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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 아빠의 클라스 (7)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23화 아빠의 클라스 (7)
현재 k리그2의 순위는 이랬다.
1위 <홍대 프로축구단> 1승 0무 0패 승점 3점.
2위 <부산 워터파크> 1승 0무 0패 승점 3점.
3위 <시흥 프로축구단> 1승 0무 0패 승점 3점.
4위 <판교 FC> 1승 0무 0패 승점 3점.
5위 <목동 FC> 0승 1무 0패 승점 1점.
6위 <한강 FC> 0승 1무 0패 승점 1점.
7위 <안양 시티즌> 0승 0무 1패 승점 0점.
8위 <수원 시티즌> 0승 0무 1패 승점 0점.
9위 <합천 프로축구단> 0승 0무 1패 승점 0점,
10위 <가산 FC> 0승 0무 1패 승점 0점.
늦은 저녁.
사무실에 혼자 남아 남은 일처리에 한창이던 강이나 마케팅 담당관의 입가엔 미끈한 미소가 걸렸다.
“이게 얼마만인지...”
사무실 내 불빛이라곤 컴퓨터 모니터 하나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전부.
강이나의 큰 눈 역시 눈꼬리가 휘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게 K리그2 입성 처음으로 한강 FC가 개막전에서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한강 FC는 매 시즌 개막전마다 패했다.
“이젠 전통이 된 수준이었는데.”
마케팅 담당관이기 이전에 오랜 한강 FC의 팬인 만큼 강이나는 요 며칠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대부분 언론에서도 전반기 우리를 꼴지로 낙점한 상태였고...”
자존심이 상했으나 딱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늘 부진한 성적이 이를 증명해주었으니까.
하지만 올 시즌의 첫 단추는 모두의 예상을 깨버렸다.
‘마인구 선수...’
강이나는 비록 마케팅 담당관일지라도 축구를 제법 볼 줄 알았다.
축구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국내 축구뿐만 아니라 해외 축구까지 접해왔으니까.
“굉장했어.”
후반전 23분에 투입되어 마인구는 딱 두 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허나 그 딱 두 번 보여준 플레이는 이나에게 강렬한 떨림을 선사했다.
“어시스트에 득점...!”
상대를 단숨에 궤멸시켜버리는 공격포인트였다.
이나는 마인구의 플레이를 보며 파도를 연상했다.
잔잔한 바다처럼 있다가 한순간 모든 걸 휩쓸어버리듯 몰아치는.
순간, 강이나의 두 뺨은 붉게 달아올랐다.
스윽.
이나는 가느다랗고 새하얀 손으로 뜨거워지기까지 한 한쪽 볼을 감쌌다.
콩닥!
‘왜, 왜 이래...?’
이상하게 심장은 전보다 날뛰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선수를 향한 동경쯤으로 받아들였다.
* * *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화창한 오전, 떡잎 어린이집.
원장 유선해가 손에 든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자자! 우리 떡잎 어린이집 어린이 여러분! 그리고 학부모님들! 고대하고 고대하던...! 닭싸움의 시간이 왔습니다아!”
와아아아아아!
아이들이 저마다 함성을 내질렀다.
참여한 엄마들 아빠들은 아이 뒤에서 가볍게 손뼉을 쳤다.
반면 인구는 불끈 쥔 팔을 들어 보이며 기합을 내질렀다.
“으어어어어!”
근처에 있던 부모들은 즉시 이상한 사람임을 감지하고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난 왜 온 건데?”
인구의 옆에 있던 홍석구도 살짝 거리를 벌리며 불평했다.
인구는 열망이 가득한 눈길로 입을 열었다.
“네가 우리 세나 대부잖냐.”
떡잎 어린이집 원장, 유선해의 말처럼 오늘은 부모들이 참여하는 게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목적은 놀이를 통해 아이와의 화목한 시간을 가지는 것.
부모끼리의 친목 시간도 포함이었다.
“어머, 달수 아버님이시죠?”
“아, 네네! 민정이 어머님...? 맞죠?”
“맞아요!”
“아 반갑습니다. 우리 이웃이던데. 하핫.”
“그러게요. 자주 인사 좀 해요~!”
몇몇 부모들은 서로서로 안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반면.
“후욱! 후욱! 하앗! 하앗!”
인구는 희번득하게 뜬 눈으로 제자리 뛰기에 한참이었다.
이어 거친 숨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팔굽혀펴기를 연달아 한다.
“아빠아. 왜 이러케 열시미해?”
그때, 인구의 얼굴 앞으로 세나가 웅크리고 앉아 물었다.
인구는 그새 20개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세나야. 이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야.”
“단순한 놀이가 아니야?”
세나가 큰 눈을 끔뻑였다. 인구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누가 최고인지를 가리는 게임, 아니 대회니까. 그리고 아빠는 우리 세나를 위해서라도 질 수가 없을 것 같아.”
“왜에?”
순간 인구는 두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깔았다.
“넌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 하니까. 또, 우리 세나에게 멋진 아빠이고 싶어.”
“?”
“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딸로 만들어줄게. 아빠만 믿어!”
세나는 호응 대신 두 눈을 재차 끔뻑였다.
고개도 갸웃, 거렸다. 닭싸움과 행복의 연관성을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쪽 벽면에 밀착하다시피 한 석구는 그런 인구를 한심스럽게 바라봤다.
“이 미친놈이 어린이집에까지 와서 뭔 지랄을...,”
쪽팔려서 도저히 다가갈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닭싸움이 시작되었다.
콩, 콩!
아빠들이 단체로 매트가 깔린 무대에 올라서자 아이들과 엄마들은 열띤 응원을 펼쳤다.
“아빠아! 이겨라아!”
“아빠아!”
“으어어어어! 파이티이잉!”
“여보 잘해용!”
이 대회엔 상품이 걸려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자에겐 수건 세트를 비롯한 전복 세트!
‘국산이다!’
인구는 단상 위에 있는 상품을 보며 눈을 빛냈다.
빛깔도 좋고, 살집도 있다.
‘유선해 원장 아버지가 전복 양식장을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어!’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물론 상당수 아버지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달수 아빠! 살살해요~”
“에헤이~ 민수 아빠가 살살해야지! 덩치 좀 봐!”
하지만 몇몇은 겉으론 웃으면서도 뜨거운 승부욕을 감추고 있었다.
K리그3에서 뛰는 변성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질 수 없어!’
아들이 보고 있었다. 늘 강한 모습만 보여왔던 만큼 이 닭싸움에서 여기 자리한 모두를 무찌르고 가장 강한 아빠로 인식되고 싶었다.
허나, 유선해의 시작 휘슬과 동시에...,
퍼억!
“꾸어어억!”
철푸덕!
변성준은 강풍에 휩쓸린 것마냥 저 멀리 날아가 매트 바닥을 뒹굴었다.
“우어어어어어!”
인구가 눈 깜짝할 사이 사자처럼 달려들어 무릎을 방망이처럼 휘둘렀던 거다. 이어 그는 한 팔만 들어 포효 세레머니를 펼쳤다.
“우어어어어! 코이뚜우우우!”
석구의 옆에서 구경하던 세나는 이제야 호응해주었다.
퍼억!
퍼억!
퍼어억!
철푸덕!
순식간에 여섯 사람이 나가떨어졌다.
이 일대 공기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인구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생각했다.
눈동자는 연신 적들을 훑었다.
‘섣부른 공격은 필패의 원인이다!’
닭싸움에도 전략이란 게 있었다.
축구에 있어서도 이런 말이 있잖나.
공격을 잘하면 승리를 하지만 방어를 잘하면 우승을 한다고.
‘섣부르게 공격했다가 자칫 상대가 피하기라도 한다면..., 도리어 역관광 당할지도 몰라.’
더욱이 일부 몇몇은 이미 암묵적으로 팀을 형성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타겟은...,
‘나군...!’
아무래도 여기서 덩치가 가장 크니 가장 강한 자부터 없앨 계획인 것 같았다.
‘그런 다음에 자기들만의 리그 전쟁을 치르겠다고?’
마치 오래 전, 역사책에서 본 나당 연합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꿀꺽!
인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실내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갑자기 차게 느껴졌다.
콩, 콩!
콩, 콩!
그새 두 사람을 쓰러뜨린 직후 네 사람이 포위하듯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인구의 눈 밑은 꿈틀거렸다.
‘퇴로마저 차단당했어!’
그 순간이었다.
“아빠아!”
세나가 큰 눈에 힘을 주어 자그마한 손으로 파이팅! 하는 게 보였다.
인구의 두 눈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공격해에!”
때맞춰 네 사람이 정면, 좌우 측면, 그리고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인구를 공략했다.
“으어엇!”
인구는 매트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속으론 외쳤다.
‘고맙다, 세나야!’
순간 긴장했던 자신이 다 무색할 만큼 세나는 방금 엄청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고 회로는 더욱 명확해졌다.
닭싸움에서도 특유의 사이클이 가동된 만큼, 이미 공략 설계는 끝났다.
그렇듯 정면에서 달려든 남자와 부딪치는 그 찰나,
‘터닝...!’
치잇!
인구는 달려들듯이 점프와 함께 360도로 빙그르 몸을 돌려 피했다.
“어억?!”
툭!
비틀어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온 무게를 실어 달려들던 아빠1은 중심을 잃고 자멸해버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으어어!”
인구가 재차 눈알을 부라렸다.
치익!
디딘 한 발을 틀어선 유려하게 방향 전환! 곧 뒤쪽에서 은밀히 접근한 아빠2를 향해 무릎을 한껏 쳐들어 아래로 찍어버렸다.
퍼억!
“크헉?!”
아빠2는 앞으로 고꾸라질 듯하다 그만 한 다리를 쥔 양손을 놓아버렸다.
“미, 미친!”
아빠3과 4는 기겁했다.
번뜩!
순식간에 두 사람을 해치운 인구가 한층 돌아버린 눈으로 이쪽을 향해 몸을 홱! 돌려세웠으니까.
‘누, 눈빛이...!’
‘주, 죽일 기센데?’
그러다 말고 두 아빠들은 자식이 보고 있단 생각에 용기를 내어 동시에 달려들었다.
“으어어어!”
“우오오오오!”
콩..., 콩...!
제자리에서 뛰며 숨을 골라낸 인구는 돌연 턱을 치켜들며 외쳤다.
“드루와! 드루와봐!”
* * *
“흐헝.”
인구는 유선해가 근엄한 표정으로 건네는 전복 세트와 수건 세트를 양손에 쥐며 빙구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건 목마를 탄 딸의 영향이 컸다.
“아빠아 최고!”
자신의 머리를 말고삐처럼 움켜잡은 세나는 재차 말했다.
“아빠가 제일 쎄에~!”
인구의 입꼬리는 대번에 헤벌쭉해졌다.
결국은, 이 말을 듣고 싶어서 사력을 다한 거였으니까.
때맞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채송아 선생은 우승자의 기념 촬영을 위해 말했다.
“자~ 사진 찍겠습니다! 김치이!”
찰칵!
이렇게 오늘 하루는 승리감에 한껏 취해 화목하게 끝나리라 여겼다.
하지만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려던 참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다.
“세나야. 오늘 예뻐!”
“우웅? 진짜?”
“웅! 완전 예뻐!”
“고마워! 너도 멋져!”
“진짜루?”
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세나를 향해 다가와 말했다.
석구와 짧은 대화 후 막 세나를 향해 다가가려던 인구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불과 몇 초 뒤.
스윽.
인구는 양 무릎을 웅크리고 앉았다.
멀찍이서 인구의 뒤통수를 본 석구는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저 새끼 저거 저기서 애 하나 두고 뭐해?’
그러거나 말거나 인구는 입가에 세상 착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마주 선 남자아이는 두 눈을 끔뻑, 끔뻑거렸다.
인구의 입에선 착한 미소와 달리 살얼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꼬마야, 우리 세나랑 무슨 관계냐?”
“세나랑 관계에...?”
남자아이의 두 눈에 자그마한 의문이 어렸다.
인구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곤 나직이 덧붙였다.
“대답 잘 해야 할 거야.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길 바란다. 난 평화주의자거든. 난 아직 장인어른이 될 준비도 되지 않았단다.”
불길한 마음에 다가갔던 석구는 그만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이 미친 광견병이 애한테 지금 무슨 소리를...!”
< 023. 아빠의 클라스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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