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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 아빠는, 한다 (4) >
아빠, 축구 한다
10화 아빠는, 한다 (4)
2007년, 신라고.
운동장 뒤편에 위치한 운동기구 창고.
똥군기 문화가 일상 그 자체던 축구부에게 있어 이곳은 후배 다지기를 하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여지없이 오늘도 선배들은 새로 입학한 후배들 셋을 엎드려 뻗친 채 갈구고 있었다.
“이 줘엇만한 새끼들아. 너희들은 선배가 선배로 안 보이지?”
“아, 아닙니다아!”
퍼억! 퍼억! 퍼억!
“아니긴 뭐가 아니야?”
2학년 신길훈은 손에 든 사랑의 매로 후배들의 찰진 엉덩이를 때렸다.
뒤쪽, 뜀틀 위에 앉은 3학년 선배는 후우~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여유롭게 훈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왜 인사를 안 해?”
“이, 인사 했습니...!”
퍼억!
“으윽!”
“지랄하네. 내가 말했지? 선배들 보면 어디서나 90도 인사 박으라고. 근데 이 싸가지 없는 놈들아. 너넨 안 그랬어. 한 78도로 박았나? 그게 인사야?”
벌써 15분째 엎드려뻗쳐 상태였던 후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충격적인 얼굴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
‘시발..., 그게 이유야?’
‘나, 나 그거 때문에 맞고 있는 거야?’
‘염병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3학년 선배는 쓴 것을 먹은 것마냥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휴~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 돼. 말을 해줘도 알아 처 듣지를 않는다니까? 길훈아. 애들이 귓구멍이 막힌 걸까?”
“예, 선배님!”
“엉덩이 좀 더 뜨뜻하게 데워라. 열 올라서 귓구멍 뻥 뚫리게.”
“넵!”
2학년 길훈은 손에 쥔 사랑의 매를 더욱 강하게 말아쥐었다.
퍼어억! 퍼어억! 퍼어억!
“으헉!”
퍼어억! 퍼어억! 퍼어억!
“흐흡...!”
순식간에 연속해서 두 사람을 때려버렸다.
이어 마지막 끝자리에 위치한 녀석의 찰진 엉덩이를 가격하려는데....,
벌떡!
“아우우우 씨바아알! 내 줘엇같아서 못해먹겠네!”
“으, 으메 깜짝아!”
갑자기 마지막 녀석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길훈은 흠칫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뭐, 뭐야?”
그 반문에 녀석은 두 눈알을 부라렸다.
“존나 못해 먹겠다고. 이 개쉐키들아! 내가 맞으려고 학교 왔냐아!”
“너 이 개새끼 지금 뭐라고 했냐?”
여지껏 없던 변종의 등장이었다. 3학년 선배는 그만 입에 문 담배를 놓쳤다가 말고 벌게진 얼굴로 뜀틀에서 내려왔다.
대장의 행차에 당황한 길훈은 옆으로 슬쩍 비켜섰다.
“뭐라고 했냐고. 이 개새끼야.”
3학년 선배는 한껏 성난 얼굴로 이마까지 들이댔다. 동시에 그는 본인이 머리를 들이 밀어놓고 뭔가 줘엇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놈 눈빛이...’
자신을 보고도 헤까닥 뒤집혀 씩씩되는 게 미친놈 같았다. 스윽.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눈알을 떨궜다. 녀석이 주먹을 꽈악 말아쥐고 있는 게 보였다.
'한대... 치겠는데?'
무방비 상태였던지라 속히 거리를 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월!”
놈이, 갑자기 짖었다.
“...월?”
“월월!”
3학년 선배와 길훈, 아직도 엎드려있던 후배들이 당황, 황당, 혼란스러운 눈길로 녀석을 일제히 바라봤다.
주춤!
3학년 선배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나아가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녀석은 콧잔등을 한껏 구김을 넘어 송곳니까지 드러내 재차 짖었다.
“월월월!”
“뭐, 뭐야, 이 새끼!?”
당장이라도 물어 뜯어버릴 기세로 성큼 다가오기까지...!
“오, 오지 마! 이 미친놈아!”
“왜! 월월월! 왜! 이리와, 이 새뀌야! 나 개새끼 맞아! 어디 한 번 개새끼한테 물려봐라! 월월월!”
“으, 으아아악!”
난생 처음 겪는 후배의 기행에 그만 3학년 선배는 덜컥 겁을 먹고는 창고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물론, 1학년 변종이자 광견병의 시작을 알린 인구는 좀비처럼 그를 쫓았다.
“어디가아아! 월월월월!”
“오, 오지 말라고오!”
“월월월월월! 엉덩이 한 번만 물어뜯자, 억울해서 안되겠어. 이 새퀴야아! 너도 당해봐. 당해보라고오!”
“이, 이 미친놈이...!”
“월월월월워어어얼!”
콰직!
"아아아아아아아악-!"
기어이 인구는 미사일처럼 몸 던져 3학년 선배의 엉덩이를 물어뜯었다.
* * *
현재.
“그렇게, 광견병으로 불리게 됐다더라.”
한강fc 감독, 박동일의 중얼거림에 수석코치 동룡은 입을 작게 벌렸다. 데구르르 굴러간 눈으로는 물었다.
농담이죠...?
“으허허허헝!”
“꺄하하하핫!”
경기가 끝난 뒤 마인구는 딸을 안아 들고 한껏 빙구 미소를 뽐내며 비행기를 태우고 있었다.
방금 동일이 말한 인물과 동일인물인지 의심될 만큼 딸바보 모습이었다.
“가, 감독님은 그걸 어떻게 아신 건지...?”
펜스 너머, 1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인구를 보던 동일은 회상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엉덩이 물린 놈. 내 아들이거든.”
“....”
“뭐, 나야 한 달 안 돼서 다른 곳으로 갔으니까. 짧은 인연이긴 하지."
인구를 설득해 신라고로 오게끔 만든 것도 동일이었다.
“그 뒤에도 간간이 보긴 했어. 청대로 뽑혔을 때도 쭉 지켜봤고.”
진정 감탄스러웠다.
필드 속, 22인의 선수 중에서도 마인구는 유별나게 튀었으니까.
오직 경기력만으로 말이다.
그건 어떤 팀을 상대로도 다르지 않았다.
“u17세 월드컵때도 그랬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같은 강팀 상대로도..., 저놈만 눈에 뛰더라.”
진정, 탐이 났다. 아마 그때 당시엔 대부분 k리그 감독들이 일찍이 접촉을 했을 지도 몰랐다.
“동룡아.”
“예, 감독님.”
“난 저놈이 다이렉트로 k리그로 진출하거나. 유럽행 간다고 확신했다~?”
그만큼 녀석은 떡잎부터 엄청난 재능을 뽐냈다.
그만 동일의 입가에 쓴웃음이 머물렀다.
“근데 왜 저깄냐.”
10년 전.
인구는 라커룸에서 선배를 폭행했고 그로 인해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엔 갖은 비리마저 폭로했다가 소위 협회에 찍혀 역으로 징계에 징계가 중첩되기까지.
‘그러다 축구를 접어버렸고.’
이렇게 대면한 건 10년 만이었다.
“녀석. 몸뚱이 많이 썩혔네.”
마음이 다 쓰라렸다. 저렇게 좋은 몸을 저리도 망가뜨리더니.
괘씸하게도 보였다.
그래도 한편으론 놀라웠다.
“저 짝들은 딱봐도 프로급인데.”
이겼음에도 분개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창석과 변성준을 얼핏 살폈다.
다시 인구를 돌아본 동일은 팔짱을 꼈다.
“저놈들 상대로 우위를 점했네.”
몸뚱이가 이전만 못한 건 사실이었다.
반사신경도 떨어진 데다, 스피드가 감소해 속도로 상대를 제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잘하던 거였는데.”
더 나아가 활동량도 줄어버렸다.
“그래서 타켓터로 뛰었지.”
아마, 그건 녀석도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고 최선의 포지션을 선택한 것일 터였다.
‘원래 분별력 하나는 좋은 놈이니까.’
최전방에 머물며 필요한 움직임만을 가져간 거다. 그러면서 90분을 뛸 체력을 적절하게 분배한 거고.
“베테랑처럼 뛰던데요.”
옆에서 동룡이 감평을 내놓았다. 동일은 픽하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저놈 저거 베테랑처럼 움직였어.”
그것도 에이징 커브로 인해 활동량과 기량이 팍 떨어진 백전노장이 오직 연륜으로 상대한 것처럼.
그 모습만으로 순간 욕심이 났던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녀석을 다시 한번 지도해보고 싶다는.
절레절레.
허나 동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대 팀에 프로급이 있다곤 해도 전원이 프로급은 아니었다.
또 상대는 k리그 2부급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소리였다.
‘나이도 찼고.’
저 활동량과 스피드론 k리그2의 템포를 따라올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동일은 아쉬움이 깃든 표정으로 한 번 더 빙구같은 인구를 보고는 이내 돌아섰다.
“가자, 동룡아.”
“아, 네, 넵!”
봐라.
좋은 선수 발견하면 설득부터 하던 동룡도 그냥 돌아서지 않는가.
딱 잘라 말해.
‘인구 이놈.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었네, 시들었어.’
하지만 두 사람은 채 걸음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박동일 감독님 아닙니까?”
굵직하고도 특유의 양아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목소리가 동일의 고막을 건드렸다.
* * *
인구는 현관문을 열었다.
“흡!”
인구는 소리죽여 발가락을 최대한 활용해 신발을 벗었다.
품속엔 고이 잠든 딸이 새근 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달달한 꿈나라에 간 딸이 깨지 않기를 바랐다.
“후우...!”
최대한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간 인구는 목재형식 아기 침대에 세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양말도 숨죽여 벗겼다.
스윽.
푹신한 이불은 딱 가슴께까지만.
‘씻어야 하긴 하는데.’
그건 혹 세나가 깨어나면 하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은 잠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깨우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후흣.”
턱에 팔을 걸친 인구는 가만히 세나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얗고도 포동포동한 볼살.
푸른 실핏줄이 보이는 눈꺼풀.
내리는 비도 막아줄 것 같은 기다란 속눈썹.
엄마를 닮은 것 같은 매끈한 콧대...,
“귀엽네, 귀여워.”
절로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구의 입매는 일자로 축 늘어졌다.
조금 전 그는 오래전 감독과 우연히 재회했다.
그와의 대화는 짧았다.
[어, 인구야. 오랜만이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감독님. 못 본 사이에 많이 늙으셨어요.]
[입 터는 거 봐라. 여전하네, 이놈의 자슥이.]
[하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냥 오다가다 지나던 길에 우연히 발을 들인 거지. 그럼, 이만 간다!]
“...”
문득, 이렇게 끝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가 아는 박동일은 축구에 재능이 있는 자라면 물 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타입이었다.
실제 자신을 신라고로 데려올 때도 그랬다.
[이놈아, 딴 데 가지 말고 우리 신라고로 와라. 내가 후에 좋은 구단으로 가도 너 1순위로 영입할 테니까. 알았어?]
모종의 제안까지 한 양반이 아니던가.
그 당시 박동일은 자신이 무조건 프로 데뷔에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망했네?”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그 망했다는 정의는 박동일 감독의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비록 10년 만에 두 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인구는 잘 알았다.
“진짜 죽었네, 죽었어.”
경기 중에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옛날 같았으면 속도로 제칠 만한 상황에서도 그냥 백패스로 물리는 게 최선이었고...’
박동일 감독이 그냥 갈 만 했다. 실제로 실망한 기색도 얼핏 비쳤다.
‘그 양반. 내색 안하려고 하는 것 같긴 했다만..., 워낙 표정을 못 숨기는 양반이라.’
인구는 세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복잡한 마음이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금세 정돈된다.
[아빠아~]
[웅, 딸.]
[아빠는 여기 언제 나와아?]
세나는 tv를 가리키며 물었다.
뜨끔했다.
그럴 때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댔고 말이다.
[아빠는 부상 완치한 후에나 tv에 나올 거야.]
[언제 나아아?]
[으음. 조금만 더 기다려.]
[우웅...]
아쉬워하는 딸의 모습을 볼 때면 인구의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코이뜨으으으~!]
언제부턴가는 축구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인구는 tv 속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자신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딸이 너무나 좋아했으니까.
스스로에겐 갈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염병, 언제까지 거짓말해야 하는 거야?’
세나 앞에서 이런 거짓말을 할때면 송곳이 심장을 쿡! 쿡!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거짓말이 이처럼 따갑고 쓰라린 게.
그리고 오늘.
경기에 졌음에도 불구하고 딸은 자신의 활약에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콧등 뽀뽀는 진짜 흔치 않은 건데...’
슥, 슥.
인구는 콧등을 매만졌다. 절로 입꼬리가 씰룩하니 끌어 올라갔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다시 한번 경기에 뛰고 싶을 정도로.
딸이 90분 내내 자신만을 바라보고 응원했기에 더 열심히 뛰기도 했다.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
골을 넣어 딸을 기쁘게 만들고 싶었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말이다.
“....허, 참.”
인구는 그만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렸다.
“인제 와서?”
새삼 그는 깨달았다.
10년간 방황했으면서, 자신은 지금 다시 축구를 하고파 하고 있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순명료하다.
딸을 위해서.
정처 없이 떠돌던 마음이 이제야 정착했다.
< 010. 아빠는, 한다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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