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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19화 (1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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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9. 아빠의 클라스 (3)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19화 아빠의 클라스 (3)

목동 fc 감독, 김철민은 벤치에 털썩 앉았다.

팔짱을 낀 그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이야~ 첫 단추부터 쉽다, 쉬워~”

“맞습니다, 감독님. 첫 라운드 상대가 한강 fc니까요, 헤헷.”

수석코치 송동구가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김철민은 슬쩍 가늘게 뜬 눈으로 중계 카메라를 의식했다.

“일어나. 누구 한 명 정도는 일어나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둘 다 앉아있으면 욕먹어.”

“아, 넵.”

“저기 저 담요 좀 하나만 가져오고. 춥다, 추워!”

“그것도 욕 먹을...,”

“어허!”

“넵,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한강 fc와 목동 fc의 최근 5경기 전적은 일방적인 수준이었다.

5전 전승.

목동 fc의 압도적 우위였던 거다.

그것도 경기당 2골 이상 차의 대승.

가벼운 인상의 김철민은 이 모든 게 자신의 역량 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번 시즌 한강 FC의 전력은 더 약해졌지.”

“맞습니다. 주축 자원 빠졌는데도 로테이션급 선수만 영입했잖아요.”

철민은 담요를 무릎에 덮으며 연극톤으로 중얼거렸다.

“이보게, 코치님.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을까? 저 한강을 상대로 테크니컬 에어리어까지 수고스럽게 가서 선수들을 향해 실시간 지령을 내릴 필요가 있냔 말이야.”

“그럴 리가요! 선수들은 알아서 잘 할 겁니다. 상대가 한강 fc가 아니라고 해도 감독님의 전술 안에서 움직이는 저들은 일당백이니까요!”

이에 맞춰 수석코치 또한 가슴에 손을 얹으며 연극톤으로 받아쳤다.

“그..., 가슴에 손은 내려. 안 어울려.”

“아, 넵!”

물론 팬들의 판단은 달랐다.

단순 목동 fc의 선수단 댑스만 놓고 본다면 k리그2 최강 수준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만년 중위권 성적이라는 건 문제가 있었다.

이에 반해 한강 fc의 선수단 댑스는 k리그3 수준이라는 게 상당수의 평가였다.

그러다 말고 철민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옆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보았다.

험상궂은 인상의 대학 동기, 박동일이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쏙 넣은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뒤쪽 벤치엔 펜스 가까이 자리한 팬들에게 다발로 욕을 얻어먹고 있는 한 선수가 있었다.

‘마인구...!’

10년 전, 김철민이 고등부 감독 시절에 스카우트하고자 했던 선수가 지금 저기에 앉아있었다.

곧 그 눈엔 분노가 일렁였다.

당시 녀석은 자신의 제안을 대차게도 아닌, 그냥 씹었다.

으득!

지난 날의 기억에 이가 갈렸지만 금세 철민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아니 이제는 저 녀석을 보니 시시한 감정이 일었다.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사람 앞길은 참 모르는 거라니까. 쟤가 저렇게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어?”

*       *       *

한강 FC는 4-3-3 플랜을 가동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엔 염동규(25세).

좌우 윙어엔 한돌(25세), 유연석(27세).

중원은 황해수(25세), 석현기(23세), 이준완(22세).

포백은 김석형(22세), 김벽(23세), 송벽(25세), 함재환(22세).

골키퍼 장갑은 채새벽(31세).

경기 초반부터 목동FC는 매서운 공세를 펼쳤다.

4-4-2 전통적인 포메이션에서 목동 FC의 가장 강력한 포지션은 좌우 백들이었다.

툭, 탓!

[목동 fc의 박돌이! 빠르게 치고 올라갑니다!]

라이트백 박돌이는 K리그2 한정, 제2의 차둘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저돌적이며 빠른 발을 지녔다.

공을 차고 올라가는 그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

[한강 FC 레프트백의 스탠딩 태크을!]

투욱!

“앗!”

동글동글한 인상의 한강 FC 레프트백 김석형은 발을 뻗기도 전에 박돌이 공을 먼저 길게 때리자 당황했다.

슈욱!

급히 발을 거둬들이고 압박을 가하려 했으나 늦었다.

박돌이 자신이 버벅거린 사이에 배후를 파고든 것이다.

타앙!

[박돌이의 크로스으으!]

한강 FC의 우측 디펜시브 라인이 텅 비자 박돌이는 가차 없이 정교한 크로스를 올렸다.

다다다다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한강의 센터백 앞, 우측 포스트 방향으로 스트라이커 하나가 질러 들어간 것도 그때였다.

머리부터 들이밀며.

타앙!

철렁!

[고오오오오올! 박후우우우운!]

[낮은 크로스를 센터백이 걷어내기도 전! 에어리어 바깥에서 대각 방향으로 질러 들어가 다이빙 헤더로 결정 짓습니다아아!]

[전반전 5분 만에 이른 선취골을 기록하는 목동 FC!]

*       *       *

떡잎 어린이집으로 이번 2월, 새롭게 입사한 유아 교사, 채송아는 조금은 안쓰러운 얼굴로 한 아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원래라면 4시 전에 하원을 해야 했을 아이가 홀로 남아 있었으니까.

며칠 뒤 현장학습을 위해 피치 못해 야근 중인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아빠가 축구선수랬지?’

축구에 문외한인 채송아는 부탁을 받았다.

저 어여쁜 꼬마 아이, 세나의 아버지에게.

[경기만 뛰고 바로 오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구장에 데려가고 싶은데...,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요. 거긴 실내 관중석도 마련되어있지가 않아서...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 잘 좀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이거...,]

“....”

채송아는 손에 든 고이 접힌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세나의 아버님이 써준 것이었다.

“편지까지야...”

두 뺨에 홍조가 피었다.

참 다정한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일은 마무리 지었기에 송아는 뒤늦게나마 편지를 펼쳤다.

동시에 오래전 보았던 엽기적인 그대의 BGM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우리 아이는요.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참 여린 아이에요.

우리 아이는요. 벌레를 좋아해요. 해충 말고 익충이 발견되면 아이 앞에 가져다주세요. 가지고 놀 겁니다.

가끔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그땐 내버려 두세요. 아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니까요.

예쁘다, 귀엽다 라는 말을 무지 좋아해요. 표정에서 행복해하는 게 드러난답니다?

유산균 음료는 하루에 하나만 주세요. 그 이상은 배가 아야 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는요....,]

“...”

툭!

고이 편 편지를 고이 접었다.

읽지 않은 항목만 20개가 더 됐다.

‘너무 과하잖아!’

겨우 몇 시간 봐주는 데 이렇게 세세히 적어줄 줄이야.

그러다 말고 두 눈이 불편하게 꿈틀거렸다.

세나의 옆,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뽀글뽀글한 머리의 남자 원장이 보였다.

‘원장실 안에도 tv 있으면서!’

원장 유선해는 축구광이었다.

지금도 그는 TV로는 방영되지 않는 축구 경기 하나를 휴대폰을 연결해 시청 중이었다.

“오오옷! 오호호홋!”

그 입에선 중간중간 감탄에 겨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고향이 목동이랬지...!’

그렇듯 화면 좌측 상단엔 목동 FC의 팀명이 적혀 있었다.

“후우!”

채송아는 짧게 숨을 토해냈다.

아이가 있으니 아이가 좋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틀어주면 참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저벅! 당찬 걸음을 옮겼다.

표정에선 비장함이 드러났다.

‘내 책무를 다하겠어!’

허나 그 걸음은 몇 걸음이 최대였다.

“코이뜨으으!”

‘코, 코이뜨으으?’

대뜸 세나가 특정 장면에서 두 눈에 힘을 팍 주어 두 팔 벌려 외쳤다.

목동 FC라는 팀이 매서운 공세로 밀어붙일 때마다 간간이 벤치 쪽을 비춘 거다.

그리고 채송아는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세나..., 아버님?’

특유의 성난 인상을 지녔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코이뚜우우우우!”

아이는 아빠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우렁차게 외쳤고 말이다.

옆에 자리한 유선해 원장은 그런 세나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우리 세나 어린이. 아빠가 설령 나온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그렇지 않아여!”

“목동 FC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랍니다?”

“아빠도 만만하지가 않아아! 아빠가 그랬어여! 목동의 목을 꽥! 하고 오겠다고!”

“어헛 그런 험악한 말을...! 그럼 제안 하나 할까요?”

“제아안?”

세나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유선해는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세나 어린이 아빠가 나와서 지금 이 상황을 뒤집는다면..., 저기 저 미끄럼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세나 어린이. 예전부터 탐내던 거였죠?”

“우오옷...!”

세나의 두 눈이 반짝 반짝 빛났다.

순간 또 다시 화면에 아빠가 잡히자 아이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동작과 표정은 조금 전보다 훨씬 강렬해졌다.

“코이뚜우우우~~!”

유선해도 만만치 않았다.

“목동이여! 영원하라아! 필사즉생 필생즉사아아!”

“...”

채송아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       *       *

전반전은 1 : 0으로 어찌저찌 끝났다.

허나 스코어를 떠나 경기력 자체는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해설진은 후반전 시작 직전 간략한 평가를 내렸다.

[전반전만 본다면..., 목동 FC는 운이 없었고, 한강 FC는 천운이 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는데요?]

[맞습니다. 스코어만 1 : 0이지. 점유율도 67% VS 33%로 목동 FC가 압도적 우위를 가져갔으니까요.]

[그뿐인가요? 슈팅 숫자도 엄청난 차이입니다. 16개 VS 겨우 2개.]

[아아, 패스 횟수도 두 배 차이네요. 전반전 한강 FC는 경기 내내 반코트 당하다시피 했어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박동일은 두 장의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왼쪽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윙어 한돌을 빼고 강민기를 투입시킵니다!]

[중원에서도 교체가 실시되네요! 황해수가 아웃되고 이번 시즌에 새로 영입된 나상규가 데뷔전을 갔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선수를 투입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한강 FC는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전의 천운마저 저 멀리 날아간 모양세였다.

타앙!

철렁!

[고오오오오오오오올! 박후우우운!]

[아크 바깥에서 때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골망을 물결칩니다아아!]

[스코어 2 : 0! 한강 FC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린 원더 골이 터졌어요오오!]

“씨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염동규의 입에선 이제 간간이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볼이 안와...!’

가장 큰 문제였다.

직전 시즌엔 한돌과의 좋은 호흡으로 그래도 공격의 2옵션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시작부터 꼬였다.

자신이 에어리어로 파고들게끔 옆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줬던 핵심 스트라이커가 이적하며 압박이 온전히 몰빵됐으니.

한돌도 압박에 고전하다 턴 오버만 남발하며 교체아웃 당했다.

‘이러다간 나도...’

힐끗 벤치 쪽을 보았다.

어느덧 마인구와 몇몇 선수들이 감독의 부름을 받고 나와 터치라인 바깥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한강 FC 서포터즈는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하나, 둘씩 구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암동규 이 멀대새뀌이이!”

“전봇대냐! 전봇대야? 내가 뛰어도 너보단 잘하겠다!”

출구를 향해 빠져나가는 와중에 몇몇 팬은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이상할 정도로 자신보단 아직 출전도 하지 않은 인구를 향한 야유와 비아냥은 끊이지 않았고 말이다.

“마인구 이 새끼야! 다시 한번 시비 걸어봐! 어?”

“이 또라이 새끼! 이리와! 이리 오라고! 강냉이를 털어줄라니까!”

팀이 처참한 경기력을 보이니 팬들의 극성적인 반응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후반전 20분이 흐른 시점. 해설진은 말했다.

[한강 FC는 또 다른 시도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지금 벤치엔 논란의 선수인 마인구가 자리해있습니다.]

그 말처럼 논란 그 자체인 선수였다.

기량에 의문이 한가득한 선수가 아니던가.

일부 팬들도 외치고 있었다.

“마인구를 투입해봐아!”

“마인구라도 내보내! 어차피 졌잖아!”

이는 기대 심리보다는 반쯤 포기해서, 또 인구의 기량이 궁금은 하니까 나오는 말에 가까웠다.

후반전 23분.

박동일은 결정을 내렸다.

삐이이이!

[주심이 대기심 쪽을 가리킵니다!]

[아! 드디어 마인구 선수가 투입되네요!]

< 019. 아빠의 클라스 (3)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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