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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 아빠의 도전 (1)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12화 아빠의 도전 (1)
몇 시간 전.
약 5년 전, 한강 fc를 인수한 기업 대표이자 구단주, 강경민은 와인색 정장 차림새로 복도를 거닐었다.
뚜벅, 뚜벅, 뚜벅.
두 손을 호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자기애에 취한 것처럼 걷는 그 자태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처럼 도취되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복도를 지나던 프런트 지원들, 코치들은 경민을 보며 허리를 넙죽 숙여 인사를 건넸다.
반면 경민은 보조개 핀 옅은 미소로 살짝 고개를 까딱이는 게 전부.
“아아, 그래요, 그래요~ 좋은 점심입니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본인의 집무실이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실내엔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인이 사무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박 감독님 오셨구나?”
예상치 못했다는 척, 경민은 멈칫거리더니 금방 여유롭게 그를 지나쳐 중역의자에 엉덩이를 털썩 붙였다.
“예, 구단주님.”
박동일은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새끼 이거 일부러 늦게 온 거지?’
사전에 연락을 취하고 방문했건만. 동일은 이 자리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아아, 마침 밥 먹던 참이라서. 급하게 먹으면 체하잖아~”
조금은 찔끔했던지 경민이 예의 뻔뻔한 미소와 함께 손에 든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의 음식물을 긁어냈다.
“암튼 그러니까. 10년 전에 청대로도 뛰었던 선수를 영입하자는 거지요?”
“예, 맞습니다. 물론 당장은 선발로 뛸 만한 몸 상태가 아닙니다.”
“그 선수의 비전을 보자는 거네요?”
음식물 찌꺼기를 긁어낸 이쑤시개가 허공에서 아래위로 가볍게 흔들렸다.
동일은 절로 인상이 구겨지려는 것을 애써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비록 오래 쉬긴 했지만 똑똑히 봤습니다. 잠재력만큼은 여전하다는 걸요. 아직 28살이기도 하고요.”
“28살이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인데. 괜찮겠어요? 오래 쉬었다면서?”
“더 솔직한 말로..., 도박이긴 합니다.”
일순 경민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도박은 근절해야 하는 건데?”
“예. 그렇죠. 하지만 확률 높은 도박이라면요? 거기에 상금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큰.”
“그 정도란 말이에요? 그 친구가?”
“한때 제2의 카카로 불리던 녀석입니다. 손흥빈보다도 더 기대되던 선수였고요.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동일은 미리 계획한 대로 휴대폰을 꺼내 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어 건넸다.
경민은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죄다 마인구에 대한 축구 팬들의 이야기였다.
관련 언론 기사도 많았다.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10년 동안 인구 그놈, 단 한 번도 축구계에 발을 들인 적이 없고요. 그런데도 인구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녀석을 그리워하고 있죠. 아직까지, 축구 관련 매체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고 말입니다.”
팬들이 이토록 마인구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성인 무대도 아닌, 청소년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한 번이라도 본 팬들은 누구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니까.
박동일은 지난 인구의 플레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다소 상기된 감정을 느끼며 덧붙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챔피언스 리그, 인테르 밀란 vs 토트넘 간의 경기에서 보여준 가래스 베일입니다.”
“가래스 베일?”
“예. 2010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래스 베일은 인테르 밀란을 상대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뽐냈었죠. 스피드면 스피드. 침투면 침투. 슈팅이면 슈팅...! 당시 세계 최고의 수비수던 마이콩을 탈탈탈 털다시피 했고요.”
“으흠. 기억나요, 기억나. 그때 가래스 베일이 홈, 원정 가리지 않고 평점 10점을 받아서 화제가 됐었지.”
“맞습니다. 그 기점으로 유럽 빅클럽들의 구애를 받기 시작했고요.”
“근데 그게 왜?”
툭!
경민이 이쑤시개를 재떨이에 가볍게 던졌다.
사락.
이어 그는 사전 물밑 작업을 통해 스카우트가 건넨 마인구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표정이 펴졌다가도 구겨지길 반복한다.
동일은 이제 시선조차 맞추지 않는 구단주를 뚜렷이 내려다보며 강조했다.
“청소년 대표로 뛸 당시, 마인구는 매 경기마다 그런 퍼포먼스를 뽐냈습니다. 어느 나라를 상대로도요. 그러니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충분히 긁어볼 만하다는 거죠.”
“아하. 그러시구나. 그럼, 그러세요.”
“...예?”
“영입하라고요.”
“...”
동일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뭐야, 이놈? 이렇게 쉽게 오케이 한다고?’
두 눈은 당혹스러움에 흔들렸다.
현 구단주는 예측이 전혀 가지 않는 또라이였다.
경민은 자신을 올려다보더니 히죽 입매를 늘어뜨려 웃음 지었다.
“아니~ 그렇게 감독님이 원하시는 데 구단주인 제가 감히 어찌 거부권을 행사하겠습니까?”
언제는 지 좃대로 선수 사고팔고 하던 놈이...,
라고 목구멍 끝까지 올라올 뻔한 걸 동일은 겨우 참았다.
너무 쉽게 허락하자 의심은 좀처럼 거둬지지 않았다.
‘이 인간. 대체 무슨 꿍꿍이냐?’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경민은 툭 소리나게 마저 스카우팅 리포트를 내려놓고는 가벼운 입을 놀렸다.
“감독님 말대로 그 도박. 잭팟이면 좋은 거고. 근데 또 아니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무엇보다..., 요고, 요고~”
경민은 손에 든 본인의 휴대폰을 얼굴 옆에서 흔들어 보였다.
“감독님 말씀대로 아직도 마인구에 대한 팬들의 그리움이 넘실거리더라고요. 또, 얘 요즘 뭐하나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고. tv에서도 그렇고. 그러니까...,”
“마케팅으로도 활용하자는 거군요?”
“빙고.”
경민이 손을 튕기며 보다 짙은 미소를 흘렸다.
반면 동일의 표정은 조금은 굳었다.
‘지금, 고기 방패로 세우겠다는 거잖아.’
구단 홈페이지 및 최근 개설한 너튜브 채널을 통해 마인구를 상대로 구단 마케팅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당장 경기력이 출중하다면야 오히려 선수나 구단 측 모두에 이로울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인구는 시간이 필요했다.
‘욕먹을 게 뻔해.’
처음이야 인구의 등장에 일부 팬들이 관심을 보일 수야 있다.
허나 축구는 약육강식이며 오직 실력으로 검증하는 무대.
팬들의 그리움과 기대가 한순간 실망과 분노, 야유로 바뀔 가능성이 컸다.
허나 구단은...,
‘실력이 떨어지면 욕을 먹기야 하겠지만 확실히 단기적인 화젯거리는 될 수 있겠지.’
저조한 관중수를 늘리는 데도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 정도면, 됐다.’
동일은 여기서 가타부타 따지지 않았다.
이게 아니면 인구를 당장 프로 무대로 끄집어낼 수가 없을 것 같았으니까.
끝에서 경민은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며 중얼거렸다.
“또 선수 본인이 무보수로라도 뛰겠다며? 근데 이게 근로법상 무보수는 안 돼. 그러니 아깝긴 하더라도 최저 연봉 조건으로 1년 단기 계약만 해봅시다.”
* * *
[계약 기간은 1년. 연봉은 2018년 기준 최저 월급 1,573,770원. 연으로 치면 약 1,890만 원 정도네. 자세한 건 본격적으로 협상할 때 물어보고. 당장 내일부터 튀어와. 몸부터 만들게.]
뚝, 하니 스피커로 켠 통화가 끊어졌다.
인구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최대한 귀 기울여 듣던 석구의 눈썹은 어느 때보다 좁혀졌다.
그들밖에 없는 돌솥 삼겹살집에선 오직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만 들렸다.
치이이익~!
두 사람의 입은 점점 더 벌어졌다.
그렇게 약 3초가 더 지나서였을까?
벌떡! 벌떡!
“이야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옷!”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정맞게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예에~ 예압!”
“우후웃! 우후웃!”
인구는 생전 쳐본 적 없던 브레이크 댄스에 이어 망치 춤까지 춰가며 흥분에 겨워했다.
석구는 춤을 추다 말고 미끌거리더니 이윽고 감정에 격한 얼굴로 인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리 와~! 내 새끼이이이~! 내가 말했지! 될 것 같다고오오!”
“네가 언제 그랬어, 인마아!”
“그거야 기대했다가 혹 안 됐을 때 너 실망할까 봐 일부러 그리 말한 거지 이 새끼야아!”
“이, 이 새뀌! 졸라 생각이 깊었네?!”
인구의 눈시울은 새삼 붉어졌다. 솔직히 쫄렸다. 될 거라는 기대보다는 안 될 거라는 불안감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었다.
그것도 무보수가 아닌 돈까지 받아가며...!
부르르르!
발밑에서 묘한 전율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몸이 떨렸다.
“어흐흥!”
“어어엉!”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서 한동안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직후 고성방가로 가게 주인에게 혼났지만 말이다.
* * *
그날, 저녁.
인구는 집에서 세나와 함께 소소한 축배를 들었다.
좌식 테이블 위엔 딸이 좋아하는 수제 딸기 케이크와 치킨, 피자 등이 차려져 있었다.
물론 이 모두 인구가 직접 조리한 것이다.
최대한 건강한 재료들로.
저녁 8시, 황금시간대.
TV 속엔 EPL에 속한 토트넘의 24라운드 경기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선발로 출전한 손흥빈은 전반전 3분 만에 한국 팬들을 열광케 했다.
[손흥비이인~]
타앙!
[고오오오오오오오올~! 페널티 아크 좌측 바깥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슈티이잉! 손흥빈 선수의 전매특허죠오오!]
“코이뚜우우우우우~!”
포크로 순살 치킨을 찍어 먹던 세나가 두 팔 벌려 소리를 질렀다.
“예에~ 코이뚜우우!”
인구도 두 팔 벌려 호응해주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홱!
세나가 두 뺨이 살짝 상기 된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아빠아.”
끔벅, 끔뻑.
동그란 눈을 두 번 깜빡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자 인구의 두 눈엔 달달한 꿀이 생산되었다.
“웅, 우리 이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세나야.”
손은 절로 찹살떡 볼을 감싸고자 올라갔다.
흠칫.
하지만 채 닿기 전에 멈췄다.
‘제기랄, 손 안 씻었네.’
이런 아빠의 한탄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손끝으로 tv 화면을 가리켰다.
배시시.
딸은 천사도 한 수 접고 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빠아! 이제 손흥빈같은 사람 되는 고야?”
“으응?”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버벅거렸다.
반짝, 반짝.
그새 딸은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라는 구절이 이 아이를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인구는 아니? 라고 하면 그 반짝 반짝이 금방 눈물로 젖셔 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K리그2 와 EPL, 그것도 최상위권인 토트넘은 비교 자체가 안된다.
하물며 손흥빈은...,
‘쟨 월클인데?’
반면에 자신은 성인 무대에서 검증조차 안 된 축구 선수 1, 도 되지 않았다.
허나...,
반짝, 반짝!
세나의 눈이 더욱 빛났다.
“우웅?”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촵! 볼을 가슴에 붙이기까지.
“우우웅?”
“...허읍.”
심장이 아팠다. 아기 새처럼 아빠만 올려다보는 딸의 모습에, 인구는 기어이 히죽, 빙구 미소로 화답했다.
“그, 그래.”
뭔가, 해서는 안 되는 답을 해버린 것 같다.
< 012. 아빠의 도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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