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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1화 (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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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1. 아빠는, 한다 (5) >

아빠, 축구 한다

11화 아빠는, 한다 (5)

오전.

살짝 열린 블라인드 너머로 뿌연 햇살과 함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후루루룹!”

전날 집무실에서 잠든 박동일 감독은 기상과 함께 접객용 소파에 앉아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중이었다.

프리시즌을 앞두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복귀했다.

수석코치에게 건네받은 메디컬 리포트를 보니 선수들의 컨디션과 건강 상태는 대체로 무난무난.

“일부 체력이 떨어진 애들이야 조지면 되는 거고. 후우우!”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식히곤 맛 보았다.

전날 술을 마셔 머리가 아팠는데 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와중에 이적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3명 들어오고 6명 나갔네.”

탁!

동일은 진이 빠진 얼굴로 파일철을 테이블 위에 소리나게 던졌다.

“에휴~ 3명 들어오면 뭐하냐고.”

한강 FC의 박동일 감독은 선수 영입 권한이 없었다.

영입은 오로지 축구에 미친 구단주가 하는 거였다.

“지 맛깔나는 대로만 영입하면 뭐하냐 이 말이지.”

말은 감독의 전술과 스타일에 맞는 선수를 영입해준다지만...,

“개뿔.”

K리그2에서 일부 선수들은 한강 FC를 거쳐 가는 구단쯤으로 취급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핵심 선수가 둘이나 나가버렸네.”

그것도 한강 FC의 득점 비율 40%를 책임지던 스트라이커와 센터백 하나.

구단주 자체가 소극적인 투자를 해왔기에 돈으로 붙들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동일의 두 눈이 가느스름하게 좁혀졌다.

“마인구 그놈.”

전날, 녀석의 경기가 쉬이 가시지가 않았다.

고작 조기 축구 경기였을 뿐인데도 녀석의 플레이만큼은 충분히 감명받을 만했으니까.

“그런 몸뚱이로도 위협적이긴 했어.”

여전히 아쉽고도 씁쓸함이 감도는 건 지난 청대 시절과 비교해 턱없이 떨어진 기량 때문인 것이다.

화려했던 과거를 배제하고 현재만 봤을 땐, 솔직히 의문이긴 했다.

그 의문이란 건...,

‘K리그2에서 먹히려나?’

부정적인 마음이 더 컸다. 인구를 아예 몰랐다면 냉정히 말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말고 동일은 피융 바람 빠진 미소를 흘렸다.

“나참, 내가 무슨 생각을.”

선수 영입 권한이 없는 자신이었다. 물론 값싼 선수야 구단주를 설득하고 설득하면 데려올 수 있다고 자부했지만...,

“녀석은 아마추어다.”

한국산 카카라 불리던 인구는 이젠 성인 무대도 밟지 못한, 한때 청대 출신의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동일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면 뭐해. 그놈 성격이 지랄맞아서 제대로 피우지조차 못했는데.”

그래서 더 인구가 아까웠다.

감독마다 원하는 유형의 선수란 게 있고, 오래전 동일에게 있어 인구는 선수로서의 이상형, 그 자체였으니까.

그때였다.

똑, 똑!

“누구요?”

동일은 복잡스러운 마음에 마저 라면 국물을 몽땅 비웠다가 말고 노크 소리에 미간을 찡그렸다.

‘동룡인가?’

수석코치 동룡은 조금 전 이 파일철을 건네고 나갔다.

‘아니면 구단주?’

구단주일 확률이 높다. 그 인간은 허구한 날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양반이니까.

“이 쫌생이가. 숨 쉴 구멍을 안 주네.”

작게 투덜거린 동일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구단주를 마중하려 했던 동일의 두 눈은 일순 크게 떠졌다.

“너...?”

*       *       *

마인구는 눈앞의 박동일 감독을 마주 봤다. 동일은 자신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그래, 다시 선수로 뛰고 싶다고?”

“예, 감독님.”

안다.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걸. 하지만 인구로선 최선의 선택이 바로 박동일을 찾아가는 거였다.

“그럼 3부 리그로 가지, 왜 2부로 왔냐. 점프 뛰는 것도 아니고. 3부도 점프다만.”

동일은 소파 등받이에 느슨하게 등을 기대며 반문했다. 찾아올거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양 여유로웠다.

그건 부탁하러 온 인구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에 손을 뻗어 벌컥벌컥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아, 예. 저도, 인맥이라는 것 좀 활용해보려고요.”

“인맥?”

“예. 그래도 프로 리그에서 활약 중인 감독님 중에 아는 사람이곤 박동일 감독님밖에 없거든요.”

“철중이도 있을 텐데?”

김철중은 박동일을 뒤이어 신라고 감독으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순간 인구의 두 눈이 매섭게 뜨였다.

“그 돈벌레 새끼랑은 상종 안 합니다.”

“말은 똑바로 해. 걔가 널 상종 안하겠지.”

“걔도 걔지만 저도 상종안합니다.”

“...”

동일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이 새끼 봐라.’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겪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세가 한 풀도 아닌 두 풀 이상 꺾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광견병 마인구...’

녀석은 한결 풀어진 것 같으면서도 중간중간 서슬퍼런 눈을 빛냈다.

일순 10년 전 자신의 아들이 웬 미친개에게 엉덩이가 물린 후 응급실에서 울먹이던 게 다 떠올랐다.

[아부지. 흐허헝! 그, 그 새끼 진짜 미친놈이에요! 내 엉덩이를 꽉 깨물어버렸다니까요? 놔라고 해도 끝까지 안 놨어요! 크헝헝!]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 아들은 엉덩이에 인구의 이빨 자국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었다.

아들을 물어버린 인구를 못마땅히 여길 법도 했지만 동일은 그러지 않았다.

‘그땐 우리 막둥이가 질풍노도의 시기긴 했으니까.’

한 번 크게 데일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물릴 줄은 몰랐지만.

곧 동일은 인구의 튀어나온 배를 보고선 입매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이거이거 영, 몸뚱이가 에이징 커브가 아니라 알코올 앤 니코틴 커브가 제대로 왔는데?”

“예. 그래서 다이어트 중입니다. 술이랑 담배도 끊은 지 오래고요.”

“네가? 왜?”

“왜라뇨? 좀 섭섭합니다, 감독님?”

동일은 품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인마. 너, 인맥 축구 그리 싫어해서 뛰쳐나간 거 아니었냐?”

“인맥 축구도 인맥 축구지만 그 외에 갖은 병폐에 엿같아서 나간 거죠. 한 대 툭 때리니까 스트레이트에, 훅에, 니킥까지 꽂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17살이 어찌 버티겠습니까?”

순수한 17살은 결코 아니었다고 동일은 정정하고픈걸 참으며 말했다.

“근데 왜 나라는 인맥을 이용하려는 건데?”

인구는 테이블 가까이 스윽 얼굴을 내밀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야, 지금 당장은 감독님 인맥 말고는 제가 축구선수로 뛸 만하지가 않으니까요?”

“하, 이 새끼 봐라.”

동일은 황당한 웃음을 터뜨렸다가 말고 버럭 소리쳤다.

“k리그2가 개줘엇밥이냐, 이눔아!”

한강 FC에서 동일은 선수들에게 성깔 더러운 사자로 불렸다.

당연 백이면 백 선수들은 제 고함 한 방이면 바짝 긴장하며 허리를 빡빡이 세웠다.

반면, 인구는 도리어 한쪽 눈썹을 꿈틀대며 받아쳤다.

“개줘엇밥은 아닌데, 개밥인 거는 같습니다.”

“뭐, 이 새끼야?”

“솔직히 살 빼고 경기력 좀 끌어올리면 비빌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허 참나. 이 새끼 이거 여전히 또라이네?”

“잘 아시네요, 감독님. 그래서 찾아온 거잖아요.”

화가날 상황임에도 동일은 간만에 복잡했던 머리가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랬지.’

신라고 때도 유독 이 녀석은 자신의 기세에 주눅 들지가 않았었다.

그전, 직접 지도하기 전에 처음 녀석을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너 인마. 내가 찍었다. 그러니 키워줄게. 후에 좀 더 자라면 다른 곳 제안 다 무시하고 신라고로 꼭 와. 신라고가 최고니까.]

[전 저 알아서 잘 크고 있는데요?]

[이눔이. 오라면 올 것이지.]

[에이~ 뭔가 비전을 제시해야죠. 제가 혹할만하게. 말로만 그러면 뭘 믿고 가요? 그리고 진짜 감독님 맞아요?]

[뭐?]

[아니. 얼굴도 그렇고 무대포식으로 제안하는 것도 그런 게 막 깡패처럼 구니까...]

[이, 이놈 자식이 뭐가 어째?]

그게 인구의 결코 14살같지 않은 14살 때의 일이었다.

'떡잎부터 또라이였지.'

지금도 놈은 제 할 말을 다 했다.

“그리고 석구가 그러던데요?”

“판교 FC의 그 홍석구?”

“예. 걔가 그러더라고요. 말이 2부 리그지. 지금 한강 FC는 3부 리그 수준이라고. 아니, 3부 리그에서도 중위권이랬나?”

“그 미친놈이...!”

순간 동일이 허리를 벌떡 세우며 발끈했다.

“이번에 핵심 자원들도 이탈했다던데요? 작년 시즌에도 꼴등했고. 참. 우리 축구가 좋긴 좋아요? 꼴등 해도 3부 리그로 강등이 되지를 않으니. 미국의 슈퍼리그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봐. 너 시비 걸려고 왔지?”

인구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제가 뛸 수 있을 만큼 스쿼드 댑스가 얋다! 이 말을 말씀드리는 거죠.”

“이 놈 이거 진짜 2부 리그를 줘엇밥으로 보내?”

“줘엇밥까진 아니라 개밥으로는 보고 있다니까요?”

“...”

지지를 않는다. 동일은 말문이 턱 막힘을 느꼈다가 말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진짜 이유가 뭐냐? 왜 10년 만에 나타나서 갑자기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 건데? 어디 한 번 진짜 이유 좀 들어보자.”

진정 궁금했다.

10년간이나 축구를 멀리한 녀석이, 인제 와서 왜?

한편으로는 괘씸했으며 밉기까지 했다.

이는 감독이기 이전, 순수한 축덕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낭비한 녀석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었다.

인구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먼 곳을 응시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원해서요.”

“...뭐? 원해?”

“예. 딸이 축구선수를 좋아합니다. 또, 딸이 제가 경기에서 뛰는 걸 보고파해요.”

“....”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답변에 동일은 재차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세상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덧붙였다.

“그래서 축구 선수가 되려고요. 설령 1시즌이라도. 아니 반 시즌만이라도. 딸한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 그게 이유라고? 진짜?”

동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또 믿기지가 않았다.

‘이 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자신이 알던 인구는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다혈질에다 괴팍했고 수틀리면 광견병이 되는 놈이었다.

그래서 신라고 감독으로 있을 때도 누누이 강조했었다.

‘성깔 좀 죽여, 인마.’

언제고 저 더러운 성격이 발목을 붙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이놈 봐라?’

동일은 보았다. 딸을 생각하는 녀석의 얼굴에서 얼핏 따스함이 묻어나는 게.

저 험상궂은 면상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부성애마저 버젓이 느껴졌다.

인구는 카운터 한 대를 맞은 것마냥 쉬이 답하지 못하는 동일을 향해 마저 어퍼컷을 날렸다.

“압니다.”

“...뭘?”

“지금 제가 하룻강아지라는 걸요. 하루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법이고. 실제로도 잘 모르겠어요. 성인 무대에서 실력을 증명하지도 않았고, 지금 몸뚱이는 그냥 병신같죠. 그런데..., 마냥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그러니까, 기회만 주십쇼. 그럼 증명해보이겠습니다.”

마저 인구는 레그킥을 가했다.

“무보수로 뛰어도 상관없습니다. 증명할 기회만 준다면요. 단 한 번이라도 괜찮습니다. 빈 엔트리 명단에 숫자 하나 채운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까?”

"너.. 이...!"

채 동일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인구는 테이블에 대가리부터 박았다

쿠웅!

"제 처엇 스승니임!"

*       *       *

치이이이익-

인구와 석구는 점심부터 집 근처 돌솥집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석구는 고기 한 점을 상추에 잘 싸 입에 넣고는 말했다.

“그래도 별 기대는 하지 마. 박동일 그 양반. 은근 정 많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니까.”

“뭐가 아닌데?”

“암만 그래도 2부 리그다. 네가 한때 청대까지 갔다 해도 2부 리그는 넘사야. 넘사.”

유독 사람들 중엔 k리그 2를 우습게 보는 이들이 많았다.

“k리그도 줫밥이네. 내가 뛰어도 저 새끼보단 잘하겠네 하는데..., 그거 겁나 멍청한 생각이다?”

2부 리그에 진출하는 그들 역시 각 지역의 천재로 불리던 이들이었다.

천재가 천재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뒤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다.

“너도 알잖냐. 보는 거랑 실제 겪는 거랑은 천지 차이라니까? 템포부터가 달라. 조기축구 템포?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잔잔한 파도라면...,”

돌연 석구는 손에 든 물잔을 허공에서 빙빙 흔들어 보였다. 물이 바닥과 손에 다 튀었다.

“막 흔들어! 이리저리 요리조리 사정없이! 그냥 쉐킷쉐킷이야. 감당 안 돼. 아니 못 따라가. 그냥 기대하지 마. 상처만 받아.”

“지랄하네.”

인구는 고기 두 점을 한 번에 집어 입에 가져갔다.

“그래서 연락은?”

인구는 고기를 꼭꼭 씹다 말고 미간을 찡그렸다.

지가 별 기대 하지 말라면서 은근히 뱁새 눈을 떠 계속해서 연락이 왔는지 묻잖나.

"그 말만 10분 사이에 열댓번은 들었다."

“그래도 연락은 주지 않을까? 가만 보면..., 그 인간이 널 좀 좋아했었냐? 학창 시절때도 너보고 딴데 가지 말고 자기 밑으로 오라고 했었잖아.”

문득 지난 기억이 떠오르는지 석구는 푸흣,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자기 아들 엉덩이 빵꾸 냈는데도 혼 한 번 안내고.”

인구는 각색이 된 듯한 석구의 기억에 쯧쯧 혀를 차며 정정했다.

"빵꾸는 안냈다. 뜯은 거지."

"... 이 미친놈. 그게 더 심한 거 아니야?"

바로 그때였다.

부우우우우웅-!

순간 두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와, 왔어?”

몇 초 간의 정적 뒤에 석구가 먼저 놀란 눈으로 그 정적을 깼다.

인구는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두 눈에 일말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박동일이었다.

< 011. 아빠는, 한다 (5)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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