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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7화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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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아빠는, 한다 (1) >

아빠, 축구 한다

7화 아빠는, 한다 (1)

“누구우...?”

인구는 한쪽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속은 쓴 물을 마신 것마냥 불편했다.

‘변성준 이 새끼를 이런데서 다 만나네.’

눈앞, 뱀눈에 광대뼈가 움푹 튀어나온 이 녀석은 신라고등학교 축구부 동기 중 하나였다.

‘한상훈 똘마니.’

같은 1학년으로 당시 그는 한상훈과 함께 신라고의 주전으로 뛰었었다.

‘뒷배 덕에 말이야.’

워낙 집안이 부자였던 만큼, 돈 좋아하는 감독 밑에서 실력은 뭣도 없었으면서 고정 우측 라이트백으로 뛰었다.

‘허구한 날 한상훈 그 새끼랑 같이 뒷공간 허용해댔지.’

가끔은 팀킬도 했다.

“와, 이런 데서 다 보네?”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성준은 새삼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 어린이집 쿠킹 클래스 때문에 온 거 맞지?”

“아, 뭐. 그렇지.”

10년 사이 외모가 크게 삭은 건 아니니 그냥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야. 어떻게 이렇게 삭을 수가 있어? 10년 사이에? 나보다 한 4살 5살은 형인 줄 알았어. 살은 또 왜 이렇게 쪘고? 운동은 이제 안 하는 거야?”

“...”

이 간사하게 생긴 새끼가 이빨을 털어버릴라.

순간 욕이 나올 뻔했으나 청정지역인 어린이집인지라 인구는 애써 웃음 지으며 화답했다.

“아아, 운동은 뭐, 어릴 때 질리도록 해서 사별했어. 그럼 이따가 마저 이야기나 하자고.”

그대로 녀석을 지나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 어린이집 무지 비싼 덴데. 듣기론 노가다 뛴다며? 그냥 아이한테 전부 다 투자하기로 한 거야? 네 인생은 포기하고?”

명백한 비아냥이었다.

“이 새끼...!”

옆에 있던 석구의 얼굴이 다 붉어졌다. 차마 어린이집인지라 소리 죽여 욕지거리를 터뜨린 게 다지만 말이다.

그래도 재차 걸음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내 인구의 한쪽 뺨은 불편하게 꿈틀거렸다.

“아빠아아~!”

어린이집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세나가 우다다다 달려왔다.

타이밍도 참.

“아구, 우리 딸 마중 나왔어~?”

그새 아빠 미소를 지어 보인 인구는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양팔을 벌렸다.

우다다다다!

포옥!

세나가 품속에 들어오자 인구는 번쩍 들어 올려 비행기를 태웠다.

“슈우우으응~ 갑니다, 미국 워싱턴으로오~”

“꺄하핫!”

“이번엔 영국 맨체스터로 가볼까아아~?”

“꺄아아~!”

딸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학부모들과 원장, 선생님들은 흐뭇한 눈길로 화목한 부녀를 바라보았다.

비행기를 태운 그대로 실내로 들어가려 했으나 그조차 실패했다.

“얘가 네 딸이구나. 꼬마야, 이름이 뭐니?”

“세나요!”

“그래, 세나. 아빠를 안 닮아서 참 다행이네~”

변성준이 푸근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신을 향한 무시가 분명했으나 어린 세나가 속내까지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말에서 인구는 감동에 겨운 눈으로 딸을 내려다보았다.

“나 아빠 닮았는데에?”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매끈한 미간에 힘주어 말하는 우리 세나.

“어이쿠. 그래? 아저씨가 잘못했네, 그럼?”

성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세나는 두 눈에 힘을 팍 주었다.

“네! 잘못했어요! 사과아!”

“...아, 응?”

“사과아!”

성준의 미소 띤 얼굴이 살짝이지만 떨렸다.

‘당황했네, 이 새끼.’

인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잘한다, 우리 딸!’

아빠를 대신해 싸워주다니!

“하, 하핫. 미안하다, 아저씨가.”

성준은 힐끗 인구를 올려다보고는 이내 머쓱한 미소로 사과했다.

“우움! 좋아요! 그런데 아조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축구 선수에요.”

그러고 보니, 석구에게 이 녀석의 소식을 건너 건너 들은 적이 있다.

‘k-3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프로 무대에서까지는 뒷배가 그리 통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프로인 만큼 녀석 입장에선 최대의 성과를 거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아빠도 축구선쑤에요. 헤헷. 그러면..., 우리 아빠랑 친구다아!”

1년 전보다 발음이 더 좋아졌다.

인구의 입가에 걸린 흐뭇함은 쉬이 떨어질 새가 없었다. 하지만 변성준이 표정을 굳히게 만들었다.

“아아, 아빠가 축구 선수야~?”

그는 웃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두 눈은 마치 맛난 먹이를 발견했다는 듯이 번뜩였다.

순진무구한 세나는 큼지막한 눈을 한 번 끔벅이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허참, 그래? 그렇구나. 으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답한 성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으득.

순간 인구의 이마에 시퍼런 힘줄이 돋았다.

‘감히 내 딸 머리에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을 가져다 대?’

그러거나 말거나 성준은 특유의 간사한 미소로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잘됐다. 저기 축구 선수 마인구씨.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흘 뒤 토요일 저녁에 우리 경기나 뛸래요? 여기 어린이집 아버님들이랑 그 외 동호회 사람들이랑 해서 주마다 축구를 하거든. 11 vs 11로.”

“축구?”

“응. 선출도 있고. 나처럼 현역도 한 명 있어. 나도 비시즌이나 시간 나면 간간이 참여하는 중이라서.”

원래라면 대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10년 전, 인구는 축구와 아예 연을 끊어버렸다.

가은이가 자신을 상대로 잠수 이별을 해버렸다면, 인구는 축구를 상대로 심해 깊은 곳까지 잠수 이별한 격이었다.

‘그 뒤로는 공 한 번 안 만져봤는데.’

그냥 공이란 공은 다 멀리한 것 같다.

그런데, 선뜻 거절할 수가 없었다.

굳이 내려다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사랑스럽고도 세상 귀여운 딸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자석처럼 이끌려 눈을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세나가 불끈 쥔 솜방망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외쳤다.

“와아아! 아빠아 축구해에?  축구선수로 뛰는 고야아아? 세나도 볼래에에! 코이뚜우우!”

기대감을 한가득 머금은 순진하고도 천진난만한 모습에 인구는 절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헛, 그래. 알겠어.”

엇, 씨발?

답하고 그 즉시 흠칫, 놀랬다.

순간 홀려버려 육체이탈 답변이 나왔다.

*       *       *

다음 날.

“미친놈이네, 이거.”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 선 석구는 황당하니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저 멀리서부턴 인구가 트레이닝복 차림새로 운동장을 벌써 4바퀴째 돌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자신을 지나칠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석구는 몇 마디씩 건넸다.

“아니, 인마. 진짜 경기 뛰게?”

“아암, 그렇고말고.”

“미친놈 맞네.”

그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욱, 후욱!”

“딱 봐도 그 새끼 너 꼽줄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도 뛰게?”

“그렇다니까? 후욱!”

“허어.”

석구는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얘가 웬일이래?’

자그마치 10년씩이나 축구를 멀리한 녀석이었다.

쳐다보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진짜 축구공이 사람이었으면 개 뚜드려 팼을 만큼 인구는 축구를 싫어했다.

‘그래서 아예 공도 안 만졌잖아.’

암만 조기 축구라고 해도 상대 중엔 k-3 리그에서 뛰는 놈이 있었다.

그놈은 어릴 적 인구와 악연 그 자체였고 말이다.

녹슬디 녹슬어버린 인구가 상대하기엔 버거움이 있었다.

“k3가 줘엇밥이냐, 인마아!”

다시금 거리가 벌어진 인구를 향해 석구는 허리를 휘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멀찍이서 인구는 손을 흔들며 답을 해주었다.

“고럼 줫바압이지이!”

“야이 미친놈아! 말이 되냐아!”

석구도 화답했다. 곧장 주먹 감자가 날아왔지만 말이다.

“에잇, 지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구를 대신하여 자존심이 미리 상하는 것도 같았다.

‘넌 내 우상이라고 인마.’

적어도, 청대 시절의 인구는 말이다.

물론 솔직히, 은근한 기대가 있긴 했다.

“후욱, 헤엑, 헤엑!”

벌써 운동장 다섯 바퀴째를 돌고 있는 인구는 금방 멈춰 설 것 같으면서도 결코 뜀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석구의 속이 다 뭉클해졌다.

“새끼가.., 체력은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낫네.”

10년이 지났건만,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 몸뚱이로 저리 움직이다니...’

저건 타고난 체력 플러스 독하디독했던 근성에 의한 것이었다.

옛 독사 같던 모습이 손톱 때만큼은 보이는 것 같자 석구는 코를 훌쩍였다.

*       *       *

경기 당일, 저녁.

변성준은 11 vs 11 규모로 뛸 수 있는 축구장에 발을 들인 뒤 벤치에서 축구화를 신었다.

“진짜 마인구네?”

옆에선 친구, 김창석이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성준은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했지? 마인구 맞다고.”

“와~ 근데 뭐, 몸이 망가진 정도가 아니라 그냥 박살이 났구만?”

김창석 또한 성준과 함께 k-3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지금은 비시즌기었기에 이렇듯 아마추어 경기에 참여한 것이었다.

단연 선수 입장에서 본 인구의 몸뚱이는 도저히 선수급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일반인으로 치자면 ‘근돼’ 느낌이 딱 어울렸다.

“아주 그냥 막 먹었구만, 막 먹었어.”

“그러니까, 겁나게 밟아주자고.”

“근데···. 밟는다고 밟힐까?”

문득 김창석은 조금은 겁을 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성준은 신가드를 정강이에 끼우다 말고 뱀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창석은 반대편 벤치에서 처음 만난 직장인 선수들과 몸을 푸는 인구를 보며 덧붙였다.

“아니, 암만 그래도 상대가 인구인데...”

10년 전.

인구는 신라고 축구부 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로 불렸었다.

“그때 겁나 잘했잖아...”

창석은 성인이 된 지금도 가장 막기 어려운 스트라이커가 누구냐 묻는다면 과감히 마인구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인구는 트라우마 그 자체였다.

‘솔직히 그때 당시 인구가 지금 k-3 리그 애들보다도 훨 잘하는 것 같기도...’

창석은 벌써부터 질린 기색으로 덧붙였다.

“아마 모든 수비수들의 트라우마지 않을까...? 막아도 그냥 전차처럼 밀고 들어오는 미친 놈인데.”

먼 옛날, 열 번 중 열 번 붙어 나가떨어졌던 기억이 떠오르자 창석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성격 또한 워낙 괴팍한 탓에 선배들조차 건드리지 않았던 놈이다. 또래 아이들은 그를 대장처럼 모셨고 말이다.

하지만.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준은 벌써부터 기가 죽은 것 같은 창석의 가슴을 툭 손등으로 치며 으르렁거렸다.

반대로 성준처럼 질투와 함께 아니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저 새끼 민간인이야. 아니, 이제 민간인보다 못한 병신새끼라고.”

“하, 하지만...”

“봐봐.”

피식.

이내 성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잠깐 뛴 거로 지친 듯한 인구가 거친 숨을 토해내더니 갑자기 빙구처럼 웃으며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우어어어어어!”

곧 그 품으론 자그마한 아이가 폴짝 뛰어 안겼다.

“흐헤헤헷.”

또 빙구처럼 웃는 마인구.

그 모습에서 옛날, <신라고 광견병> 으로 불리던 인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성준은 중얼거렸다.

“봐, 병신 맞잖아. 딸바보 병신.”

몸뚱이도 축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 007. 아빠는, 한다 (1)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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