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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7. 멋진 아빠란 (4)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27화 멋진 아빠란 (4)
- <한강서포터> : 이야~ 올 시즌 한강물은 무지 따뜻하네. 온탕이네 온탕!
- <박주용> : 마인구 하나 영입된 거로 득점력 상승한 거 실화냐?
- <결혼하고싶다> : 진짜 미쳤다. 한강 1승 1무네? 그것도 목동이랑 안양 상대로??
- <의정부뚝배기> : 마인구는 물건입니다. 여러분!
- <카더라충> : 내가 말했지? 마인구 아직 안 죽었다니까~ ㅋㅋㅋㅋㅋ
안양전에서의 승리로 팬들은 난리였다. 지역 언론뿐만 아니라 이번엔 한국 내 저명한 매체에서도 한강의 승리를 언급했다.
[한강! 안양 상대로 3 : 1 완승 거둬...!]
[돌아온 탕아, 마인구! 한강에 역대급 승리를 선사하다!]
[전반전 7분 만에 세 골 몰아친 옛 한국의 미래...!]
* * *
축구 전문 너튜버들에게 있어 마인구는 맛난 주제 거리로 비상했다.
[우리 한국 팬들중에, 진짜 축구에 미친 사람들은 k리그2까지 챙겨 볼 거에요. 아니면 토토에 미쳤거나. 그중 한 명이 바로 저거든요? 아아, 저는 전자로요! 맨날 보는 건 아니고 간간이 찾아봐요. 그리고..., 여러분, 마인구 선수 아시죠?]
컴퓨터 앞에 앉아 축구 경기 및 분석, 감평을 전문으로 하는 <고양이네 라이브> 너튜버는 치킨을 먹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마인구 선수가 해트트릭 기록한 거 아시나요? 내가 봤는데..., 어후! 소름이 돋더라고!]
너튜버의 언급에 실시간 댓글창 속 몇몇 구독자는 물음표를 보였다.
- <해축인생2년차> : 마인구가 누구야?
- <음바패> :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 <한국축구망해라> : 2부 리거 선수까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까? 그것도 유럽도 아닌 좆밥리그인 k리그2?
젊은 사람들, 또는 축구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 마인구는 생소한 인물이었다.
인구의 활동 시기는 오래 전인데다 매우 짧았으니까.
너튜버는 이를 알려주었다.
[마인구 선수가 누구냐면요. 10년, 아니 11년 전에, 한때 청대에서 손흥빈이랑 같이 한국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던 선수에요!]
이어 너튜버는 그의 일대기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을 덧댔다.
- <산소탱크돌아와> : 아..., 그럼 11년이나 축구를 그냥 쉬었던 거네?
- <밥묵자> : 축협 개쉐이들...! 어린 선수 하나 그냥 조져버렸네.
- <세개의폐> : 그러니까, 11년 전에 후배 괴롭히던 선배 때렸고, 축협한테 이리저리 치이다가 한 방에 저물었던 거네? 그러다 한참 후에 갑자기 k리그2로 복귀한 거고.
- <소니> : 나 방금 검색해봤는데..., 11년 만에 복귀한 것 치고는 제법이던데? k리그2에서 벌써 2경기 4골 1도움이야.
물론 일부는 인구를 얕잡아봤다.
- <해축만취급합니다> : 결국은 k리그2. ㅋㅋㅋㅋㅋㅋ 고양이님. 굳이 망리그 선수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강민이나 평해주세요.
- <망경동로날두> : k리그2가 얼마나 줫밥이면 아마추어도 안 되는 선수가 가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거냐?
- <흙수저인생> : 검색해 보니까 활동량이 너무 떨어지던데? 해트트릭 달성하고 25분 만에 빼는 건 뭐냐 ㅋㅋㅋㅋ 28살이면 한창 전성기 구가할 나이 아님?
너튜버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두 눈에 힘주어 폭탄 발언을 했다.
[제가 장담하는데요. 이 선수, 조만간 유럽 갑니다.]
선수의 평가에 있어 평소 박하기로 유명한 너튜버의 선언에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 <블루드래곤> : 아니, 그 정도라고?
- <달수네> : 고양이님.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건가요?
- <구독은권리다> : 과한데;;; 겨우 줫밥리그에서 해트트릭한 거로;; 구독 취소해야 할 때가 온 건가?
구독자 중 상당수는 유럽 축구만을 취급한다. 그렇듯 상대적으로 훨씬 약한 한국 리그 내 선수 언급은 부정을 끌어내기에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지난 목동전과 오늘 안양전에서 보여준 인구의 플레이는 너튜버, 고양이이자 김희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게 선수 본인이 언급한 거라 사실 여부는 검증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11년 만에 축구를 다시 시작해서, 곧바로 k리그2에 입성한다? 그것도 2경기에서 4골 1도움? 이건 진짜..., 말이 안 되거든.]
너튜버는 덧붙였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이긴 하나 그의 플레이는 최근 본 어떤 선수보다도 강렬했다고.
[하프라인에서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골문을 노리고 장거리포로 득점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 흔치 않아요. 아니, 거의 없을걸? 일단 기본적으로 발목 힘이 무지 강해야 해. 다음은 정확성이겠죠.]
이를 인구는 해냈다.
오늘 자 득점 장면을 수차례 돌려봐도 억 소리가 연신 나올 정도로 강력한 슈팅이었다.
[두 번째 득점, 세 번째 득점도..., 순수 개인 기량에 의한 득점이에요.]
190cm에 달하는 키에도 불구하고 발밑이 유들유들했다.
수비수를 등진 채 깔끔한 트래핑으로 공을 띄운 뒤 돌아 뛰는 플레이는 지루를 연상케 했고 말이다.
[첫 개막전에서보다 활동량도 두 배로 늘었고, 볼터치도 훨씬 더 좋아졌어요. 속도는 느린 것 같은데, 막상 1대1로 경합 시 순간적인 움직임은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는 듯했고.]
축구 전문 너튜버, 고양이는 코치 라이센스를 보유한 만큼 전문성을 띠고 있었다.
그런 그는 확신했다.
[단 두 경기 만에 기량이 한층 더 올랐단 말입니다! 아니, 아니지. 그냥..., 간단히 설명드릴 게요.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 선수마다 어빌리티와 포텐이 있는 거 아시죠?]
- : 알지. 알지!
- <나는개똥벌레> : 나 어제도 그거 함 ㅋㅋㅋ
- <진지충> : 그건 또 왜요?
[아신다니 설명이 쉽겠네. 어빌리티가 현재 선수의 기량이고, 포텐이 타고난 잠재력이면..., 마인구 선수의 어빌리티가 목동 전에서 90이라고 쳤을 때, 바로 다음 경기에선 100까지 수직상승한 것 같은 플레이를 보였단 말이에요.
그만큼 단 두 경기 만에 인구의 경기력은 일취월장했다.
‘진짜, 다른 선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양이는 청대 시절의 마인구를 아주 잘 알았다.
그 당시 벤치 멤버였으니까.
그렇듯 똑똑히 보았다.
축구 최강국이라 칭해지는 나라들을 상대로 마인구가 매 경기 무쌍을 찍던 모습을 말이다.
부르르르-
옛 회상만으로 몸이 떨렸다.
‘그땐 진짜..., 어나더 레벨이었다고.’
지난 날,마인구와 경쟁 포지션이었던 자신이 벤치만 데우고 있는 게 다 납득이 될 만큼.
더 나아가 경쟁의식은 일찍이 증발하고 선수이기 이전, 팬으로서 그를 동경할 정도였다.
괜시리 눈시울은 붉어졌다. 11년이 지나서야 그가 이렇게라도 성인 무대에 발을 들였다는 것에.
그리고 오늘 경기를 통해 그는 다시 한번 여실히 체감했다.
[구독자 여러분. 한 번 지켜봐 주세요. 마인구 선수, 앞으로 더 잘 할 겁니다! 분명히, 유럽 갈 거에요!]
'마인구...!'
희원은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였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재능의 벽앞에, 일찍이 선수로서의 꿈을 스스로 단념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던가.
* * *
화창한 오후.
금발 머리칼을 올백으로 넘긴 중년 신사, 로보트 파이기는 근처 카페 실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맛보았다.
“윽!”
얼음이 동동 띄워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맛본 파이기는 와락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뭔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따뜻한 거 시키지 그랬어요.”
“그래도 궁금은 하니까.”
“후회하시죠?”
“응, 많이.”
맞은편엔 직장 동료, 스벤 톨도가 따뜻한 카푸치노를 기분 좋게 한 모금 들이켰다.
툭!
로보트 파이기는 딱 한 모금만 마시곤 테이블 위에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입안의 텁텁함에 파이기는 찡그린 표정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톨도는 입안에 감도는 풍미를 느끼며 물었다.
“딱히 눈에 띄는 선수는 없죠?”
“그러네.”
“일본에도 가보실 건가요?”
“가기 싫어도 가야지. 일정이 그렇게 짜졌는데.”
“하긴. 구단에서 아시아 시장을 그리도 뚫고 싶어 하니까요.”
“아시아가 돈이 되긴 하지. 선수까지 잘해주면 훨씬 좋고.”
로보트 파이기와 케빈 톨도는 유럽 구단에서 파견된 스카우트였다.
그리고 파이기는 요 2주간, 한국 k리그 내 선수들을 면밀하게 관찰해왔다.
파이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딱히, 유럽에서 먹힐 만한 선수는 없어. 적어도 k리그 내에선 말이야.”
k리그는 국제축구연맹에 의하면 전체 리그 순위 34위에 불과한 변방 리그였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온 데는 지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의 공이 컸다.
“박지송, 이용표, 이창용, 기상용, 손흥빈 등..., 한국에서도 잘 찾아보면 숨은 원석이 꽤 있어.”
훌륭한 선례가 있는 만큼, 유럽 스카우트들이 한국에 발을 들이는 횟수는 매 시즌마다 증가하는 추세였다.
“예, 그 원석을 찾기가 무지 힘들다는 게 문제지요.”
“그래서 스카우트가 꽤 많은 돈을 받는 거지. 인센티브도 어마어마하잖아?”
“그건 그렇다지만..., 차라리 브라질로 보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여긴 너무 변방이라.”
톨도의 말대로였다. 냉정히 보건대, 현재의 한국에선 앞서 언급한 선수들의 초창기 재능급은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그 아래 티어로 추정되는 자들도 없었다.
톨도는 화창한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다 건져간 거 아닐까요? 발렌시아의 이강민도. 잘츠의 황이찬도 그렇고요. 요즘은 또 청소년 때부터 유럽 구단들이 덥석 물어가는 경우가 많대요. 손흥빈이 딱 어린 시절부터 유럽에서 성장한 케이스잖아요.”
“그래서 씨가 말랐나.”
파이기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투덜댔다.
속으론 생각했다.
‘암만 구단이 마케팅 용도급을 원한다 해도..., 이왕이면 실력까지 겸비하면 마케팅 효과는 배가 될 텐데 말이야.’
제 인센티브도 더 오르고 말이다.
그러다 말고, 일순 파이기는 묘한 미소를 띠었다. 한 손은 습관처럼 테이블에 두었던 아메리카노를 향해 뻗어졌다.
“k리그1엔 없어도..., k리그2엔 한 명 있긴 하더라.”
후루룹!
“푸웁!”
무의식적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킨, 뉴캐슬의 스카우트 파이기는 그만 뿜었다.
* * *
경기 다음 날.
“꺄하하하핫~”
“우어어어어~!”
“으아아아~”
오전부터 세나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인구의 귓가를 간질였다.
까치집 머리 상태로 소파에 퍼지게 앉은 인구의 입가엔 절로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귀여워.’
널찍한 거실 한편엔 조금 전, 인구가 직접 조립해 만든 미끄럼틀이 있었다.
딸은 벌써 20번째 미끄럼틀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중.
“슈퍼맨이다아~!”
“배트맨이다아아~!”
문득 인구는 턱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미끄럼틀..., 주문한 적이 없는데.’
조금 전 난데없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워낙 미끄럼틀의 크기가 컸던 탓에 처음부터 분해된 상태로 말이다.
‘조립하느라 잠 다 깼네.’
지금은 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잠이 싹 달아났다.
‘진작에 사줄 걸 그랬나.’
딸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 이상으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의문도 금세 사라졌다.
‘가은이가 보냈나 보지, 뭐.’
< 027. 멋진 아빠란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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