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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8. 아빠의 클라스 (2)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18화 아빠의 클라스 (2)
초대형마트, 메인 이벤트의 총 책임자 장길수는 숨을 토해냈다.
“후우!”
그는 비장한 얼굴로 마트 유니폼의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곤 넥마이크를 조종했다.
스윽.
흘러내린 앞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넘긴 후엔 주변을 훑었다.
점심시간.
꽤 많은 인파가 마트 내부를 거닐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상당수는 멀찍이서 보호구를 착용한 채 자신의 동태를 슬쩍, 슬쩍 살피기 바빴다.
저 보호구는 곧 시작될 이벤트를 위해 대형마트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은 오직 장길수의 역할.
“후흣.”
장길수는 옅은 웃음을 흘리며 단상 위에 천천히 올라섰다.
이윽고, 그는 벌렁대는 콧구멍과 벌어진 잇새로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가 말고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떡잎 대형마트에 오신 고객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신 12시이이~ 지금부터 깜짝 할인 이벤트를 개최합니다아!”
넥마이크에서 들려온 외침과 동시에 저 멀리 대기하고 있던 남녀들이 언제든 뛰어나가고자 무릎을 웅크렸다.
한 부부는 결연에 찬 얼굴로 두 눈을 맞추며 말했다.
“여보, 할 수 있지?”
“어. 난 좌측. 여보는 우측!”
“살아서 보자...!”
“우리 가정의 화목을 위해!”
장길수는 실시간으로 집중되는 시선에 어떤 때보다 열성적으로 두 손을, 온몸을 써가며 외쳤다.
“이 시국에 한우가 60% 할이인! 말이 됩니까아! 이게? 예에? 멜론, 수박도 3천 원 할이인! 킹크랩, 계란도 특가행사아! 단 10분! 오직 이 메인 코너에서만 판매를 개시합니다아!”
장길수는 한 손을 휙 휘둘러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커다란 가림막 파티션으로 가렸던 메인 코너가 버젓이 위용을 드러났다.
기어이 고삐를 당겼다.
“어머님들! 아버님들! 빨리빨리 움직이셔야 할거에요~! 눈 한 번 끔뻑이는 사이에 사라지는 품목들이니까요오!”
우다다다다!
그 순간부터였다.
으어어어어어!
우오오오오오오오!
우렁찬 기합과 함께 두 팔, 두 다리 걷어붙인 주부들이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1분이라는 시간이 감쪽같이 흘렀다.
꽤 많은 양을 준비했지만 금세 하나 둘씩 솔드아웃되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후훗.”
해당 이벤트를 약 1년 전 처음 계획 하여 실행에 옮긴 장길수는 뿌듯한 미소를 흘렸다.
대부분 코너는 줄을 서야 했으나 저곳 메인 코너만은 달랐다.
“와~ 마치..., 서바이벌 게임 같네요. 역시 게임 제작자 출신...!”
떡잎 마트 점원 중 한 명이 다가와 엄지를 치켜세웠다.
길수는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어헛, 뭐. 획기적일 것까지야 있나요.”
획기적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라고 점원은 입을 벙긋거렸다.
저 메인 코너는 이벤트 기간에만 노출되는 코너였다.
코너의 단상 위엔 할인 품목들이 즐비했다.
해당 품목은 초 단위로 빠르게 줄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길수는 거들먹거렸다.
“아주 조금, 조금 신경을 쓰긴 했죠? 아무래도 먼저 잡으면 임자이다 보니까. 자칫 어디 부딪치고 그러다 크게 다칠 수도 있잖아요? 고로 우리 고객님의 안전에도 신경을 썼답니다.”
그래서 길수는 해당 진열대에 부딪혀도 고통이 훨씬 덜한 스펀지를 씌웠다. 그 구간의 바닥은 엎어져도 덜 아픈 인조 잔디로 리모델링.
참가 인원들에겐 헤드기어를 비롯한 보호구까지 제공해줬고 말이다.
그 정도는, 와이프가 이 떡잎마트 사장이었기에 가능했다.
‘내 장사 수완에 대해 믿음도 있었고 말이야. 후흣.’
실제로 매출도 급상승했다.
그때, 점원이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뒤늦게 온 사람들은 못 건지겠네요.”
“그렇겠죠. 저 사람들로 이루어진 벽은..., 도저히 맨몸으로는 지나갈 수 없는 바다와 같으니까요.”
길수는 문득 감명에 겨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거야말로 진정한 이벤트의 묘미였다. 더 나아가 한때 게임 제작자였던 그 입장에선 보고 싶었다.
“저 묵직한 바다를 뚫고 들어가는 용사를...!”
“예...?”
느닷없는 혼잣말에 점원이 두 눈을 끔벅이며 반문했다.
길수는 입매를 축 일자로 늘어뜨렸다. 그새 본인의 세계에 빠졌다.
“사실, 1년 전에 저 바다라는 구렁을 뚫어낸 자가 있습니다.”
“저, 저 길을요? 아예 사람들로 꽉 막혀서 진열대 가까이 들어갔던 사람도 못 나올 것 같은데요?”
“예. 그렇죠? 제가 봐도 그래요. 하지만..., 있습니다, 있어요. 제 마음을 울린...,”
길수의 두 눈에 일순 묘한 설렘과 함께 그리움이 일렁였다.
게임제작자였던 길수의 낙은 바로 자신의 플롯을 깨버리는 유저였다.
직장 동료들은 대개 어려울 거라 여겼던 플롯을 쉽게 깨버리는 자가 나타나면 짜증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길수는 달랐다.
‘설레...! 감동이야!’
도리어 감사하고도 뿌듯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따로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만큼...!'
그리고 약 1년 전,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홍해의 기적을 연출한 자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 사람은..., 21세기의 모세 같았습니다.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죠.”
이 이벤트의 진정한 맛을 알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길수는 황홀하니 덧붙였다.
“그는 누구보다 강인했으며, 차분했고, 빛나 보였어요. 먼 옛날 신화 속의 인물도 그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채 길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억?”
길수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메인 코너를 향해 육중한 무언가가 돌진하고 있었다.
쿠웅, 퍼억, 퍼어억!
남자는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양 어깨로만 먼저 부딪쳐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퉁겨냈다.
퍼억, 퍼억, 쿠웅!
“으헉!”
“아, 아니 이 사람이...!”
“어머머!”
한 사람이 튕겨 나가자 지근에 있던 수어 명의 사람도 한 번에 밀려났다.
“아니 이게 뭔...!”
쿵!
“으, 으아악!”
퍼억!
“자, 잠깐만요! 으헉!”
여기저기서 당혹스러운 음성과 비명이 속출했다.
장길수는 입을 떡 벌린 채 검지 끝으로 콕 찍어 외쳤다.
“모, 모세가 강림했다!”
* * *
염동규와의 한판 싸움이 끝나고 초저녁. 인구는 하원 후 잠에 빠진 세나 몰래 빠져나와 장을 보던 중이었다.
“후후후. 흐허헝~”
그 입에선 기분 좋은 흥얼거림이 나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형마트에 갔다가 운 좋게 이벤트 타임에 걸려 한우와 기타 상품들을 싹슬이 해왔으니까.
바구니에 든 한우 팩들을 본 인구는 빙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년에도 이 이벤트 했던 것 같던데. 거긴 돈도 많아?”
딸이 생긴 이후 모든 음식에 민감한 그였다.
하지만 이 한우만큼은 인정했다.
인구는 한 팩을 집어 보이며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색깔이 선홍색인 게 딱 최상급이야. 사육 기간이 34개월 됐다고도 했고, 이 지방층의 위치와 형태 하며, 핏기까지...! 크으~ 완벽한 조화라고.”
세나가 함께 하기 전이었다면 그냥 아무거나 처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남는 건 내 단백질원으로 삼고...!"
문득 인구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나저나..., 아까 그 미친놈은 뭐지?”
미친놈은 멀찍이서 모세라고 외치더니 진열대를 향해 다가오려 안간힘을 썼다.
파도와 같은 인산인해에 한 걸음 다가가면 세 걸음 밀려나며 무산됐지만.
반면에 인구는 싹쓸이 후 그대로 반댓길을 뚫고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순간 그 미친놈은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다.
모세여어어어어어~! 라고.
처절하게까지 느껴졌던 울부짖음에 인구는 쓰읍, 입맛을 다셨다.
“고기 한 팩 던져줄 걸 그랬나.”
한편으로는 이전보다 발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밸런스가 점점 더 제대로 잡히는 것 같네.”
조금 전 부대끼던 사람들의 압박에도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고 제대로 힘을 실어 어깨 피딩을 가했다.
‘작년보다 참여 인원이 더 많았어.’
그래서인지 한 걸음, 두 걸음 딛는 내내 파도가 철렁이는 감각이었지만 인구는 끝끝내 버텨냈다.
“후흣.”
뿌듯했다.
살도 10kg 이상이 빠지면서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더욱이 오늘은 세나에게 자랑할 거리가 두 개나 늘었다.
“우리 세나 자는 동안에 아까 경기 멋지게 편집해서 보여줘야지.”
고기도 맛 좋게 잘 구워 저녁상을 차릴 참이었다.
히죽- 딸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니 입꼬리는 절로 씰룩였다.
허나 인구는 얼마가지 않아 입꼬리를 늘어뜨렸다. 전날 전처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축구선수 됐다며?]
[어? 으응. 맞아. 축구선수... 하기로 했지.]
[잘 됐다. 난 오빠가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축구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세나가 좋아했겠다?]
[뭐, 그렇지?]
끝에서 그녀는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1년 후면 세나를 데려가겠다고 말이다. 또 정말 고맙다고도 전하였다.
“....”
머지않아 찾아올 이별에 인구는 살포시 미간을 구깃거렸다.
“염병.”
언제는 2년만 딱 채우고 딸을 훌훌 떠나보내려했는데...,
막상 그날을 생각하니 울적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축구선수가 된 것도 결국 딸의 영향이 컸다.
그 아이가 원하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구에게 있어 지금의 원동력은 오직 세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세나가 제 품에서 사라진다? 지금의 원동력도 한순간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인구는 쓴 것을 먹은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의욕이, 영 안 생길 것 같다고.”
그러다 문득, 일전에 세나가 한 말이 엄습했다.
[아빠아! 손흥빈처럼 되는 고야아?]
피식.
인구는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그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내 나이 28살이다.”
* * *
3월 6일.
k리그2의 개막식을 알렸다.
한강 FC의 첫 상대는 같은 구장을 사용 중인 라이벌, 목동 FC.
상당수 한강 FC 서포터즈들은 별 기대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 <암동규> : 일단 첫판은 가벼이 져주고 시작하고~
- <크로스충> : 공수에서 핵심 두 명 빠졌다. 거기에 몇몇 더 추가로 영입했지만 죄다 21세 어린 선수들...
- <나는행복합니다> : 전시즌 꼴등이었는데. 그때에 비해 나아진 게 없음. 오히려 선수 이탈로 퇴보. 고로 이번 시즌도 꼴등 예상!
- <돼인구> : 이 새키들..., 3부 리그로 강등 제도가 만들어져야 투자라는 걸 좀 할 텐데... 후!
야구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한강 FC는 이글스와 같은 입지였다.
아니, 더했다. 이글스야 그래도 관중이 많은 편인 반면에 한강FC의 오늘 자 입장 관중수는 고작 1000명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화창한 오후.
“와, 많이 왔네. 많이 왔어~”
VIP석에 자리한 강경민 구단주는 다리를 교차하고 앉은 채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옆에 자리한 마케팅 담당관, 강이나는 두 눈을 끔뻑였다.
속으론 생각했다.
‘그러게요?’
한강 FC의 평균 관중은 K리그2 전체 평균 관중에도 못 미치는 400명 안팎의 수준이었다.
고로, 그 두 배 이상인 관중수는 확실히 개막전 버프가 꼈다 해도 많았다.
그리고 이나는 이 모든 게 마인구 덕이라는 걸 잘 알았다.
너튜브 채널을 적극 활용해 인구의 과거 청대시절의 향수를 이끌어 냈드니까.
‘언론에서도 취재에 임할 정도이기도 했구.’
확실히 10년 전의 파급력이 압도적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 보니 팬들로선 궁금해서라도 이 구장을 찾았다.
지금도 지근에 자리한 몇몇 팬들은 고개를 두리번두리번하며 중얼거렸다.
“저기 있네, 마인구!”
“청대 시절엔 진짜..., 와! 말도 안 나오게 잘했는데. 지금은..., 쓰읍. 궁금하긴 하네.”
팬들의 관심 덕인지, 지금 인구는 선발은 아니나 벤치에 자리해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굳었다.
일부는 또 인구를 향해 부정적인 언사를 내뱉고 있었으니까.
“마인구우우! 이 돼지야아아아!”
“그게 살 뺀 거냐아아! 어어?”
마케팅 담당관으로서 본 마인구는 팬들에게 있어서도 갑자기 굴러온 돌이었다. 17세 이후론 축구와 관련된 서사가 일절 없는!
이는 긍정은 고사하고 부정에 시기, 혼란함을 불러올만 했다.
‘당장은... 정이 갈 리가 없어.’
의구심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졌다.
마인구는 세미프로, 하다못해 17세 이후론 아마추어 리그 경력도 없는 일반인 출신이 아니던가.
지금도 구단에 불만을 품은 팬들은 일부러 목청을 높여 비아냥거렸다.
“한강 FC에서 뛰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구단주한테 말하면 되나?”
“뭐 가입신청서 같은 거만 제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쟤도 벤치에 앉아있는데 아마추어 리그 경력만 5년인 나라고 못 뛸까!”
“얀마. 마인구우! 너 구단주 비디오 테이프가지고 있지? 응? 맞지?!”
극소수의 몇몇은 쌍욕을 섞기까지.
관중수가 그리 많지 않기에 그들의 비아냥은 벤치 쪽에 앉아있는 마인구에게도 충분히 들릴만 했다.
강이나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난 날 귀여운 딸과 함께 어울리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나 마음이 더 아팠으니까.
‘참고 있는 건가요...’
갖은 야유와 모진 비난에도 불구, 그의 묵묵하기 그지없는 커다란 등과 어깨는 '아빠' 라는 등대 같았다.
부녀의 대화는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아빠아! 골 넣을 거야아?]
[당연하지? 골 넣고 우리 세나를 위한 세레모니를 할거야.]
[진짜아아?]
[고러엄!]
[와아! 기대대!]
문득, 이나는 자신을 비롯해 수십 년간 다섯 식구를 책임지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랐다.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흡!"
이나는 그만 가느다란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곤 고개를 홱 돌렸다. 옆에 있던 구단주 강경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강 팀장. 왜 그래요?”
“아, 아닙니다. 눈에 뭐가 들어가서요!”
속으론 생각했다.
‘아빠는 위대해...!’
곧 그녀는 입과 코를 막고 있던 한 손을 슬쩍 때 꽈악 말아쥐었다.
‘파이팅입니다...!’
그렇게 그녀가 혼자 착각에 빠진 사이, 벤치에 자리한 인구는 돌연 뒤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거참. 졸라 시끄럽네. 주둥이 좀 닫아라.’
이나를 비롯한 중계카메라는 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반면에 몇몇 아저씨 팬들은 광분하여 웃통까지 홀라당 벗었다.
< 018. 아빠의 클라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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