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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8. 아빠는, 한다 (2) >
아빠, 축구 한다
8화 아빠는, 한다 (2)
이틀 전.
“후우-!”
세나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점심시간.
근처 공원에서 3km 달리기를 한 인구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허흐윽..!”
세나를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닌 덕에 이렇게라도 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를 만나기 전 인구의 신체 사이즈는 188cm에 몸무게 103kg.
근돼 중의 근돼였다. 하지만 세나를 만난 후 1년 사이 인구의 몸무게는 93kg까지 줄었다.
“염병. 술 퍼마시고 담배 막 피던 1년 전이면..., 이거에 절반 체력도 안 됐겠는데?”
인구의 표정이 조금은 굳었다.
생각 이상으로 지금의 몸뚱이는 심각했다.
“3km에 15분이라...”
군대로 치자면 3급 수준이었다.
털썩!
인구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손등으로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석구는 네 몸뚱이에, 10년 간 운동안한 것 치고는 기적적이라며 칭찬했지만...,
“아니지, 아니야.”
인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청대 시절의 자신은 78kg에 매끈하고도 단단한 체격을 지녔었다.
3km만이 아닌 5km 달리기에서도 육상 선수급 기량을 뽐냈고 말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날 데려가려고 했었는데.’
지난 날과 비교해 처참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몸상태에 인구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문득 전날 석구의 의문이 떠올랐다.
[너 왜 축구 다시 하려 하냐?]
“축구...”
인구는 작게 중얼거렸다.
“미련이, 좀 남긴 했지.”
성인 무대의 벽을 넘기도 전에 스스로 주저앉았다.
아니, 여태 스스로 주저앉았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어른들이 자신을 강제로 앉힌 격이었다.
“능력으로도 안되는 세상이잖아.”
이 현실은 능력보다는 학연, 지연, 혈연이 더욱 중요한 사회였다.
어릴 때부터 이런 엿같은 사회에 데이고 데인 인구는 그만 지쳐 떨어져나갔다.
“다시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는데.”
피식.
옅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 하나만은 확신했다.
설령 미련이 아직 남았다 해도, 세나가 없었다면 아마 평생 축구와는 담을 쌓았을 것이라고.
비록 조기 축구라지만.
“우리 딸.”
딸을 떠올리자 그새 흐뭇해졌다.
[아빠아는 축구선뚜야아!]
[아빠가 뛰는 모습 보고시포오!]
[꺄아아~ 아빠아 코이뚜 하는 고야아아?]
1년 전부터 딸은 원하고 원했다.
아빠가 필드에서 뛰는 것을 말이다.
기대감과 설렘을 한가득 머금은 딸을 보자니 선천적 순도 100% 딸바보 입장에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또...,
“참나, 은근 딸한테 잘 보이고 싶단 말이야.”
단순하지만, 진짜 그게 이유였다.
아빠로서 딸에게 멋진 모습만을 보이고 싶다는 그 마음.
생각보다 너무 대책이 없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 * *
경기 당일.
“인구야. 할 수 있겠어? 지금이라도 허벅지 내측 측부 인대 파열로 경기 뛸 수 없다고 할까?”
“뭔 개소리야?”
인구는 벤치에 앉아 신가드를 정강이에 끼우는 와중에 황당하니 되물었다.
맞은편엔 석구가 영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씨..., 아니, 얀마. 너 진짜 먼지 나듯 털려.”
“먼지 나듯 털리기는. 옷 맨날 털어. 먼지가 얼마나 우리 세나한테 치명적인데.”
“이 새끼가 지금 농담 따먹기 하는 줄 아나!”
순간 목청을 높였던 석구는 뒤늦게 놀라며 주변을 휙휙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세나는 저쪽 벤치에 함께 온 또 다른 가족의 어린이집 친구와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에휴, 그래. 이미 물은 엎질러 졌고, 혹시 좀 버겁다 싶으면 그냥 뒤비져. 손 들고. 그럼 내가 바로 달려가서 내측 측부 인대 파열이라고 진단 내릴께.”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내측 측부 인대 파열에 집착하는 걸까?
인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한 번 터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벌써 필드에 자리해 각각 몸을 풀고 있는 상대 선수와 우리 선수들을 보니 절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자 몸매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확실히 변성준 저 새끼랑 저기 옆 창석이라는 놈은 다르네.’
딱 나 프로 선수요! 라고 몸뚱이부터가 말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떨렸다.
‘잘 할 수 있으려나.’
아니, 석구 말처럼 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암만 클래스는 영원하다지만, 자신은 10년 동안이나 공을 차본 적이 없었으니까.
감각이 죽었다 못해 저기 저 깊은 지구핵까지 가라앉아도 이상치 않았다.
그나저나.
“이거 너무 꽉 끼는데.”
인구는 불만적인 표정으로 좀, 튀어나온 배의 옷깃을 쭈욱 잡아당겼다.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라고.
“아빠아아! 코이뚜우우우!”
청량감을 주는 목소리가 금세 인구의 입꼬리를 씰룩거리게 만들었다.
“흐헛! 코이뚜우우!”
두 팔 벌려 외치는 딸을 향해 마저 빙구같은 미소로 화답해주었고 말이다.
* * *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센터백 변성준의 예상대로.
퍼억!
“크헉!”
옅은 압박 한 번에 속절없이 상대 공격수가 옆으로 튕겨나갔다.
상대가 놓친 공을 꿰찬 변성준은 살살, 여유롭게 올라갔다.
힐끗, 힐끗 벤치 쪽도 보았다.
“와아아~”
짝짝짝짝!
자신의 아이와 일부 관람 온 사람들이 환호하는 게 보였다.
“후흣.”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한순간 두눈은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변했다.
‘저놈...!’
뒤뚱뒤뚱!
멀지 않은 거리.
우측 하프 스페이스부터 중앙으로 전방 압박 차 뛰어드는 놈이 보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배가 아래 위로 크게 들썩이는 마인구.
‘그래, 와봐.’
퍽, 투욱!
한 걸음 차에서 스탠딩 태클을 뻗었던 인구의 상체가 뒤로 들썩였다.
변성준이 돌연 어깨 피딩으로 순식간에 밸런스를 깨뜨린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퍽!
녀석은 한 번 더 중심이 뭉개진 자신을 향해 어깨부터 들이밀어 돌파를 시도했다.
인구는 강풍에 맞은 것처럼 뒤로 크게 밀려났다.
“이만 간다~”
그대로, 성준은 특유의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열린 공간을 통과했다.
“이런, 씨부...!”
습관처럼 욕이 나올 뻔했다가 말고 인구는 딸이 지켜보고 있다는 데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급히 돌아 쫓아가려 했지만 금세 맥 빠진 얼굴로 멈춰섰다.
“새끼가, 새르히오 라모스 놀이하네?”
잠깐 사이 센터백이면서 변성준이 공을 몰고 우리측 아군 디펜시브 라인까지 질주한 거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굳이 변한 점은 변성준을 비롯해 처음 인구의 모습만으로 트라우마를 떠올렸던 김창석의 자신감이 크게 상승했다는 것.
지금도 중앙 깊숙한 곳에서 골문을 등진 채 공을 연결받은 인구를 향해 창석이 뒤에서부터 달려들었다.
퍼억-!
“우억!?”
인구는 볼품없게 앞으로 무너질 듯 하다 그만 의도치 않게 뻗어진 콧발로 공을 뻥 차버리고 말았다.
“하핫?”
언제 겁을 집어먹었냐는 듯 창석은 묘한 쾌감이 이른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1분 뒤에도.
투욱!
좌측 에어리어로 이동한 인구는 볼을 잡는 즉시 휘청이며 멈춰섰다.
“후우!”
그 입에선 답답스런 한숨이 터져나왔다.
여지없이 성준의 스탠딩 태클에 라인 바깥으로 볼이 빠진 것이다.
3분이 지나선 성준이 여유롭게 고의 파울을 저질렀다.
빠가악!
“아악!”
인구가 코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변성준은 순간 휘둘렀던 손등을 감싸며 걱정스레 다가갔다.
“아구! 실수했네. 괜찮아? 그러게. 너무 붙지 말라니까. 무리하게 붙으니까 그렇게 되지.”
“이 새끼...!”
10년씩이나 축구와 담을 쌓았다지만 인구는 방금 파울이 고의 파울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렇듯 벌떡 일어나 욕지거리부터 박았으나 그게 다였다.
“아빠아아! 괜차나?”
멀리서 딸이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필드를 넘어 달려올 듯이.
“아아. 괜찮아, 우리 딸~ 눈에 흙이 튀어서 그래.”
인구는 방긋 웃으며 다가오려는 딸을 한 손을 저어 저지했다.
코가 시큰거리긴 했으나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힐끗 본 석구는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라 있었다.
‘저 새끼는 경기는 내가 뛰는 데 왜 지가 자존심 상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물론 그보다는 딸이 더 신경 쓰였다.
“아빠아...!”
언제 해맑게 코이뚜! 거렸냐는 듯 딸이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기세가 아니던가.
인구는 빙구 미소로 다시 한번 딸을 달래주었다.
이어 변성준을 돌아봤다.
흠칫!
순간 성준은 먼 옛날, 광견병 같은 또라이 모습이 인구에게서 얼핏 스친 것 같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뭐, 뭐? 왜?”
당황한 성준은 애써 쫄지않은 척 한 걸음 더 다가가 반문했다.
그런 성준에 인구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히며 생각했다.
‘뭐. 일단 대충은 파악했다, 이 새끼야.’
* * *
전반전 4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양 팀 스코어는 3 : 0.
k-3 리그 소속, 현역 선수인 변성준, 김창석이 속한 B팀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두 선수는 오는 공격을 모조리 막아냄을 넘어 곧바로 역습을 이어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나아가 그들은 눈을 맞추며 새삼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구 이 새끼 진짜 완전 병신 다 됐는데?’
‘내가 말했지? 쟤 병신 맞다고.’
‘그냥 부딪치는 족족 볼 뺏기는 것 봐. 몸도 반응이 늦어!’
눈빛으로 험담을 이어간 그들은 교차하듯 서로 지나치면서도 입밖으로 험담을 이어갔다.
“실력만 믿고 까불더니만. 쯧!”
“이젠 어지간한 일반인보다 못한 수준이네. 더 볼 필요도 없겠어.”
대화를 길게 나눌 수는 없었다.
툭, 탓!
전반전 20분 이후 잦은 턴 오버에 팀 내 패스가 뚝 끊겼던 인구에게 간만에 의도치 않은 패스가 연결된 것이다.
“아 씨...!”
멀찍이서 인구에게 패스를 연결한 한 남자는 머리를 감싸며 눈 먼 패스였음을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상대 센터서클에서 공을 잡자마자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잡으러 가자.”
변성준은 비릿한 미소를 띠며 불시에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수비수도 바디 페인팅이라는 걸 한다.
하지 않는 녀석도 있지만 지금 눈앞의 변성준은 그게 메인으로 보였다.
지금도 봐라.
툭, 툭, 탓...!
에어리어 아크까지 올라온 녀석은 돌연 제자리에서 무릎을 웅크린 채 잔발 스탭을 밟았다.
‘1대1로 붙어보자고?’
녀석은 다이렉트로 볼을 빼앗을 수 있었음에도 구태여 자신이 접근하는 걸 기다렸다.
옆, 센터백 동료인 김창석은 적정 간격을 두고 이를 기다려주었고 말이다.
어디 한 번 해보셔~ 라고 웃으며 손짓까지 해주었다.
세 걸음 차.
인구의 동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녀석이 최소한의 폭으로 발끝을 좌, 우 여러 차례 방향을 잡더니 기어이 왼쪽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다.
그리고 이는 페이크가 분명했다.
‘왼쪽에 실은 척, 파고들 공간을 내어준다?’
저건 함정이다.
전반전에도 쉼없이 보아왔던 방식이었다.
일시에 드러난 무게가 빠진 공간으로 발을 들이는 찰나, 녀석은 퉁기듯 차징을 가할 게 뻔했다.
번뜩!
순간 인구의 두 눈이 번뜩였다.
벽이 세워졌음에도 툭, 툭! 공을 차고 들어가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 와라!’
변성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놈이 또다시 전면 돌격을 시도했다.
‘푸흣! 닭대가린가!’
딱 한 걸음 차 간격까지 접근했을 때, 성준은 여지없이 왼발 스터드를 비틀어 반대 방향으로 힘을 실었다.
투웅!
상체 어깨는 매섭게 일부러 내어준 빈 곳으로 접근한 인구를 향해 쏘아졌다.
이번엔 그냥 바닥에 패대기칠 심산이었다.
불성 사납게 쓰러진 아빠를 향해 으아아앙~ 울먹이며 달려오는 딸의 장면을 보고 싶었으니까.
퍼어억-!
일순 변성준의 두 눈이 아래위로 들썩였다. 분명 무너져야 할 놈은 저놈인데.
휘청!
“어?”
녀석이 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를 실어 저돌적으로 부딪혀왔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
어깨끼리 부딪친 그 찰나, 성준의 시야가 홱 위로 들려버렸다.
상체도 뒤로 튕겨나갔다.
‘뭔...!?’
스윽!
순간 우측 뺨을 칼바람이 빠르게 스쳤다.
“....!”
그만 두 눈은 부릅떠졌다.
“...말도...안!”
강제로 들려버린 시야를 턱을 아래로 힘껏 당겨 원래대로 낮췄다. 하지만 커진 두 눈은 경악으로 더욱 크게 떠져 버렸다.
놈이, 자신을 단순히 피지컬로 떨쳐내고서 지나쳤으니까.
이어 놈은 더는 전진하지 않고 에어리어 직전에 왼발을 활시위처럼 당겼다가,
뻐어엉!
축구공이 찌그러질 정도의 강력한 인스텝 킥을 구사했다.
일순 성준은 뒷목 털이 쭈뼛 서버렸다.
저 슈팅 폼.
분명 본 적이 있었으니까.
청대 시절, 국제대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했을 때 말이다.
< 008. 아빠는, 한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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