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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 멋진 아빠란 (1)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24화 멋진 아빠란 (1)
2라운드 경기 전날.
박동일 감독은 선수단에 휴식을 부여했다.
인구는 황금 같은 주말에 세나와 함께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축구 경기를 시청 중이었다.
맛난 양념치킨과 함께.
[토비 알데르배이럴트가 키어론 트리피어에게!]
툭 탓!
[트리피어! 빠르게 치고 올라갑니다!]
[손흥빈이 좌측 하프 스페이스에서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는 데요오!]
[오오! 수비수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손흥빈...!]
타앙!
[트리피어의 러닝 크로스으!]
때맞춰 손흥빈은 상대 페널티 좌측 아크 아래까지 발을 들였다.
타앙!
직후 발밑으로 들어온 볼을 향해 원터치 슈팅을 구사했으나 인구와 세나 모두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움을 표출했다.
“아으...!”
“아으...!”
타점이 부정확해 볼이 크게 떠버린 것이다.
세나는 인구가 직접 만든 양념치킨 중 닭다리 부위를 위생 장갑을 낀 채 쥐어 중얼거렸다.
“so close!(너무 아쉬워!)”
“...!?”
소파에 한쪽 다리만 올린 채 옆으로 누워있던 인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자세까지 고쳐잡은 그는 거실 바닥에 앉아 중얼대는 세나를 향해 보다 귀를 기울였다.
“if i was in good mood, the shot was gonna be in! ahh.. it has to be a score! (평소였다면 득점이었어! 아.. 이건 넣을 수 있는 거 였다구!)”
“와아...!”
인구의 입꼬리가 헤벌쭉하게 올라갔다.
얼마 전부터 딸은 간간이 일상에서도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영어 특강 신청도 안 했는데...’
딸에게 있어서만큼은 공부의 늪에 빠뜨리기가 싫었다.
‘아직 애기잖아.’
그런데 오늘 들어본 딸의 영어는 지난날과 비교해서도 더 길고 발음이 명확했다. 대충 들리기론 말이다.
스윽.
그새 인구는 엉덩이로 소파를 쓸 듯이 내려와 세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어 대충 아는 단어를 구사했다.
“와. 우리 세나 찐유스네. 찐유스(지니어스)야!”
“우웅?”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세나가 조금은 슬픈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아마 손흥빈이 득점에 실패해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말고 세나는 물었다.
“what do you mean?(무슨 소리야?)”
“응?”
인구의 동공이 다른 의미에서 살짝이지만 떨렸다.
학창시절 축구만 해왔던 그에게 있어 공부머리는 공장 정지 수준을 넘어 아예 가동된 적이 없었다.
영어 시간엔 잠만 잤고 말이다.
그래도, 아빠답게 인구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 말고 입을 열었다.
“아임 빠인.”
“?”
“아임 빠인 땡큐 앤드 루?”
“아빠아?”
“마이 어드레스 이즈..., 으음.”
대충 기억나는 대로 중얼거렸다.
어렴풋이, 학창시절에 영어 선생님이 한 말도 떠올렸다.
[영어는 자신감이에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스승의 말을 되새겨 인구는 새삼 자신감 넘치게 말을 이어나갔다.
“유 어 마이 도우털!! 후훗! 유.., 마이 다이아몬드!”
이 작고 귀여운 공주에겐 항상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 싶었으니까.
‘모르는 거 하나 없는 척척박사에다가. 흐후훗.’
그때, 세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인구의 커다란 손등을 자그마한 손으로 툭툭 쓰다듬었다.
“아빠아. 괜차나. 영어 못해도 돼.”
“...”
인구는 웃는 표정 그대로 굳었다.
쿠쿵!
머리 위론 벼락이 내리쳤다.
* * *
경기 당일 아침.
한강 fc 1군 식당으로 하나둘씩 선수들이 발을 들였다.
뷔페 형식으로 차려진 이곳엔 한식부터 양식 등이 질서정연하게 꾸려져 있었다.
세나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뒤 출근한 인구는 집게로 음식들을 큼직하게 담으며 중얼거렸다.
“아임 빠윈!”
“하우 알 유우?”
“유 러블리!”
전날 충격을 받은 인구는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따가 경기 끝나고 서점 가서 영 단어 책도 좀 사야겠다.’
생전 공부하고는 담을 쌓다시피 해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영어 공부에 눈을 뜬 건 오직 딸 때문이었다.
‘딸 앞에서 쪽팔리진 말아야지.’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쪽팔릴 것도 없으나 인구는..., 쪽팔렸다.
또 멋진 아빠, 척척박사 아빠라는 모토에 금이 가는 행위였고 말이다.
뒤쪽에서 따라 음식을 담던 중앙 미드필더이자 한강의 캉태라 불리는 석현기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아침부터 웬 영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도 인구의 영어는 끝날 새가 없었다.
“디스 이즈 푸드! 배리 배리 맛난 푸드!”
“앤드 루? 으음. 발음은 좋은 것 같은데 말이야. 내 조상 중에 미국인이라도 있나.”
의도치 않게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현기는 참지 못하고 지적했다.
“저기..., 앤드 루가 아니고..., 앤드 유요.”
“응? 뭐?”
“아니, 그 형 발음이 좀...?”
인구 특유의 사나운 눈빛이 이쪽을 향하자 현기는 차마 지적을 이어가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곧 인구는 픽하니 웃음을 흘렸다.
“인마. 이거 영국식 발음이야.”
“오, 오? 형 영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스윽.
인구는 고개를 돌려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떴다.
“아니. 영국 음식 먹어본 적도 없구먼, 무슨.”
“아...”
석현기는 인구의 입안 가득 들어가는 흰쌀밥에 이어 생선튀김을 한 입 베어 무는 모습에서 입을 벙긋거렸다.
인구는 오물오물 씹다 말고 미간을 좁히더니 젓가락으로 마저 베어 문 생선튀김을 들어 보였다.
“근데 오늘은 아침부터 군대에서 먹던 생선튀김이 다 나오냐? 확실히 사제라 그런지 생긴 것도 더 그럴싸하고, 맛도 더 맛있다? 이 생선튀김이랑 여기 옆에 놓인 감자랑 조화도 좋은 것 같고.”
“...아, 예.”
그게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피시 앤 칩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 * *
경기 몇 시간 전.
지역 언론은 양팀의 선발 라인업을 예측해냈다.
대미의 관심사는 직전 개막전에서 후반전 23분 만에 투입해 1골 1도움을 기록한 인구의 선발 유무였다.
이는 k리그2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 <리청룡> : 닥 인구 투입해야지! 짧은 시간 투입해서 질 뻔한 경기 무승부로 만든 장본인인데!
ㄴ <암동규> : ㅇㅇ 이게 맞음. 암동규 개처럼 뛰게 만든 것만 봐도 꼭 필요한 인재야.
공격 포인트는 팬들의 평가를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일부는 또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가장 큰 문제점을 짚었다.
- <진지충> : 선발로 투입하는 것까지는 크게 문제가 안 될 것 같긴 한데..., 활동량이 걸려.
ㄴ <3개의 폐> : 직전 경기 1골 1도움 기록하긴 했지만 20분 넘게 1.3km 뛴 건 진짜 심각할 정도로 안 뛴 겁니다.
ㄴ <축구신입> : 왜 그렇게까지 안 뛴 걸까요? 0.0???
ㄴ <지송팍> : 뻔하지. 체력이 안 되는 거야.
일부 팬들은 마인구가 체력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한 이로 인해 다른 선수들이 그의 부족한 활동 범위를 커버해야 했기에 선발이 이르다는 평가가 줄지어 이어졌다.
* * *
경기 2시간 전.
한강의 집무실.
박동일 감독은 간식 겸 컵라면을 먹다 말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구단주, 강경민이었다.
맞은편에서 이번 상대인 안양에 관해 이야기하던 수석코치, 동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구단주가 전화 올 때면 항상 예상치 못한 숙제를 던지곤 했으니까.
뚝!
통화는 금방 끝났다.
후루루룹!
동일은 마저 라면을 건져 후후 불어 면치기를 했다.
동룡은 설마 싶은 얼굴로 물었다.
“설마..., 마인구 선발로 쓰랍니까?”
“그러라네?”
“아니, 그 양반은 자기가 뭔데 자꾸 선수 선발에 개입하는 거래요?”
“구단주잖냐.”
“암만 구단주라도 그렇지! 그리고 경기 몇 시간 전에 이렇게 대뜸 연락하는 건 뭐랍니까?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사단장이래요?”
“저기 먼 중국 구단주보단 낫지. 거긴 축구 경력도 없는 뚱뚱한 자기 아들 선발로 투입시키는 판이던데. 그나저나 크으~! 라면 국물 맛 죽이네.”
펄쩍 뛰는 동룡에 반해 동일은 매콤한 국물을 맛보고선 진실의 미간을 지었다.
동룡은 짧게 숨을 토해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선발로 기용할 건 아니죠?”
직전 경기에서 보여준 인구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는 분명 팀에 이로웠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선발로 뛰기에 지금 당장 인구의 실전 체력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동룡은 생각했다.
‘체력 아껴가면서 뛰면 오래 뛰기야 하겠지만...’
자칫 인구의 활동량을 다른 선수들이 커버하느라 팀 전체에 조기에 오버페이스를 불러올 수 있었다.
허나 동일은 가벼이 답했다.
“가서 인구, 그놈 좀 불러와라.”
한강 fc 감독, 박동일은 원래라면 마인구를 심사숙고 끝에 교체로 출전시킬 계획을 세웠다.
팀에 훌륭한 득점과 어시스트를 제공하긴 했어도 여러 여론 반응처럼 체력적인 문제가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선발은..., 일러.’
후반전, 상대 체력이 갈려 나간 시점에 투입하는 게 더 이로운 전략이 아닐까 싶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그만큼 상대 역시 커버 범위가 줄어들고, 집중력 저하를 일으키니까.’
또 한편으로 동일은 경기 두 시간 전부터 이미 정해진 결정을 번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룡이랑 그 외 코치들이 백번 만류할 테지만...’
오늘따라 감독으로서의 촉이란 게 꿈틀거렸다.
마인구가 선발로 뛰어도 분명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다는 그런 촉 말이다.
인구의 두 발엔 날카로움이란 게 여전히 진하게 묻어있었으니까.
‘체력처럼 뒈진 줄 알았는데 발목 힘은 아직 살아있더만.’
결국, 강경민은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자신에게 재고할 기회를 주었다.
동일은 이쑤시개를 문 채 소파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댔다.
곧 그는 끔뻑, 끔뻑! 맞은편 소파에 앉은 인구를 보며 물었다.
“너, 앞에 십오 분 정도 빡세게 뛸래. 아니면 뒤에 이십 분 뛸래?”
선발이라고 해서 굳이 전반전을 모두 소화할 필요는 없었다.
‘구단주 그놈은 분명 지랄 방광을 떨겠다만. 애초에 전반전을 다 채우라는 말도 없었잖아?’
그리고 다른 선수였다면 이게 뭔 개소리냐? 라고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인구는 달랐다. 애초에 그 역시 자신의 몸 상태가 45분 이상 소화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오?”
그렇듯 그는 뜻밖의 제안에 입을 동그랗게 벌리더니 코를 벌렁거렸다.
“말해 뭐합니까? 그래도 선발이 보기 좋죠!”
인구의 옆자리에 앉은 동룡은 생각지 못한 계획에 놀라는 눈치였다.
동일은 픽하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또 구단주 말은 잘 듣는 편이라서.”
동룡은 속으로만 반문했다.
‘맥이는 게 아니라요...?’
* * *
경기 한 시간 전.
엔트리 명단이 발표되었다.
한강은 4-4-2 플랜을 가동했으며 최전방 투톱엔 염동규와 마인구가 위치했다.
“마인구라.”
안양 시티즌 감독, 오태건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저쪽 필드 너머에서 한강 fc 선수들이 경기 전 몸을 푸는 게 보였다.
거기엔 덩치 큰 마인구도 있었다.
“의외인데요.”
서른 초반의 젊은 수석코치, 정대길이 옆으로 다가와 중얼거렸다.
오태건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미간을 좁혔다.
직전 경기에서 마인구가 1골 1도움을 기록하긴 했어도 경기력 자체엔 의문부호가 따랐으니까.
‘선발보다는 조커가 어울리는 유형이었는데.’
태건이 본 그의 플레이는 노장 선수와도 같았다.
에이징 커브를 먹어 활동량이 떨어진 만큼 후반 조커 용도로 투입되는.
하지만 오늘 그들은 자신들을 상대로 인구를 선발로 내세웠다.
피식.
오태건의 입가에 미약한 미소가 걸렸다.
축구는 예측 불가능한 스포츠라지만 마인구의 투입만으로 상대의 전방 압박에 결여가 발생했다고 확신했으니까.
그렇듯,
‘초장부터 밀어붙여야겠구먼.’
이건 1승이 절실하게 필요한 안양 시티즌의 기회였다.
* * *
일요일, 오후 4시.
삐이이이이이!
주심의 휘슬과 함께 한강 fc 염동규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염동규는 곧장 백패스로 볼을 물렸다.
툭!
아군 센터서클 아래로 슬그머니 내려간 인구는 오른발로 가볍게 공을 멈춰 세웠다.
다다다다!
우다다다다!
k리그2에서 가장 젊은 스쿼드를 구성한 안양 시티즌은 단체로 공을 향해 강한 전방 압박을 가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공을 소유한 인구를 향해 좌우, 중앙, 하프에서 네 명의 선수가 빠르게 전진한 것이다.
반면 인구는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안양의 공격수들 대신, 저 먼 허공을 향해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았다.
경기 시작 직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러다 돌연, 인구는 제자리에서 활시위처럼 당긴 오른발을 힘껏 휘둘렀다.
뻐어어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그라운드 전역에 울렸다.
“어억?!”
테크니컬 에어리어. 우뚝 서서 관전하던 오태건의 입이 초장부터 떡하니 벌어졌다.
< 024. 멋진 아빠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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