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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3화 (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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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3. 딸이 생겼다 (2)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화 딸이 생겼다 (2)

일이 끝난 직후 마인구는 자주 가는 수제맥 집으로 향했다.

야외 테이블에 착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게 사장은 1000cc 맥주 두 잔과 건빵 튀김, 맥앤치즈프라이를 건넸다.

모두 인구의 최애 간식들이었다.

“힘내, 이 친구야.”

며칠 전 이야기를 멀리서나마 들었는지 가게 사장은 인구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돌아갔다.

“흐으-”

벌어진 잇새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허망한 손길은 곧장 이 심심한 마음을 달래줄 맥주잔에 닿았다.

눈앞엔 서류 용지가 아른거렸다.

[친자확률 <%> : 99.999 9 %]

삭, 솩!

순간 인구는 허공을 향해 손날을 두 차례 휘둘렀다.

두 눈썹은 성나게 치솟았다.

“에잇 지랄! 아니야. 이건 가짜야. 조작된 거라고!”

옆 테이블에서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은 갑자기 허공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인구에 작게 속닥거렸다.

“어머! 뭐, 뭐야?”

“미친놈인가 봐. 쳐다보지 마.”

석구가 온 건 한참 뒤였다.

“또 술 마셔? 어휴. 술이 밥이네, 밥이야.”

그는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가벼운 면티를 입었음에도 탄탄하기 그지없는 몸매를 뽐냈다.

그런 석구는 이미 취해버린 인구에 작게 핀잔하고는 의자를 끌어다 맞은편에 앉았다.

“간이 녹겠다, 녹겠어.”

인구는 벌써 1000cc 맥주를 네 잔째 비워내고는 탁!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 새끼...”

석구는 세상 다 산 것 같은 친구의 모습에 안쓰럽게 말했다.

“그래. 맨정신으로 어떻게 버티겠어. 마셔, 마셔!”

그는 며칠 전 전화통화를 통해 인구의 사정을 들었다.

때마침 가게 사장이 또 1000cc 맥주 두 잔을 양손에 쥐고 가져왔다.

석구는 두 잔 다 인구 앞에 두었다.

“너 다 마셔라. 마시고 그냥 오늘은 싹 잊어버려!”

석구는 눈앞의 친구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된 건지...’

혜성처럼 뚝 떨어진 세 살배기 자식은 둘째치고.

지금 인구의 모습은 화려했던 청대 시절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땐 진짜 네가 박지송 다음으로 우리나라를 빛낼 축구 선수가 될 줄 알았는데.’

17살 때 이미 인구는 188cm의 완성된 피지컬을 갖췄었다.

거기에 소프트웨어도 좋았다.

‘위치선정부터, 수비수 움직임 예측에 동료 침투 타이밍까지...’

큰 키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 외, 워낙 빠른 발을 지녀 한때 한국산 카카라고도 불리었던 녀석이었다.

‘제일 무시무시한 건 학습 능력이야.’

뚜렷하게 기억난다.

인구는 암만 어려운 상대라도 필드 안에서 해당 상대와 부딪치는 순간마다 학습을 이루어내는 괴랄적인 능력을 지녔었다.

‘관찰하고, 파악하고, 대응하고, 응용하는 사이클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랐지.’

초반에 털리더라도 후반엔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수비수에게 있어 인구 같은 스트라이커는 가장 꺼리는 유형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17세. 그날의 사건 이후 인구의 축구 커리어는 산산이 조각났다.

어린 나이에, 혈기를 못 이겨 병폐 무리들에 냅다 머리를 들이박은 것이다.

몇 차례 비리에 대한 고발도 있었다.

허나 피해는 오로지 인구, 그 혼자의 몫이었다.

‘돈 먹은 코치놈들..., 말도 안 되는 변명 인터뷰 한 번에 징계마저 무마됐었지.’

언론 보도는 거의 없다시피 축소되었다.

초, 중, 고 시절부터 함께 해왔기에 석구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인구가 얼마나 축구를 사랑하는지를.

그러니 올바르지 못함을 넘어 썩어 가는 축구판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거야 당연했다.

그렇게 스스로 관둬버렸고 말이다.

인구는 석구의 아련한 시선 따위 가볍게 안주 삼아 맥주를 쉼 없이 들이켰다.

오히려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은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제기랄.’

속으로는 끝없이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시간이 갈수록 불신과 의문은 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지금 세나가 세 살이랬지.’

가은이의 잠수 이별이 있은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검색해보니 평균 임신 기간은 280일.

‘시기 상은..., 맞아.’

무엇보다 친자확인을 통해 확인사살까지 끝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닐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바라고 또 기대했지만..., 어째 술이 들어갈수록 무의미한 회피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였다.

“그래서, 키울 거야?”

석구는 며칠 뒤 경기가 예정되어 있기에 술 대신 간단한 음료를 한 모금하며 물었다.

인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며칠 전, 갑자기 촵-! 하고 제 무릎에 찹쌀떡 같은 볼을 붙이던 세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아~’

어눌한 발음에,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외치던 작디작은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쉬이 잊히지 않았다.

‘좀, 많이..., 귀엽긴 했어. 크흠.’

포동포동한 볼은 꾸욱 꼬집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초롱초롱하고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눈망울을 보면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흠칫!

‘내가 무슨 생각을...!’

슥! 슥!

기겁한 인구는 무릎을 때밀 듯 두 손으로 박박 문댔다.

석구는 혀를 찼다.

“왜? 모기 물렸어? 쯧! 요즘 모기가 극성이긴 하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멈추지 않고 무릎을 박박 문대며 한숨과 함께 투덜거렸다.

“씨부럴...! 모기 말고 더한 거에 물린 거 같아.”

*       *       *

다음 날, 오전.

인구는 집 근처 카페에서 가은이를 만났다.

첫날처럼 그녀는 몸에 딱 달라붙는 검정색 오피스룩으로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크흠.”

인구는 고급 차에서 내린 직후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조신하게 자리한 가은이에 한 차례 헛기침을 터뜨렸다.

“예나 지금이나 옷을 야하게 입네?”

“자기만족이야.”

“뭐, 어련하시겠어.”

“그래서. 오빠는 언제부터 우리 세나 맡아줄 수 있어?”

간단한 안부 뒤, 가은이는 본론을 꺼냈다.

인구는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들이키고는 미간을 좁혔다.

“그게 말이지. 안 될 것 같아.”

“...뭐?”

“못 키우겠다고.”

“이제 와서 말 바꾸기야?”

가은이의 눈매가 다소 날카로워졌다.

인구는 뻔뻔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그냥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맡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요즘은 또 글로벌 시대잖아? 세나한테도 미국행은 좋은 기회인 것 같고.”

“좋은 기회?”

“응.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며. 영어 본토인 미국에서 자연스레 습득하면 더없이 좋은 거 아니야?”

내 자식이라고 해서 갑자기 부성애가 생기곤 그러진 않는다.

자그마치 4년이었다.

4년간이나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돌연 세 살 된 아기가 네 애기다! 하고 나타났다.

‘그게 말이야, 방구야?’

물론, 며칠 전부터 그 아이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리긴 했다.

‘왜 자꾸 생각나는 건지...,’

태어나 그렇게 귀여운 아이를 처음 봐서 그런 걸까?

‘진짜 귀엽긴 했어.’

또 보고 싶었다.

‘정말 사랑스럽기도 했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했어.’

단지 그뿐이었다.

문득, 인구는 미간을 좁혔다.

‘... 고, 고작 이런 감정이 부성애일 리는 없잖아?’

슬쩍 본 가은이는 말없이 빤히 자신을 쳐다만 볼뿐이다.

날카로워졌던 눈매는 금세 서늘하게나마 풀렸다.

‘나이 몇 살 더 먹었더니 성격이 죽은 건가?’

인구는 어깨를 으쓱대며 마저 덧붙였다.

“뭐, 너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네 말대로 미국에서 2년간은 온전히 네 자신을 위해 써. 이건 오빠로서가 아니라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연장자로서의 조언이야.”

“세나는?”

“아니면 가족한테 맡겨도 되는 거 아니야? 너네 엄마, 아빠.”

“우리 부모님은 아직 내 딸을 인정하지 않아.”

“드라마네, 드라마야.”

순간 쓴맛이 느껴져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세나는 보모한테 맡기던 지하면 되지. 돈도 많이 버는 데 그 정도도 못 해줘? 네 자식인데?”

뻔뻔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또, 당연히 이래도 되지 싶었다.

‘4년 만에 찾아왔잖아.’

그것도 대뜸 아이를 맡아달라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인구야.’

아이를 맡을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현재 자신은 여건부터가 아이를 돌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하나 살아남기도 힘든 팍팍한 세상 아니냐.’

또 왠지, 자신과 함께하면 그 순백의 아이가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감당이 안 돼.’

인구, 그는 스스로를 모난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으니까.

곧 그는 의자 등받이에 퍼지게 기대고는 날 선 목소리를 냈다.

“더 냉정하고도 현실적으로 접근해보자. 왜 하필 난데? 그냥 유전자상으로 아빠라서? 하아! 솔직히 말할 게. 나 못살아.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아이 키울 만큼 여유롭지가 않아.”

인구는 두 손을 써가며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노가다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곧장 지쳐 잠드는 게 내 일과라고. 뭐, 자기계발 이럴 시간도 없어. 그럴 돈도 없고. 사실 할 마음도 없어. 겁나 귀찮거든.”

“...”

“그리고,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일방적으로 선택한 거잖아? 넌 내가 그 아이를 책임질 선택권 따위 주지 않았어. 아니!”

순간 목청을 높인 인구는 빡 세운 검지 끝을 얼굴께에 들어 보이며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실었다.

“강.탈.한 거.지. 내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런데 인제 와서 뭐? 너 잘되어야 하니까 4년 만에 나 찾아와서는 아이 좀 맡아달라고? 아빠니까? 떠넘기는 게 아니라?”

상처받든 말든 상관없다.

‘이건 순전히 세나를 위한 거야, 암, 그렇고말고.’

나 같은 아빠 곁에 있어 봐야 도움 될 거 하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밀어붙일 때였다.

끼이익-!

이제 인구는 의자를 뒤로 거칠게 끌어다 일어났다.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끝내자. 끝내.’

하지만 채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미안해.”

나직하고도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사과의 한 마디가 기습적으로 심장을 쿡 찔렀다.

힐끗 보니 그녀의 도도하기 그지없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입가는 여전히 호선을 그리고 있지만 슬픈 미소라는 게 저런 게 아닐까 싶었다.

“정말 미안해. 그땐 마냥 피하고만 싶었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어.”

인구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나중에선..., 다시 오빠를 찾아가고 싶었는데 무서웠어. 오빠가 지우자고 할까 봐. 싫어할까봐...”

“그게 말이 되는..., 허, 참.”

인구는 황당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런 사과 듣자고 이런 상스러운 말 한 게 아니라고.’

그저 그는 이 자리를 얼른 뜨고 싶었다.

다 지난 일이다. 친자식이라고 해도 자신은 며칠 전 처음 그 아이를 본 게 전부였다.

아빠로서의 부정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아빠아~’

머릿속에 아이의 목소리가 여전히 유영하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발 떼! 발 떼! 인구 이 새끼야!’

왜인지 발걸음은 쉬이 떼어 지지가 않았다.

그 타이밍에 가은이는 미끈한 입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더니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가했다.

“당연히 양육비 지원할 거야. 수고비도. 달에 매달 꼬박꼬박 450만 원.”

바로 그 순간이었다.

털썩.

생각지도 못한 금액에 그만 인구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어, 얼마라고?”

말까지 더듬었다.

가은이는 조금 전보다 확연히 슬픔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450만 원. 마음 같아선 더 주고 싶은데 나도 그게 한계야.”

“하, 하핫아...!”

인구는 한숨마저 더듬대며 토해냈다.

요 며칠 계속된 한숨이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한숨이었다.

눈꺼풀엔 없던 쌍커풀이 진하게 졌다.

무엇보다, 그 두 동공엔 27년간 단 한 번도 없던 부성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아빠아아~’

아이의 목소리가 보다 선명히 귓가를 기분 좋게 간질였다.

그러다 곧, 인구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낸 막연하고도 아련한 표정으로 눈앞의 그녀를 향해 한 손을 뻗었다.

흠칫.

가은이의 가녀린 어깨가 잘게 떨렸다.

자그마치 4년 만에 인구의 큼직하고도 거친 손이 그녀의 왼손등에 부드럽게 얹어진 것이다.

그녀가 당황 섞인 눈으로 쳐다보자 인구는 이제 묵직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내가 아빠긴 하잖아? 좋아. 그럼 어쩔 수 없지. 한 번 아빠 된 도리는 해볼게. 너무 기대는 말고.”

결국 인구는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 003. 딸이 생겼다 (2)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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