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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5화 (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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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5. 아빠의 도전 (4) >

아빠, 축구 한다

15화 아빠의 도전 (4)

3월 2일임에도 불구하고 전날 눈이 내렸다.

1군 훈련장 곳곳엔 흰 눈이 쌓였고 아침 일찍부터 직원들은 넉가래와 싸리비로 눈을 치우느라 바삐 움직였다.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박동일 감독은 눈으로 뒤덮인 훈련장 위에 질서정연하게 집합한 선수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전은 유산소 운동이다. 일명 눈 치우기.”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겨울이면 늘상 있는 일이었으니까. 일부는 귀찮은 기색을 보였지만 동일이 사나운 눈을 빛내자마자 퍼뜩 꼬리를 아래로 말았다.

이어 동일은 자신의 옆에 선 선수를 소개했다.

딱 한 달.

개막전을 사흘 앞두고 마인구가 선수들 앞에 선 것이다.

“모두 인사 나눠라. 마인구다.”

짝, 짝, 짝, 짝!

자리한 선수들이 손뼉을 쳐주었다.

인구는 얼떨떨하고도 은근 설렜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인구입니다. 비록 늦게나마 이 자리에 오게됐지만..., 지금에서라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짧다면 짧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훈련을 쉼 없이 해왔다.

그 덕에 90KG대였던 몸무게를 87KG까지 빼는 데 성공했다.

188CM에 88KG이면 딱 듬직한 체형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90KG 대도 뭐 나쁘진 않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로맬루 루카쿠만 해도 190CM에 103KG이 아니던가.

‘그놈도 언론에서 다이어트하라는 소리가 많긴 했다만...’

뚱뚱하기보다는 헐크같은 느낌이었다.

단지 자신과 비교해 차이점은...,

‘난 술에, 고기에, 담배로 만들어진 지방 덩어리였다는 거지.’

원래 단백질보단 지방이 훨 물컹하고도 덩치가 큰 법이었다.

어쨌거나 한 달 사이 인구는 살을 태우는 듯한 극한의 훈련을 통해 나름의 결실을 보았다.

일단 몸에 딱 달라붙어 튀어나왔던 배가 적당히 들어갔다.

그럼에도 선수단 앞에서는 배에 힘을 팍 주고 단단한 가슴을 부각시켰다.

‘이 새끼들 봐라.’

벌써부터 몇몇 놈들이 하이에나 같은 눈을 빛내는 게 보였으니까.

그러다 곧 동일은 툭! 인구의 등을 가볍게 때리며 덧붙였다.

“아무쪼록, 잘 지내봐.”

‘사파리에서.’

속 말은 삼켰다.

*       *       *

스으윽, 스으윽!

일부는 한 대 뭉쳐 넉가래로 끝에서 끝까지 눈을 밀어냈다.

몇몇 팀 내 베테랑들은 대충 싸리비 질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기 목동 FC는 눈 치우는 기계도 따로 구비하고 있던데..., 우린 그런 거 없나?”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구단주부터가 쪼잔하기 그지없는데. 솔직히 난 그 새끼가 겉멋용으로 구단주 타이틀 단 게 아닌가 싶기도 해.”

“겉멋용?”

“어. 나 구단주요~! 라고 주변 지인한테 자랑하려고.”

“오오. 일리가 있어. 확실히 구단주라고 하면..., 재수없던 인상부터가 달라 보이니까.”

“그나저나..., 저 새끼.”

한강 FC의 염동규는 대충 싸리비로 눈 바닥을 한 번 훑고는 한 녀석을 바라봤다.

큰 키에 검은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꽤, 무서운 인상의 남자가 열심히 싸리비 질을 하는 게 보였다.

그가 지나는 길은 단 한 번의 싸리비질로 푸르디푸른 잔디가 훤히 드러났다.

“마인구라고?”

동규는 두 눈을 서슬퍼레 좁혔다.

한 달 전, 기사를 통해 접했다. 한때 청대에서 날아다닌 선수가 K리그2, 이곳 한강 FC에 입단했다고.

“한강 FC 너튜브 보니까 아주 그냥 어그로를 오지게도 끌던데?”

옆에 있던 팀 동료, 한민호가 덧붙였다.

“그러게 말이야.”

“근데 반응이 영...,”

“거진 다 우려와 욕뿐이지. 일부 팬들은 응원하긴 한다만...”

너튜브 상에는 주에 한 번씩 인구의 훈련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얼마 없던 구독자는 인구의 등장만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 : 오오, 인구 갈수록 몸이 좋아지는 것 같다?

- <검은머리전술천재> : 일단 배가 들어갔네. 그것만으로도 합격이다 넌.

- <볼떤> : 여러분. 큰 기대는 하지 맙시다. 왜 구단이 마인구를 이렇게 띄워주는 지는 몰라도..., 지금 인구는 우리가 알던 그때 그 인구가 아닙니다.

ㄴ <진구야> : 그냥 구단 홍보용인거지 뭔 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청대 시절의 임팩트가 컸다.

고작 2부 리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조차 그의 입단을 보도했을 정도다.

[잊힌 유망주, 마인구! K리그2 한강 FC에 몸담다...!]

[손흥빈보다 한 발 먼저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던 마인구...! 10년 만에 축구선수로 등장해...!]

한때 동규 역시 저 마인구를 우러러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와는 고작 3살 차이였지만 간간이 대회에서 멀리서나마 마주했을 때 보여준 모습은 롤모델로 삼기에 충분했으니까.

‘압도적 1등으로 달리는 선수 뒤에서 뛰는 2등처럼 말이야.’

물론 나이차 때문에 직접 붙어본 적은 없었다.

롤모델의 등장에 새삼 감회가 새로울 만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10년 전 한정.

동규는 이제 싸리비를 지팡이 삼아 삐딱하게 서서는 중얼거렸다.

“곧장 선수단에 합류할 줄 알았는데 한 달 만에 나타나셨네?”

동규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찡그린 얼굴은 좀처럼 펴질 기세가 없었다.

하필, 그 포지션이 저 마인구와 겹쳤으니까.

즉, 경쟁자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기분이 나쁜 건...,

“일반인 새끼가.”

*       *       *

오후.

오전엔 먹구름이 꼈다면 오후엔 햇살이 훈련장 곳곳을 비췄다.

차막 위에 쌓였던 눈마저 금세 녹아  뚝, 뚝, 뚝,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구는 점심 식사 후 다시 훈련장에 터덜터덜 발을 들였다.

‘선수단 밥이 맛있다니까.’

아직 신체 개조 단계인지라 식사량이 크게 줄어 아쉬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거의 상당수 선수들은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얼굴 뚫리겠다, 이 새끼들아.’

얼마 걷지 않아 인구는 헛바람을 삼켰다.

밥 먹을 때부터 몇몇 선수들이 자신을 노골적으로 노려보더니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어 그들은 자기들끼리 속닥속닥거린다.

물론 인구는 가만히 있는 가마니 같은 성격이 아니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으, 응? 네, 네?”

갑자기 홱! 방향을 돌려 다가와 묻자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어린 선수가 흠칫거렸다.

인구는 뻔뻔하게 허리를 세우며 말했다.

“아니. 계속 쳐다보길래.”

“제, 제가요? 아, 아닌데요?”

“난 또 게이인가 했네. 난 그런 취향은 아니라서. 직접 말해주려 했지. 가슴 아픈 사랑 하지 말라고.”

풉, 푸훕!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는 게 들렸다.

어린 선수의 얼굴은 대번에 붉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마인구.”

“?”

인구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슬쩍 고개만 기울였다.

183, 4cm로 보이는 단단한 체격에, 남자답게 생긴 녀석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마인구, 라고 불러도 되지?”

인구는 그새 두 걸음 거리에서 멈춰선 녀석을 위아래로 심드렁하니 훑었다.

‘이놈 이거.’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나 시비걸러 왔소, 였다.

‘이름이, 염동규였던가.’

한 달 내내 개별 훈련을 진행했지만 선수단에 누가 있고 어떤 사람이 대가리인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마케팅 담당관 강이나가 간간이 찾아와 이것저것 알려주었으니까.

그리고 이놈은, 대가리다.

“반말하면 좀..., 그런가?”

녀석이 살짝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웃음 띤 얼굴로 반문했다.

인구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괜찮아. 해. 동료끼리 뭐.”

“동료오?”

“왜, 동료는 좀 거북한가.”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동규가 끝말을 늘어뜨렸다. 혀를 낼름거리며 웃는 게,

‘동료는 아니다?’

인구는 입가를 미세하게 씰룩였다.

어느덧 주변의 분위기는 일변했다.

‘오후 날씨 한 번 좋았는데.’

주위로는 선수들이 구경하듯 모였다. 그들은 오직 자신과 이녀석의 대치만을 보며 숨죽였다.

“근데, 참~ 대단해.”

살얼음이 뚝 뚝 묻어나는 분위기와 달리 동규는 웃음 띤 미소 그대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일반인이 k리그2에 입단할 수 있는 거지? 이래서 사람들이 k리그2를 얕보나 싶기도 하고...”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인구는 화가 치밀기보다는 도리어 거리낌없는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인맥 덕이지. 박동일 감독이랑 나, 10년도 더 된 인연이거든. 사우나도 가고 뭐 그냥 막 다했지.”

“...뭐?”

“귀가 막혔나? 인맥이라고. 근데 그 인맥이 지금 당장은 욕을 먹는 인맥이긴 한데. 조만간 건실한 인맥으로 정정될 예정이야.”

“건실한 인맥...?”

“실력이 받쳐주면 그 인맥이라는 유대란 게 마냥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 참, 모진 풍파가 날 나름 유도리있게 바꿔놨어?”

“허, 참.”

동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선수들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렸다. 한편으로 동규는 당혹스러웠다. 상대가 직접 치부를 이렇게 뻔뻔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슬쩍, 저 멀리서부터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감독을 보곤 다시 동규를 향해 본론을 꺼냈다.

“너 나 마음에 안 들지?”

“...원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까 좀 별로네. 재수가..., 없어.”

“난 너 줫나게 마음에 안 들어. 생긴 면상부터가 한 대도 아니라 한 열대는 줘패고 싶게 생겨서 말이야.”

"..."

일순 동규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그로선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터는 놈은 처음이었다.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뭔 눈빛이 이리 사나운 건지...!'

웃고 있지만 잘못 건드리면 진짜 손해볼 느낌이 다 들었다.

반면 인구는 콧잔등을 찡긋하더니 훈련장 쪽을 턱짓하며 씨익, 하얀 이를 드러냈다.

“어린 꼬맹이들은 주먹다짐으로. 격투 선수는 글러브 끼고 격투로. 축구선수는 축구로. 어때?”

예상치 못한 제안에 동규는 구겨지려는 표정을 애써 풀며 비아냥거렸다.

“자신은, 있고?”

“자신은 무슨. 선택지가 딱 그거밖에 없어 보이는데. 내가 또 소외시키는 분위기는 못 참는 성격이걸랑.  어후! 답답해서 숨이 턱 막혀. 그리고 이 축구판이란 게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종목이잖아? 그러니까,”

말끝을 늘어뜨린 인구의 두 눈이 순간 맹금류처럼 번뜩였다.

“이 형아한테 턱 돌아가기 전에 한 게임 뛰자.”

*       *       *

박동일은 오후 훈련을 앞두고 코치들과 상의 후 훈련장으로 향하려다가 말고 우뚝, 걸음을 멈췄다.

“쟤들 뭐해?”

옆에서 나란히 거닐던 수석코치, 동룡은 의아한 물음을 던졌다.

그 말처럼 훈련장에 위치한 선수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기들이 알아서 조끼를 꺼내 입더니, 옆에 치워둔 골대까지 밀어서 배치한 것이다.

동일은 잠자코 지켜보다 말고 픽하니 웃음을 흘렸다.

“잠깐 마실 좀 나갔다 오자. 커피 한 잔씩 해도 좋고.”

“괘, 괜찮을까요?”

동룡이 조금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일은 아예 등을 지며 툭 내뱉었다.

“원래 고래 싸움에 새우등 좀 터져야 질서정연해지는 법이야.”

< 015. 아빠의 도전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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