주 끝장이었지. 거기에 결정력은 무슨...!”

“으음~ 더 해. 더 해봐~”

인구는 칭찬에 새삼 기분이 좋아져 앉은 그대로 비틀대면서도 손을 휘휘 가볍게 저어 보였다.

“아니다, 말해 뭐해. 이미 지난 일인데. 마셔, 그냥 마셔.”

금세 시들해진 석구는 지난 과거를 떠올려봤자 뭐하냐며 찡그린 얼굴로 소주잔을 집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부우우우우우웅-!

“아 쒸.”

테이블을 울리는 진동에 인구는 와락 이맛살을 구겼다가 말고 얹어둔 휴대폰에 손을 뻗었다.

발신인에 눈살을 좁혔다.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아이, 누구야.”

통화버튼을 누르자 곧 수화기 너머론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온몸의 털은 쭈뼛, 서버렸다.

그도 그럴 게.

[여보세요? 인구 오빠. 잘 지냈어? 오늘이나 내일 좀 봤으면 하는데. 오빠 딸이랑 같이. 약속 장소는 이따 문자로 보내줄게.]

뚝!

상대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끝냈다.

어안이 벙벙한 상황 속, 인구는 멍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가 말고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누구냐, 넌.

< 001. 프롤로그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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