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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9화 (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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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9. 아빠는, 한다 (3) >

아빠, 축구 한다

9화 아빠는, 한다 (3)

인구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경기를 통해 자신의 몸 상태가 진짜 심각하게 처참하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무게를 이용한 상. 하체 밸런스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렇듯 상대적으로 몸무게가 덜 나가는 이들과 붙어도 쉽게 나가떨어진 것이다.

허나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부딪치고 부딪치면서 밸런스를 조정하는 거지.’

마치 영점 조준하듯이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스피드였다.

‘염병, 스피드가 죽었어. 무슨 발목에 무게추라도 단 것 같네.’

한때 한국산 카카라 불릴 만큼 인구는 빠른 스피드를 주 무기로 삼았었다.

하지만 10년간 달리지 않았던 만큼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간에 스피드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자동차 실린더 밸브에 찌꺼기가 쌓여 안 나가는 것처럼.’

이는 곧바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복합적인 것들을, 인구는 전반전 40분 만에 조정해버렸다.

센터백, 변성준이 채 무게를 실어 어깨 피딩을 가하기 전에 인구가 먼저 그를 어깨를 들먹여 중심을 깨뜨렸다.

직후 그는 에어리어 직전에서 슈팅을 구사.

골키퍼를 제외하고 뒤가 텅텅 비어 더 깊숙이 침투해 슈팅을 구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뺏긴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장점이던 스피드가 지금은 약점인 만큼 더 접근했다간 좌측에서 접근하던 풀백에게 컷트당할 공산이 컸다.

또 하나.

‘체력이 썩 좋지가 않아.’

축구 체력은 별개의 것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더 나아갈수록 설령 슈팅을 구사하더라도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었다.

단 3초.

인구가 이 모든 걸 관찰하고 이해하고 파훼한 시간이었다.

그 결과는,

뻐어어엉-!

공기가 터지는 강렬한 소음에 이어 인구는 똑똑히 보았다.

골문 좌측 상단으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간 공에 골키퍼는 움찔 몸을 떠는 게 최선인 것을.

촤락~!

기어이 골망이 물결쳤다.

순간 인구는 발밑에서부터 오래전 느껴보았던 전율이 쫘아악 돋아남을 느꼈다.

‘이 느낌...!’

딱 골을 넣었을 때의 시원한 감각.

발등에 공이 촥 감기고 원하는 방향, 원하는 세기로 나아갔을 때의 흔치 않은 그 감각이 심장을 보다 쿵쾅 뛰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녹슨 때가 조금씩 벗겨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같은 시각.

2013년에 창설된 k리그2의 참가 구단 수는 10개 팀.

경기는 총 36라운드가 진행되며 2월부터 12월까지 시즌을 치른다.

그리고 서울을 연고지로 한 <한강 FC>는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쭉 2부 리그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동룡야. 우리도 말콩같은 대박 용병 어디서 못 구하냐?”

수석코치와 함께 가벼운 저녁 식사 후 길을 거니는 중에 감독인 박동일이 물었다.

올해 서른두 살, 멀끔한 행색의 수석코치 동룡은 옆에서 나란히 거닐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 하하. 한 번 구단에 문의해볼까요?”

“됐다~ 문의해서 뭐하니. 돈 없다고 할 게 뻔한데.”

40대 후반의 배불뚝이 감독, 동일은 안 그래도 험상궂은 외모를 더욱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말콩 한 번 봐라. 남강FC 그 가난한 구단. 말콩 혼자서 하드캐리하며 결국 K리그까지 승격시켰잖냐. 응?”

동일은 패딩 점퍼 속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는 덧붙였다.

“축구는 11 VS 11 싸움이라지만. 간혹 한 명이 한 팀을 부술 때도 있는 법이야. 말콩처럼. 걔가 우리나라 리그에선 로날두야. 로날두.”

“네, 그럼 제가 한 번 두 팔 걷어붙이고 구단 측이랑 한바탕 협상을 해보겠습니다. 로날두 같은 선수 좀 영입해달라고.”

“그러다 잘려, 인마~”

동일은 픽하니 웃으며 사적인 자리에서도 사회생활에 열심인 동룡의 어깨를 툭 쳤다.

그때였다.

툭, 타앙!

“왼쪽으로~!”

“오케이!”

멀지 않은 거리.

익숙한 소리가 동일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조기 축구라도 하는 모양인데요?”

동룡이 휴대폰 시간을 슬쩍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동일은 벌어진 잇새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래? 한 번 볼까? 재야의 숨은 고수가 있는지 없는지?”

당연히, 있을 리야 없었다.

흔치 않지만 비시즌기에 간혹 세미 프로나 K리그3급 수준이 발견되긴 하지만 죄다 소속 구단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것들 대부분 다 매시 놀이하려고 조기 축구 오는 거지.’

열에 아홉은 그랬다.

일반인들 상대로 양학을 통해 자기만족 밑 즐거움을 얻고자.

그래도 궁금은 했던지라 동일은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는 동룡과 함께 높다란 펜스가 쳐진 야외 경기장으로 향했다.

펜스 가까이 다가간 박동일의 도끼 눈은 순간 날카로워졌다.

“저놈 저거...! 광견병...!?”

*       *       *

“뽀록이야. 이건 뽀록이라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성준이 혼잣말처럼 부정했다.

파트너 센터백으로 뛰던 김창석은 그새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광견병 마인구...”

수어가지의 별명 중 가장 많이 불렸던 별명까지 다 다뇌인다.

득점에 성공한 인구는 그새 달려 나온 딸을 번쩍 안아 들어 비행기를 태워주고 있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잉글랜드 런던으로 갑니드아~!”

“꺄아아아~ 아빠 최고오오!”

“그래에? 그러면 이번엔 이집트로 가볼까아!”

“꺄하하하~!”

두득!

변성준의 이마에 푸른 핏대가 돋았다.

저 여유롭고도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보자니 옛 오만하고도 재수 없던 녀석의 청대 시절이 다 떠올랐으니까.

속으론 여지없이 부정했다.

‘뽀록이야. 방금 건 내 실수고...!’

방금 실점은 단지 자신이 방심해서였다.

저 병신을 너무 얕잡아 본 거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후반전 10분.

퍼억!

또 한 차례, 변성준의 우측 어깨가 뒤로 밀려났다.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익!”

이를 악물며 어거지로 어깨를 앞으로 당겼으나 와락 이맛살만 구겨졌다.

툭!

살짝 밸런스가 깨진 그 틈에 인구가 우측 깊숙이 침투한 동료에게 사이드 패스를 연결한 것이다.

그것도 노룩 패스.

‘이 개 줫같은 새끼가...!’

후반전 14분.

타아앙-!

코너킥 상황. 변성준은 수비수 뒤쪽에서 어슬렁대다 우측 포스트로 뛰어드는 인구를 발견했다.

‘잘라서 때리겠다? 어림없지!’

포착 즉시 성준은 마침 에어리어 안으로 발을 들인 인구의 옆구리로 돌진했다.

빠가악-!

순간 성준은 번쩍하고 눈앞에 별이 보였다.

“어억...!”

절로 고통스런 비명이 터져나왔다.

털썩.

시야가 돌아왔을 때, 그는 바닥에 볼품없게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심은 파울 휘슬을 불었고 박스 안에 있던 상대 선수들은 원래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단 한 명, 팔꿈치로 코 옆등을 쳐버린 인구만 빼고.

“아이쿠! 괜찮아? 깜짝 놀랬네. 깜빡이 좀 키고 들어오지 그랬어? 난 뭐 파리가 날아드는 줄 알았잖아.”

“이, 이게 뭔...!”

고의 파울인지도 모를 만큼 순간 기절까지 한 것 같았다.

혼란스러워하는 성준에 인구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걱정하더니 돌연 쓰읍~ 미간을 좁혔다.

“코가 휜 것 같다?”

“뭐? 저, 정말?”

“아, 아니네. 원래 휘었네.”

“이, 이 새끼가 지금 누구 놀리...!”

성준은 분노에 겨워 외쳤으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주륵.

코피가 터졌다.

*       *       *

후반전 2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양 팀 스코어는 3 : 1.

여전히 공격 횟수는 프로 선수가 가미된 B팀이 많이 가져갔으나 A팀에도 한 방이란 게 생겼다.

‘어째 더 그 한 방이 더 진해지는 것 같다?’

벤치에서 이를 보던 석구는 새삼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새끼 이거 사이클 가동 되고 있는 거잖아...!’

10년 전. 인구의 플레이를 본 감독, 코치들은 저마다 농담삼아 이런 말을 자주 주고받곤 했었다.

[저놈 저거 또 사이클 발동됐다!]

[사이클이요?]

[그래. 봐봐. 처음엔 저 수비수 상대로 버거워하더니 몇 번 부딪친 뒤에는 아예 박살을 내버리잖냐.]

‘관찰하고, 파악하고, 대응하고, 응용하는...! 이, 새끼...!'

10년 전 석구를 상대로도 연습 경기 간에 수없이 보여준 그 장면이 분명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대를 몰아붙이고 공략하는.

물론 옛날과 비교하자면 턱없이 부족하긴 했다.

일단 그 잘나디잘난 스피드도 없었고, 움직임 역시 둔했으니까.

그럼에도 이를 적절한 위치선정과 상대 분석 및 파훼로 아슬아슬하게나마 비켜 가고 있었다.

또 녀석은 10년 만에 처음 축구를 하는 거다.

그러니 석구로선 놀랍고도 쉬이 믿기 지가 않았다.

“클라스는 영원하다더니..., 크훕...!”

결국 감정에 못 이겨 석구는 고개를 홱 옆으로 돌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다 못해 콧잔등이 다 찐했다.

“아 쒸.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

석구의 생각대로였다.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인구의 깊은 내면 속, 녹슬다 못해 굳었던 톱니바퀴가 끼익, 끼익! 버겁게라도 움직이고 있었다.

휙, 휙!

인구는 상대 아크 아래서 최소한의 움직임을 가져가며 연신 주위를 훑었다.

‘저 멀대같이 생긴 놈은 왼발 편향이다.’

똑똑히 보았다.

볼을 받으면 어떡해서든 왼발로 옮겨가는 놈이었다.

‘그러다 템포를 끊어 먹어.’

상대 좌측 윙백은 지역 방어에 치중한다.

‘체격이 좋지만 1대1 대인 압박 자체를 꺼려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가 협력 수비가 붙으면 그때야 함께 달려드는 놈이었다.

외에도 인구는 40분 동안 상대의 플레이를 모두 파악했다.

‘변성준 이 인성에 파상풍 걸린 것 같은 새끼는 발보단 어깨부터 들이미는 타입이고.’

옆의 파트너 김창석은 그냥 겁 먹었다.

두 센터백 간의 호흡은 조금 전의 득점으로 깨져버렸다.

변성준은 아예 멘탈이 나가면서 무리하게 전진하다 뒷공간을 노출하기까지...

그렇듯.

타앙!

인구는 활짝 열린 센터백 사이 공간을 보고서 다시 한번 먼 거리에서 왼발 인스텝 킥을 때렸다.

철렁!

*       *       *

삐, 삐, 삐이이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후윽, 후흑!”

인구의 벌어진 입에선 거친 숨이 쉼없이 새어나왔다.

뚝, 뚝!

볼가를 타고 굵직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간만에 얼마나 열심히 뛰었던지 혀에서 단맛이 났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마치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뚜렷했다.

또 졌음에도 불구하고 청량감이 느껴졌다.

“허, 참.”

인구는 헛웃음을 삼켰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축구와는 담을 쌓겠다며 10년 간이나 멀리했건만···. 막상 발 앞에 공이 있자 심장이 방방 나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건, 오래전의 열망이었다.

오직 선수로서의 순수한 열망.

지금은 녹슬었지만, 이 한 경기만으로 녹슨 때가 조금이나마 벗겨진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빠아아~!”

폴짝!

작은 천사가 품속에 안겼다.

땀에 젖은 몸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그마한 두 손으로 아빠의 볼을 잡더니 쪽! 콧등 뽀뽀를 해주었다.

“헤에~ 아빠아!”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자 밤인데도 세상이 화사하게 맑아진 것 같았다.

그런 아이는 내게 말해주었다.

“아빠 축구선수야아! 멋져어어!”

< 009. 아빠는, 한다 (3)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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