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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축구를 너무 잘해-25화 (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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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 멋진 아빠란 (2)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25화 멋진 아빠란 (2)

몇 초 전.

안양의 골키퍼, 김태수는 귀가 간지러워 한쪽 장갑을 벗어 귓구멍을 검지 끝으로 후벼팠다.

“아아~ 시원하다.”

왕건이를 제거한 태수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벗은 장갑을 꾸욱, 손목까지 착용했을 때였다.

삐이이이이!

때맞춰 주심의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다.

뻐어어엉!

웬 대포 소리가 난 것도 그 순간이었다.

김태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 어어어? 어어어어어?!”

그 입에선 그만 의문이 이어졌다가 말고 비명의 가락이 터지고 말았다.

저 멀리서부터 공 하나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평소 습관처럼 페널티 에어리어 끝자락에 머물러 있던 그 발걸음은 주춤대다가 말고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예상치 못한 기습에 안색까지 하얗게 질린 그는 겨우 상체를 비틀어 돌아섰다.

쑤우욱-!

그 머리 위로 칼바람이 스쳐 지나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어어억...!”

페널티 스퍼트까지 뛰어들었던 김태수의 두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돌아서기 전까지만 해도 공이 꽤 멀리 있었는데..., 그새 흔들리는 시선 앞에 공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온몸을 던져도 걷어내기 힘들 만큼 앞서 있는 채로.

태수는 초연하게 중얼거렸다.

“씨부랄...!”

촤라악-!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

[마인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미쳤, 미쳤습니다아아아! 믿기지 않는 초장거리 슈팅이 득점으로 연결됐어요오오!]

*       *       *

“예에에에에에!”

경기 시작 7초 만에 터진 득점에 마인구는 폴짝 뛰며 소리쳤다.

일찍이 그는 보았다.

골키퍼가 경기 시작 전부터 페널티 에어리어 끝자락까지 나와 수비수들의 위치를 일일이 조정하는 것을.

그러다 대뜸 귀를 팠다.

‘골키퍼가 뭔 자신감에 시작부터 튀어나와 있나 했더니만.’

머리가 멍청한 거였다.

염동규와 그 외 동료들은 앞뒤 좌우에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인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마인구우우우!”

“이 새뀌!”

새삼 축구란 성적 만능주의란 걸 느꼈다.

“아니 왜 이렇게 이뻐? 응? 뽀뽀해도 되냐?”

쪽!

어떤 미친놈인지는 몰라도 더러운 감촉이 이마 정중앙에서 느껴졌다.

그럼에도 인구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그들이 온몸으로 흔들어도 꿋꿋이 버텨냈다.

이를 대비해 득점 직후부터 두 다리와 기립근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으니까.

퍼억, 들썩, 들써억!

파도가 몰아치는 것마냥 상체가 이리저리 흔들렸음에도 인구는 표정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입꼬리는 살짝, 치아 네 개만 딱 보이게.’

‘눈꼬리는 아래로...! 세상 온화하고도 착하게!’

이유는 명확했다.

[오오! 마인구 선수! 가슴께에 만들어낸 손하트를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 보이는군요!]

[누구를 위한 세레머니인가요오?!]

오직,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딸을 위함이었다.

*       *       *

이른 선제골에 마인구를 향한 팬들의 비판이 잠시지만 쏙 들어갔다.

앱 결제를 통해 경기를 시청 중에 있던 한강 팬들은 흥분에 겨워했다.

- <손흥빈> : 방금 골 뭐임?

- <목동매시> : 와. 대박, 진짜. 저 발목 힘이랑 시야 뭐냐? ㅋㅋㅋㅋㅋㅋ

- <애릭라멜라미워> : 해리 캐인 보는 줄 알았네. 캐인도 예전에 저거랑 비슷한 위치에서 골 넣은 적 있잖아!

- <청대의전설> : 마인구! 내가 아는 마인구가 돌아왔다아아아아!

- <차범곤> : 얘, 옛날에 차범곤 축구상 받았던 애 아니야?

구장에 입장한 관중 수는 첫 개막전보다 200명이 더 많은 12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k리그2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관중 수치. 상당수는 마인구라는 과거와 대조되는 현재라는 어그로에 끌려 입장한 거였다.

허나 지금, 자리한 팬들은 누구 하나 앉을 새 없이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기야. 내가 말했지? 마인구 저놈 저거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어머, 어머...! 나 못 봤어? 핸드폰 보느라...,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찌 되긴. 우리 인구가 또 골 넣었지!”

몇몇은 이제 인구 앞에 ‘우리’라 붙였다.

지난 시즌 똥볼만 남발하던 한강이 개막전부터 득점력을 뽐내자 팬들은 힘찬 응원가를 열창했다.

이른 실점에 안양의 오태건 감독은 버럭 소리쳤다.

“김태수 인마아아아! 내가 페널티 스퍼트 이상 넘어서지 말랬잖아!”

누누이 강조한 부분이었다.

방금 실점은 김태수의 치명적인 버릇에서 비롯된 실책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오태건도 조금 전, 그가 생각 이상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봤지만 딱히 지적하진 않았었다.

킥오프에서 마인구가 그렇게 갑자기 장거리포를 구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또 그게 들어가...?’

작정하고 노려도 넣기 힘든 위치였다.

공기의 저항에 따른 정확도부터 시작해 어지간한 발목 힘이 아니면 골라인에 다다르기도 전에 속도가 죽을 테니.

“발목힘이..., 장난 아닌데요?”

옆에 있던 수석코치, 정대길이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오태건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10년을 넘게 쉬었댔는데···.’

겨우 한 달, 두 달 훈련한 거로 단기간 내 지금의 기량까지 끌어올렸단 말인가?

‘아니.’

억센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린다 할지라도 저 발목 힘은 비정상적인 레벨이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그래도 졌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예정과 다르게 조금 버겁게 돌아갈 뿐이다.’

애초에 한강 fc는 k리그2의 최약체 팀이 아니던가.

지난 목동과의 경기에선 비겼다지만 이는 목동의 감독이 속된 말로 바지사장이었기 때문이다.

‘무능 그 자체인 놈...!’

반면 오태건, 본인은 다르다고 자부했다.

우선적으로 그는 한강의 공격을 단절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직전 목동과의 경기에서 한강의 공격 핵이 누구인지 똑똑히 포착했으니까.

일순 두 눈은 날카로워졌다.

‘마인구..., 저놈만 마킹하면 돼!’

*       *       *

안양의 포백은 제법 덩치가 큰 편에 속했다.

‘얼추 센터백만 해도 190cm는 넘고. 좌우 백들도 180대 중반이네.’

아마 k리그2에선 제공권 하나는 탑이지 않을까 싶었다.

인구는 힐끗, 눈동자를 굴렸다.

우측면, 바로 한 걸음 거리에서 미드필더 하나가 제 움직임에 맞춰 대인마킹에 임하고 있었다.

‘유해진.’

170cm 중반쯤 되어 보이는 키에도 불구하고 딴딴한 체형을 갖춘 미드필더였다.

생긴 것도 짱돌처럼 다부진 데다, 활동량도 많다.

‘진짜 유해진 닮았네...?’

채 생각은 이어가지 못했다.

[석현기의 땅볼 패스으!]

여지없이 한강의 석현기가 상대 골문을 등지고 있던 인구에게 스트레이트 패스를 찔렀다.

퍼억!

그 순간 해진은 깜빡이 없이 어깨 피딩을 가했다. 가랑이 사이론 오른발 스터드를 깊숙이 뻗어 연결된 볼을 빼내려 한다.

“우이씨! 으이익!”

해진은 작은 눈을 한껏 찌푸리면서까지 코앞의 덩치를 압박하고 압박했다.

‘뭐이리 단단해?’

감독의 지시였지만 자신감은 넘쳤다.

박스 투 박스 유형의 그는 피지컬에 있어서도 뛰어났으니까.

키가 크든 말든, 몸뚱이가 두껍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생각 이상인데?’

이제 두 번째 공식 경기를 갖는 마인구는 상상 이상으로 중심이 좋았다.

툭, 툭!

지금도 그는 등진 채 최대한 엉덩이만 쏙 빼 오른발 스터드로 볼을 제게서 멀찍이 두어 버텨냈다.

순간 해진이 작은 눈을 번뜩였다.

‘그럼 이건 어때?’

후욱!

인구는 뒤쪽의 무게가 한순간 빠짐을 느꼈다.

퍼어억!

곧, 더한 압박이 가해졌다. 이번엔 상체가 앞으로 크게 들썩였다.

해수가 빠져나가듯, 몸을 뒤로 뺐던 해진이 반동을 이용해 더욱 억세게 파도처럼 밀어붙인 거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츠윽!

계속해서 압박할 듯하던 녀석은 돌연 인구의 왼 어깨를 비집듯 파고들었다.

과정에서 아예 팔꿈치와 왼손으로 밀어내듯 인구의 상체를 바깥으로 벌리기까지.

‘됐다...!’

민첩함, 속도까지 좋은 해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릅 뜬 눈엔 보였다.

자신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인구의 왼 상체가 반쯤 열린 게.

그 오른발 스터드 아래 꾸욱, 눌려있는 공까지!

‘이제 발만 뻗으면 돼!’

후윽!

그런데 일순, 해진의 눈앞에 거대한 등이 나타났다.

"어?"

순간 가려진 시야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투욱!

인구의 발 밑에 있던 공이 널찍한 등을 벽 삼아 숨었다가 말고 빠르게 안양 진영으로 튀어나갔다.

씨익-

“이거지.”

인구의 입꼬리가 끌어올라갔다.

그는 해진이 온몸을 활용해 자신의 좌측 상체를 열어재끼자마자 아예 180도 터닝으로 재차 등져버렸다.

동시에 왼발 인사이드로 오른발 밑에 있던 공을 툭 때렸다.

투웅-!

필드를 박차듯 인구도 따라 뛰어들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기민한 탈압박에 해진은 약 2초간 엉성하게 선 그대로 얼어버렸다.

오오오오오!

홈팬들은 기대에 찬 환호성을 터뜨렸다.

투욱!

인구보다 몇 걸음 앞서 있던 염동규가 공을 받자마자 왼쪽 에어리어 직전까지 온 힘을 다해 내달렸으니까.

“막아아아!”

안양의 센터백과 미드필더들은 그런 그를 막고자 우측면, 정면에서부터 접근했다.

스윽!

그틈에 인구는 필드를 가로질러가 우측 에어리어에 도달 즉시,

“여엄!”

외쳤다.

투욱!

동규는 정면, 우측면의 선수와의 거리가 두 걸음 차까지 좁혀진 그 순간에 오른발 바깥 발로 툭! 패스를 연결했다.

“어딜...!”

안양의 센터백이자 주장, 강기진은 최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 말고 전방으로 돌진했으며, 인구는 왼 다리를 뒤로 당겼다.

‘슈팅이야...!’

강기진은 확신했다.

녀석이 흘러온 공의 결 따라 원터치 슈팅을 구사하리라는 것을.

쏴아아아아-!

판단을 끝낸 기진은 네 걸음 거리에서 온몸 던져 슬라이딩 태클을 구사했다.

어떡해서라도 슈팅을 굴절시키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인구의 타격 지점으로 공이 도달했을 때였다.

투윽-!

인구가 휘두른 왼발등에 공이 닿았다.

분명 닿았으나 기진의 두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

이내 두 동공은 좌측으로 홱! 쏠렸다.

인구가 왼발등으로 공을 감싸듯 끌어안고서 우측 배후로 쏙! 빼낸 것이다.

‘슈팅 페이크...!’

뒤늦게 기진은 깨달았지만 더는 저지할 수가 없었다.

이미 자신은 온몸을 던지는 슬라이딩 태클로 밸런스가 처참히 깨져버린 상태였으니까.

툭!

그는 허망한 눈길로 제 정수리 위로 공과 함께 지나쳐버린 인구를 바라보는 게 다였다.

타앙!

이어 인구는 우측 페널티 스퍼트에 도달하기도 전, 왼발 인프런트 킥을 구사했다.

촤라악!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듣기 싫은 그물망 소리에 기진의 얼굴 근육은 한순간 풀렸다.

와중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분명 활동량이 최악이라고 들었는데...’

경기 시작 5분 동안 양 팀 선수 중 인구는 가장 많은 활동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 025. 멋진 아빠란 (2) > 끝

ⓒ 강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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